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359-368(177일)

견책을 멸시하고 항상 그것에 대항하여 감정을 내는 남녀들이 있을 것이다. 잘못을 지적당하는 것은 유쾌한 일은 아니다. 견책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경우마다 주님의 성령께서 슬픔을 당하시며 하나님의 사업이 수치를 당한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하는 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자들은 개인 감정이 상했다는 이유로 견책을 받아 마땅한 자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 모든 성화되지 못한 동정 때문에 동정자들은 견책을 받은 자의 죄악에 동참하는 자리에 나아간다. 견책을 받은 자가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는 위치에 놓여진다면, 십중팔구 자신의 잘못을 깨닫는 일에 도움을 받을 것이요 개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참견하기를 좋아하며 성화되지 않은 동정자들은 견책자의 동기와 주어진 견책의 성격에 잘못된 의미를 부여하며, 또한 책망받은 자를 동정함으로 그로 하여금 정말로 자신이 학대를 받았다고 생각하게 한다. 그리하여 책망받은 자의 감정은 단지 의무를 이행한 견책자에게 반항하여 일어나게 된다. 하나님께 책임을 느끼면서 이 불유쾌한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당신의 뜻을 행함에 있어서 언제나 진지하기를 요구하신다. 디모데에게 권고하는 중에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견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360-

히브리인들은 주님의 지시와 제지에 기꺼이 순복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단지 자신의 길을 원했으며, 그들의 마음이 이끄는 대로 따라가며, 그들 자신의 판단에 의해 지배받기를 원했다. 만일, 그들이 이 일을 행하도록 자유로이 방치되었다면, 모세를 향한 불평이 전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제한을 받을 때 그것을 참지 못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훈련을 받아 행동의 조화를 이룸으로써 그들이 동일한 견해를 가지며, 한마음이 되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게 되기를 바라신다. 이러한 상태가 되기 위하여는 많은 일이 성취되어야 한다. 육욕적인 마음은 굴복되고 변화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안에 항상 살아 있는 증언이 있도록 계획하신다. 책망하고 교훈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며, 어떤 이들은 경우에 따라 심한 책망을 받을 필요가 있을 것이다. 우리는 흔히, “오, 나는 너무나 감정이 예민하여 조그마한 비난도 감당할 수 없다!” 고 변명하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나 이러한 인물들이 정확하게 자신의 경우를 표현한다면, 다음과 같이 말하여야 할 것이다. “나는 너무 고집스럽고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여서 남의 명령을 받지 않을 것이며 책망을 받지 않을 것이다. 나는 개인적인 판단의 권리를 요구한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믿고 말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주님께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개성을 굴복하도록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누가 개인의 자주권을 행사할 한계를 정할 올바른 판단자가 될 수 있겠는가?

베드로는 그의 형제들에게 권면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사도바울 역시 빌립보 교회의 형제들에게 연합과 겸손에 대해 권고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여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1-5). 또다시 바울은 그의 형제들에게 권한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롬 12:9, 10). 에베소 교회를 향해 편지를 쓰는 중에 그는 말한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

-361-

이스라엘 백성들의 역사는 우리에게 기만의 큰 위험을 보여 주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저들 자신의 죄악적인 본성에 대해서나 용서의 은혜에 대해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본성적 어두움에 처해 있으며, 유혹과 큰 기만에 굴복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떨어져있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행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삶에 크게 만족하고 있다. 이러한 자들은 항상 성령의 인도를 거스릴 것인데, 특히 책망에 대하여 그렇게 할 것이다. 그들은 간섭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간혹 그들은 이기적인 두려움과 선한 목적을 가지며 근심스러운 마음이나 죄책감을 가지지만, 영원한 반석되신 분에게 고착되어 있지 않음으로 깊은 경험을 가지지 못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분명한 증언의 필요를 결코 깨닫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빛 가운데 계신 것처럼 그들도 빛 가운데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는 그들에게 심히 악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편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은 큰 빛을 받아 특별한 각성을 하고 하나님의 영의 역사를 진정으로 경험한 자들이다. 그러나 사단의 다양한 유혹이 저들을 굴복시켰다. 저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에 대해 감사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령께서 발하시는 경고와 책망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들은 정죄 아래 놓여져 있다. 이들은 직설적인 증언이 저들을 정죄하기 때문에 항상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이 한 연합체가 될 것을 계획하신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 동일한 마음을 가지고 동일한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교회 내에 명백하고 단도직입적이며 산 증언이 없이는 성취될 수 없다. 그리스도의 기도는 당신의 제자들도 당신이 당신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서로 하나가 되는 것이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같이 저희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곧 내가 저희 안에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셔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저희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요 17:20-23).

