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9 249-258 (472일)

엄숙한 책임

십일조는 하나님에 의하여 그분 자신을 위해 거룩하게 간수된다. 그것은 그분의 금고에 들어가서 사업에 임하고 있는 복음의 일꾼들을 부양하기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십일조가 하나님께 속한 부분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기 때문에 주께서는 오랫동안 도적질을 당해 오셨다.

어떤 사람들은 불만을 품어오던 중 이렇게 말했다. “나는 더 이상 십일조를 바치지 않을 것이다. 사업의 중심부에서 일을 처리하는 방법을 신임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면 일의 처리가 옳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이 하나님께 도적질을 하겠는가? 그대들의 불평을 솔직하고 공공연하게, 올바른 정신으로 당사자들에게 말하라. 일을 바로 잡고 질서 있게 해 달라는 간청을 하라. 그러나 하나님의 사업에서 물러서지는 말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바르게 하고 있지 않다는 이유로 그대들의 불성실이 입증되지 않게 하라.

말라기서 3장을 주의 깊이 읽고 하나님께서 십일조에 관하여 무엇이라고 말하는지 알아 보라. 만일 우리의 교회들이 주님의 말씀 위에 서서 십일조를 그분의 금고에 드리는 데 성실할 것 같으면 더 많은 일꾼들이 목회 사업에 임하도록 격려를 받게 될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고갈된 금고에 대해서 듣지 않았을 것 같으면 더 많은 사람들이 목회 사업에 헌신하게 되었을 것이다. 만일 이기적인 마음들과 손들이 십일조를 바치지 않고 억제해 두지 않았거나 십일조를 다른 분야의 사업을 돕기 위해 사용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주님의 금고에는 풍성한 공급이 있었을 것이고, 사실 그렇게 되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보유된 자원은 그와 같이 아무렇게나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십일조는 주님의 것이다. 그러므로 십일조에 참견하는 자들은 회개하지 않으면 그들의 하늘 보화를 잃어버림과 동시에 벌을 받게 될 것이다. 십일조가 주께서 가야 할 것으로 말씀하신 한 길 외에 다른 여러 길로 전환되므로 사업이 더 이상 방해받지 않아야 한다. 다른 분야의 사업을 위한 준비도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들이 지원을 받아야 하되, 십일조로부터 받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변치 않으셨다. 십일조는 여전히 목회자의 부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새 지역의 개척은 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이상의 목회적인 효능을 요구한다. 그러므로 금고에는 자금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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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로 나아가는 자들에게는 이상하게도 등한히 여겨지고 있는 하나의 엄숙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설교하기는 좋아하지만, 교회들에 대해 개인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 하나님께 대한 책임과 의무에 관한 교훈, 특별히 정직하게 십일조를 내는 일에 관한 교훈이 크게 필요하다. 우리의 목사들이 그들의 활동에 대한 보수를 즉시 받지 못하면 불만을 품게 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곳간에 일꾼들을 유지할 양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할 것인가? 만일 그들이 하나님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에 성실하도록 백성들을 교육시키는 전반적인 의무를 수행하지 못한다면 금고에는 주님의 사업을 추진시키기 위한 자금이 고갈될 것이다.

하나님의 양떼를 돌보는 감독은 자신의 의무를 성실하게 이행해야 한다. 이 일이 그에게 달갑지 않다는 이유로 그것을 다른 어떤 사람이 하도록 맡기겠다는 입장을 취한다면, 그는 충성된 교역자가 아니다. 그는 말라기서에서 십일조를 내지 않는 일을 하나님께 대한 도적질이라고 백성을 책망하는 주님의 말씀을 읽어야 한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말 3:9) 고 말하신다. 말씀과 교훈으로 봉사하는 자가 백성들에게 이 저주가 초래되는 길을 그들이 따르고 있는 것을 보면서 어떻게 그들에게 교훈하고 경고하는 의무를 등한히 할 수 있겠는가? 모든 교인은 정직한 십일조를 내는 데 성실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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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말 3:10).

