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569-578(128일)

67 장 — 청지기 직분에 대한 불충성

사랑하는 K 형제여,

내 마음에 몇 가지 부담되는 일이 있어서 그대와 L 형제에게 편지를 써야 할 의무를 느꼈다. 나는 그 문제의 진상을 그대 앞에 진술하였다. 그러나 아직도 내 마음이 무겁기 때문에 나는 편지를 또 쓰리라. 나는 그대에게 “나”와 “나의”라는 생각이 우선된다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대는 자신을 너무 돌아보기 때문에 주님께서 그대를 위해 일하실 틈이 없다. 그대는 그분께 기회를 주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L 형제와 그대를 상당히 그대의 판단에 따라 일하도록 버려 두시므로 그대의 지혜가 곧 어리석음이라는 사실을 깨닫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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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특별히 분부하신 대로) 과부와 고아를 위하여 일하지 않았다. 그대는 주님의 가난한 자들의 형편을 살펴줌으로 그들을 자신의 사람들로 여기지도 아니하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그의 이름을 높이지도 아니하였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대와 L 형제가 그들 자신의 택한 길을 따르도록 내버려 두셨다. 그대의 이기적인 관심이 그대의 행동의 기본이며, 그대는 그대가 심은 것을 거둘 것이다. 나는 그대가 곧 그대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한 바에 상응하는 보상을 분명히 받게 될 것을 보았다. “네 하던 일을 셈하라”는 말씀을 그대는 반드시 듣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에 맡겨진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그대는 자신을 위해서 부끄럽게도 그 일을 소홀히 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나라와 그리스도의 의를 구하면서 하나님께 인정받기를 구하였더면, 그대는 그리스도의 일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과 과부들과 고아들은 그대의 부드러운 동정심과 관심을 샀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와 자녀들이 의지할 곳 없이 세상의 차디찬 자비나 공언하는 그리스도인들의 무감각하고 인정없는 대우를 받게 된다면, 이렇게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바라는 대로 그 불쌍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쓰고 그들을 대접하였을 것이다. 그대는 불행한 자를 무감각하고 무정하게 소홀히 한 통탄할 면이 있다. 그대는 그들의 곤궁함을 상관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차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이 일에 관한 죄를 알아 보기까지 그대를 축복하실 수 없으시다. 나는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을 자기의 사업보다 더욱 신성하게 보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영원한 것들이 분별되지 않았다. 주님께서는 그대에게 기대되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 주심으로 그대의 의무에 눈뜨도록 경고와 책망을 보내셨다. 그러나 그대는 이 경고들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대는 하나님과 상관하고 있음을 깨닫지 못하였다. 그대는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여 자신을 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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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선한 믿음으로 그들이 희생하며 벌은 돈을 사무실로 보내었다. 어떤 사람들은 매우 열심히 일하여, 노고와 절약으로 얻은 돈을 주님께 바쳤으며, 그 돈을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사무실로 보내었다. 가난한 과부들이 거의 모든 생활비를 보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실 것이라고 믿으며, 그 돈이 기도와 눈물로 봉헌되고, 그러나 기쁜 마음으로 보내질 때 그들은 그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큰 사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가난한 가정들이 자신들과 자녀들이 우유를 마시지 않아 가며 소를 팔아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선한 믿음을 가지고 사무실에 돈을 들여 놓는다. 그러나 이기심과 잘못된 사용으로 이 돈은 낭비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취급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물으신다. 그들은 “네 하던 일을 셈하라”는 말씀을 곧 듣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들을 도우사 모든 흠에서 벗어나게 되기를 기도한다.

배틀크릭, 미시간,

1870.1.17.

