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269-278 (225일)

교회들은 비난보다는 훈육이 더 필요하다. 목회자는 그들의 영성의 결핍과 의무의 소홀을 너무 심하게 비난하는 대신, 교훈과 모본으로 그들로 은혜와 진리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도록 가르쳐야 한다. “내가 교회 일꾼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하나님이 그들로 하여금 이 비밀의 영광이 이방인 가운데 어떻게 풍성한 것을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 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이제 나이가 사십이나 오십에 이른 우리 목회자들은 자신들의 수고가 이전보다 덜 능률적이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가 들고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강력하고도 잘 지도된 노력을 쏟아 넣을 수 있는 바로 그 사람들이다. 그들은 특히 이 시대에 필요한 사람들이며, 교회는 그들과 분리될 수 없다. 이런 사람들은 육체적이고 정신적인 연약함에 대하여 말해서는 안되며, 또한 쓸모 있는 자신들의 날이 지났다고 생각해서도 안된다.

그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육체적인 활동으로 해소되지 못한 정신적인 탈진으로 고통당했으며, 그 결과는 그들의 능력의 퇴화와 책임을 회피하는 경향으로 나타났다.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은 보다 활발한 활동이다. 이것은 세월의 서리와 함께 머리가 희어진 사람들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같은 상태에 빠져 있고 정신적으로 연약해진 젊은이들에게도 해당되는 것이다. 그들은 짜여진 설교의 항목을 가지고 있지만, 이 한계를 넘어서면 그들은 말문이 닫혀버린다.

말을 타고 양떼를 방문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 구식 목사는 그의 어려움과 노출에도 불구하고, 가능한 모든 육체적인 활동을 피하고 자신들을 집에 틀어 박혀 책만 보는 오늘날 우리 목회자들보다 더 좋은 건강을 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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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고 경험이 많은 목회자들은, 하나님의 고용된 종으로서 앞으로 나아가고 날마다 전진하며 계속적으로 자신들의 사업에 더욱 능숙하게 되고 백성들 앞에 끊임없이 신선한 것들을 모으기 위해 노력하는 것을 자신들의 의무로 생각해야 한다. 복음을 강해하기 위한 각각의 노력은 그 앞서의 것들을 개선시킨 것이 되어야 한다. 해마다 그들은 더 깊은 경건과 부드러운 정신과 위대한 영성과 보다 철저한 성경 지식을 계발해야만 한다. 그들의 나이와 경험이 많아질수록 그들은 백성들에 대한 보다 완벽한 지식을 지니고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

누가 그들을 대적하든지 바른 것을 위하여 그들의 목소리를 높이기를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이 오늘날 많이 필요하다. 그들은 강한 정직성과 시련을 견딘 용기의 사람이어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부르고 있으며, 하나님께서는 복음 전도의 모든 분야를 떠받치려는 그들의 노력에 합력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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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28 — 교회에 대한 증언

25 장 — 경험과 수고

이 때에 사랑하는 나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다른 「증언」을 보내게 된 이유는, 여호와께서 내게 그분 자신을 은혜롭게 보이셨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인자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고 있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한 문제를 계시하셨기 때문이다. 1875년 1월 3일에 내게 주어진 이상과 최근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이 나타난 것의 간격에는 3년 이상이 있게 되었다. 그러나 내게 최근 보여진 이상에 들어가기 전, 나는 지난 일 년 혹은 이 년의 경험을 간략히 묘사해 보도록 하겠다.

1877년 5월 11일,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 오클랜드를 떠나서 미시간 주의 배틀크릭으로 갔다. 나는 여러 달 동안 심장 통증으로 어려움을 당했으며, 초원을 가로질러 여행하는 동안 호흡 곤란으로 매우 어려움을 당했다. 이 고통은 우리가 미시간에 도착해서도 나를 떠나지 않았다.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 집을 다른 사람이 쓰고 있었으며, 우리를 돌보아 줄 다른 친척들이 그곳에 없었기 때문에 우리 아이들은 내내 캘리포니아에 있었다. 친절한 친구들은 나를 위해 그들이 해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 주었으나, 나는 그들이 자신들의 가족들에게만 온전히 쏟아야 할 관심을 내게 갖는 것에 대해 편안하지가 않았다.

