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막회
금요일 저녁 8시경에 우리는 보스턴에 도착했다. 다음 날 아침, 우리는 그로브랜드 행 첫 열차를 탔다. 우리가 장막회 장소에 다다랐을 때, 비가 심하게 쏟아지고 있었다. 해스켈 목사는 이 때까지 쉼없이 수고하고 있었으며, 훌륭한 집회들이 보고되었다. 3개의 대형 텐트 주위에 마흔 일곱 개의 텐트가 쳐져 있었으며, 회중을 위한 한 텐트는 크기가 80×125 피트에 이르렀다. 안식일 집회는 가장 깊은 흥미가 있었다. 교회는 부흥하고 힘을 얻게 되었으며, 죄인들과 낙심자들이 그들이 처한 위험을 깨닫고 각성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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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일 아침까지도 날씨는 여전히 구름이 끼어 있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모이는 시간이 되기 전에 태양이 솟아올랐다. 배와 기차는 수천 명의 사람들을 땅에 쏟아 놓고 있었다. 스미스 목사가 아침에 동방 문제 (Eastern Question) 에 대해 설교했다. 이 주제는 특별히 흥미가 있는 것이었으며, 사람들은 아주 신실하게 주의를 기울여 경청했다. 오후에, 서 있는 군중들 사이로 길을 만들어 내가 강단에 가기가 힘들었다. 거기 다다르자 수많은 얼굴들이 내 앞에 있었다. 대형 텐트는 초만원이었고, 수천명은 밖에 서 있었으며, 수 피트 높이의 살아 있는 벽을 이루었다. 나는 폐와 후두가 몹시 고통스러웠으나,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때에 나를 도와주실 것을 믿었다. 말을 하고 있는 동안, 나는 내가 나의 말을 한담으로 여기지 않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나의 쇠약함과 고통을 잊게 되었다. 이 강연은 한 시간 가량 진행되었으며, 내내 사람들은 정신을 바짝 차리며 들었다. 마치는 찬미를 부를 때, 헤이버힐의 절제 개혁 클럽의 임원이 지난해처럼, 월요일 저녁에 자기네 협회에서 강연해 달라고 졸랐다. 댄버에서 강연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었기 때문에 나는 이 초청을 정중하게 거절해야만 했다.
월요일 아침에 우리는 내 남편을 위하여 우리 텐트에서 기도회를 가졌다. 우리는 그의 문제를 위대하신 의사께 내놓았다. 이것은 귀한 시간이었다. 하늘의 평안이 우리에게 임했다. 이 말씀들이 내 마음에 강하게 밀려 왔다.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곧 우리의 믿음이니라.” 우리 모두는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축복을 느꼈다. 그리고 나서 우리는 대형 텐트에 모였으며, 나의 남편은 우리를 만나서 짧은 시간 동안 부드러운 심령에서 우러나오는 말과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한 깊은 감각으로 밝게 빛나는 말을 했다. 그는 진리 안에 있는 신자들로 하여금 그들의 심령에 하나님의 은혜의 확신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라는 것과, 우리가 믿는 위대한 진리들은 생애를 성화시키고 품성을 고상하게 하고 세상에 구원하는 영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하고자 애를 썼다. 사람들의 눈물 어린 눈은 그들의 심령이 이 교훈으로 감명을 받고 녹아내렸다는 것을 보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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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 나서, 우리는 안식일에 보류해 두었던 우리의 사업을 다시 하기 시작했으며, 오전중에는 죄인들과 낙심자들을 위해 특별한 수고를 하며 보내게 되었다. 이들 중 기도를 위해 약 이백명 정도가 앞으로 나왔으며, 열 살 가량의 어린이로부터 머리가 흰 남녀들까지 망라되었다. 스무 명 이상의 사람들이 이 때에 처음으로 생명의 길에 자신들의 발걸음을 놓게 되었다. 오후에 삼십 팔 명의 사람들이 침례를 받았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 집으로 돌아갈 때까지 침례를 연기했다.
