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249-258 (223일)

넷째 계명의 바로 서두에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많은 염려와 고충 속에서 계명의 완전한 요구에 응할 수 없다고 핑계할 유혹을 당할 것과, 세상 사업의 압박 속에서 넷째 계명의 거룩한 의미를 망각할 것을 아시고 “기억하라” 고 말씀하셨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출 20:9). 곧 세상의 이익과 쾌락을 위한 생활상의 일상 사업이 여기 포함된다. 이 말씀은 매우 명백하여 오해할 여지가 없다. K 형제여, 이와 같이 엄숙하고 중요한 계명을 어떻게 감히 범하는가? 주께서 세상에 주신 계명에서 그대를 면제시키는 예외를 만드셨는가? 그대의 범법이 기록책에서 누락될 것인가? 민족들이 그분 앞에 심판을 받기 위하여 나아 올 때에 그분께서 그대의 불순종을 용서해 주기로 하셨는가? 그대의 죄가 그에 상응하는 형벌을 가져오지 않으리라는 생각으로 한 순간도 그대 자신을 속이지 말라. 그대가 빛을 받았으나 그것과 정반대로 행했기 때문에, 그대의 범법에는 형벌의 채찍이 따를 것이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예비치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치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눅 12:47).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그 자신의 일과 생애의 일반 사업을 하도록 엿새를 주셨다. 그러나 당신이 구별하여 거룩하게 하신 한 날을 요구하신다. 그분은 그 날을, 사람이 노동에서 쉬고 예배에 바쳐 그의 영적 상태를 증진시키는 날로 삼게 하신다. 인간이 여호와의 거룩한 한 날을 도적하여 자신의 이기적 목적에 사용하는 것은 얼마나 큰 죄를 범하는 일인가!

유한한 인간이 자신의 보잘것없는 일시적 이익을 위하여 감히 전능하신 분과 타협하는 것은 가장 참람된 일이다. 때때로 안식일을 세속적 사업에 사용하는 것은 전적으로 그것을 거절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모한 범법이다. 그것은 주님의 계명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기 때문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 이시라는 말씀이 시내산에서 우레와 같이 울려 나온다. 부분적 순종, 분리된 관심은,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시고, 그분을 사랑하며 그 계명을 지키는 자들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말씀하시는 분에게 가납될 수 없다. 이웃의 것을 훔치는 것은 작은 문제가 아니며, 그러한 행동을 한 죄가 있다고 판명되는 자에게 찍혀지는 낙인은 대단하다. 그러나 동료 인간의 것을 사취하는 것을 멸시하는 자가 하늘 아버지께서 축복하시고 특별한 목적을 위하여 구별하신 시간을 부끄러움도 없이 훔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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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형제여,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공언하는 신앙과 어긋나고 있으며, 그대의 유일한 변명은 편의상 어쩔 수 없었다는 가련한 호소뿐이다. 과거에 하나님의 종들은 그들의 믿음을 옹호하기 위하여 생명을 버리라는 요구를 받았다. 그대의 행동은, 신앙을 포기하거나 진리의 원칙을 희생하기보다는 차라리 굶주림과 기갈, 고문과 죽음을 당한 그리스도인 순교자들의 행동과 일치하지 않는다.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약 2:14) 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안식일에 일하고자 그대의 손을 놀릴 때마다, 그대는 실제적으로 그대의 신앙을 부인한다. 거룩한 말씀은 행함이 없는 믿음이 죽은 것이라고 알려 주고, 생애의 증언은 그가 공언하는 믿음이 과연 진실한지 않은지를 세상에 선포한다. 그대의 행위는 그대의 세상 친구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낮게 평가하도록 해준다. 그것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해 준다. “그대들은 계명들을 지켜도 되고 안 지켜도 된다. 나는 하나님의 계명이 어떤 의미로는 사람들에게 구속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 주께서는 그 조항들을 엄격히 지키는 일에 매우 철두철미하신 분이 아니시며, 간혹 범법해도 그분께서 혹독하게 처벌하지 않으신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를 예로 들어 안식일을 범하는 것을 스스로 변명한다. 그들은, 제칠일이 안식일이라고 믿는 그처럼 선한 사람이 상황이 그렇게 요구하는 것처럼 보일 때는 그 날에 세상 사업에 종사할 수 있다면, 분명히 그들도 정죄받는 일 없이 그 동일한 일을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대의 감화 때문에 하나님의 계명을 불순종했노라고 핑계하면서 심판날에 그대를 대면할 것이다. 비록 이것이 그들의 죄에 대한 변명은 될 수 없을지라도, 그것은 그대에게 두렵게도 불리한 증언이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고, 그분께서는 인간이 순종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분은 인간이 그렇게 하는 것이 편리한지를 묻지 않으신다. 생명과 영광의 주께서는 인간을 불순종의 결과에서 구원해 내기 위하여 높은 사령관의 자리를 떠나시고 슬픔의 사람, 질고를 아는 자가 되셔서, 치욕과 죽음을 당하실 때 당신의 편의와 즐거움을 고려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사람을 구원하시되 죄 있는 그대로 구원하지 않으시고, 죄에서 떠나도록 구원하고자 돌아가셨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라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그분을 따르며 자아를 부정하고, 어떠한 대가를 치르더라도 하나님을 순종하면서 자신의 길의 잘못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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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는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마 6:24)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하나님의 진실한 종이라면, 그분의 계명을 순종할 것인지 우리의 현세적 이익을 고려할 것인지에 대해 우리 마음에 의문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비교적 평화스러운 요즘, 진리를 믿는 자들이 그들의 믿음으로 지탱되지 못하고 있다면, 큰 시험이 오고 이마에나 손에 짐승의 표를 받거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모든 자들에 대한 법령이 내릴 때 무엇이 그들을 지탱해 주겠는가? 이 엄숙한 시기는 멀지 않았다. 연약하고 우유부단해지는 대신, 하나님의 백성들은 시련의 때를 위하여 힘과 용기를 축적해야 한다.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께서는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가장 엄격한 순종을 가르치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계명의 명예가 보존되면서도 사람이 완전히 멸망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의로운 자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고, 죄 없는 자로서 죄인을 대신하여 돌아가셨다. 죄는 불법이다. 아담의 죄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희생을 요구할 만큼 그처럼 말할 수 없는 불행을 가져 왔다면, 진리의 빛을 보면서도 주님의 넷째 계명을 무시하는 자들이 받을 형벌은 어떠하겠는가?

