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269-278(168일)

하나님의 백성들 중의 탐심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노라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서 저들의 수중에 맡겨 당신의 금고에 넣게 하신 금전을 사적 용도를 위해서 착복하고 있음을 나는 보게 되었다. 그들은 십일조와 헌물에 있어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 그들은 시치미를 떼고 하나님의 것을 내놓지 않으나 그들에게 손해가 될 뿐이다. 그들은 저들의 탐심과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속임수와 도적질을 통하여 빈약함과 가난을 자초하며 교회를 흑암 속에 들어가게 한다.

나는 많은 영혼들이 탐심 때문에 흑암 속으로 빠져들어 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하고 곧은 증언이 교회 안에 살아 있어야만 하는데, 그렇지 않을 경우에는 하나님의 저주가 저들의 죄로 인하여 고대 이스라엘에 분명히 임하였던 것처럼 당신의 백성에게 머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 중에 존재하는 개인들의 죄에 대해 한 몸으로서 당신의 백성에게 책임을 지우신다. 교회의 지도자들이 몸에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안겨 줄 죄들을 부지런히 발견하는 일을 등한히 하게 될 경우, 저들은 이러한 죄들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심령을 취급하는 일은 일찍이 인간이 참여한 사업 중 가장 훌륭한 사업이다. 모든 사람이 죄를 바로잡는 일에 적합한 것은 아니다. 그들은 긍휼을 사랑하는 한편 공의롭게 취급할 만한 지혜를 갖고 있지 않다. 그들은 사랑과 부드러운 동정에 신실한 견책을 혼합해야 할 필요를 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어떤 이들은 항상 불필요하게 가혹하고,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이 여기라 또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유 22, 23) 고 말한 사도의 권면의 필요성을 느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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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수아의 분별력과 잘못을 찾아내어 그들 중에 거하는 죄들을 신속하게 처리하는 특별한 사명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이 많다. 이런 자들은 이러한 사업의 짐을 짊어지고 있는 이들을 방해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도록 되어 있는 이들의 길을 가로막지 말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지워 주지도 않으신 일을 하기 때문에 혹자는 그것을 문제로 삼고, 의문시하고, 비난한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진노를 옮기시기 위하여 휩쓸고 있는 죄들을 견책하고 교정하는 부담을 지우신 이들의 앞길을 직접적으로 막는다. 아간과 같은 경우가 우리 중에 존재한다면, 잘못을 찾아내는 여호수아의 역을 맡은 이들에 대하여 사악하고 흠을 찾기 좋아하는 정신의 소유자라고 비난할 자들이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김을 당하지 않으시며, 그분의 경고는 빗나간 백성들에 의하여 무사 안일하게 무시되도록 하지 않으신다.

나는 아간의 고백은 우리들 중 어떤 이들이 그렇게 하였고, 또한 그렇게 할 고백과 유사함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고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발견해 내실 때까지 자발적으로 고백하기를 거절한다. 그들은 그 후에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릇된 길로 행하다가 결국 강퍅하게 된다. 그들은 마치 아간이 자신의 범죄 때문에 그 원수들 앞에서 이스라엘이 약화되었던 것처럼 교회가 부담을 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양심의 정죄를 느끼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저들의 교만하고 반역적인 마음을 낮추고 그 잘못을 벗어버리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교회를 평안하게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당신의 백성들 위에 있으며, 그분은 저들 중에 죄악이 존재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이들에 의해서 그것이 조장되는 한 저들 중에 당신의 능력을 나타내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교회에서 장애물을 없애고 서글픈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서 일하는 이들, 그리하여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죄에 대해 공포를 느껴야 할 필요성을 깨닫게 하고 순결한 중에 번영하도록 하며, 하나님의 이름이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는 자들은 비 헌신적인 이들로부터 저항하는 영향력을 만나게 될 것이다. 스바냐는 다음과 같이 이러한 부류들의 진정한 상태에 대해서와 그들에게 임할 무서운 심판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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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무릇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습 1:12).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 하였음이라 또 그들의 피는 흘리워서 티끌같이 되며 그들의 살은 분토같이 될지라 그들의 은과 금이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능히 그들을 건지지 못할 것이며 이 온 땅이 여호와의 질투의 불에 삼키우리니 이는 여호와가 이 땅 모든 거민을 놀라게 멸절할 것임이니라” (습 1:14-18).

