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3 299-308(171일)

아론이 그릇된 길로 첫 발걸음을 옮겼을 때, 백성들을 움직였던 정신으로 그는 고무되었고, 그는 총사령관으로 지휘하고 명령했으며, 백성들은 한결같이 순종하였다. 여기에서 아론은 지극히 격분시키는 죄들에 대해 결정적인 승낙을 내렸다. 왜냐하면 그것은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서는 것보다도 어려움이 덜하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죄에 대해 승인을 함으로 성실성으로부터 흔들려 버렸을 때, 그는 결단력과 진지함과 열성으로 새롭게 고무된 것처럼 보였다. 그의 온유함은 순식간에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였다. 잘못을 거스려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해 섰을 때 결코 나타내 보이지 못했던 열성을 갖고 그는 황금을 송아지 우상으로 만드는 작업을 위해 연장들을 붙잡았다. 그는 제단을 짓도록 명령했으며 더욱 훌륭한 일에 합당한 보증과 함께 백성들에게 내일은 여호와께 명절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나팔수들은 아론의 입에서 나온 말을 이스라엘 군대의 각 부대를 향하여 소리 높여 선언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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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릇된 길에 대한 아론의 조용한 보증은 모세가 의의 길로 백성들을 인도하며 저들의 반역을 정복하는 일보다도 더욱 큰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어두움을 빛으로 빛을 어두움으로 바꾸어 놓은 아론에게 임한 영적 맹안은 얼마나 두려운 것이었는가! 금 형상을 경배하는 저들의 우상숭배에 대하여 여호와의 절일로 선언하다니 그는 얼마나 무시무시한 신성 모독의 죄를 범했는가! 여기에 하나님의 성령에 의하여 전적으로 지배되지 아니하는 심령들에 대하여 사단이 휘두르는 권세가 나타나 있다. 사단은 이스라엘 한 가운데 자기의 깃발을 꽂고 그것을 하나님의 깃발이라고 높였다.

아론은 지체함이나 부끄러움 없이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출 32:4) 라고 말하였다. 아론은 이스라엘 자손들로 하여금 저들이 마음 속에 품고 있던 것보다도 훨씬 크게 우상숭배로 빠져 들어가도록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산 위의 화염처럼 타오르는 영광이 저들의 지도자를 소멸시켜 버릴까봐 더 이상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에게 꼭 맞는 총사령관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가 명하는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준비가 되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금 신에게 경배하였다. 그들은 화목제를 바쳤고, 쾌락과 소요와 술취함 가운데 빠져 버렸다. 그들은 광야에서 그토록 많은 고생을 겪는 것은 자기들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고 당시에 마음 속으로 결정하였다. 오히려 무엇보다도 난관은 그들의 지도자에게 있었다. 그는 올바른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너무 굴복하기를 잘하며,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으로 저들을 경고하고 책망하고 위협하는 일에 있어서 언제나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지를 못하였다. 사물의 새로운 질서가 왔고 그들은 아론에 대해 기뻐하였고, 또한 스스로 즐거워하였다. 그들은 “만일 모세가 아론처럼 온순하고 부드럽다면, 이스라엘 진영에는 얼마나 놀라운 평강과 조화가 있게 될 것인가!” 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이제 모세가 산에서 내려올 것인지의 여부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모세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보았을 때, 백성들이 수치스럽게도 하나님을 잃은 것에 대하여 모세의 진노는 심히 커서 돌비들을 내던져 부수어 버렸다. 아론은 온유하게 서서 칭찬할 만큼 인내하며 모세의 질책을 받았다. 백성들은 아론의 사랑스러운 정신에 감복이 되었으며, 모세의 성급함에 대하여 분개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보는 것처럼 보시는 분이 아니다. 그분께서는 이스라엘의 비열한 배도에 대해 모세가 격분하는 것에 대해서 정죄하지 않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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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한 사령관이 이제 또다시 하나님을 위하여 자기의 위치에 섰다. 그는 여호와의 존전으로부터 직접적으로 내려왔으며, 그 곳에서 그는 과오를 범하고 있는 당신의 백성들로부터 진노를 거두어 달라고 그분께 간청하였었다. 이제 그에게는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백성들 앞에서 그분의 명예를 옹호하기 위하여 해야 할 또 다른 일이 있었다. 그는 그들로 하여금 죄는 죄요 의는 의라는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하였다. 그에게는 아론의 무시무시한 감화를 상쇄하기 위하여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이에 모세가 진 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 지라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진 이 문에서 저 문까지 왕래하며 각 사람이 그 형제를, 각 사람이 그 친구를 각 사람이 그 이웃을 도륙하라 하셨느니라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 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 모세가 이르되 각 사람이 그 아들과 그 형제를 쳤으니 오늘날 여호와께 헌신하게 되었느니라 그가 오늘날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리라” (출 32:26-29).

