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539-548 (317일)

그리스도의 종들은 그분의 눈앞에서와 천사들의 눈앞에서 사는 것처럼 살아야 한다. 그들은 우리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그 요구에 응할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사단은 새롭고 아직 실험해 보지않는 방법으로 우리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의 군대에 속한 지도자들이 무능해야 하는가?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이 있다. 그러므로 그 일을 행함에 있어서 조화로운 행동에 어떤 결함이 있다면, 그것은 이기심과 자존심 때문이다. 우리가 유능하고 조화롭게 활동하는 것은 그 사업에 우리의 특징과 개성을 남기지 않고 주님의 명령을 수행하기 위해 우리가 주의를 기울일 때 뿐이다. 천사는 “단합하라, 단합하라” 고 말했다.

나는 거룩한 사업에 봉사하는 그대들에게 실제적 경건을 더 깊이 생각하라고 권유하는 바이다. 부드러운 양심과 영혼에 대한 진실하고 진정한 슬픔과 죄에 대한 깨달음을 너무도 좀처럼 볼 수 없지 않은가. 그것은 우리들 사이에 하나님의 영의 깊은 감동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 구주는 야곱이 본 사다리이신 바, 그 맨 아래는 땅에 세워지고 맨 위의 발판은 가장 높은 하늘에 닿았다. 이것은 정해진 구원의 방법을 알려 준다. 우리 중 어떤 사람이 구원을 받는다면 마치 사다리의 발판에 매달리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매달림으로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믿는 자에게 지혜와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 되신다. 어떤 사람도 원수를 정복하는 것이 쉬운 일이라고 생각하거나 그에게 해당된 노력을 하지 않고서도 불멸의 유업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뒤를 돌아보면 현기증이 나고, 붙든 손을 놓아 버리면 멸망할 것이다. 승리하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그들은 근면한 상태에서 해이해진다. 결과적으로 이기적이요 자아 방종에 빠진다. 영적 각성이 필수적인 것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인간적 노력에 있어서의 열성이 그리스도인 생애에 나타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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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게 서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크게 넘어지는 일이 있게 될 것이다. 그들이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를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한 순간의 부주의가 영혼을 돌이킬 수 없는 파멸 속으로 빠뜨릴 수도 있다. 하나의 죄는 두번째의 죄로 이끌어가고, 두번째의 죄는 세번째의 것으로 가는 길을 준비하고, 그와 같이 이어진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실한 사자들로서 그분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기 위하여 끊임없이 그분께 탄원해야 한다. 만일 우리가 의무에서 한 치라도 벗어나면 우리는 멸망으로 끝날 죄의 길을 따라갈 위험이 있다. 우리 각 사람에게는 희망이 있는데, 단 하나의 길에서만 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께 붙들어 매고, 그분의 품성의 완전함에 이르기 위하여 모든 능력을 발휘하는 길이다.

죄를 대수롭지 않는 것으로 여기게 해주고, 죄인의 행동과 상관없이 그에게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생각하게 해주는 종교는 다만 죄인으로 하여금 그가 죄를 범하고 있는 줄 알면서 그 죄를 계속해서 범하고 있는 동안에도 하나님이 그를 받아 주실 것이라고 믿도록 격려해 줄 뿐이다. 이것은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이 하고 있는 바이다. 진리가 생애와 분리되어 있는 바, 그것이 영혼을 각성시키고 회심시킬 능력이 없는 것이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안에 있는 그대로의 진리가 캘리포니아에 있는 어떤 사람들의 생애에 결코 들어가지 못한 사실을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들은 성경상 종교를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결코 회심하지 않았다. 그들의 마음이, 그들이 받아들인 진리를 통하여 거룩해지지 아니하면 그들은 가라지와 함께 다발로 묶여질 것이다. 그들이 산 포도나무의 가지들임을 보여 주는 귀중한 열매의 송이들이 달려 있지 않기 때문이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사 55:6, 7). 많은 사람들의 생애는 그들이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세상의 수로 (水路) 안으로 떠내려가고 있다. 그들은 사실상 그리스도와 함께 할 일이나 몫이 없다. 그들은 오락을 사랑하며 이기적인 생각과 계획과 희망과 야망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공언 아래 원수를 섬긴다. 그들은 엄한 주인에게 매여 있다. 그들은 이 속박을 택하고, 스스로 자원해서 자신들을 사단의 종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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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이 품고 있는 거짓된 사상 곧 자녀들을 제지하는 것이 손해가 된다는 사상은 수많은 사람들을 파멸시키고 있다. 만일 그대들이 경계하지 않으면 사단이 분명히 자녀들을 소유할 것이다. 불경건한 자들과의 교제를 그들에게 권유하지 말라. 그들에게서 떠나게 하라. 그런 자들에게서 그대 스스로 나와서, 그대들이 주님 편에 있다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주라.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단순히 집회에 모였을 때 뿐만 아니라 생애가 계속되는 동안 표준을 높이겠는가? 그대들은 주님편에 서서 마음의 목적을 다하여 그분을 섬기지 않겠는가?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를 버리는 일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한 것처럼 한다면 그대들은 분명히 그분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이 죄를 버리고 산 믿음을 발휘한다면, 가장 풍성한 축복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스위스 바젤에서

