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샘 근원
우리는 진실한 것과 거룩한 것을 풍성하게 가지고 있다. 지식에 목마른 자들은 더렵혀진 샘 근원으로 갈 필요가 없다.
그리스도는 복음을 통하여 진리의 원칙들을 제시하셨다. 그분의 가르침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보좌로부터 흘러내리는 깨끗한 물을 마실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전에 발표한 어떤 것보다 훨씬 능가하는 지식을 사람들에게 전해 주므로 다른 모든 발견의 배경을 만들 수도 있으셨다. 그분께서는 신비를 차례로 여시고, 이 놀라운 계시의 주변에 시대의 끝까지 계속되는 세대의 적극적이고 진지한 사상을 집중시킬 수 있으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구원의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르치는 일에 한 순간도 양보하고자 하지 않으셨다. 그분의 시간과 그분의 재능, 그분의 생명 자체는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수단으로서만 할애되고 사용되었다. 그분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오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목적에서 돌아서실 수 없었다. 그분께서는 자신을 딴 데로 돌아서게 하는 일을 전혀 허용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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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이용될 수 있는 지식만을 전하셨다. 백성들에 대한 그분의 교훈은 실제적인 생활에서 그들 자신의 상태에 필요한 것에 국한되었다. 탐색하는 질문들을 가지고 그분을 찾아오게 한 호기심은 그분을 즐겁게 하지 않았다. 그분께서는 그런 모든 질문들을 엄숙하고 열렬하고 주요한 호소를 위한 기회로 삼으셨다. 지식의 나무에서 열매를 따고자 그처럼 열광했던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생명 나무의 열매를 제공하셨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좁은 길 외에는 모든 길이 닫혀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영생의 샘 외에는 모든 샘이 닫혀졌다.
우리 구주께서는 랍비들이 계속 반복해서 “말하고” 또한 “이미 말한 것” 에 의해 사람들의 마음이 부패해질 것이라는 이유 때문에 어떤 사람도 그 당시의 랍비 학교에 다니도록 권유하지 않으셨다. 그렇다면 왜 우리는 보다 위대하고 분명한 지혜를 마음대로 활용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사람들의 말을 고상한 지혜로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하나님께서 내 앞에 제시해 주신 그대로 영원한 사물에 관하여 내가 본 것, 그리고 사람들의 연약함에 관하여 내가 본 것은 나의 마음에 깊은 감명을 주었고 나의 생애와 품성에 영향을 크게 미쳤다. 나는 사람이 높임을 받거나 찬양을 받거나 영광을 받아야 할 근거가 전혀 없음을 안다. 나는 세속적으로 현명한 사람들의 의견이 신뢰를 얻고 높임을 받아야 할 이유를 알지 못한다. 하나님의 계몽을 받지 못한 자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계획과 길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질 수 있는가?
나는 하늘과 땅을 창조하신 분, 창공에서 별들이 질서 있게 움직이게 하시고 해와 달이 그들의 일을 하도록 정해 주신 분에게서 즐겨 가르침을 받고자 한다. 나는 불신앙의 저자들에게로 갈 필요가 없다. 나는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길을 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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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교육
젊은이들이 그들의 지적 능력의 최고의 발달을 이루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옳은 일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한계를 정하지 않으신 것에 대해서는 교육을 제한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학식이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복리를 위해 사용되지 않는다면 아무런 쓸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의 지식이 최고의 목적을 성취시키는 데 디딤돌이 되지 못한다면 아무런 가치가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마음과 영혼을 강하게 해 줄 지식, 우리를 보다 좋은 남녀들로 만들어 줄 지식이다.
마음의 교육은 책에서 얻는 교육보다 더욱 중요하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지식을 얻는 것은 바람직하며 필수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영원을 우리의 계산에 넣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만회할 수 없는 실패를 하게 될 것이다.
강한 적용을 요구하지만 실제 생활에는 이용되지 않는 그런 종류의 공부로 마음을 꽉 채우는 것은 좋지 않다. 이런 종류의 교육은 학생에게 손실이 될 것이다. 이런 공부는 유용한 일에 적응하게 해 주고 책임을 완수 할 수 있게 해 주는 공부에 대한 욕망과 경향을 빼앗아 버리기 때문이다.
