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89-98(150일)

하나님께서는 나의 남편을 선택하셔서 그에게 특별한 자질 천부적 능력, 사업을 발전시키는 일에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는 체험을 주셨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이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을 준수하는 재림교인들 사이에 불평이 생겼으며, 시기와 의심으로 가득 찬 이런 인물들은 저들의 제안과 암시를 통해서 우리 믿음의 원수들에게 내 남편의 정직성에 대해서 불신하도록 할 빌미를 주어 왔다. 동일한 믿음의 이 시기심 많은 인물들은 불신자들에게 일을 거짓되게 드러냈으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많은 이들에게 장애물이 되는 인상을 끼쳤다. 그들은 내 남편을 술책가, 이기적이고 탐욕스런 인물로 여겼으며, 그를 두려워하고, 또한 한 백성으로서 우리가 믿고 있는 진리를 두려워하였다.

고대 이스라엘은 식욕이 제한을 받거나 어떤 엄격한 요구를 감당하게 될 때, 모세에 대해 독단적이고, 자기들을 다스리려 하고, 그들 위에 군림하려 한다고 비난을 퍼부었다. 그러나 그 때에 그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목소리에 순복하여 복종하는 위치로 이끌고자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도구에 불과하였다.

현대 이스라엘은 내 남편이 하나님의 일을 위해 호소하는 것 때문에 그에 대해 불평하고 시기해 왔다. 그는 자원하는 헌금을 장려하였고, 이 세상을 사랑하는 자들을 견책하고 이기심을 꾸짖었다.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기부금을 장려하였으며, 형제들 중에 후한 헌금을 장려하기 위해서 먼저 후한 헌금을 드렸다. 그러나 불평하고 시기하는 이들은 이것마저 그가 형제들의 돈으로 개인적 이익을 얻으려고 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희생시켜 가면서 치부하려는 것이라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사실은 변하기 쉽고, 불평 불만과 시기심이 많은 백성들의 호의에 의존할 필요가 없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궁핍에서 벗어나게 하사 그의 손에 자금을 의탁하셨던 것이다. 우리가 이기적으로 우리 스스로의 이익을 챙길 궁리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섭리의 손길을 역사 하셔서 우리가 번영하도록 축복하셨다.

모세는 장래가 촉망되는 왕국, 왕궁에서의 세속적 명예와 사치를 희생하고, 잠시 동안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 대신에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고난당하기를 선택하였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도 더 크게 여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안일한 생활과 수고와 염려로부터 벗어나기를 선택했더라면, 그렇게 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선택하지 않았다. 우리는 나태함 대신에 하나님의 일을 위해 활동적으로 수고하기를 선택했는데, 이것은 고난과 궁핍과 노출이 수반되는 떠돌이 생활이었다. 우리는 자신을 즐겁게 하는 스스로를 위한 삶을 살지 않았으며, 하나님을 위한 생애, 곧 그분을 기쁘시게 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고자 노력하였다. 우리는 재물을 얻기 위해 수고하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생에서 백배나 주심으로 당신의 약속을 성취하셨다. 그분은 그것을 우리에게서 제하심으로 우리를 시험하실는지 모른다. 만일 그렇다면 우리는 겸손하게 시험을 견디도록 굴복할 수 있게 해주시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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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께서 우리에게 자금과 영향력의 재능을 위탁하시는 한, 우리는 그것들을 그분의 사업에 투자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불에 타 버리고 재난으로 손실을 볼 때일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보화가 불에 소실되거나 재난에 휩쓸려 사라질 수 없는 곳에 있음을 알고 즐거워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사업은 결코 실패할 수 없는 확실한 은행이며, 우리의 시간, 우리의 관심, 우리의 자금을 여기에 투자하는 것은 실패를 모르는 하늘 보화이다.