68 장 — 잘못된 감수성

사랑하는 M 자매여,

그대의 형편이 생각난다. 나는 그대의 형편에 관해 본 바에 대해서 나의 소감을 편지로 표현하지 않을 수 없다. 나는 그대가 안개와 흑암 속에서 방황하는 것을 확실히 안다. 그대는 사물을 바로 보지 못한다. 그대는 이렇게 핑계를 댐으로 자신의 형편에 대하여 무감각하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이 길로 나를 인도하지 않았더면 나는 이것이나 저것을 하지 않았을 터인데.” 그대는 끊임없이 환경이 나쁘다고 탓하고 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은 섭리를 나쁘다고 탓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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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계속해서 속죄양을 만들 사람이나 물건을 계속 찾아서 그리스도인답지 못하게 생각하고 말할 입장에 처하도록 그대를 인도한 죄를 뒤집어 씌우고자 한다. 자신의 결점에 대하여 단순히 자신을 책하는 대신에 그대는 그대의 품성 속에 잠재해 있거나 다른 어떤 것이 요란케 하여 일깨우지 않으면 표면 밑에 깔려 있는 특성을 이루도록 이끈 상황과 형편을 탓한다. 자극을 받을 때 그 특성들은 모든 흉한 모습을 힘있게 나타낸다. 그대는 이런 미운 기질이 없다는 식으로 생각하며, 그런 것들을 모든 사람들에게 누설하는 식으로 행동하고 말하는 위치에 이를 때까지 자신을 속인다. 그대는 아직도 변화를 받지 못하고, 그리스도께 복종시키지 못한 것이 그대의 육적 본성임을 알아보고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그대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다. 그대는 가끔, 내가 말하는 바 성급함과 독재적인 성질, 남편을 주관하려는 욕심 등의 악한 정신을 표출하지 않고 여러 날이나 여러 주일을 보내기도 한다. 그대가 주관하려는 것과 남들을 그대의 생각에 이끌기를 좋아하는 바로 그것이 그대와 그대의 남편을 거의 망쳐 놓았다. 그대는 지시하고 남들에게 명령하는 것을 좋아한다. 그대는 그들이 그대가 최선의 빛을 가졌으며, 특히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다고 생각하고 느끼게 되기를 바란다. 만일 그들이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대는 악한 생각을 시작하고 질투하게 되며, 불안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대는 불만족하게 되며 극도로 불행감을 느낀다. 그대의 권위를 행사할 때 그대의 지혜와 판단력에 대해 반박하는 것보다 그대의 품성의 악한 특질을 건드리는 것이 없다. 잠자는 것처럼 보이는 그대의 강하고 뻣뻣한 정신은 최고로 자극을 받는다. 그러면 자아가 그대를 지배하고, 그대는 더이상 온전한 이성과 차분한 판단력에 의해 지배되지 않는 미친 사람이나 다를 바 없이 되고 만다. 자아는 힘을 다해 세력을 장악하려 하며, 그대를 제어하는 가장 단호한 마음마저도 탈취해 버린다. 그런 정신 나간 상태가 지나가면 그제서야 그대는 그대의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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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대는 너무 민감했으며, 너무 깊이 느끼며, 너무 고통을 많이 당한다는 변명으로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준비되어 있다. 나는 이 모든 것이 그대를 하나님 앞에서 능히 변명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대는 교만을 민감한 것으로 잘못 알았다. 자아가 두드러지게 보인다.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히면 그 민감성이나 교만도 죽게 된다. 그 때까지 그대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이다. 그것은 반대를 당할 때 화를 내거나 정신이 나가는 일이 없이 대처해 나가는 겸비와 온유하고 조용한 정신을 갖는 것이다. 만일 그대를 둘러싸고 있는 기만의 허울을 찢어 버리려면,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그대를 보시는 것처럼 자아를 살필 수 있게 되려면, 그대는 자신을 정당화하려 하기보다는 그대의 품성의 모든 약점들을 제거할 수 있으며 그대를 싸매실 수 있는 유일한 그분 그리스도 앞에서 마음을 깨뜨릴 것이다.

