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259-268(167일)

어떤 이들은 우리가 미혹 당했고 자기들은 옳다고 자만하면서, 우리에게 증거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증언을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명백한 취급과 견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하나님께서 저들과 함께 계신다고 생각한다. 그 영혼이 죄에 대한 충성스러운 견책을 거스려 싸움을 벌이고 있는 이 시험받은 이들은 “우리에게 부드러운 것을 말해 주시오” 라고 외친다. 이들은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한 참된 증인의 기별을 어떻게 대하는가? 여기에는 결코 기만이 있을 수 없다. 이 기별은 하나님의 종들에 의하여 뜨뜻미지근한 교회에 증거되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그들의 진정한 위치와 관련하여 안일과 위험한 기만으로부터 그분의 백성을 일어서게 해야 한다. 만일 받아들인다면, 이 증언은 행동하도록 할 것이며 또한 겸비케하여 죄를 고백하도록 할 것이다. 참된 증인께서는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계 3:15) 라고 말씀하신다. 또한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계 3:19) 고 말씀하심과 더불어 약속의 말씀을 주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하리라” (계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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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은 저들의 잘못을 깨닫고 열심히 회개하여 저들로 하여금 그토록 통탄스러운 가난과 눈멂과 곤고함과 두려운 기만 상태 가운데 빠지게 한 죄들을 벗어 버려야만 한다. 나는 예리한 증언이 교회안에 살아 있어야 함을 보았다. 이것만이 라오디게아에 보내는 기별에 대한 대답이 될 것이다. 잘못은 견책을 받아야 하며, 죄는 죄라고 불려져야 하며, 죄악에 대해서 즉시 결정적으로 대처함으로 한 백성인 우리에게서 벗어버려져야 한다.

하나님의 성령을 거스려 싸움

지나간 26년간 하나님의 성령에 이끌려 우리가 해 왔던 사업에 대하여 반대의 정신을 갖고 있는 이들 또한 우리의 증언을 깨뜨려 버리고자 하는 이들과 관련해서 내가 보게 된 것은 저들은 우리와 더불어 싸우는 것이 아니고, 다른 이들에게 주시지 않은 사업의 짐을 우리에게 메게 하신 하나님을 거스려 싸우는 것이다. 의문과 핑계를 일삼아 의심하는 것을 미덕으로 생각한 이들, 절망시키려고 한 이들, 우리 사업을 힘들게 하고 우리의 믿음과 소망과 용기를 꺾기 위한 도구의 역할을 한 이들은, 사악한 것을 추측하고, 미묘하게 의심의 비난을 심고, 우리에 대해 질투의 기회를 엿보았던 이들이다. 그들은 우리에게 인간적 약점이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우리는 그르고 자기들은 바르다는 결정적 증거로 당연시하였다. 만일 그들이 우리를 해치는 데 사용할 만한 어떤 비슷한 것이라도 발견할 수 있으면, 그들은 승리의 정신으로 그렇게 했으며 또한 잘못을 견책하고 죄를 정죄하는 우리의 사업을 거칠고 독재적인 정신이라고 매도하였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이 우리에 대해 무엇이라고 하든지 그것을 우리의 고난의 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하나님께서 다른 이들에 대해서 보다도 우리에게 더 힘든 과업을 맡기셨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과 용기가 심하게 시련을 겪었으며 이따금 우리의 사업에 우리를 임명하신 분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일에 실패했음을 겸손한 심령과 회개로 인정하였다. 쓰라린 실망과 시련 후에 또다시 용기를 냈을 때 우리는 하나님을 끊임없이 불신하고 인간적 약점에 밀려 우리의 믿음을 실망의 구름으로 가리워 버리고 하나님께 대해 적게 신뢰한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하였다. 고대의 하나님의 종들도 가련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들과 마찬가지로 실망과 좌절로 고생했음을 나는 보게 되었다. 우리는 선량한 사람들 사이에 거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라고 예외가 될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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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이 내 곁에 서서 내가 하는 일을 붙들어 주고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와 연합하여 분명한 증언을 제시함에 따라,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을 해치는 이가 다름 아닌 그라고 느꼈다. 그러나 이 짐을 그에게 지워 주신 분은 주님이셨으며, 그분께서는 당신의 종을 통하여 그들을 견책하심으로 저들로 하여금 그 잘못들을 회개하여 하나님의 은총을 입을 수 있는 지점으로 돌이킬 수 있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중대한 사업을 위하여 부르신 이들은 언제나 불신과 의심을 받았다. 고대 시대에 엘리야가 하나님께로부터 기별을 갖고 백성들에게로 나갔을 때, 그들은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를 불필요하게 가혹하다고 생각하였다. 심지어 그들은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백성을 죄인으로 정죄하고, 저들에 대해 하나님께서 심판을 발하실 만큼 심한 것으로 저들을 정죄하자 그를 정신나간 사람으로까지 여겼다. 사단과 그의 군대는 경고의 기별을 전파하고 죄를 책망하는 이들을 거스려 싸우고자 언제나 진을 치고 있다. 비 헌신적인 의지는 또한 하나님의 충실한 종들의 사업을 가능한 한 힘들게 하려고 영혼의 대적과 함께 연합할 것이다.

