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589-598(130일)

우리가 이와 같은 숲을 찾아서 휴식과 휴양을 즐기는 것은 바른 일이다. 그러나 우리가 여기 있는 동안 자신만을 생각하며, 거룩한 사물을 싫어하는 미움이 솟게 하는 오락에 귀한 시간을 허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우리는 익살과 농담, 어리석은 환담과 넋 빠진 웃음을 터뜨리기 위해 이 곳에 오지 않았다. 우리는 여기서 천연계의 아름다움을 바라본다. 그리고 무엇을 하는가? 그것들 앞에 엎드려 경배할 것인가? 아니다. 우리가 이 천연계의 작품들을 볼 때에 우리의 마음은 더 높이 고양되어 천연계의 하나님께로 이끌려져야 한다. 그 마음이 우주의 창조자께로 이끌려지도록 하라. 그리고 이 모든 아름다운 것을 우리의 유익과 행복을 위해 만드신 창조주를 송축하라. 많은 사람들이 아름다운 그림들을 즐기며, 그런 그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능력을 숭배한다. 그러나 그들의 생애를 이 일에 바친 사람들이 그들의 착상을 어디서 얻었는가? 미술가들이 캔버스에 옮겨 놓는 사물에 대한 생각을 어디서 얻는가? 그들은 천연계의 아름다운 광경, 오직 천연계로부터 그것을 얻는다. 개인들은 혼신의 정력을 다 바쳐서, 그들의 온갖 애정을 다 쏟아가며 이 방면의 그들의 취향을 살린다. 많은 이들은 창조주께서 그들로 하여금 즐기도록 만들어 주신 천연계의 아름다움과 영광에서 마음을 멀리 하고, 그들의 모든 정력을 미술의 완성에 바친다. 그래도 이 모든 것은 천연계를 불완전하게 베낀 것에 불과하다. 미술은 천연계에서 볼 수 있는 완전함에 도달할 수 없다. 천연계의 아름다운 것들을 만드신 분은 잊혀졌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일몰 광경의 그림을 보고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은 진짜로 멋진 일몰 광경을 거의 일년 내내 볼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천연계의 보이지 않는 거장 미술가께서 거룩한 솜씨로 하늘이 바뀌는 영광스러운 광경을 캔버스 위에 그리는 것을 볼 수 있지만, 그들은 부주의하게도 하늘이 그린 그림을 버리고 불완전한 손으로 그려진 미술 작품으로 관심을 쏟고 그것들 앞에 엎드려 경배할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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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일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는 원수가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빼돌리기 위하여 거의 언제나 일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종교를 제시할 때 그들이 받아들일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들이 그분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희생을 치를 수 있다고? 결코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무엇이 요구되었는가? 단순히, 아버지의 영광을 떠나서 반역자들을 위해 죽으려고 내려오신 그분을 거룩한 마음으로 가장 사랑하는 것이 요구된다. 그분은 그분의 부귀와 위엄과 통수권을 버리시고 우리의 몸을 쓰셔서 우리가 살아 갈 길을 만드셨다. 그대들에게 굴욕을 주시며, 타락시키려고 그러셨는가? 절대로 그렇지 않다. 그대들이 가망 없는 비참한 상태에서 나올 길을 만드시고, 마침내 천국에서 그분의 오른손으로 그대들을 높이시기 위해서 그리하셨다. 이를 위하여 크고 엄청난 희생이 치러졌다. 누가 이 큰 희생을 깨달을 수 있으랴? 누가 이 큰 희생을 깨달을 수 있으랴? 누가 그 가치를 알겠는가? 경건의 비밀을 이해하는 자들, 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본 자들, 우리에게 제공된 구원의 잔을 마신 자들 이외는 아무도 없다. 주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가 마셔야 하는 우리 죄의 잔을 그분의 입술로 비울 때에, 우리에게 구원의 잔을 제공하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희생을 치르시고 우리에게 그런 사랑을 나타내신 그리스도께서 가치 있는 모든 것을 우리에게서부터 박탈하시는 것처럼 말한다. 어떤 좋은 것을 그분께서 빼앗아 가시겠는가? 그분께서는 육적인 마음의 욕망에 빠지게 하는 권리를 빼앗아 가시고자 한다. 우리는 마음내키는 대로 화를 내고서도 깨끗한 양심과 하나님의 인정을 보유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포기할 마음이 있지 않은가? 부패한 욕망의 방종이 우리를 더욱 행복하게 하는가? 