1887년 3월 1일

63 장 —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롬 12:1).

고대 이스라엘 당시에는 제사장들이 희생 제물로 바쳐진 모든 제물을 정밀하게 검사했다. 만일 어떤 결함이 발견되면, 그 짐승은 거절되었다. 주님께서는 제물이 흠 없는 것이 되어야 한다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제물이 할 수 있는 한 완전한 것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모든 교훈을 우리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활 습관을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표준과 일치되게 하는 것이 우리 각 사람의 의무이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에 미급한 어떤 것을 기뻐하시겠는가? “네 마음을 다하여 …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 22:37). 만일 그대가 마음을 다하여 그분을 사랑할 것 같으면 그대는 그분께 그대의 생애의 최선의 봉사를 하고자 할 것이며, 그대는 그대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그대의 힘을 그분의 뜻을 행하도록 촉진시켜 줄 법칙과 일치되게 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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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모든 능력은 우리의 창조주께 가납될 봉사를 하게 하고자 우리에게 주어졌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선물을 악용하고 우리의 능력을 흑암의 왕에게 팔아 버렸을 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한 속량의 값을 치르시되, 그분 자신의 귀중한 피를 주셨다.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5:15). 그대는 세상의 관습을 따라서는 안 된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롬 12:2).

64 장 — 세속적 영향

사랑하는 G 자매에게:

나의 마음은 그대에 대한 사랑과 동정으로 끌려간다. 그대의 가족의 현재의 상황은 분명히 그대의 그릇된 사상을 따른 결과이지만, 결말은 아직 이르러 오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의 친척들과 그처럼 자유롭게 교제하는 위험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그대가 그들에게 끼친 영향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그대와 그대의 가족에게 끼쳐왔다. 그들이 그대의 친척이 되기 때문에 그들은 그대의 영적 복리에 적지 않은 장애가 되고,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적지 않게 범하게 한다. 그들의 행동은 빛과 진리를 거절하고 거기서 유리한 어떤 증거를 듣고자 하지 않은 어떤 사람들의 행동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 완전히 거슬리고 있다. 해를 끼치는 인상들이 그대의 마음에 새겨지고 그대의 행동에 영향을 미쳐 왔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손이 미치는 곳까지 구원을 가져다 주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의 뜻을 무시하고 구원을 우리에게 강제로 안겨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조건들을 제시해 주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의 집에 들어갈 자격을 얻는 일에 어떤 실수나 실패를 하지 않도록 부지런하고 열성껏 마음과 뜻을 다하여, 그 조건들을 배우는 일을 착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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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하나님과 세상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우리는 진리를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가지고 있지 않는 세속적인 친척들에게 우리의 애정을 집중시켜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과 교제하는 동안 우리의 빛을 비추어 주기 위하여 모든 면에서 노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의 말, 우리의 행동, 우리의 습관과 행실은 어떤 의미에서든지 그들의 사상과 습관에 의하여 꼴지어져서는 안 된다. 우리는 그들과의 모든 교제에서 진리를 드러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없다면, 그들과 교제를 적게 하면 할수록 우리의 영성을 위하여서는 더 좋을 것이다. 만일 우리가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훌륭한 자격을 잊어버리게 하는 경향으로 영향력을 발휘하는 친구들 사이에 우리 자신을 두게 되면 우리는 유혹을 불러들이게 되고 그것을 저항할 도덕적 힘이 아주 약해진다. 우리는 우리와 교제하는 자들의 정신을 받아들이고 그들의 사상을 간직하게 되어 거룩하고 영원한 것들을 우리 친구들의 사상보다 더 낮은 위치에 두게 된다. 요컨대 우리는 모든 의의 원수가 우리에게 대하여 의도했던 그대로 영향을 받게 된다.

