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369-378(178일)

이삭은 세상 죄를 위해 희생물로 드려진 하나님의 아들의 모형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는 복음을 아브라함에게 인상 깊이 새겨 주고자 하셨다. 이렇게 하기 위해서, 또한 그의 믿음을 시험함과 동시에 이 진리를 그에게 있어서 실제적인 것이 되도록 하기 위하여, 그분은 그의 사랑하는 아들 이삭을 드리도록 그에게 요구하셨다. 그 어둡고 두려운 시련을 통하여 아브라함이 견뎌 낸 모든 슬픔과 고뇌는 타락한 인간을 위한 구속의 경륜을 그의 이해력에 깊이 새겨 주기 위한 목적이 있었다. 그는 완전한 멸망으로부터 인간을 구원해 내기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을 돌아가시도록 주신 무한하신 그분의 자아 부정이 어느 정도로 말로 다 할 수 없는 일이었는가를 자신의 경험을 통해 이해하게 되었다. 아브라함에게 있어서 그 어떠한 심적 고뇌도, 그의 아들을 희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견딘 그 고뇌를 필적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비천한 생애, 자아 부정, 가난, 고난, 수치, 그리고 십자가의 고통의 죽음을 당하도록 내어 주셨다. 그러나 거기에는 “이제 충분하다. 나의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이제 죽을 필요가 없다” 라는 기쁨의 기별을 가져올 천사가 없었다. 천사의 무리들은 이삭의 경우에서처럼 하나님께서 마지막 순간에 그분의 수치스러운 죽음을 중단시키기를 슬픈 마음으로 기다리며 희망하였다. 그러나 천사들에게는 그와 같은 어떤 기별을 하나님의 사랑하는 아들에게 전하는 일이 허용되지 않았다. 심판정과 갈바리로 가는 길에서의 굴욕은 계속되었다. 그분은 조롱과 비웃음과 침뱉음을 당하셨다. 십자가 위에서 머리를 떨구시고 운명하시기까지 그분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조소와 모욕과 욕설을 견디셨다.

이와 같은 고난을 겪도록 그분의 아들을 주신 것보다 더 큰 사랑의 증거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실 수 있겠는가? 인류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은 값없이 제공되었고 그분의 사랑은 무한한 것처럼 우리의 신뢰, 순종, 온 마음과 풍부한 애정을 요구하시는 하나님의 요구도 무한하다. 그분께서는 인간이 바칠 수 있는 것은 모두 요구하신다. 우리편에서의 순종은 하나님의 선물에 비례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것은 완전하고 부족한 것이 없어야 한다. 그분은 우리 자신을 즐겨 완전한 희생 제물로 드리지 않고는 충족될 수 없는 요구를 우리에게 하신다. 그분은 신속하고 즐거운 마음에서의 순종을 요구하시며, 이보다 못한 것은 아무것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얻을 기회를 가지고 있다. 금년은 이 글을 읽는 어떤 이들의 생애의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 이 호소를 읽는 청년들 가운데, 그리스도의 뜻을 진정으로 구하고 즐겁게 행하는 자들에게 그분께서 주시는 화평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의 쾌락을 택하고자 하는 자들이 있는가?