그것은 이 방면에서 그것이 우리에게 제약이 없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화를 내고 편벽된 기질을 배양하는 것이 우리의 즐거움을 더해 주지 않는다. 인간의 본성을 따르는 것은 우리의 행복을 도모하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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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것들에 빠짐으로 더 나아질까? 그렇지 않다. 그것들은 우리의 가정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우리의 행복을 가리운다. 본성의 식욕에 굴복하는 것은 신체 조직을 상하게 하며, 조직을 갈기갈기 헤쳐 놓는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식욕을 제어하고, 정욕을 조절하며, 전인들을 굴복시키기를 원하신다. 만일 우리가 이 일에 착수하면 힘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아담과 하와의 죄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무서운 분리를 가져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한 인류와 하나님 사이에 들어오셔서 사람에게 말씀하신다. “아직도 그대들은 아버지께로 올 수 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사람이 하나님과 화해될 수 있는 경륜을 이루셨다. 그대들은 중보자를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이제 그분은 그대를 중보하기 위하여 서 계신다. 그분은 그대들을 위하여 간구하시는 위대한 대제사장이다. 그리고 그대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대의 형편을 하나님께 제시할 수 있다. 그리하여 그대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 비록 그대들이 죄를 짓지만 그대의 형편은 가망이 없지 않다. “만일 누가 범죄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나는 우리에게 구주가 계심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를 드린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고양될 길이 없다. 그러므로 아무라도 그리스도를 받아들이는 것을 수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유한한 인간과 무한한 하나님을 연결시키는 황금 줄을 붙잡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는 참된 높임으로써 첫 발을 내딛게 되어 우리는 영광의 왕국에서 순결한 하늘의 천사들과 함께 지내는데 있어서 적합하게 될 수 있다. 좌절하거나 겁내지 말라. 그대들이 시험을 당할지라도, 간악한 원수에게 몰림을 당할지라도 만일 그대가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힘이 뛰어난 천사들이 그대들을 돕기 위해 보내질 것이며, 그대들은 흑암의 세력을 넉넉히 이길 것이다. 예수께서는 살아 계신다. 그분은 타락한 인류가 살아갈 길을 만드시고자 죽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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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자 살아 계셔서, 우리가 그분의 오른쪽에까지 높여질 수 있게 하신다. 하나님 안에서 소망을 품으라. 세상은 넓은 길을 간다. 그래서 그대들이 좁은 길로 향하며 정사와 권세와 더불어 투쟁하며, 원수의 반대를 만나게 될 때에 그대들을 위한 준비가 있음을 기억하라. 강한 분에게 도움이 있다. 그분을 통해 그대들은 이길 수 있다. 그들 중에서 나와 따로 있으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영접하고 너희가 전능하신 주님의 아들과 딸이 되도록 하시겠다고 하신다. 이 어떤 약속인가! 그대들이 왕가의 일원이 되며, 하늘 왕국의 상속자가 된다는 것은 그대들을 위한 보증이다. 만일 어떤 사람이 지상의 어떤 왕에 의해 명예를 받는다든지, 혹은 그와 연결이 된다면 그 소문은 일간 신문들을 통해 어떻게 퍼지며, 행운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부러움을 얼마나 불러일으킬 것인가. 그러나 여기 만유의 왕인 분이 계시다. 우주의 왕이요, 모든 좋은 것의 창시자이시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나는 너희를 나의 자녀로 삼겠다. 나는 너희를 내게로 연합시키겠다. 너희는 왕가의 일원이 되며 하늘 왕의 자녀가 될 것이다. 바울은 말한다.