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1 9-18 (1일)

교회증언 1권

전기 스케치

1 장 — 나의 어린 시절

나는 1827년 11월 26일, 메인 주 골햄에서 태어났다. 나의 부모 로버트 하몬과 유니스 하몬은 여러 해 동안 이 주 (州) 에서 살았다. 일찌기, 그들은 열렬하고 헌신적인 감리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그들은 그 교회에서 두드러진 위치에 있었으며, 죄인들의 회개를 위하여 활동하였다. 그리고, 40년 동안에 걸쳐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켰다. 그들은 이 기간에 여덟 명의 자녀가 모두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그 울 안으로 모여드는 것을 보는 기쁨을 누렸다. 그러나, 재림에 대한 그들의 확고한 견해 때문에, 그 가족은 1843년에 감리교회에서 나오게 되었다.

내가 아직 어릴 때, 나의 부모는 골햄에서 메인 주 포틀랜드로 이사했다. 아홉살 되던 해, 이 곳에서 나의 전 생애에 영향을 미친 하나의 사고가 일어났다. 나는 나의 쌍동이 자매와 급우 한 명과 함께 포틀랜드시에 있는 한 공유지 (共有地) 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 때, 약 13세쯤 된 소녀가 사소한 일로 화를 내면서 우리를 쫓아와 때리려고 했다. 우리 부모는 우리에게, 어떤 경우에도 싸우지 말며, 만일 공격을 당하거나 다칠 위험이 있으면 즉시 집으로 달려오라고 가르쳐 오셨다. 그래서, 우리는 힘을 다하여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나, 그 소녀는 돌을 손엘 쥐고 우리를 급히 따라왔다. 나는 그 아이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보려고 얼굴을 돌렸다. 그 순간, 그 소녀는 돌을 던졌고, 그것은 나의 코에 맞았다. 나는 돌에 맞자 아찔해지면서 정신을 잃고 땅에 쓰러졌다.

-10-

의식이 돌아왔을 때, 나는 내가 어떤 상점 안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나의 옷은, 코에서 흘러나와 마룻바닥으로 흐르고 있는 피로 젖어 있었다. 어떤 친절한 사람이 나를 그의 마차에 태워서 집으로 데려다 주겠다고 했으나, 나는 힘이 빠진 것을 깨닫지 못하고, 피로 그의 마차를 더럽히기보다는 걸어서 가겠다고 말했다. 거기에 있던 사람들은 상처가 매우 심한 것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대로 하도록 버려두었다. 그러나, 불과 몇 발자국도 걷지 못해, 나는 현기증이 나고 어지러웠다. 나의 쌍동이 자매와 급우가 나를 업고 집으로 왔다.

나는 사고 후 얼마 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아무런 기억이 없다. 어머니는, 내가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3주일 동안 혼수 상태로 누워 있었다고 말했다. 어머니 외에는 아무도 내가 회복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어머니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내가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하셨다. 나에게 매우 큰 관심을 가지고 있던 한 친절한 이웃은, 한때 내가 죽는 줄로 생각했다. 그녀는 나를 위하여 수의를 사 주려고 했지만 어머니는 아직 아니라고 하면서, 웬지 내가 죽지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의식이 다시 회복되었을 때, 나는 마치 잠을 자고 있었던 것처럼 느꼈다. 나는 사고가 났던 것을 기억하지 못했으므로 나의 질병의 원인을 몰랐다. 힘을 약간 얻기 시작했을 때, 나는 방문 온 사람들이 “가엾어라!” , “전혀 몰라보겠구나” 등의 말을 하는 것을 듣고 이상하게 생각했다. 나는 거울을 갖다 달라고 했다. 거울을 들여다보는 순간, 나는 내 모습이 변한 데 대해 깜짝 놀랐다. 나의 얼굴 생김새가 모두 변한 것처럼 보였다. 코뼈가 부러졌기 때문에 그처럼 흉한 모습으로 바뀌었던 것이다.