-362-

32 장 — 청년들에게 호소함

사랑하는 청년들에게:

때때로 주님께서는 그대들을 위한 경고의 증언을 내게 주셨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심령의 가장 좋고 거룩한 애정을 그분께 드렸을 것 같으면, 그분은 그대들을 격려해 주셨을 것이다. 이 경고들이 분명하게 내 앞에 되살아날 때, 나는 그대들이 느끼지 못하고 있는 그대들의 위험을 느낀다. 배틀크릭에 위치한 그 학교에는 여러가지 심성 (心性) 을 지닌 많은 청년들이 모여들고 있다. 만일, 이 청년들이 하나님께 헌신하지 않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지 않으며 그분의 계명을 따라 겸손히 행하지 않는다면, 배틀크릭에 한 학교가 위치함은 교회에 큰 실망을 주는 요소임이 입증될 것이다. 이 학교는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될 수 있다. 나는 그리스도의 이름을 붙들고 있는 그대들에게 권고하는데 모든 죄악으로부터 떠나라. 하나님께서 인정하실 수 있는 품성을 계발하라.

나는 묻는다. 그대들에게 주어진 견책의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이르러 온 것임을 그대들은 믿는가? 그대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음성이 그대들의 위험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을 진정으로 믿는다면, 그대들은 주어진 충고에 유의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자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경고의 증언들을 읽음으로써 그대들의 마음 속에 이것을 신선하게 보존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어린이와 청년인 그대들에게 거듭거듭 말씀하여 오셨지만 그대들은 주어진 경고에 유의하기를 지체해 왔다. 비록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의 품성과 위험에 대하여 제시하신 관점에 대항하거나, 그대들이 추구하도록 제시하신 길을 거슬려 반역적으로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는 않았으나, 그대들 중의 어떤 이들은 그대들이 영적 힘을 얻으며, 학교에서와 교회에서, 그리고 그대들이 교제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그대들에게 요구된 것들에 유의하지 않았다.

-363-

청년 남녀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분께 책임을 지고 있다. 만일, 이 빛과 경고에 유의하지 않는다면, 심판 때 그것들이 그대들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다. 그대들의 위험이 명백하게 진술되었으며, 그대들은 모든 면으로 주의를 받고 보호를 받았으며, 경고들로 둘러싸여져 있었다. 하나님의 집에서 그대들은 성령의 증거를 통하여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제시된 가장 엄숙하고 마음을 살피는 소리를 들었다. 이 엄숙한 호소가 그대들의 마음에 얼마만한 영향력을 나타내고 있는가! 그것들이 그대들의 품성에 어떠한 감화를 끼쳤는가? 그대들은 이 모든 호소와 경고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그것들은 심판 날에, 헛되고 경솔하며 교만한 생애를 추구한 자들을 정죄하기 위하여 일어날 것이다.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뿌린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지금은 그대에게 있어서 뿌리는 시기이다. 어떤 추수를 거두어들이게 될 것인가? 그대들은 무엇을 뿌리고 있는가? 그대가 발하는 모든 말, 그대가 행하는 모든 행동은 선악간에 열매를 맺게 될 것이며, 뿌리는 자에게 기쁨이나 슬픔을 가져올 씨앗이다. 씨앗이 뿌려진 대로 수확이 이루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큰 빛과 많은 특권들을 주셨다. 이 빛이 주어지고 그대들의 위험이 그대들 앞에 명백히 제시된 이후에는 그대들에게 책임이 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주시는 빛을 그대들이 취급하는 방법이 행복 혹은 불행의 척도가 될 것이다. 그대들은 스스로 자신들의 운명을 꼴 짓고 있다.