나는 나의 형제들이 셋째 천사의 기별이 우리에게 많은 것을 의미한다는 것과 참 안식일의 준수가 하나님을 섬기는 자들과 섬기지 않는 자들을 구별하는 표징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를 기도한다. 잠들어서 무관심하게 되어 있는 자들을 깨우도록 하자. 우리는 거룩하게 되라는 부름을 받고 있기 때문에 우리가 우리의 믿음의 두드러진 특성들을 간직하든지 않든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인상을 주지 않도록 매우 조심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과거에 취해 온 것보다 한층 더 진리와 의를 위해 결정적인 입장을 취해야 할 귀중한 책임이 지워져 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과 지키지 않는 자들을 구분하는 선은 틀림없이 분명하게 드러나야 한다. 우리는 그분의 축복, 참으로 혹독하게 시험을 받아야 하는 한 백성에게 그처럼 필수적인 축복을 받기 위하여 양심적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과의 언약 관계에서 간직하고 있는 모든 자원을 부지런히 사용해야 한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종교가 우리의 생애에서 지배적인 힘이 아니라는 인상을 주는 것은 하나님께 크게 욕을 돌리는 일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되는 그분의 계명에서 돌아서게 되고, 그분께서는 우리의 하나님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부인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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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내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신 7:9, 10).

이 성경에서 말한 천재가 끝나기 전에 우리는 어디에 있게 될 것인가? 우리의 운명은 영원을 위해 결정되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있는 본향에 합당하다는 선고를 받거나 영원한 죽음의 선고를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맺은 언약에 진실하고 성실했던 자들, 갈바리를 기억하고, 진리 편에 굳게 서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해 온 자들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라는 칭찬을 듣게 될 것이다. 그러나 오직 반신반의의 봉사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들의 생애를 세상의 방식과 습관에 일치되게 허용해 온 자들은, “내게서 떠나가라 내가 너를 알지 못하노라” 는 슬픈 말을 듣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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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선

“네 재물과 네 소산물의 처음 익은 열매로 여호와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창고가 가득 차고 네 즙틀에 새 포도즙이 넘치리라” (잠 3:9, 10).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 구제를 좋아하는 자는 풍족하여질 것이요 남을 윤택하게 하는 자는 윤택하여지리라” (잠 11:24, 25).

“고명한 자는 고명한 일을 도모하나니 그는 항상 고명한 일에 서리라” (사 32:8).

하나님의 지혜는 구원의 계획에서 작용과 반작용의 법칙에 의하여 자선 사업이 모든 부분에서 두 배의 축복을 받게 하신다. 궁핍한 자에게 주는 자는 다른 사람들을 복되게 하고 또한 자기 자신이 더 큰 축복을 받는다.

복음의 영광

자선의 복된 결과를 인류가 잃어버리지 않게 하고자 우리의 구주께서는 사람이 그분의 동역자로 참여하는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도움 없이 죄인들을 구원하는 그분의 목적을 이루실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인간이 이 위대한 사업에서 한 몫을 담당하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을 아셨다. 사람의 박애심을 일으키게 하는 환경의 사슬에 의하여, 그분께서는 자선을 계발시키는 최선의 자원을 그에게 주시고, 그가 가난한 자들을 도와주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습관적으로 주는 일을 계속하게 하신다. 황폐된 세상은 그 필요성에 의하여, 남녀들이 너무도 필요로 하는 진리를 그들에게 제시하기 위하여 자원과 감화력의 달란트를 우리에게서 끌어내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활동과 자선의 행동으로 이런 요구에 유의할 때, 우리는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신 분의 모습을 닮게 된다. 줌으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또한 진정한 부를 쌓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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끊임없이 자선을 표함으로 타락한 인류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원리에 기초된 것이 복음의 영광이다. 이 사업은 하늘의 조정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서 인간을 다루는 사랑의 분명한 증거를 그들에게 나타내셨다. 그분께서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3:16). 그리스도를 선물로 주신 것은 아버지의 마음을 드러낸다. 그것은 우리의 구속 사업을 담당하실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을 완성시키는데 필요한 것이라면 아무리 귀한 것일지라도 아끼지 않으실 것임을 증거한다.