나는 내 남편에게 마땅히 짊어질 수밖에 없는 세 가지 염려가 있음을 보았다. 그는 R 형제와 S 형제가 그가 책임을 지는 일을 도와주지 않는 것 때문에 시련을 겪는 것으로 여겼으며, 그들이 자기를 도와 기관과 출판소에 관련된 사업적인 일들을 하지 않는 것 때문에 서글픔을 느꼈다. 불성실한 자들을 분리시켜 버린 이래 계속해서 출판 사업은 발전을 보았다. 사업이 발전함에 따라 책임을 짊어져야 할 사람들이 필요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 일을 할 수 있었던 이들은 그것이 다른 어떤 수지 맞는 장사처럼 그들에게 재물을 증가시켜 주는 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 일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우리 사무실에는 마땅히 있어야 할 재능가가 없었다. 사업에는 그 일을 감당할 최적의 인물이 요구된다. 사무실의 현재 형편 대로라면 내 남편은 여태까지 느꼈던 압박을 계속해서 느낄 수밖에 없는데, 그는 더 이상 그것을 감당해서는 안 된다. 그런 부담 밑에서 그토록 오랫동안 견딜 수 있었다는 것은 오로지 하나님께서 자비롭게도 기적을 베풀어 주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한다. 그는 사업에 대한 끈질긴 염려와 헌신을 통해서 출판 분야에서 어떤 일이 성취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었다. 성결한 판단과 사심 없는 관심을 가진 인물들이 사무실에서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나의 남편은 너무 오랫동안 혼자서 짐을 감당하여 두려울 정도로 기력이 빠졌으며, 변화를 주어야 할 필요가 절실하게 되었다. 그에게서 염려를 크게 벗겨 주어야 하며, 그렇게 함으로 그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해 강연과 저작 활동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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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0년 가을, 우리가 캔사스에서 돌아왔을 때, 우리 모두는 휴가 기간을 가졌어야만 했다. 우리의 고갈된 힘을 보충하려면 몇 주간의 자유가 필요했다. 그러나 배틀크릭의 요직들이 거의 버려진 것을 보고 우리는 두 배의 힘을 쏟아 일할 수밖에 없다고 느꼈으며, 우리 힘에 부치도록 수고하였다. 내가 본 바로는 내 남편이 자문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어떤 사람이 사업의 필요성을 느끼고 그 짐을 부담하려고 하지 않는 한, 그가 거기에 있어서는 안 되었다. 그는 짐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이는 하나님께서 진리를 위해 저술하고 연설하는 중요한 일을 그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넓은 일터에서 일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훨씬 더 하나님의 사업을 굳게 세우는 일에 영향력을 끼치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는 편견이 크게 자리를 잡고 있다. 거짓 진술을 통해서 백성들 중에 우리를 그릇 드러내며, 진리를 받아들이는 많은 이들에게 장애물을 놓는다. 배틀크릭에서 사업을 책임지고 있는 이들이 야심가요 광신자라고 믿게 되면, 그들은 사업 전체가 그릇된 것이며 성경에 관한 우리의 견해가 올바르지 못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고 진리를 탐구하여 받아들이는 일을 두려워하게 된다. 그러나 우리는 나가서 백성들에게 우리를 바라보라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우리 자신에 대해서 말하고, 우리의 품성을 옹호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우리는 진리를 말하고, 진리를 높이고, 예수님에 대해 말하고, 예수님을 높여야 하며 이 일은 하나님의 능력이 수반됨으로 편견을 제하고, 반대를 누그러뜨린다.

