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 1 19-28 (2일)

나의 어머니는 꽃을 좋아하는 분이었으므로 꽃을 가꾸는데서 큰 기쁨을 누렸다. 그러므로, 집을 매력 있게 만들고 자녀들도 즐겁게 해주었다. 그러나, 우리 집 정원이 내가 돌아오던 그날처럼 아름다워 보인적은 일찌기 없었다. 나는 관목들과 봉오리와 꽃에 예수님의 사랑이 나타나 있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이와 같이 아름다운 사물들이 무언의 언어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해 주는 듯이 보였다.

정원에는 샤론의 장미라고 불리어지는 아름다운 분홍빛의 꽃이 있었다. 나는 그것에 접근해 가서, 섬세한 꽃잎을 경건한 마음으로 만지던 일을 기억한다. 나의 눈에는 그 꽃잎들이 신성한 것을 간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나의 마음은 이처럼 아름다운 하나님의 피조물에 대한 부드러움과 사랑으로 넘쳤다. 나는 대지를 아름답게 꾸민 꽃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볼 수 있었다.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돌보셨고, 모든 것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이 거기 머물러 있었다. 그분께서 그것들을 만드시고 좋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아, 그분께서 아름다움으로 꾸미신 꽃들을 그처럼 사랑하시고 돌보신다면,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자녀들을 얼마나 더욱 자상하게 돌보시겠는가” 라고 생각했다. 나는 내 자신에게 부드러운 말로 되풀이했다.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분의 사랑의 보호가 나의 주변을 두르고 있다. 나는 양순해야 하고, 결코 그분을 불쾌하게 해드려서는 안 되며, 그분의 귀중한 이름을 찬양하고 언제나 그분을 사랑해야 할 것이다.”

나의 생애는 다른 빛으로 나에게 나타났다. 어린 시절을 어둡게 한 고통은 나의 마음을 세상과 또한 만족을 줄 수 없는 세상의 쾌락에서 돌이켜 하늘에 있는 영원한 것들로 향하도록 하기 위해, 나의 유익을 위해 자비롭게 주어진 것처럼 보였다.

장막회에서 돌아온 후, 나는 몇 사람들과 함께 교회의 침례반에 들어가게 되었다. 나는 침례에 관한 문제를 매우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비록 나이가 어렸지만, 나는 성경이 인정하는 침례의 형식은 단하나 뿐인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물에 잠기는 형식이었다. 나의 감리교 자매들 중 몇 사람은 물을 뿌리는 것이 성경상 침례라는 사실을 내게 확신시키고자 헛된 노력을 했다. 감리교 목사는 물을 뿌리는 형식도 하나님께서 똑같이 가납해 주신다고 시사했다. 그러나, 침례 후보자들이 양심적으로 물에 잠기는 형식을 더 원한다면 그 형식을 따르기로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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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우리가 이 엄숙한 예식에 참여할 시간이 정해졌다. 우리 열두 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기 위하여 바다로 내려간 날은 바람이 심했다. 파도가 높이 일어 해안에 부딪쳤다. 그러나, 이 무거운 십자가를 지자, 나의 평안은 마치 강과 같았다. 물에서 일어나자, 주님의 능력이 나에게 임하셨으므로, 나는 거의 탈진 상태였다. 나는 더 이상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고 물무덤에서 새 생명으로 일어난 것을 느꼈다.

그날 오후에, 나는 정규 교인으로 교회에 입교되었다. 한 젊은 부인이 또한 교회에 입교하기 위한 후보자로 내 곁에 서 있었다. 그 자매의 손가락에서 반짝이고 있는 금반지와, 그의 귀에 달려 있는 크고 현란한 귀걸이를 보기 전까지는 나는 마음이 평안하고 행복했다. 그의 모자가 조화들로 꾸며져 있고, 나비 넥타이와 깃털 등으로 된 값진 리본으로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는 것을 또한 보았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라고 공언하는 자에게 나타난 이 같은 허영적 과시 때문에 나의 기쁨은 좌절되었다.

