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399-408(181일)

하나님의 창고에 들이기를 거절하고 자녀들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는 자들은 자녀들의 영적 복지를 위태롭게 한다. 그들은 자신들에게 거치는 장애물이 되는 재물을 자녀들의 앞길에 놓는다. 자녀들은 그것에 걸려 넘어져 멸망할 수도 있다. 많은 사람들은 이생의 사물에 대하여 큰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빌려준 재물을 올바로 사용함으로써 받을 수 있는 선한 것들을 자신들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절약함으로써 이기적이요 탐욕스런 자가 된다. 그들은 자신이 사용하지도 못할 부를 쌓아 두기 위하여 그들의 영적 복리를 등한히 하므로 신앙적 성장이 위축된다. 그들이 자녀들에게 유산을 남겨주는데, 십중팔구 그 재물은 그들에게 저주가 되었던 것보다 상속을 받는 자들에게 더 큰 저주가 된다. 부모의 재물에 의존하는 자녀들은 흔히 이생에서의 성공을 이루지 못하며, 일반적으로 내세에서의 생명을 확보하는 일에도 완전히 실패한다. 부모들이 저들의 자녀들에게 남겨 줄 수 있는 최선의 유산은, 유용한 노동에 대한 지식과 사심 없는 자선으로 특징 지워진 생애의 모본이다. 그러한 생애를 통하여 그들은 돈의 참가치를 깨닫게 된다. 돈은 오로지 자신의 부족과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고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시킴으로 성취되는 선을 이룰 때에만 올바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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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가진 소유에 따라서 기꺼이 바치되, 그들이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지 않으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더 이상은 요구하지 않으신다고 생각한다. 그들의 수입은 가족의 필요를 채우고 나면 여유가 없다. 그러나 이런 부류의 사람들 중 많은 이들은 다음과 같이 자문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과연 내가 가질 수 있었던 것에 따라 드리고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육체와 정신의 능력이 사용되도록 계획하셨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능력을 최대한으로 증진시키지 않았다. 노동은 사람에게 지정된 것이다. 그것은 죄로 말미암아 필요하게 되었으므로 저주와 연결되었다. 인간의 지덕체의 복리에는 유용한 노동의 생애가 필요하게 되었다. 영감 받은 사도 바울은 “게으르지 말라” 고 권면한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간에 게으른 생애로써는 아무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없다. 가난한 많은 사람들이 가진 모든 자본은 시간과 육체적 힘인데 흔히 안일을 사랑하고 부주의하고 게으름으로 인해 그것이 낭비되었으므로, 십일조와 헌물로 주님께 드릴 것이 없게 된다. 그리스도인 남성들이 최대한 효율적으로 노동할 지혜가 모자라고 그들의 심신의 능력을 현명하게 이용할 지혜가 결핍되어 있다면, 그들의 형제들의 판단과 충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온유와 겸손을 소유해야만 한다. 그렇게 함으로 그들의 더욱 훌륭한 판단을 통해서 저들 스스로의 결핍을 채울 수 있게 될 것이다. 동료 인간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만족하고 있는 많은 가난한 자들은 그들이 할 마음만 있으면 많은 일을 할 수 있다. 부한 자들이 그들의 자본인 재물에 대하여 책임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그들은 그들의 자본이 되는 육체적 힘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하나님의 창고에 재물을 드리는 사람들이 거기에서는 받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현재는 가난하지만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고 특허권에 대한 생각을 버리고 꾸준하고 힘든 노동보다 더 편안한 방법으로 재물을 얻고자 골몰하는 그들의 성향을 억제함으로써 현재의 처지를 개선할 수 있는 가난한 자들이 있다. 성공적인 생애를 못한 자들이 기꺼이 지도를 받는다면 그들은 자아 부정과 엄격한 절약으로 자신을 훈련시키고, 자선의 혜택을 받는 자가 아니라 오히려 나누어주는 자의 만족을 누릴 수 있게 될 것이다. 게으른 종들이 많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힘으로 할수 있는 일을 한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일에 큰 축복을 경험함으로써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는 말을 진정으로 깨닫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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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로 발휘된 자선은 사람의 정신적·도덕적 힘을 일으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궁핍한 자를 축복하는 일에 가장 건전한 활동을 하게 한다. 재물을 가진 자들이 그들이 사용하는 푼돈에 대해서까지도 하나님께 책임이 있음을 깨닫는다면, 그들이 필요한 것으로 여기는 것이 훨씬 많이 줄어들 것이다. 만일 양심이 깨우쳐진다면, 그 양심은 식욕, 교만, 허영, 쾌락에 대한 사랑 등을 만족시키기 위하여 쓸데없이 사용한 돈에 대하여 증거할 것이며, 하나님의 사업에 사용되었어야 할 주님의 돈을 낭비한 사실을 보고하게 될 것이다. 주님의 재물을 낭비하는 자들은 머지않아 주님 앞에서 그들의 행동에 대해 설명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임을 공언하는 자들이 몸을 치장하고, 집을 꾸미고, 허세를 부리고, 식탁 위에 건강을 해치는 호화로운 음식을 차리는 데 돈을 덜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많은 돈을 드릴 수 있게 될 것이다. 이렇게 함으로 그들은 하늘과 부와 영광을 버리시고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어 우리로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신 우리의 구속주를 닮게 된다. 우리가 너무 가난하여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십일조와 헌물을 하나님께 성실하게 드릴 수 없다면, 우리는 분명히 너무 가난하여 값비싼 옷을 입고 사치스런 음식을 먹을 수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렇게 한다면, 우리를 즐겁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해로운 방종에 주님의 돈을 낭비하게 된다. 우리는 하늘 왕국에 어떠한 보화를 확보하고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한가? 라고 성실하게 자문하여야 한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탐욕에 대하여 하나의 교훈을 하셨다.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편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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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장수와 행복은 우리가 이 땅에서 소유한 재물의 양에 좌우되는 것이 아니다. 이 어리석은 부자는 지독한 이기심으로, 자신이 사용할 수 없는 재물을 스스로를 위하여 쌓아 두었다. 그는 오로지 자신만을 위하여 살았다. 그는 장사로써 부당한 이득을 취하였고, 철저하게 에누리를 하였으며,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발휘하지 않았다. 그는 증가하는 세상 재물에 덧붙이기 위하여 고아와 과부의 것을 도적질하고, 동료 인간들에게서 사취하였다. 그는 해어지지 않는 하늘의 전대에 그의 보물을 쌓을 수도 있었으나 이기심 때문에 두 세상을 다 잃어버렸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겸손하게 사용한 자들은 머지않아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 (마 25:23) 는 축복과 함께 주님의 손으로부터 그들의 보물을 받게 될 것이다.

