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장 — 세속적인 마음가짐
사랑하는 F 형제에게:
지금은 우리가 믿음과 하나님의 사랑 안에 있는 여부를 알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철저히 살피고 있어야 할 때이다. 그처럼 큰 빛과 그처럼 많은 특권을 가지고 있는 우리들 사이에 각성이 없으면 우리는 멸망에 빠지게 되고 우리의 운명은 고라신과 벳새다의 운명보다 더 비참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 도시들에 관하여 말씀하신 바와 같이, “너희에게서 행한 모든 권능을 두로와 시돈에서 행하였더면 저희가 벌써 베옷을 입고 재에 앉아 회개하였” (마 11:21) 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대 자신의 영혼과 그대의 자녀들의 영혼들을 위하여 크게 열성을 내어야 할 심각한 때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대가 부름받은 것은 이 일을 요구한다. 내가 그대의 상태를 깊이 생각할 때, 나의 심령은 슬픔으로 무거워지고 나의 마음은 아프고 비통해진다.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대의 닻은 끊임없이 떠내려가게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아,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사 55:6). 나는 그대가 하나님 앞에 그대의 마음을 낮추고, 그대가 다른 사람이 되기까지 결코, 결코 그 노력을 중단하지 말기를 탄원하는 바이다. 나는 그대의 영적 상태에 깊은 관심을 느끼고 있으며, 그대 자신의 구원과, 엘리가 그의 자녀들을 다루는 것과 똑같이 다루어지고 있음을 내가 알고 있는 그대의 귀여운 자녀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대가 진지하게 애쓰고 있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 그대의 모든 영향을 주님편에 두라. 그대가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는 사람이 아니고 확고 부동한 원칙에 좌우되는 사람임을 자녀들에게 보여 주라. 그들은 그대가 보여 주는 본을 따를 것이다. 그대가 더 좋은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볼 때까지 나는 그대에게 계속해서 애원하고 그대를 권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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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우리는 강단에서 현대 진리를 가르칠 뿐 아니라 강단 밖에서 그것이 실천되기를 바란다. 그대의 구원의 소망의 기초를 철저하게 살피라. 그대가 진리의 사자, 시온 성벽의 파수꾼의 위치에 서 있는 동안, 그대는 그대의 관심을 광업이나 부동산 사업에 기울이면서 동시에 그대의 손에 맡겨진 신성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없다. 사람들의 영혼이 위기에 놓여 있는 곳, 영원한 것이 관련되어 있는 곳에서는 관심이 나뉘어지는 것은 안전하지 않다. 이것은 특별히 그대의 경우에 있어서 그러하다. 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진정한 경건을 계발시키지 못했다. 그대는 재물을 얻으려는 열렬한 욕망을 품어 왔다. 그대는 _____ 에 있는 토지에 투자함으로 얻을 수 있는 재정적 유익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에게 이야기해 왔다. 거듭거듭 그대는 이런 사업의 이득을 설명하는 일을 해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영과 혼과 몸을 영혼 구원 사업에 바치기로 서약한, 그리스도의 안수받은 목사로서 이 일을 했다. 동시에 그대는 그대 자신과 그대의 가족의 생계를 위하여 금고에서 돈을 받아 왔다. 그대의 이야기는 우리 백성들의 주의와 돈을 우리의 기관들과, 이 땅에서 구속주의 나라를 촉진시키는 사업에서 떠나게 하고자 의도된 것이었다. 그 결과로 그들의 재물을 짧은 기간에 배가시킬 수 있음을 그대가 보장해 준 곳에 투자할 욕망을 그들에게 일으켜 주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사업을 더 크게 도울 수 있다는 기대로 그들을 우쭐하게 만들었다. 그대는 짐짓 하나님의 사업에서 그들의 재물을 회수하도록 그들에게 충고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우리의 기관들에 투자한 것 외에는 굴릴 돈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대의 제안대로 투자하기 위하여 그들은 재물을 우리의 기관들에서 회수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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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특별한 의미에서 우리의 형제를 지키는 자이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영광과 존귀와 불멸을 찾을 수 있는 영혼들과 개인적으로 관련되어 있다. 그들의 순결과 진실과 열성과 언행 일치와 경건은 우리의 말과 우리의 사업과 우리의 태도와 우리의 기도와 우리의 성실한 의무 수행에 영향을 받는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목사들은 교회에서나 개인들에게, 믿음의 고백, 심지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이 하는 고백까지도, 진정한 경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면 전혀 유익이 없다는 사실을 가르쳐야 한다. 신앙의 빛은, 교회에서, 특별히 목사들에게서 분명하고 한결같은 광선으로 비쳐져야 한다.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 불꽃이 되어 타오르다가 차츰 희미해지고, 마치 꺼져버릴 듯이 깜박거려서는 안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탁월하심은 진실한 신자들의 품성을 통하여 언제나 빛나게 될 것이며, 그들은 우리 구주의 교훈에 광채를 더 할 것이다. 그리하여 복음의 탁월함과 능력이 드러날 것이다. 각 교인은 모든 빛의 근원되시는 분과 연결을 이루어 신령한 일꾼이 되고, 착한 행실로써 세상에 빛을 반사하는 자신의 몫을 담당하라는 요구를 받고 있다.
