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4 239-248 (222일)

G 형제는 그의 생각과 판단의 독립성에 대하여 뻐기지만, 그는 자신의 성별되지 못한 생활과, 그분의 종들을 통하여 그리스도와 맹목적으로 싸우는 가운데 그 일을 반대함으로써 죄인들의 길을 차단하고 있다. 그러나 그는 참된 독립의 특성이 무엇인지 모르고 속임을 당하고 있다. 완고함이 자주 독립성과 혼동되기는 하지만 독립은 완고함이 아니다. G 형제는 의견을 형성하고 강력한 확신으로 그것을 그의 가정이나 교회에서 표현해 왔다. 그리고 어느 정도 공표가 되면, 그 다음에는 그가 만들어 낼 수 있는 온갖 논증으로 자신이 옳게 보이도록 만들려는 경향이 있다. 그는 눈을 감고 고집으로 양심을 그르칠 위험이 매우 크다. 왜냐하면 원수의 시험이 그에게 강하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의견에 대한 자만은, 심지어 그가 납득하려고만 한다면 그럴 만한 충분한 빛과 증거를 앞에 두고도 굴복시키기가 어렵다. 그는 만일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그의 판단과 식별력을 손상시키는 것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G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잃어버릴 큰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그대는 걸출하게 되기를 원한다. 이따금 자신이 경시당한다고 생각하면 그대는 심각해진다. 그대는 행복한 사람이 아니다. 말해진 진리가 너무 가혹하다고 하여 그리스도의 많은 추종자들이 했던 것처럼, 명백한 말씀과 사실에 성을 내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떠난다면 그대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버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에, 행복한 사람은 되지 못할 것이다. 그대는 바르지 않다. 그대는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있다. 그대의 기질은 그대의 원수이며, 그대가 어디로 가든지 그대는 그대의 불행의 짐을 함께 지니고 다닐 것이다. 식별되자마자 잘못을 고백하는 것은 명예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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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그대가 흠을 발견하는 많은 일들이 있다. 왜냐하면 그대가 그렇게 하는 것이 자연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대 자신에 관하여 드러내 주신 빛을 외면하였기 때문에 그대는 그대의 식별력을 신속히 잃어 가고 있으며 모든 것에 언제라도 흠을 찾을 태세다. 그대는 독재자적인 확신으로 그대의 의견을 내놓고 그대의 의견에 관한 타인의 의문들을 개인적인 학대로 취급한다. 참된, 세련된 독립은 결코 경험 있는 자들, 그리고 현명한 자들의 조언을 구하는 것을 떳떳치 않다고 여기지 않으며, 다른 사람들의 조언을 존중심으로 대한다.