사람의 구원을 위하여 이루어진 무한한 희생을 생각할 때, 우리는 놀라움에 사로잡히게 된다. 이기심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승리를 얻기 위해서 아우성을 칠 때, 또한 선한 사업에 있어서 마땅히 담당해야 할 몫을 거절하고 싶은 유혹을 느낄 때, 그들은 하늘의 무한한 보화로 부요하셨던 분께서 그 모든 것을 버리고 가난하게 되셨음을 생각하고 올바른 원칙을 강화해야 할 것이다. 그분에게는 머리 둘 곳도 없으셨다. 이 모든 희생은 우리를 위한 것으로서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부를 소유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모든 제자들이 최종적으로 당신과 함께 높임을 받으려면 반드시 걸어가야 할 자아 부정과 희생의 길을 친히 걸으셨다. 그분은 인간이 당해야 할 슬픔을 당신의 마음으로 당하셨다. 세속적인 사람들의 마음은 흔히 둔하여진다. 그들은 오직 하늘의 사물의 영광과 가치를 가리우는 지상의 사물만 볼 수 있다. 사람들은 세상의 이득을 위하여 지상과 해상을 두루 다니며 그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가난과 고난을 참아내지만, 하늘의 매력에서는 돌아서며 영원한 부에 대해서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비교적 가난한 사람들이 흔히 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가장 많은 일을 한다. 그들은 그들의 적은 소유에서 관대하게 드린다. 그들은 계속적인 관대한 행동을 통하여 그들의 후한 추진력을 강화시킨다. 수입에 빠듯하게 지출이 이루어질 때, 이 땅의 부를 향한 정열은 발붙일 여지와 기회를 얻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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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땅위의 부를 모으기 시작할 때, 그들이 특정한 금액을 모을 때까지 얼마의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계산을 하게 된다. 자신을 위한 부를 쌓고자 염려하는 중에, 그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부요하게 되지 못한다. 그들의 자선은 그들의 재물의 축적과 보조를 같이하지 않는다. 부를 향한 그들의 정열이 증가함에 따라, 그들의 애정은 그들의 보화에 얽매인다. 재산의 증가는 더 많은 것을 바라는 열렬한 욕구를 강화하여, 주님께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심하고 불공평한 세금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영감의 말씀은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시 62:10) 라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내가 만일 아무개처럼 부하다면 하나님의 창고에 여러 배의 예물을 드릴 것이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만 나의 재물을 사용하겠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사람들 어떤 이들을 부하게 하심으로 시험하셨다. 그러나 부와 함께 더욱 격렬한 시험이 이르러 오자, 그들의 자선은 그들이 가난할 때보다 훨씬 줄어들었다. 더 큰 부를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그들의 정신과 마음을 사로잡았으며, 그들은 우상숭배의 죄를 짓게 되었다.