특별히 목사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올바르게 나타내기 위하여 세속적인 모든 얽힘에서 스스로 벗어나서 자기 자신을 모든 능력의 근원되신 분에게 언제나 묶어 두어야 한다. 그는 조금이라도 하나님과 이 시대를 위한 큰 사업에서 그의 마음을 분리시키는 모든 것을 끊어 버려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가 고용된 그분의 종으로서 정신과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분 자신과 같이 되기를 바라신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에게 성경을 펴는 모든 사람이 그들에게 상처를 주거나 과중한 부담을 지우는 그런 식으로 어리석게 자기의 능력을 발휘하지 말고, 주의 깊고 현명하게 일하므로 주님을 위한 선한 사업을 하기에 적임이 되기를 바라신다. 모든 사람은 사업의 여러 분야들 중 어느 하나에 적극적으로 활동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그러므로 목자께서는 그분의 양떼를 이끄시고 지도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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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혀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재산을 땅에 묻어 두는 최선의 방법을 말해 주는 데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는 하늘의 은행에 안전하게 투자하는 법을 그들에게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에게 영적 식별력을 나누어 주시기를 기도드린다. 그대가 영적으로 다른 상태가 되지 아니하면 분명히 믿음의 파선을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변화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그대가 변화되지 않으면 그대는 분명히 진리를 붙든 손을 놓아 버리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온 세계를 얻을지라도 그것은 그대의 영혼의 상실에 대한 빈약한 보답이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주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셔서 그대의 지각을 신속히 깨우쳐 주시고 잘 균형잡힌 마음을 가진 사람처럼 행동하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그대가 거룩하게 된 마음과 입술로 일에 착수하여 하나님과 함께 겸손하게 동행하기를 바란다.
62 장 — 실제적 경건
오클랜드에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들에게 편지를 쓸 수밖에 없다. 거듭거듭 나는 꿈에서 그대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리고 모든 경우에 그대들은 어려움에 처해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닥칠지라도, 그것이 그대들의 도덕적 용기를 약하게 하고 그대들의 신앙을 냉랭한 형식 가운데로 전락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사랑이 많으신 예수님은 풍성하게 축복하시고자 준비하고 계신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으로,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함으로 경험을 얻을 필요가 있다. 우리들 중 어떤 사람이 저울에 달려서 부족함이 나타날 것인가?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인간 도구가 된 우리에게 주신 고상한 책임에 대한 반역자들이 되지 않기 위하여 우리 자신을 살피고, 거룩하지 못한 우리의 본성에 속한 가장 적은 동기도 살펴야 한다.
우리는 그분께서 지난 세대에 그분의 백성에게 주신 경고와 제재를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빛이 부족하지 않다. 우리는, 어떤 일들을 피해야 하고 우리에게 지키도록 요구하셨는지 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옳은 것을 깨닫고 행하고자 노력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비행이 선행보다 육신적 마음에 더 잘 적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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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의 믿음에 의하여 앞으로 나가게 되기를 기다리는 신실하지 않은 자들이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에 대하여 체험적인 지식을 가지지 못했으므로 그들 자신의 영혼에 거룩케 하는 진리의 능력을 느끼지 못했다. 조용하고 부지런히 자기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의 생애와 품성이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과 일치되고 있는지 알아 보는 것이 모든 교인의 일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캘리포니아에서, 특별히 오클랜드에서 그대들을 위하여 큰 일들을 하셨다. 그러나 만일 그대들의 행위가 그대들의 믿음과 일치되게만 한다면 그분께서 즐겨 행하시고자 하는 것이 더 많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불신을 풍성한 축복으로 결코 영화롭게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회고해 보라.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즐겨하시고자 바라시는 것의 시작에 불과함을 알라.