젊은이들은 이런 영향 아래 놓이게 되면 나이 많은 사람들보다 그 영향을 훨씬 더 쉽게 받는다. 그들이 쳐다보는 얼굴, 그들이 방문하는 장소, 그들이 나누는 교제, 그들이 읽는 책, 모든 것이 그들의 마음에 인상을 남긴다. 이 세상과 그 다음으로 우리 자신과 특별히 우리 자녀들을 위하여 택하는 교제의 중요성을 아무리 과대 평가해도 지나치지 않다.

생애의 초기는 다른 어떤 기간보다 더욱 중요하다. 올바른 방향에서든지 그릇된 방향에서든지간에 결정적인 발전이 있게 될 것이다. 한편에서는 하잘것없는 학식을 어느 정도 얻을 수도 있다. 그리고 다른 한 편에서는 실생활에 대한 건전하고 가치 있는 지식을 얻어서 하나님을 잘 알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위탁하신 모든 능력을 강화시키는 길을 깨달을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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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거짓되고 피상적인 모든 것이 진실되고, 자연적이고, 영구적인 것보다 더 높임을 받는 시대에 살고 있다. 마음은 그릇된 방향에서 지도될 모든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 그것은 정신력에 힘을 더해 주지 않는 쓸모없는 이야기로 방해 받아서는 안 된다. 사상은 우리가 정신을 위하여 제공하는 음식과 같은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쓸데없고 중요하지 않는 것들에 바쳐진 시간은, 구원의 계획의 놀라운 오묘를 명상하는 데 쓰여지거나, 우리의 발이 불신의 산에 걸려 넘어지거나 주님의 속량받은 백성들이 걸어가게 하고자 무한한 희생으로 놓여진 거룩한 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하여 주님의 길을 배우는 데, 하나님이 주신 모든 능력을 사용하는 데 쓰여지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지성의 힘, 획득된 실제적 지식은 오빌의 금으로 살 수 없는 소득이다. 그 값은 금이나 은보다 더 귀하다. 이런 종류의 교육을 젊은이들은 일반적으로 택하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의 욕망, 그들의 호불호 (好不好), 그들의 기호와 성향 등을 주장한다. 그러나 만일 부모들이 하나님과 진리와 자녀들을 둘러싸게 될 감화와 교제에 대한 바른 견해를 가졌다면 그들은 미숙한 젊은이들을 바른길에서 착실하게 지도해야 할 책임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을 느끼고, 그들이 뿌린 것을 또한 거두게 될 사실도 알게 될 것이다.