-370-

하나님께서는 성소의 저울로 우리의 품성과 행위와 동기를 달아보고 계신다. 우리의 마음을 당신께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신 우리 구주에 의해, 사랑과 순종에 있어서 부족하다는 선고를 받는 것은 두려운 일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크고 귀중한 선물을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뜻에 대한 빛과 지식을 우리에게 주셔서 우리가 실수하거나 흑암 중에 걸어가지 않게 하셨다. 최종 판결의 날, 보상의 날에 저울에 달려서 부족하다고 판결이 나는 것은 두려운 일이요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될 것이다. 젊은 친구들이여, 하나님의 책에서 그대들의 이름을 찾는 일에 허사가 되게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게 하는 한 가지 일을 하도록 그대를 임명하셨다. 그대의 주위에는 구원해야 할 영혼들로 가득차 있다. 그대들의 열렬한 노력으로 격려하고 축복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대들은 영혼들을 죄에서 돌이켜 의로 향하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을 느낄 때, 그대들은 기도에 있어서의 성실과,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여 깨어 있을 필요를 느끼게 된다. 그대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그대들은 의복의 경박함이나 교만에 방종하기보다는 세상의 도덕적 암흑을 통탄하는 마음을 갖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땅에서 이루어지는 가증한 것들을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 가운데 속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은 허영과 과시를 위한 치장이나 장식으로 끌어가는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게 될 것이다. 이 헛될 것들로 만족을 얻을 수 있는 마음과 지력은 고상한 책임을 등한히 하기까지 편협해지고 위축될 것이다.

우리 시대의 청년들은 그들이 뜻하기만 한다면,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될 수 있으며, 일하는 중에 그들의 믿음은 강화되고 신령한 뜻에 대한 지식도 증가될 것이다. 모든 참된 목적과 모든 올바른 행동이 생명책에 기록될 것이다. 나는 청년들을 각성시켜 그들 자신의 만족을 위하여 사는 것과, 이 세상의 값싸고 헛된 사물에 그들의 지력을 축소시키는 죄악상을 깨닫고 느낄 수 있게 해주기를 바란다. 만일 그들의 생각과 말이 이 세상의 헛된 매력을 초월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목적으로 삼는다면, 지각을 초월한 그분의 평강이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

-371-

그리스도의 겸손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우리 때문에 고되고 자기 부정적이고, 자아 희생적이고, 미천한 길을 우리의 모본자께서 걷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일하실 때, 그분은 역경을 만나시고, 실망을 겪으시고, 비난과 고난을 감수하셨다. 그런데 영광의 왕께서 인도하시는 길을 따르기를 우리는 거절해야 하겠는가? 시험의 광야의 우리 구속주, 겟세마네 동산의 우리 구주, 갈바리 십자가 위의 우리 구주께서 당하신 고통을 기억할 때, 우리 자신을 위해 정복하는 일을 할 때 겪게 되는 고난과 시련에 대해 우리는 불평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은 우리에게 길을 보여 주고, 우리가 마땅히 소유하지 않으면 멸망될 수밖에 없는 신령한 도우심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시기 위하여 견디신 바 되었다. 만일 청년들이 영생을 얻기를 원한다면, 그들은 스스로의 성향을 따라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없다. 상급에는 무엇인가 치러야 할 대가가 있다. 그렇다, 모든 것을 치러야 한다. 지금 그들은 예수님을 소유하든지, 세상을 소유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랑스러운 청년들이 자아를 섬기고, 이 세상의 목적을 얻기 위하여, 빈궁, 피곤, 수고, 염려의 고통을 겪으려고 할 것인가! 그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면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더라도 불평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런데 영생을 얻기 위한 일에 쟁투, 자기 부인, 혹은 그 어떤 희생에 대해 그들이 움츠러들어야 한단 말인가?

그리스도께서 영광의 궁전으로부터 이 죄로 오염된 세상에 오셔서 인간이 되시기까지 당신을 겸비하게 하셨다. 그분은 당신 자신을 우리의 약점과 동일시 하시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이 땅위에서 의로운 품성을 완성하셨는데, 당신 스스로를 위해서가 아니라 — 그분의 품성은 순결하고 흠이 없기 때문에 — 타락한 인간을 위해서였다. 주님은 그분의 성품을 받아들이고자 하는 인간에게 제공하신다. 자기의 죄에 대한 회개,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 하나님의 완전한 율법에 대한 순종을 통해서 죄인은 그에게 옷 입혀진 그리스도의 의를 소유한다. 그것은 그의 의가 되고, 그의 이름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 왕가의 가족이 된다.