환경은 세속적 이익을 위해 안식일에 일하는 어떤 사람도 정당화시켜 주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용납하신다면 모든 사람을 용납하셔야 할 것이다. 어찌하여, 가난한 L 형제는 안식일에 일을 하면 가족을 보다 잘 부양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생계를 위한 돈을 벌기 위하여 안식일에 일하지 않는가? 어찌하여, 다른 형제들이나 우리 모두는 편리할 때에만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가? 시내산에서의 음성이 대답해 준다.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 (출 20:9, 10)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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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믿는 사람들이 범한 잘못들은 교회를 크게 약화시킨다. 그것들은 죄인들의 길에 놓여진 거치는 돌이 되어, 빛으로 나아오는 것을 막는다. 형제여,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완전히 그분의 편으로 나아와서 그대의 행동으로 그분의 계명을 존중하는 것을 보여주고 안식일을 범하지 않도록 그대에게 호소하신다. 그분은 그대의 의무에 대하여 각성하고 맡겨진 책임에 성실하라고 명하신다. 다음과 같은 엄숙한 말씀이 그대에게 주어져 있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 아니하며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고 네 조상 야곱의 업으로 기르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이니라” (사 58:13, 14).

우리 형제들 중 많은 사람들처럼, 그대 역시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과 어울리고, 그들의 견해에 따라 사물을 보고 그들이 가진 오류 속으로 빠져들어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사실상 금전을 섬기는 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주님의 명백한 명령을 무시하는 자들은 장래의 화를 스스로 쌓고 있다. _____ 에 있는 교회는 하나님의 성전을 마치 유대인들처럼 장사하는 곳으로 만들지 않았는지 엄격하게 살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기록된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마 21:13) 라고 말씀하셨다.