나의 음성이 전국에 있는 부모들에게 들릴 수 있다면 나는 그들의 자녀들이 친구와, 교제의 대상을 택하는 일에 자녀들의 욕망에 양보하지 않도록 경고하고 싶다. 해를 끼치는 인상은 거룩한 인상보다 젊은이들이 쉽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을 부모들은 별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교제는 은혜의 성장을 위하여, 또한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계시된 진리가 마음 속에 굳게 세워지기에 가장 유리한 것이어야 한다. 만일 어린이들이, 중요하지 않는 세속적인 것들을 화제로 이야기하는 자들과 함께 있으면 그들의 마음은 같은 수준이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이 신앙의 원칙을 중상하고 우리의 믿음을 실시하는 말을 듣는다면, 비열하게 진리를 반대하는 말이 그들의 귀에 들린다면, 이런 것들이 그들의 마음 속에 고정되고 그들의 품성을 이루게 될 것이다. 만일 그들의 마음이 사실이거나 가공적인 것이거나 간에 이야기들로 채워지게 되면 그 마음에 마땅히 채워져야 할 유용한 정보와 과학적 지식이 들어갈 자리가 없어진다. 이와 같이 경박한 독서를 좋아할 때 얼마나 큰 파괴가 마음에 이루어졌던가! 그것은 균형잡힌 품성의 기초가 되어 있는 성실의 원칙과 참된 경건을 얼마나 파괴해 버렸던가. 그것은 신체 조직 속으로 들어간 독소처럼 서서히 작용하여 조만간 그 쓰라린 결과를 나타낼 것이다. 젊은이들의 마음에 그릇된 인상을 남기게 되면, 모래 위에가 아닌 영구적인 바위 위에 하나의 표가 생기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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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자녀들의 교제는, 건강을 파괴하는 그들의 습관을 방해하거나 깨뜨리는 모든 감화에서 그들을 떠나게 하는 성질의 것이다. 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없으면 안달한다. 그리스도인들의 조언이 그들에게는 싫다. 그들은 멸망으로 가는 길을 가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을 반대 방향으로 이끌고자 하는 어떤 영향도 그들의 마음에 가장 나쁜 충동을 일으킨다. 그들은 환경의 피조물이다. 신앙적 감명에 불리한 이 초기의 유대 관계는 모든 후속 관계에서 하나의 강력하고 지배적인 영향을 그들에게 미쳐 왔다. 젊은이들을 가능한 가장 유리한 환경에 놓이게 해주라. 그들이 유지하는 교제, 그들이 적용하는 원칙, 그들이 형성하는 습관은 절대적으로 확실하게 이 땅에서의 그들의 유용성과, 그들의 장래의 영원한 복리에 관한 문제를 결정지어 줄 것이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의 성향에 양보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분명한 의무의 길을 따르고, 친절로써 그들을 제지하고, 확고하고 단호하면서도 사랑으로 그들의 그릇된 욕망을 부신하고, 열렬하고 경건하고 꾸준한 노력으로 발을 세상에서 돌이켜 하늘로 향하여 나아가도록 인도해야 한다. 자녀들은 그들이 원하는 어떤 길로나 빠져 들어가고, 바른길에서 떠나게 하는 각 방면에 열려 있는 길로 들어가도록 방임되어서는 안 된다.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주의와 권면을 감내하지 못하는 자들만큼 큰 위험에 빠져 있는 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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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여, 내가 지금 쓰고 있는 바와 같이 편지를 쓰는 이유는 그대의 위험을 알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올바른 권면으로 축복을 나누어 주고자 노력하지 않고 그대에게 아첨하고 그대의 환대를 받고자 하는 동안, 나는 그대의 현재와 영원한 행복을 위태롭게 할 보이지 않는 위험을 그대에게 경고하지 않으면 안 된다. 우리는 폭풍의 시대에 접근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의 참 기초를 연구하고자 한다. 우리는 불멸의 유업을 얻을 우리의 자격에 하나의 흠이라도 없는지 보기 위하여 율법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 백성들은 주목해 볼 가치가 전혀 없는 것으로 간주되어 왔다. 그러나 변화는 올 것이다. 그리스도교계는 오늘날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을 반드시 두드러진 위치에 놓이게 만들 운동들을 일으키고 있다. 인간에게서 나온 이론과 거짓 교리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끊임없이 대신하고 있다. 하나님께 충성하고자 하는 자들의 양심을 사로잡고자 하는 운동들이 시작되고 있다. 입법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할 것이다. 모든 영혼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아,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우리 스스로 현명해지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 지혜를 우리 자녀들에게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우리의 믿음의 모든 입장은 조사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철저히 성경을 연구하는 자가 아니고, 확고하게 서서, 강하고, 안정되어 있지 않으면 세상의 위대한 사람들의 지혜가 우리를 곁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세상은 분주하고, 초조하고 몰두되어 있다. 악을 마치 의처럼, 오류를 마치 진리처럼, 죄를 마치 거룩함처럼 열렬하게 따르고 있다. 흑암이 땅을 덮고, 캄캄함이 만민을 가리우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런 때에 잠들어야 하겠는가? 진리를 주장하는 자들이 마치 마비된 것처럼 침묵을 지키겠는가? 신앙을 갖지 않은 자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믿노라고 공언하는 바를 그들이 만일 믿는다면, 그들이 그리스도인들보다 열성에 있어서 훨씬 앞설 것이라고 주장한다. 만일 우리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움을 믿는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벧후 3:11, 12) 바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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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진리를 믿는 모든 영혼은 거기에 상응한 일을 하게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은 열렬하고 엄숙해질 것이며,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한 그들의 활동에 지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진리가 그들 자신의 영혼에 깊이 심겨진다면 그들은 그것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심고자 노력할 것이다. 진리는 오로지 바깥 뜰에서 너무 많이 보존되고 있다. 그것을 영혼의 성전 안으로 가져와서 마음 속에 자리잡게 하고, 그것이 생애를 지배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순종해야 한다. 그리하면 마음은 안식과 평안과 기쁨을 찾게 될 것이고, 하늘을 향한 열망이 생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진리가 생애와 무관하게 바깥 뜰에서 보존되면, 마음은 타오르는 하나님의 자애 (慈愛) 의 불로 따뜻해지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특정한 몇 일 동안, 혹은 특정한 경우에 간직했다가 다른 때에는 버리고 등한히 한다. 영속적인 진리의 원칙은 단순히 안식일의 몇 시간 동안, 혹은 적은 구제 활동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음 속으로 들어가서 품성을 세련되게 하고 거룩하게 해야 한다. 만일 하늘에서 온 이 특별한 빛과 힘이 없어도 사람이 안전한 순간이 있다면 그는 하나님의 진리 없이도 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순결하고 거룩한 말씀인 성경이 그의 고문과 지도자가 되고, 그의 생애를 지배하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가 그 말씀을 마음에 받아들일 것 같으면 그 말씀이 우리에게 교훈을 줄 것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었다. 주님께서는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 (창 18:19) 다고 말씀하셨다. 아브라함은 가정의 신앙을 향상시키고 그의 온 권속에게 여호와를 경외하게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가 명한 것을 아노라고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러므로 그에게 맡겨진 신성한 의무를 저버리는 일도 없을 것이고 하나님 외에 어떤 사람에게 굴복하지도 않을 것이다. 율법이 있음으로 아브라함은 그것을 지키게 될 것이며, 맹목적인 애정이 의에 대한 그의 지각을 흐리게 하지 않고, 하나님과 그의 자녀들의 영혼과 차단시키지도 않을 것이다. 정말로 잔인한 그런 종류의 방종이 아브라함을 곁길로 가게 하지도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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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과 자녀들은 다 같이 하나님께 속하여 그분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아브라함은 애정과 권위를 공존시켜 그의 집을 다스렸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를 지도하기 위한 법칙으로 우리에게 주어졌다. 이 법칙들은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르고자 할 때 정로를 벗어날 수 없는 표준이 된다. 하나님의 뜻은 최고의 것이 되어야 한다. 우리가 숙고해야 할 질문은,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가, 나의 친척들은 어떻게 생각할 것인가, 내가 이 길을 따르면 그들이 내게 대하여 어떻게 말할 것인가, 등에 대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무엇이라고 말씀하셨는가에 대한 것이다. 부모도 자녀도 주님의 길 외의 어떤 다른 길에서는 진정으로 형통할 수 없다.

