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219-228(163일)

골리앗은 다윗이 전술이라고는 배워 본 적이 없는 젊은이에 불과한 외모였기 때문에 다윗을 경멸하였다. 골리앗은 다윗을 야유하고 자기의 신들의 이름으로, 그를 저주하였다. 그는 갑옷도 입지 않고 단지 풋내기에 불과한 자가 자기와 싸우려고 다가오자 자기 체면에 모독을 가한 것으로 여겼다. 그는 다윗에게 어떻게 할지를 과시하였다. 다윗은 그토록 형편없는 인물로 여겨졌다고 해서 격분하지 않았으며, 또한 그의 무시무시한 위협 앞에 두려워 떨지도 않았다. 다윗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 17:45). 다윗은 골리앗에게, 골리앗이 다윗에게 행하기로 협박한 바로 그 일을 여호와께서 당신의 이름으로 그에게 행하실 것이라고 말한다.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7).

우리 목회자들은 토론에 도전하거나 촉발시키지 말아야 한다. 진리의 대적자들 편에서 도전하게 하라. 내게 보여진 바로는 K 형제와 다른 목회자들이 골리앗 역을 너무 많이 해내고 있다. 또한 그들이 감히 토론을 벌여 놓은 다음에는 마치 사울이 다윗으로 하여금 그의 갑옷을 신뢰하도록 하려던 것처럼 미리 준비해 놓은 논증을 신뢰한다. 그들은 겸비한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았으며, 그분을 저들의 힘으로 삼지도 않았다. 그들은 마치 골리앗처럼 자신을 갖고 뻐기면서 나아갔으며, 예수님 뒤에 숨지 않고 자신을 높였다. 그들은 진리가 강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렇기 때문에 그 마음을 낮추지 않고, 하나님께서 진리로 하여금 승리하게 해주시기를 믿음으로 그분께 의탁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고하였으며, 그 균형을 상실했다. 또한 자주 토론이 성공을 거두지 못했고, 그 결과는 자신의 영혼뿐 아니라 타인의 영혼들에게까지 해를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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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보여진 바로는 우리의 젊은 목회자들 중 어떤 이들은 토론에 대한 정열을 갖고 있는데, 그들이 자신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한, 그것은 저들에게 올무가 될 것이다. 내게는 L 형제가 큰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이 보여졌다. 그는 자기 마음을 그릇된 방향으로 훈련하고 있다. 그는 사업의 단순성으로부터 빠져 나갈 위험 속에 처해 있다. 그가 사울의 갑옷을 입게 될 때, 만일, 다윗처럼 스스로 효능을 입증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벗어 버릴만한 지혜가 있다면, 그는 너무 멀리 빗나가기 전에 회복이 될 것이다. 이 젊은 설교자들은 이론적인 것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실제적인 가르침을 연구해야 하며, 또한 예수님께 배워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은 그분의 은혜, 그분의 온유, 그분의 겸손과 정신적 겸비를 갖추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다윗처럼 하나님의 사업 때문에 이스라엘의 대적을 만나기 위해 나아가는 일이 정말로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는 지점에 이르게 된다면, 또한 만일, 그들이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의지하면서 그분의 힘으로 나아간다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끝까지 인도하실 것이며, 그분의 진리가 영광스런 승리를 얻게 하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모본을 끼치셨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하였거늘” (유 9).

설교자가 목사의 본연의 위치에서 내려와 희극의 한 장면 속에서 그러는 것처럼 그 대적자를 웃음거리로 만들어 버린다면, 혹은 그가 독설적이고 날카로운 인물이 되어 그를 야유한다면, 세상의 구주께서도 감히 행하시지 않은 일을 행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가 자신을 원수의 수중에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반대하는 이들과 논쟁을 벌이는 목회자들은 단순히 인간만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의 무리와도 싸우게 된다. 사단은 진리를 옹호하는 목사들을 이용할 수 있는 기회를 노리고 있으며, 그들이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신뢰를 중단하게 될 때, 또한 저들의 말이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랑에 의해 이루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들에게 능력을 더해 줄 수 없으며, 또한 그들을 계몽할 수도 없다. 그들은 저들 스스로의 능력으로 행하도록 저들을 떠나며, 악한 천사들이 흑암 가운데로 몰려온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진리의 반대자들은 때때로 이익을 얻는 것처럼 보이며, 토론은 실제적인 선보다는 더욱 많은 해를 끼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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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들은 그분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K, L, M, N 형제는 토론에 대한 사랑을 격려하기보다는 개인적인 경건 연마에 애를 써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의 감정을 휘어잡음으로 흥미를 자아내는 데 익숙해지기 위해 애쓰기보다는 양떼의 목자가 되기 위해 애써야 한다. 이 형제들은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일꾼이 되어 온유하게 헌신적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 그분의 조력자가 되는 것을 바라기보다는 영특한 토론자로서 백성들로부터 인기와 성공을 거두는 일에 더 기대는 위험 속에 빠져 있다.

