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639-648 (327일)

사도는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6) 고 말한다. 이 성경절은, 사면을 위하여 사제에게 가는 일을 지지하기 위하여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그렇게 적용되면 안 된다. 그대의 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는 유일의 분, 하나님께 고백하고, 그대의 잘못을 피차에 고백하라. 만일 그대가 친구나 이웃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는 그대의 잘못을 인정해야 하고, 그대를 거리낌없이 용서해 주는 것은 그의 의무이다. 그 후에 그대는 하나님의 용서를 구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대가 상처를 입힌 그 형제는 하나님의 소유이며, 그에게 손해를 입힘으로 그의 창조주요 구속주에게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 그 경우는 전혀 사제 앞에 제시될 것이 아니고 유일한 참 중보자시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 시고, “우리 연약함을 체휼” (히 4:15) 하시고 모든 죄의 오점을 씻으실 수 있는 우리의 대제사장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다윗이 우리아와 그의 아내에게 범죄했을 때 그는 하나님 앞에 용서를 탄원했다. 그는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시 51:4) 라고 부르짖는다. 다른 사람들에게 범한 모든 잘못은 손해를 입은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돌아간다. 그러므로 다윗은 용서를 구하되 사제에게가 아니고 사람의 창조주에게 구한다. 그는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주의 많은 자비를 좇아 내 죄과를 도말하소서” (시 51:1) 라고 기도한다.

참된 고백은 언제나 구체적이며 개개의 죄들을 인정한다. 그 죄들은 오직 하나님 앞에만 제시되어야 할 그런 성격의 것일 수도 있고, 그 죄 때문에 고통을 받은 개인들 앞에 고백되어야 할 잘못들일 수도 있고, 회중에게 알려져야 할 일반적인 형태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모든 고백은 분명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그대가 범한 바로 그 죄들을 인정하는 것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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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 암몬 사람들에게 압제받을 때 택한 백성은 참 고백의 성격을 알려 주는 호소를 하나님 앞에 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고백과 기도에 일치되게 행동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 겼다. 그러자 여호와의 크신 사랑의 마음이 근심하였고,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삿 10:10-16).

진정한 회개와 개혁이 없으면 고백은 하나님께 가납될 수 없다. 생애에 결정적인 변화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께 거슬리는 모든 것은 버려져야 한다. 이것은 죄에 대한 진정한 슬픔의 결과가 될 것이다. 바울은 회개의 역사를 이렇게 말한다. “보라 하나님의 뜻대로 하게 한 이 근심이 너희로 얼마나 간절하게 하며 얼마나 변명하게 하며 얼마나 분하게 하며 얼마나 두렵게 하며 얼마나 사모하게 하며 얼마나 열심 있게 하며 얼마나 벌하게 하였는가 너희가 저 일에 대하여 일절 너희 자신의 깨끗함을 나타내었느니라” (고후 7:11).

사무엘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을 떠나 방황했다. 그들은 죄의 결과로 고통을 받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을 잃어버리고, 국가를 통치하는 그분의 능력과 지혜에 대한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그분의 사업을 옹호하고 방어해 주는 그분의 능력을 믿는 확신을 잃어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위대한 우주의 통치자를 등지고 그들 주변에 있는 국가들처럼 통치받기를 원했다. 그러나 그들이 평안을 찾기 전에 그들은 이런 분명한 고백을 했다. “우리가 우리의 모든 죄에 왕을 구하는 악을 더하였나이다” (삼상 12:19). 그들이 깨달은 바로 그 죄가 고백되어야 했다. 그들의 배은 망덕은 그들의 심령을 눌렸고 그들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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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가 도덕적 지각을 마비시켜 버리면 악을 행하는 자는 자신의 품성의 결함을 분별하지 못하고 그가 범한 악의 극악함을 깨닫지 못한다. 그러므로 각성시키는 성령의 능력에 굴복지 않는 한, 그는 그의 죄에 대하여 부분적으로 눈먼 상태에 머물게 된다. 그의 고백은 진실하지도 열렬하지도 않다. 그의 범죄를 인정할 때마다 그는 그의 행동에 대한 변명을 첨가하고, 만일 특수한 환경에 처하지 않았다면 그가 비난받고 있는 이 일도 저 일도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진정한 회개와 겸비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예증들은, 고백의 정신에는 죄에 대한 변명이나 자기 변호에 대한 시도가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바울은 자기 자신을 방어하고자 하지 않았다. 그는 그의 죄를 가장 어두운 색깔로 묘사하고, 그의 범죄를 경감시키고자 시도하지 않는다. 그는 말한다. “대제상들에게서 권세를 얻어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저희를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까지도 가서 핍박하였고” (행 26:10, 11). 그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딤전 1:15) 고 선언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로 부드러워진 겸손하고 통회한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갈바리의 희생에 대하여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마치 아들이 사랑하는 아버지에게 고백하는 것처럼, 진정으로 회개한 자는 그의 모든 죄를 하나님 앞에 가져 갈 것이다. 그러므로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일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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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9 장 — 고백에 대한 그릇된 사상들