나는 그대가, 주님의 길을 걸어가고자 노력하고 있는 고상한 아들들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히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그대가 그들의 교제에 관해서는 더욱 분명한 의무의 길을 분별하기를 바란다. 이것은 그대가 영적으로 자라나고 있는지, 그렇지 않으면 그대의 신앙 생애에 있어서 난쟁이가 되어 있는지 결정할 것이다. 엄격한 양심의 명령은, 비록 어려울지라도 순종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는 도덕적 힘을 얻게 될 것이다. 의무는 때때로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이다. 기도와 하나님께 대한 찬양은 투쟁 없이 항상 드려지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도성의 문을 도달하려면 우리가 반드시 가야 할 길에 극기와 십자가를 지는 일이 바로 놓여 있다. 예수님께서 그 길을 인도하셨다. 우리는 따라갈 것인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구원만을 위해서가 아니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함에 있어서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위대한 구속의 계획에 함께 일하는 자들이 되고 점차적으로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 참여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빌 3:14) 좇아가도록 요구하신다. 나는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시도록 기도한다. 그러나 그대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다면 그대는 그분의 동역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매일 그리스도의 정신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닐 것 같으면 우리의 경건과 신앙적 의무는 우리 자신의 관심사에 국한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의 영혼에 대한 관심은 그리스도인 품성에 넓이와 깊이와 안정을 주기 위하여 의도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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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오신다. 우리는 본향에 가까이 가고 있다. 우리는 하늘 분위기의 큰 영감을 얻기를 원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구주의 모든 계획에 있어서 그분과 하나가 될 것이며, 우리도 향상되고 다른 사람들도 향상시킬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는 선한 일에 유능해질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539-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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