여기에서 모세는 진정한 헌신에 대하여 정의하였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이며,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서는 것이며, 지극히 불쾌한 의무들 중에서도 하나님의 목적을 수행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요구가 친구나 가장 가까운 친척들의 요구보다도 높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다. 레위 자손들은 범죄와 죄에 대해 하나님의 공의를 실행하기 위하여 하나님께 자신을 성별하였다.

아론과 모세는 모두 므리바 물가에서 하나님께 영광과 명예를 돌리는 일에 범죄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을 부드럽게 녹여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당신의 자비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나타내려고 하시던 때에, 모세와 아론 두 사람은 모두 계속적으로 불평해대는 이스라엘로 인하여 피곤에 지쳐 격분하였으며, 저들을 위하여 반석을 열 수 있는 권능을 주장하였다. “패역한 너희여 들으라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이 반석에서 물을 내랴” (민 20:10). 그들 중에서 여호와를 성별하여 저들을 향한 하나님의 인내와 자비를 드러낼 수 있는 황금 기회가 여기에 있었다. 그들은 물을 발견할 수 없기 때문에 모세와 아론에게 불평을 하였다. 모세와 아론은 백성들이 슬프시게 하는 것은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망각하고, 저들의 불평이 마치 저들에게 최대의 시련과 불명예를 안겨 주는 것처럼 여겼다. 그들이 거스려 범죄하고 존귀를 돌리지 않는 분은 하나님이었지,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그분의 임명을 받은 이들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들의 재난에 대한 책임을 모세와 아론에게 돌림으로 그들의 최고의 친구이신 분을 모욕하고 있었으며, 그들은 하나님의 섭리에 대하여 불평을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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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귀한 지도자들의 죄는 컸다. 그들의 생애는 끝날 때까지 모본이 될 뻔 하였다. 그들은 크게 높임과 영광을 받아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죄나 좀더 낮은 지위에 있는 사람의 죄나 마찬가지로 신속하게 책임을 물으신다.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잘못을 견책하고 정죄하지 않는 이들을 경건한 인물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여기는 반면에 의를 옹호하기 위하여 굳건히 서서 비헌신적인 영향력에 대하여 저들의 성실성을 굴복하지 않은 이들을 경건과 그리스도인적 정신이 부족한 인물로 여긴다.