월요일 오후, 캔라이트 목사와 여러 사람들과 함께 나는 댄버 행 기차를 탔다. 내 남편은 우리와 동행하지 못했다. 장막회의 급박한 압박으로부터 놓여 나자, 나는 내 자신이 아프며 힘이 거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기차는 우리를 싣고 빠르게 댄버의 약속된 곳으로 달리고 있었다. 여기에서 나는 전혀 낯선 사람들 앞에 서야 했다. 이들의 마음은 거짓 보고와 사악한 비방으로 편견을 갖고 있었다. 나는 만일 내가 폐에 힘을 갖게 되고 명확한 음성을 갖고, 심장의 통증에서 벗어날 수 있다면 하나님께 매우 감사드릴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생각과 느낌들이 나를 떠나지 않았으며, 큰 고통중에 나는 하나님을 불렀다. 나는 너무 쇠약해서 내 생각을 조리있게 연결시킬 수가 없었다. 그러나 나는 반드시 도움을 받아야 겠다는 것과 그것을 위해 전심으로 구해야 겠다고 느꼈다. 그날 밤에 말하려면 나는 육체적, 정신적인 힘을 가져야만 했다. 나는 조용히 기도하는 중에 여러 번 반복해서 이렇게 말했다. “내 무력한 영혼은 당신께 매어 달립니다. 오 하나님, 나의 구원자이시여. 내게 도움이 필요한 이 때에 나를 버리지 마소서.”
집회 시간이 다가오면서 내 영혼은 하나님께 힘과 권능을 달라고 고뇌어린 기도로 씨름하게 되었다. 마지막 찬미가 불리워지고 있을 때, 나는 강단에 서게 되었다. 나는 만일 내 수고에 어떤 성공이 있다면 그것은 능하신 분의 힘을 통하여 온 것이리라는 것을 인식하면서 매우 연약한 몸으로 섰다. 내가 말하고자 할 때 여호와의 영이 내게 임하셨다. 나는 전기 충격 같은 것을 심장에 느꼈으며, 모든 통증이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나는 뇌 중앙부에 위치한 신경에 큰 통증을 느껴 왔었으나, 이것도 역시 완전히 없어져 버렸다. 예민한 후두와 쓰린 폐도 역시 완화되었다. 심장의 통증으로 인해 왼팔과 왼손을 거의 쓸 수 없었는데, 자연스러운 감각이 이제 회복되었다. 내 정신은 맑아졌으며, 내 영혼은 하나님의 빛과 사랑으로 가득하였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불벽처럼 사방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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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텐트는 가득 찼으며, 안쪽에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약 이백명의 사람들이 장막 밖에 서 있었다. 나는 율법 중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가에 관하여 학식 있는 서기관들이 제기한 질문에 답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서두를 열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마 22:37). 하나님의 축복이 내게 임했으며, 내 고통과 연약함은 나를 떠나갔다. 내 앞에는 심판의 때까지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으며, 그들의 구원을 향한 나의 열망은 내가 그들의 피로부터 자유롭게 될 수 있도록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간절하게 말하도록 이끌었다. 1 시간 10분 동안 계속된 강연 중 나는 거침없이 말할 수 있었다. 예수께서는 나의 도움이셨으며, 그분의 이름은 모든 영광을 차지하셔야 할 것이다. 청중들은 정신을 집중하고 들었다.