가족 내의 신앙

G 형제여, 그대는 회심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영생을 잃을 것이다. 그대는 지혜로운 온유를 얻을 때까지 행복한 사람이 될 수 없다. 그대와 그대의 아내는 서로 반대되는 목적으로 너무도 오랫동안 일해 왔다. 그대는 이런 흠 찾기, 이런 의심들, 질투들, 그리고 불행한 말다툼을 내려놓아야 한다. 그대의 가정에서 발전되어 온 정신은 그대의 종교 경험에도 옮아간다. 그대가 그대의 자녀들이 있는 데서 상대방의 실수에 대해서 어떻게 말하는지에 대하여 조심하라. 그리고 그대의 정신이 그대를 어떻게 통제하도록 할 것인지에 관해서도 조심하라. 그대는 그대의 장남에게서 오로지 나쁘고 악한 것들만을 본다. 그대는 그가 좋은 특질들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지 않는다. 그가 만일 죽는다면 그대는 그가 그런 것들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갑자기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 중 어느 누구도 그대의 아들에 관하여 일관된 길을 좇고 있지 않다.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이 있는 데서 그의 결점들을 길게 논하며, 그대들이 그의 품성의 좋은 특질들을 조금도 신뢰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대들 각자에게는 서로 상대방의 실수를 보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모든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찾는 경향도 있다. 그러나 그대들 각자는 그대들 자신의 결점과 많은 실수들에 눈멀어 있다. 그대들 둘 모두 신경질적이고, 쉽게 흥분하고 짜증을 낸다. 그대는 지혜로운 온유성을 필요로 한다. 그대는 그대 자신의 약점, 정욕들, 그리고 편견들에 고집스럽게 집착한다. 그것들이 가시요, 찌르고 상처를 주는 가시들인데도 불구하고 그대는 그것들을 버리면 이 세상에서 더 이상 행복할 수 없는 양 그렇게 한다. 예수님은 그대의 목을 괴롭히고 있는, 그대가 져 온 멍에를 내려놓고 쉬운 멍에, 가벼운 그분의 짐을 지라고 그대를 초청하신다. 자기 사랑, 탐욕, 자만, 정욕, 질투, 그리고 악한 추측의 짐은 얼마나 지기에 곤비한가. 그럼에도 사람들은 이런 저주거리들을 얼마나 꽉 껴안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들을 포기하기를 얼마나 싫어하는지.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과하는 이 짐들이 얼마나 혹독한지를 이해하신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에게 그것들을 내려놓으라고 초청하신다. 그분께서는 무거운 짐을 지고 곤비한 영혼들에게 당신께 와서 자신들에게 묶어 맨 짐들을 그분의 가벼운 짐과 바꾸어 메라고 초청하신다. 그분은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마 11:29, 30) 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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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그릇된 쪽으로 그의 입장을 정하고 나면 G 형제는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고백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만일 그가 그의 잘못된 행위를 잊어버리고, 다른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도록 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의 잘못을 공개적으로 인정함 없이 좀 더 낫게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그는 그렇게 할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실수와 고백되지 않은 죄들은 하늘에 기재된 채로 있을 것이며 그가 하나님의 말씀에 주어진 지시대로 따르기까지는 도말되지 않을 것이다. “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약 5:16). G 형제가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 외에 다른 계획을 발견했다면, 그것은 안전한 길이 아니며, 마침내 그를 파멸시킬 것이다. 이 다른 길은 교회에 파멸적이며, 그의 가족의 번영과 행복에 파멸적이다. 그는 그의 마음을 부드럽게 만들고, 자애로움, 겸비 그리고 사랑을 그의 영혼 속에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는 이기적이 아닌 특질들을 배양할 필요가 있다. G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그대들을 순결하게 하며, 자아를 잊게 하고, 그대들이 접촉하는 사람들에게 더 많은 관심을 갖게 해 줄 정신의 특질들을 계발시켜야 한다. 그대의 행복을 증진시켜 주지 않고 그대에게 비탄과 슬픔을 가져다 주는 자아 사랑에 대한 기질과 자아에 대한 염려가 있다. 그대들은 오로지 그대들 자신만이 담당할 수 있는 그대 자신들과 관련된 싸움이 있다. 그대들 둘 모두 혀를 다스리고 그대들이 말하는 많은 것들을 삼가야 한다. 첫 번째 악은 잘못을 생각하는 데 있다. 그러고 나서 잘못된 말이 나온다. 그러나 그대는 서로에 대한 사랑, 복종, 그리고 존경을 계발시키는 일을 방치해 두고 있다. 상대방의 감정에 대해 친절하게 헤아려 주고, 서로의 행복을 신성하게 지켜 주도록 힘쓰라. 그대들은 예수의 능력과 이름으로써만 이 일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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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 자매는 승리를 얻으려고 강력한 노력을 해 왔으나, 남편으로부터 많은 격려를 받지 못해 왔다. 그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정복할 능력을 달라고 열렬한 기도로 하나님을 찾는 대신에, 그들은 서로의 행위를 주목해 보고 상대방의 행위에서 결점을 찾음으로써 그들 자신을 약화시켜 왔다. 마음의 정원은 돌봄을 받지 못했다.