만일 젊은이들이 그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이해했을 것 같으면,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그들의 힘을 발견했을 것이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가르침을 받고자 노력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분의 지혜 안에서 지혜롭게 될 것이며 그들의 생애는 세상에 축복의 결실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만일 순전히 세속적이요 순 이론적인 공부에 마음을 기울인 결과로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된다면 그들은 생애를 풍요롭게 하는 모든 것을 잃어버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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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지식 탐구의 중요성
우리는 우리가 치르고 있는 투쟁에서 계쟁점들을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시대를 위해 주신 진리의 가치와 큰 기만자에 의하여 그 진리로부터 우리의 마음이 분리되도록 허용하는 위험을 더욱 충분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요구된 희생의 무한한 가치는 죄가 무서운 악이라는 것 이상의 사실을 보여준다. 죄를 통하여 인간의 모든 기관은 혼란해지고, 마음은 왜곡되며 상상력은 부패해졌다. 죄는 영혼의 기능들을 타락시켰다. 밖에서 오는 유혹들은 마음속에서 하나의 공감대를 발견하고, 모르는 사이에 악을 향하여 발길이 돌아선다.
우리를 위한 희생이 완전했던 것처럼 죄의 더럽힘으로부터 얻는 우리의 회복도 완전해야 한다. 율법이 용서해 줄 악행이 없고, 율법의 정죄를 피하게 해 줄 불의도 없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율법의 모든 조항을 완전히 이루었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요 15:10) 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생애는 순종과 봉사에 대한 우리의 표준이다.
하나님만이 마음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그러나 우리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 는 명령을 받고 있다 (빌 2:13, 12).
우리의 생각을 요구하는 사업
몇 차례의 연약하고 간헐적인 노력으로는 잘못이 바로잡힐 수 없고, 품성의 개혁도 이루어질 수 없다. 성화는 하루나 일년의 과업이 아니고 평생의 과업이다. 자아의 정복을 위해 거룩함과 하늘을 위하여 싸우는 싸움은 평생의 싸움이다. 끊임없는 노력과 부단한 활동 없이는 거룩한 생애에 발전이 있을 수 없고 승리자의 면류관을 얻을 수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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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다 고상한 상태에서 인간이 타락했다는 가장 강한 증거는 원상태로 돌아가는 데 그처럼 큰 희생이 요구된다는 사실이다. 돌아가는 길은 매 시간 조금도 틀리지 않고 힘들게 싸움으로써만 얻어질 수가 있다. 한 순간의 의지의 작용으로 사람이 자기 자신을 악의 세력에 둘 수가 있다. 그러나 그 속박을 깨뜨리고 보다 고상하고 거룩한 생애에 이르는 데는 한 순간의 의지의 작용 이상의 것이 요구된다. 목적이 설정되고 일이 시작될 수는 있다. 그러나 그 성취는 수고와 시간과 오래 참음과 인내와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셀 수 없는 유혹에 둘러싸여 있는 우리는 굳세게 저항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복당한다. 우리가 우리의 사업을 완성하지 못한 채 생애의 끝을 맞게 되면, 영원한 손실을 보게 될 것이다.