우리는 화요일에 돌아왔는데, 야영이 끝나고 텐트들이 치워졌으며, 형제들이 작별 인사를 나누며 자기들의 가정에 돌아가기 위해 차를 타려 하고 있었다. 이것은 일찍이 내가 참석한 장막회 중에서 가장 좋은 장막회 중의 하나였다. 이 지역을 떠나기 전에 캔라이트 목사와, 해스켈 목사와, 나의 남편과 잉스 자매 그리고 나는, 작은 숲에서 휴양처를 발견하여 건강의 축복과 내 남편에게 풍성하게 임한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함께 연합하여 기도하였다. 우리 모두는 나의 남편의 도움이 필요함을 절실히 느끼게 되었는데, 이 때는 사방에서 많은 긴급한 설교의 요청이 들어오고 있었다. 이 기도회 시간은 매우 귀한 것이었으며, 우리에게 임한 달콤한 평안과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간구를 들으셨다는 확신을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다. 오후에 해스켈 목사는 우리를 그의 마차에 태우고 갔으며, 우리는 그의 집에서 잠시 쉬기 위해 사우스 랭카스터를 향해 출발했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건강에 유익하리라고 생각하면서 이런 식으로 여행하는 것을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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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흑암의 세력과 매일 싸웠지만, 우리는 우리 믿음을 포기하거나 자그마한 절망에 빠지지도 않았다. 내 남편은 질병으로 인해 침울해 있었고 사단의 시험이 그의 마음을 크게 어지럽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우리는 대적에게 정복당하고 있다는 생각은 전혀 없었다. 하루에 적어도 세 번 이상, 우리는 그의 병을 위대하신 의사에게 내놓았다. 그분은 영혼과 육신을 다 고쳐 주실 수 있는 분이시다. 모든 기도회 시간은 우리에게 매우 귀중하였다. 매번 우리는 하나님의 빛과 사랑의 특별한 나타남을 보게 되었다. 해스켈 형제의 집에서 어느날 저녁, 남편을 위해 하나님께 탄원하고 있을 때 여호와께서 참으로 우리 중에 계신 것처럼 보였다. 이것은 결코 잊을 수 없는 시간이었다. 그 방은 천사들의 임재로 환히 빛나는 것처럼 보였다. 우리는 마음과 음성으로 여호와를 찬양했다. 거기 있던 한 눈먼 자매가 말했다. “이것은 이상입니까? 이것은 하늘입니까?” 우리 심령은 이처럼 하나님과 가까이 교제하게 되었으며, 이 거룩한 시간을 자면서 보내기에는 너무 성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쉬기 위해 물러났다. 그러나 거의 온 밤을 하나님의 선하심과 사랑에 대해 말하고 명상하며 기쁨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며 보내게 되었다.
우리는 버몬트 장막회에 가는 길에 각자 개인적인 교통 수단으로 여행하기로 결정했는데, 이것이 남편에게 유익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오에 우리는 길가에 멈추어서 불을 피우고 점심을 준비했으며, 기도회를 가졌다. 해스켈 부부와 잉스 자매, 그리고 헌틀리 자매와 함께 무리 지어 보낸 이런 고귀한 시간들은 결코 잊혀지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기도는 사우스 랭카스터에서부터 버몬트에 이르기까지 내내 하나님께 올라갔다. 사흘을 여행한 후에 우리는 기차를 탔고, 이렇게 해서 우리의 여행을 마쳤다.
이 집회는 버몬트의 사업에 특별히 유익한 집회였다. 여호와께서는 거의 매일 한 번씩 백성들에게 말할 수 있도록 내게 힘을 주셨다. 다음의 글은 리뷰 앤드 헤럴드 지에 실린 우라이아 스미스 목사의 보고에서 취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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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잇 부부와 해스켈 형제가 이 집회에 참석했는데 이것은 우리 형제들에게 큰 기쁨입니다. 화잇 형제의 건강 상태와 관련하여 특히 금식하는 날로 정해진 9월 8일 안식일은 이 장막회 장소에서 지켜졌습니다. 이 날은 좋은 날이었습니다. 기도가 막힘없이 흘러나왔고, 이 기도회가 헛되지 않았다는 좋은 징표가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축복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크게 함께 했습니다. 안식일 오후에 화잇 자매가 술술 설득력 있게 말씀했습니다. 약 백명의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 왔으며, 여호와를 찾고자 하는 깊은 감동과 열렬한 의사를 나타냈습니다.”