우리 백성들 중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익을 위해 신앙을 희생하는 죄에 빠져들고 경건의 모양은 유지하면서도 마음은 오로지 세속적인 사업에 바치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계명은 무엇보다 으뜸으로 생각해야 하고 글자 그대로 마음을 다해 순종해야 한다. 거룩한 산에서 두렵고도 엄숙하게 전달된 하나님의 말씀이 경하게 취급된다면 그분의 영의 증언들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겠는가? 인간에게 직접 주신 주님의 계명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을 만큼 어두워진 마음들은 그분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교훈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연약한 도구를 통하여 거의 아무런 유익도 받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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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나이가 그대를 거룩한 명령을 순종하는 것에서 면제해 주지 않는다. 아브라함은 노년에 혹독한 시험을 당했다. 주님의 말씀은 이 늙은 노인에게 무섭고 지나치게 보였으나, 그는 결코 그 정당성을 의심하지 않았고 순종하기를 주저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이 늙고 연약하므로 그의 생애의 기쁨이 되는 그 아들을 희생할 수 없다고 간원할 수도 있었다. 그는 이 명령이 그의 아들에 대하여 하신 약속과 상치된다고 주께 상기시켜 드릴 수도 있었다. 그러나 아브라함의 순종은 한 마디의 불평이나 비난도 없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그의 신뢰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에게 본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영원한 복리를 위태케 하는 죄를 책망하는 단순한 시험을 묵묵히 견뎌 낼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책망을 겸손하게 받고 그것을 통해 유익을 얻는 자가 얼마나 적은가. 하나님께서 우리의 믿음과 봉사와 사랑을 요구하실 때, 우리는 즐겁게 반응해야 한다. 우리는 주께 무한한 빚을 진 자들이므로 지극히 작은 그분의 요구도 주저하지 말고 순종해야 한다. 율법을 범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모든 도덕률을 짓밟을 필요는 없다. 한 계명을 무시해도 우리는 거룩한 계명을 범하는 자가 된다. 그러나 우리가 계명을 진실히 지키는 자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모든 요구 사항을 엄격히 준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계명을 범한 대가를 지불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의 아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허락하셨다. 그렇다면, 그 모든 사실을 알면서도 진리의 빛을 받은 후에 감히 불순종의 길을 가고자 모험하는 자들을 그분께서 어떻게 취급하실 것인가? 이 문제에 있어서 사람은 편리나 궁핍을 내세울 권리가 없다. 하나님께서 공급해 주실 것이다. 시냇가에서 까마귀를 사자로 삼아 엘리야를 먹이신 분께서는 당신께 충실한 자들이 음식에 궁핍을 당하도록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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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께서는 가난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당신의 제자들에게, 어찌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고 염려하느냐고 물으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마 6:26). 그분은 하나님의 손에 의해 창조되고 채색된 아름다운 꽃들을 가리키면서 말씀하셨다.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마 6:28-30).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은 어디에 있는가? 그들의 필요를 채워 주고 당신의 능력으로 그들을 붙들어 주시는 그분을 왜 그들은 믿지 못하고 신뢰하지 못하는가? 주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실 것이다. 그분은 경고의 책망을 보내시되, 만일 그 경고에 유의하지 않으면 재난이 따를 것이다. 그분은 당신께 대한 충성에서 떠나간 자들이 어떤 대가를 치를지라도, 죄악의 치명적인 혼수 상태를 깨뜨리고 의무에 대한 감각을 일깨워 주실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심령은 각성되어야 하고, 그대의 믿음은 증진되어야 한다. 그대는 이런 저런 구실로 그대의 불순종을 너무 오랫동안 핑계해 왔으므로, 그대의 양심을 달래어 쉬게 하고, 그대의 잘못을 깨우쳐 주는 일을 그치게 했다.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안식일을 지키는 데 있어서 그대 자신의 편의를 따랐으므로 그대의 불순종의 길에 대해 그대의 마음은 가책을 받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그 책임은 그대에게 있다. 그대 스스로가 이런 상태를 초래했기 때문이다. 즉시 거룩한 계명에 순종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라. 그분께서 무서운 형벌을 그대에게 내리지 않도록, 그분의 진노를 격발하지 말라. 너무 늦기 전에 그분께로 돌아가서, 그대의 범죄를 용서받으라. 그분은 자비가 많고 풍성하시다. 겸손한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평안을 주시고 그대를 가납해 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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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장 — 교회와 가정에서의 이기심

사랑하는 M 형제에게:

나는 이상 중에 그대의 품성 가운데 결함이 있으며 이것은 고쳐져야 한다는 것을 보았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에 대하여 견해와 감정이 바르지 않다. 그대는 아내를 잘 알지 못한다. 그녀는 그대가 마땅히 그녀에게 주었어야 할 동정과 사랑의 말을 받지 못했다. 가정에서 그녀가 가지고 있는 염려와 지고 있는 부담에 대해 칭송하는 것은 그대의 남자다움의 위엄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대는 이기적이고 엄격하다. 그대는 그대의 아내와 아이들에게서 사소한 것들을 끄집어내며 작은 실수에 대해 말한다. 짧게 말하자면, 그대는 자신의 것으로 그들의 양심을 측정하려고 하며, 그들에 대한 양심이 되고자 애쓴다. 그대의 아내는 자신의 고유한 개성이 있으며, 이것은 자기 남편의 것에 결코 융합될 수 없는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보존해야 할 독자성이 있다. 왜냐하면 그녀는 하나님 앞에 스스로 회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M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아내가 형성하는 품성에 대해 하나님 앞에 책임을 질 수 없다. 그녀는 홀로 이 책임을 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그녀에 대하여 그대의 양심에 감명을 주시는 것처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대의 아내의 양심에 기꺼이 감명을 주신다.