평생 불행하게 지낼 것을 생각하니 견딜 수 없었다. 도무지 사는데서 기쁨을 찾을 수 없었다. 나는 살기를 원치 않았다. 그러나, 죽기도 두려웠다. 왜냐하면,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우리 집에 찾아온 친구들은 딱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더니, “망쳤다” 고 말하면서, 나를 그렇게 만든 소녀의 아버지를 고소하라고 나의 부모에게 권했다. 그러나, 어머니는 화평을 원하셨다. 그는, 만일 그렇게 해서 나의 건강과 모습이 원상태로 회복된다면 무엇인가 얻는 것이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바에야 그런 진언을 따름으로 원수를 만드는 것이 최선의 길이 아니라고 말하였다.

-11-

의사들은 나의 콧속에 은철사를 넣음으로 그 형체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하면, 심한 고통이 따르는데다, 또 내가 회복이 의심스러울 정도로 많은 피를 흘리고 신경에 심한 충격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별 효과가 없을지도 모른다며 염려하였다. 나는 피골 (皮骨) 이 상접해졌다.

이 때, 나는 죽음을 위하여 준비시켜 달라고 주님께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리스도인 친구들은 집을 찾아올 때마다 어머니에게, 죽음에 관하여 내게 이야기해 주었는지 물어 보곤 하였다. 나는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각성하였다. 나는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었다. 그래서,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열렬하게 기도했다. 그 결과, 나는 마음의 평안을 느꼈으며, 모든 사람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모든 사람들이 죄를 용서받고,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처럼 그들도 그분을 사랑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생각했다.

눈이 대지를 덮은 어느 겨울날 저녁에, 하늘 위쪽은 환하게 빛나는데 아래쪽은 붉은 색을 띠고 눈을 핏빛으로 물들이며 성난 듯 열렸다 닫혔다 하는 것처럼 보이던 일을 나는 생생하게 기억한다. 동네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침대에서 나를 안아 창문가로 데려갔다. 나는 매우 기뻤다. 나는 예수님께서 오고 계신 것으로 생각하고 그분을 보고자 열망했다. 마음이 벅차 올랐다. 나는 기뻐서 손뼉을 치면서, 나의 고통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 실망했다. 왜냐하면, 그 이상한 광경은 하늘에서 사라졌고, 다음날에도 태양이 평상시와 다름없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나는 매우 천천히 원기를 되찾았다. 어린 친구들과 어울려 놀 수 있게되자, 나는 우리의 외모가 때때로 친구들에게서 받는 대우를 다르게 해준다는 쓰라린 교훈을 배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내가 불행한 일을 당하던 당시, 아버지는 조지아에 가 계셨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나의 형제 자매를 포옹하였다. 그리고, 내가 어디 있는지 물었다. 내가 겁을 먹고 뒷걸음질을 치자, 어머니가 나를 가리켰다. 그러나, 아버지는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에게는 내가, 불과 2, 3개월 전에 건강하고 행복한 아이로 남겨 두고 떠난 그 어린 엘렌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이것은 나의 감정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 그러나, 비록 마음은 찢어지는 듯하였으나, 나는 즐거운 표정을 지으려고 애썼다.

-12-

그 어린 시절에 여러 번, 나는 나의 불행을 민감하게 느끼게 되었다. 나의 감정은 매우 예민해졌으며 이것은 나에게 큰 불행을 가져다 주었다. 때때로 상처받은 자존심을 안고 정신적으로 상하고 가련하게 된 채, 나는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 내가 날마다 겪지 않으면 안 될 시련들을 우울한 마음으로 깊이 생각했다.

