교회증언8 329-335 (447일)

우리의 큰 필요

품성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에 관한 지식이 우리에게 크게 필요하다. 우리가 그분의 목적을 이루려면, 그분의 말씀의 교훈에 일치되는 하나님의 계시가 우리의 생애에 있어야 한다.

에녹과 침례 요한의 경험은 우리의 경험이 어떠해야 할 것인지를 보여 준다. 우리가 연구해야 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는 이 사람들,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사람과 그리스도의 초림 전에 주님의 길을 예비하고 그분의 길을 곧게 하도록 부름을 받은 사람의 생애들을 연구할 필요가 있다.

에녹의 경험

에녹에 관해서는 그가 65년간 살면서 아들을 낳았고, 그 후에 300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초기의 세월 동안, 에녹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켰다. 그러나 첫 아들의 출생 이후로 그는 더욱 높은 경험에 이르렀고, 하나님과 더욱 밀접한 관계에 들어갔다. 그가 아버지에 대한 그 아이의 사랑, 그의 보호에 대한 그 아이의 단순한 신뢰를 보았을 때, 그리고 그 첫 아들에 대한 깊고 애절한 마음의 부드러움을 느꼈을 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을 선물로 주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께 신뢰할 수 있는 확신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해 주어진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이 밤낮으로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심령의 열정을 다하여 그는 그의 주변에 사는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드러내기 위하여 애를 썼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이나 이상 가운데가 아니고 일상 생활의 모든 의무 가운데에서였다. 그는 자신을 세상으로부터 완전히 차단시킨 은둔자가 되지 않았다. 그는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해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남편과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고부동하고 흔들림이 없는 하나님의 종이었다.

-330-

세기가 지나감에 따라 그의 믿음은 더욱 강해지고 그의 사랑은 더욱 열렬해졌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과 같았다. 그는 하늘의 분위기 속에서 살았다.

장래의 광경들이 그의 눈앞에 펼쳐졌을 때 에녹은 의의 전도자가 되어 경고의 기별을 듣고자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가인이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도망하고자 했던 땅에서 하나님의 선지자는 그의 눈앞에 지나간 놀라운 광경들을 알렸다. 그는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 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과 또 경건치 않은 죄인의 주께 거스려 한 모든 강퍅한 말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 (유 14, 15) 고 선언했다.

하나님의 종에게 역사한 하나님의 능력이 듣는 자들에게 느껴졌다. 어떤 사람들은 경고에 유의하고 그들의 죄를 버렸다. 그러나 다수의 사람들은 그 엄숙한 기별을 조롱했다. 하나님의 종들은 마지막 날에 동일한 기별을 세상에 전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기별 역시 불신과 조롱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세월이 지나감에 따라 인간의 범죄의 조류는 점점 더 깊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은 점점 더 짙게 몰려왔다. 그러나 믿음의 증인 에녹은 자기의 길에 굳게 서서 범죄의 조류를 물리치고 복수의 분출을 저지시키고자 경고하고, 탄원하고, 가르치며 애쓰고 있었다.

그 세대의 사람들은 금이나 은을 모으거나, 이 땅에서 소유물을 축적하고자 하지 않는 그 사람의 어리석음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화에 있었다. 그는 하늘의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의 한 가운데서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보았다. 존재하는 죄악이 커져 가면 갈수록 하나님의 집을 바라는 그의 열망은 더욱 열렬해졌다. 아직도 지상에 있으면서도 그는 믿음으로 빛의 왕국 안에서 살았다.

-331-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마 5:8). 300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를 이루기 위하여 마음의 순결을 추구해 왔다. 3세기 동안 그는 하나님과 동행했다. 날마다 그는 더욱 밀접한 연합을 갈망했고, 그 교통은 점점 더 가까워져서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그를 당신께로 데리고 가셨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 어귀에 서 있었고, 그와 축복의 땅과는 한 걸음만이 남았다. 이제 문은 열렸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진행되었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그대로 계속되어 그는 거룩한 도성의 정문을 통과하였다. 그는 사람들 가운데서 그 곳에 들어간 첫째 번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히 11:5).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러한 교통을 요구하고 계신다. 주님의 재림 때에 사람들 사이에서 구속받을 자들의 품성의 성결은 에녹의 품성처럼 되어야 한다.

침례 요한의 경험

침례 요한은 그의 광야 생활에서 하나님을 배웠다. 그는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를 연구했다. 하나님의 성령의 지도 아래 그는 선지자들의 두루마리 책들을 연구했다. 밤낮으로 정신과 마음과 영혼이 영광스런 이상 (異像) 으로 충만해질 때까지 그는 그리스도를 그의 연구, 그의 명상의 주제로 삼았다.

그는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바라보고 자아를 잃어버렸다. 그는 거룩함의 위엄을 바라보고 자기 자신이 부족하고 무가치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가 선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기별이었다. 그는 하나님의 능력과 그분의 의 안에 서야 했다.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늘 기별의 전달자로서 나갈 준비를 갖추었다. 그가 하나님을 쳐다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떨면서 만왕의 왕 앞에 머리를 숙였기 때문에 세상의 주권자들 앞에서 두려움 없이 설 수가 있었다.