_____ 에 있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는 그대들 사이에서 진행되어 온 선한 사업에 관한 소식을 들었다. 그 소식은 나의 마음을 기쁘게 한다. 배틀크릭에 온 이후로 나는 이 곳 교회에 관하여 마음을 많이 썼다. 기도주간 동안에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셨다. 그 곳에 있는 우리의 모든 기관들은 건전하고, 잘 균형잡힌 발전을 계속해 왔다.

집회들은 대학에서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세상에서 온 학생들 중에 여러 사람들이 회심하게 되었다. 그 사람들은 대학에 오기 전에 신앙적 경험이 전혀 없었고,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집회에 참석함으로 스스로를 빛이 비취는 통로에 두지 않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이 회개들은 더욱 주목할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집회에 참석하였고, 주님의 영으로 각성되었고, 건전하게 회개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서 지금처럼 행복했던 적은 결코 없었다고 말한다. 여러 사람들이 휴가를 보내기 위하여 집으로 돌아갔다. 그들의 부모들은 신앙 고백자들이 아니므로 그들의 믿음은 격렬하게 시험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새로운 책임을 완수하고 있다는 것과, 그들의 친구들에게 그들이 받아들인 새 믿음이 그들을 광신자나 극단주의자로 만들지 않고 잘 균형 잡힌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였으므로 모든 면에서 그들이 회개하기 전보다 더 좋아졌다는 것과, 그들이 순수한 믿음의 원칙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소유하고 훌륭하게 규모 있는 생활과 경건한 대화로써 그것들을 보여 주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는 것을 알려 주는 편지가 왔다. 대학에서의 이런 좋은 일은 우리 모두에게 큰 기쁨의 근원이 되었다.

우리는 3주일 동안 위생병원에서 조수들을 위하여 5시 반에 아침 집회를 열었다. 나는 이 기회에 설교하여 좋은 결과를 얻었다. 나는 또한 여러 차례에 걸쳐 환자들에게 설교하였다.