너무 늦은 고백

분명히 위기가 닥쳐올 터인데, 최종적으로 그 위기가 닥쳐올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말씀하신다. 흑암의 그늘 역할을 한 이들,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위해서 역사 하실 때 그 정반대편에 섰던 이들은 사업에 대해 불평하고 절망을 안겨 준 데 대하여 자세히 경고를 받을 것이다. 그리고 마치 아간처럼 두려움에 질려 자기가 죄를 지었음을 시인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고백은 너무 늦었으며, 비록 하나님의 일을 수월하게 할 수 있도록 할지라도 스스로에 대해서는 유익이 없는 부류의 것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이들은 자신의 진정한 상태에 대한 각성과 자신의 길이 하나님께 얼마나 불쾌한 것이었는가에 대한 인식때문에 고백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또 다른 시험과 또 다른 입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실 수 있는데, 이들은 고백을 하기 전과 비교하여 볼 때 전혀 나은 것 없이 반역과 죄에 가담해 있음을 드러낼 것이다. 그들은 언제나 잘못된 편으로 기울어진다. 그리하여 옳은 것을 옹호하기 위해 결정적인 행동을 취함으로 주님 편에서라는 호소가 그들에게 주어질 때, 그들은 자신의 참된 위치를 드러낼 것이다. 아간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성령과는 전혀 관계없는 정신에 의해 거의 한 평생을 지배받아 온 이들은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 행동이 요구되는 시간이 이르러 올 때 매우 수동적이 될 것이다. 그들은 어느 편에도 서 있다고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사단의 권세는 그들을 너무 오랫동안 붙잡았으므로 그들은 눈멀고,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일어설 의향이 전혀 없다. 만일 그들이 그릇된 편을 고집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바로 그들에게 의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감히 그렇게 할 엄두가 나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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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경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신다. 진정한 색깔이 바람에 휘날리게 되는 것은 쟁투의 때이다. 그 때가 되면 깃발을 든 이들은 굳건히 서서 자신의 진정한 위치를 알리게 된다. 그 때에 의에 편에 선 진실된 모든 용사들의 기술이 시험을 받는다. 기피자는 결코 승리의 월계관을 쓸 수가 없다. 진실되고 충성을 다 바치는 인물들은 사실을 숨기지 않을 것이며, 뜻과 힘을 사업에 쏟을 것이며, 전쟁이 제대로 되도록 모든 것을 무릅쓰고 싸움 속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미워하시는 하나님이시다. 또한 “그대는 평안하다” 라고 말하며 죄인들을 격려하는 이들을 하나님께서는 저주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에게 평안함을 줄 수 있는 올바른 때에 한 죄의 고백은 하나님께 가납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중에는 자신을 구원하기에는 너무 늦게 된 후에야 고백을 할 자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증명하시고자 다른 시련을 허락하신다. 이는 당신의 백성에게 그들이 한 가지 시험, 하나님께 인정함을 받는 한 가지에 실패했음을 알려 주시기 위함이다. 그들은 올바른 것과는 조화되지 않는다. 그들은 마음에 닿는 곧은 증언을 무시하고, 견책을 하는 이를 모든 사람이 침묵시키고자 하는 것을 보기를 즐거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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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야가 아합을 꾸짖음

이스라엘 백성은 서서히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을 상실해 갔으며, 결국 여호수아를 통해서 주신 그분의 말씀은 저들에게 완전히 그 무게를 상실하였다. “그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였는데 저가 그 터를 쌓을 때에 맏아들 아비람을 잃었고 그 문을 세울 때에 둘째 아들 스굽을 잃었으니 여호와께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로 하신 말씀과 같이 되었더라” (왕상 16:34).

이스라엘이 배도하고 있을 때에, 엘리야는 하나님의 충성되고 진실된 선지자로 남아 있었다. 그의 충성스러운 영혼은 불신과 불경건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이 하나님으로부터 신속히 분리되어 나가는 것을 볼 때에 크게 괴로웠으며,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여 주시기를 기도드렸다. 그는 주님께서 당신의 범죄한 백성을 전적으로 내버리시지 않기를 간청하되, 만일 필요하다면 그분께서 심판을 통하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며, 더욱 큰 죄 가운데 그들이 빠져들어 감으로 하나님을 격분시켜 한 민족으로서의 그들을 멸망시키도록 하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다.