충성스런 인간의 상급으로 무한한 부와 당신의 나라에서의 영생의 축복을 인간들에게 제시하시는 분께서는 나뉘어진 마음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마음을 떠나게 하고 애정을 분리시키는 말세의 위기 가운데 살고 있다. 우리의 의무는 그리스도의 생애에서 비쳐 오는 빛을 바라볼 때만 분별될 것이다. 태양이 동쪽에서 떠서 서쪽을 향하여 지나가면서 온 세상을 빛으로 채우듯이, 그리스도를 진실하게 따르는 자들은 세상의 빛이 될 것이다. 그는 그에게서 발산되는 빛줄기에 의하여 흑암에 놓인 자들이 빛과 온기를 받도록, 밝고 빛나는 빛으로서 세상에 나아가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라고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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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크신 모본자께서는 자아를 부정하셨는데, 그분을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행동 노선이 그분의 것과 현저하게 대조적이어야 하겠는가? 구주께서는 멸망해 가는 세상을 위하여 당신 자신까지도 아끼지 아니하시고 모든 것을 내어 주셨다. 하나님의 교회는 잠자고 있다. 그들은 무활동으로 인하여 약화되어 있다. 세상의 여러 곳에서 “와서 우리를 도우라” 는 음성이 우리에게 쇄도하고 있으나, 이에 반응하는 행동이 없다. 때때로 연약한 노력만이 기울여지고 있을 뿐, 소수만이 그들의 주님과 동역자가 됨을 보여 주고 있다. 그러나 흔히 그러한 자들의 경우에도 거의 홀로 애쓰도록 방치되어 있다. 이 모든 외국의 넓은 일터에, 우리 백성들로부터 한 명의 선교사밖에 없다.

진리는 강력하나 실천되지 않고 있다. 제단에 헌금을 드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다른 나라와 방언과 백성들에게 진리를 전할 지원자 곧 사람을 부르고 계신다. 우리에게 현저한 승리를 가져다 줄 것은 우리의 수효나 부가 아니라 사업에 대한 헌신, 도덕적 용기, 영혼에 대한 열렬한 사랑, 지칠 줄 모르고 쇠하지 않는 열심이다.

자신의 신앙을 유지하기 위하여 계속적으로 세금을 바쳐야 했다는 이유로 유대 백성을 동정 받아야 할 백성으로 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인간을 창조하시고 그가 누리는 모든 축복을 베푸신 하나님께서는 무엇이 그에게 최선인지를 아셨다. 그분은 당신의 축복을 통하여 인간의 십 분의 구를 당신의 축복이 결여된 전체의 금액보다 더욱 그들에게 가치 있게 하셨다. 어떤 사람이라도, 이기심으로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거나 불완전한 헌물을 가져간다면, 재앙과 손실이 분명히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의 동기를 읽으신다. 그분은 사람들의 목적을 아시며, 당신께서 보시기에 적당한 때에 사람들이 받을 만한 대로 보상하실 것이다.