나는 목사가 이 자매에게 조용한 말로 책망하거나 충고해 주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그는 그 여자의 현란한 의복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 같았으며, 아무런 책망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친교의 악수를 나누었다. 보석으로 장식된 그 손은 그리스도의 대표자에 의하여 굳게 쥐어졌다. 그리하여, 우리의 이름은 다 같이 교회의 녹명책에 등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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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 오직 선행으로 하기를 원하라” (딤전 2:9, 10) 는 사도의 말을 기억할 때, 이 경우는 나에게 적지 않은 어려움과 시련을 주었다. 이 성경의 교훈은 내가 헌신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존경하던 자들과, 경험에 있어서 나보다 훨씬 더 오래 된 자들에 의하여 공공연하게 무시되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세상 사람들의 화려한 의복을 본받는 것이 내가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정말로 죄악적인 일일 것 같으면, 분명히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그 사실을 이해하고 성경의 표준을 따라야 할 것이었다. 그렇지만, 나 자신은 내가 확신하고 있는 의무를 따르기로 결심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신 시간과 재물을 우리의 몸을 꾸미는데 바치는 일이 복음의 정신에 위배되는 것이며, 겸손과 극기가,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으로 죄의 용서를 받은 자들에게 더욱 적합한 것으로 느낄 수밖에 없었다.

3 장 — 절망감

1842년 6월에, 밀러 씨는 포틀랜드에서 두번째 전도 강연회를 하게 되었다. 나는 낙망 가운데 떨어져, 구주를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번 강연에 참석하는 것을 큰 특권으로 생각했다. 이 두번째의 강연은 첫번째보다 더 큰 흥분을 그 도시에 일으켰다. 불과 소수를 제외하고, 여러 교파들은 밀러 씨에 대하여 교회의 문을 닫았다. 여러 강단에서 나온 많은 설교들이, 이른바 그 설교자의 광신적 오류를 폭로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열광적인 청중들이 무리를 지어 그 모임에 참석하였지만 많은 사람들이 집회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회중들은 이상하게도 조용하고 주의력을 집중했다. 그의 설교 방법은 어조가 화려하거나 웅변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는 청중들의 부주의한 무관심을 깨우쳐 주는 분명하고 놀라운 사실들을 취급했다. 그는 그의 말과 이론을 전개해 갈 때, 성경의 증거로 그것들을 입증했다. 그의 말에는 확신시켜 주는 능력이 따랐으므로, 진리의 말로써 청중들에게 인상을 지어 주는 듯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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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예의 있고 동정 깊은 사람이었다. 집 안에 있는 좌석이 다 채워지고 강단과 강도상 주변의 장소들까지 사람들로 메워진 것처럼 보였을 때, 나는 그가 강도상에서 복도로 걸어 내려가서 허약한 노인들이나 부인들의 손을 쥐고 그들에게 좌석을 찾아 준 후 다시 돌아가서 설교하는 것을 보았다. 그가 “밀러 아버지” 라고 불리어진 것은 정말로 올바른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는 봉사의 대상이 된 자들을 자상하게 돌보고, 태도에 애정이 깊고, 온화한 성격과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흥미있는 설교가였으므로, 이른바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에게 똑같이 적절하고 유력하였다. 때때로, 고통스러울 정도의 엄숙함이 그의 집회에 파급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굴복하였다. 백발이 성성한 남자들과 나이 많은 할머니들이 떨리는 발걸음으로, 설교단이 가까운 자리를 찾았다. 장년들, 청년과 어린이들은 깊은 감동을 받았다. 기도의 제단에서 탄식하고 울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혼합되었다.

나는 하나님의 종이 한 엄숙한 말들을 믿었다. 동시에, 그 말들이 반대를 당하거나 조롱 거리가 되는 것을 볼 때 마음이 아팠다. 나는 자주 그 집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미구에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을 믿었다. 그러나, 큰 걱정은, 그분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다. 나는 끊임없이 마음의 성결에 대한 문제를 숙고하고 있었다. 나는 무엇보다, 이 큰 축복을 얻어서 하나님께 완전히 가납된 사실을 느끼고자 열망했다.