바울의 성화는 자아와 더불어 치르는 끊임없는 싸움의 결과였다. 그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고 말했다. 그의 의지와 그의 욕망은 매일 의무와 하나님의 뜻으로 더불어 싸웠다. 자기 자신의 육신에 대해서는 아무리 고통스러웠을지라도 그는 기질을 따라가는 대신에 하나님의 뜻을 행하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을 한 걸음씩 인도하신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싸움이요 전진이다. 이 싸움에는 면제가 없다. 노력은 계속적이고 끈기로워야 한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 대하여 승리를 지속하는 것은 중단 없는 노력에 의해서이다. 그리스도인의 성실은 불가항력의 힘으로 얻어지고 확고부동한 목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자기 자신을 위한 엄격하고 줄기찬 노력 없이는 향상할 수 없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이 싸움을 치러야 한다. 개인적으로 우리는 그 싸움의 계쟁점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 비록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이 땅에 있었을지라도 그들은 그들의 의로 아들도 딸도 구원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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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달해야 할 과학
통달해야 할 그리스도교의 과학, 하늘이 땅보다 높은 것처럼 어떤 인간적인 과학보다 더 깊고, 넓고, 높은 과학이 있다. 마음은 연단을 받고 교육을 받으며 훈련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타고난 기질과는 반대되는 방법으로 하나님을 위해 봉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드시 정복되어야 할 선천적으로, 후천적으로 악으로 기울어지는 기질들이 있다. 사람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기 위해서 때로는 일생 동안 받은 훈련과 교육을 버려야 한다.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 안에서 확고해지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우리는 유혹을 저항할 수 있게 해 줄 생각의 습관을 형성해야 한다. 우리는 위를 향해 쳐다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원칙들, 하늘처럼 높고, 영원을 획득하는 원칙들을 우리는 일상 생활과 관련지어 모든 면에서 이해해야 한다. 모든 행동, 모든 말, 모든 생각은 이 원칙들과 일치되어야 한다.
성령의 귀중한 은혜들은 한 순간에 계발되지 않는다. 용기, 견인 불발, 온유, 믿음,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을 확고하게 의지하는 것 등은 여러 해 동안의 경험에 의하여 얻어진다. 거룩한 노력의 생애와 정의에 대한 확고한 고수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인 쳐야 한다.
잃어버릴 시간이 없음
우리는 잃어버릴 시간이 없다. 우리는 우리의 은혜의 시기가 얼마나 빨리 끝날 것인지 알지 못한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지려 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곧 오실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우리 자신과 세속적인 사물들로부터 우리를 끌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다.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게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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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지성소에서 일어나셔서 중보자의 옷을 입으실 때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1, 12) 는 명령이 내릴 것이다.
그 분노가, 무지막지한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고 있는가?
우리는 말할 필요가 없다. 마지막 날들의 위기는 미구에 우리에게로 다가올 것이다. 이미 그것들은 왔다. 우리는 지금 육신의 정욕과 식욕과 격정의 바로 중심부와 골수를 잘라 버리기를 위하여 주님의 칼이 필요하다.
생각을 해이하게 하는 데 바쳐친 마음들은 변화될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이전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 삼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기록하였으되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하셨느니라” (벧전 1:13-16). 생각들은 하나님께로 집중되어야 한다. 지금은 육신적 마음의 천성적인 기질들을 정복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때이다.
우리의 노력, 우리의 자아 부정, 우리의 인내는 우리가 추구하고 있는 대상의 무한한 가치에 비례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것처럼 승리함으로써만 우리는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수 있다.
자아 포기의 필요성
사람의 큰 위험은 자기 기만에 사로잡히고, 자기 만족에 빠져서 그의 힘의 근원이 되는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는 것이다. 우리의 천성적인 기질들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교정되지 않는 한, 그 자체 속에 도덕적인 죽음의 씨앗을 간직한다. 우리가 하나님과 생명적인 연결을 이루지 않으면, 이기주의와 방종의 부정한 영향과 죄에 대한 유혹을 저항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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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로부터 도움을 받기 위하여 우리는 우리의 필요를 깨달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자신에 관하여 진정으로 알아야 한다. 자기 자신을 아는 자만이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실 수 있는 죄인이 될 것이다. 우리가 철저하게 속수무책인 우리의 상태를 깨닫고 자기 신뢰를 완전히 버릴 때에만 우리는 하나님의 능력을 붙들게 될 것이다.
이 같은 자아의 포기가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인 생애의 시작에서만이 아니다. 하늘로 향해 가는 매 발걸음마다에서 그것은 새로워져야 한다. 우리의 모든 선한 행실은 우리 자신의 외부에서 오는 힘에 의한 것이다. 그러므로 끊임없이 하나님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고, 쉬지 말고 진지하게 죄를 고백하고, 그분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할 필요가 있다. 위험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므로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고 믿음의 손으로 능력 많은 우리의 구원자를 굳게 붙들 때에만 안전하다.