십일조를 드리는 특별한 제도는 하나님의 계명과 마찬가지로 견고한 원칙 위에 세워졌다. 이 십일조 제도는 유대인들에게 축복이 되었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 제도를 그들에게 주지 아니하셨을 것이다. 이 제도는 또한 세상 끝 날까지 그것을 실천하는 이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당신 자신을 부요하게 하시고자 체계적인 자선 계획을 창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큰 축복이 되도록 고안하셨다. 그분은 이 체계적인 자선이 바로 사람에게 필요한 것임을 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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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업을 유지하는 데 있어서, 가장 체계적이고 관대한 교회들이 영적으로 가장 번영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의 진정한 관대함은 자신의 관심을 주님의 그것과 일치시킨다. 유대인들과 마지막 때까지 있을 당신의 백성을 취급함에 있어서, 그분은 그들의 수입에 비례되는 체계적인 자선을 요구하신다. 구원의 계획은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에 의하여 세워졌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쳐 오는 복음의 빛은 이기심을 책망하며, 관대함과 자선을 격려한다. 드리라는 요청이 증가하는 것은 슬퍼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섭리로 당신의 백성을 그들의 제한된 행동 영역에서 불러내어 더욱 큰 사업을 하게 하신다. 도덕적 흑암이 세상을 덮고 있는 이 때에, 제한 없는 노력이 요구되고 있다. 세상에 속한 마음과 탐욕이 하나님의 백성의 생명력을 잠식하고 있다. 그들은 그들의 재물에 대한 요구를 배가시키는 것이 그분의 자비임을 이해해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는 자선 행위를 기도와 밀접히 연결시킨다. 천사는 고넬료에게 “네 기도와 구제가 하나님 앞에 상달하여 기억하신 바가 되었으니” (행 10:4) 라고 말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훈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눅 16:11). 교회의 영적 건강과 번영은 체계적인 자선에 크게 좌우된다. 그것은 마치 신체 각부에 생명력을 공급하며 온몸으로 흘러가야 하는 혈액과 같다. 그것은 동료 인간의 영혼에 대한 사랑을 증가시킨다. 왜냐하면, 자아 부정과 자아 희생을 통하여,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그리스도와 더욱 밀접한 관계에 이르기 때문이다. 영혼의 구원을 돕기 위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더 많이 투자하면 할수록, 그 영혼들은 더욱 가까이 우리의 마음과 밀접해진다. 우리의 수효가 지금의 절반일지라도 그들이 모두 헌신한 일꾼들일 것 같으면, 세상을 흔들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다. 활동적인 일꾼들에게 그리스도께서는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 28:20) 고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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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기적 동기, 고집, 편견에 의해 일어나는 반대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러나 불굴의 용기와 산 믿음을 가지고 우리는 모든 물가에 씨를 뿌려야 한다. 사단의 부하들은 만만찮다. 우리는 그들을 만나 그들과 더불어 싸워야 할 것이다. 우리의 사업은 우리 자신의 나라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일터는 세계이며, 곡식은 무르익어 있다. 승천하시기 전에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명령은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막 16:15) 는 것이었다.

우리 교역자들 중 어떤 이들이 외관상으로 약간의 노력만을 기울이며 그들의 노력에 대한 열매를 거의 거두지 못한 채 교회들을 맴도는 것을 볼 때, 우리는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낀다. 우리의 일터는 온 세계이다. 그들로 하여금 믿지 않는 세계로 나아가서 영혼을 진리 안으로 돌아오게 하는 사업을 하게 하라. 우리는 우리의 형제 자매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독자를 드리기 위하여 모리아 산으로 올라가는 아브라함의 모본을 제시하는 바이다. 여기에는 순종과 희생이 있다. 모세는 왕궁에 거했으며, 장래의 왕관이 그의 앞에 놓여져 있었다. 그러나 그는 유혹적인 뇌물에서 돌아서고, “바로의 공주의 아들이라 칭함을 거절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으니 이는 상 주심을 바라봄이라” (히 11:24-26).

사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하여 능욕당할 가치가 있는 자로 인정받는 것을 즐거워하고, 자신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바울과 실라는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그들은 채찍으로 맞고 감옥의 차가운 마룻바닥에 가장 고통스러운 자세로 우악스럽게 던져졌으며, 그들의 발은 들린 채 차꼬에 채워져 있었다. 그러나 원망과 불평의 소리가 간수들의 귀에 들렸던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한밤중의 정적을 깨고 기쁨에 넘치는 노래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음성이 감옥 속에서 흘러나왔다. 이 제자들은 그들이 위하여 고통을 당하고 있는 구주의 사업에 대한 진실하고 깊은 사랑으로 격려되었다.

하나님의 진리가 우리의 마음을 채우고 우리의 애정을 흡수하고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 우리 역시 진리를 위하여 고난받기를 기쁘게 여길 것이다. 어떤 감옥의 벽이나 순교자의 화형주도, 이 큰 사업에 가담한 우리를 두렵게 하거나 방해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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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내 영혼아, 갈바리로 오라