만일 G 형제가 몇 개월 전에 주께서 그에게 보내신 빛을 받아들이고 그의 아내와 솔직하게 대화했더라면, 만일 둘이 주님 앞에서 그들의 완고한 마음을 깨뜨렸더라면, 그들의 현재 상태는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영의 견책과 호소의 말씀을 경홀히 여겼고, 그들의 생애를 개혁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내신 빛에 눈을 감았다고 하여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의 실수 중 어느 하나도 위중성이 감해지거나 그들의 책임이 덜어지지 않는다. 그들은 주께서 불쌍히 여기시는 자애로움으로 그들에게 주신 견책을 싫어하였다. G 형제는 천성적으로 친절하고 자애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 자랑, 허영, 그리고 악한 추측으로 껍질이 덮여 있다. 그의 마음은 무감각하지 않으나 도덕적 능력이 부족하다. 그는 자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아 부정, 자아 희생의 필요성이 그의 앞에 제시되자마자 겁쟁이가 된다. 자아를 통제하고, 그의 말에 파수꾼을 세우고, 자신이 잘못을 저질렀거나 말에 실수했다고 인정하는 것은 그가 지기에는 너무도 굴욕적이라고 느끼는 십자가이다. 그렇지만, 구원을 받기 원한다면 그는 이 십자가를 져야 한다.

G 형제 자매여, 그대들은 모두 그대들의 말을 주의할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그대의 생각과 행동에 세워진 파수병이 없는 것이 분명해지자마자, 그대들은 서로를 좌절시키고 그대들 중 어느 누구도 구원받을 수 없는 확실한 경우가 되게 한다. 그대들 둘 모두 성급한 말과 행동을 촉발시키는 성급한 정신에 대해 경계할 필요가 있다. 그대가 그릇된 취급을 당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품게 되는 적개심은 사단의 정신이며, 심대 (甚大) 한 도덕적 악으로 인도한다. 그대가 성급한 정신에 지배될 때, 그대는 한 동안 그대의 말과 행동을 규제하는 이지력을 빼앗으며, 한편 그 모든 악한 결과에 대해서 그대 자신이 책임을 지게 만든다. 성급하게 그리고 분노 중에 행해진 행동은 변명의 여지가 없다. 그 행동은 나쁘다. 그대는 성급하고 충동적으로 말해진 단 한마디의 말로 결코 잊혀지지 않을지도 모를 상처를 친구들의 가슴에 남길 수도 있다. 자제를 행사하지 않는 한 그대들은 가장 불행한 부부가 될 것이다. 그대들 각자는 그대들의 불행한 생활을 상대방의 결점 탓으로 돌린다. 그러나 더 이상 그렇게 하지 말라. 상대방에게 비난의 말을 결코 한마디도 하지 않기로, 그리고 할 수 있을 때는 언제나 칭찬과 찬사의 말을 해주는 것을 규칙으로 삼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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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지를 받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마음에 있는 불쾌한 것들을 다 털어놓는 그들의 거리낌없는 습관을 칭찬하여 말할 것이다. 그들은 질책과 흠을 찾는 말로써 그들의 성난 정신을 폭포수처럼 완전히 다 쏟아 놓는다. 그들이 더 많이 말할수록 그들은 더욱 흥분되며, 그것은 다시 되돌아가서, 더욱 거친 말을 불러일으키는 성을 돋굴 것이다. 그리하여 급기야 작은 문제가 큰 불로 타오르게 된다. 그대 둘 모두는 그대들이 어쩌면 견딜 수 있는 온갖 시련들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들의 생활이 대단히 불행하다고 느끼고 있다. 단호하게 그대들의 생각, 그대들의 말, 그대들의 행동을 통제하는 일을 시작하라. 그대들 중 어느 누가 적개심이 솟아나는 것을 느끼거든, 홀로 가서 거짓된 입술에서 나오지 않은 기도에 귀를 기울이실 하나님께 겸손히 기도를 드리는 것을 규칙으로 삼으라.