24 장 — 청년들의 위험과 의무

두 청년에게 전한 기별

지난 12월 내게 청년들의 위험과 유혹에 대한 것이 보여졌다. O 씨집의 두 어린 아들들은 회심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아에 대해 날마다 죽어야 할 필요가 있다. 충성스러운 사도 바울은 날마다 신선한 체험을 하였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 말한다. 이것은 이 청년들에게 필요한 바로 그 체험이다. 그들은 현재의 의무를 무시하고 실제적인 생애에 필수적인 교육을 등한히 할 위험 속에 빠져 있다. 그들은 인생에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책만의 교육이 주목할 만한 전적인 중요성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 청년들은 가정에서의 의무가 있는데, 그들은 이것을 무시한다. 그들은 마땅히 자신이 감당해야 할 의무와 가정적 책임을 짊어지는 것에 대해 배우지 않았다. 그들에게는 충성스럽고 실천적인 어머니가 있는데, 그는 그 자녀들로 인해 짊어질 고통의 필요가 없었던 수많은 짐을 짊어지고 있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저들의 어머니를 공경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아버지의 짐을 자신의 의무로서 짊어지지 않았으며, 아버지를 공경해야 할 만큼 공경하는 데 실패하였다. 그들은 의무보다는 성향을 따랐다. 그들은 짐과 수고를 회피함으로 저들의 생애에서 이기적인 길을 추구했으며, 인생에 성공을 거두려고 한다면 빼놓을 수 없는 소중한 체험을 얻는 일에 실패하였다. 그들은 작은 일에 성실하게 되는 것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했으며, 또한 저들의 앞길에 분명하게 놓여 있는 미천하고 낮은 의무들을 진실하게 정성을 다해 철저히 행함으로 저들의 부모에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들은 실제적인 생활에 그토록 필요한 일상적인 분야의 지식 그 너머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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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이 청년들이 어떤 곳에서든지 축복이 되기를 원한다면, 그곳은 바로 가정이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각성된 이성과 건전한 판단, 그리고 계몽된 양심의 조심스런 결정으로 지도받는 대신에 성향에 굴복한다면, 그들은 사회에서나 저들의 아버지의 집에서나 축복이 될 수 없으며, 이생과 더 나은 세계에서 저들의 전망은 위기에 처할 것이다. 수많은 청년들은 저들의 초년기는 걱정거리를 짊어지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고 있다. 그저 한가하게 스포츠와 농담과 유치한 일에 빠져서 시간을 낭비해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우매한 일에 빠져서 감각적인 일에 방종하고 있는 동안에 어떤 이들은 순간적인 만족과 그에 관련된 것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생각하지 않는다. 오락에 대한 갈망, 사교와 잡담과 웃는 일을 좋아하는 것 등은 이런 일에 몰두할수록 증가하며, 인생의 엄연한 실제적인 일에 대해 전적으로 관심을 상실하고, 가정적 의무는 흥미없는 것처럼 보인다. 저들의 마음을 채울 만한 변화가 없으며, 저들은 쉼이 없이 안절부절 못하고 성을 낸다. 이 젊은이들은 가정을 행복하고 즐겁게 만드는 것을 의무로 여겨야 한다. 그들은 사는 곳에 쓸모 없는 불평과 불행스러운 불만으로 어두움을 가져오기보다는 햇빛을 가져와야 한다.