나는 감리교인들에게서 성화에 관하여 많은 것들을 들었다. 나는 강력한 정신적 흥분 때문에 육체적 힘을 잃어버리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성화의 증거라고 하는 말을 들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기 위하여 무엇이 필요한지 깨달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지금 곧 예수님을 믿어라! 그분께서 그대를 지금 받아 주신다는 사실을 믿어라!” 하고 내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전신을 감전시킨 듯이 보이는 축복을 받은 것으로 믿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내 마음의 완고함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난 마음의 희열을 경험할 수 없게 하지나 않는지 의아하게 여겼다. 내 자신이 그 사람들과 다르고, 완전한 마음의 성결에서 오는 기쁨을 영원히 받지 못할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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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의 (稱義) 와 성화에 관한 나의 견해는 애매했다. 이 두 상태는 분리되고 서로 구분되어 나의 마음에 제시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 두 말의 차이를 깨닫지 못하고 그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 설교자들의 모든 설명은 나의 어려움을 증가시켰다. 나는 내 자신을 위하여 축복을 주장할 수 없었다. 그리고, 감리교에서만 그것을 발견해야 하는지, 재림집회에 출석함으로, 무엇보다도 내가 바라던 바 거룩하게 하는 하나님의 영으로부터 내 자신을 차단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의아해 했다.

나는 여전히, 거룩하게 되었노라고 주장하는 자들 중 몇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에 관한 주제가 소개될 때 못마땅한 정신을 나타내는 것을 보았다. 이런 일은 그들이 공언한 거룩함의 표현이 아닌것처럼 보였다. 나는 왜 강단에 선 목사들이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왔다는 교리를 그처럼 반대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신조의 전파에는 개혁이 따랐으며, 가장 헌신적인 목사들과 평신도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로 받아들였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한 자들은 그분의 오심에 대한 소식을 받아들일 준비를 갖추고 그 일이 가까웠음을 즐거워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들이 칭의라고 부른 것만을 주장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는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하나님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읽었다. 그런데, 내가 영생에 대한 확신을 얻기 전에 도달해야 할 더 높은 목표가 있었다. 나는 그 문제를 계속해서 연구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리스도께서 미구에 오실 것을 믿었고, 그분께서 당신을 만나기에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 있는 나를 발견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정죄의 말씀이 밤낮 귀에 울렸고, 하나님을 향한 내 자신의 계속적인 부르짖음은, 내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까 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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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마음속에서는 하나님의 공의가 그분의 자비와 사랑을 가리워 버렸다. 나는 영원히 불타는 지옥을 믿도록 가르침을 받아 왔다. 그리고, 나의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을 수 없다는 것과, 내가 영원히 잃어버린바 될 것이라는 무서운 생각이 언제나 내 앞에 있었다. 지옥에 있는 영혼들에 관하여 들은 무서운 이야기는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져 있었다. 강단에 선 목사들은 잃어버린 자의 상태에 관하여 생생하게 묘사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한 자 외에는 아무도 구원하고자 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쳤다. 하나님의 눈은 언제나 우리에게 머물러 있고, 모든 죄는 기록되고 그 죄에 합당한 벌을 받게 되어 있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무한한 지혜로 정확하게 책에 기록하고 계시므로,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성실하게 기록되었다.

사단은 그의 희생물을 사로잡아 가장 깊은 고통의 밑창으로 떨어뜨리고, 거기서 영원히 불타는 지옥의 공포 가운데 빠져 있는 우리의 고통을 보고 기뻐 날뛰는 자로 나타나 있다. 그 곳에는 수천 수만 년의 고통 후에, 타오르는 불길이 몸부림 치는 희생자들을 표면으로 휘감아 올리면, 그들은 “오, 주님! 얼마나, 얼마나 오랫동안 이런 일이 계속됩니까” 라고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 때, “영원토록” 이라는 대답이 큰 소리로 끝없이 깊은 구렁으로 내려갈 것이다. 다시 용해된 물결이 잃어버린 자들을 삼켜버리고, 그들을 결코 꺼지지 않는 불바다 속으로 빠뜨려 버릴 것이다.