한 메세지가 내 남편에게 전달되었는데, 사업에 관련된 중요한 일을 돌보기 위해 배틀크릭으로 와 달라고 요청하는 내용이었다. 특별히 큰 요양원 건물의 계획을 수립하는 일을 감독해 달라는 것이었다. 이 요청에 응하여 그는 이곳에 왔으며, 설교하고 저술하고 리뷰 출판소, 대학과 요양원에서 이사회를 주재하고, 거의 언제나 밤중까지 일하고 신실하게 종사하였다. 이것은 그를 두렵도록 쇠잔하게 하였다. 그는 이 기관들의 중요성을 느꼈다. 그러나 특별히 요양원 건물의 중요성을 느꼈는데, 여기에는 5만 달러 이상이 투자되었다. 그의 계속적인 정신적 고뇌는 갑작스럽게 쓰러지는 길을 준비하고 있었다. 우리는 함께 우리의 위험을 느꼈으며, 콜로라도로 물러나서 휴양과 쉼을 누리고자 결심했다. 이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동안, 한 음성이 내게 말하는 것 같았다. “갑주를 입어라. 배틀크릭에서 그대들이 해야 할 일이 있다.” 이 음성이 너무 분명했기 때문에 나는 누가 말하는가를 보기 위해 돌이켰다. 나는 아무도 볼 수 없었으며,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끼는 중에, 내 심령은 그분 앞에 부드러움 가운데 부서져 버렸다. 남편이 그 방에 들어 왔을 때, 나는 그에게 내 마음속에서 있었던 인상에 대해 말했다. 우리는 함께 울고 기도드렸다. 우리는 사흘 안에 떠나고자 했지만 이제 우리의 모든 계획은 바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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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30일, 요양원의 환자들과 의료진들은 이 날 배틀크릭에서 2 마일 정도 떨어진 고구악 호수 변의 아름다운 숲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계획하고, 나보고 참석해서 환자들에게 말해 달라고 요청했다. 만일 내가 내 자신의 감정을 생각했다면 가지 않았겠지만, 나는 아마도 이것이 배틀크릭에서 내가 해야 할 일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식사 때쯤 되어 건강 식품이 식탁에 차려졌고, 맛있게 식사들을 했다. 3시에 기도와 찬양으로 행사가 시작되었다. 나는 거침없이 사람들에게 말했다. 모든 사람은 깊은 관심을 가지고 들었다. 내가 말을 마친 후 요양원의 한 환자인 위스콘신의 판사 그래함이 일어서서 그 강연을 인쇄해서 그들의 도덕적이고 육체적인 유익을 위해 환자들과 다른 이들에게 배포하여, 그 날 전해진 말씀들이 잊어버려지거나 없어지지 않도록 하자고 제안했다. 이 제안은 만장일치로 승인되었으며, 이 강연은 “고구악 호수의 요양원 환자” 라는 제목의 작은 팜플렛으로 출판되었다.

배틀크릭 대학의 학년도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나는 학생들에 대해 큰 관심을 느꼈는데, 이들 중 많은 이들이 회심하지 않았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물러갔다. 나는 그들에게 말하고자 원하였으며, 그들이 자신의 가정으로 흩어지기 전에 그들의 구원을 위해 노력하고자 애썼으나, 나는 그들을 위해 수고하는 일에 종사하기에는 너무도 허약했었다. 내가 이야기한 그 경험 이후에 나는 학생들의 구원을 위하여 수고하는 일에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어 달라고 구할 수 있다는 온갖 증거를 갖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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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들의 유익을 위해, 우리의 예배 장소에서 집회들이 열리기로 예정되었다. 나는 그들을 위해 일주일 동안 수고하며 보냈고 매일 저녁과 안식일, 그리고 첫날에 집회가 있었다. 내 심령은 우리 학교의 학생들로 거의 채워진 예배당을 보면서 감동되었다. 나는 그들에게 순결함과 기도의 생애가 학문의 철저한 지식을 얻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은 그들이 지식 안에서 자라나는데 많은 방해를 제거하는 것이라는 감명을 주기 위해 애썼다. 구주와 연결됨으로써 그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 보내졌으며, 만일 그들이 이 학교에서 부지런한 학생들이 된다면, 악과 부도덕은 그들 가운데서 물리쳐질 것이다. 이것은 모두 쓸려나갈 것이며 그 결과로 지식이 향상될 것이다.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는 자가 되는 모든 이들은 그들의 교육의 질과 범위 모두에 있어서 탁월하게 될 것이다. 나는 그들 앞에 그리스도를 위대한 교사로서, 모든 지혜의 근원으로서, 세상이 일찍이 알았던 가장 위대한 교사로서 제시했다.

