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229-238(164일)

교회를 주관하는 것이 복음 교역자의 사업이 아니라, 오히려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낮추고, 오래 참음과 교훈의 말씀으로 권하고, 견책하고, 책망하는 것이다. 앞의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그대의 과거의 삶은 어떠했는가? 그대는 거의 전 생애를 이기적 성향을 계발시키며 지냈다. 그대는 강하고 고집 센 여성과 결혼하였다. 그녀의 본성적 성향은 극도로 이기적이었다. 그대들 모두는 자아를 사랑하는 자였으며, 그대들의 관심사가 합해졌을 때 그것은 서로에게 도움이 된 것이 아니라 모두에게 위기를 증가시켰다. 그대들 중 아무도 양심적이지 않았으며, 아무도 최고의 의미에서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았다. 자아에 대한 사랑과 자기만족이 지배 원리가 되어 왔다. 그대 두 사람은 하나님께 거의 헌신하지 않았으므로 서로 간에 유익을 끼칠 수 없었다. 그대들은 스스로의 길을 원하였다. 각자는 사랑을 받고, 칭송을 받고, 섬김을 받기를 원했다.

주님께서는 그대의 위험을 보셨으므로 시시때때로 증언의 말씀을 통해서, 그대가 자아에 대한 사랑을 정복하고 그대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일치시키지 않는 한 그대의 영원한 이익은 위험에 처할 수밖에 없다는 경고를 그대에게 보내셨다. 만일 그대가 주님께서 주시는 권고와 경고에 유의하고, 그대가 돌이켜 전적으로 방향을 바꾼다면, 그대의 아내는 현재 원수의 올무 속에 있지 않을 것이요, 하나님을 떠나서 사단의 강력한 기만을 믿는 지경에 있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서 주신 빛을 따랐다면, 그대는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현재 그대가 행하는 것보다도 열 배나 많은 일을 성취할 만큼의 자격을 갖춘 강하고 능률적인 일꾼이 되었을 것이다. 그대는 빛을 간직하는 일에 실패함으로 연약해졌다. 그대는 낯선 자와 참 목자의 음성을 구별하는 데 약간의 시간밖에 쓸 수 없었다. 그대가 빛 가운데 행하기를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흑암이 그대에게 닥쳐왔고, 그대의 양심은 자주 범죄함으로 말미암아 마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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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아내는 주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그에게 보내신 빛을 믿고 따르지 않았다. 그는 견책을 멸시하였으며, 그에게 충고와 경고의 말씀을 주시는 주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문을 닫아 버렸다. 사단은 즐거워했으며, 사단이 그녀의 신뢰를 얻을 수 있는 길을 막을 만한 것은 모두 사라졌고, 쾌락을 자극하고 아첨하는 기만을 통해 사단은 그를 포로로 삼아 자기 뜻대로 움직일 수 있게 되었다.

주님께서는 그대의 아내가 그대의 수고에 장애물이라는 것과, 그녀가 회심한 여인으로 그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를 그대가 얻게 될 때까지는 그녀를 함께 데리고 다니지 말라는 증언을 그대에게 주셨다. 그때에 그대는 집을 마련하기 위해 간구할 구실을 얻게 되었다고 느꼈다. 그대는 이 증거를 구실로 삼아 이것에 따라 일하였는데, 사실상 그대에게는 스스로의 집이 전혀 필요 없었다. 그대의 아내는 그가 전 생애 동안 등한시 해 온 부모를 위해 행해야 할 의무가 있었다. 만일 그녀가 오랫동안 소홀히 해 온 이 의무를 기쁜 마음으로 행했더라면, 그는 사단의 뜻대로 움직이고, 사단을 섬기기 위해 마음과 영혼을 더럽힌 포로의 상태에 현재 놓여져 있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가 집 한 채를 원하는 것은 다른 많은 가상적 필요처럼 상상에 불과하다. 그대는 스스로의 이기심대로 집을 구했으며, 그대의 아내를 편안하게 지낼 수 있도록 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를 위해 마지막 시험을 준비하고 계셨다. 그녀의 어머니가 아프다는 사실은, 만일 그녀의 마음이 이기심 때문에 낙인이 찍히고 무디어지지 않았다면, 그녀의 마음 속에 자연스럽게 동정심을 일으킬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러한 섭리까지도 고통을 겪고 있는 어머니에 대해 딸의 효도의 정신을 일깨우는 데는 실패하였다. 그는 참을 수 있도록 집에서 돌보아 주는 이 하나도 없이, 사랑과 염려를 함께 나눌만한 자녀라고는 하나도 없이 자신을 불쌍하다고 여기면서 지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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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아버지의 나이와 힘으로는 이러한 염려의 부담을 지기에는 너무 벅찼다. 따라서 그도 심한 고통으로 쓰러지고 말았다. 그렇다면 바로 그때에 한 점의 양심이라도 그 마음에 있었던들, 그 딸은 자기 자매와 그 남편의 부담을 함께 짊어져야 할 의무가 있다고 느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모른 체하였고, 할 수 있는 한 염려와 부담을 회피했으며, 그 마음은 돌처럼 거의 요지부동이었다.

