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579-588(129일)

내가 받은 빛에 의하면, 우리의 집회는 신령하고 화기 애애한 것이어야 하며 너무 길지 않아야 한다. 침묵, 교만, 허영, 그리고 사람에 대한 두려움은 집에 두어야 한다. 사소한 불화나 편견은 이러한 집회에 가지고 오지 말아야 한다. 그들의 빛을 가져옴으로써 원기가 회복되고 활력을 얻기 위하여 모이는 형제 자매들의 마음 속에는 연합한 가정에서처럼 단순과 온유 및 확신과 사랑이 깃들어야 한다. 하늘의 교사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다. 신앙 생활에 있어서 모두가 다 동일한 경험을 갖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다양한 신앙 생애의 소유자들이 함께 모여, 단순하고 겸손한 마음으로 그들의 경험을 나눈다. 향상하는 그리스도인 생애를 추구하는 모든 사람들은 생생한 경험, 새롭고 흥미로운 경험을 가져야 하며 가지게 될 것이다. 산 경험은 매일의 시련, 투쟁과 유혹 및 강한 노력과 승리, 그리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얻는 큰 평안과 기쁨으로 이루어진다. 그러한 경험의 단순한 관계는 빛과 힘 그리고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남을 전진하게 하는 데 도움이 되는 지식을 준다. 하나님께 대한 경배는 거룩한 하늘 사물에 애정을 가진 자들에게 흥미롭고도 교훈적이어야 한다. 하늘의 교사이신 예수님은 인류를 버려 두지 않으시고 당신의 생애의 순결과 거룩함이 모든 인생의 갈 길을 비추고 하늘로 가는 길을 밝힘으로 인류를 유익하게 하시고자 하늘로부터 그들이 거하는 지상으로 오셨다. 세상의 구속주는 당신의 가르침을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도록 평이하고 단순하게 하고자 노력하셨다. 그분은 일반적으로 강의를 위한 장소로 노천을 택하셨다. 그분을 따르던 무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집이 없기도 하였으나, 그분이 당신의 교훈을 주시기 위하여 수풀이나 해변을 찾으신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었다. 그 곳에서 그분은 경치를 조망할 수 있었으며, 비천한 인생들이 익히 아는 사물들과 장면을 사용하여 그들에게 알게 하사 중요한 진리들을 예증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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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천연계에서 하나님의 솜씨와 당신의 교훈을 연결시키셨다. 근심 걱정 없이 노래를 부르는 새들, 아름답게 자라나는 골짜기의 꽃들, 호수 한가운데 순결하게 떠 있는 수련, 키가 큰 나무들, 황폐한 땅,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 영원한 언덕들, 졸졸 흐르는 시냇물, 하늘을 물들이며 미끌어지는 낙조, 그분은 이런 모든 것들을 신령한 진리로 청중들을 감화시키는 데 사용하셨다. 그분은 하늘과 땅에 하나님께서 그 손가락으로 베푸신 일들을 청중의 마음에 새겨 주시기를 원하시는 생명의 말씀과 연결시키셨다. 그리하여 그들이 자연계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솜씨를 바라볼 때 그들의 기억속에 예수님의 교훈을 상기 할 수 있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모든 노력을 기울이시는 중에,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가르침을 흥미있게 하시고자 애쓰셨다. 그분은 지치고 굶주린 무리들이 영적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을 아셨으며,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잊지 않으셨다. 언젠가, 그분은 당신의 입술에서 발하여지는 생명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든 오천의 군중들을 먹이시는 이적을 행하신 적이 있었다. 그분의 귀한 진리를 청중들에게 전하실 때에,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진리를 전하실 곳의 환경을 고려하셨다. 그러한 장소의 경치는 눈길을 끌 만하며, 미를 사랑하는 자들의 마음이 찬탄을 일으킬 만한 그러한 곳이었다. 그분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나타난 하나님의 지혜를 칭송하며 그들의 마음을 천연계를 통하여 천연계의 하나님께로 향하게 함으로 당신의 거룩한 교훈과 결속시킬 수 있으셨다. 그리하여 경치, 나무, 새, 골짜기의 꽃들, 언덕, 호수, 그리고 아름다운 하늘이 청중들의 마음 속에서 거룩한 진리, 즉 그리스도의 승천 이후에도 그들이 그러한 사물들을 볼 때 상기될 거룩한 진리와 연결되었다. 