만일 나의 남편이 한도에 넘칠 만큼 압력을 받아 실망과 절망 속에 빠졌더라면, 만일 우리가 때때로 인생에 있어서 선택할 만한 좋은 것은 전혀 보지 못했다면, 이것은 이상하거나 새로운 것이 결코 아니다. 하나님의 위대한 능력의 선지자 중 한 사람이었던 엘리야는 격노한 이세벨의 분노를 피해 목숨을 건지기 위하여 도망쳤을 때, 여행에 지친 도피자로서 사는 것보다도 죽기를 원하였다. 이스라엘의 신실함에 관해 쓰라린 실망을 했을 때, 그의 심령은 부수어지는 것 같았으며, 더 이상 인간을 믿을 수 없다고 느꼈다. 욥은 캄캄한 환난의 때에 “나의 난 날이 멸망하였었더라면” (욥 3:3) 이라고 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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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깊이까지 내려가 보지 않은 이들, 마차 밑의 바퀴처럼 부담 아래 서 본 적이 없는 이들, 하나님의 사업을 자신의 관심사와 너무 밀접하게 일치시킴으로 말미암아 그것을 저들 존재의 일부요 생명보다 더 귀한 것으로 여겨본 적이 없는 이들은, 마치 이스라엘 백성이 엘리야의 심정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처럼 내 남편의 심정을 이해할 수 없었다. 우리는 환경이 어떠하였던 지간에 낙망했던 것에 대해 깊이 후회한다.

아합의 경우가 경고가 됨

아합의 그릇된 통치 때문에 이스라엘은 하나님께로부터 떠나서 그분 앞에서 저들의 길을 더럽혔다. “오므리의 아들 아합이 그전의 모든 사람보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더욱 행하여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는 것을 오히려 가볍게 여기며 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로 아내를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사마리아에 건축한 바알의 사당 속에 바알을 위하여 단을 쌓으며 또 아세라 목상을 만들었으니 저는 그전의 모든 이스라엘 왕보다 심히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노를 격발하였더라” (왕상 16:30-33).