우리는 버몬트에서 바로 뉴욕 장막회로 떠나갔다. 여호와께서는 내게 거침없이 사람들에게 말하도록 하셨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장막회에서 유익을 얻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자신의 형편을 깨닫는 데 실패하였으며, 그들의 뒤로 물러감을 고백하고 자신들의 죄를 버리면서 하나님을 간절하게 찾지 않았다. 장막회를 개최하는 목적들 중의 하나는, 우리 형제들이 이생의 염려에 너무 크게 억눌릴 위험이 있다는 것을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장막회에 참석할 이런 특권이 증진되지 않으면 큰 손실이 있게 될 것이다.
우리는 미시간으로 돌아왔으며, 며칠 후에 장막회에 참석하기 위해 랜싱으로 갔다. 이 집회는 2주 동안 계속되었다. 여기에서 나는 매우 열렬하게 수고하였으며, 여호와의 영으로 지탱되었다. 나는 학생들에게 말하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수고하는 데에서 크게 축복을 받았다. 이것은 훌륭한 집회였다. 하나님의 영께서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임재하셨다. 이 장막회의 결과로 130명이 침례를 받았다. 이 중의 대부분은 우리 대학에서 온 학생들이었다. 우리는 이 집회에 있었던 하나님의 구원을 보면서 기뻐했다. 배틀크릭에서 몇 주일을 보낸 다음, 우리는 캘리포니아로 가기 위해 평원을 가로지르기로 결심했다.
캘리포니아에서의 활동
내 남편은 캘리포니아에서 거의 활동하지 못했다. 그의 회복은 더딘 것처럼 보였다. 우리 기도는 하루에 적어도 세 차례 이상, 때로는 다섯 번씩 하늘로 올라갔다. 그리고 하나님의 평안이 우리에게 임했다. 나는 조금도 좌절하지 않았다. 잠못 이루는 수많은 밤들은 대부분 기도하고 그분의 자비를 구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데 보냈다. 나는 계속적으로 내 마음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평안을 느꼈으며, 내 평안은 강과 같다고 참으로 말할 수 있었다. 나의 남편의 질병 이외에도 보이지 않고 예측할 수 없는 시련이 거의 나를 압도하였다. 그러나 하나님에 대한 나의 신뢰와 확신은 흔들리지 않았다. 그분은 실로 필요한 모든 시간에 즉각적인 도움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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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힐즈버그, 세인트 헬레나, 바카빌, 그리고 파체코를 방문했다. 나의 남편은 날씨가 괜찮으면 나와 동행하였다. 겨울은 우리에게 시련의 시간이었다. 그리고 남편은 건강이 좀 좋아졌고 미시간의 날씨도 온화해져서 그는 돌아와 요양원의 치료를 받게 되었다. 여기에서 그는 크게 유익을 얻었으며, 평상시의 명료함과 힘을 가지고 우리 책들을 위해 글을 쓰게 될 만큼 회복되었다.
나는 평원을 횡단하는 데 남편과 동행하려고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계속적인 근심과 염려, 그리고 잠을 못 이루는 것 때문에 나에게 위험스러운 심장 질환이 왔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헤어지는 시간이 다가옴에 따라 큰 고통을 느꼈다. 우리가 눈물을 자제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세상에서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남편은 미시간으로 돌아가고 있었으며, 우리는 내가 오레곤을 방문하여 내 말을 전혀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나의 증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결정했다.