이스라엘의 범죄로 인해 위협적인 심판의 기별을 갖고 아합에게로 가라는 주님의 기별이 엘리야에게 임하였다. 엘리야는 주야로 여행하여 아합의 궁에 도착하였다. 그는 허가를 요청하지도 않았고, 공적으로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지도 않았다. 매우 갑작스럽게 아합에게 나타나서 엘리야는 주로 선지자들이 입는 거친 복장으로 놀라움 가운데 빠진 사마리아의 왕 앞에 섰다. 그는 초청도 받지 않고 자기가 갑작스럽게 나타난 것에 대하여 전혀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손을 하늘로 치켜 올리고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천지를 지으신 분을 빌어 이스라엘에 심판이 임하게 될 것을 엄숙하게 선언하였다.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왕상 17:1).

이스라엘의 죄로 인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무서운 통고는 배도한 왕에게 벼락과 같았다. 그는 놀라움과 공포로 마비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그가 두려움에서 회복되기도 전에 엘리야는 자기의 기별의 효과를 보기 위하여 기다리지도 않고 왔던 때와 마찬가지로 갑자기 사라져버렸다. 그의 사업은 하나님께로부터의 저주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었으며, 그는 즉시로 물러났다. 그의 말은 하늘 창고를 잠궜으며, 그의 말만이 그것을 다시 열 수 있는 유일한 열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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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 중에서는 당신의 종이 결코 안전하지 않을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배도한 이스라엘을 신뢰하실 수 없으셨으며, 그리하여 이방 국가 속에서 피난처를 찾도록 그를 보냈다. 그분은 과부 여인, 곧 지극히 적은 양으로 겨우 연명하는 여인에게 그를 보내셨다. 자기가 받은 최선의 빛을 따라 살아가는 이방 여인은 특별한 특권과 큰 빛을 받았으되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주신 빛대로 살아가지 않는 이스라엘의 과부들보다도 더욱 가납받을 만한 상태 가운데 있었다. 히브리인들이 빛을 거절하였을 때, 그들은 흑암 가운데 남겨졌고,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분노를 격발시킨 당신의 백성들 중에 당신의 종을 의탁하실 수 없으셨다.

이제 배도한 아합과 이교도 이세벨은 저들의 신들의 능력을 시험하고, 엘리야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해 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수백명에 달하였다. 그들 모두를 대항해서 엘리야 홀로 섰다. 그의 말은 하늘을 잠궜다. 만일 바알이 우로를 줄 수 있고 식물들로 풍성하게 할 수 있다면, 만일 그가 하늘 소나기를 간직한 하늘 창고와는 별개로 독립하여 이전처럼 시냇물이 흐르게 할 수 있다면, 이스라엘의 왕은 그에게 결백할 것이며, 백성은 그가 하나님이라고 말할 것이었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다. 아합에 대한 사명,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두려운 선포를 그에게 전하는 일에는 용기와 믿음이 필요하였다. 사마리아로 가는 길에 그는 언제나 흐르는 시냇물, 푸르름으로 단장한 산들, 굳건하고 울창한 나무로 차 있는 숲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이 머무는 모든 곳마다 아름다움과 영광으로 차고 넘쳤으며, 그것들은 자연스럽게 불신을 시사하였다. 어떻게 천연계 속에 있는 이 모든 것, 현재 이렇게 풍요로운 것들이 가뭄으로 타 버릴 수 있단 말인가? 한번도 말라 본 사실이 알려지지 않은 온 땅을 적시는 이 물줄기들이 메마를 수 있겠는가? 그러나 엘리야는 불신을 간직하지 않았다. 그는 자기의 목숨을 무릅쓰고 그의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나아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배도한 백성들을 겸비하게 하실 것이며, 당신의 심판을 내리심으로 저들을 수치와 회개로 이끄실 것임을 온전하게 믿었다. 그는 모든 것을 무릅쓰고 자기 앞의 사명을 위해 나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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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합이 엘리야의 말로 인한 두려움으로부터 어느 정도 회복되었을 때, 선지자는 사라져 버렸다. 그는 부지런히 그에 대해 알아보았지만, 아무도 그를 본 적이 없으며, 그에 관해서 어떤 정보도 제공할 수 없었다. 아합은 이세벨에게 엘리야가 자기 앞에서 발한 저주의 말에 대해 알려주었으며, 선지자에 대한 그녀의 증오는 바알의 선지자들에게 표시되었다. 그들은 그와 함께 여호와의 선지자를 공공연하게 비난하고 저주하였다. 선지자의 위협적인 기별은 온 땅에 퍼져 나가 어떤 이들에게는 공포를 많은 사람들에게는 분노를 일으켰다.