눈물을 흘림으로 고통이 가벼워지는 일도 내게는 없었다. 나는 나의 쌍동이 자매처럼 쉽게 울 수가 없었다. 비록 마음이 무겁고 마치 찢어지는듯 아팠으나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나는 종종, 울어서 슬픔을 떨쳐버리면 고통에서 상당히 벗어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때때로, 친구들의 친절한 동정이 나의 우울을 씻어 주었고, 나의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괴로운 짐을 잠시나마 제거해 주었다. 그 당시 내게는 세상의 쾌락이 얼마나 헛되고 공허하게 보였던가! 나의 어린 친구들의 우정은 얼마나 변하기 쉬운 것이었던가! 이 어린 학우들도 넓은 세상의 대다수 사람들과 다를 것이 없었다. 예쁜 얼굴, 아름다운 의복은 그들의 마음을 끈다. 그러나, 불행이 이것들을 앗아 가게 해보라. 그러면, 덧없는 우정은 냉랭해지거나 깨어지고 만다. 그러나, 내가 구주께로 돌아갔을 때, 그분께서는 나를 위로해 주셨다. 나는 고통 중에서 열렬하게 주님을 찾았으며, 또 위로를 받았다. 나는 예수님께서 나 같은 사람도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확실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건강은 속절없이 손상되는 것처럼 보였다. 2년 동안, 나는 코를 통하여 숨을 쉴 수 없었고, 학교도 얼마 출석하지 못했다. 나에게는 공부하는 것과 배운 것을 잊어버리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나에게 불행을 초래한 그 소녀는 담임 교사에 의하여 시중 당번에 임명되었다. 그의 임무에는 나의 필기와 다른 학습을 도와 주는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나는 그 아이가 내게 입힌 큰 상처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도록 하려고 주의하였지만, 그 아이는 언제나 그 일에 관하여 진정으로 미안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는 나에게 친절했으며, 절대로 화를 내지 않았다. 그리고, 내가 어려운 역경 가운데서 교육을 받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보면서, 슬픈 마음을 금치 못하는 것 같았다.

-13-

신경 조직이 쇠약해지면서 손이 떨렸기 때문에, 나는 글을 조금밖에 쓸 수 없었으며, 맥없는 손으로는 단 한 장의 종이도 채울 수 없었다. 공부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책장에 있는 글들이 모두 흔들거리고 이마에 커다란 땀방울이 맺혔으며 피로와 현기증이 엄습하곤 하였다. 나는 심한 기침을 했으며, 신체의 전 조직이 쇠약해진 것 같았다. 교사들은 건강이 회복될 때까지 학교를 떠나서 공부를 쉬도록 권했다. 허약함에 못이겨 공부를 그만두고 교육받는 희망을 포기하기로 결정하는 것은 나의 어린 생애에서 가장 어려운 투쟁이었다.

3년 후에, 나는 다시 교육을 받기로 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시작하려고 하자, 건강이 급속히 나빠졌다. 그래서, 학교에 머물러 있으면 생명이 희생될 것처럼 보였다. 나는 열 두 살 후로는 학교에 다니지 않았다.

학자가 되고자 하는 나의 야망이 워낙 컸었기 때문에, 나는 깨어진 희망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고, 평생 동안 쓸모 없는 사람으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 때 나의 운명을 이해할 수 없어서, 이처럼 내게 고통을 안겨 주는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때때로 불평하였다. 만일, 내가 어머니를 향하여 마음을 열었을 것 같으면, 그가 나를 교훈해 주고 위로해 주고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가족과 친구들이 나를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아서, 고통스런 감정을 그들에게 숨겼다. 앓고 있는 동안에 내가 기꺼이 가졌던, 구주의 사랑에 대한 기쁜 신뢰도 사라져 버렸다. 세속적 즐거움에 대한 기대가 허물어지면서, 하늘은 나에게 닫혀진 것처럼 보였다.

-14-

2 장 — 나의 회심

1840년 3월, 윌리엄 밀러가 메인 주 포틀랜드를 방문하여,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그의 첫번째 설교를 하게 되었다. 그 설교는 큰 화제가 되었으며, 밀러 씨가 사용하고 있던 캐스코 가 (街) 의 크리스찬 교회에는 밤낮으로 사람들이 운집했다. 이들 집회에 열광적인 흥분은 없었으나, 그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은 마음이 더없이 숙연해짐을 느꼈다. 도시에서만 큰 관심을 끈 것이 아니고, 시골 사람들도 도시락을 가지고 몰려와서 아침부터 저녁 집회가 마칠 때까지 남아 있었다.