백성들을 가르치실 때, 그리스도께서는 기도하는 일로 시간을 보내지 않으셨다. 그분은 바리새인들처럼 그들에게 길고 지루한 의식과 기도를 강요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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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증언 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들의 기도가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바로 그것 외에 더이상 말하지 않는 짧은 기도가 되어야 할 것임을 인식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에게, 영적인 축복을 간구하며 그것에 대한 감사를 표명하는 그들의 기도의 길이와 내용을 제시하셨다. 이 모본적인 기도는 얼마나 함축적인가! 그것은 실제적인 모든 필요를 망라하고 있다. 일반적인 대개의 기도는 일이 분으로 충분하다. 기도가 성령에 의하여 드려지며 성령 안에서 간구하게 되는 경우가 있다. 열망하는 영혼은 하나님을 따라 고민하며 신음한다. 그 영혼은 야곱이 한 것처럼 씨름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특별히 나타나지 않으면 그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기도는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마땅한 기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메마른 태도, 설교를 하는 듯한 태도로 기도를 드린다. 이것은 인간에게 하는 기도이지 하나님께 하는 기도가 아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으며 그들이 하는 것이 무엇임을 진정으로 이해 한다면, 그들은 자신의 무례한 태도에 대해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이 마치 우주의 창조주께서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이 관련된 일반적인 문제에 대하여 특별한 정보를 필요로 하는 것처럼, 기도의 형식을 빌어서 주님께 강의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모든 기도는 소리 나는 구리요 울리는 꽹과리이다. 그것들은 하늘에서 중요하게 여김을 받지 못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러한 기도를 듣도록 강요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것으로 인하여 진력을 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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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그분은 하늘 아버지께 당신의 요청을 아뢰기 위하여 한적한 수풀이나 산을 찾으셨다. 하루의 일과나 수고가 끝나고 피곤한 자들이 휴식을 찾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그 시간을 기도에 바치셨다. 우리는 기도를 억제하고자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기도와 경성함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성령과 깨달음으로 기도하는 일은 더욱 적다. 열렬하고 효과적인 기도는 항상 적절한 기도이며 결코 지루해지지 않는다. 그러한 기도는 헌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흥미를 끌며 원기를 회복시킨다. 사람들은 은밀한 기도를 등한히 하는데, 하나님께 예배 드리기 위하여 모였을 때 많은 사람들이 길고 지루하고 퇴보적인 기도를 드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들은 기도를 통하여 한 주일 동안 게을리 한 의무에 대하여 계속 언급하며, 그들의 소홀함을 보상하고 가책을 느끼는 양심을 진정시키기를 바라면서 기도를 되풀이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호의를 받기 원하여 기도한다. 그러나 흔히 이러한 기도들은 다른 사람의 마음도 그들과 같이 영적인 흑암의 낮은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결과를 낳는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기도와 경계에 대한 가르침을 올바로 적용한다면,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에 있어서 더욱 현명해질 것이다.

71 장 — 안식일을 어떻게 지켜야 할 것인가?