그대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한다. 그대는 너무 많이 비난한다. 만일 그대가 자신에게 쾌활하고 행복한 기질을 북돋우고, 그들에게 친절하고 온유하게 말한다면, 그대는 그대의 거처에 구름과 슬픔, 그리고 불행 대신에 햇빛을 가져오게 될 것이다. 그대는 자신의 견해를 너무 많이 생각한다. 그대는 극단적인 입장을 취했으며, 그대의 가정 안에서 마땅히 그랬어야 할만큼 아내의 판단을 존중하지 않았다. 그대는 스스로 그대의 아내를 존중하도록 고취되지 않았으며, 또한 그녀의 판단을 존중하도록 아이들을 교육시키지 않았다. 그대는 그녀를 자신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으며, 통제하고 조절하는 고삐를 자신의 손에 잡고 그들을 단단히 붙잡았다. 그대는 애정 있고 동정하는 입장을 취하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승리자가 되기를 원하고 그대의 가정에 하나님의 축복을 원한다면 이런 품성의 특질들은 잘 다스려야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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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대의 의견에 있어서 매우 완고하며 잘 굽히지 않는데, 이것은 그대의 가족을 매우 어렵게 만든다. 그대는 하나님의 은혜로 그대의 심령을 부드럽게 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업을 특징짓는 그런 사랑이 그대의 심령에 필요하다. 사랑은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이것은 하늘에서 자라나는 식물이며, 본성적인 심령에서는 살 수 없고 번창할 수 없다. 이것이 존재하는 곳마다 진리와 생명과 능력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행동이 없이는 살아 날 수 없으며, 이것이 활용될 때마다 증가와 확장이 있다. 이것은 작은 실수를 살피고 사소한 오류를 책망하는 데 빠르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논쟁과 아무리 많은 말이라도 헛되며 쓸모 없다는 것을 입증하고 지배하게 될 것이다. 품성을 개혁하고 그대의 가족의 행위를 조절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랑의 원칙을 통해 하는 것이다. 이것은 진정한 능력이며, 돈이나 어떤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성취하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거칠고 동정심이 없는 말은 베고 상처를 준다. 그대는 정죄하고 결점을 찾는 것이 매우 쉽다. 그러나 이것은 불행을 만들어 낼뿐이다. 그대는, 그대가 다른 사람에게 한 말을 만약 다른 사람이 그대에게 했다면 즉시 그 말에 대해 분개했을 것이다. 그대는 친절하고 부드러우며, 동정적인 것을 연약함으로 생각해 왔으며, 그대의 아내에게 부드럽고 친절하며 사랑스럽게 말하는 것을 그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으로 여겨 왔다. 여기에서 그대는 진정한 남성다움과 위엄이 무엇으로 이루어지는지에 대해 실수하였다. 친절한 행위를 하지 않고 내버려두는 태도는 그대의 품성에 있어서 명백한 연약함이다. 그대가 연약한 것으로 여긴 것을 하나님께서는 참된 그리스도인 예의라고 여기시며, 모든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행해져야 하는 것으로 여기신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신 정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매우 이기적인 태도를 지니고 있으며, 자신에 대해 마땅히 생각해야 할 그 이상으로 높이 생각하고 있다. 그대는 자주, 성경에 대해 매우 독자적이고 환상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으며, 유대인들이 그들의 전통에 대해 가졌던 것처럼 이것들에 대해 매우 열심히 집착한다.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정신을 소유하지 않고, 강한 정복자의 능력 안에서 이런 잘못을 바로잡을 수 있는 일에 그대 자신을 놓지 않으면, 그대는 교회 안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계속적인 위험에 놓일 것이다. 그대의 경우를 위험하게 하는 것은 그대가 이런 일들을 그대의 형제들보다 더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이며, 그래서 그대는 접근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대는 자기 의와 위선적인 정신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멀리 떨어져라. 내게 가까이 하지 말라. 왜냐하면 나는 그대보다 거룩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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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자신의 심령의 더러움을 보지 못했으며, 그대의 생애를 거의 실패로 만든 것을 보지 못했다. 