-332-

요한은 정교한 이론이나 너무도 세밀한 학설을 가지고 그의 기별을 선포하지 않았다. 너무도 놀랍고 엄격하면서도 희망으로 가득한 그의 음성이 광야에서 들렸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마 3:2). 새롭고 이상한 힘을 가지고 그 음성은 사람들을 감동시켰다. 온 나라가 흔들렸다. 무리들이 광야로 몰렸다.

주변의 시골에서 온 무식한 농부들과 어부들, 헤롯의 병사 (兵舍) 에서 온 군인들, 반역의 기미로 보이는 어떤 것이라도 쓰러뜨리고자 준비를 갖추고서 옆구리에 칼을 차고 있는 두목들, 세금 징수소에서 온 욕심 많은 세리들, 산헤드린에서 온 경문을 넓게 한 제사장들, 이 모두가 마치 넋을 잃은 듯이 들었다. 그리고 모든 사람, 심지어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 냉랭하고 감수성이 없는 조소자들까지도 조롱을 그치고 돌아갔으며 그들의 죄에 대한 의식으로 가슴이 사무쳤다. 헤롯은 그의 왕궁에서 그 기별을 들었고, 교만하고 죄로 굳어진 그 통치자는 회개하라는 호소에 떨었다.

이 시대에,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구름을 타고 재림하시기 직전에, 요한의 사업과 같은 그런 사업이 이루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큰 날에 설 수 있는 한 백성을 준비시킬 사람들을 부르고 계신다. 그리스도의 공중 봉사 전에 있었던 기별은 “세리와 죄인들이여, 회개하라. 바리세인과 사두개인들이여, 회개하라.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는 것이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을 믿는 한 백성으로서 “네 하나님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 4:12) 고 증거해야 할 기별을 가지고 있다. 우리의 기별은 요한의 기별처럼 직설적이어야 한다. 그는 왕들의 범죄에 대하여 그들을 책망했다. 생명이 위태로웠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 시대의 우리의 사업도 마찬가지로 성실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333-

요한이 전한 것과 같은 기별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는 그의 경험과 같은 영적 경험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고, 바라봄으로 자아를 잃어버려야 한다.

요한은 천성적으로 인간에게 공통적인 결점과 약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의 손길이 그를 변화시켰다. 그리스도께서 봉사를 시작하신 후에 모든 사람들이 새 교사를 따르고 있다는 불평을 가지고 그의 제자들이 그에게로 왔을 때, 그는 메시야와 자신과의 관계를 어느 정도로 분명히 이해했는지, 그리고 그가 길을 예비한 분을 어느 정도로 기쁘게 영접했는지를 보여 주었다.

그는 말했다. “만일 하늘에서 주신 바 아니면 사람이 아무것도 받을 수 없느니라 나의 말한바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요 그의 앞에 보내심을 받은 자라고 한 것을 증거할 자는 너희니라 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나는 이러한 기쁨이 충만하였노라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요 3:27-30).

믿음으로 구속주를 바라봄으로 요한은 자아 포기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 그는 사람들을 자기 자신에게로 이끌고자 노력하지 않고, 그들이 하나님의 어린양에게로 쏠릴 때까지 그들의 사상을 점점 더 높이 끌어올렸다. 그 자신은 광야에 있는 하나의 소리, 하나의 외침에 불과했었다. 이제 그는 기쁨으로 모든 사람의 눈이 생명의 빛 되신 분에게로 향할 수 있도록 침묵과 무명인 (無名人) 의 상태를 받아들였다.

하나님을 위한 기별자로서의 그들의 부르심에 성실한 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 영광을 구하지 않을 것이다. 자아에 대한 사랑은 그리스도께 대한 사랑에 삼켜질 것이다. 그들은 침례 요한처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 (요 1:29) 라고 선포하는 것이 그들의 사업임을 인정할 것이다. 그들은 예수님을 높이게 될 것이다. 그리하면 그분과 함께 인간도 높여질 것이다. “지존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 57:15).

-334-

자아가 비워진 선지자의 심령은 하나님의 빛으로 채워졌다.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과 거의 같은 말로 그는 구주의 영광에 대하여 증거했다. 그는 말했다. “위로부터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고 땅에서 난 이는 땅에 속하여 땅에 속한 것을 말하느니라 하늘로서 오시는 이는 만물 위에 계시나니…하나님의 보내신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요 3:31-34).

그분을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이 영광에 동참해야 한다. 구주께서는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 고로” (요 5:30) 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다. 요한은 “이는 하나님이 성령을 한량없이 주심이니라” 고 말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는 자아를 즐겨 비우고자 할 때만이 하늘의 빛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고자 할 때만 우리는 하나님의 품성을 분별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 있다. 이렇게 하는 모든 사람에게 성령께서 한량없이 주어진다. 그리스도 안에서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 (골 2:9, 10) 진다.

-335-

하나님의 약속들

자아를 즐겨 낮추고자 하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의 약속들이 주어져 있다.

“내가 나의 모든 선한 형상을 네 앞으로 지나게 하고 여호와의 이름을 네 앞에 반포하리라” (출 33:19).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렘 33:3).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우리에게 “충만하게 하” 실 것이다 (엡 3:20, 1:17, 3:18, 19).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초청하여 받아들이게 하시는 지식이며, 그 밖의 모든 것은 허무하고 가치 없는 것들이다.

교회증언 8권 pp. 329-335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