부모 곁에 있으면서도 그토록 무관심하다는 것은 그에게 거스리는 것이었다. 그는 형편을 자기 남편에게 전하였다. R 형제도 그 아내처럼 이기적이었으며, 그는 아내가 자기에게 긴급히 오도록 하였다. 이런 행위를 보았을 때, 부드럽고, 동정심과 사랑이 많은 수종드는 하나님의 천사들은 어떠했을까? 그 딸은 기꺼이 부담에 눌린 자기의 자매와 짐을 나누어 지는 것이 도리임에도 불구하고, 그 일을 다른 이들에게 떠맡겼다. 천사들은 놀라움과 슬픔으로 이 장면을 바라보았으며, 이 이기적인 여인으로부터 돌아서 버렸다. 악한 천사들이 이 자리를 채웠으며, 그는 사단의 뜻대로 움직이는 포로가 되어 버렸다. 그는 사단의 대리인이었으며, 그 남편에게 큰 장애물임을 입증하였다. 그 남편의 수고는 거의 무가치하다.

사업이 끝마쳐지지 않았더라도 마지막 노력을 하지 않았더라면, _____ 에서의 하나님의 사업은 훨씬 높은 차원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관심이 고조되었지만, 두 번 다시 일어날 수 없을 지경에까지 가라앉아 버렸다. 나는 그대에게 요구하는데, R 형제여, 만일 오랫동안 자아를 숭배하는 우상숭배의 길을 걸음으로 말미암아 양심과 애정이 마비되지 않았다면, 앞에 인용한 그리스도의 사업과 봉사에 관한 성경 말씀을 복음의 교역자로서 그대가 수고할 때 취하는 행동 노선과 비교해 보라. 특히 내가 오해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언급한 의무와 비교해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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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부모를 도움이 필요로 되는 때에 고통 가운데 내팽개쳤기 때문에, 교회는 이 부담을 지고 그리스도의 몸 중 고통당하는 지체를 돌볼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일을 소홀히 보아 넘기지 않으신다. 그것은 천사들에 의하여 기록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통해서 지극히 분명하게 규정해 놓은 효도의 의무를 정면으로 거스리는 이들을 번영케 하실 수 없다. 그대가 행한 것 이상으로 이 땅 위의 부모에 대해 더 이상 의무를 지고 있지 않다고 느끼는 자녀들은 쉽게 책임을 벗어 버릴 것이며, 또한 저들의 하늘 아버지께 적절한 존경을 드리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존중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땅 위의 부모에게 불손하고 공경심을 나타내지 않는다면, 그들은 저들의 창조주를 존경하거나 사랑하지 않을 것이다. 자기 부모를 소홀히 함으로 그대의 아내는 십계명의 다섯번 째 계명을 어겼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다. 자기 부모를 무시하고 존중하지 않는 이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줄로 여기지 말아야 한다. 우리 부모는 우리가 떨쳐 버리거나 소홀히 여길 수 없는 요구를 우리에게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어린 시절에 훈련이나 자제를 받지 않은 자녀들과, 자기 자신을 관심의 대상으로 삼도록 허용받음으로 이기적으로 안일을 탐하며 부담을 회피한 자녀들은, 무자비하게 되고 그들이 어린 때에 저들을 돌보아 준 저들 부모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는다.