R 형제와 S 형제는 쓰기를 좋아하며, 내 남편도 마찬가지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빛을 당신의 말씀에 비추시고 전반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유익이 될만한 풍성한 사상의 분야로 그를 인도하셨다. 그가 삼중의 부담을 지고 있는 동안에 그와 함께 봉사하는 어떤 형제들은 그에게 무거운 책임을 떠맡겼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화잇 형제를 사업의 책임자로 임명하셨고, 그는 그럴 만한 자격이 있을 뿐 아니라 주님께서 자기들을 그 직책에 합당한 인물로 삼지 않으셨다고 스스로 위로를 삼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책임을 지지 않았으며, 짊어질 수 있었던 부담을 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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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남편이 느꼈던 것과 같은 동일한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필요하다.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 역사에 있어서 지금보다 중요한 때는 일찍이 없었다. 출판 사업은 축소되고 있는 대신에 오히려 우리의 출판물에 대한 요구가 크게 증가하고 있다. 해야 할 일이 감소하는 대신에 더욱 늘어날 것이다. 나의 남편은 많은 불평을 해 왔으며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질투와 거짓으로 더불어 싸웠으며, 사람들에게 성실성이 너무 부족한 것을 보아 왔기 때문에 그는 거의 모든 사람에 대해서 의심을 품고 있는데, 심지어 봉사하고 있는 그의 친 형제들에 대해서까지 그러하다. 봉사하는 형제들은 이것을 느껴 왔으며, 자신들이 지혜롭게 처신하지 못할까 봐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그 들이 함께 연합해서 짐을 짊어져야 할 때이다. 봉사하는 형제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과 신뢰가 부족하다. 그들은 진리를 믿고 있으며 하나님을 경외하는 중에 그 힘을 모아 하나님께서 저들에게 지워 주신 이 사업을 짊어져야 한다.

만일 어떤 형제가 제 판단에 최선을 다했는데 다른 형제가 일을 더 낫게 처리할 수 있는 면을 발견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는 그 형제에게 친절히 인내하며 자기의 판단의 유익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그는 자기가 남에게 의심을 받거나 부당한 비난을 당하기를 원하지 않는 것처럼 형제를 비난하거나 그의 목적의 순수성에 대해 의문을 갖지 말아야 한다. 만일 마음에 하나님의 사업을 품고 있는 형제가 열렬한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가 실수를 범하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는 그 일에 대해서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를 불신하고 자신의 판단에 대해 신뢰심을 잃게 되기 쉽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행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 곧 자기 목숨보다도 더 아끼는 사업을 그르쳤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보다도 더 그의 용기와 경건한 인격을 약화시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면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여 가시에 찔리는 듯한 아픔을 더욱 깊이 느끼고 있는 이에게 혹평을 가하여 그것을 더욱 크게 느끼도록 함으로 하나님의 사업을 성공적으로 발전시키는 데 필요한 신앙과 용기와 자신에 대한 신뢰심을 약화시킨다면 그것은 얼마나 부당한 일이 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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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오를 범하고 있는 이들에게 진리와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줌으로 그들이 자신의 과오를 보고 깨달음으로 개혁할 수 있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자주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은 거칠고 가혹한 태도로써가 아니라 불쌍히 여기는 부드러운 마음으로 해야 하며, 자기 자신도 역시 시험에 빠지지 아니하도록 개인의 약점을 고려해야 한다. 과오를 저지른 자가 자신의 과오를 깨닫고 시인할 때, 그를 슬프게 하고 더 깊게 느끼도록 하는 대신에 위로가 주어져야 한다. 산상 설교의 말씀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는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고 말씀하셨다. 우리 구주께서는 성급한 판단에 대해서 책망하셨다.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 도다. 자기 형제의 실수는 재빨리 알아채면서도 자기 자신은 더 큰 과오에 빠져 있으되 그것을 알지 못하는 경우가 자주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이들은 주님께서 우리의 과오와 약점에 대해서 우리에게 대접해 주기를 원하시는 그대로 서로를 대접해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과오를 범하는 자요 그분의 동정과 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쓰기로 동의하셨는데, 이는 죄와 잘못이 많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들을 위해서 어떻게 동정을 베풀어야 하며, 당신의 아버지께 어떻게 간청해야 하는지를 아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중보자가 되기를 자청하셨고, 인간을 넘어뜨리는 시험들을 알아 자비롭고 충성스러운 대제사장이 되기 위해서 스스로 겸비하게 되셨다.