하나님은 자비로우시다. 그분의 요구는 합리적이며 당신의 품성의 선하심과 자비하심에 일치된다. 안식일의 목적은 모든 인류에게 유익을 주기 위함이다. 사람이 안식일에 맞추어지도록 창조되지 않았다. 왜냐하면, 안식일이 사람의 창조 후에 사람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제정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 세상을 만드신 후 안식하셨으며, 창조하시고 만드시던 모든 작업으로부터 안식하신 그날을 거룩하게 하시고 축복하셨다. 그분은 사람이 노동에서 안식하도록 하셨으며, 또한 사람이 아래로 땅을 바라보며 위로 하늘을 쳐다볼 때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들을 엿새 동안 창조하시고 이레째 되는 날에 안식하였다는 것을 상기하게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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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하여 그가 하나님의 무한한 지혜에 대한 이 실제적인 증거를 볼 때 그의 마음이 그를 창조하신 분에 대한 사랑과 경외심으로 차도록 이 특별한 날을 구별하셨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자유롭고 호흡할 수 있는 신선한 공기나 아름다운 자연계의 경치와 단절되어 집안에 우리 자신을 가두어 놓을 필요가 없다. 우리는 어떤 경우라도 주님께서 성별하신 주님의 안식일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떠나게 하는 노동이나 사업상 거래를 용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세상 사물에 머무는 것조차 허락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안식일 하루 종일 옥내에 갇혀서 긴 설교와 지루하고 형식적인 기도를 들음으로써는 마음이 원기를 회복하고 생기를 얻으며 향상될 수 없다. 이렇게 안식일을 지킨다면 주님의 안식일은 잘못 사용되는 것이다. 안식일이 제정된 목적은 달성되지 않는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만들어졌으며, 그의 마음을 세속적 노동에서 돌이켜 하나님의 선하심과 영광을 명상함으로 그에게 축복이 되도록 제정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담겨진 진리에 관한 생각과 사상을 교환하기 위하여, 그리고 시간의 일부를 적당한 기도에 바치기 위하여 모이는 것은 필요한 일이다. 그러나 이러한 시간은 안식일에라도 그 길이와 흥미의 결핍으로 인하여 지루하게 하지 말 것이다. 모든 사람은 안식일 시간의 일부를 옥외에서 보낼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옥외에서 그들의 시간의 일부를 놀이로 보내는 것이 아니라 부모들과 함께 보내는 것보다 자녀들에게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제공하며 그들의 마음에 감화를 줄 수 있는 더 좋은 방법이 어디 있겠는가? 자녀들의 어린 마음을 천연계의 아름다운 경치 속에서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라. 그들의 주의를 창조의 솜씨에 나타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로 환기시키라. 그러면 그들은 흥미를 갖고 매력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고집스럽고 가혹한 어떤 것과 연결시킬 그러한 위험에 처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오히려 그분의 인간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하신 아름다운 사물들을 볼 때, 그들은 하나님을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로 인식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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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하나님의 금지 사항과 명령이 단지 그분의 능력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하여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의 행복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이 사랑과 자비, 아름다움과 매력을 제공할 때 자녀들은 그분의 사랑에 끌리게 된다. 그대는 공중을 즐거운 노래로 경쾌하게 만드는 사랑스러운 새나, 풀잎들이나, 공기를 향기로 채우는 완전한 모습의 화려하게 채색된 꽃들로 그들의 마음을 향하게 할 수 있다. 이 모든 것들이 하늘 예술가의 사랑과 솜씨를 선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 부모들이여, 하나님께 대한 올바른 생각을 자녀들에게 넣어 주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천연계의 책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귀중한 교훈을 왜 사용하지 않는가? 단순함을 유행 때문에 희생시키고 천연계의 아름다움으로부터 자신을 격리시키는 자들은 영적인 마음의 교육자가 될 수 없다. 그들은 그분의 피조물에 나타난 하나님의 솜씨와 능력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그들의 마음은 새로운 사랑과 흥미로 일깨워져서 감동되지 않으며 천연계 가운데 계신 하나님을 뵙더라도 두려움과 존경심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안식일이 기쁘고 거룩하고 높임받는 날이 되도록, 그들이 할 수 있는 것들을 해야 한다. 가증하고 금지된 오락의 즐거움을 추구함으로써는 이 일을 할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은 가정에서 안식일을 높이는 일에 크게 기여할 수 있으며, 그날을 주일 중 가장 흥미로운 날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녀를 흥미롭게 하기 위하여 시간을 바쳐야 한다. 변화는 자녀들에게 행복한 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 옥외로 나갈 수 있을 것이며, 밝은 태양이 비치는 수풀 속에 그들과 함께 앉을 수 있고, 그들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하여 대화함으로 그들의 활동적인 마음에 무엇인가 양식을 줄 수 있으며, 천연계의 아름다운 사물에 그들의 주의를 돌림으로 사랑과 존경을 그들에게 고취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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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이 우리 가족들에게 참으로 흥미있는 날이 되어 매주 그날이 돌아옴을 기쁨으로 환호하며 맞이하게 되어야 할 것이다. 가족들에게 적합한 교훈을 나누어 줄 방법을 고안하며, 가족들로 하여금 영적인 사물에 흥미를 갖게 하고, 하나님의 품성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제시하거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시고 영생을 허락하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제시하는 것보다 부모들이 더 안식일을 높이고 존경할 수 있는 길은 없다. 부모들이여, 자녀들이 안식일을 기다리며 그것을 마음으로부터 환영하도록 안식일을 기쁜 날로 만들라.