우리는 성경에 대하여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보다 더 높은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계시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실성을 인정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거기에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하여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가? 그것은 마치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처럼 실제적으로 하나님과 교통하는 것이다. 우리는 그 말씀의 교훈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에 그 귀중함을 알지 못한다.
악한 천사들이 우리들 주변에서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의 육신적 시력으로 그들의 존재를 분별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밝혀진 그대로의 그들의 존재의 실재를 마땅히 생각해야 할 만큼 생각하지 않는다. 만일 성경에 이해하기에 어려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면 사람은 그 책장들을 연구하는 중에 교만과 자만심으로 우쭐해졌을 것이다. 사람이 진리의 모든 부분을 이해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최선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성경의 모든 부분을 바르게 이해한다고 스스로 자부하고 그가 이해하는 그대로 모든 다른 사람들에게로 그것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그의 의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지적 교만을 버려야 한다. 나는 모든 종류의 영적 교만에 대하여 경고하는 음성을 높이는 바이다. 오늘날 교회에는 그것이 많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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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 가지고 있는 진리가 성경의 진리로 처음에 인정되었을 때, 그것은 얼마나 이상하게 보였던가, 그리고 처음으로 그 진리를 사람들에게 전하면서 우리가 당할 수밖에 없었던 반대는 얼마나 강했던가. 그러나 순종하고, 진리를 사랑하는 일꾼들은 얼마나 열렬하고 진실했던가! 우리는 정말로 독특한 백성이었다. 우리는 수가 적고, 재산도 없고, 세속적 지혜나 세속적 명예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믿었고, 강하고 성공적이었으며, 악행자들을 두렵게 하였다. 피차간의 사랑은 확고했다. 그것은 쉽게 흔들리지 않았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났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았다. 침착하고, 즐겁고, 거룩한 기쁨이 많이 있었다. 그러나 빛은 계속해서 증가되었지만 교회는 거기에 비례해서 발전하지 않았다. 정금은 점차적으로 희미해졌고, 죽음과 형식이 교회의 힘을 약화시키기 위하여 들어왔다. 그들의 풍성한 특권과 기회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순결과 거룩함을 따라 전진하고 향상하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한 재능들을 성실하게 활용했을 것 같으면 그 재능들이 크게 증가했을 것이다. 많이 주어지는 곳에는 많이 요구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빛을 성실하게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자들만이, 그리고 극기와 자아 희생으로 고상하고 높은 위치에 서는 자들만이 세상에 대하여 빛의 통로가 될 것이다. 전진하지 않는 자들은 하늘 가나안의 바로 경계에서도 뒤로 되돌아갈 것이다. 우리의 믿음과 우리의 행실이 조금도 주어진 진리의 빛과 일치되지 않는다는 것이 나에게 제시되었다. 우리는 반신 반의의 믿음이 아니고 사랑으로 역사하고 영혼을 깨끗케 하는 완전한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도록 캘리포니아에 있는 그대들을 부르신다.
한 가지 점을 경계해야 할 것인데, 그것은 개인적인 독자성이다. 그리스도의 군대에 속한 군인들로서 사업의 여러 부분에 있어서 행동의 일치가 있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우리들에게 속한 다른 사람들이 그 주제에 관하여 다른 의견들을 가지고 있다는 것과 그것 때문에 논쟁이 일어날 것이 알려져 있을 때 그것에 관하여 우리의 인쇄물에 독자적으로 일을 시작하고 사상을 제시할 권리가 없다. 일요일 준수 재림교도들은 이렇게 해왔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독자적 판단을 따르고 독창적인 사상을 제시하고자 노력하였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 사이에는, 아마도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인들을 반대하는 일 외에는 일치된 행동이 없었던 것 같다. 우리는 그들의 본을 따라서는 안 된다. 모든 일꾼은 다른 사람들과 조화를 이루어 행동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피차 독자적으로 행동하지 말 것이다. 우리의 힘은 하나님께 그 근원을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그것은 고상하고, 집약된 행동으로 발휘되기 위하여 절약되어야 한다. 그것은 무의미한 운동에 낭비되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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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에는 힘이 있다. 우리의 출판소들과 다른 기관들 사이에는 연합이 있어야 한다. 만일 이 연합이 존재했다면 그것들은 하나의 힘이 되었을 것이다. 일꾼들 사이에는 다툼이나 불화가 없어야 한다. 그 사업은 한 지도자에 의하여 관리된 사업이다. 간헐적이고 돌발적인 활동은 손해를 주어 왔다. 그런 활동들이 아무리 강력할지라도, 그것들은 별반 가치가 없다. 그 반작용이 반드시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꾸준한 인내를 계발하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실천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살펴야 한다.