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우리가 이 일을 왜 하지 않는가? 우리에게는 이러한 권유가 있고, 지극히 높으신 이의 자녀가 되는 특권과 하늘의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특권이 주어지지 않았는가?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는가? 그리고 그대들은 이것을 일컬어 모든 쓸만한 것을 다 박탈한다고 말하는가? 이것이 쓸 만한 것을 다 포기하는 것인가? 나는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과 연합하련다. 이것이 나의 최고의 야망이다. 그대들은 이 세상의 모든 소유를 다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예수님을 모셔야겠다. 나는 불멸의 기업, 영원한 것의 권리를 얻어야 하겠다. 나는 하나님의 나라의 아름다운 것들을 즐기련다. 나는 그분이 친히 물들이신 그림들을 즐기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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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것들을 즐길 수 있다. 그대들도 즐길 수 있다. 그것들을 경배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들을 통하여 우리는 그분께 마음을 향하게 되며, 우리의 즐거움을 위하여 이 모든 것들을 만드신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될 수 있다. 다시 말하건대, 용기를 가지라. 주님을 신뢰하라. 원수가 약속들을 앗아가지 못하게 하라. 그대들이 자신을 세상에서 분리시키면,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의 아버지가 되며 그대들은 그분의 자녀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그대들 앞에 어떤 다른 권유가 필요한가? 나비처럼 삶의 목표나 실체를 갖지 못하게 되는 것에 무슨 위대한 목적이 있는가? 오! 나는 영원한 진리의 토태 위에 서련다. 내게 불멸의 가치를 다오. 나는 하늘에서 땅으로 드리워져 있는 황금 사슬을 잡으련다. 그것이 나를 하나님과 영광으로 가까이 가게 하련다. 이것이 나의 야망이다. 이것이 나의 목표이다. 만일 타인들이 옷보다 더 나은 목적이 없다면, 그들이 외적 치장을 즐기고, 그들의 영혼을 나비넥타이나 리본이나 환상적인 것으로 만족케 할 수 있다면 그것들을 즐기도록 놓아 두라. 그러나 나는 내적 단장을 하련다. 나는 하나님 보시기에 큰 가치가 있는 온유와 조용한 정신으로 옷 입으련다. 젊은 신사들과 숙녀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이것을 추천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분이 보시기에 오빌의 정금보다 더 값진 것이기 때문이다.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정금, 곧 오빌의 정금보다 더 귀하게 만든다. 나의 자매들이여, 젊은이들이여, 그것은 그대들을 하나님 보시기에 순금보다 더 값진, 오빌의 금덩이보다 더 값진 사람으로 만든다. 나는 그대들에게 나의 복된 구주를 추천한다. 나는 그분을 칭송한다. 나는 그분을 찬양한다. 오, 내게 불멸의 혀가 있어서 내가 원하는 만큼 그분을 찬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온 우주 앞에 서서 그분의 비할데없는 매력을 찬송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내가 그분을 찬양하고 칭송하는 동안 나는 그대들도 나와 함께 찬양하기를 원한다. 그대들이 흑암에 빠질지라도 그분을 찬송하라. 시험 중에서도 그분을 찬양하라. 사도는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대들의 가정에 우울함과 흑암이 덮일까?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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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태양 광선을 가져올 것이다. 그리하여 그대들은 영광의 보좌에서 영원한 빛을 거두어 들여 그대들 주위에 전파할 것이다. 나는 그대들이 이 사업에 참여하기를 권고한다. 이 빛과 생명을 주위에 퍼뜨리라. 그대들의 길에만 뿌릴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사귀는 사람들의 길에도 그리하라. 그대들 주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상시키며, 고양시키고, 그들에게 하늘과 영광을 가리켜 주고, 그들이 세상 사물을 떠나 영원한 것, 불멸의 기업, 썩지 아니할 부를 구하도록 인도하는 그 일을 그대들의 목표로 삼으라.