이 청년들은 저들이 누려 온 모든 특권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 시간을 선용하는 것에 대해 책임을 지고 있으며, 저들의 재능을 증진시키는 것에 대해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는 전적으로 오락이나 휴양이 없는가? 우리는 변화 없이 일하고, 일하고, 또 일해야 하는가?” 라고 질문할 것이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간구하면서 참여할 수 있는 오락이라면 어떤 것이나 위험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은밀한 기도와 기도의 제단에서의 헌신과 기도회에 참석하는 일에 있어서 저들을 부적격자로 만드는 것은 어떤 오락이든지 안전하지 않으며, 오히려 위험하다. 심히 큰 힘을 요구했던 신체적 노동으로부터 전환하는 일은 또다시 일에 뛰어들어 큰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 당분간 매우 필요하다. 그러나 전적인 헌신이 필요하지 않을 수 있으며, 저들의 신체적인 능력에 관한 한 최선의 결과를 거두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어떤 한 종류의 일에 피곤할 때에라도 저들의 소중한 순간을 낭비해 버릴 필요가 없다. 그때에 그들은 그다지 힘들지 않으면서도 저들의 어머니나 자매들에게 축복이 될만한 어떤 일을 행하려고 할 수도 있다. 저들이 감당해야 할 힘든 짐을 스스로 감당함으로 저들의 염려를 덜어 줄 때, 그들은 원칙으로부터 솟아나는 즐거움, 곧 저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안겨 주는 즐거움을 발견하게 될 것이며, 그들의 시간은 쓸모 없는 일이나 이기적인 방종으로 허비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시간은 항상 유익한 면으로 사용될 것이며, 그들은 끊임없이 변화를 통해 새롭게 되는 한편, 시간도 아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매 순간은 누군가에게 선한 사실을 말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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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과학 방면의 교육을 얻는 일이 최고로 중요하다고 생각해 왔다. 무지는 결코 덕이 아니며, 지식 때문에 그리스도인적 성장이 방해받게 될 필요는 없다. 그러나 그대가 그것을 원칙에 입각하여 추구함으로 그대 앞에 올바른 원칙을 세우고, 다른 이들에게 선을 베풀고 하나님의 영광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그대의 능력을 사용해야 할 의무를 하나님 앞에서 짊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느낀다면, 지식은 이러한 목적을 성취하는 데 그대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그것은 그대에게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베푸신 능력들을 활용하도록 할 것이며, 그분의 봉사를 위해 그것들을 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청년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그토록 많은 지식은 얻으면서도 그 지식을 실제적인 일에 사용하지 못한다면, 그대는 목적을 성취하는데 실패한 것이다. 만일, 교육을 받는 일에 있어서 너무 공부에 몰두한 나머지 기도와 종교적인 특권을 등한히하고, 그대의 영혼의 복지에 대해 부주의하거나 무관심하게 된다면, 그대가 그리스도의 학교로부터 배우는 일을 중단하게 된다면, 그대는 그대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을 받고 팔아 넘기는 자이다. 그대가 교육을 받는 목적은 잠시도 시야에서 사라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그대의 기능을 계발시키고 지도하여 그대로 하여금 그대의 능력이 미치는 범위 안에서 다른 이들에게 유용한 인물이 되고 그들을 축복하는 인물이 되도록 하는 것이어야 한다. 만일, 지식을 얻음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에 대한 사랑이 증가하고, 책임을 지는 일로부터 빠져나가려는 성향이 증가한다면, 그대는 교육을 받지 않는 편이 낫다. 만일 그대가 책을 사랑하고 그것들을 우상화해서 그것이 그대와 그대의 의무 사이에 이간질하도록 허용한다면, 그리하여 누군가가 해야만 할 중대한 일을 행하기 위해 연구와 독서를 중단하는 일을 꺼려하게 된다면, 그대는 연구하려는 소망을 자제하고 현재 그대에게 전혀 흥미가 없는 그런 일들을 행하는 것을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계발해야 한다. 지극히 작은 일에 충성된 자는 큰 일에도 충성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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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의 부모와 형제 자매들에 대하여 사랑과 애정을 계발할 필요가 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소망중에 즐거워하며 환난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롬 12:10-13). 청년들이여, 그대들은 학교 공부 때문에 그대들의 영원한 유익을 희생할 수 없다. 그대의 교사들은 칭찬을 통해 그대를 고무시킬 수 있으며, 그대는 사단의 궤변으로 속임을 당할 수 있다. 그대는 특출나게 되기 위해, 또한 그대의 교사들로부터 추천을 받기 위해서 한걸음 한걸음 나아갈 수 있지만, 신령한 생애, 체험적 신앙에 대한 그대의 지식은 점점 덜 자라게 될 것이다. 그대의 이름은 거룩하고 존귀한 천사들 앞에서, 우주의 창조주, 그리고 하늘의 대 주재이신 그리스도 앞에서 희미하게 빛을 발하며 기록된 채로 있게 될 것이다. 그 반대편에는,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신 우리의 대언자 예수님과 수중드는 천사들이 하나님의 자녀로서 그대를 소유하기를 부끄럽게 여길 죄와 과실과 실패와 게으름에 대한 기록이 있게 될 것이다.