수개월 후에 우로로 신선함을 누리지 못하는 땅은 메마르고, 식물은 시들게 되었다. 결코 흐르기를 중단한 사실이 알려진 바 없는 냇물들과 도랑들은 바짝 말라 버렸다. 이세벨의 선지자들은 저들의 신들에게 제사를 드리면서 우로를 내려 땅을 새롭게 해주기를 저들에게 주야로 부르짖었다. 그러나 백성들을 속이기 위하여 이전에 사용했던 주문과 기만은 지금 그 구하는 바에 대해 응답하지 않는다. 제사장들은 저들의 신들의 진노를 달래기 위해서 갖은 짓을 다하였다. 좀더 훌륭한 일을 위해서 바쳐졌어야 할 인내와 열성을 갖고 그들은 이교의 제단들 주변에서 맴돌았으며 동시에 모든 산당에서는 희생의 불꽃이 타올랐고, 바알 제사장들의 두려운 부르짖음과 탄원이 저주받은 사마리아 전역에서 밤마다 들려왔다. 그러나 타는 듯한 햇빛을 차단할 구름은 나타나지 않는다. 엘리야의 말은 굳건히 효력을 발하고 있으며 바알의 제사장들이 할 수 있는 그 어떤 것도 이것을 변경시킬 수 없을 것이다.

한 해가 완전히 지나가 이듬해가 시작되었지만, 아직도 전혀 비는 내리지 않는다. 땅은 불이 그 위를 휩쓸고 지나간 것처럼 바짝 말랐다. 풍요로웠던 들판은 찌는 듯한 사막처럼 되었다. 공기는 건조하고 질식할 것만 같았으며, 먼지 폭풍 때문에 눈은 멀고 거의 숨조차 쉴 수 없게 되었다. 바알의 수풀들은 잎사귀 하나 없게 되었으며, 숲속의 나무는 전혀 그늘을 마련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해골처럼 보였다. 굶주림과 갈증이야말로 사람과 짐승들에게 두려운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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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에 대한 이 모든 증거도 이스라엘로 하여금 회개하게 하지 못하였다. 이세벨은 제정신을 잃고 광기로 가득 찼다. 그는 하늘의 하나님께 굽히거나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 바알의 제사장들, 아합, 이세벨,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재앙에 대해 엘리야를 비난하였다. 아합은 각 왕국과 민족으로 이상한 선지자를 찾으러 보냈으며, 왕국들과 이스라엘 민족들에게 그들이 그에 대해 알지 못한다는 맹세를 하게 하였다. 엘리야는 그의 말로 하늘을 잠궈 버렸으며, 그 열쇠를 갖고 사라져 버려 어디서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자 이세벨은 엘리야에게 자기의 살인적인 힘을 맛보여 줄 수 없었음으로 이스라엘에 있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죽여 버림으로 복수를 자초하리라고 결정하였다. 하나님의 선지자라고 공언하는 사람은 아무도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이 단호하고 분노로 불타는 여인은 주님의 선지자들을 살육하는 미친 짓을 저질렀다. 바알의 제사장들과 거의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만일 하나님의 선지자들이 살육된다면, 저들이 겪고 있는 재난은 바뀌어질 것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완전히 기만을 당하였다.

그러나 두 번째 해도 지나갔으며, 무심한 하늘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다. 가뭄과 기근이 그 서글픈 작용을 하고 있으되, 배도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들의 교만하고 죄된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들은 그들에게 이 무시무시한 상태를 초래한 하나님의 선지자에 대하여 불평과 불만을 토한다. 부모들은 저들의 자녀들이 죽어가는 것을 보되 그들을 구할 힘이 전혀 없다. 백성들은 그렇게 무서운 흑암 가운데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공의가 저들에게 발해진 것은 저들의 죄 때문이라는 것과, 또한 저들의 열조의 하나님을 완전히 부인하고 떠나가는 일로부터 저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자비하심 가운데 이 두려운 재앙이 저들에게 임했음을 깨달을 수가 없다.