각각의 정욕은 개화된 양심의 통제 아래 두어야 한다. “그러므로 너희는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평강을 위하여 너희가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또한 너희는 감사하는 자가 되라” (골 3: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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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더하기 법칙에 의거하여 살면서 은혜에 은혜를 더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그분의 은혜를 곱하기 법으로 주실 것이다. 그대가 더하는 동안 하나님께서는 곱하신다. 하나님께서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것을 보시고 들으시며, 그대의 모든 말과 행위를 충실하게 기록하고 계시며, 그대가 그 모든 것을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생각을 끊임없이 마음에 품는다면, 그대는 그대가 행하고 말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밝아지고 방심하지 않는 양심의 지시를 따르려고 애쓸 것이다. 그대의 입술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되어지고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에게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지금까지 해 온대로,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다면, 그대의 혀가 불의의 세계가 되어 그대에게 두려운 정죄를 가져오지 않도록 유의하라. 왜냐하면 영혼들이 그대를 통하여 잃어버림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자제의 의무

우리의 동물적 본성의 식욕들은 마땅히 엄격하게 복종시켜 두어야 한다. 이 식욕들은 중요한 목적, 곧 선을 위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지 왜곡되고 싸우는 정욕이 됨으로써 사망의 사자들이 되도록 주어진 것이 아니다. G 형제여 그대가 방종으로 강화시키고 있는 담배에 대한 욕구는 그대의 영혼을 거슬러 싸우는 정욕이 되어 가고 있다. 부절제하는 사람은 참을성 있는 사람이 될 수 없다. 거의 눈치 차리지 못할 정도의 미각의 방종이라 할지라도 더 강한 자극제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킬 것이다. 생각, 정욕, 그리고 식욕을 적당하게 복종시켜 둔다면, 혀가 다스려질 것이다. 도덕적 능력을 불러 그대의 도움을 삼으며, 영원히 담배를 끊어 버리라. 그대는 그대가 담배를 피우고 있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로부터 숨기려고 노력해 왔지만 하나님께는 숨기지 못한다.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8-10). 나는 나에게 사명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 말씀을 그대들에게 추천하는 바이다. 그것들을 배척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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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비행 (非行) 들이 책망을 받지 않았더라면 그대는 지금처럼 증언들을 결코 배척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대는 담배를 끊고 경솔과 불신자들과의 농담의 생활을 그치기보다는 증언들을 희생시키고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빛에 대하여 그대의 눈을 감아 버리는 것이 훨씬 쉬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정화시키는 과정은 그대가 견딜 만한 도덕적 능력을 갖고 있지 않은 부정 (否定) 과 제어 (制御) 를 수반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보내신 빛을 불신함으로써 그대의 죄를 변명하려고 생각한다. 기억하라. 그대는 이 모든 것들을 다시 마주 대하지 않으면 안된다. 이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그대에게 전하라고 나에게 위탁해 오신 모든 경고와 견책들과 함께 책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J 형제는 불쌍히 여김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는 선천적으로 결함이 많은 신체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소망은 작다. 그의 불신과 의심은 그의 판단을 지배한다. 그는 천성적으로 불신하는 일과 의문을 표시하는 편에 선다. 이 큰 악을 정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그와 반대되는 품성의 특성을 계발하는 것이다. 그는 불신을 억눌러야지 계발해서는 안된다. 그는 그의 의심들을 표현해서는 안된다. 그는 다른 사람들 앞에 그의 품성의 결점들을 불쑥 내어놓아, 그들로 하여금 슬퍼하고 좌절하게 만들 아무런 권리가 없다. 만일 그가 이런 슬픈 악에 영향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면, 그는 그의 불신을 꺼내 놓아 그의 형제들의 믿음을 냉랭하게 만듦으로써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초를 쳐서는 안 된다. 그는 위안과 격려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모든 설교와 권고에서 거의 모든 것을 그냥 지나쳐 버리고, 그의 의문 표시와 비평에 대한 핑계거리가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을 끄집어내려는 경향이 있다. 그의 영혼의 통로는, 사단이 들어와서 그의 목적대로 그의 마음을 꼴 지을 수 있도록 활짝 열려진 채로 경계되지 않은 채 버려져 있다.