우리는 정오에 리뷰 앤드 헤랄드사의 교역자들을 대상으로 집회를 열었다. 여기에서도 주님께서는 놀랍게 역사하고 계셨다. 여러 해 동안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해 왔으나 심령의 뜨거움을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처럼 보인 사람들이 주님의 영을 받았다. 그대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귀중한 사랑을 증거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그들의 간증을 들었을 것이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전에 결코 회개한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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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회들은 태버나클교회에서 두 주일 동안 매일 두 차례씩 열렸는데, 제시된 기별이 마음들을 사로잡았다. 사람들의 간증은 적절한 것이었다. 나는 이 훌륭한 일을 이루어 주신데 대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우리는 또한 태버나클교회에서 어떤 특별 집회를 가졌다. 이 교회는 크므로 지난해 마지막 안식일 오후에 기도를 위하여 사람들을 앞으로 나오도록 부른 후에, 신앙 고백을 해야 겠다고 느끼는 사람들을 교회 부속실로 가도록 요청하고 우리는 거기서 그들에게 특별한 기회를 갖게 했다. 나는 말라기 3장을 중심으로 이야기했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8, 10). 많은 신앙 고백들이 이 점에 관하여 이루어졌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이웃과 정직한 거래를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죄들을 고백하고 배상을 했다. 그 다음 주일 동안에, 하나님과 정당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음으로 그분과 분리되었던 자들 중 몇 사람은 그들이 드리지 않고 있던 것을 돌려드리기 시작했다. 한 형제는 2년 동안 십일조를 드리지 않았다. 그는 그가 보류하고 있던 십일조와 거기에 대한 이자를 합하여 571불 50센트의 액면 수표를 합회 총무 부장에게 바쳤다. 나는 그가 그렇게 할 용기를 가진 데 대하여 주님께 감사한다. 다른 한 사람은 300불의 수표를 바쳤다. 하나님께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 갔으므로 그의 발을 의의 길로 다시 돌이킬 희망이 거의 없었던 또 한 사람은 1, 000불의 수표를 바쳤다. 오랫동안 바치지 않고 보류해 두었던 이 십일조와 헌금을 중앙 유럽 선교지에 바치도록 제안했기 때문에 이 돈들과 크리스마스 헌금, 합계로 거의 6, 000불이 선교 사업에 쓰여지도록 이 교회에서 금고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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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는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바란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행함으로 완전해 지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분은 믿는 자들의 구원과 영생을 이 행함과 관련시키시며, 그것들을 통하여 진리의 빛이 모든 나라와 백성에게로 퍼져 나가게 하신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의 역사로 얻는 열매이다.

진리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것은 변덕스런 충동이 아니고, 주님께로 돌아오는 진정한 회심이다. 그리하여 왜곡된 사람들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굴복된다. 십일조와 헌금에 있어서 하나님께 도적질하는 것은 여호와의 분명한 명령을 어기는 것이므로 그렇게 하는 자들에게 가장 큰 손해를 입게 한다. 그 일은 하나님과 정직한 관계를 갖는 자들에게 약속된 하나님의 축복을 그들에게서 빼앗기 때문이다.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사단이 만일 무관심의 얼음장 속에 영혼들을 가두어 둘 수 없으면 그들을 광신의 불 속으로 밀어 넣고자 할 것이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주님의 영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임하시면, 원수도 또한 일할 기회를 포착하여,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된 사람들과 다른 자들의 독특하고 성화되지 못한 특성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꼴 짓고자 노력한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운동이 이루어질 위험이 언제나 있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의 고안에서 나온 사업, 하나님이 하도록 역사하지 않으신 사업을 수행한다.

그러나 이 곳 배틀크릭에서 사업이 진행되는 동안은 광신이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는 모든 점에서 가장 큰 주의를 기울여 그것을 경계할 필요가 있다. 만일 사단이 사람들을 극단으로 치우치게 할 수만 있으면 그는 매우 기뻐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신앙적 각성이 없을 때보다 그는 더 큰 손해를 줄 수 있다. 우리는 사단이 침투하기 위하여 최선을 다하지 않을 만큼 신앙적 활동을 지금껏 전개하지 못했다는 것과, 이 마지막 때에는 그가 전에 없이 그렇게 하리라는 것을 안다. 사단은 그의 때가 얼마 못 된 줄 알므로 모든 불의의 속임으로 하나님의 사업에 오류와 그릇된 견해를 혼합시키고 사람들을 거짓된 위치에 놓고자 활동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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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신앙적 각성 중 많은 경우에 신앙 고백에 관하여 잘못이 존재해 왔다. 신앙 고백이 영혼을 위하여 유익한 것이기는 하지만, 지혜롭게 할 필요가 있다.

나는 많은 신앙 고백이 사람들이 듣는 데서 해서는 안 될 것임을 보았다. 왜냐하면 유한한 사람들의 한정된 판단으로 예기하지 못한 결과가 나오기 때문이다. 악의 씨들이 듣는 사람들의 정신과 마음에 뿌려져서 그들이 유혹을 받게 되면 그 씨들은 싹이 트고 열매를 맺는다. 그리하여 동일한 슬픈 경험은 반복될 것이다. 왜냐하면, 유혹받는 자들은 그 죄들이 그렇게 매우 가증한 것일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그 이유는 신앙고백을 한 자들이 오래된 그리스도인이었을지라도 바로 그런 죄들을 짓지 않았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런 은밀한 죄들을 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일은 생명의 향기가 되기 보다는 사망에 이르는 냄새임이 입증될 것이다.