이처럼 무서운 이야기를 들을 때, 나의 상상력은 너무도 예민해졌기 때문에 땀이 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지옥의 고통을 이미 느끼는 것처럼 생각되었으므로, 고통의 부르짖음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목사는 생애의 불확실성을 논하곤 하였다. 한순간에 우리는 여기에,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지옥에, 혹은 한순간에는 땅에, 그리고 다음 순간에는 하늘에 있을 수도 있다. 우리는 불못을 택하여 마귀를 동료로 삼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늘의 기쁨을 택하여 천사들을 우리의 친구로 삼을 것인가? 우리는 영원토록 잃어버린 영혼들의 부르짖음과 저주의 음성을 들을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예수님의 노래를 부를 것인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사랑으로 당신의 피조물을 사랑하시며 당신의 나라에서 그들을 구원하기를 바라시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신 죄인들의 친구가 아니고, 징죄받은 자들의 고통을 기뻐하는 폭군처럼 나의 마음에 제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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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감정은 매우 예민했다. 나는 어떤 생물에게 고통을 주는 것을 두려워했다. 나는 동물들이 학대받는 것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아마도 나의 동정은, 내 자신이 무분별한 잔인성의 희생물이 되어 나의 어린시절을 어둡게 만든 상처를 초래한 고통 때문에 더욱 쉽게 일어났던 것 같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당신의 형상대로 창조하신 피조물들의 고통을 보고 기뻐하신다는 생각을 마음에 품게 될 때, 흑암의 벽이 나를 그분에게서 분리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우주의 창조주께서 악인들을 지옥에 빠뜨려 거기서 영원토록 불타게 한다는 것을 깊이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두려움 속에 묻히게 되었고, 그처럼 잔인하고 포악한 분이 나를 죄악의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나는 정죄받은 죄인의 운명을 내 것으로 받아들여, 영원토록 지옥의 불꽃을 견디되 하나님 자신이 존재하는 한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생각은 미치지 않을까 염려될 만큼 나의 마음에 깊이 새겨졌다. 나는 말 못하는 짐승을 부러워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곤 했다. 왜냐하면, 짐승들은 죽음 후에 형벌 받을 영혼이 없기 때문이었다. 여러 번,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했다는 마음이 생겼다.

완전한 흑암이 나를 덮었고, 그 흑암의 그늘에서 나올 길이 없는 것처럼 보였다. 만일, 지금 내가 진리를 이해하고 있는 것처럼 그 진리가 제시되었을 것 같으면, 나는 많은 곤란과 슬픔에서 구제받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사랑을 더 많이 생각하고 그분의 엄격한 공의를 적게 생각했을 것 같으면, 하나님의 품성의 아름다움과 영광이 창조주에 대한 깊고 열렬한 사랑으로 나를 감동시켰을 것이다.

그 후 나는, 정신병원에 입원한 많은 사람들이 내 자신의 경험과 유사한 경험에 의하여 그렇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들의 양심은 죄책감으로 충격을 받고, 그들의 떨리는 믿음은 약속된 하나님의 용서를 감히 주장하지 못했다. 지옥에 대한 정통적 설명이 그들의 피를 혈관 속에서 굳어지게 하고 인상이 그들의 기억의 판 (板) 위에서 태워지는 것처럼 보일 때까지, 그들은 그 이야기를 들었다. 자나 깨나 무시무시한 장면이 그들 앞에 언제나 펼쳐져 있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현실은 상상 속에서 상실당하고, 그들은 다만 황당 무계한 지옥에서 동그라미를 그리며 피어오르는 불꽃을 보고, 멸망하는 자들의 부르짖음만을 들었다. 이성 (理性) 은 물러나고, 뇌는 무서운 꿈에서 나온 거친 환상으로 가득 채워졌다. 영원한 지옥에 대한 교리를 가르치는 자들은 그처럼 잔인한 신조에 대한 그들의 권위에 대해 더욱 면밀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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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공중 기도를 한 번도 드려 본 적이 없고, 기도회에서 다만 소심하게 몇 마디의 기도를 했을 뿐이었다. 이제, 나는 우리의 작은 사교집회에서 기도로써 하나님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러나, 마음이 혼란해져 생각을 표현하지 못할까 두려워서 감히 그렇게 하지 못했다. 한편, 그렇게 해야 한다는 의무감이 너무도 강력하게 마음에 새겨졌으므로, 은밀하게 기도하고자 시도하면 나는 마치 하나님을 우롱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왜냐하면, 내가 그분의 뜻을 순종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절망이 나를 억눌렀다. 3주일의 긴 기간 동안, 한 줄기의 빛도 나를 두르고 있는 흑암을 뚫지 못했다.