나는 힐즈버그를 떠나 오클랜드를 향해 가서 6월 7일에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대형 텐트 아래 모인 오클랜드와 샌프란시스코 교인들을 만났는데, 여기에서는 힐레이 형제가 수고하고 있었다. 나는 증거의 부담을 느꼈으며, 다른 사람들을 진리의 지식으로 이끌어 들이기 위해 이 교회 편에서 끈기 있는 개인적 노력을 해야 할 큰 필요성을 느꼈다. 나는 샌프란시스코와 오클랜드가 선교지이며 계속적으로 그렇게 될 것이라는 것을 보았다. 교인 수의 증가는 더딜 것이었다. 그러나 만일 이 교회의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교인들이고 다른 사람들 앞에 빛을 가져가는 데 있어서 자신들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행한다면, 더 많은 사람들이 이 대열에 들어와 진리에 순종할 것이다. 진리 안에 있는 현재의 신자들은 마땅히 그들이 해야 할 만큼 다른 이들의 구원에 대해 관심이 없었다.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비활동과 게으름은 그들 자신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가게 하는 결과를 가져 올 것이며, 그들의 모본으로 그들은 다른 이들이 전진하는 것을 방해할 것이다. 무아적이고 인내하며 활발한 활동은 아주 좋은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에게 여호와께서 내 앞에 제시하신 것과, 그분께서는 단지 그것을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열렬하고 활동적으로 수고하는 자들에 의해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가 제시되도록 하신다는 것을 감명시키기 위해 애썼다. 그들은 단지 말로써만 아니라 신중한 생애와 진리의 살아 있는 대표자들이 되어서 진리를 제시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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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교회들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성경의 학도가 되어야 하며, 그들이 하나님의 사업에서 일꾼들이 되기 위해 하나님의 뜻을 가장 열렬히 연구해야 된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이 어느 곳에 있든지, 집회 장소에서와 마찬가지로 집에서나 일터에서나 시장에서라도 진리의 씨앗을 뿌려야 한다. 그들은 성경과 친숙해지기 위해, 이것을 주의 깊이,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들과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드리기 위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중요성을 깨닫고 그것을 지는 것을 배우기 위해 즉시 연구를 시작해야 한다. 만일 그들이 거룩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그들은 지금 자신들 앞에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을 간직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사람인지를 보도록 이끄는 것은 시련이다. 한 사람의 진정한 품성의 일면을 보여 주고 선한 특질을 계발할 필요성을 보여 주는 것은 시험의 시간이다. 하나님의 축복을 신뢰하면 그리스도인은 어디에 있든지 안전하다. 도시 안에서 그는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다. 그는 회계실에서 그의 엄격한 고결함의 습관으로 눈에 띌 것이다. 기계 공장에서 그의 일의 모든 분야는 충성스럽게 이루어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편단심으로 행해질 것이다. 교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런 노선을 따른다면 그 교회는 성공할 것이다. 각 교인들이 하나님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그들의 동료 인간들의 구원에 대해 무아적인 관심을 가질 때 이 교회들에게 번영은 올것이다. 목회자들은 마음에 드는 힘있는 설교를 하며, 교회를 세우고 번창하게 하기 위해 많은 수고가 행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교회의 각 교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자신의 분야에서 일하지 않는다면 그 교회는 계속해서 어두움 가운데에 있을 것이며 항상 힘이 없게 될 것이다. 세상이 험하고 어두운 만큼, 진정으로 일관된 모본의 영향은 선을 위한 힘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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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자신이 결코 씨를 뿌리지 않은 곳에서 수확을, 혹은 그것을 얻기 위해 애쓰지 않은 곳에서 지식을 기대할 수 없는 것처럼 게으름 가운데 구원받는 것도 기대할 수 없다. 게으른 자와 나태한 자는, 교만을 무너뜨리고 자신을 그의 구주로부터 막아 버리는, 죄된 방종으로 이끄는 시험의 권세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결코 성공하지 못할 것이다. 생애를 성화시키는 진리의 빛은, 이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해 정복할 수 있으려면, 사단을 대항하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하고 그의 모든 능력을 행사하는 일을 필요하게 만드는, 자신을 지배하려고 애쓰는, 자신의 심령 안에 있는 죄된 정욕을 발견하게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도록 이끌고자 하는 수많은 영향에 둘러싸일 때, 사단의 간계를 정복할 수 있도록 예수님으로부터 도움과 힘을 구하기 위해 끈덕지게 기도해야 한다.