R 형제여, 그대는 이 일에 이기적이었고, 책임감이 크게 결여되어 있다. 그대는 주의와 보호를 요구하면서 지냈지만, 동일한 만큼 되돌려 보내지 않았다. 그대는 이기적이고 인색하며, 자주 도리에 맞지 않고, 그대의 아내에게 시험의 기회를 안겨 주었다. 그대 모두는 헌신적이지 않으며, 놀라울 만큼 이기적이다. 그대는 진리를 위해 거의 희생하지 않았다. 그대의 아내는 물론 그대도 짐을 회피해 왔으며, 가능한 한 작은 부담이라도 시도하려고 하기보다는 섬김을 받는 지위에 있으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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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은, 만일 그들이 그 형제나 친구들로부터 자선을 받게 될 때, 그 가족들을 격려하고 북돋우므로 가정에 축복을 남겨 주는 것을 뗄 수 없는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집집을 방문할 때, 목사의 의무를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모두의 영적 상태를 이해하기 위하여 가족 모두에 대해 익숙히 알아야 하며, 각자를 대할 때 수고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 세상을 향한 엄숙한 경고의 기별을 전파하는 어느 목회자가 친구들과 형제들로부터 따뜻한 환대를 받을 경우, 그가 목 자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말과 행실에 부주의하여 젊은이들로 더불어 사소한 대화에 참여하고, 익살을 떨고, 농담을 말하고, 웃기기 위해서 우스꽝스러운 일화를 언급한다면, 그는 복음 교역자가 되기에 무가치하며, 양무리를 책임지기 전에 먼저 회심해야 할 필요가 있다. 충성스러운 목사 위에 얹혀진 의무를 등한히 하는 목회자는 저들이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진리에 의해 스스로가 성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를 내보이는 것이며, 저들이 그리스도의 교역자로서 사업의 신성성을 크게 인식할 때까지 주님의 포도원의 일꾼으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

오직 저녁 집회밖에 없을 경우에는 집집을 방문하여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 그들을 만날 수 있는 큰 유익을 위해 많은 시간을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리스도의 목회자들이 성령의 은혜를 소유했다면, 만일 그들이 위대하신 모본자를 본받는다면, 그들은 심령에 접근하게 될 것이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게 될 것이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파하는 어떤 목회자들은 이것과는 거리가 너무 멀다. 그들은 갖고 있는 기회를 활용하여 자신의 모범적인 행실, 타인의 유익을 위한 비 이기적 관심, 친절, 인내, 온유한 마음, 공손한 태도 등으로써 불신자들의 신임을 얻는 데 사용하지 않는다. 이러한 성령의 열매는 가정에서의 개인적 노력이 결여된 책상 앞의 설교보다도 훨씬 크게 영향력을 끼친다. 그러나 백성들에게 시험하는 진리를 일목 요연하게 설교하고, 강단에서의 노력을 지원하기 위해 개인적으로 집집을 방문한다면, 선을 위한 감화력은 크게 늘어나서 영혼들이 진리로 회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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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어떤 목회자들은 너무 가벼운 책임을 지고 개인적인 염려와 부담을 회피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그들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과 우리의 믿음이 저들에게 지기를 요구하는 부담을 그들이 짊어졌더라면 구했을 하나님으로부터의 도우심을 받아야 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이 사업에 부담을 짊어져야 할 경우, 또한 그것을 짊어진 이들이 곧바른 길로 나아가는 경우, 그들은 하나님과 가까이하는 삶의 필요성을 느낄 것인데, 이는 확신을 가지고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의탁하며, 오로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는 도우심을 믿음으로 요구하기 위해서이다. 그때에 그들은 믿음과 신뢰 속에서 한 체험을 하게 될 것인데, 그것은 복음의 목회자에게 최고의 가치를 지녔다. 그들의 사업은 목사들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보다도 훨씬 더 엄숙하고 신성하다. 그들은 거룩한 감화력을 지니고 다녀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는 목회자들이 그분의 사업에 대해 열성을 내는 사람들이기를 바라신다. 그들의 사업의 짐은 영혼 구원이어야 한다. R 형제여, 그대는 선지자 요엘이 증거하는 것처럼 느끼지 않고 있다. “여호와께 수중 드는 제사장들은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이르기를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지 마소서” (욜 2:17).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 (시 126:5, 6).