73 장 — 인상적인 꿈

1868년 8월, 배틀크릭에 있는 동안 나는 많은 사람들과 함께 있는 꿈을 꾸었다. 이 모인 무리 중 일부는 여행을 떠날 준비를 하였다. 우리는 짐이 무겁게 실린 마차들을 갖고 있었다. 우리가 길을 갈 때에 길은 오르막 같았다. 길 한편으로는 깊은 낭떠러지가 있었고 다른 편은 높고, 미끄러우며 흰 벽이 마치 석회로 마무리해 놓은 방의 벽과같이 있었다. 길을 계속 갈수록 길은 더욱 좁아지고 가파르게 되었다. 어떤 때는 너무 길이 협착해서 짐을 실은 수레가 더이상 나아가지 못할 것 같은 장소도 여러 번 있었다. 그러면 우리는 수레를 떼어내고, 수레에서 일부의 짐을 내어 말 등에 얹고 말을 타고 길을 계속 갔다. 우리가 전진할수록 길은 더욱 더 좁아졌다. 우리는 좁은 길에서 벗어나 낭떠러지로 떨어지지 않기 위해서 벽에 꼭 붙어서 가야 했다. 우리가 이렇게 할 때에 말등의 짐이 벽 쪽으로 쏠리는 바람에 우리는 절벽 쪽으로 흔들리게 되었다. 우리는 바위 위에 떨어져서 가루가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였다. 그래서 우리는 짐을 절벽 밑으로 떨어뜨렸다. 우리는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말을 타고 계속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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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더 좁은 길로 들어서서 우리가 균형을 잃고 떨어질 지경에 이르기도 하였다. 그럴 때마다 어떤 손이 나타나 고삐를 쥐고 위험한 길을 벗어나게 하는 것 같았다. 길이 더욱 좁아지자 말을 타고는 더이상 안전하게 가지 못하리라는 판단이 섰다. 그래서 말들을 버리고 도보로, 한 줄로 서서 앞 사람의 발자국만 밟으면서 전진하였다. 이 순간에 순백색의 벽 꼭대기에서부터 작은 줄들이 내려왔다. 우리는 균형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줄들에 단단히 매어 달렸다. 우리가 계속 나아갈 때에 줄들도 움직였다. 그 길은 마침내 너무 좁아져서 우리가 신발을 벗어 버려야만 안전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하고, 신발을 벗어 버린 채로 얼마를 갔다. 이윽고 우리는 양말을 벗어야 안전하겠다고 생각하고 이제는 맨발로 길을 갔다. 그 때 우리는 궁핍과 곤란함에 익숙지 못한 사람들을 생각하게 되었다. 그들은 지금 어디 있는가? 그들은 여행의 대열 속에 없었다. 상황이 바뀔 때마다 몇 명씩 낙오하였다. 난관을 견디는 데 익숙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다. 길의 어려움이 목적지까지 나아가고자 하는 이 사람들의 마음을 더욱 강하게만 하였다. 길에서부터 떨어질 위험이 더 커졌다. 우리는 흰 벽에 바짝 붙었다. 그렇지만 너무 길이 좁아져서 발을 제대로 디딜 수도 없었다. 그러자 우리는 모든 체중을 그 줄들에 매달고 소리쳤다. “위에서 잡아준다! 위에서 잡아준다!” 그 좁은 길에서 모든 일행들이 같은 말로 소리쳤다. 우리가 저 아래 무저갱에서부터 들려오는 환락과 떠드는 소리를 들을 때에 전율을 느꼈다. 우리는 신성 모독적인 맹세와, 저속한 농담과, 저질스런 노래들을 들었다. 우리는 전쟁 노래와 춤 노래를 들었다. 우리는 기악과 큰 웃음이 저주소리와 고뇌와 비통의 울부짖음과 섞여 들려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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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우리는 험하고도 좁은 그 길에 더욱 붙고자 하는 마음이 생겼다. 여러 번 우리는 온 체중을 그 줄들에 의지해야 하였고, 그것들은 점점 굵어져 갔다. 나는 그 아름답고 흰 벽이 피로 얼룩져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벽이 얼룩진 것을 볼 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나 이런 느낌은 그것이 마땅히 그렇게 되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자 사라졌다. 뒤에 오는 이들이 이미 남들이 이 어려운 길을 지나갔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만일 남들이 갈 수 있었다면 그들도 역시 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을 내릴 것이다. 아픈 발에서 피가 나올 때에라도 좌절하여 쓰러지지 아니할 것은, 벽에 있는 피를 보고서 남들도 똑같은 고통을 견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침내 우리는 우리의 길이 끝나는 큰 구렁에까지 왔다. 이제는 발을 놓을 곳이 없었다. 우리는 전적으로 그 줄들을 의지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들은 점점 굵어져서 이제는 우리들의 몸처럼 굵어졌다. 여기서 우리는 난관과 걱정에 빠져 있었다. 우리는 두려워서 속삭이는 소리로 물었다. “이 줄이 어디와 연결되어 있을까?” 나의 남편은 바로 내 앞에 있었다. 그의 이마에서는 구슬같은 땀이 떨어졌다. 그의 목의 핏줄과 눈동자는 평상시보다 두 배나 커 보였으며 고뇌의 신음소리가 입술을 통해 새어 나왔다. 나도 얼굴에 땀이 흘렀으며, 전에 결코 느껴보지 못하던 고뇌 가운데 빠졌다. 무시무시한 투쟁이 우리 앞에 놓여 있었다. 만일 여기서 실패한다면, 우리는 여행길의 모든 난관을 헛되이 겪은 셈이 되고 말 것이었다. 구렁 건너편에는 거의 6 인치 정도의 풀이 자라는 아름다운 초장이 펼쳐 있었다. 나는 태양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러나 순금빛과 은빛의 밝고 환한 광선이 이 들판 위에 비취고 있었다. 