분명하게 죄를 견책하고 잘못을 꾸짖어야 할 필요가 있을 때도 자주 있다. 그러나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해서 일하는 목사들은 서로의 잘못에 대해서 동정심이 없거나 그 조직체에서 결함을 두드러지게 드러나도록 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저들의 약점을 폭로하거나 책망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그런 일을 다른 이들이 자기들에 대해서 하게 된다면, 원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인지를 물어 보아야 한다. 자기의 실수를 두드러지게 나타낸 이에 대해 사랑과 신뢰심이 증가할 것인가? 특별히 하나님의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목사들의 과오는 가능한 한 소수의 범위의 사람들에게 간직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말씀과 교훈의 봉사를 하는 이들이 다른 이들과 동일한 약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것을 이용하게 될 많은 연약한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미래에 영혼들을 구원하는 일에 적합한 인물로 간주될 수 있는 목사들에 대해서 그 과오를 불신자들에게 노출시키는 일은 지극히 잔인한 행위이다. 이렇게 폭로함으로 좋은 일은 전혀 생기지 않으며 해만 당할 뿐이다. 주님께서는 이런 행동에 대해 불쾌하게 여기시는데, 이는 그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업을 수행하도록 받으신 이들에 대한 백성들의 신뢰심을 해치기 때문이다. 모든 동료 일꾼들의 성품은 형제된 목사들에 의해 열렬하게 지켜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기름 부은 자를 만지지 말며 나의 선지자를 상하지 말라” 고 말씀하신다. 사랑과 신뢰를 간직해야 한다. 이러한 사랑과 신뢰가 목사들 상호간에 부족할 때 그것이 결여된 이의 행복을 증진시키지 않는다. 오히려 그 형제를 불행하게 함으로 말미암아 자기 자신도 불행하게 된다. 사랑 속에는 비난 속에서 찾아볼 수 있는 것보다 더욱 큰 힘이 존재한다. 사랑은 그 장벽을 녹여 버리지만, 비난은 영혼에 이르는 모든 통로를 차단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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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남편에게는 변화가 있어야 한다. 그의 장기간의 체험을 활용하지 못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출판소 사무실에 손실이 생길는지 모르나 금전적 손실은 하나님의 종의 건강과 생명에 비교할 때 아무것도 아니다. 절약하는 관리자들의 부족 때문에 수입이 그리 많지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남편이 또다시 실패한다면, 그의 형제들은 낙망할 것이요, 그들의 손은 약화될 것이다. 자금이 동일하게 들어올 수 없다.

이루어져야 할 일이 너무 많다. 흑암 속에 앉아 있는 자들에게 진리를 제시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면 외방에 기꺼이 나아가 일하려는 선교사들이 일터에 있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 자신을 헌신하고 자기의 재능을 그분을 섬기는 일에 사용하려는 뜻을 품은 이들이 청년들 중에 부족하다. 그들은 너무 책임과 부담을 멀리하려고 한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중에서 사업을 가납하시기에 적합하게 해주는 경험이나 성경지식을 책임을 감당함으로써 얻고 있지 못하다. 그들을 위해서 죽으신 주님을 위해 얼마나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는지 보는 것은 모든 사람의 의무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가능한 한 적게 일하려고 하며, 최후에 하늘에 가고자 하는 희미한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 근면하게 일하여 영혼을 구원함으로 말미암아 저들의 면류관에 별들을 다는 것은 그들의 특권이다. 그러나 참으로 슬프다! 나태와 영적 게으름이 사방에 깔려있다. 이기심과 교만이 그들의 마음을 크게 차지하고 있으며 하늘의 사물이 자리 잡을 여지가 거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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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기도 속에 간구의 말씀이 들어 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우리는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을 품은 채 이 기도를 진심으로 반복할 수 없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용서하는 것처럼 주님께서 우리가 당신께 범한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기도의 진정한 의미를 이해하는 자는 드물다. 만일 용서성이 없는 이들이 이 말씀의 깊이를 이해한다면 저들은 감히 이 기도를 반복하지 않을 것이며, 자기들이 죽을 수밖에 없는 동료 인간들에게 대하는 것처럼 자기들을 대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거친 정신과 용서의 부족이 형제들 사이에서도 두려울 정도로 존재하고 있다. 형제가 형제를 가혹하게 대하고 있다.