69 장 — 성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정해진 때에 그분이 택하는 장소에 모여 불필요한 노동을 금하면서 어떤 특별한 날들을 지키며, 그 시간을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을 살펴보는 일에 바치도록 분부하셨다. 이런 특별한 때에 그들은 주님께서 축복해 주신 것에 따라 예물과, 자원의 제사와 감사의 제사를 바쳐야 하였다. 남녀 종들과 타국인들과 고아와 과부들은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노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하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기뻐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빈 손으로 주님께 나오지 않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계속적인 자비와 주신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를 가져와야 하였다. 이 예물들은 예물을 바치는 자들이 누리도록 특권을 받은 축복에 상당하여 구별이 있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품성이 분명히 향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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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을 높이 평가한 자들은 그들의 감사에 상응하는 예물을 가져왔다. 풍성하신 시혜자를 향한 불타는 사랑에 감동되지 않고, 받는 것만을 우상을 섬기듯 사랑하며 이기심에 의해 도덕적 능력이 둔화되고 마비된 사람들은 약소한 예물을 가져왔다. 이렇게 그들의 마음이 드러났다. 이러한 특별한 기쁨과 즐거움의 종교적 축제일 이외에도 매년 있는 유월절은 유대 국가에 의해 기념되어야 하였다. 여호와께서 그들과 언약하시기를 만일 그들이 그분의 요구를 충성되이 준수하면 그분께서 그들의 산업을 증대시키며 그들의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유대 민족에게 요구하셨던 것에 못지 않게 그분의 백성들에게 희생과 예물을 요구하신다. 하나님께서 능하도록 축복하신 사람들, 그리고 심지어는 과부와 고아까지도 그분의 축복을 잊어서는 안 된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번창케 하신 이들은 그분의 것을 그분께 돌려 드려야 한다. 그들은 자아 희생의 정신으로 그분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에 상응하는 예물을 갖고 주 앞에 나와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번창케 하신 많은 사람들이 그분께 배은 망덕을 보인다. 만약 그분의 축복이 그들 위에 내리고, 그분께서 그들의 재산을 늘이신다면, 그들은 이 풍성한 물질을 그들의 재산을 사랑하는 사슬로 삼는다. 그들은 세상 사업이 그들이 애정과 전 존재를 장악하도록 허용하며, 신앙과 종교적 특권을 소홀히 한다. 그들은 그들의 사업의 걱정을 내버리고 한 해에 한 번이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저주로 바꾼다. 그들은 그들의 일시적 이익을 위하여 하나님의 요구를 저버린다. 수많은 돈을 가진 자들이 그들의 세상적 걱정과 이익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해 해마다 열리는 집회에 참석하여 희생할 여유가 없다고 생각하고 집에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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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는 그들의 바구니와 창고에 축복하시고 좌우를 그분의 은택으로 둘러싸셨으나 그들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작은 예물도 바치려 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을 섬기기를 좋아한다. 그들의 영혼은 이슬이나 하늘의 비로 새로워지지 않는 사막과 같아질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귀한 축복을 주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의 죄의 종과 오류의 속박에서 구하셨고, 그들의 어두워진 이해에 현대 진리의 영광스런 빛을 주셨다. 그런데도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의 증거들이 감사한 마음을 불러일으키지 못하는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그들의 영적 유익을 알지 못하고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해서 살 것인가? 그들은 그들의 영원한 유익이 저절로 보호될 것으로 기대하는가? 그들 편의 노력이 없이는 영적 힘이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린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세상적 이익을 얻기 위해 애쓰며 짐진 자들이다. 그들은 영원한 유익을 모른다. 그들은 만족을 주지 못할 것을 위하여 일한다. 그들은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돈을 쓴다. 그들은 썩어질 것, 곧 세상에 그들이 쌓아 놓은 재물에 만족하려고 애쓴다. 그리고 그들은 영생을 위해 준비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이 그들의 첫째가는, 실제적이고 유일한 삶의 과업이 되어야 한다. 가능한 한 모두 이러한 연례적인 모임에 참가하도록 하라. 하나님께서 이것을 우리 모두에게 요구하고 계시다는 것을 우리는 느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 안에서 굳세게 하기 위해서 마련하신 기회를 이용하지 않는 자들은 점점 약해지며 하나님께 헌신하고자 하는 마음이 점점 적어질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이 거룩한 모임에 참석하여 예수를 발견하라. 예수께서 그 잔치에 참여하실 것이다. 그분이 오셔서 그대가 반드시 이루어야 할 일을 해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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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에 대한 깊은 관심보다도 그대의 농장을 더 귀중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보물이 아무리 가치 있는 것이라 할지라도 무한한 유익이 되는 화평과 소망을 사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화평과 소망을 사기 위해서는 그대의 모든 소유와 일생 동안에 수고와 고통을 지불해야 한다. 영원한 사물에 대한 강하고 분명한 생각과 그리스도께 모든 것을 복종하고자 하는 마음은 이 세상의 모든 부귀와 향락과 영광보다도 더욱 귀중한 축복이 된다. 이 장막 집회는 중요한 것이다. 이 집회들은 무언가를 희생하게 한다. 하나님의 종들은 백성들을 돕기 위해 진력하고 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은 도움을 원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이 세상적으로 조금 손해를 보는 것이 무서워서 어떤 이들은 이 귀한 특권들이 아무 중요성이 없는 양 그냥 지나가게 하고 만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그분의 진리와 요구를 분명히 알게 하며, 그분의 오심을 위해 필요되는 준비를 어떻게 해야 할지를 더 잘 알게 하는 이 모든 특권을 존중해야 한다. 침착하고 명랑하며 순종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신뢰하는 것이 그분이 요구하시는 것이다. 그대들은 복잡한 염려와 불필요한 걱정으로 자신을 피곤케 할 필요가 없다. 그날을 위하여 일하라. 하나님의 섭리로 그대에게 정해진 일을 충실히 할 때에 그분께서 그대를 돌보실 것이다. 예수께서 그대의 축복을 깊게 하시며 넓히실 것이다. 그대가 결국 구원을 얻으려면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 이 집회에 와서 일할 준비를 하라. 걱정은 집에 버려두고 예수를 찾으러 오라. 그리하면 그대는 그분을 찾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축복하신 대로 예물을 가져오라. 자원의 예물로 그대에게 모든 은택을 주신 그분, 창조주께 감사를 표하라. 능력 있는 자들은 빈손으로 오지 말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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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20 — 교회에 대한 증언