“여호와를 경외함이 지혜의 근본이다.” 하나님과 그분의 요구하심에 대한 지식은, 학생들에게 하나님과 세상에 대한 책임감을 깨닫도록 지혜를 열어 줄 것이다. 이 목적을 위해 학생들은 자신의 달란트가 가장 좋은 결과를 낳는 그런 길로 계발되어야만 한다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이 일은 종교의 모든 교훈과 원칙이 그들의 학교 교육과 연결되지 않으면 이루어질 수 없다. 어떤 경우에도 그의 연구가 하나님과 단절되어서는 안된다. 지식을 추구함에 있어서 그는 진리를 구한다. 그리고 모든 진리는 진리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온다. 덕성이 있고 그리스도의 영으로 채워진 학생들은 그들의 모든 능력을 다 발휘하여 지식을 붙잡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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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틀크릭의 대학은 학문을 가르치고 동시에, 모든 참된 지식이 흘러나오는 구주에게로 학생들을 인도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워졌다. 성경의 종교 없이 얻어진 교육은 그것의 참된 밝음과 영광을 빼앗기게 될 것이다. 나는 학생들에게, 우리 학교는 젊은이들 앞에 생애의 고상한 견해와 목적과 목표를 펼쳐 주고, 인간의 의무와 영원한 관심에 대한 정확한 지식을 교육함으로 다른 어떤 학문 기관보다 교육적인 견지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감명시키려고 노력했다. 우리 대학을 세우는 데 있어서 큰 목표는 과학과 성경의 종교와의 조화를 보여 주면서 정확한 견해를 가르쳐 주는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내게 힘을 주셨고 우리의 노력을 축복하셨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위해 앞으로 나왔다. 이런 이들 중 얼마는 깨어 기도하지 못함으로서 그들의 믿음과 하나님과의 연결의 증거를 상실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단계를 취함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다고 간증했다. 이 집회의 결과로 수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위해 자신을 드렸다.

대학 학년도의 종업식이 고구악 호수에서 개최됨으로, 침례식이 그 호수에서 진행되기로 결정되었다. 이 침례식은 모인 많은 회중들에게 큰 관심을 끄는 행사였으며, 적절하게도 이 엄숙한 예식으로 끝을 맺게 되었다. 나는 이 예식의 처음과 마지막에 연설을 했다. 남편은 열 네 명의 고귀한 젊은이들을 아름다운 호수의 물로 데리고 내려가서 침례를 줌으로 주님과 함께 장사를 지냈다. 여기에 참여했던 몇 사람들은 그들의 고향에서 침례를 받기로 선택하기도 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의 사랑하는 학교인 대학의 기념할 만한 예식이 끝나게 되었다.

절제회 모임들

그러나 배틀크릭에서의 내 사업은 아직 다 마쳐지지 않았다. 호수에서 돌아오자마자 우리는 큰 절제 집회에 참여해 달라는 간절한 요청을 받게 되었다. 이것은 배틀크릭의 상류층 시민들에게 나아가고자 하는 칭찬 받을 만한 시도였다. 이 운동은, 6백명 회원의 배틀크릭 개혁 클럽과, 260명 회원의 그리스도인 여성 절제 연합과 손을 잡았다.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그리고 성경은 이 열성적인 일꾼에게 낯익은 단어들이었다. 이미 많은 선한 것들이 성취되고 있었으며, 일꾼들의 활동과 그들이 수고하는 체계, 그리고 이들의 모임의 정신은 미래에 큰 선을 약속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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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28일, 바르넘의 큰 이동 동물원이 이 도시를 방문하게 되었는데, 이 때 그리스도인 여성 절제 연합의 여성들은 시골에서 이 동물원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이 시험에 노출되기 쉬운 살롱이나 주점에 들어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대중들을 수용할 수 있는 거대한 절제 식당들을 만듦으로써 절제와 개혁 사업을 위해 효과적인 결과를 거두었다. 미시간 합회가 장막회용으로 사용하는, 오천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형 텐트가 이 일을 위해 제공되었다. 이 거대한 텐트 성전 밑에 손님들을 맞이하기 위해 15개에서 20개의 테이블이 세워졌다.