특별한 시련들

내 남편이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그토록 오랫동안 차지하고 있던 지위는 특별한 시험거리들 중 하나가 되어 왔다. 사업에 대한 그의 적응력과 명철한 선견지명 때문에 그와 함께 봉사하는 형제들은 자기들이 짊어져야 할 책임들을 그에게 지워 주었다. 이렇게 해서 그의 부담은 매우 커졌다. 또한 그 형제들은 자신의 짐을 지지 않고 있는 동안에 소중한 경험을 상실하게 되었다. 만일 저들이 사업을 세우는 데 필요한 것들을 분별하고 느끼고 책임을 지는 방향으로 그 정신을 썼더라면 그들은 그런 경험을 얻을 수 있는 특권을 갖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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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봉사하는 형제들이 그에게 저들의 도움이 절실할 때 그 곁에 있지 않음으로 말미암아 내 남편에게는 큰 시련들이 닥쳐왔다. 그가 의지했던 형제들의 도움이 절실하게 요구될 때 그에게 낭패를 안겨 줌으로 반복해서 느낄 수밖에 없었던 실망 때문에 그는 봉사하는 형제들의 성실성에 대해서 희망과 신뢰를 가질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해 버렸다. 그의 정신은 너무 상처를 받아 슬픔을 느끼는 것이 정당하다고 그는 생각하게 되었으며, 그 마음을 좌절 속에 머물러 있도록 했다. 이와 같은 흑암의 통로를 하나님께서는 그로 하여금 차단하도록 하셨는데, 이는 그가 이 지점에서 파선할 위험 가운데 빠져 있기 때문이다. 마음이 우울할때, 그는 자연스럽게 과거를 회상하고 과거의 고난들을 생각하게 된다. 그러면 그의 마음은 불화에 사로잡혀 불필요하게도 자기에게 닥쳐온 시련들로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고난을 주신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가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전적으로 맡기지 않으며 그분의 손길을 전적으로 의지하지 않은 것 때문에, 또한 그 형제들의 순수성에 관해 의심과 불신의 통로를 향해 그 마음이 달려가는 것을 막지 않은 것 때문에 하나님의 영께서는 슬퍼하신다. 의심과 좌절에 대해 말함으로 그는 해악을 치료한 것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사단에게 그를 괴롭힐 수 있는 빌미를 주었다. 그는 자기의 실망을 말하고 자기가 체험한 불행한 면에 생각을 쏟는 실수를 범해 왔다. 그렇게 말함으로 그는 광명이 아닌 흑암을 퍼뜨린다. 그는 때때로 실망의 짐을 그 형제들에게 지워 준다. 그렇게 함으로 그에게는 전혀 도움이 돌아오지 않고 오직 저들의 손만을 약화시킨다. 그는 불신이나 실망을 말하지 않으며, 불평 가운데 머무르지 않는 것을 철칙으로 삼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그의 형제들은 그를 사랑하고 동정하며, 그의 이런 점을 양해한다. 왜냐하면 그에게 지워져 있는 근심의 짐과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그의 헌신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 남편은 현 상태의 번영을 누릴 수 있도록 출판 사업의 이익을 위해 지칠 줄 모르고 수고해 왔다. 나는 그가 누렸다고 생각하는 이상으로 그 형제들로부터 그가 동정과 사랑을 받아 왔음을 보았다. 그들은 그의 펜으로부터 흘러나온 것들을 발견하기 위해서 지면을 열심히 탐구하였다. 만일 그가 쓴 글 가운데 기쁨의 어조가 나타나면, 또한 그가 고무적으로 말을 하면, 저들의 마음은 밝아져서 어떤 이는 심지어 부드러운 기쁨의 감정을 갖고 울기까지 했다. 그러나 만일 우울함과 서글픔이 표현되면, 그 형제 자매들의 안색은 읽는 동안에 슬프게 변하고, 그의 작품을 특징 짓는 정신이 그들에게서 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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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는 내 남편에게 용서의 정신을 갖는 것과 그가 경험한 어두운 여로에 대해 잊는 것을 가르치고자 하신다. 불쾌한 과거를 기억하는 것은 단지 현재를 슬프게 할 뿐이며, 그 인생 역사의 불쾌한 부분을 반복해서 사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 그는 흑암에 매달리고 있으며 가시가 그 영혼 속으로 더욱 깊이 박히도록 하고 있다. 이것은 내 남편의 약점이며, 이것은 하나님께 불쾌한 것이다. 이것은 빛이 아닌 어두움을 가져온다. 아마 그는 자기 감정을 표현함으로 잠깐 동안 분명히 후련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컸는지를 더욱 심각하게 느끼도록 해 줄 뿐이며, 결국 모든 것이 그의 상상 속에서 과장된다. 그리하여 이러한 시련들을 그에게 안겨 주는 일에 한몫 했던 그 형제들의 실수가 너무 심각하게 보여 저들의 과오를 참고 넘어갈 수 없는 것처럼 생각된다.

