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349-358(176일)

고라와 그의 무리, 곧 자부심을 통해 제사장직을 탐하였던 이들은 향로를 취하여 회막 문에 모세와 함께 섰다. 고라는 스스로 미혹을 당하게 될 때까지 질투와 배반을 간직하였으며, 그는 회중이 매우 의로운 백성이며, 모세는 전제적인 통치자로서 회중이 거룩하기 때문에 그럴 필요가 전혀 없음에도 불구하고 회중에게 거룩해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 계속적으로 말하고 있다고 진실로 믿었다.

이 반역자들은 전체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의로우며, 그들의 모든 고생은 모세, 그들의 통치자, 끊임없이 그들에게 저들의 죄를 상기시켜주고 있는 인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믿도록 아첨하였다. 만일 고라가 그들을 이끌고, 또한 그들의 실패를 상기시키는 대신에 그들의 의로운 행동을 끊임없이 바라보게 함으로 그들을 격려할 수 있다면, 그들은 매우 평안하고 번영하는 여행을 하게 될 것이며, 그는 광야에서 왔다갔다 하는 대신에 약속의 땅으로 의심의 여지없이 인도할 것이라고 백성들은 생각하였다. 그들은 약속의 땅으로 그들이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한 것은 모세이지, 주님께서는 그렇게 말씀하지 않으셨다고 말하였다.

반역자들이 멸망당함

고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서 모든 이스라엘 회중을 모세와 아론을 대항해서 소집하였다. “여호와의 영광이 온 회중에게 나타나시니라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그 두 사람이 엎드려 가로되 하나님이여 모든 육체의 생명의 하나님이여 한 사람이 범죄하였거늘 온 회중에게 진노하시나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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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회중에게 명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하라 모세가 일어나 다단과 아비람에게로 가니 이스라엘 장로들이 좇았더라 모세가 회중에게 일러 가로되 이 악인들의 장막에서 떠나고 그들의 물건은 아무것도 만지지 말라 그들의 모든 죄중에서 너희도 멸망할까 두려워하노라 하매 무리가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을 떠나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처자와 유아들과 함께 나와서 자기 장막 문에선지라 모세가 가로되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사 이 모든 일을 행케 하신것이요 나의 임의로 함이 아닌 줄을 이 일로 인하여 알리라 곧 이 사람들의 죽음이 모든 사람과 일반이요 그들의 당하는 벌이 모든 사람의 당하는 벌과 일반이면 여호와께서 나를 보내심이 아니어니와 만일 여호와께서 새 일을 행하사 땅으로 입을 열어 이 사람들과 그들의 모든 소속을 삼켜 산채로 음부에 빠지게 하시면 이 사람들이 과연 여호와를 멸시한 것인 줄을 너희가 알리라” (민 16:19-30). 모세가 말을 마쳤을 때, 땅이 갈라져 그들의 모든 장막과 그들에게 속한 모든 것을 삼켜 버렸다. 그들은 산채로 구덩이 속에 빠졌으며, 땅은 그들 위로 다시 닫혀지고 그들은 회중 속에서 멸망당하였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멸망당하는 자들의 부르짖음을 들었을 때, 그들은 그들로부터 멀리 도망쳤다. 그들은 그들이 큰 범죄를 저질렀음을 알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세와 아론에 대한 비난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들도 그들과 마찬가지로 멸망받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영광의 구름 속에서 불이 나와서 향을 드리던 250인을 사르어 버렸다. 이들은 족장, 곧 일반적으로 회중 속에서 선한 판단력을 갖고 영향력을 끼치던 유명한 인물들이었다. 그들은 매우 크게 존경을 받았으며, 어려운 일이 있을 때 그들의 판단을 구해 왔었다. 그러나 그들은 나쁜 감화에 전염되어 시기, 질투, 반역에 빠졌다. 그들은 고라, 다단, 아비람과 같이 멸망당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반역의 선봉에 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은 반역한 지도자들의 종말을 먼저 보았으며, 저들의 범죄를 회개할 기회를 얻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사악한 인물들의 멸망을 감수하지 않았고, 따라서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임하여 그들마저 멸망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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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제사장 아론의 아들 엘르아살을 명하여 붙는 불 가운데서 향로를 취하여다가 그 불을 타처에 쏟으라 그 향로는 거룩함이니라 사람들은 범죄하여 그 생명을 스스로 해하였거니와 그들이 향로를 여호와 앞에 드렸으므로 그 향기가 거룩하게 되었나니 그 향로를 쳐서 제단을 싸는 편철을 만들라 이스라엘 자손에게 표가 되리라 하신지라” (민 16:36-38).