초청을 받은 요양원은 큰 천막 중앙에 대형 테이블을 설치하고, 거기에 맛좋은 과일과 곡류, 그리고 채소들을 차려 놓았다. 이 테이블은 가장 큰 매력을 불러 일으켰으며, 다른 어떤 것보다도 고객들이 더 많았다. 이것은 길이가 30피트 이상이었지만,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이것의 2/3 정도 되는 다른 것을 놓는 것이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것도 역시 사람들로 크게 붐볐다.

초청 위원회의 초대로 오스틴 시장과, 제일 국립 은행의 현금 계원 W.H.스키너와, C.C.피비와, 내가 말하게 되었다. 나는 7월 1일 일요일 저녁, 그리스도인 절제에 관한 주제로 말했다. 하나님께서 그날 저녁에 나를 도우셔서 90분간 강연을 했는데, 거의 오천명의 군중이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침묵 가운데 경청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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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애나 방문

8월 9일-14일에 나는 내 자부 메리 K.화잇을 데리고 인디애나 장막회에 참석했다. 남편은 배틀크릭을 떠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 장막회에서 여호와께서는 아주 열렬하게 수고하도록 내게 힘을 주셨다. 그분은 내게 사람들에게 호소할 수 있도록 명확함과 능력을 주셨다. 내가 그곳에 모인 남녀들을 살펴 볼 때, 외모의 고상함과 눈에 띄는 영향을 보면서, 6년 전에 모였던, 대부분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소수의 무리들과 비교하면서 나는 이렇게 외칠 수밖에 없었다. “여호와께서 어떻게 역사 하셨는가!”

월요일에 나는 폐의 심한 통증으로 고통을 당하였으며 독감에 걸렸다. 그러나 나는 다시 한 번 영혼의 구원을 위해 수고할 수 있도록 힘을 달라고 여호와께 탄원하였다. 나는 내 연약함을 딛고 일어섰으며, 거침없이, 그리고 권세 있게 말할 수 있는 축복을 받았다. 나는 사람들에게 그들의 심령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호소하였다. 약 오십명이 기도를 위해 앞으로 나왔다. 가장 깊은 관심이 나타났다. 이 집회의 결과로 열 다섯 명이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

우리는 오하이오와 동부의 장막회에 참석하고자 계획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이렇게 하는 것은 나의 현재 건강 상태로 보아 도가 지나칠 것으로 생각되어 우리는 배틀크릭에 머물기로 결정했다. 내 목과 폐는 나를 매우 고통스럽게 했으며, 내 심장은 아직도 병에 걸려 있었다. 큰 고통의 시간이 되어서 나는 요양원의 치료에 내 자신을 맡기게 되었다.

과로의 영향

남편은 배틀크릭에 중심을 둔 사업의 다양한 분야에서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증진시키기 위해 끊임없이 수고하였다. 그의 친구들은 그가 성취한 일의 양을 보고 탄복하였다. 8월 18일 안식일 아침, 그는 우리 예배당에서 말씀했다. 오후에 그의 마음은 「예언의 신」 제3권의 원고가 낭독되는 것에 귀를 기울이면서 네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세밀하게 그리고 활발하게 활동했다. 그 책의 원고는 매우 흥미 있는 것이었으며, 그리스도의 심문과 십자가에 못 박히심, 부활과 승천에 관련된 내용이기에 영혼을 그 가장 깊은 곳까지 분기시킬 것으로 생각되었다. 우리가 그것을 알기 전에, 그는 매우 쇠약해 있었다. 그는 일요일 아침 다섯 시에 일하기 시작하여 밤 12시까지 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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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여섯시 반쯤 그는 현기증으로 쓰러졌으며, 마비될 위험에 빠졌다. 우리는 이 위험한 질병을 크게 두려워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비로우셨으며, 우리를 이 어려움 중에서 구원하셨다. 그러나 그의 발작에 심한 육체적 정신적 쇠약이 잇따르게 되었고, 지금은 참으로 우리가 동부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다. 아니면 정신적으로 좌절감에 빠져 있고 건강이 쇠약한 남편을 그냥 두고 내가 거기에 참석해야 할 것이다.