마음의 고통은 심하였다. 때때로 온 밤 동안, 나는 눈을 감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나의 쌍동이 자매가 먼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그가 잠이 들면 조용히 침대를 떠나 마루 위에 무릎을 꿇고,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말 없는 고민을 안고 조용히 기도를 드리곤 했다. 그럴지라도, 영원히 불타는 지옥에 대한 공포는 언제나 나를 떠나지 않았다. 나는 이런 상태로 오래 살 수 없음을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죽어서 죄인의 무서운 운명을 당할 수도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은 것을 깨달은 사람들을 얼마나 부러워했던가! 그리스도인의 소망은 고민하는 나의 심령에 얼마나 귀중하게 보였던가!

나는 빈번히 기도로써 온 밤을 새우며, 표현할 수 없는 고민과, 어떤 방법으로도 묘사할 수 없는 절망을 안고 신음하며 떨고 있었다.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 이것이 나의 탄원이었다. 그리고, 나는 가련한 세리처럼 감히 하늘을 향하여 눈을 들지 못하고 마루 위에 얼굴을 숙였다. 나의 신체는 극도로 허약해졌다. 그러나, 고통과 절망을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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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절망의 상태에 있는 동안, 나는 마음에 큰 감명을 준 하나의 꿈을 꾸었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한 성전을 보았다. 때가 찼을 때, 그 성전에서 피난처를 얻은 자들만이 구원을 받을 것이었다. 바깥에 남아 있는 모든 자들은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었다. 바깥에서 제각기 여러 길을 가고 있는 무리들은 성전으로 들어가는 자들을 조롱하고 비웃었다. 그리고, 그들은 안전에 대한 이런 계획은 교묘한 속임수이며 사실상 피해야 할 아무런 위험도 없다고 말하였다. 그들은 성전 안으로 급히 들어가고 있는 어떤 사람들을 들어가지 못하도록 방해하고자 붙잡기까지 하였다.

조롱받을 것이 두려워서, 나는 그 무리들이 흩어져 버릴 때까지 기다리든지 그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들어가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사람의 수는 줄어드는 대신에 증가했다. 그러므로, 나는 너무 늦어질까 두려워서 빨리 집을 떠나 군중을 뚫고 앞으로 나아갔다. 성전에 이르는 걱정 때문에, 나를 둘러싸고 있는 무리들을 보지도 않고 그들에게 유의하지도 않았다. 건물에 들어가자, 나는 그 거대한 성전이 하나의 큰 기둥으로 받쳐져 있고, 그 기둥에 난도질을 당하여 피가 흐르는 어린 양 한 마리가 붙들어 매어져 있는 것을 보았다. 참석한 우리들은 이 어린 양이 우리 때문에 찢기고 상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성전에 들어간 모든 사람들은 그 앞에 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해야만 했다.