-372-

예수께서는 세상을 구속하기 위하여 무한한 값을 치르셨으며, 또한 인류는 그분의 손안에 주어진바 되었다. 그들은 그분의 소유가 되었다. 그분은 왕궁에서 당신이 지니셨던 명예, 부귀, 영광스러운 집을 희생하시고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 되셨다. 요셉은 가장 미천한 날품팔이 중 하나였다. 예수님도 마찬가지로 일하셨다. 그분은 고난과 수고의 삶을 사셨다. 침례를 받으신 후 그분의 봉사를 시작하게 되었을 때, 그분은 거의 6주간에 걸친 고통스러운 금식을 견디셨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이 그분을 고통스럽게 한 것은 단지 에이는 듯한 굶주림이 아니라, 그분을 무겁게 억누르는 세상의 죄였다. 죄를 알지 못하신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셨다. 우리의 죄를 인해 그분을 무시무시하게 억누르는 죄의 무게와 더불어, 그분은 식욕, 세상과 명예에 대한 사랑, 신성 모독으로 이끌어 가는 과시적인 교만 등에 관한 두려운 시험을 견디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큰 세 가지 지배적인 시험을 인간을 위해 견디시고 승리하심으로 당신을 위해 의로운 품성을 이루어 내셨는데, 그 이유는 인간 스스로 이것을 행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은 이 세 가지 점에서 사단이 인류를 공격할 것을 아셨다. 사단은 아담을 정복하였고, 자기의 사업을 인간을 완전히 멸망시킬 때까지 수행해 나가기로 계획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이 스스로를 위해서 정복할 수 없음을 보셨기 때문에 인간을 위해 사단을 정복하고자 인간 대신 전쟁터에 들어오셨다. 그리스도께서는 고통, 자기 부인, 자아 희생의 생애를 통해, 또한 당신의 겸비와 최후의 죽으심을 통해, 인간의 속량을 위한 길을 마련하셨다. 그분은 그리스도의 본을 따름으로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승리하신 것처럼 스스로를 위해서 승리할 수 있도록 인간에게 도움을 가져오셨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6:19, 20).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하나님의 성전은 거룩하니 너희도 그러하니라” (고전 3:16, 17).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4-18).

-373-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얼마나 은혜롭고 부드럽게 당신의 자녀들을 대하시는가! 그분은 그들이 멸망하지 않도록, 그들에게는 보이지 않는 수천의 위험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시며, 사단의 교묘한 수단으로부터 그들을 지키신다. 천사를 통한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우리의 둔한 시력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부드럽고 자애로우신 창조주께서 그분의 손으로 하시는 사업에 나타난, 그분의 끊임없이 돌보시는 관심을 깊이 생각하거나 감사하려 하지 않으며, 그분이 매일 우리에게 베푸시는 자비의 풍성함을 고맙게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들은 그들이 접하는 많은 위험들에 대해 무지하다. 그들은 그 모든 위험들을 결코 완전히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깨어 있고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양심을 민감하게 하고, 그들의 지각을 밝게 하셔서, 그들로 하여금 원수의 역사를 분별하고 그의 공격에 대하여 방비가 되도록 하실 것이다. 그러나 많은 청년들은 자신의 성향을 너무 오랫동안 따랐으므로, 의무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단어일 뿐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들이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고상하고 거룩한 의무를 깨닫지 않고, 일을 행하기를 전적으로 등한히 한다.

만일, 청년들이 깨어 사단의 유혹을 대항하기 위하여 하나님께로 오는 능력을 받을 필요를 깊이 느낄 수만 있다면, 고귀한 승리는 그들의 것이 될 것이며 그리스도인 싸움에서 귀중한 체험을 얻게 될 것이다. 청년들 중에서 영감받은 사도 바울의 권면을 생각하는 이는 얼마나 적은가!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벧전 5:8, 9). 요한에게 주어진 이상 중에 그는 인간에게 역사하는 사단의 능력을 보고 외쳤다. “땅과 바다는 화 있을진저 이는 마귀가 자기의 때가 얼마 못 된 줄을 알므로 크게 분내어 너희에게 내려갔음이라” (계 12:12).