반역이 치료되지 않음

하나님의 심판이 이처럼 무시무시하게 나타난 다음에 백성은 그들의 장막으로 돌아갔다. 그들은 공포에 사로잡혔으나, 겸비하게 되지 않았다. 그들은 반역의 정신에 깊이 감명되었고, 고라와 그 무리의 아첨을 통해 자기들은 매우 선한 백성이며, 모세에 의해 잘못 취급을 당하고 학대를 받았다고 믿게 되었다. 그들의 마음은 멸망당한 이들의 정신에 너무 철저하게 감염되었기 때문에 맹목적인 편견으로부터 벗어나는 일은 어려웠다. 만일 그들이 고라와 그의 무리는 모두 사악하며, 모세가 의롭다고 인정해야 한다면, 그들이 모두 광야에서 분명히 죽을 것이라는 믿기 싫은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 말에 복종할 수 없었고, 그 모든 것은 모세가 그들을 속이기 위한 협잡에 불과하다고 믿고자 노력하였다. 멸망당한 이들은 그들에게 기분 좋은 말을 했고, 그들에게 특별한 관심과 사랑을 나타내 보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모세를 야심적인 인물로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기들이 잘못할 수가 없다고 결정하였다. 결국 멸망당한 인물들은 선한 인물들이었으며, 모세는 어떤 면에서든 그들의 멸망의 원인이었다.

사단은 미혹당한 영혼들을 더욱 깊이 끌고 들어갈 수 있다. 그는 그들의 판단력 그들의 보는 것, 그들의 듣는 것을 왜곡시킬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바로 이런 경우였다.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하고” (민 16:41).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위하는 방향으로 일이 매듭지어진 것에 대해 실망하였다. 고라와 그의 무리들, 불경스럽게도 저들의 향로를 들고 제사장직을 행한 모든 이들의 모습은 백성들에게서 찬양을 자아내었다. 그들은 이들이 감히 신령하신 대주재를 모욕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그들이 멸망당하였을 때, 백성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그러나 잠시 후에 모두는 흥분한 모습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나아와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멸망을 당한 이들의 피에 대해 그들을 비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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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중이 모여 모세와 아론을 칠 때에 회막을 바라본즉 구름이 회막을 덮었고 여호와의 영광이 나타났더라 모세와 아론이 회막 앞에 이르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하시매 그 두 사람이 엎드리니라” (민 16:42-45). 이스라엘의 반역과 자기에 대한 그들의 무자비한 행동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직도 이전과 다름없이 그들에 대해 동일한 관심을 나타내었다. 주님 앞에 엎드려서 그는 백성들을 살려주시기를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당신의 백성의 죄들을 용서해 주시도록 주님께 그렇게 기도하고 있을 때, 모세는 아론에게 그가 주님 앞에 남아 있는 동안 그들의 죄를 위해 대속하도록 요청하였다. 그의 기도가 향과 함께 올라가 하나님께 가납하신 바 되고, 모든 회중이 그들의 반역을 통해 멸망받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이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너는 향로를 취하고 단의 불을 그것에 담고 그 위에 향을 두어 가지고 급히 회중에게로 가서 그들을 위하여 속죄하라 여호와께서 진노하셨으므로 염병이 시작되었음이니라 아론이 모세의 명을 좇아 향로를 가지고 회중에게로 달려간즉 백성 중에 염병이 시작되었는지라 이에 백성을 위하여 속죄하고 죽은 자와 산 자 사이에 섰을 때에 염병이 그치니라 고라의 일로 죽은 자 외에 염병에 죽은자가 일만 사천칠백 명이었더라 염병이 그치매 아론이 회막 문 모세에게로 돌아오니라” (민 16:46-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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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를 위한 교훈

고라, 다단, 아비람의 예를 통해서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르지 아니하도록 경고의 교훈을 받는다.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주를 시험하다가 뱀에게 멸망하였나니 우리는 저희와 같이 시험하지 말자 저희 중에 어떤 이들이 원망하다가 멸망시키는 자에게 멸망하였나니 너희는 저희와 같이 원망하지 말라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 (고전 10:9-11).