이 교회 안의 어떤 사람들은, 이생에 대한 염려와 세상적인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서 하나님이나 하늘,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의 필요를 생각하지 못하는 위험이 항상 있다. 그들은 때때로 자신들의 혼수 상태에서 깨어나지만, 곧 다시 더 깊은 마비 상태에 떨어진다. 그들이 자신들의 무감각에서 완전히 일어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주신 빛을 제거하시고 축복을 거두실 것이다. 그분은 분노하심으로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실 것이다. 그분은 이 교회를 그분의 율법의 보관자로 삼으셨다. 만일 그들이 죄를 물리치고, 활동적이며 열렬한 경건으로 안정감과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에 순종을 나타내 보이고, 종교적인 의무를 수행하는 데 성실하다면, 그들은 촛대를 그 자리에 굳게 세우는 것을 도울 것이며, 만주의 여호와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고 야곱의 하나님이 그들의 피난처가 된다는 증거를 갖게 될 것이다.
오레곤 방문
6월 10일 일요일, 우리는 오레곤으로 출발하게 되어 있었는데, 나는 심장병으로 쇠약해 있었다. 내 친구들은 내가 배를 타는 것이 거의 어렵지 않은가 하고 생각했으나, 나는 배를 타게 되면 쉴 수 있으리라고 여겼다. 나는 여정에 많은 글을 쓰려고 예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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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성 친구와 J.N.러프보로우 목사와 동행하여 나는 증기선 “오레곤” 호를 타고 10일 오후에 샌프란시스코를 떠났다. 이 훌륭한 배의 책임을 맡은 코넬 선장은 그의 승객들에게 아주 주의를 기울였다. 우리가 금문교를 통해 넓은 바다로 나갈 때 대단히 어려웠다. 바람이 거슬러 불어왔고, 증기선은 무섭게 곤두박질을 쳤으며, 바다는 바람으로 인해 맹렬하게 날뛰었다. 나는 구름 낀 하늘을 바라보았으며, 산더미처럼 밀려오는 파도와 무지개빛을 반사하는 물보라를 보았다. 이 광경은 두려울 정도로 어마어마한 것이었으며, 나는 깊음의 신비를 생각하면서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이것은 두려운 분노 그 자체였다. 거만한 파도가 울부짖으며 솟아오르고 이어서 슬프게 울며 떨어지는 모습에는 두려운 아름다움이 있었다. 마치 고뇌의 경련 속에 물결을 높이 솟구치게 하는, 무자비한 바람의 움직임 밑에서 울부짖으며 쉼없이 요동치는 물의 모습에서 나는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남을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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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다운 배 안에 있었으며, 영원히 쉬지 않을 것 같은 파도에 부딪히는 대로 이리저리 흔들거렸다. 그러나 바다 물결을 굳건히 붙잡고 있는 보이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하나님께서만 이것들을 그들의 정해진 경계 안에 지키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그분은 그 물을 마치 그분에게 예속되어 있는 것처럼 붙드실 수 있다. 깊음은 그의 창조주의 음성에 순종할 것이다.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하리니 네 교만한 물결이 여기 그칠지니라.”
넓고 광대한 태평양은 얼마나 놀라운 생각의 주제인가! 겉으로 볼 때, 이것은 태평의 정반대였다. 이것은 광기였으며 두려움이었다. 우리가 바다의 표면만을 본다면, 그 큰 깊음만큼 전적으로 다루기가 불가능하고 그처럼 법칙이나 질서가 없는 것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대양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한다. 그분은 물을 균형지게 하시고 그 바닥을 표하신다. 나는 위에 있는 하늘과 밑에 있는 물을 보면서 이렇게 질문했다. “나는 어디에 있는가?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오로지 끝없는 물만이 나를 두르고 있구나.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배를 타고 나와서 이 물위에 있었으며, 다시는 푸른 초원과 혹은 그들의 행복한 가정을 볼 수 없게 되었는가! 그들은 하나의 모래알처럼 깊음 중에 떨어지고 이렇게 해서 그들의 삶을 마쳤구나.”
교회증언 4권 pp. 279-28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