그대들은 모두 다른 사람들의 마음과 품성에 선악간에 영향을 끼친다. 그대들이 행사한 바로 그 영향력이 하늘의 기록책에 기록된다. 한 천사가 그대를 따라다니며, 그대들의 말과 행동을 기록하고 있다. 아침에 일어날 때, 그대는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고, 하나님께서 능력을 얻어야 함을 느끼는가? 그리하여 그대는 겸손하고도 진실되게 그대의 소원을 하늘 아버지께 아뢰는가? 만일 그렇다면, 천사들은 그대의 기도를 주목할 것이며, 만일 이 기도가 거짓된 입술에서 발해진 것이 아니라면, 그대를 보호하는 천사는 그대가 부지중에 다른 사람들을 잘못하도록 유도할 영향력을 행사하거나 잘못을 범할 위험에 처할 때 그대 편에 서서, 그대로 하여금 더 나은 행동을 하도록 충동하며, 그대를 위하여 말을 선택하고 그대의 행동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364-

만일, 그대가 전혀 위험을 느끼지 않고, 유혹을 대항하기 위한 도움과 힘을 위해 전혀 기도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틀림없이 곁길로 나아갈 것이요, 그대의 의무 태만은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책에 표시되어, 심판날에 그대는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그대의 주변에는 교육을 받아 온 자들과, 제멋대로 하고 귀염만 받고 뽐내고 칭찬을 받아 옴으로 마침내 실생활을 위하여는 사실상 쓸모 없게 된 자들이 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이들과 관련해서 말하고 있다. 그들의 품성은 방탕과 아첨과 나태에 너무나 단단히 싸여 있기 때문에 이생에서 그들은 쓸모가 없다. 만일 이생에 관한 한 쓸모가 없다면, 모든 것이 순결하고 거룩한 곳, 모두가 조화되는 품성을 지닌 곳인 저 생에 대해 어떤 소망을 가질 수 있겠는가? 나는 이 사람들을 위하여 기도해 왔다. 나는 그들에게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냈다. 나는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허영과 의복에 대한 애착, 그리고 그들의 영원한 관심사에 부주의하도록 이끎으로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 끼치는 영향을 볼 수 있었다. 이런 사람들의 유일한 희망은 그들이 자신들의 길에 유의하고 하나님 앞에 자신들의 교만하고 헛된 마음을 낮추고 그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심하는 것이다.

의복에 있어서의 허영은 오락을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청년에게 있어서 큰 유혹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신성한 요구를 하신다. 그분은 온 마음, 온 영혼, 온 애정을 요구하신다. 이 요구에 대해 간혹 어떤 이들은, “오, 나는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지 않는다” 고 대답한다. 그렇다 한들 무엇이 다를 게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임을 공언하는 자에게 요구하시는 것과 동일한 것을 그대에게 요구하고 계시지 않는가? 거룩한 사물에 대해 그대가 대담하게 부주의한다고 해서 그대의 태만과 반역의 죄를 주님께서 간과하시겠는가? 하나님의 요구를 무시한 매일, 그대가 경솔하게 여긴 매 번의 주어진 자비의 기회가 그대의 심판의 자료가 되며, 모든 영혼의 행위가 조사를 받는 날에 그대의 죄의 목록에 첨가될 것이다. 나는 그대들, 신앙을 공언하든지 공언하지 않든지 간에 청년 남녀들에게 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애정과, 그분에 대한 즐거운 순종과 헌신을 요구하신다. 그대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은 짧다. 그대들은 이 시기를 하나님께 무조건 복종하는 기회로 이용할 수 있다.

-365-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순종과 굴복은 영감받은 사도에 의해 하나님의 자녀, 곧 왕족의 일원이 될 수 있는 조건으로 제시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모든 어린이와 청년들, 장년 남녀들을 사단이 그들에게 떨어지도록 강요하고 있는 멸망의 심연에서 당신의 피로 구해 내셨다. 죄인들이 그들에게 값없이 제공된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하여 그들의 의무에서 벗어날 수 있겠는가? 죄악에 머물러 있고자 하는 그들의 선택과 대담한 범죄가 그들의 죄를 경감시키지 않는다.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값을 지불하셨으므로, 그들은 그분께 속한다. 그들은 그분의 소유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을 위하여 생명을 주신 그분께 순종치 아니하고 시간과 힘과 재능을 사단을 섬기는 데 바친다면, 그들은 사망이라는 삯을 받고 있는 것이다. 불멸의 영광과 영생은 우리 구주께 순종하는 자들에게 주님으로부터 주어지는 상급이다. 그분은 그들이 그분의 이름을 통하여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일을 가능하게 하셨으며, 그분이 그들을 위하여 승리하신 것처럼 그들이 그들 자신을 위하여 승리하는 일이 가능하게 하셨다. 그분은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한 모본을 주시고, 그들이 어떻게 승리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23).