R 형제여, 나는 그대의 수고한 길이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와 얼마나 현저한 차이가 있는지를 보게 되었다. 그들은 말과 행실에 부주의하다. 양들이 목자를 위해 심려해야 하는 짐을 지게 되었고, 자신의 직분을 받아들임으로 자기가 하나님의 대변자임을 시인한 저들 목자의 부주의한 길에 대해 경고하고, 견책하고, 권면해야 하는 일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가련한 양들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보다도 더욱 많이 자기 자신을 돌보기 위해서 노력한다. 그대는 영혼들을 위해 부담을 느끼고 있지 않다. 그대는 죄인들이 회심할 수 있도록 그 영혼들을 위해 눈물로 기도하면서 일터로 나가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이런 일을 했다면, 많은 날 후에 솟아나서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열매를 맺게 되었을 것이다. 가정들과 함께 난로 곁에서 대화하고 기도하는 일을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그대는 부지런히 시간을 아껴 일해야 한다. 그대는 유용한 일을 통해서 책임을 감당할 수 있도록 스스로를 훈련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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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 부부가 안일을 덜 추구하고, 연구와 아울러 육체적 노동을 겸했더라면, 그대들은 교대로 앓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더욱 쾌활하고 행복하게 지냈을 것이다. 그대의 근육은 가만히 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용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덴의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셨다. 그러나 하늘 아버지께서는 저들의 행복을 유지하는 데 일이 필요함을 아셨다. R 형제여, 만일 그대가 하루 중 얼마만큼의 시간을 연구와 더불어 손으로 하는 노동을 함으로써 근육을 사용하고자 한다면, 그대의 마음은 훨씬 더 잘 균형을 유지할 것이며, 그대는 더욱 자연스럽고 건강하게 잠을 잘 수 있을 것이다. 그대의 머리는 두뇌가 막힘으로 말미암아 혼란이 되거나 멍해지지 않을 것이다. 신령한 진리에 대한 그대의 생각은 더욱 명료해질 것이며, 그대의 도덕력은 더욱 활발해 질 것이다. 그대는 노동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날마다 더욱 많은 육체 운동을 하는 것이 그대에게 유익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느릿느릿한 혈액을 건강하게 움직이도록 활성화할 것이며, 그대를 불만과 허약에서 벗어나게 할 것이다.