나의 남편이 이렇게 쓰려져 있을 때, 나는 말했다. “이것은 대적의 일이다. 우리는 그의 힘에 굴복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일하실 것이다.” 수요일에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이 그에게 임하고 그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달라는 특별한 기도회를 가졌다. 우리는 또한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에 관하여 우리의 의무를 알 수 있도록 지혜를 구했다. 여호와께서는 좌절과 어려움 가운데서도 나아가서 그분을 위해 일할 수 있도록 여러 번 용기를 주셨다. 그리고 이런 때에 그분은 놀랍게 우리를 보존하시고 붙들어 주셨었다. 그러나 우리 친구들은 우리가 쉬어야만 한다고 간청했으며, 우리가 이런 여행을 시도하고 피로를 무릅쓰고 야영 생활에 노출되는 것은 불합리하고 사리에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고 했다. 우리 자신은, 만일 우리가 한 쪽에 비켜서고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담당할 일이 없다 하더라도 그분의 사업은 동일하게 발전하리라고 생각하려고 애썼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을 행하도록 다른 사람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그러나 나는 수고의 현장으로부터 멀리 떠나 머무른다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가 보기에는 사단이 내가 증언하는 것을 가로막고 하나님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려고 애쓰는 것처럼 생각되었다. 나는 혼자서 가려고 결심하였으며, 필요한 힘을 달라고 하나님을 신뢰하면서 내가 맡은 일을 하려고 했다. 그 때에 해스켈 형제로부터 한 편지를 받게 되었는데, 그는 이 편지에서 화잇 부부가 뉴잉글랜드 장막회에 참석하는 것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를 표했다. 캔라이트 목사는 자신은 참석할 수 없을 것이라고 썼으며, 그는 댄버의 사업을 떠날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떤 군중도 그 장막회에 제외될 수 없다고 했다. 해스켈 목사는 그의 편지에서, 그로브랜드에서의 큰 집회를 위해 모든 준비가 이루어졌으며, 자신은 비록 혼자서 수행해야 하더라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이 집회를 주관하겠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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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시 이 문제를 기도하는 가운데 여호와께로 가져갔다. 우리는 힘센 치료자께서, 만일 그렇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영광을 위한 것이라면 남편과 나를 건강하게 회복시켜 주실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쇠약함과 질병과 좌절을 물리쳐 내기는 어려운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때때로 나는 하나님께서 만일 우리가 그분을 신뢰하는 가운데 나아간다면 이 여행이 우리 모두에게 축복이 되도록 해 주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이 생각이 자주 내 마음에 일어났다. “네 믿음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네 사는 날을 따라서 능력이 있으리로다.’”

나는 남편에게 용기를 주려고 노력했다. 그는 만일 내가 장막회의 피로와 수고를 감당할 수 있다고 느낀다면 내가 가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가 활동할 수 없는 연약한 상태로, 그의 마음이 낙담으로 흐려지고, 그 자신이 형제의 동정의 대상이 되는 채로 나와 같이 가야 한다는 생각을 견딜 수 없었다. 그는 갑작스런 발병 이래로 조금밖에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고 더 이상 강해지지는 않을 것 같았다. 우리는 구름 가운데 갈라진 틈이 있으리라고 소망하면서 여러 번 여호와를 찾았으나 아무런 특별한 빛도 비쳐나오지 않았다. 마차가 우리를 정거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동안, 우리는 다시 기도하면서 여호와 앞에 나아갔고, 우리를 여행중에 붙들어 달라고 탄원했다. 우리는 모두 믿음으로 행하고 하나님의 모든 약속을 의지하고 전진할 것을 결심했다. 우리 편에서의 이 움직임은 대단한 믿음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차 안에 자리를 잡으면서, 우리는 의무의 길 안에 있다는 것을 느꼈다. 우리는 여행하면서 쉬었으며 밤중에 잘 자게 되었다.

교회증언 4권 pp. 269-2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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