하나님의 말씀 속에서 당신의 백성이 크게 미혹당하기 쉽다는 증거를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진실된 열성처럼 보이는 수많은 경우가 사실은 그 근원을 따지자면, 사물의 진실된 상태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통해 마음에 인상을 끼치고, 마음을 시험하도록 원수에 대해서 영혼을 무방비 상태로 놓아 둔 데 있음을 보게 된다. 이 말세에 우리는 바로 그러한 일을 예상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단은 이스라엘 회중에 대해서 그러했던 것처럼 현재도 그렇게 바쁘기 때문이다. 편견의 무자비함과 그 힘은 이해되고 있지 않다. 회중이 반역으로 인한 이들 지도자들의 멸망을 목격했건만, 그들의 마음 속에 들어간 회의와 불신의 권세는 제거되지 않았다. 그들은 땅이 갈라지고 반역의 지도자들이 땅속으로 꺼져 버리는 것을 보았다. 이 두려운 모습은 분명히 저들을 고쳐서 저들로 하여금 모세를 비난한 것에 대해 깊이 회개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서 하나님께서는 온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들의 죄악된 길을 보고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심으로 회개와 고백으로 이끌고자 하셨다. 그분은 기만당한 이들에게 그들이 죄인이며, 당신의 종 모세가 옳다는 것에 대해 압도적인 증거를 주셨다. 그들은 그들이 목격한 하늘의 두려운 형벌을 생각하는 가운데 한 밤을 보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그러나 이성은 비뚤어졌다. 고라는 반역을 부추겼고, 250명의 족장들이 불만을 퍼뜨리는 일에 그와 합류하였다. 모든 회중은 모세를 대항하여 범람하고 있던 시기, 의심, 증오에 다소간 영향을 받았으며, 이 일로 매우 두드러지게 무서운 모습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임하였다. 그러나 우리의 은혜의 하나님께서는 공의와 자비의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신다. 그분은 선동가들, 반역한 지도자들과 그들에 의하여 미혹되어 이끌림을 받은 이들을 구분하셨다. 그분은 미혹당한 이들의 무지와 미련에 대해 불쌍히 여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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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회중들로 하여금 모세의 자리를 탐한 인물들의 장막으로부터 떠나가도록 모세를 통해 명령하셨다. 스스로의 멸망을 미리 자초한 바로 이 인물들은 하나님의 손안에서 그 기회에 저들의 생명을 보호하는 수단이었다. 모세는 “너희는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의 장막 사면에서 떠나라” (민 16:24) 고 말하였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에 의하여 그들의 죄 가운데서 멸망당할 위험 가운데 빠져 있음을 마찬가지로 경고받았다. 왜냐하면 그들은 동정을 나타내고, 그들과 사귐으로 그 인물들의 죄악에 참여한 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만일 모세가 이스라엘 회중 앞에서 시험을 제시하고 있는 동안에 반역을 시작한 이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과 또한 그분의 손상받은 종의 용서를 구하였다면 하나님의 진노는 그 때에도 정지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장막 속에 고라, 곧 반역의 선동자와 그의 동조자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 모세를 통하여 결코 하나님의 진노를 내리시지 않을 것처럼 그분의 진노를 무시하는 양 우뚝 서 있었다. 그리고 이 반역자들은 모세와 함께 거의 직접적으로 하나님의 존전으로 부르심을 받아 그분의 비할 데 없는 영광을 보는 특권을 하나님께로부터 극히 최근에 누린 자였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전혀 그렇지 않은 자인 것처럼 행동하였다. 이들은 모세가 두 돌비를 받아서 산에서 내려올 때 그의 얼굴이 하나님의 영광으로 반사되어 백성들이 감히 그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그로부터 도망치는 것을 보았다. 모세는 그들을 불렀지만, 그들은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돌비를 제시하고 말하였다. 나는 너희를 위해 간구하였고 너희에게서 하나님의 진노를 돌이켰다. 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회중을 떠나시고 그들을 멸망시킨다면, 나의 이름을 당신의 책으로부터 도말해 달라고 나는 간청하였다. 보라, 주님께서 내게 응답하셨고, 내손에 들려 있는 이 돌비들은 당신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화해의 서약으로 내게 주어진 것이다.

백성은 그것이 모세의 음성인 것을 깨달았다. 비록 그는 변화되어 영광스럽게 되었지만, 그는 여전히 모세였다. 그들은 그에게 그의 얼굴을 볼 수 없다고 말하였다. 왜냐하면 그의 얼굴에서 비치는 빛은 너무 찬란하여 그들에게 고통스러웠기 때문이다. 그의 얼굴은 해와 같았다. 그들은 그것을 볼 수 없었다. 모세가 어려움을 발견하였을 때, 그는 자기 얼굴을 수건으로 가렸다. 그는 그의 얼굴 위에 있는 빛과 영광이 하나님께서 그의 위에 베푸신 하나님의 영광이 반사되는 것이며, 백성은 그것을 감당해야 한다고 설득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자신의 영광을 가렸다. 백성의 죄된 상태 때문에 그의 영화된 얼굴을 바라보는 것은 고통스럽게 되었다. 하나님의 성도들이 우리 주님의 재림 직전에 영화롭게 변할 때도 마찬가지가 될 것이다. 악인들은 물러나서 그 광경으로부터 숨을 것이다. 왜냐하면 성도들의 용모에 나타난 영광은 그들에게 고통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세에게 임한 이 모든 영광, 하나님의 겸손한 종 위에 찍힌 이 모든 신성한 도장이 잊혀진바 되었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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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를 소홀히 여김