하나님의 요구는 모든 사람에게 동등하게 주어져 있다. 값없이 제공된 구원을 태만히 하기로 선택하는 자들, 자신을 섬김으로 하나님의 원수, 곧 자아 희생적이신 구주의 원수로 남아 있기로 선택하는 자들은 그들의 삯을 받고 있다. 그들은 육체를 위하여 심고 있으므로 육체에 속한 썩어질 것을 거둘 것이다.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를 옷 입은 자들, 또한 이 예식을 통해 세상에서 분리된 것을 보여 주고 새 생명 가운데 행하기로 약조한 사실을 드러낸 자들은 그들의 마음에 우상을 세워서는 안 된다. 죄악을 용서받은 증거를 얻어 즐거워 해 본 경험이 있고, 구주의 사랑을 맛보았지만 그리스도의 대적과 연합하기를 고집하고, 예수께서 그들에게 제공해 주신 완전한 의를 거절하며 그분이 정죄하신 길을 선택한 자들은, 빛을 전혀 받아본 적이 없고 하나님이나 그분의 율법을 전혀 알지 못한 이방인들보다 더 심한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빛을 따르기를 거절하는 자들 즉 오락과 허영, 세상의 어리석음을 선택하며 하나님의 율법의 의롭고 거룩한 요구에 그들의 행동을 일치시키기를 거절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가장 심한 죄를 짓는 것이다. 그들의 범죄와 그 삯은 그들에게 주어진 빛과 특권에 비례될 것이다.

-366-

우리는 이 세상이 그들의 오락에 빠져 있는 것을 본다. 대부분의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첫째 되며 가장 중요한 생각은 과시하는 정신이다. 의복과 쾌락에 대한 사랑이 수천명의 행복을 파괴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고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이들은 가능한 한 그들과 유사하게 흉내내면서 그리스도인의 명칭을 보유하고 있다. 청년들 중 어떤 이들은 너무나 과시하는 데 열중한 나머지 그들의 의복에 대한 허영심과 쾌락에 대한 사랑을 충족시킬 수만 있다면 그리스도인의 명칭을 기꺼이 포기하려고까지 한다. 의복에 있어서의 자아 부정은 우리 그리스도인 의무의 일부이다. 평범하게 옷을 입고 어떤 종류의 보석이나 장식품으로든지 장식하는 일을 삼가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조화를 이룬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의, 의복의 과시와 오락을 사랑하는 일에 방종하는 어리석음을 깨닫는 사람들 가운데 속해 있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이생만을 위하여 살며 내세를 위하여는 아무런 생각과 관심도 두지 않는 자들의 생각과 마음을 사로잡는 이러한 정신을 찬동하는 그 어떠한 것도 외면하는 그러한 부류의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청년들이여, 나는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이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는 의복과 과시에 대한 사랑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다. 훌륭한 교육을 받고 어린 시절부터 종교적 특권을 누리고, 침례를 통하여 그리스도를 옷 입고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고 공언하는 자들 중 어떤 이들 가운데서 나는, 사랑하는 구주를 슬프시게 하며 하나님의 사업에 불명예가 되어 온, 의복에 있어서의 허영과 행위에 있어서의 경솔을 보았다. 나는 그대들의 신앙적 타락과 의복을 꾸미고 치장하는 성향을 고통스럽게 주목해 왔다. 어떤 이들은 유감스럽게도 금사슬이나 금핀, 혹은 그 둘 다를 소유하고, 주목을 끌기 위하여 그것을 눈에 띄게 치장하여 보임으로써 악한 취향을 드러내었다. 나는 이와 같은 특성을 볼 때 찬탄을 얻기 위하여 그의 호화스러운 깃털을 과시해 보이는 허영스런 공작을 연상하지 않을 수 없다. 주목을 끌 만한 것으로 이 가련한 새가 가진 모든 것은 깃털밖에 없다. 왜냐하면 그의 목청이나 모양은 전혀 매력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367-

젊은이들은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 곧 하늘의 은혜로 입혀질 수 있는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의 장식을 추구하는 일에 뛰어나기 위하여 노력할 수 있다. 이러한 장식은 이 세상에서 많은 사람에게 매력을 줄 것이며, 하늘 천사들에 의해,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하늘 아버지에 의해 큰 가치가 있는 것으로 간주될 것이며, 그것으로 단장한 자를 하늘 궁정에 환영받을 손님으로 적합하게 해줄 것이다.