이 땅에서 내가 본 그 어느것도 이 들녘의 아름다움과 영광과 비교될 수 없었다. 그러나 우리가 그 곳에 도달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 우리의 큰 의문이었다. 만일 줄이 끊어지면 우리는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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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속삭이는 말로 “무엇이 줄을 잡고 있는가?” 하고 물었다. 얼마 동안 우리는 모험을 하지 못하고 주저하였다. 그리고서 우리는 소리쳤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줄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이다. 이것은 험한 모든 길에서 우리의 의지가 되어 왔다. 이제 그것은 우리를 패망시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우리는 주저하며 근심하고 있었다. 그 때 이런 말이 들렸다. “하나님께서 줄을 잡고 계신다. 우리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이 말은 우리 뒤에 있는 사람들에 의하여 반복되었다. “그분께서 우리를 망하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분께서 우리를 지금까지 안전하게 인도하셨다.” 그러고 나서 나의 남편이 줄에 매달려 구렁을 뛰어 넘어 아름다운 들에 내렸다. 나는 즉시 그 뒤를 따랐다. 오, 우리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안도감을 갖게 되었다! 나는 하나님께 대한 승리의 찬미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나는 행복하였다. 온전히 행복하였다. 나는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어려운 길을 행하느라고 겪었던 걱정으로 인하여 내 몸의 모든 신경이 떨리는 것을 알았다. 이 꿈에는 설명이 필요없다. 그것은 내 마음에 강한 인상을 주어서 내 기억이 살아 있는 한 아마도 모든 내용이 생생하게 남아 있게 될 것 같다.

74 장 — 우리의 장막 집회

사람을 많이 찾아다니고 부주의한 대화를 나누는 것보다 더 장막 집회나 예배를 위한 회집에 나쁜 영향을 끼치는 것은 없다. 자주 남녀들이 무리를 지어 모이고, 집회와 관계 없는 일상적인 주제로 대화를 한다. 어떤 이들은 농장일을 화제로 삼고, 어떤 이들은 집을 주제로 삼으며, 또는 집짓는 계획을 세운다. 어떤 이들은 남들의 품성을 분해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펴서 자신의 품성의 결점을 찾아 그들의 잘못을 고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성결을 이루려고 하는 생각이나 시간적 여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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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제자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리에 대하여 대화함으로 집회의 시간을 선용하며,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대하여 생각하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며, 하나님께 열렬히 기도하여 그분의 축복을 간구한다면 우리가 지금까지 보아온 일보다 더 큰 일이 성취될 것이다. 진리를 믿는 자들을 거짓으로 고소하는 불신자들이 그들의 “그리스도 안에서의 선한 대화”로 인하여 깨달음을 얻을 것이다. 우리의 말과 행동은 우리가 맺는 열매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분이 정하시는 시간과 장소에서 그분 앞에 모이라고 명령하셨다. 특별한 날들을 지키며, 그날에는 불필요한 일을 하지 않도록 하셨으며, 시간은 그분께서 그들에게 주신 축복을 헤아리는 데 사용하도록 하셨다. 이 특별한 시간에 남녀 종들과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 이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놀라운 능력으로 그들을 노예의 속박에서 자유를 누리도록 하신 것을 기뻐하도록 지시를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 앞에 빈 손으로 나타나지 않도록 명령을 받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베푸신 계속적인 자비와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시를 가져와야 하였다. 그들은 선물들을, 자원하는 예물과 감사의 예물들을 축복받은 대로 주께 가져와야 하였다. 이 예물들은 바치는 자가 누렸던 축복을 감정하여 가져왔으므로 차이가 있었다. 그리하여 백성들의 품성이 분명히 드러났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은혜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들은 그분의 축복에 대한 감사에 상응하는 예물을 가져왔다. 풍성하신 시혜자를 향한 불타는 사랑에 감동되지 않고, 받은 것만을 우상을 섬기듯 사랑하며 이기심에 의해 도덕적 능력이 둔화되고 마비된 사람들은 약소한 예물을 가져왔다. 이렇게 그들의 마음이 드러났다.

교회증언 2권 pp. 589-5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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