관대한 정신은 하늘의 정신이다. 그리스도의 자아 희생의 사랑은 십자가에 나타나 있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자신이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을 주고 마침내 그분 자신까지 주셨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복되신 구주를 따르는 모든 자들에게 자선심을 가지라고 호소한다. 거기에 실증된 원칙은, 주고, 또 주라는 것이다. 이 원칙이 실제적인 자선과 선행으로 실천되면 그것이 그리스도인 생애의 진실한 열매가 된다. 세상 사람들의 원칙은 취하고, 또 취하라는 것이다. 그들은 그렇게 하면 행복을 소유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모든 방면에서 그 원칙이 실천되면, 그 열매는 불행과 죽음이 된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치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고 관대한 마음과 자선심을 권장한다. 끊임없이 주라는 요구를 받는 것이 통탄할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섭리로 그분의 백성들을 제한된 그들의 행동 영역에서 불러내어 더 큰 사업으로 들어가게 하신다. 도덕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이 시대는 제한 없는 노력이 요구된다. 하나님의 백성 중 많은 사람들이 세속주의와 탐욕에 사로잡히는 위험에 처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재산에 대한 요구가 더해가고 있는 것이 그분의 자비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자선을 행동으로 실천하도록 요구하는 대상이 그들 앞에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위대한 모본자의 품성을 본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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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지기의 축복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고 명령하실 때, 사람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지식을 널리 전하는 사업을 맡기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복음을 전하러 나가라고 하시는 한편, 다른 사람들에게는 지상에 있는 그분의 사업을 지원할 헌금을 그들에게 요구하시므로 거기에 응하도록 부르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동료 인간들을 구원하는 사업을 우리에게 맡기셔서 진행하는 동안 그분의 거룩한 선물이 인간의 통로를 거쳐 흘러 들어가도록 사람들의 손에 재물을 맡기셨다. 이것이 사람을 고귀하게 하는 하나님의 방법 중 하나이다. 그것이 바로 사람에게 필요한 사업이다. 그것이 사람의 마음에서 가장 깊은 동정심을 일으키고 가장 고상한 정신의 능력을 발휘하게 하기 때문이다.

세상의 온갖 좋은 것들은 인류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으로, 하나님의 풍부한 손에 의하여 세상에 제시되었다. 가난한 자들도 그분의 것이고, 신앙적인 사업도 그분의 것이다. 금과 은도 그분의 것이므로 그분께서 원하시면 그것들을 비처럼 부어주실 수도 있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그분께서는 사람을 그분의 청지기로 삼으시고 그에게 재물을 맡기시되, 간직해 두기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유익하게 하는 데 사용하기 위해서이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사람을 그분의 축복을 세상에 나누어주는 매체로 삼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그의 창조자처럼 품성이 관대하고 이타적으로 되어, 마침내는 그리스도와 함께 영원한 영광의 상급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자선의 제도를 계획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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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주위에 모임

갈바리에서 표현된 사랑이 우리의 교회에서 되살아나고, 강화되고, 확산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으로 가져오신 원칙들을 강화하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지 않겠는가? 지금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자선의 사업을 시작하여 능률 있게 하고자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들이 십자가 앞에 서서 그대들을 위해 돌아가고 계시는 하늘의 왕을 보면서도 마음을 굳게 닫고, “아니야, 내게는 줄 것이 아무것도 없어” 라고 말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들은 그분의 사랑을 영원히 존속시켜야 한다. 이 사랑은 그들을 십자가 주위로 함께 모여들게 할 것이다. 그것은 그들에게서 모든 이기심을 벗겨버리고 하나님과 서로를 함께 묶어줄 것이다.