그대의 의견이 하나님의 교회를 지배할 수도 없으며 그렇게 해서도 안된다. 그대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은혜를 계발할 필요가 있으며, 특히 사랑을 계발해야 한다. 이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않으며, 자랑하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으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그대는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데서 조금 벗어난 것을 꼬집으며, 그것들을 교정하기 위해 고집스럽게 추구한다. 그대가 이렇게 거만하고 독재적이며 다른 형제의 결점을 찾기에 빠른 한편, 그대는 그대의 생애 안에 있는 악을 살피기 위해 자신의 심령을 세밀히 조사하지 않는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식욕과 정욕에 탐닉해 있는 큰 도덕적 연약함을 보이고 있다. 담배에 대한 식욕의 노예 상태는, 그대를 완전히 지배하여 그대가 그 습관을 극복하기로 결심하고 재차 결심하지만 그것을 성취하지 못하게 한다. 이 잘못된 습관은 그대의 감각을 비뚤어지게 했다. 내 형제여, 그대의 자제는 어디에 있는가? 극복할 수 있는 그대의 도덕적 능력은 어디에 있는가? 그리스도께서는 그대를 위해 시험의 광야에서 식욕의 권세를 정복하셨으며, 그대 스스로 이것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하셨다. 이제 전쟁은 그대의 것이다. 정복자의 이름으로 그대는 그대 자신의 식욕을 부정하고 그대 스스로 승리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대는 다른 사람에게 많은 것을 요구한다. 그대는 혐오스럽고, 건강을 파괴하며, 영혼을 오염시키는 방종을 이기고 승리를 얻기 위해 무엇을 기꺼이 하려고 하는가? 전쟁은 그대의 것이다. 아무도 그대를 위해 이 전쟁을 싸워 줄 수 없다. 다른 이들은 그대를 위해 기도할 뿐이며, 이 일은 전적으로 그대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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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더 이상 유혹하는 자와 장난을 하지 않도록 요청하신다. 그리고 그분을 경외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이루며, 모든 육체와 정신의 더러움으로부터 그대 자신을 정결하게 하기를 요구하신다. 그대는 자신의 품성으로부터 결함을 제거하기 위해 빨리 일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작업장 안에 있다. 만일 그대가 거친 각이 제거되도록 자르고 평평하게 하고 대패질하는 공정에 굴복한다면, 옹이와 편평하지 않은 표면이 부드러워지고, 하나님의 깎으시는 칼에 의해 알맞게 되어 그대는 그분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늘의 건물에 적합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대가 자아에 집착하고, 하늘의 건물에 적합하게 해 주는 시련의 과정을 기꺼이 감내하지 않는다면, 그대는 도끼나 망치의 소리 없이 짜 맞추어질 건물에 있을 자리가 없을 것이다. 만일 그대의 본성이 변화되지 않고, 이 마지막 때를 위한 진리로 깨끗하게 되고 고상하게 되지 않는다면, 그대는 순결하고 거룩한 천사들 가운데 자리를 차지하기에 무가치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대는 더러운 습관에 집착하여 마침내 불신자와 성화되지 않은 자 중에 발견될 수 있을 것인가? 그대는 이 면에서 어떤 위험이라도 감수할 수 있을 것인가? 자신이 추구해 온 자아 방종의 행로를 추구하면서 나아가는 것은 그대에게 대단히 위험하다. 그대는 매우 적극적이고 적대적인 방법으로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진리를 전해 오는 것을 추구해 왔는데, 이것은 그들의 마음에 아주 나쁜 영향을 주어 왔다. 진리를 옹호하는 데 있어서 한 가지라도 불일치하지 않는 것이 있다면 사단은, 적절한 영향이 있었다면 호의적으로 감명을 받았을 사람들이 싫어하도록 그를 특별히 이용한다. 그대는 그대의 방법을 부드럽게 해야 하며, 그대가 진리를 옹호할 때는 온유한 정신으로 이것을 행하라.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여기에서 말하는 두려움은 불신이나 우유 부단함을 뜻하지 않고, 현명하지 못한 한 마디 말이 나오거나 감정이 흥분되어 우세해지지 않도록 하여 사람들의 마음에 좋지 않은 인상을 남기고 그들을 잘못된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하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모든 점을 경계하는 것이다. 경건한 두려움, 겸비, 그리고 온유함은 하나님의 진리를 바르게 나타내기 위해 모든 사람에게 크게 필요 되는 것이다.

교회증언 4권 pp. 249-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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