그 어린 양 바로 앞에 높은 좌석들이 있었는데, 거기에는 매우 행복하게 보이는 한 무리의 사람들이 앉아 있었다. 하늘의 빛이 그들의 얼굴을 비추는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마치 천사들의 노래처럼 보이는 즐거운 감사의 노래를 불렀다. 이 사람들은 어린 양 앞에 나와서 그들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받고, 이제는 어떤 기쁜 일을 즐거운 기대 속에서 기다리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 건물 안에 들어간 후에도 일종의 공포가 나를 엄습하고, 내 자신을 이 사람들 앞에 낮추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일종의 수치심이 밀려왔다. 그러나, 나는 앞으로 나아가도록 강요당한 것처럼 느껴졌으므로, 어린 양을 대면하기 위하여 기둥 주위를 천천히 돌고 있었다. 그 때 나팔소리가 나고, 성전이 흔들리고, 모여 있던 성도들에게서 승리의 환성이 터지고, 놀랍게 밝은 빛이 건물을 비추었다. 그런 다음에, 모든 것이 심한 흑암에 싸였다. 기뻐하던 사람들은 그 밝은 빛과 함께 모두 사라져 버리고, 나 혼자 조용한 밤의 공포 가운데 남게 되었다. 나는 마음의 번민을 안고 깨어 있었으며, 꿈을 꾸고 있었다는 것을 거의 깨달을 수 없었다. 나의 운명은 결정되고, 주님의 영이 나를 떠나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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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일이 있은 지 얼마 후, 나는 또 다른 꿈을 꾸었다. 나는 얼굴을 양손에 파묻고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하면서 비참한 절망 가운데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만일, 예수님이 지상에 계실 것 같으면, 나는 그분께 나아가서 내 자신을 그분의 발 앞에 던지고 나의 모든 고통을 그분께 말할 것이다. 그분께서는 내게서 돌아서지 않으시고, 자비를 베풀어 주실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언제나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게 될 것이다. 바로 그 때에 문이 열리고, 아름다운 모습과 얼굴을 한, 한 사람이 들어왔다. 그는 나를 동정 어린 모습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너는 예수님을 뵙고자 하는가? 그분은 여기에 계신다. 네가 원하기만 하면 그분을 뵐 수 있다. 네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가지고 나를 따라오라.”

나는 말할 수 없는 기쁨으로 그 말을 들었다. 그리고, 나의 적은 모든 소유물, 곧 모아 두었던 온갖 자질구레한 장신구들을 기쁜 마음으로 챙겨서 안내자를 따랐다. 그는 나를 가파르고 약해 보이는 계단으로 인도했다. 내가 계단을 오르기 시작하자, 그는 나에게 눈을 위로 고정시킴으로 현기증이 나서 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주의를 주었다. 그 가파른 층계를 올라가고 있던 많은 다른 사람들이 정상에 이르기 전에 떨어졌다.

우리는 마침내 마지막 발판에 이르러 문 앞에 섰다. 거기서, 나의 안내자는 내가 가지고 온 모든 것을 버리도록 지시했다.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그것들을 내려놓았다. 그러자, 그는 문을 열고 들어가라고 명령했다. 그 순간, 나는 예수님 앞에 섰다. 그 아름다운 얼굴과, 자비와 위엄을 갖춘 그 표정으로 보아 그분이 예수님이심에 틀림이 없었다. 그분의 시선이 나를 주목할 때, 나는 즉시 그분께서 내 생애의 모든 사정과, 나의 마음속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잘 알고 계신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는 감찰하시는 그분의 눈을 견디어 낼 수 없음을 느끼고, 그분의 시선에서 내 자신을 숨기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그분은 미소를 지으시고 가까이 오셔서, 나의 머리에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 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부드러운 음성은 이전에 결코 경험한 적이 없는 행복감으로 나의 마음을 전율시켰다. 나는 너무 기뻐서 말을 할 수 없었고, 감격에 압도되어 그분의 발 앞에 엎드렸다. 내가 속절없이 그 곳에 누워 있는 동안, 아름답고 영광스런 장면이 내 앞으로 지나갔다. 그리하여, 나는 하늘의 안전과 평안에 이르러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마침내 기력이 회복되어, 나는 일어났다. 예수님의 사랑스런 눈은 여전히 내게 머물러 있었고, 그분의 미소는 기쁨으로 나의 심령을 채웠다. 그분의 임재는 거룩한 경외심과 표현할 수 없는 사랑으로 나의 마음을 채웠다.

교회증언 1권 pp. 1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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