히브리인들은 이 큰 반란에 가장 탁월하였던 인물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내리는 모습을 바라 본 장면에 대해 심사 숙고할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 가장 책임이 큰 이들에 대해 하나님의 진노가 발해졌을 때 이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을 완전히 멸절시키지 않은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자비가 나타났다. 그분은 스스로 미혹을 당하도록 허용한 회중에게 회개의 여지를 주셨다. 주님, 곧 저들의 보이지 아니하시는 지도자께서 이 일에 그토록 큰 인내와 긍휼을 보여주셨다는 사실은,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회개와 겸비로 그분께 돌아갈 때, 그분께서는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까지도 기꺼이 용서하신다는 증거로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신성 모독적인 길에서 회중은 주님의 진노의 나타남을 통해 저지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을 대항한 큰 죄인으로서 그 배반적인 길에 대해 그분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인도하도록 임명하신 도구들을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보다도 인간이 더 크게 하나님을 모독할 수 있는 길은 거의 없다. 그들은 이렇게 했을 뿐 아니라, 모세와 아론을 죽이고자 계획하였다. 이들은 죽을까 봐 두려워서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으로부터 도망쳤다. 그러나 그들의 반역은 치료되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의 죄를 인하여 슬픔과 절망 가운데 빠지지 않았다. 그들은 저들의 가장 소중한 특권을 남용하고 빛과 지식을 거스려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각성시키고, 책망하는 양심의 작용을 느끼지 못하였다. 우리는 여기에서 예수님, 곧 광야에서 히브리인들 앞에서 행하셨던 천사의 오래 참음에 관한 소중한 교훈을 배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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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보이지 아니하는 지도자께서는 저들이 수치스러운 멸망 가운데 빠지지 않도록 지켜 주실 것이었다. 용서가 그들 위에 머물렀다. 만일 그들이 지금이라도 회개한다면,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이제 그들 가까이에 이르러 왔고, 그들에게 회개를 촉구하였다. 특별하고, 거역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의 간섭을 통해서 그들의 신성 모독적인 반역이 제지되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섭리의 간섭에 대해 지금 반응을 보인다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회중의 회개와 겸손은 그들의 범죄에 비례하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현저한 능력이 나타남으로 말미암아 그들은 불확실한 영역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그들이 받아들이려고 한다면, 모세와 아론의 거룩한 부르심과 진정한 위치에 관하여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베푸신 증거들을 그들이 등한히 한 것은 치명적이었다. 그들은 저들 편에서 신속한 행동을 통해 저들의 흉악한 죄에 대해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 주어진 유예의 밤은 저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는 일 없이 지나갔으며, 오히려 그들에게 저들이 죄인 중 괴수임을 보여준 증거들을 거절할 다른 길을 모색하는 중에 보내어졌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임명함을 받은 인물들에 대한 불타는 적개심을 간직하고 있었으며, 모세와 아론의 권위를 거스리는 미친 길을 더욱 힘차게 걸어갔다. 판단력을 마비시키고 그들의 눈을 가려 멸망으로 끌고 가기 위해 사단이 활동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음은 불만으로 철저하게 중독되었으며, 모세와 아론은 사악한 인물로서 고라, 다단, 아비람의 죽음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여겼다. 그들은 고라, 다단, 아비람이 히브리인들에게 견책 대신에 찬양이, 근심과 고난 대신에 평강이 지배하는 더욱 나은 질서의 세계를 가져다 줄 구주가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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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모든 이스라엘은 구덩이로 빠져들어 가 멸망당하는 죄인들의 부르짖음에 놀라 도망을 쳤다. “땅이 우리도 삼킬까 두렵다” (민 16:34). 그러나 “이튿날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와 아론에게 원망하여 가로되 너희가 여호와의 백성을 죽였도다” (민 16:41) 라고 하였다. 분노한 중에 그들은 하나님의 임명함을 받은 사람들 그들 생각에 선하고 거룩한 인물들을 죽이는 큰 죄를 범한 이들에 대해 폭력의 손길을 뻗을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회막 위에 여호와의 영광 속에서 그분의 임재하심이 나타났으며, 반역한 이스라엘은 그들의 미치고, 신성 모독적인 길을 저지당하였다. 그분의 두려운 영광 속에서 여호와의 음성이 그 이전 날 이스라엘 회중에게 명령하던 때와 동일한 말씀으로 모세와 아론에게 지금 말씀하셨다.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 (민 16:45).