그대의 집회들은 하나님의 영이 거기 계시지 않기 때문에 관심을 잃어 가고 있음이 내게 보여졌다. 형제 자매들은 이 두 사람 때문에 완전히 예속되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자유를 감히 행사하거나 그들의 영혼의 단순성 가운데서 그들의 신앙을 기탄 없이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여기 J 형제가 그의 차갑고, 가혹하고, 비평적인 눈으로 그의 믿지 아니하는 마음의 기능을 행사할 기회를 그에게 가져다 줄 어떤 말이고 엿보며 낚아챌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두 사람 사이에서 하나님의 영은 슬퍼하며 그 집회를 떠나셨다. 형제들이 용의 정신을 나타내고,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빛과 위로를 전달해 오셨다는 것을 믿는 사람들과 싸움을 벌일 때, 이 때는 형제 자매들이 그들의 자유와 완전한 양심의 자유를 주장할 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빛을 주어 오셨다. 그리고 그 빛을 간직하고 서로를 굳게 하고 격려하기 위하여 그것에 대해서 말하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J 형제는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주신 빛이 하나님의 말씀에 더하여진 것으로 보이게 하려고 노력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을 혼동시키려고 한다. 그러나 이렇게 함으로써 그는 그 문제를 그릇된 각도에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방식으로 그분의 백성들의 마음을 그분의 말씀으로 인도하여, 그들이 그것에 대하여 보다 명확한 이해를 하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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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 의 교회는 거기에 작용해 온 영향, 즉 그것이 전진하도록 돕는 영향이 아니라 바퀴들이 굴러가는 것을 방해하는 영향 때문에 점점 더 약해지고 있다. J 형제가 그의 불신을 제쳐놓고, 원한다면, 그 빛과 함께 전진하는 것이 J 형제의 특권이다. 그가 이렇게 하기를 거부한다 해도, 하나님의 사업은 그의 도움 없이도 전진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_____ 의 교회 안에 변화가 일어나기를 계획하신다. 그들은 전진하든지 퇴각하든지 둘 중의 하나를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J와 G 형제가 해 오는 것처럼 행하고 있는 수십 명의 사람들을 통해서보다, 같은 마음과 판단으로 연합된 6명의 영혼을 가지고 더 큰 일을 하실 수 있다. 그들은 교회로 들어오면서 그들과 함께 빛의 천사들이 아니라 어둠의 천사들을 데리고 왔다. 그 집회들은 무익했고, 가끔 적극적인 해가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주님의 편으로 와서 몸과 연합하든지 아니면 온전히 주님의 것이 되려는 사람들을 방해하는 일을 그치라고 요청하신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그토록 많은 제자들이 중한 유혹에 빠져서 회개해야 할 일을 만드는 큰 이유는, 그들이 자신에 대해서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여기서 베드로는 원수에 의해 너무도 철저하게 체질을 당했다. 바로 여기서 수천의 사람들이 믿음의 파선을 할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잘못들과 실수들을 슬퍼하지 않으며 그것들로 인해 그대의 영혼을 괴롭게 하지 않는다. 그대에게 탄원하노니, 진리를 순종함으로써 그대의 영혼을 순결하게 하라. 그대 자신을 하늘과 연결시키라. 주께서 그대를 자아 기만에서 건져 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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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장 — 하나님의 계명의 신성성

크게 존경을 받는 K 형제에게:

1875년 1월에, 나는 교회의 영적 번영의 길에 방해물들이 있는 것을 보았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과 생애에 있어서 올바르지 못하므로 성령께서 슬퍼하신다. 그들이 공언하는 믿음은 그들의 행위와 일치되지 않는다. 여호와의 거룩한 안식일은 마땅하리 만큼 지켜지지 않고 있다. 매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거룩한 시간의 경계선에서 침해를 받고 유린을 당하신다. 기도와 명상에 드려져야 할 시간이 세상 사무에 쓰여진다.