이 문제에서는 무분별하고 도매금으로 하는 움직임이 있어서는 안된다. 하나님의 사업이 불신자들의 눈에 평판이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천한 행동을 한 고백을 그들이 듣게 되면, 그분의 사업이 비난을 받게 된다. 만일 사단이 어떻게 해서라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모든 일에 있어서 인간 폐물들이라는 인상을 퍼뜨릴 수만 있다면, 그는 즐겨 그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이 그렇게 못하게 해 주신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만일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영으로 끊임없이 감동을 받지 않는 한 올바로 판단할 수 없는 유한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에게 마음의 깊숙한 구석을 열어 보이기 보다는 오직 예수님께만 은밀하고 타고난 마음의 부패를 고백한다면 하나님께서는 더욱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은 마음, 곧 심령의 모든 비밀까지도 아신다. 그러므로 하나님만이 들으셔야 할 이야기를 인간의 귀에 쏟아 놓지 말라.

선택된 소수의 사람 앞에 제시되고 죄인이 가장 큰 겸손으로 자인해야 할 그런 성격의 고백들이 있다. 그 문제는, 의사의 표시가 미덕으로 해석되고 죄인이 자신의 악행을 자랑하는 그런 방법으로 다루어져서는 안 된다. 교회 앞에 내놓기에 수치스러운 성격의 것들이 있으면 그것들은 선택된 소수의 적절한 사람들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교회 안에 존재하는 위선이 널리 알려짐으로 그리스도의 사업에 공공연한 욕이 돌아가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성품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지기 위하여 애써 온 자들에게 비난이 주어질 것이다. 이런 일들은 고려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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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주님께서 우리에게 상호간에 하도록 명령하신 고백이 있다. 만일 그대가 말이나 행동으로 형제에게 잘못을 범했다면, 그대의 예배가 하늘에 가납되기 전에 그대는 먼저 그와 화해해야 한다. 그대가 손해를 입힌 자들에게 고백하고, 변상을 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만일 어떤 사람이 형제에 대하여 빈정대는 감정이나 분노나 적의를 품고 있다면 그 사람을 개인적으로 찾아가서 그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실수한 자들을 취급하시는 그리스도의 방법에서 우리는 고백하는 이일에 똑같이 적용할 수 있는 유익한 교훈들을 배울 수 있다. 그분은 시험을 받고 있는 그 사람에게 가서 오직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고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의 마음의 어두움과 하나님과의 분리 때문에 그를 도와주기가 불가능하면, 우리는 다른 두세 사람과 함께 다시 해 보아야 한다. 그렇게 해도 악이 바로 잡히지 않을 그럴 때에만, 우리는 그것을 교회에 알려야 한다. 전체 교회 앞에 그 문제를 제시하지 않고 그릇된 것이 바로잡히고 상처가 치료될 수 있으면 그것이 훨씬 좋은 일이다. 교회는 모든 불평과 고백의 토로를 저장해 두는 곳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한편으로, 죄를 숨기거나 죄와 타협하기 위하여 유혹에 굴복함으로 위선자가 되는 위험을 안다. 고백은 범한 잘못의 영향을 총망라한다는 것, 곧 하나님께 대한 의무나 이웃과 교회에 대한 의무를 하지 않은 채 남겨 두지 않는다는 것을 알라. 그리하면 그대는 확신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붙잡고 그분의 축복을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죄를 어떻게 누구에게 고백해야 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주의 깊고 경건한 연구가 필요한 문제이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심사 숙고하고 하나님의 빛을 구하면서 온갖 면에서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범한 죄를 공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유익할 것인지 손해가 될 것인지 자문해 보아야 한다. 그것이 우리를 흑암에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인도하신 분의 영광을 드러낼 것인가? 그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정결하게 해 주는 데 도움이 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진리를 부인하는 일에 사용되어 온 공공연한 기만의 관계가 후에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더럽히고 우리에게 대한 신임을 말살시키기 위한 영향을 미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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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지혜와, 충동이나 인상을 따르는 것을 안전하게 해 주었을, 모든 능력의 근원되신 분으로부터의 끊임없는 계몽을 받지 않았다. 나는 경험을 통하여, 이것이 이 원칙에 입각하여 행동한 자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파멸이 되는 것을 보았다. 가장 거칠은 방종은 이 충동적인 일의 결과였다. 신앙의 타락이 따랐고, 불신과 회의는 신앙적 흥분의 극단에 비례해서 강해졌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업은 흥분이 그치자 마자 사라진다.