72 장 — 그리스도인 휴양

나는 오늘 이 곳에 모인 우리들의 모임과 불신자들이 갖는 일반적인 유사한 모임과의 사이에 어떠한 차이가 엿보일까 생각해 보았다. 불신자들의 집회에는 기도나 그리스도 혹은 종교적인 것에 대한 언급 대신에 어리석은 웃음과 경박한 대화가 들릴 것이다. 그들의 목적은 일반적으로 기분 좋은 시간을 갖자고 하는 것이다. 그것은 어리석게 시작하고 허망하게 끝난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양심의 꺼림이 없이, 즉 우리가 사귄 자들을 어떤 방법으로라도 상처를 입히거나 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또한 그들에게 해로운 영향을 주지 않았다는 인식을 가지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행동하고 이 집회가 운영되기를 바란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이 점에서 실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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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그들이 매일 행사하는 영향에 대하여 책임을 지고 있다는 사실과, 그들의 생애의 사귐에서 그들이 끼친 영향과 그들이 준 감화에 대해 하나님 앞에서 회계할 것이라는 사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이러한 영향이 다른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고, 헛되고 어리석은 길로 이끌며, 어리석은 방종이나 오락을 통하여 그들 자신의 쾌락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성질의 것이라면, 그들은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만 한다. 만일, 이들이 영향력 있는 사람이거나, 그들의 위치가 그들의 모본으로써 남에게 영향을 미치는 그런 위치라면, 성경의 표준에 의해 자신의 행동을 조절하기를 게을리 한 큰 죄가 그들 위에 있게 된다. 오늘 우리가 즐기고 있는 이 집회는 레크리에이션에 대한 나의 생각과 꼭 들어맞는다. 나는 이 주제에 대한 나의 견해를 발표하고자 시도하였으나 이 회집은 나의 의견을 말로 표현하는 것보다 더욱 잘 예증하고 있다. 약 일년 전에 이와 비슷한 집회가 있었을 때, 나는 역시 이 장소에 있었다. 그 때 거의 모든 것이 유쾌하게 진행되었으나, 몇 가지 부당한 일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상당한 익살을 떨고 농담을 하였다. 그 때 모였던 사람들이 다 안식일 준수자들은 아니었으나, 그 때 끼쳐진 영향은 우리가 원하는 만큼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정신을 새롭게 하고 우리의 육신을 활력 있게하고자 할 때에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능력을 언제든지 최선의 목적을 위하여 사용하도록 요구하신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오늘 여기서 행하는 것처럼 함께 사귈 수 있으며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할 수 있다. 또한, 우리에게 맡겨진 의무를 더욱 성공적으로 완수하도록 우리를 준비시키며 우리가 사귀는 자들에게 영향력을 더욱 올바르게 발휘할 수 있도록 레크리에이션을 경영할 수 있으며 경영해야 한다. 특별히 우리 모두에게 좋은 격려가 될 이와 같은 집회에서 더욱 그러해야 한다. 우리는 마음에 힘을 얻고 육신에 원기를 회복하고 더 나은 소망과 용기를 가지고 사업에 새로운 마음으로 착수할 준비가 되어 집으로 돌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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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의 생애를 통하여 지상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특권이라는 사실과, 우리가 이 세상에서 단지 자신의 오락이나 쾌락만을 위하여 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믿는다. 우리는 인류에게 유익이 되며 사회에 축복이 되기 위하여 여기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만일 오로지 허영과 어리석음을 추구하는 많은 자들이 마음에 달리도록 허용하는 그 저급한 길을 우리의 마음으로도 달리게끔 허용한다면, 어떻게 우리가 사회에 축복이 되며 인류와 세대에 유익이 되겠는가? 우리는 일상 생활의 의무를 보다 충실하게 이행할 수 있도록 우리를 준비시키지 않는 어떤 오락에도 순전하게 탐닉할 수는 없다. 우리는 고상하고 사랑스러운 것을 추구하기를 원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피상적이며 중요하지 않고 내용도 없는 그런 사물로부터 돌이키기를 원한다. 