하나님께서는 믿을 뿐 아니라 순종해야 할 계명을 주신다. 위대하신 여호와께서는 지구의 기초를 놓으신 후 온 세상을 아름다움으로 입히시고, 사람에게 유용한 것들로 거기에 채우시고, 곧 땅과 바다의 온갖 경이로운 것들을 창조하시고, 안식일을 제정하셔서 그것을 거룩하게 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제칠일을 축복하시고 거룩하게 하셨다. 당신의 놀라운 창조 사업을 모두 마치고 쉬셨기 때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위하여 제정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엿새 동안의 창조 사업 후에 쉬신 것 같이 사람이 이 날에 노동을 쉬기를 원하셨다.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대한 빛을 받은 후에 여호와의 계명을 존중하는 자들은, 순종하는 것이 좋든지 싫든지, 편리하든지 불편하든지 따지지 않고 그것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드시고, 당신이 거룩하게 구별하신 안식일을 지키는 모본을 보이셨다. 그분은 이 날 사람이 당신을 경배하고 세속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안식일의 요구를 깨달은 후에 넷째 계명을 무시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보시기에 죄 없지 않다.

K 형제여, 그대는 안식일을 준수하라는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나, 그대의 행위는 그대가 주장하는 믿음과 일치되지 않는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한, 그대는 불신자 편에서 감화를 끼치고 있다. 세속적 환경에 주의를 돌릴 필요가 있을 때에, 그대는 양심에 거리낌없이 넷째 계명을 범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을 편의상의 문제로 삼고, 그대의 사업이나 기분에 따라 순종하기도 하고 불순종하기도 한다. 이것은 안식일을 거룩한 제도로 존중하는 것이 아니다. 그대는 이러한 무분별한 행동을 함으로 성령을 슬프게 하고 그대의 구속주에게 욕을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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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계명을 부분적으로 지키는 것은 주께 가납되지 않으며, 그대가 안식일 준수자라고 공언하지 않는 것보다 더 나쁜 영향을 죄인들의 마음에 끼친다. 그들은 그대의 생애가 그대의 신앙과 모순되는 것을 깨닫고 그리스도교에 대한 신임을 잃어버린다. 주님은 말씀하신 그대로 하시기 때문에, 사람이 그분의 계명을 무시할 때는 형벌을 면할 수 없다. 에덴 동산에서의 아담과 하와의 예는 거룩한 율법을 불순종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에게 충분한 경고가 되어야 한다. 원수의 그럴듯한 유혹에 귀를 기울인 우리의 첫 조상들의 죄는 세상에 범죄와 슬픔을 가져왔고 하나님의 아들이 하늘 궁정을 떠나 지상의 비천한 처지에 놓이게 하였다. 그분은 당신이 친히 축복하시러 오신 바로 그들에 의해 모욕과 거절과 십자가의 형을 받으셨다. 에덴 동산의 불순종 때문에 얼마나 무한한 대가가 지불되었는가! 하늘의 임금께서 인간을 범죄에서 구해 내기 위하여 희생되셨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 그분의 계명에 대한 어떠한 범법도 당신께서 아담에게 선고를 내린 당시보다 가볍게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세상의 구주께서는 거룩한 율법을 부주의하고 무관심하게 대하는 자들에 대하여 목소리를 높이신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9). 우리의 생애가 드러내는 교훈은 전적으로 진리를 위하든지 반대하든지 둘 중 하나이다. 만일, 그대의 행위가 범죄자의 죄를 정당화시켜 주는 것처럼 보이거나 그대의 감화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것을 가볍게 만든다면, 그대는 스스로 죄를 범함은 물론이요 그 영향으로 다른 사람들이 범하는 잘못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책임을 져야 한다.

교회증언 4권 pp. 239-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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