-374-

청년들의 유일한 안전은 끊임없는 경성과 겸손한 기도 속에 있다. 이러한 노력이 없이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다고 스스로 우쭐해서는 안 된다. 광야에 계신 그리스도께 접근했을 때처럼 사단은 빛으로 자신의 유혹과 계책을 덮어 위장한다. 그때, 그는 하늘 천사 중의 하나같은 모습을 했다. 우리의 영혼의 원수는 하늘에서 온 손님처럼 접근하므로, 사도는 근신하고 깨어 있는 것이 우리의 유일한 안전책이라고 권고한다. 부주의와 경박함에 빠진 청년들과, 그리스도인의 의무를 소홀히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하는 대신에 계속해서 원수의 유혹에 빠지게 될 것이다.

온전히 헌신한 영혼들에게는 그리스도를 섬기는 것이 고역이 아니다. 우리 구주께 순종하는 일은 이생에서의 우리의 진정한 즐거움과 행복을 감소시키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품성을 세련되게 하고 향상되게 하는 능력을 갖는다. 성경에서 발견되는 고귀한 생명의 말씀을 매일 공부할 때, 지력은 강화되고, 천연계에 나타난 하나님의 장엄하고 영광스러운 업적에 대한 지식을 제공해 준다. 성경 말씀을 공부함으로써, 우리는 순수한 행복을 가장 크게 누리는 삶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얻게 된다. 성경을 배우는 자들은 또한 성경상 논증을 제공받음으로써 불신자들의 의심을 대항하고 분명한 진리의 빛으로 그 의심을 제거하게 된다. 성경 말씀을 살펴 온 자들은 언제나 사단의 유혹에 대한 방비를 갖추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완전히 하게 되며, 그들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들에게 대답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신앙은 저급한 것이며, 성경의 표준을 자신의 생애의 규율로 받아들이는 것은 죄인에게 생색을 내는 것이라는 인상을 너무 자주 마음 속으로 받게 된다. 그들은 신앙적 요구는 세련되지 못하고, 이를 수용할 때 아름다운 것을 찾는 취향과 그것을 즐기는 일을 멀리해야 하며, 그 대신에 수치와 저질적인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단의 기만 중 이것보다도 더 큰 기만은 없다. 예수님의 순수한 신앙은 이를 따르는 이들에게 인위적이고 거짓된 것보다는 단순한 자연미와 자연스러운 고상함과 수준 높은 순결성 등을 요구한다.

-375-

순수한 신앙이, 특별히 청년들에게, 가혹한 요구로 간주되고, 세상의 휘황찬란한 싸구려 것들과 비교해서 인기 없는 것으로 여겨질 때, 성경의 요구는 수치스럽고 자아를 부인하는 시험, 곧 인생의 즐거움을 송두리째 그들로부터 빼앗아 가는 것으로 여겨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의 신앙은 항상 고상하게 하고, 세련되게 하는 경향을 갖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를 따르노라 공언하는 이들이 저들의 생애 속에서 순수한 신앙원칙들을 실천했더라면, 그리스도의 신앙은 더 많은 세련된 지성인들에게 받아들여질만 했을 것이다. 성경의 신앙은 최상의 감정을 얽매는 요소를 전혀 갖고 있지 않다. 그것은 그 모든 계율과 요구에 있어서 하나님의 품성처럼 순수하고, 그분의 보좌처럼 드높다.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생애의 교만에 대해 우리에게 경고하시지만, 생애의 덕성과 자연미에 대해서는 경고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들판의 꽃들 속에서 보게 되는 찬란한 영광을 지적하셨고, 또한 호숫가에서 흠없는 순결성을 간직하고 있는 백합화를 가리키셨다.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 29). 여기에서 그분은 사람들이 아무리 큰 공을 들인다 할지라도, 외적인 치장을 통해 사람들의 갈채의 대상이 되기 위해 아무리 피곤할 정도로 노력을 기울인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그토록 큰 값을 매기는 인위적 단장은 자연스러운 사랑스러움에 있어서 들의 단순한 꽃과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을 보여주신다. 하나님께서 치장하신 이러한 단순한 꽃들까지도 그 사랑스러움에 있어서는 솔로몬의 찬란한 의상을 훨씬 능가한다.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마 6:28).