그대는 부지런한 연구를 등한히 하지 말아야 하되 하나님께서 빛을 베풀어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대의 명철을 여셔서 당신의 말씀의 보화를 파악할 수 있게 해 주심으로 모든 선한 일을 행할 수 있도록 구비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 그대는 자신의 약점을 극복하기 위해 경성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는 일이 필요 없는 지경에 결코 서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아가 시야에서 사라지도록 끊임없이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대는 자신을 매우 두드러지게 하는 일과 가족적 난관과 그대의 허약한 건강에 생각을 집중시키는 일에 습관들여져 있다. 한마디로 말해서, 그대 자신이 그대의 대화의 주제이며, 그대 자신이 그대와 그대의 구주 사이에 들어가 있다. 그대는 자아를 잊고 예수님 뒤로 숨어야 한다. 귀하신 구주께서 존귀를 받으셔야 하며, 자아는 시야에서 사라져야 한다. 그대가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 느낄 때, 그대는 자신 속에 주목하거나 지적할 만한 가치가 있는 어떤 것이 있음을 볼 수 없다. 그대가 주제를 제시하기 전에 둘러대는 서론들 때문에 백성들은 지쳤을 뿐 아니라 진력을 느끼게 되었다. 백성들에게 그대의 가족적 시련에 대해 말하고 언급할 때마다 그대는 그들 사이에서 스스로의 평판을 낮추고 있으며, 그대가 전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라는 의심을 시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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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을 높이고, 백성들에게서 칭송 받기를 탐내는 목사들의 본이 그대에게 있다. 그들은 무분별한 이들에게 귀여움과 아첨을 받아 결국 자고해져서 자기 만족에 빠짐으로 스스로의 지혜를 의지하고 믿음에 파선을 당하게 되었다. 그들은 스스로의 인기가 너무 높기 때문에 어떤 길을 택하든지 그들의 인기를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에 그대의 주제넘은 면이 있다. 어떤 그리스도의 목사의 품행으로 인해 농담가들의 입에 오르내릴만한 주제가 될 수 있는 사실이 벌어지고, 또한 그의 도덕성 자체가 심각하게 의문시된다면, 그는 이것을 시기나 중상이라고 부르지 말아야 한다. 그대는 스스로의 멸망을 초래하게 될 습관을 형성하는 생각의 흐름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대가 마땅히 두려워해야 할 인물들의 길을 주목해 보고, 그 후에 그들이 걸어간 방향으로 첫 발걸음을 내딛는 일을 조심하라.

그대는 자기 만족에 빠져 있었으며, 사단에 의해 눈멀고 기만당하여 스스로의 약점과 수많은 과오를 식별할 수 없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헛된 영광을 구하여 서로 격동하고 서로 투기하지 말지니라” (갈 5:22-25).

내게는 일터가 보여졌다. 읍내와 도시와 촌락등 방방곡곡에서 경고의 기별을 들어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현대 진리의 기별에 의하여 시험을 받고 인정을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위대한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나, 이 일터로 들어가는 일꾼들은 마음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아는 건전한 판단력의 소유자들이어야 한다. 그들은 여호와 경외함을 염두에 두는 인내와 친절과 예절의 사람이어야 한다.

그대는 자주 사람들의 신임을 얻는다. 그러나 만일, 부주의한 행실이나 몇몇 신중하지 못한 움직임 때문에, 가혹하거나 지나친 관용의 정신때문에, 그들의 신임을 잃게 된다면, 전혀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것보다도 더 해로운 결과가 하나님의 사업에 초래될 것이다. 충동적으로 움직이는 목사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일에 큰 해가 미쳤다. 어떤 이들은 쉽게 격동하며, 자주 성을 낸다. 그리고, 해를 입었을 경우에는 보복을 한다. 이것이야말로 사단이 그들로 하여금 그렇게 하도록 해 놓고 기뻐 날뛰는 바로 그 일이다. 진리의 원수는 그리스도의 목사들의 이러한 약점에 대해 승리를 거두는데, 이는 이것이 현대 진리 사업에 수치가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품성적 약점을 보이는 이들은 진리를 제대로 제시하지 못하거나 우리 믿음의 목회자가 될 수 없다. 어떤 목회자의 무분별함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의심의 구름 아래에 서게 되며, 그 뒤에 오는 교역자는 큰 어려움을 겪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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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 형제여, 새 일터로 그대가 나아갈 때 그대는 논쟁하기를 좋아하는데, 이는 그대가 스스로의 마음을 이런 종류의 일을 위해 교육시켰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의 수고는 만일 그대가 백성들에게 실제적인 주제에 대해 가르칠 수 있도록 실제적인 경험을 통해 스스로 자격을 갖추었을 경우의 십분의 일만큼도 가치가 나가지 않는다. 그대는 실천적인 경건을 체험하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의 영혼 속에 진리의 구원하는 능력을 소유할 때, 그대는 하나님을 인하여 그대의 심령을 즐겁게 한 동일한 실천적인 진리들을 하나님의 양떼에게 먹이는 일을 꺼려할 수가 없다. 충분한 증거를 통해 지성적인 확신을 얻은 후에, 진리의 요구에 굴복하는 일의 중요성을 마음 속에 새겨 주기 위해서 실천적인 것과 교리적인 것이 서로 결합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종들은 저들의 수고하는 방식에서도 주님의 본을 따라야 한다. 그들은 백성들이 이해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실천적인 경건의 필요성을 끊임없이 제시해야 하며, 우리 구주께서 가르침을 통해서 그러셨던 것처럼 그들로 하여금 매일의 생애에서 신앙적 원칙과 의의 필요성을 볼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인기 있는 교회의 목사들에 의해 백성들은 양식을 얻어 먹지 못했으며, 영혼들은 영양을 공급하고 영적 생명을 주는 양식에 굶주려 있다.