학교에 출석할 때에 그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부모의 보호가 있는 그대의 아버지 집에서는 부딪치지 않았을 다양한 유혹을 만나게 된다. 만일 집에서 그대가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기 위한 은혜를 간구하고자 홀로 하루에 두세 번 기도했다면, 학교에서는 이 타락한 세대에 학교에 편만한 시험과 부패한 감화력에 노출되어 있으므로 훨씬 더 열렬하게 지속적으로 기도할 필요가 있다. 이는 그대의 환경이 그리스도인적 품성을 형성하기에 훨씬 불리한 조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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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청년들에게는 그리스도인 품성의 능력이 충분하지 않다. 특별히 A, O 의 경우가 그러하다. 그는 진리에 서서 뿌리가 박히고 굳건하게 되어 있지 못하다. 하나님께 대한 이해는 지극히 피상적이므로 그는 위로부터 능력과 빛을 받지 못하고 있으며, 자신의 영혼을 어두움으로 두른다. 그는 불신의 말하는 것을 너무 많이 들었으며, 진리에 관해 거의 실제적인 관심이 결여되어 있으므로 자신의 소망에 관한 이유를 대답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는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불안정하다. 그는 친절한 마음을 갖긴 했으되 장난과 게으름과 그의 젊은 친구들과 어울리는 일에 빠져 있다. 그는 자기 영혼의 유익을 이러한 경향으로 몰두하고 있다. 나의 형제여, 비신앙적인 청년들과 너무 많이 어울리는 것을 피하는 것이 그대에게 중요하다. 인생의 실제적인 의무들과 관련해서 볼 때에, 진리에 대한 그대의 믿음과 사랑을 증진시킬 수 있는 믿음의 소유자들과 대화하며 사귀는 일에 그대의 많은 시간을 쏟는 것이 그대의 정신과 마음의 교양에 필요하다.