우리는 구원받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알아야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우리는 인기의 조류 (潮流) 를 타고 떠내려가서는 안된다. 우리의 현재의 사업은 세상에서 나와서 분리되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거룩한 감화가 그의 인간적 활동에 끊임없이 함께 역사하고 있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도 강하고, 생기 있고, 활동하는 믿음을 소유하도록 부름을 받고 있다.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자가 될 수 있는 유일의 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밝혀진 조건들에 응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죄 가운데서 죽어야 한다. 우리는 하늘의 집에 살기에 적당해지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우리의 품성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어떤 도덕적 변화가 필수적인지 알아야 한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대들에게 말한다. 우리는 유대인들처럼, 우리의 주변에 찬란한 진리의 빛이 빛나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하고 그분의 능력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갈 위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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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십만번 율법과 복음에 순종하노라고 공언하면서도 범죄하면서 살아갈 수도 있다. 사람들은 진리의 주장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분명한 방법으로 제시하면서도 그들 자신의 마음은 육신적일 수도 있다. 은밀하게 죄를 사랑하고 범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들에게 진리가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왜냐하면 그들의 마음이 진리로 거룩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구주의 사랑은 그들의 저열한 정욕에 강권하는 힘을 발휘하지 못할 수도 있다. 우리는 과거의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이 신성한 위치에서 있으면서도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되게 취급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분노와 다툼이 없이” (딤전 2:8) 하나님께 거룩한 손을 들 수 없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마음을 지배하지 않으시기 때문이다. 진리는 그들의 마음에 결코 인쳐지지 않았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롬 10:10) 이른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막 12:30). 그대들은 이렇게 하고 있는가? 많은 사람은 그렇게 하고 있지 않으며, 하지도 않았다. 그들의 대화는 다만 피상적이었다.
사도는 말한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 3:1, 2). 마음은 사람의 성채 (城砦) 이다. 생명과 사망의 문제가 거기에 달려 있다. 마음이 순결해지기 전에는 사람이 성도들과의 교제에 있어서 어떤 몫도 담당하기에 부적합하다. 마음을 살피시는 분께서는 영혼을 돌보지 않고 죄악 가운데 머뭇거리고 있는 자들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시는가? 각 사람의 생애에서 가장 은밀한 것들을 보는 한 목격자가 지금껏 없었던가? 나는 어떤 남자들이 여자들과 소녀들에게 하는 말, 아첨하는 말, 속이고 황홀하게 하는 말을 듣지 않을 수 없었다. 사단은 영혼들을 파괴시키기 위하여 이 모든 수단을 사용한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이와 같이 함으로 그의 대리자가 될 수 있었다. 만일 그대들이 그렇게 된다면 그대들은 이 일들을 심판에서 대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천사는 이런 부류의 사람들에 대하여 말하였다.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께 결코 바쳐지지 않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 안에 계시지 않다. 진리가 거기에 있지 않다. 그 자리는 죄와 기만과 거짓에 의하여 점령당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믿어지지 않고 실천되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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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 작용하고, 교회들과 나라에 역사하고 있는 사단의 현재의 활동은 예언을 탐구하는 모든 학도들을 깜짝 놀라게 해야 한다. 끝은 가깝다. 우리 교회들은 일어나야 한다. 회개케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교인들의 마음 속에서 경험되어져야 한다.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깊은 역사를 보게 될 것이다. 죄의 용서가 예수님의 죽음의 유일한 결과가 아니다. 그분은 죄를 제거하기 위해서 뿐 아니라 죄의 파멸에서 인간의 본성을 회복시키고, 다시 아름답게 만들고, 소성시켜서 하나님 앞에 서기에 적합하게 만드시기 위하여 무한한 희생을 하셨다.