하나님의 아들의 비천한 생애를 주목하라. 그분은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 (사 53:3) 였다. 그분이 당하신 치욕과 갈바리에서의 고뇌를 바라보고, 자아 부정이 무엇인지를 배우라. 우리가 궁핍을 당하고 있는가? 하늘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의 가난은 우리를 위함이었다. 우리는 부유한 자 중에 속하는가? 그분도 그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그분의 가난을 통하여 부요하게 되도록 하시고자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기로 응낙하셨다. 그리스도 안에서 자아 부정이 예시되었다. 그분의 희생은 그분이 하늘 궁정을 떠나 악한 자들에 의하여 범죄자처럼 고난을 당하시고 죄인으로 선고되고 범죄자로서 죽음에 넘기워진 데에만 단순히 국한된 것이 아니라 세상의 죄짐을 지신 데 있다. 그리스도의 생애는 우리의 무관심과 냉정을 책망한다. 우리는 사단이 자기 때가 얼마 남지 않은 줄 알고 크게 분내어 내려온 세상 끝에 접근해 있다. 사단은 멸망해 가는 자들 가운데서 모든 불의의 속임수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의 인도자께서는 우리가 활력을 가지고 그 싸움을 싸우도록 우리의 손에 그 투쟁을 맡기셨다. 우리가 만일 깨어 있었다면 성취했을 분량의 이십 분의 일도 이루지 못하고 있다. 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생애를 통하여 모본을 보이신 자아 부정의 정신의 결핍과 안일에 대한 사랑 때문에 사업은 지연되고 있다.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최대의 노력을 기울일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이 부족하다. 출판 사업은 축소될 것이 아니라 배가되어야 한다.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에 우리 청년들을 준비시키는 교육을 위하여, 곳곳에 학교를 세워야 한다.

이미 상당한 시간이 낭비되었으며, 하늘의 천사들은 우리의 태만에 대한 기록을 하늘로 가져간다. 헌신하지 못한 채 졸고 있는 우리의 상태 때문에, 우리는 우리의 현재의 필요를 채우는 일에 우리를 도울 자격을 가진 사람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베푸신 귀중한 기회를 상실하였다. 오, 다른 나라에 복음을 전하는 일에 있어서 한나 모아로 하여금 오늘날 우리를 돕도록 하는 것이 얼마나 필요한가! 선교지에 대한 그의 방대한 지식은 지금 우리가 접근할 수 없는 다른 방언의 백성들에게 우리로 하여금 접근할 수 있게 해주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현재 우리가 처한 위기를 대처하도록 우리에게 이 선물을 주셨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선물을 소중히 여기지 않았으며, 그분께서는 그를 우리 중에서 취하여 가셨다. 그는 이제 수고에서 벗어나 잠들어 있으나, 그의 자아 부정의 사업이 그를 따른다. 거대한 추수장에서, 다른 민족과 지방에 접근하는 방법에 대한 지식이 결핍함으로 우리의 선교 사업이 지연되어야 한다는 사실은 통탄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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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깨어 있기만 했더라면 현재 우리가 소유하게 되었을 어떤 선물들을 우리가 상실하였기 때문에, 우리는 심령의 고통을 느낀다. 일꾼들이 희어져 무르익은 추수장으로 나아가는 일이 막혔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땅히 저들의 마음을 그분 앞에서 겸비히 하고, 가장 깊은 겸비로, 우리의 무정함과 이기적 방종을 용서해 주시고 태만히 한 의무와 활용하지 아니한 특권에 대한 부끄러운 기록을 지워 주시도록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숙고하는 가운데, 그에게 아무런 희생이 되지 않는 범위 안에 그의 예물을 제한하고자 하는 생각을 버리고, 다음과 같은 나팔 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가라, 내 포도원에서 일하라. 머지않아 쉼이 있으리 승천하시고자 할 때, 예수께서는 추수할 들판을 가리키시며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파하라.”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 (마 10:8). 우리는 유실되고 있는 수확물을 거두기 위하여 자아를 부정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영향력과 재물의 달란트를 요구하신다. 우리는 순종하기를 거절할 것인가?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 일부를 되돌려 주도록 요구하심으로 우리가 영생의 선물을 받을 가치가 있는지를 시험하신다.

34 장 — 조직적인 헌금

하나님께서 지상의 재물로 번영케 하신 모든 이들이 그들의 모든 증가액의 십분의 일을 충성스럽게 바침으로 그분의 계획을 수행한다면, 그들의 속건제와 감사제를 붙잡고 있지 않는다면, 창고는 끊임없이 채워지게 될 것이다. 조직적인 헌금 계획의 단순성은 그 효력이 사라지지 않았으며, 오히려 그것을 준비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높인다.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모든 것은 단순하며 유용하다. 만일 조직적인 헌금을 하나님의 계획에 따라 전체적으로 받아들여 가난한 계층의 사람들이 행하는 것처럼 부유한 이들도 충성스럽게 십일조 제도를 수행했더라면, 우리의 대형 신앙 집회에서 자금에 대해 반복해서 긴급하게 호소할 필요가 전혀 없게 될 것이다. 교회에서 조직적인 헌금 계획을 준수하는 일을 등한히해 왔으며, 그 결과로 창고는 고갈되고 교회는 뒤로 미끌어졌다.

교회증언 3권 pp. 399-4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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