-376-

여기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위한 중요한 교훈이 있다. 세상의 구속주께서 청년들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대들은 하늘의 교훈인 그분의 말씀을 듣겠는가? 그분은 고상하게 하고, 향상시키고, 세련되게 하고, 순결하게 할 생각거리들을 그대 앞에 제시하신다. 그것은 결코 지성을 추락시키거나 축소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음성은 그대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4, 16). 만일 하나님의 빛이 그대 속에 거한다면, 그것은 다른 이들에게 비췰 것이다. 그것은 결코 숨겨질 수 없다.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유행을 따라 입고자 하며, 과시하기 위하여 레이스와 금과 인공물들을 착용하고자 하는 그대 속의 성향은 다른 이들에게 그대의 신앙, 혹은 그대가 공언하는 진리를 추천하지 않을 것이다. 분별력을 지닌 사람들은 외모를 미화하기 위한 그대의 노력들을 미약한 마음과 교만한 정신을 입증하는 증거물로 간주할 것이다. 단순하고, 소박하고, 꾸밈이 없는 의복을 나의 젊은 자매들에게 권하고 싶다. 그대의 빛을 다른 이들에게 비취도록 하는 것으로는 의상과 기질의 단순성보다도 더 나은 길이 전혀 없다. 그대는 영원한 사물과 비교해서 이생의 사물들에 대해 제대로 평가하고 있음을 모든 이들에게 보여 줄 것이다.

지금이야말로 하늘을 위하여 순결하고 거룩한 성품을 형성할 수 있는 황금과 같은 기회이다. 그대들은 이 소중한 순간들을 내적인 단장을 등한히 하면서 외양을 꾸미고, 주름을 잡고, 미화하는 일에 바칠 수 없다. “너희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 (벧전 3:3, 4).

눈길이 머무는 곳마다 만물을 사랑스럽고 아름답게 창조하신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사랑하시는 분이다. 그분은 그대에게 당신께서 평가하시는 진정한 미가 무엇인지를 보여 주신다.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단장은 그분께서 보실 때에 “값진 것” 이다. 하나님께서 값비싼 의복이나 진주나 은보다도 더 값비싼 것으로 평가하시는 것을 얻기 위해서 우리는 열심히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적인 단장, 온유의 미덕, 하늘의 천사들과 조화되는 정신은 품성의 진정한 덕성을 감소시키거나 이 세상에서 우리의 사랑스러움을 떨어뜨리지 않을 것이다.

-377-

순결하고 흠없는 종교는 그 소유자를 고결하게 한다. 그대는 언제나 진실된 그리스도인에게서 현저한 즐거움, 하나님께 대한 거룩하고 행복한 신뢰, 그분의 섭리에 대한 복종 등을 발견할 것인데, 그것은 영혼을 소성시킨다. 그리스도인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그가 받은바 모든 선물들 속에 나타날 수 있다. 천연계의 아름다움은 명상의 주제이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천연계의 사랑스러움을 연구할 때, 마음은 천연계를 통해서 모든 사랑스러운 것의 근원이신 분께로 이끌려 올라간다. 하나님께서 이루신 모든 작품들은 우리의 감각에 이야기하며, 당신의 능력을 찬양하며, 당신의 지혜를 드높인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자녀들의 흥미를 끌어당기며, 또한 이러한 것들을 인간의 손재주를 능가하는 하나님의 사랑의 소중한 증거로 여기도록 하는 감각을 형성시켜 주는, 나름대로의 매력을 갖고 있다.