청년들은 적당하게 계발되기만 하면 그들을 신임받는 어떠한 위치에도 적합하게 할 수 있는 그러한 기능들을 가지고 있다. 만일 그들이 유용한 자가 되고 남에게 축복이 됨이 입증되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활용하고 계발시킬 수 있는 교육을 받는 일을 그들의 목적으로 삼는다면, 그들의 마음은 열등한 표준으로 떨어지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깊은 생각과 확고한 원칙을 보일 것이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존경을 받을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현명한 그리스도인 생애의 능력을 보고 인정하게 하는 고상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최대한의 유용성을 위해 정신을 연마하고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단장하는 일에 더 큰 관심을 쏟는 자들은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책임감을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그들이 맡는 모든 일에서 피상적으로 되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의 유용성을 감소시키며 지능을 위축시킬 것이다.

나는 자녀들뿐 아니라 이 청년들의 부모들에 대해서 심한 고통을 마음 속에 느끼고 있다. 이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일에 부족했기 때문에, 무거운 책임이 다른 어느 곳으로 넘어갔다. 원칙에 입각하여 자녀들을 현명하게 제어하는 대신에 자녀들을 귀여워하고 방종하도록 방임한 부모들은 자기들이 꼴 지어 놓은 품성을 보게 될 것이다. 훈련한 대로 품성은 꼴 지어진다.

-368-

충성스러운 아브라함

나의 마음은, 브엘세바에서 밤중의 이상 중에 주어진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는 가운데 이삭을 옆에 데리고 여행하는 신실한 아브라함에게로 향한다. 그는 희생을 드리도록 하나님께서 지적해 주신 산이 그의 앞에 있는 것을 본다. 그는 종의 어깨에서 나뭇단을 취하여, 희생물로 드려질 이삭에게 지운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도록 요구하시는 그 일을 하고자 확고하되 고뇌에 찬 굳건함으로 자신의 마음을 준비하였다. 찢어질 듯한 마음과 떨리는 손으로 불을 취할 때, 이삭이 묻는다. “내 아버지여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디 있나이까” 그러나 오, 아브라함은 그에게 지금 그것을 말할 수 없다! 아버지와 아들은 제단을 쌓는다. 이제 아브라함에게는 그의 긴 여로에서 줄곧 심령을 괴롭게 한 사실, 곧 이삭 자신이 희생물임을 그에게 알려야 할 비참한 순간이 다가온다. 이삭은 어린아이가 아니다. 그는 이제 장성한 젊은이다. 그가 택하기만 하면, 아버지의 계획에 순종하기를 거절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이상하다고 비난하지도 않고, 그의 목적을 바꾸려고 조차 하지 않는다. 그는 순종한다. 그는 그의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라는 명령을 하지 않으셨다면 그의 독자를 이렇게 비참하게 희생물로 드리지 않을 것임을 믿는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으므로, 이삭은 가엾게 여기고 있는 아버지의 떨리는 손, 사랑의 손에 의해 묶인다. 아들은 아버지의 온전함을 믿기 때문에 희생물이 되고자 순종한다. 그러나 모든 것이 준비되고 아버지의 믿음과 아들의 순종이 완전히 입증되었을 때, 하나님의 천사는 아들을 죽이고자 치켜든 아브라함의 손을 붙잡고 이제는 충분하다고 말한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행위는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기록 되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요구가 아무리 심하고 괴로운 것일지라도 신뢰해야 한다는 큰 교훈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며, 자녀들에게 부모와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라는 교훈을 준다. 아브라함의 순종을 통하여 우리는, 너무 귀중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드릴 수 없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교훈을 배우게 된다.

교회증언 3권 pp. 359-36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