여기에서 우리는 빛과 증거로부터 돌아서는 인간의 마음을 가리워 버리게 될 눈먼 상태에 대한 현저한 예증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완고한 반역의 힘을 보며, 그것을 정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발견할 수 있다. 진정으로 히브리인들에게는 그들을 속인 인물들의 멸망을 통해서 가장 크게 확신시켜 주는 증거가 주어진바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담대하고도 멸시적인 태도로 우뚝 서서 모세와 아론이 선하고 거룩한 인물들을 죽였다고 비난하였다. “이는 거역하는 것은 사슬의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삼상 15:23).

모세는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으며, 히브리인들이 그 전 날, 고라 다단, 아비람의 장막으로부터 도망친 것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신속히 자리를 뜸으로 회중이 멸망당하도록 내버려두지 않았다. 모세는 지체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 큰 무리가 지속적인 반란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들로 하여금 멸망당하도록 포기하는 것을 승낙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는 백성들이 겸비해야 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스스로 엎드렸다. 그는 그들이 그들 스스로를 위해 간구할 필요를 전혀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중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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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는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표상한다. 이 위기의 때에 모세는 그분의 돌보심 아래 있는 양들에 대해 진정한 목자의 관심을 나타내었다. 그는 감정이 상하신 하나님의 진노로 인해 그분의 선민이 전적으로 멸망당하지 않게 되기를 간구하였다. 그리고 그의 중보를 통하여 그는 진노의 팔을 붙잡았으며, 불순종하고, 반역적인 이스라엘의 완전한 종말은 이르러 오지 않았다. 그는 아론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발해져서 염병이 시작된 그 무서운 위기의 때에 어떻게 해야 할지 아론에게 지시하였다. 아론은 모세의 중보가 향연과 함께 올라가는 동안 그의 향로를 가지고 여호와 앞에서 흔들었다. 모세는 그의 간청을 감히 중단할 수 없었다. 그는 마치 야곱이 씨름할 때에 그랬던 것처럼 천사의 힘을 붙들었으며, 야곱처럼 승리를 거두었다. 아론은 “내가 너의 기도를 들었노라. 내가 철저히 소멸하지 아니하리라” 는 은혜의 응답이 이르러 올 때에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었다. 회중이 무시하였고, 죽이고자 했던 바로 그 인물들이, 하나님의 복수의 칼을 칼집 속에 집어 넣음으로 죄된 이스라엘이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위해 간구하는 인물이었다.

견책을 멸시하는 자들

사도 바울은, 여행길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경험이 말세를 맞을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자들을 위하여 기록되었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우리는 우리가 당하는 위험이 히브리인들이 당했던 것보다 못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오히려 더욱 큰 것이라고 생각한다.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해 기록된 것처럼 앞으로도 질투와 불평에 대한 유혹이 있을 것이며, 대담한 반역이 일어날 것이다. 죄악과 잘못에 대한 책망을 대항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정신이 언제나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때문에 견책의 음성이 잠잠해져야 하겠는가!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백성들의 잘못과 범람하는 죄악들을 견책하기를 두려워하는 우리 나라의 여러 다른 교단과 아무 다를 바가 없는 위치에 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의 교역자로 세우신 자들은 백성들의 죄악을 책망할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바울은 다음과 같이 디도에게 명하였다. “너는 이것을 말하고 권면하며 모든 권위로 책망하여 누구에게든지 업신여김을 받지 말라” (딛 2:15). 담대히 죄를 견책하는 자를 멸시하는 자들이 항상 있을 것이나 견책을 하지 않으면 안될 때가 있다. 바울은 디도에게 어떤 부류의 사람들이 믿음 안에 견고히 서도록 엄한 책망을 할 것을 지시한다. 서로 다른 성질을 가지고 교회로 모여든 남녀들은 독특한 성격과 결점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것들이 발전될 때, 그들에게는 견책이 필요된다. 중요한 위치에 놓여진 자들이 전혀 견책이나 책망을 하지 않는다면 이내 하나님의 명예를 크게 손상시킬 비도덕적인 상황들이 벌어질 것이다. 그러나 어떻게 견책해야 할까? 사도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범사에 오래 참음과 가르침으로 견책하며 경계하며 권하라” (딤후 4:2). 견책을 필요로 하는 자 앞에 원칙이 제시되어야 하되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이 무관심하게 간과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증언 3권 pp. 349-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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