내 남편은 불행한 과거에 집착해서 너무 오랫동안 산 나머지 이것들을 떠올리고 있는 동안에는 그 마음을 지배할 수 있는 능력이 거의 없다. 한때 그가 개의치 않았던 환경과 사건들이 그 앞에 과장됨으로 그 형제들 편에 심한 잘못이 있기라도 한 것처럼 나타난다. 그는 그가 겪어온 고난들에 대해 지나치게 예민해졌기 때문에 불행스러운 수많은 일이 벌어졌던 배틀크릭 근처에는 가능한 한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필요하다. 만일 그가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허락한다면 그분은 그의 상처난 심령을 치료하실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하려면 그는 과거를 묻어 버려야 한다. 그는 그것에 관해서 말하거나 기록하지 말아야 한다.

내 남편이 과거의 역경과 특별한 불평들에 대해서 회상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매우 불쾌히 여기시는 것이다. 만일 그가 이런 일들이 자기에게 행해진 것이 아니라 주님께 행해진 것이며, 자기는 단지 그분의 도구에 불과하다는 관점에서 생각했더라면, 그는 큰 보상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그 형제들의 불평을 마치 자기에게 행해진 것처럼 받아들이고, 그들의 비난과 욕을 들을 필요가 없는데도 자기에게 불평해대는 과오와 악행에 대해서 모든 사람들로 하여금 깨닫게 해야 한다고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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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내 남편이 이 일 모두를 주님께 맡기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불평과 태만은 주의 봉사 사업을 하고 있는 종이 아닌 주님을 거스려 행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였다면, 그는 그처럼 분개하거나 상심하게 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는 주님께 그것을 맡겨야만 했다. 그는 그분을 위해서 그분의 싸움을 싸우며 그분의 일을 옹호하는 종에 불과한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는 그리스도를 위해 받은 그 모든 고난을 인해 고귀한 상급을 최후에 받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내 남편이 우리가 경험에 고통스런 사실들에 대해 반추하지 말아야 할 것을 보았다. 또한 그는 자기의 불평을 기록하지 말아야 하며, 할 수 있는 한 그들로부터 멀리 간직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만일 그가 그들로부터 시선을 돌리려 한다면 과거의 상처를 치료해 주실 것이다.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잘못을 범한 형제들이 고백을 할 때, 그는 고백을 받아들이고, 원수에게 미혹을 받았던 이들을 관대하고 품위 있게 격려해야 한다. 그는 용서의 정신을 기르고, 타인의 실수와 과오에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 그는 자기 자신의 영혼을 약화시킬 뿐 아니라, 과거의 잘못을 바로잡고자 고백을 통해서 그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행한 과오를 범했던 그 형제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기 때문이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의 과거의 길 중 어떤 부분을 드러내심으로 미래의 실수를 피할 수 있도록 그들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하다고 느끼신다면, 그분께서 이 일을 행하실 것이다. 그러나 내 남편은 스스로가 이 일을 행해야 할 것으로 믿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주님께서 그로 하여금 잊어버리기를 원하시는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장면들을 일깨우게 되기 때문이다.

교회증언 3권 pp. 8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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