그대는 진리를 믿음으로 부과되는 제약을 떨쳐 버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과감하게 불신 가운데로 나가는 일에는 두려움을 느낀다. 그대는 너무 자주 세상의 경박함을 선택했으며, 자기 반성과 신앙을 도외시하는 이들과의 교제를 선택하였다. 그리하여 그 모든 의도와 목적에 있어서 진리에 조소를 퍼붓는 그런 부류의 사람들 중 하나로 그대 자신이 간주되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사회 속에 처하기에는 그대가 믿음이나 뜻이 견고하지 못하다. 시간을 보내기 위해 그대는 경박한 정신에 탐닉했는데, 그것 때문에 그대의 양심은 손상을 받아 그대에게 큰 해가 미쳤다. 그대는 인정받기를 좋아한다. 만일 그대가 명예스러운 방법으로 이것을 얻는다면, 그것은 죄스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대는 스스로와 다른 이들을 속이는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그대는 이 점에 있어서 보호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대가 얻고 있는 모든 인정을 살펴보아야 한다. 만일 그대의 건전한 원칙과 도덕적 가치 때문에 그대가 인정을 받는다면, 이것은 그대에게 유익하다. 그러나 지적·도덕적 가치 때문이 아니고 그대가 깜찍한 말을 할 줄 알고 잘 논평할 수 있기 때문에, 혹은 그대가 쾌활하고 활기차고 재치가 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귀여움을 받고, 구애를 받고, 아첨을 받는다면, 그대는 예민하고 경건한 남녀들에게 선망의 대상보다는 불쌍히 여김을 받는 대상으로 간주될 것이다. 그대는 아첨으로부터 보호를 받아야 한다. 그대에게 아첨할 만큼 미련한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대의 진정한 친구가 될 수 없다. 그대의 진정한 친구는 그대에게 주의를 주고, 간청하고, 경고하고, 그대의 과오를 책망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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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어두운 불신을 향해 마음을 열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운데 마음을 닫아라. 증거들, 곧 우리의 믿음의 기둥들을 찾아내어 그것들을 단단히 붙들어라. 그대는 현대 진리에 대해 이러한 확신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대에게 닻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대의 품성에 존경을 받을 만한 활력과 능력과 고상한 위엄을 나누어 줄 것이다. 근면한 습관을 기르라. 그대는 이 점이 심히 부족하다. 그대와 그대의 형제는 둘 다 성공할 수 있는 현명한 생각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안에 있음을 기억하라. 그대의 전망은 때때로 그럴듯하게 보일 수도 있으나, 그대로 하여금 단순하고 소박한 가정의 의무와 종교적인 의무들을 거들떠보지 않게 만드는 기대들은 실패로 끝날 것이다. 나의 사랑하는 젊은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낮추며, 계속해서 주님을 알고, 흠 없는 순결, 고상한 성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의무와 실생활의 의무들을 수행함에 있어서의 완전으로 이루어진 매일의 생애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을 축복함으로써 그리스도인 생애에서 풍부하고 가치 있는 경험을 얻을 필요가 있다. 그대에게는 가정에서 해야 할 의무들이 있다. 그대가 아직도 향상시키지 못한, 감당해야 할 책임들이 있다.

그대가 심은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 이 청년들은 지금 씨를 뿌리고 있다. 그들의 생애의 모든 행위, 뱉어진 모든 말은 선, 혹은 악을 거두게 될 씨앗이다. 씨앗이 어떠하냐에 따라 수확도 그러할 것이다. 만일 조급하고 육욕적이고 왜곡된 정욕에 몰두한다면, 혹은 식욕이나 저들의 성화되지 않은 성향을 만족시키는 일에 몰두한다면, 만일 교만이나 그릇된 원칙을 장려하고 불성실과 방탕의 습관을 간직한다면, 그들은 후회와 수치와 절망의 열매를 풍성하게 거두어 들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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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천사들은 이 청년들로 하여금 “주여, 청년의 때에 나의 인도자가 되어 주옵소서” 라고 신실하게 주님께 간구하도록 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천사들은 사단의 올무로부터 피하도록 저들을 초청하며 애쓰고 있다. 만일 그들이 하늘을 얻기 위해 애쓴다면, 그곳은 저들의 것이 될 것이다. 만일 저들이 하늘을 위하여 모든 것을 바친다면, 불멸의 면류관이 저들의 것이 될 것이다.

25 장 — 자신을 사랑하는 목회자들

R 형제여, 그대의 영향력은 현대 진리 사업에 영광을 돌릴 만한 성격의 것이 못되었다. 만일 그대가 다른 이들에게 전파하는 진리에 의해 성화 되었더라면, 그대는 지금까지 그랬던 것보다도 열 배나 더 많이 하나님의 사업에 유익을 끼쳤을 것이다. 그대는 흥분을 자아내는 일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이것 없이는 거의 용기를 내지 못한다. 이러한 큰 흥분과 감정적인 관심은 한 일꾼으로서 그대에게 힘과 영광과 성공이 되었지만, 이런 것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이 방면에 대한 그대의 수고는 그것에 관해 그대가 아첨하는 것과 거의 같지 않다.