우리는 우리의 행위로 우리의 믿음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의 정신을 많이 간직하려면 더 큰 열망이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하는 데에 교회의 힘이 존재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떼어 놓고자 노력하고 있는 것은 사단이다. 아, 우리는 얼마나 적은 사랑, 하나님께 대하여 또한 피차에 얼마나 적은 사랑을 소유하고 있는가. 우리의 마음 속에 거하는 진리의 말씀과 정신은 우리를 세상과 분리시킬 것이다. 진리와 사랑의 불변의 원칙들은 마음과 마음을 연합시킬 것이다. 그리고 연합의 힘은 받은 바 은혜와 진리의 양에 비례 될 것이다. 거울 즉 하나님의 “최고 (의) 법” 을 들고 그 속에서 하나님 자신의 품성을 반사해 보는 것이 우리 각 사람에게 유익할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주어진 위험 신호와 경고를 등한히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경고들에 유의하지 않고 품성의 결함들을 극복하지 않으면, 결함들이 그것들을 소유한 자들을 정복할 것이며, 그들은 오류와 반역과 공공연한 죄에 빠지게 될 것이다. 최고의 표준까지 향상하지 않는 마음은 한때 얻었던 그 힘을 간직하는 능력을 언젠가 잃어버릴 것이다.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 10:12).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미리 알았은즉 무법한 자들의 미혹에 이끌려 너희 굳센 데서 떨어질까 삼가라 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벧후 3:1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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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에 그분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신 한 백성을 택하셨으며, 이 백성은 언제나 수행하기에 까다로운 일을 갖게 될 것이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계 2:2, 3). 우리의 교회에서 악을 제거하려면 많은 근면과 끊임없는 투쟁이 요구될 것이다. 엄격하고 공평한 규율이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신앙의 형식만 가진 어떤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훼손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들 스스로를 높이고자 몰래 활동할 것이기 때문이다.
주 예수님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마 24:12) 고 분명히 말씀하셨다. 그분은 높은 영적 상태에서 떨어진 부류의 사람들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이런 말씀들이 우리의 마음에 엄숙하고 엄격한 능력으로 새겨지게 하라. 우리가 믿노라고 주장하는 위대한 진리에 상응한 열성, 하나님께 대한 헌신은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대한 사랑, 좋아하는 어떤 죄악에 대한 애착은 기도를 좋아하고 거룩한 사물을 명상하기를 좋아하는 마음을 심령에서 떠나게 했다. 형식적인 종교적 예배는 고수되고 있지만 예수님께 대한 사랑은 어디에 있는가? 영성은 죽어가고 있다. 이 무감각 상태, 이 슬픈 타락의 경향이 계속되어야 하는가? 이 진리의 등은 은혜의 기름으로 채워지지 않기 때문에 깜박거리다가 꺼져 버려야 하는가?
나는 모든 목사와 우리 교역자들 중 각 사람이 나에게 제시되었던 그대로 이 문제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자존심과 자만심은 영적 생명을 죽이고 있다. 자아가 높임을 받고, 자아가 이야기의 대상이 된다. 아, 자아가 죽을 수 있다면!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전 15:31) 고 말했다. 이 교만하고 뽐내는 자만심과 이 자기 만족의 독선이 영혼에 퍼질 때는 예수님이 들어갈 장소가 없다. 자아가 중요한 것으로 부각되어 전체의 영혼의 성전을 채우는 동안, 예수님에게는 열등한 자리가 주어진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처럼 적게 일하실 수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만일 그분께서 우리의 활동과 더불어 함께 일하실 것 같으면 도구에 불과한 사람은 모든 영광을 자기 자신의 재치, 그의 지혜와 그의 능력에 돌리게 될 것이며, 그는 마치 바리새인이 “나는 이레에 두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눅 18:12) 라고 기도한 것처럼 자기 스스로 기뻐할 것이다. 자아가 그리스도 안에 숨겨질 때, 그것은 그처럼 빈번하게 표면에 나타나지 않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의 마음에 합당한가? 우리는 실제적 경건을 더욱 많이 생각하고, 기계적 제도를 훨씬 더 적게 생각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