선지자는 타오르는 열정이 담긴 말로 그분께서 만드신 것들을 통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의 베풀어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 사람이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관대 주께서 저를 권고하시나이까” (시 8:3, 4).

신앙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길에 어두움이 깔리게 하는 것은 다름 아닌 경건의 부재이다. 그리스도인이라고 하지만 그 이름에 합당치 않은 이들이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적 품성을 소유하고 있지 않다. 저들의 그리스도교 신앙이 시험대에 오를 때 그 허구성이 자명해진다. 진정한 경건은 매일의 품행 속에서 나타난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다른 이들에게 선을 행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자 열렬하게 이기심 없이 일하는 것으로 특징지어져 있다. 그분의 길은 어둡거나 우울하지 않다. 영감받은 기자는 말하였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 (잠 4:18, 19).

또한 청년들이 허황되게 생각도 없이 유행과 부질없는 일을 추구하는 삶을 살며, 의복 때문에 지력을 축소시키며 육욕적인 쾌락에 저들의 시간을 허비해야 하겠는가? 저들이 전혀 준비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실 것이다. “이 밤에 그대의 미련함이 끝나리라.” 그분은 당신의 영광을 위해 전혀 열매를 맺지 않은 이들에게 치명적인 질병을 허락하실 수 있다. 영원한 실재를 직면할 때, 그들은 상실해 버린 시간과 인생의 가치를 깨닫기 시작할 것이다. 그때에 그들은 영혼의 가치에 대해 어느 정도 이해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신의 생애가 하늘을 향하여 다른 이들에게 빛을 비춤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았음을 깨닫는다. 그들은 자아에게 영광을 돌리기 위해 살아왔다. 그리고 고통과 영혼의 비탄에 사로잡힐 때, 그들은 영원한 사물에 대해 분명한 개념들을 가질 수 없다. 그들은 자신의 과거의 삶을 회고할 때 죄책감으로 각자가 울부짖는다. “나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행하신 예수님을 위해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내 인생은 비참한 실패작이다.”

-378-

사랑하는 청년들이여, 그대들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기도할 때, 그대의 일은 기도로 끝나는 것이 아님을 명심하라. 그 다음에 그대는 가능한 한 유혹에 저항함으로 스스로의 기도에 응답해야 하며, 그대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주님께서 그대를 위해서 행하시도록 떠맡기라. 그대는 원수가 그대를 시험에 빠뜨리는 일이 없도록 그대의 말과 행실에 아무리 주의해도 지나치지 않다. 우리의 수많은 청년들은 저들에게 주어진 경고와 견책을 부주의하게 무시함으로 사단에게 문을 활짝 열어 준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지침으로 삼고, 예수님을 우리의 하늘 교사로 모시고 있는 한, 우리는 그분의 요구나 사단의 계략에 대하여 무지할 필요가 없으며, 또한 그의 유혹에 정복될 필요가 없다. 성령님의 지시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굴복시킬 때,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것은 결코 불쾌한 과업이 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일해야 할 때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면 세상에 살고 있는 한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우리의 일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미완성의 사업이 남아 있는 한 아무것도 할 것이 없다고 결코 말할 수 없다. 나는 모든 청년들이 내가 본 것처럼 그들이 행할 수 있는 사업을 보기를 원하며, 또한 하나님께서 태만히 한 것에 대하여 그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이라는 것을 알기를 원한다. 세상에서 일찍이 성취된 사업 중 가장 위대한 사업은 슬픔의 사람이요, 슬픔에 익숙한 인물이신 그분에 의해 성취되었다. 경솔한 마음을 소유한 인물은 결코 선을 성취하지 못할 것이다.

교회증언 3권 pp. 369-37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