그대의 생애는 겸손한 마음과 온유한 행실로 특징지어져 있지 않다. 그대는 말로는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행함과 진리에 있어서는 그렇지 아니하다. 그대의 존엄성은 쉽게 상처를 받는다. 목회자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자기 스스로의 심령속에 성화시키는 진리의 감화를 체험해야 하며, 그 후에야 그들의 강단에서의 수고는 책상을 떠난 저들의 모본에 의해 강화될 것이다. 목회자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방법으로 저들의 노력에 역사하시기 전에 부드러워지고 성화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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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영혼을 추수할 수 있는 황금과 같은 기회를 놓쳐 버렸는데, 이는 그대의 마음이 그분과 올바른 관계 가운데 있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대의 노력에 역사하시는 것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대의 심령은 순결과 거룩의 화신이신 그분 앞에서 정결하지 못하였다. 만일 그대가 심령속에 악을 품고 있다면, 주님께서는 그대의 기도를 들으실 수 없을 것이다. 우리의 하나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께서는 마음의 생각과 상상과 음모를 아신다. 그대는 스스로의 판단을 따랐으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을 때에도 서글프게 실패하고 말았다. 태만하거나 부주의하게 일을 처리하기에는 이러한 노력에 너무 많은 것이 위기에 처해 있다. 영혼들은 중요하고 영원한 진리로 시험을 받고 있으며, 그대가 말하거나 행하는 것은 그들에게 진리 편에 설 것이냐, 혹은 진리를 반대할 것이냐를 가늠하는 일에 영향을 끼칠 것이다. 그대가 영혼들의 가치와 사업의 중요성을 느끼고,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그분께서 그대의 노력에 역사해 주시기를 구해야만 했을 때, 그대는 하나님의 신성한 사업과 그리스도의 복음의 목사로서의 직무에도 불구하고 젊은 여성들과 사귀기를 선택하였다. 그대는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에 서 있다. 그렇지만 그대는 경박하고 천박한 대화와 농담하는 일에 빠져 버렸다.

어떻게 수종드는 천사들이 그대 주위를 감싸고 그대에게 빛을 비추어주며, 그대에게 능력을 나누어 줄 수 있겠는가? 그대가 오류와 흑암 속에 빠져 있는 이들의 마음을 밝히기 위하여 수단과 방법을 찾아야만 할 때, 그대는 스스로를 즐겁게 하며, 너무 이기적이 되어서 의향도 애정도 없는 그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만일 탐구하고 있는 이들에 의해 우리의 입장이 비평을 받는다면, 그대는 그들에 대하여 거의 참지를 못한다. 그대는 마치 그들에게는 면밀히 탐구해야 할 자격이 없고 진리로 제시하는 모든 것을 스스로 검토해 보는 일도 없이 무작정 받아들여야만 하는 것처럼, 자주 간단하고 가혹하게 대답해 버린다. 그대는 목회 활동을 통해서 사람들을 취급하는 방식 때문에 많은 영혼들로 하여금 진리에서 돌아서게 하였다. 그대가 언제나 조급하고 접근하기 힘든 사람인 것은 아니다. 좋다고 느끼면 그대는 시간을 내서 분명하게 질문에 답한다. 그러나 자주 그대는 예의가 없고 엄격하며, 어린아이처럼 토라지고 성을 내기를 잘한다.

교회증언 3권 pp. 22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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