나는 친구들과 함께 그 집회에 참석하여, 불과 몇 년 뒤인 1843년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는 놀라운 기별을 들었다. 밀러 씨는 예언들을 정확하게 풀이해 나갔으며, 이것은 청중들의 마음에 확신을 불어넣어 주었다. 그는 예언적 기간들을 강조하고, 그의 주장을 분명하게 해주는 많은 증거들을 제시했다. 그런 다음에, 준비되지 않은 자들을 향하여 경고와 함께 엄숙하고 힘있는 호소를 하면, 청중들은 마치 매혹된 것처럼 사로잡혔다.

죄인들이 구주를 찾고, 미구에 있을 무서운 사건들을 위하여 준비할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해주는 특별 집회들이 열렸다. 공포와 회개가 온 도시에 퍼졌다. 기도회들이 열리고, 여러 교파들 사이에 공통적으로 각성이 일어났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리스도의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가르침에서 나온 영향을 어느 정도 느꼈기 때문이었다.

죄인들에게, 구도자석으로 나오라는 초청이 주어지자, 수백 명의 사람들이 그 부름에 반응을 나타내었다. 나도 나머지 사람들 사이에서 무리를 뚫고 나가서, 진리를 찾는 자들과 자리를 함께 하였다. 그러나 나의 마음속에는,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로 불릴 자격이 전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자신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과, 아무에게도 나의 감정을 이해시킬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나는 그리스도인 친구들에게 조언과 도움을 구하지 못하였다. 그리하여, 나의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그들이 나의 참 상태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는 동안, 나는 쓸데없이 흑암과 절망 속에서 방황했다.

-15-

어느 날 저녁, 나는 오빠 로버트와 함께,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통치가 가까워 온다는데 대한 가장 감명 깊은 설교를 듣고, 이어서 그리스도인들과 죄인들에게, 심판과 주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라는 열렬하고 엄숙한 호소가 주어진 집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심령속은 들은 바에 의하여 요동하고 있었다. 마음속에 있는 죄책감이 너무 컸기 때문에, 나는 주님께서 집에 도착할 때까지 살려 두지 않으실 것으로 생각하고 두려워했다.

귀에서 이런 말들이 울리고 있었다. “여호와의 큰날이 가까웠다! 그분께서 나타나실 때 누가 설 수 있을 것인가!” 그 때,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이러했다. “오! 주님, 밤 동안에 저를 살려 주십시오. 저의 죄가운데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저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비로소 처음으로, 나는 나보다 두 살 위인 오빠 로버트에게 나의 감정을 설명해 주고자 노력했다. 나는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것을 깨닫기 전에는 쉴 수도 잘 수도 없노라고 말했다.

오빠는 즉시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가 침묵한 이유는 곧 내게 밝혀졌다. 그는 나의 고통에 동정하여 울고 있었다. 이것 때문에 그를 더욱 신뢰하게 되었으므로, 나는 생애가 감당하기에 그처럼 무겁게 보였던 때에 죽기를 바랐었다는 사실을 그에게 이야기했다. 그리고, 내가 현재의 죄 많은 상태로 죽음으로써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나를 공포로 가득 차게 했다는 것도 이야기했다. 나는 또한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괴로워하면서 보낸다면 그분께서 그 밤 동안에 나의 생명을 살려 주실 것인지 물었다. 그러자, 그는 대답했다. “네가 만일 믿음으로 그분께 구한다면 그분께서 그렇게 해주실 것이라고 나는 생각해. 나 역시 너와, 또한 내 자신을 위하여 기도하겠어. 엘렌, 우리가 오늘 저녁에 들은 말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돼.”