우리의 원하는 바는 우리와 관련된 모든 것에서 새 힘을 얻는 것이다. 레크리에이션을 목적으로 하는 이 모든 모임에서, 이 모든 유쾌한 사귐에서, 우리는 보다 나은 남녀가 되기 위하여 새로운 힘을 얻고자 한다. 우리의 생애를 순결과 거룩함으로 향상시키고 이 세상의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지 않게 하기 위하여 우리는 가능한 한 모든 근원으로부터 새로운 용기, 새로운 힘, 새로운 능력을 얻기를 원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신앙을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우리는 모두 어떤 수준으로 내려와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내려와야 하는 수준 같은 것은 없다. 하나님의 진리와 성경의 종교를 받아들이는 일은 낮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고상한 수준, 즉 높은 위치로 올라가는 것이며, 그 곳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교통하게 된다. 바로 이런 이유로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낮추사 인간의 몸을 취하시고, 그분의 굴욕과 고통과 희생을 통하여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징검다리가 되셨으며,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공로를 입고, 그분의 탁월하심과 덕을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노력이 열납되도록 하셨다. 여기에는 낮은 수준으로 내려오는 것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발을 영원한 진리의 고상하고 높은 토대 위에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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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더욱 하늘 천사들과 같아지고자 하며, 마음이 더욱 순결하고, 더욱 죄없고, 흠없고 정결하기를 바란다. 우리는 생애의 순결과 성결을 추구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마침내 영광의 왕국에서 하늘의 분위기에 적합하게 되고자 한다. 이러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높은 경지에 도달하는 유일한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는 길뿐이다. 인류를 고양시킬 다른 길은 없다. 어떤 이들은 그들이 하늘에서 온 진리를 받았기 때문에 당하는 굴욕과 치르는 희생에 대하여 말한다! 세상이 진리를 받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불신자들도 그것을 받지 않는다. 그들은 진리를 받아들이고 구세주를 찾은 사람들에 관하여 이야기할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귀한 것들을 모두 내버리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 희생하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내게 이렇게 말하지 말라. 내가 더 잘 안다. 내 경험은 그것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대들은 우리가 우리의 가장 소중한 보물들을 버리고 그에 상당한 것을 받지 못했다고 내게 말하지 말라. 그래서는 안 된다! 우리 시조를 위하여 아름다운 에덴 동산을 창설하신 창조주, 우리를 위하여 아담한 나무들과 꽃을 심으시고 인간이 천연계 속에서 아름답고 영광스러운 모든 것을 즐기도록 마련하신 그분께서 그들이 이것을 즐기도록 고안하셨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우리의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주신 모든 것을 우리가 포기하기를 바라신다고 생각지 말라. 그분께서는 지니고 있어도 우리의 유익과 행복을 위한 것이 못되는 것들만을 포기하도록 요구하신다. 고상한 나무들을 풍성한 잎으로 입히셔서 세우신 하나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꽃을 주신 그분, 천연계의 모든 영역에서 그분의 사랑스런 솜씨를 우리가 보도록 하신 그분은 우리를 불행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이것들을 맛보고 즐기지 못하도록 계획하지 않으셨다. 우리가 그것들을 즐기고, 그분이 만드신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기뻐하게 되는 것이 그분의 계획이다.

교회증언 2권 pp. 579-5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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