주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그분께서 인간 기구를 통해서 하시든지 다른 길을 통해서 하시든지 간에 능력과 영속성이 있다. 마음 속에서 은혜의 역사가 진전되고 완성되는 것은 흥분이나 지나친 감정의 표현에 의존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영의 감화 아래 있는 마음들은 하나님의 뜻과 훌륭한 조화를 이룰 것이다. 나는 주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역사하실 때는 주님의 백성들을 세상 앞에서 낮추는 일이 전혀 없고 그들을 높이게 될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은 그 신앙을 고백하는 자들을 저속하고 거칠게 만들지 않는다. 은혜의 백성들은 가르치기 어려운 사람들이 아니고, 언제나 예수님을 즐겨 배우고 피차간에 의논한다.

우리가 위대한 진리의 교사에게서 배운 것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그것은 자만의 냄새를 풍기지 않고 겸손과 온유로 이끌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는 일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건전하고, 순결하고 고상할 것이다. 그렇게 일하는 자들은 그들의 가정 생활에서, 사람들과의 교제에서 그들이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줄 것이다. 은혜와 진리가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고, 그들의 동기를 고무시키고 순결케 하며, 그들의 외모적 행동을 지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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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무도 그들이 죄를 고백함으로 하나님의 은총을 얻고 있다거나 인간들에게 고백하는 일에 특별한 공로가 있다는 사상을 갖지 않기를 바란다.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정결케 하는 그 믿음을 체험하는 일이 있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육신적 성벽을 정복할 것이다. 진리는 하늘에서 유래된 증거를 그 자체 속에 간직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영의 은혜를 통하여 그것이 심령의 정결에 효력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입증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날마다 우리의 모든 어려움을 가지고 그분께 와서 죄를 고백하기를 바라신다.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그분의 멍에를 메고 그분의 짐을 지는 일을 통하여 우리에게 안식을 주실 것이다. 그분의 성령은, 그 은혜로운 감화력을 가지고 성령을 채워 주실 것이며, 모든 생각은 굴복되어 그리스도를 순종하게 될 것이다.

이제 나는 그대 편에 있는 어떤 오류 때문에 _____ 에서 그대에게 주어졌던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변할까 두렵다. 곧 그대가 불과 몇개월 내에 이 부흥의 사업 전에 가졌던 것보다 더 나쁜 상태에 빠지게 될 그런 어떤 거짓 사상을 가질까 두렵다. 만일 그대가 그대의 영혼을 경계하여 지키지 않으면 그대는 불신자들에게 나쁜 모습으로 나타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변덕스런 형태의 봉사로 영광을 받으실 수 없다. 일들이 극단으로 치우쳐서 하나님의 귀중한 사업이 오랫동안 비난을 받지 않도록 조심하라. 많은 사람들이 저지르는 실수는 그들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후에, 그리스도의 겸손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고자 노력하지 않는 데 있다. 이제 그대의 마음 속에 영생의 말씀이 뿌려졌음으로, 나는 그대가 하나님과 겸손하게 동행하고, 그리스도의 사업을 하고, 의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과 딸들처럼 행동하고, 극단자들이 되지 않고 하나님의 영을 근심되게 할 일은 어떤 것도 하지 않기를 바라며 기도한다.

교회증언 5권 pp. 639-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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