아합은 도덕적 힘이 약하였다. 그에게는 신성한 사물에 대한 깊은 인식이 없었다. 그는 이기적이었고, 비 원칙적이었다. 단호한 성품과 적극적인 기질을 지닌 우상 숭배자 여인과 결혼을 통해 연합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그들 모두는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숭배와 무서운 배도로 이끄는 사단의 매개자가 되었다. 이세벨의 단호한 정신이 아합의 성격을 꼴지었다. 그의 이기적인 본성은 당신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자비, 이스라엘의 수호자요 지도자로서 하나님께 대해 갖고 있는 자신의 책임을 깨달을 수 없었다. 하나님께 대한 경외심이 날마다 이스라엘에서 줄어 갔다. 그들의 맹목적인 우상숭배의 신성 모독적 표시가 하나님의 이스라엘 중에 나타나게 되었다. 횡행하고 있는 신성 모독적인 우상숭배를 공개적으로 반대하고 일어섬으로 자신의 생명을 감히 내걸 만한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바알의 제단들과 해, 달, 별에게 희생을 드리는 바알의 제사장들은 도처에서 눈에 띄었다. 그들은 신전들과 작은 숲을 구별하여 그 안에 인간의 손으로 만든 것들을 들여 놓고 경배하였다.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축복을 베푸셨건만, 주신 분께 전혀 감사를 드리지 않았다. 하늘의 모든 것, 흐르는 시내, 생수의 줄기들, 부드러운 이슬, 땅을 적셔서 들판을 풍성하게 솟아나게 하는 소나기, 이 모든 것은 저들의 신들의 가호로 돌려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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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의 충성된 영혼은 슬픔을 느꼈다. 그는 분개하였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질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이 무서운 배도로 빠져들어 갔음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저들을 위해서 이루신 위대한 일들에 대해 상기했을 때, 그는 슬픔과 놀라움으로 압도되었다. 그러나 대다수의 백성은 이 모든 것을 잊었다. 그는 슬픔에 짓눌린 영혼을 갖고 주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서 그것이 심판을 의미한다고 할지라도 당신의 백성을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감사할 줄 모르는 백성들에게서 이슬과 비, 하늘의 보물들을 거두심으로 배도한 이스라엘로 하여금 저들의 신, 곧 금과 나무와 돌로 만든 저들의 우상, 해와 달과 별들이 땅에 물을 대어 비옥하게 함으로 풍성한 결실을 가져오기를 헛되게 고대하도록 해 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였다. 주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당신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셨으며, 당신의 백성이 회개하며 당신께로 돌아설 때까지 우로를 거두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아간의 죄와 형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매혹적인 수풀과 신전과 제단에 미혹을 받을까 봐 그들 주변의 우상숭배 국가와 섞이는 것을 특별히 막으셨다. 그것들은 지극히 값비싸게 만들어져서 저들을 홀려 백성들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이 쫓겨나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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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리고 도성은 가장 방탕적인 우상숭배에 빠져 있었다. 그 주민들은 매우 부유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모든 부를 그 신들의 선물로 간주하셨다. 그들에게는 금과 은이 풍성하였다. 그러나 홍수 이전의 사람들처럼 그들은 부패하였고 신성 모독적이었으며, 저들의 사악한 행실을 통해서 하늘의 하나님을 모독하고 격분시켰다. 하나님의 심판이 여리고를 향해서 발해졌다. 그것은 요새였다. 그러나 주님의 군대의 사령관께서 친히 하늘로부터 내려오셔서 하늘 군대를 이끄시고 그 도시를 공격하셨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육중한 성벽을 붙들어 땅바닥에 내동댕이쳤다. 하나님께서는 여리고 성이 저주를 받아 라합과 그의 가족들 외에는 모두 멸망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이들은 라합이 주님의 사자들에게 베푼 호의 때문에 구원을 받아야 했다. 백성들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았다. “너희는 바칠 물건을 스스로 삼가라 너희가 그것을 바친 후에 그 바친 어느 것이든지 취하면 이스라엘 진으로 바침이 되어 화를 당케 할까 두려워하노라” (수 6:18). “여호수아가 그 때에 맹세로 무리를 경계하여 가로되 이 여리고 성을 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 기초를 쌓을 때에 장자를 잃을 것이요 문을 세울 때에 계자를 잃으리라 하였더라” (수 6:26).