하나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하여 굳건히 서서 어떠한 대가에도 불구하고 진리의 순수성을 유지하는 이들은 우리 구주께서 시험의 광야에서 겪으셨던 것처럼 수많은 고초를 겪게 될 것이다. 반면에 시험에 굴복하는 자, 잘못을 정죄할만한 용기가 없어서 어떠한 압력을 거스려 의를 수호하는 일에 저들의 영향력이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침묵을 지키는 자들은, 아마 수많은 상심을 피하고 많은 곤란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는지 모르나, 그들은 저들의 영혼을 잃어버리지는 않는다 할지라도 매우 풍부한 상급을 잃게 될 것이다. 하나님과 조화된 인물,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하여 악을 저지할 능력을 얻으며 의를 지키기 위해 굳건히 서는 이들에게는 언제나 혹심한 투쟁이 따를 것이며, 거의 홀로 서는 때가 자주 있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을 저들의 의지할 분으로 삼을때에 고귀한 승리는 저들의 것이 될 것이다. 그분의 은혜가 저들의 힘이 될 것이다. 그들의 도덕적 감수성은 예민하고 명석하며, 그들의 도덕력은 그릇된 감화를 저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치 모세의 성실성처럼 그들의 성실성도 지극히 순수한 성격의 것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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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하고 굴복하기 잘하는 정신, 백성들을 즐겁게 하려는 욕망, 이것 때문에 아론은 저들의 죄에 대하여, 그가 승인한 막대한 범죄에 대하여 눈이 멀었다. 이스라엘의 잘못과 죄에 대해 영향력을 행사한 그의 행실때문에 삼천 명의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이것은 모세의 길과 얼마나 대조되는가.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고서 백성들이 무사히 넘어갈 수 없다는 사실을 목격한 후에, 완고하게 반역을 계속한 사랑하는 친구들과 친척들에 대한 연민의 감정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진노를 돌리기 위하여 공의를 집행한 후에 모세는 또 다른 일을 위해 준비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진실된 친구요 백성의 친구임을 입증하였다.

“이튿날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가 큰 죄를 범하였도다. 내가 이제 여호와께로 올라가노니 혹 너희의 죄를 속할까 하노라 하고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그는 내가 내 책에서 지워 버리리라 이제 가서 내가 네게 말한 곳으로 백성을 인도하라 내 사자가 네 앞서가리라 그러나 내가 보응할 날에는 그들의 죄를 보응하리라 여호와께서 백성을 치시니 이는 그들이 아론의 만든 바 그 송아지를 만들었음이더라” (출 32:30-35).

모세는 범죄하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하나님께 탄원하였다. 그는 하나님 앞에서 저들의 죄를 경감시키기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다. 그는 저들의 죄에 대하여 변명하지 않았다. 그는 저들이 큰 죄를 지었으며, 금 신들을 만들었다는 것을 솔직하게 시인하였다. 그리고 그는 소심함을 떨쳐 버리고, 이스라엘의 유익과 자기의 목숨이 너무 긴밀히 서로 짜 넣어져 있었기 때문에 담대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그분께 당신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기를 기도하였다. 만일 저들의 죄가 너무 커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용서하실 수 없다면, 만일 저들의 이름이 당신의 책에서 도말될 수밖에 없다면, 주님께서 자기의 이름도 마찬가지로 도말해 달라고 기도하였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모세의 앞에 보내어 언약의 땅으로 백성들을 인도하시겠다고 모세에게 약속을 갱신하셨을 때, 모세는 자기의 요구가 응답된 것을 알았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만일 백성들의 범죄로 인하여 당신께서 보응하실 수 밖에 없다면, 이 흉악한 죄를 인하여 저들을 분명히 처벌하시겠다고 모세에게 확인하셨다. 그러나 만일 앞으로 그들이 순종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이 큰 죄를 당신의 책으로부터 도말하실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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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장 — 젊은 목회자와 그의 아내에게

사랑하는 A 부부에게:

수개월 동안 나는 여러 해 전에 주님께서 그들에 관하여 보여 주기를 기뻐하신 몇 가지에 대해 그대들에게 써 보내어야 할 때가 되었다고 느꼈다. 현대 진리를 증거하는 사업을 위해 준비하려면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이에 관련된 여러 사람들과 관련해서 그대들의 경우를 보게 되었다. 나는 그대 두 사람 모두가 필수적인 자격을 결 (缺) 하고 있으며, 이것을 획득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유용성과 스스로의 영혼 구원까지도 위태롭게 될 것임을 보았다. 그대들의 품성 속에는 몇 가지 결점이 있는데 그것들을 고치는 일은 지극히 중요하다. 만일 그대들이 그 일을 단호하고도 열렬하게 수행하기를 게을리한다면, 이러한 잘못들은 점점 증가하여 하나님의 일과 사업에 있어서의 그대들의 영향력에 큰 장애를 미치고, 결국 그대들은 그대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진리를 전파하는 사업으로부터 나갈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B 형제에 대하여 내게 주신 이상 중에 나는 그가 매우 불행한 성품상의 특징이 있음을 보았다. 그는 훈련을 받지 않았으며, 그의 기질은 정복되지 않았다. 그는 자기 마음 먹은 대로 마음껏 행할 수 있도록 허용을 받아 왔다. 그는 하나님과 사람을 존경하는 일에 매우 큰 결함이 있다. 그는 강하고 굴복할 줄 모르는 정신을 소유하고 있으나, 자기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는 이들에 대하여 적절히 감사할 줄을 모른다. 그는 극단적인 이기주의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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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자매의 경우에는 독립심, 굳건하고 요지 부동이고 굴복할 줄 모르는 의지, 타인에 대한 경의와 적절한 존경심의 결여, 이기심과 지나친 자기 신뢰 등이 품성의 특징임을 나는 보았다. 만일 그가 자기의 품성속에 있는 이러한 결함들을 면밀히 살피고 정복하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는 일에 실패할 것이다.