자세히 조사하게 되면 이렇게 특별히 흥분적인 집회 후에는 극소수의 이삭만을 거두어 들였을 뿐이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거의 모든 경험으로부터 그대의 일하는 방식을 바꾸어야 한다는 것을 그대는 배우고 있지 못하다. 그대는 미래에 그대가 어떻게 수고해야 하는지 배우는 일에 너무 느렸기 때문에 과거의 잘못을 피할 수가 없다. 이렇게 된 이유는 그대가 마치 술주정뱅이처럼 이렇게 감정적인 집회의 자극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대는 마치 술주정뱅이가 축 늘어지는 기력을 북돋우기 위해서 한 잔의 술을 갈급하는 것처럼 그것들을 갈급한다. 흥분을 자아내는 이러한 토론들은 하나님을 위한 열성과 진리에 대한 사랑인양 잘못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대에게는 그대의 노력에 함께 역사 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이 거의 결핍되어 있다. 만일 그대가 행하는 모든 일에 하나님을 모셨다면, 또한 영혼에 대한 부담을 느끼고 이렇게 흥분하는 때에 영혼들을 그리스도의 왕국으로 재치 있게 이끌어 들일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면, 그대는 수고한 열매를 볼 수 있었을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셨을 것이다. 그대의 영혼은 그대가 다른 이들에게 증거하는 진리의 정신으로 불타올라야 한다. 영혼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요구가 저들 위에 있음을 확신시키기 위해 수고하며, 저들에게 하나님을 향해 회개하며 그리스도를 믿도록 가르친 다음에도 그대의 일은 겨우 시작한 것에 불과하다. 그대는 일을 미처 끝내지 않고서 그대가 마땅히 끝냈어야 할 일을 다른 이들이 마치도록 무거운 부담을 지우는 일에 너무 자주 핑계를 댄다. 그대는 그대가 일을 마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그대가 양떼의 목자, 혹은 목사로서 스스로의 자격을 빨리 갖추면 갖출수록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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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된 목자로서 그대는 마음을 다루고 하나님의 양 무리 중 각자에게 적절한 시기에 그에게 맞는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자신을 수련해야 한다. 그대는 신중하여야 하며, 스스로 연구한 실제적인 주제들을 모아 놓기 위해 연구하여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는 백성들에게 그들이 필요로 하는 제때, 제자리에서 용기를 갖고 분명하고 힘있게 제시할 수 있다. 그대는 모든 선행을 이룰 수 있는 철두 철미한 준비를 영감의 말씀을 통해서 하지 않았다. 양떼들이 영적 양식을 필요로 할 때, 그대는 자주 여러 가지 논쟁적인 주제들을 제시하였는데, 그것들은 국가적인 문제에 대한 연설처럼 결코 경우에 합당한 것이 아니었다. 만일 그대가 스스로 작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에게 충분하게 제공하는 주제들을 아는 일에 그대의 마음을 교육시켰더라면, 그대는 적절하며, 영적으로 건강하게 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힘을 공급할 양식으로 양 떼를 먹임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업을 일으켜 세우는 일을 하였을 것이다.

그대는 참된 목자의 사업을 아직까지도 배워야 한다. 그대가 이것을 이해하게 될 때, 하나님의 일과 사업이 그대에게 막중하게 지워짐으로, 그대는 익살과 농담을 떨며 천박하고 경솔한 대화를 하는 쪽으로 기울지 않게 될 것이다. 사업에 대해 적절한 부담감을 갖고 있으며, 자신의 사명이 지닌 고차원적 성격과 신성성을 크게 인식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양떼에 대해 천박하거나 경솔하게 굴지 않을 것이다.

진정한 목자는 양떼와 관계된 모든 일에 흥미를 갖고 저들을 먹이며, 인도하며, 방어할 것이다. 그는 최대한의 지혜로 처신할 것이며 모든 사람에게 부드러운 관심을 나타낼 것이며, 모든 사람을 공손하게, 동정적으로 대할 것인데, 특별히 시험을 당한 자, 고난을 당한 자, 절망에 빠진 자에게 그러할 것이다. 저들의 특별한 처지와 허약함 때문에 동정이 요구되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들에게 동정을 베푸는 대신에, 나의 형제여, 그대는 이러한 부류의 사람을 기피했다. 그렇게 하면서도 한편으로 그대는 다른 이들에게서 동정을 크게 구하였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마 20:2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니” (요 13:16).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빌 2:7).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롬 15:1-3).

교회증언 3권 pp. 219-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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