70 장 — 기도회

최근에 나는, 내가 매우 존경하는 한 형제로부터 어떻게 모임을 진행할 것인가를 묻는 편지를 한 통 받았다. 그는, 여러 사람들이 계속하여 기도한 후 잠깐의 휴식 시간을 가진 다음 다시 여러 사람들이 기도해야 할 것인가를 물었다. 이 문제에 대하여 내가 받은 빛을 통하여, 나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경배하기 위하여 모일 때, 여럿의 긴 기도를 들으며 상당히 오랜 시간 구부리고 있음으로써 이런 모임을 지루하고 피곤케 하기를 바라지 않으신다. 건강이 좋지 않은 자들이 이러한 부담을 당하게 되면 극히 피곤해지거나 기진하게 된다. 오랫동안 구부리고 있음으로 몸이 피곤하게 되는데, 더욱 나쁜 것은 계속되는 기도로 인하여 마음이 너무 피곤하게 되어 영적 원기의 회복을 경험하지 못하게 됨으로 차라리 모임을 갖지 않음만 못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은 심신이 피곤하게 되어 영적 힘을 전혀 얻지 못하게 된다. 총회나 기도를 위한 모임은 지루하게 되지 말아야 한다. 가능하다면 모두가 정각에 모이도록 하고, 반 시간 혹은 십오 분씩 늦는 자들이 있더라도 기다리지 말 것이다. 참석자가 둘뿐이라도 약속을 구할 수 있다. 참석자가 적건 많건, 집회는 가능하면 정각에 시작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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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식과 딱딱함을 버리고 모두가 의무를 신속히 행하여야 한다. 일반 집회의 경우 기도는 십분을 초과하지 말아야 한다. 자세를 바꾸고 찬미나 권면을 통하여 단조로움을 해소한 후 누군가가 기도할 의무를 느낀다면 그들로 기도하게 할 것이다. 모든 사람은 밤새 기도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온 세상을 돌아다니지 말고 그대가 원하는 바로 그것만을 주님께 말하라. 개인 기도에 있어서는 모든 사람이 그들의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길게 기도할 특권과 솔직하게 기도할 특권을 가진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친척들과 친구를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골방은 그들의 모든 사사로운 어려움, 시련, 유혹을 고할 장소이다. 그러나 주님을 경배하기 위한 일반적 모임은 마음의 사적인 일을 열어 놓을 장소가 아니다. 함께 모이는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을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고함으로써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정보를 제공하기 위함인가? 우리는 서로의 생각과 느낌을 교환함으로 피차간에 덕을 세우기 위하여, 또한 서로의 희망과 포부를 앎으로 힘과 빛과 및 용기를 모으기 위하여 모인다. 그리고 믿음 가운데서 드려지는 우리의 열렬하고 간절한 기도를 통하여, 우리는 힘의 근원으로부터 원기의 회복과 활력을 받는다. 이러한 모임은 가장 귀한 시간이 되어야 하며, 영적 사물에 대한 취미를 가진 모든 사람에게 흥미있는 시간이 되어야 한다. 개인 기도를 통하여 그들의 어려움을 하나님께 가져가지 않고 그것을 기도회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가 거기서 며칠 동안 기도를 하는 이들이 얼마간 있는 듯하다. 그러한 자들에게는 총회나 기도회의 방해자라는 이름을 붙여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들은 빛을 전혀 내지 못하며 아무에게도 덕을 세우지 못한다. 그들의 냉랭하고 얼음 같은 기도와 길고 퇴보적인 간증은 그늘만 드리운다. 그들의 기도나 간증이 끝나면, 모두가 기뻐한다. 그들의 기도와 훈계가 모임에 가져 온 냉기와 어둠을 벗어버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교회증언 2권 pp. 569-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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