-16-

집에 돌아오자, 나는 긴 어두움의 시간 대부분을 기도와 눈물로 보냈다. 내가 마음을 친구들에게 숨기게 된 한 가지 이유는 낙심의 말을 듣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나의 희망이 너무도 적고 믿음은 너무도 약했기 때문에, 만일 어떤 사람이 나의 상태와 동일한 견해를 가지고 있다면 그것이 나를 절망 가운데로 빠뜨리지 않을까 두려워했다. 나는 구원을 받기 위하여 어떻게 해야 하며, 구주를 만나고 내 자신을 주님께 완전히 바치기 위하여 어떤 계단을 밟아야 할 것인지를 누군가가 내게 말해 주기를 열망하였다. 나는 그것을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하여 해야 할 중대한 일로 간주하고, 내 편에서 해야 할 어떤 특별한 노력을 그것이 요구하는 것으로 느꼈다.

마음은 여러 달 동안 그런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대개 부모님과 함께 감리교회의 집회에 참석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속한 재림에 관심을 갖게 된 후부터, 나는 캐스코 가 (街) 에서 열리는 집회에 참석했다. 그 다음 여름에, 부모님은 나를 데리고 메인 주 박스톤에서 열린 감리교 장막 집회에 갔다. 나는 거기서 주님을 열렬하게 찾고, 가능하면 죄를 용서받고자 결심했다. 나의 마음은 그리스도인의 소망과 믿음으로 주어지는 평안을 크게 갈망하고 있었다.

나는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라” 는 말씀을 근거로 한 설교를 들었을 때 크게 용기를 얻었다. 설교자는 그의 기별을 통하여, 소망과 공포 사이에서 흔들리고 있거나, 죄에서 구원을 얻고 그리스도의 용서의 사랑을 받고자 원하지만 소심한 마음과 실패의 공포 때문에 의심과 속박에 사로잡혀 있는 자들에게 말했다. 그는 하나님께 자신을 굴복시키고 지체 없이 그분의 자비를 얻고자 하는 자들에게 권면했다. 그들은 마치 아하수에로 왕이 그의 은혜의 표로 에스더에게 홀을 준 것처럼, 자비의 홀을 그들에게 주고자 하시는 은혜로운 구주를 발견할 수 있다. 주님 앞에서 떨고 있는 죄인에게 필요한 모든 것은 믿음의 손을 뻗어 그분의 은혜의 홀을 붙잡는 것이었다. 그렇게 붙잡을 때, 용서와 평안이 보장되었다.

-17-

하나님의 약속을 담대하게 주장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총을 받기에 더욱 합당한 사람이 되고자 기다리고 있는 자들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만이 죄에서 깨끗하게 해 주시고, 그분만이 우리의 범죄를 용서해 주실 수 있다. 그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께 나아오는 자들의 간구를 들으시고, 그들의 기도를 응답해 주시기로 친히 약속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은총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놀라운 일들을 해야 한다는 모호한 생각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모든 자아 의존은 헛된 일이다. 오직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결됨으로써 죄인은 소망에 넘치고 믿음 있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 이와 같은 말은 나를 위로해 주었고, 구원을 받기 위하여 반드시 해야 할 일에 대하여 깨닫게 해주었다.

이제, 나는 더욱 분명하게 나의 갈 길을 깨닫게 되고, 흑암은 지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죄를 용서받기 위하여 열렬하게 구하고, 주님께 내 자신을 완전히 바치고자 노력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의 가납하심에 대한 증거로 생각해 온 영적 황홀경을 경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이 이따금 큰 고통 가운데 빠졌다. 그러므로, 나는 그런 경험 없이 스스로 회개했다고 감히 믿을 수 없었다. 그것이 단순한 것이라는 교훈이 나에게 얼마나 필요했던가!