자아 희생과 극기로 갈바리의 십자가 주위에 모이자. 그대들이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그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그대들이 은혜의 보좌로 접근할 때, 그대들이 죄의 함정에서 사람들을 구원해 내기 위해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온 황금 사슬로 이 보좌에 묶여 있는 자신을 발견할 때, 그대들의 마음은 세상에서 하나님도 없고 소망도 없는 형제 자매들을 위한 사랑으로 나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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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적인 정신

나는 호주를 떠나기 전부터, 그리고 이 나라에 온 이후로 미국에서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이 있다는 지시를 받았다. 초기에 이 사업에 참예했던 분들은 작고하고, 사업의 선구자들 중 불과 몇 사람만이 지금 우리 가운데 남아 있다. 오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이전에 지던 많은 무거운 짐들이 이제는 젊은 사람들에게 지워지고 있다.

다소 경험이 적은 일꾼들에게 책임이 이렇게 넘겨지는 데는 우리가 경계해야 할 약간의 위험들이 있다. 세상은 주권을 위한 싸움으로 가득 차 있다. 동료 일꾼들로부터 이탈하는 정신, 분열의 정신이 바로 우리가 마시는 공기 속에 있다. 어떤 사람들은 질서를 확립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처럼 위험한 것으로 여기고, 그리하여 로마교의 제도와 같이 두려워한다. 이렇게 기만당한 영혼들은 독립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그들의 자유를 자랑할만한 덕성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어떤 사람의 말도 듣지 않고 어떤 사람에게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나는 사람들이 형제들의 권면과는 독립된 자기 자신의 길을 택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고 느끼게 하는 것이 사단의 특별한 활동이라는 사실을 교훈 받았다.

여기에 우리의 사업의 번영을 방해하는 큰 위험이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의논 상대자들의 판단과 조화를 이루어 신중하고 분별력 있게 움직여야 한다. 이런 길을 취할 때만 안전과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우리에 의하여,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수 없다.

가짜 활동들을 제압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지 않은 주장들을 물리치기 위하여 철저한 조직이 필수적이며 그것이 가장 큰 힘이 되는 때에 만일 사단이 이 백성 가운데 들어와서 사업을 혼란시키는 그의 활동에 성공을 할 수만 있다면, 아, 그는 얼마나 기뻐할까! 우리는 지혜와 주의를 기울여 세워진 조직과 질서의 제도를 파괴하는 일이 없도록 모든 일을 신중하게 해야 한다. 이 시대에 사업을 주관하고자 욕망하는 무질서한 요소들이 지나치게 자유롭게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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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시대의 종말에 가까워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들이 각각 어떤 종교적인 조직체에서 떠나 독자적으로 행동해야 할 것이라는 사상을 조장해 왔다. 그러나 나는 이 사업에는 각 사람이 독자적으로 행동하는 그런 일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주께로부터 교훈 받았다. 하늘의 별들은 모두가 법칙 아래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서로 영향을 주고, 그들의 운행을 통제하는 법칙에 순종한다. 그와 마찬가지로 주님의 사업이 건전하고 튼튼하게 발전하려면, 그분의 백성들이 함께 연합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는 어떤 사람들의 발작적이요 변덕스런 행동은 강하면서도 길들여지지 않은 말들의 일로써 적절히 비유된다. 하나가 앞으로 끌면 하나는 뒤로 끈다. 그리고 주인이 소리를 치면 하나는 앞으로 달려가지만 하나는 꼼짝도 하지 않고 서 있다. 만일 사람들이 이 시대를 위한 위대하고 중대한 사업에 조화를 이루어 활동하지 않으면 혼잡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이 형제들과 연합하지 않고 혼자서 활동하기를 더 좋아한다면, 그것은 좋은 현상이 아니다. 교역자들은 바른 원칙에서 떠나가는 일을 하나 하나 자유롭게 지적하는 형제들을 신임해 주어야 한다.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멍에를 멘다면 그들은 따로 떨어져서 끌 수가 없고 그리스도와 함께 끌어야 할 것이다.

어떤 일꾼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힘을 다해서 끌지만 그들은 혼자서 끌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직 배우지 않았다.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대신에, 그들은 동료 일꾼들과 조화를 이루어 끌어야 한다. 그들이 이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들의 활동은 합당치 않은 때에 합당치 않은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들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바와는 반대로 일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일은 하지 않고 버려 둔 것보다 더 나빠진다.

교회증언 9권 pp. 24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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