저들의 상실된 믿음과 하나님께 대한 명백한 책임감을 회복하는 데 필요한 회개에 이르기 위해서 이스라엘은 고통과 큰 고난을 겪었다. 그들의 배도는 가뭄과 기근보다도 훨씬 더 두려웠다. 엘리야는 저들의 고난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마음이 우상숭배로부터 하나님께 대한 충성으로 돌아서기를 믿음으로 기도하며 기다리는 중에 기나 긴 가뭄과 기근의 세월을 보냈다. 그러나 그들의 모든 고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우상숭배 가운데 굳건히 서서 하나님의 선지자를 재앙의 원인으로 간주하였다. 만일 저들이 엘리야를 그 힘대로 할 수 있었다면, 그들은 그를 이세벨에게 넘겨주어 그로 하여금 엘리야의 생명을 취하여 복수로 만족을 채우게 하였을 것이다. 엘리야가 하나님께서 그에게 명하신 진노의 말씀을 전하였기 때문에 그는 저들의 증오의 표적이 되었다. 그들은 자신의 죄 때문에 겪는 심판 속에서도 하나님의 손을 분간할 수 없었다. 그들은 채찍질 아래로 저들을 데려온 죄들에 대해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충성스러운 선지자, 그들의 죄와 재앙을 선포한 하나님의 도구를 증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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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날을 지내고 제 삼년에 여호와의 말씀이 엘리야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너는 가서 아합에게 보이라 내가 비를 지면에 내리리라” (왕상 18:1). 엘리야는 그의 위태로운 여행을 출발하는 것을 지체하지 않았다. 3년간 그는 미움을 받았으며, 왕의 명령에 따라 이 도시 저 도시에서 추격을 받았고, 온 국가는 그를 발견할 수 없다는 맹세를 해야 하였다. 그런데 지금,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그는 아합 앞에 몸을 드러내어야 했다.

온 이스라엘이 배도했던 기간에 아합의 궁내 대신은 그 주인이 바알의 경배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충성을 나타내었다. 자기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면서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50명씩 굴 속에 숨기고 그들을 먹였다. 아합의 종이 모든 물 근원과 시내를 찾고 있을 때 엘리야가 그의 앞에 나타났다. 오바댜는 하나님의 선지자를 존경하였지만 엘리야가 왕에게 보내는 기별을 그에게 주었을 때, 그는 크게 두려워하였다. 그는 자기뿐만 아니라 엘리야에게 사망의 위기가 닥친 것을 알았다. 그는 자기 생명이 희생되지 않도록 열렬히 간구한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가 그 날 아합을 볼 것이라고 맹세로 그에게 보증한다. 선지자는 아합에게 갈 것이 아니라 존경을 요구하는 하나님의 기별자 중 한 사람으로서 오바댜를 통해 “엘리야가 여기 있다” 는 기별을 보낸다. 만일 아합이 엘리야를 보기 원한다면, 이제 그가 엘리야에게 나아 올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다. 엘리야가 아합에게로 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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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과 공포에 질린 채로 왕은 자기가 두려워하고 미워하는 엘리야가 자기를 만나기 위해서 오고 있다는 기별을 듣는다. 그는 오랫동안 그 선지자를 죽이기 위해서 애를 써 왔던 터라 엘리야가 보호를 받거나 어떤 무시무시한 경고의 기별을 갖지 않는 한, 목숨을 걸고 자기에게 나오지 않을 것임을 안다. 그는 여로보암의 말라 버린 팔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기별자에 대해 그 손을 들어올리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고 결정한다. 그는 두려움과 떨림으로 큰 무리의 수행원들과 위압적인 군대를 데리고 엘리야를 만나러 급히 나간다. 그가 오랫동안 찾았던 그 사람을 대면하게 되었을 때, 그는 감히 그를 해칠 생각을 하지 못한다. 엘리야에 대하여 그토록 강렬한 적개심에 불타 오른 왕은 그의 앞에서 무능해지고 용기를 잃은 것처럼 보인다. 그가 선지자를 만날 때 그는 마음 속에 있는 말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여, 네냐” (왕상 18:17). 하나님의 명예와 영광에 대한 열성으로 분노한 엘리야는 아합의 비난에 대하여 담대하게 대답한다. “내가 이스라엘을 괴롭게 한 것이 아니라 당신과 당신의 아비의 집이 괴롭게 하였으니 이는 여호와의 명령을 버렸고 당신이 바알들을 좇았음이라” (왕상 18:18).

하나님의 기별자로서 선지자는 백성의 죄를 꾸짖고 저들의 사악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을 저들에게 선포하였다. 지금 의식적인 결백과 굳건한 순수성을 지키고 무장한 군사들에게 둘러싸인 채로 홀로 서 있는 엘리야는 전혀 비겁함을 보이지 않았으며, 또한 왕에게 조금도 경의를 표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대화하셨던 인물, 죄된 타락 속에 있는 인간에 대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여기시는지 분명하게 의식하고 있는 인물은 아합에게 사과하거나 그에게 경의를 표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사자로서 엘리야는 지금 명령하며, 아합은 마치 엘리야가 군주요 자기가 신복이라도 된 것처럼 단번에 순종한다.

교회증언 3권 pp. 26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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