하나님께서는 여리고의 경우에는 매우 까다로우셨는데, 이는 백성들이 그 거민들이 경배하던 것들에 홀려 하나님으로부터 마음을 돌이킬까 해서였다. 그분은 지극히 적극적인 명령으로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셨다. 그러나 여호수아의 입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엄숙한 명령을 주셨건만, 아간은 감히 거스려 범죄 하였다. 그는 탐심에 이끌려 하나님의 저주가 함께 하는, 만지지 말도록 금지된 보화에 손을 댔다. 이 사람의 죄 때문에 하나님의 이스라엘은 그 원수들 앞에서 맹물처럼 약하게 되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의 장로들은 큰 슬픔 가운데 휩싸였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에게 진노하심을 인하여 지극히 비통해 하며 수치 가운데 하나님의 법궤 앞에 엎드렸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기도하며 울었다. 주님께서는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라 어찌하여 이렇게 엎드렸느냐 이스라엘이 범죄하여 내가 그들에게 명한 나의 언약을 어기었나니 곧 그들이 바친 물건을 취하고 도적하고 사기하여 자기 기구 가운데 두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자기 대적을 능히 당치 못하고 그 앞에서 돌아섰나니 이는 자기도 바친 것이 됨이라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수 7: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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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책망할 의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에 있는 죄를 하나님이 어떻게 여기시는지를 여기에 예시하고 계시다는 사실을 나는 보았다. 고대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랬듯이, 하나님의 능력이 뚜렷하게 나타나는 것을 보게 하심으로 그분께서 특별히 영광스럽게 하신 자들이 그분의 명백한 지시를 감히 멸시하기까지 할 때에는 그분의 진노의 대상이 된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 불순종과 죄악은 당신께 심히 불쾌한 것이므로 경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이 죄악 중에 있음을 깨닫지만, 즉시 그 죄를 그들로부터 떨쳐 버리기 위한 결정적 조치를 단번에 내림으로 당신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들 모두 위에 머물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그러나 백성들의 죄악이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에 의해 간과된다면, 그분의 진노가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하나님의 백성들은 한 몸으로서 그 죄악에 대해 책임을 지게 될 것이다. 과거에 당신의 백성을 취급하심에 있어서, 주님께서는 교회를 잘못으로부터 순결하게 하실 필요를 보여 주신다. 한 죄인이 하나님의 빛을 전 회중으로부터 차단할 흑암을 퍼뜨릴 수도 있다. 백성들이, 흑암이 그들 위에 머물러 있음을 깨닫지만, 그 원인을 알지 못할 때에는 자신을 크게 낮추고 겸손한 가운데 주님의 성령을 슬프시게 한 그 잘못을 찾아내어 버릴 때까지 하나님을 열렬하게 찾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그 잘못을 우리가 책망한 연고로 우리를 대항하여 일어난, 편견과 가혹함과 엄격함에 대한 부르짖는 원성은 정당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하라고 명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당신의 백성들 가운데 명백한 죄가 있으나 하나님의 종들이 그것들을 무관심하게 간과한다면, 그들은 실제로 죄인을 지지하고 정당화하는 것이며, 죄인과 동일한 허물을 갖게 될 것이요, 반드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당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인들의 죄악에 대한 책임을 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종들이 그들 중에 존재하는 잘못과 죄악을 다룸에 있어서 소홀히 함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이르러 온 많은 경우가 이상 가운데서 내게 지적되었다. 이 잘못을 간과하는 자들은 단지 그들이 성경의 명백한 의무를 이행하는 것을 회피하였기 때문에 매우 온후하고 사랑스런 기질을 가졌다고 백성들에 의해 생각되었다. 그 임무는 그들의 마음에 맞지 않았으므로 그들은 그것을 회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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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는 잘못에 대한 견책 때문에 어떤 이들이 품어 온 미움의 정신은 그들 자신의 영혼에 맹목과 두려운 기만을 야기하였고, 그들로 하여금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영적 시력을 어둡게 하였다. 그들은 잘못을 목도 했으나 여호수아가 느낀 것처럼 그것을 느끼지 않았고, 영혼의 위험을 깨달을 때에 자신을 겸손하게 하지 않았다.

주님의 사업의 정신과 영혼 구원의 정신을 그 마음에 품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은 항상 죄의 참된 성격 즉 그 흉악한 성격을 보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항상 하나님의 백성을 쉽게 습격하는 죄를 성실하고, 명백하게 다루는 쪽에 설 것이다. 특히 교회를 위한 마지막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 흠없이 설 십사만 사천 명을 인치는 때에,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임을 고백하는 자들의 잘못을 가장 깊게 느낄 것이다. 이 사실은 각자 그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든 사람들의 모습으로 표상된 마지막 사업에 대한 선지자의 예증을 통하여 강력하게 제시되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서기관의 먹그릇을 찼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겔 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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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이와 같은 때에 하나님의 권면을 따를 것인가?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의 잘못을 실제로 변명하고, 공개적은 아닐지라도 마음 속으로, 그들의 죄악을 책망한 자들에 대하여 불평하는 자들이겠는가? 책망자들을 반대하고 잘못을 범하는 자들을 동정하는 자들이겠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회개하여, 사업의 짐을 지고 있는 자들을 핍박하고 시온의 죄인들의 손을 붙들어 주는 사단의 일을 버리지 않는다면, 그들은 결코 하나님의 인치심을 통한 인정의 표를 받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살육하는 기계를 든 다섯 사람의 사업으로 표상된 전반적인 악인의 멸망에 빠지게 될 것이다. 다음의 요점을 주목하라.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 의해 찍혀지는 표로 표상된 진리의 순결한 표 즉 성령의 능력에 의해 그들에게 이루어진 그 표를 받는 자들은 교회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 들임을 관심 있게 주목하라. 하나님의 순결, 명예, 영광에 대한 그들의 사랑은 그들이 고민 중에 있고 탄식하며 우는 모습으로 표상될 정도로 깊다. 그들은 죄악의 지극히 죄됨에 대하여 분명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 에스겔 9장을 읽어 보라.