주님을 찾고 있는 다른 사람들과 함께 제단 앞에서 머리를 숙일 때, 나의 마음에서는 이런 말만 흘러나왔다. “예수님, 저를 도와 주시고 구원해 주십시오. 그렇지 않으면, 저는 죽게 됩니다. 저의 기도가 들으신바 되고 죄를 용서받기 전에는 간구하는 일을 결코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전에 없이 자신의 가련하고 속절없는 상태를 느꼈다. 그리하여, 무릎을 꿇고 기도하게 되자, 갑자기 나의 짐이 떠나가고 마음은 밝아졌다. 처음에는 두려운 느낌이 엄습했다. 그래서, 나는 고통의 짐을 다시 지고자 노력했다. 나에게는 기뻐하고 즐거워 할 권리가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에게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그분께서 지상에 계실 때 구원을 받기 위하여 불쌍한 자들이 그분께 왔던 것처럼 모든 슬픔과 불행과 시련을 가지고 그분께 갈 수 있다고 느꼈다. 나는 그분께서 나의 특별한 시련을 이해하시고 나를 긍휼히 여기셨다는 확신이 마음속에 생겼다. 나는 예수님의 눈에 그처럼 무가치한 자에게 나타내신 그분의 동정 어린 긍휼에 대한 이처럼 귀중한 보증을 결코 잊을 수 없다. 나는 기도하고 있는 사람들과 함께 머리를 숙인 그 짧은 시간에,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많이 그리스도의 거룩한 품성에 관하여 배웠다.

-18-

이스라엘의 한 어머니가 내게 와서 “얘야, 예수님을 발견했니?” 라고 물었다. 내가 “네” 라고 대답하고자 할 그 때, 그는 부르짖었다. “너는 정말로 발견했구나. 그분의 평안이 네게 있다. 나는 그것을 너의 얼굴에서 본다.” 나는 거듭거듭 내 자신에게 말했다. “이것이 신앙인가? 나는 잘못되지 않았는가?” 그것은 주장하기에 너무도 벅차고 너무도 훌륭한 특권인 것처럼 보였다. 비록 그것을 공공연하게 공언하기에는 너무 두려웠지만, 구주께서 나를 축복하시고 나의 죄를 용서해 주셨음을 느꼈다.

미구에 집회는 끝나고, 우리는 집을 향하여 출발했다. 나의 마음은 우리가 들은 설교와 권면과 기도로 충만해졌다. 천연계에 있는 모든 것이 바뀌어진 것처럼 보였다. 구름과 비가 집회 동안의 대부분의 시간을 차지하고 있었다. 나의 감정은 기후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이제는 태양이 밝고 명랑하게 비치고 빛과 온기를 세상에 쏟아 놓았다. 나무들과 풀은 더욱 생기를 띠고, 하늘은 더한층 푸르다. 대지는 하나님의 평화 아래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았다. 그와 같이, 의의 태양이신 그리스도의 빛은 나의 마음의 구름과 흑암을 뚫고 들어가서 그 속에 있는 어둠침침한 것을 몰아내 버렸다.

그것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분의 영으로 생기를 얻어야 한다고 나에게 말해 주는 것 같았다.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이 변화를 이룬 것처럼 보였다. 나무들은 더욱 아름답고, 새들은 어느 때보다 더 즐겁게 노래를 불렀다. 그것들은 노래로써 창조를 찬양하는 것 같았다. 나는 이 행복이 지나가 버림으로 내게 대한 예수님의 사랑의 귀중한 증거를 상실해 버리지나 않을까 염려되어, 이야기하기를 삼가지 않았다.

포틀랜드에 있는 우리 집에 가까이 왔을 때, 우리는 거리에서 일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지나쳤다. 그들은 일상의 화제로 피차간에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나, 나의 귀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았으므로, 그들의 말은 감사와 기쁜 호산나처럼 들려왔다. 나는 어머니께로 얼굴을 돌리고 말했다. “왜 이 사람들은 모두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장막회에 참석하지는 않았는데요.” 나는 그 때에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여 있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하였다. 어머니 자신이 경험한 바와 유사한 경험을 회상시켜 준 나의 단순한 말을 들을 때, 그의 얼굴에는 부드러운 미소가 어려 있었다.

교회증언 1권 pp. 9-1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