최고의 관심사가 주의를 요구함
우리는 주의를 끄는 수많은 문제들로부터 돌아서야 한다. 시간을 빼앗고 의문을 일으키지만 끝에 가서는 아무것도 아닌 문제들이 있다. 최고의 관심사는 너무도 흔히 별로 대수롭지 않은 것들에 바쳐지는 면밀한 주의와 정력을 요구한다.
새로운 이론들을 받아들이는 것이 영혼에게 새 생명을 가져다주지는 않는다. 실제로 중요한 사실과 이론들을 잘 알지라도 그것들이 실제적으로 사용되지 않으면 별반 가치가 없다. 우리는 영적 생명을 자라게 하고 자극해 줄 양식을 우리의 영혼에 공급해 줄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스도에 관한 개인적인 지식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 하나님은 그를 의지하는 자의 방패시니라 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 (잠 30: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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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금하는 것이 적당하다고 보신 것들을 우리가 사색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있지 않다. 우리가 연구하기 위한 질문은 이것이다. “무엇이 이 시대를 위한 진리, 곧 간직하고 사랑하며, 존중하고 순종해야 할 진리인가?” 과학에 골몰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발견해 내고자 한 그들의 노력에서 좌절하고 실망 당했다. 이 시대에 그들에게 필요한 질문은 “우리에게 영혼의 구원을 얻게 해 줄 진리가 무엇인가” 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이루시고자 우리에게 허락해 주기를 오랫동안 강권해 온 것과 같은 어떤 특별한 일을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실현시킨 방법대로 그분의 제자들에게 하나님을 계시하셨다. 이론에 지나치게 집착하므로 구주의 산 모본의 능력을 잃어버린 자들이 많이 있다. 그들은 겸손하고, 자아 부정적인 일꾼으로서의 그분을 시야에서 놓쳐 버렸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예수님을 쳐다보는 것이다. 매일 우리는 그분의 임재에 대해 새롭게 계시를 받을 필요가 있다. 우리는 그분의 자아 포기와 희생의 모본을 더욱 밀접하게 따를 필요가 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 2:20). 우리는 바울이 이 말씀을 기록할 당시에 가졌던 경험이 필요하다.
품성 속에 나타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땅 위에서나 하늘에서 평가받는 어떤 것보다 높은 것이다. 그것은 바로 최고의 교육이다. 그것은 하늘 도성의 정문을 여는 열쇠이다. 그리스도를 옷 입은 모든 사람이 이 지식을 소유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의 목사들과 의사들과 교사들과 그밖에 주님의 사업의 어떤 분야에 종사하는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 나는 전해 줄 기별이 있다. 주께서는 그대들에게 더욱 높이 올라오고, 더욱 거룩한 표준에 도달하라고 명령하신다. 그대들은 여태껏 갖고자 생각해 왔던 것보다 훨씬 더 깊은 경험을 소유해야 한다. 이미 하나님의 큰 가족의 구성원이 되어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분의 영광을 바라보고 영광에서 영광으로 변화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거의 알지 못한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아름다움에 대하여 희미한 지각만을 가지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대들의 영혼은 기쁨으로 감격한다. 그대들은 구주의 사랑에 대하여 더욱 완전하고, 더욱 깊은 깨달음을 갈망한다. 그대들은 충족받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라. 가장 좋은 가장 거룩한 마음의 애정을 예수께 바치라. 모든 빛의 광선을 소중히 간수하라. 하나님을 따르고자 하는 영혼의 모든 소망을 소중히 간직하라. 영적인 사상과 거룩한 교제를 그대들 스스로 배양하라. 그대들은 그분의 영광의 이른 새벽의 첫 광선만을 보았다. 그대들이 계속해서 주님을 알게 되면 그대들은 그의 나오심은 새벽 빛 같이 일정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잠 4:18). 우리의 죄를 회개하고 그것들을 고백하며 용서를 얻은 후에 우리는 완전한 복음 신앙의 정점 (頂點) 에 이르기까지 그리스도를 계속해서 배워야 한다.
교회증언 8권 pp. 309-3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