죄악과 의 (義) 의 뚜렷한 대조를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권면을 듣고 표를 받아들이는 자들로 여겨지지 않는 모든 자들에 대한 전반적인 살육이, 살육하는 기계를 든 다섯 사람에게 내려진 명령 속에 묘사되어 있다.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겔 9:5, 6).

아간이 범죄 했을 때,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그 바친 것을 너희 중에서 멸하지 아니하면 내가 다시는 너희와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수 7:12). 죄악과 잘못을 책망하지 않고 오히려 이스라엘 진 (陣) 을 괴롭게 하는 자들에게 항상 동정하는 자들이 따르는 길과 이 실례는 얼마나 판이하게 대조되는가?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그 바친 물건을 너희 중에서 제하기 전에는 너의 대적을 당치 못하리라” (수 7:13). 그분은 당신의 언약을 범하는 데 따르게 될 형벌을 선고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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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여호수아는 범죄자를 찾기 위해 부지런히 조사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지파 별로 조사하였고, 그 후에 저들의 가족 별로 조사하였고, 그 다음에 각 개인별로 조사하였다. 그러자 아간이 범죄자로 지목되었다. 그러나 그 사실이 모든 이스라엘에게 명백하게 드러나서 죄없는 자가 고난을 당한다고 불평하거나 말할 기회가 그들에게 제공되지 말아야 했으므로, 여호수아는 한 방책을 사용했다. 그는 아간이 범죄자이며 그의 죄를 숨김으로 하나님의 백성에 대한 그분의 진노를 유발시켰다는 사실을 알았다. 여호수아는 하나님의 명예와 공의가 이스라엘 앞에서 옹호되도록 신중하게 아간으로 하여금 그의 죄를 고백하도록 유도하였다. “여호수아가 아간에게 이르되 내 아들아 청하노라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 그 앞에 자복하고 네 행한 일을 내게 고하라 그 일을 내게 숨기지 말라.”

“아간이 여호수아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참으로 나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여 여차여차히 행하였나이다.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이에 여호수아가 사자를 보내매 그의 장막에 달려가 본즉 물건이 그의 장막 안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는지라 그들이 그것을 장막 가운데서 취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로 가져오매 그들이 그것을 여호와 앞에 놓으니라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세라의 아들 아간을 잡고 그 은과 외투와 금덩이와 그 아들들과 딸들과 소들과 나귀들과 양들과 장막과 무릇 그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이끌고 아골 골짜기로 가서 여호수아가 가로되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뇨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를 괴롭게 하시리라 하니 온 이스라엘이 그를 돌로 치고 그것들도 돌로 치고 불사르고” (수 7:19-25).

주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이스라엘이 저주받지 않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취하지 말라고 강력하게 명하신 물건들을 아간이 취하였을 뿐 아니라 그것을 훔쳤고 감추었다고 말씀하셨다. 주님께서는 여리고와 그 성의 모든 전리품들을, 주님의 곳간에 들일 금, 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사르라고 말씀하셨다. 여리고를 탈취한 승리는 백성들의 전쟁이나 과시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하늘 군대를 인도하셨다. 전쟁은 주님의 전쟁이었으며, 싸움을 싸우신 분은 다름 아닌 주님이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승리와 영광은 주님의 것이었고, 전리품도 그분의 것이었다. 그분은 당신의 곳간을 위한 금, 은을 제외하고는 모두 불사르라고 지시하셨다. 아간은 이와 같은 제한 조건에 대하여 또한 그가 탐 내었던 금, 은, 보물들이 주님의 것임에 대하여 잘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곳간에서 도둑질하였다.

교회증언 3권 pp. 259-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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