A 형제와 관련해서 B 에 대해 언급한 것들 중 많은 것이 그대에게도 적용됨을 나는 보았다. 나는 그대의 과거의 생애를 주목하게 되었다. 나는 그대가 어려서부터 마음 속에 자신감과 완고함과 자기 독단적 생각을 품고 지냈음을 보았다. 그대에게는 독립심이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굴복하는 것이 그대에게는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그대의 길과 뜻을 다른 이들에게 의무적으로 굴복해야 할 때에, 그대는 자기 식대로 일을 거칠게 하였다. 그대는 스스로 잘 생각하여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하나님의 진리는 그대에게 수용되어 사랑을 받았으며, 또한 그대를 위해 많은 일을 이루었지만, 그것은 그리스도인 품성을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변화를 일으키지 못하였다.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을 맨 처음 시작하였을 때, 그대는 좀더 온유하고, 조언과 권면을 잘 받아들였다. 그러나 어느 정도 성공하기 시작하자, 그대의 자만심은 증가하여, 그대는 덜 온유하게 되고, 독자적인 사람이 되었다.

그대가 화잇 부부의 사업을 보았을 때, 그대는 어느 점에서 그들보다도 더 훌륭하게 행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에 대한 반대의 감정을 그대들의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 그대는 감정적인 면에서 천성적으로 회의적이고, 비신앙적이다. 그대가 저들의 사업을 보고, 그릇된 일들에게 보내는 견책들에 대해 듣게 되었을 때, 그렇게 명백한 증언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을 제기하였다. 그대는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결정하였고, 그들이 일하는 방법에 대해 반대하는 입장을 취함으로 그들과 그들의 사업에 대해 회의와 의심과 시기심의 문을 그대의 마음 속에 활짝 열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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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감정적 편견을 갖고 그들의 수고를 보았다. 그대는 할 수 있는껏 관찰하고, 듣고, 모아들여 많은 것을 추측하였다. 하나님께서 어느정도 그대에게 성공을 주셨으므로 그대는 그대의 짧은 경험과 수고를 화잇 형제의 수고와 같은 차원에 놓기 시작하였다. 그대는 우쭐거렸으며 만일 그대가 그의 입장에 있다면 그보다도 훨씬 훌륭하게 일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대는 스스로의 눈에 크게 보이기 시작하였다. 그대의 지식은 실제 형편보다도 훨씬 폭 넓고 가치 있다고 그대는 생각하였다. 만일 그대가 화잇 형제가 이 사업에 대하여 짊어지고 있는 부담과 실제적인 봉사와 염려와 곤궁의 일백 분의 일이라도 경험하였더라면 그대는 그에 대하여 불평하고 의심하고 질투하는 대신에 그의 사업을 더욱 잘 이해하고, 그를 더욱 잘 동정할 수 있게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대가 책임지고 있는 일에 대해서 말하자면, 그대의 수고가 하나님의 가납하심을 받는 데 실패하지 않도록, 그대의 수고를 통해서 그대가 진리의 사업에 영광을 돌리는 일에 실패하지 않도록 그대는 분기하여야 한다. 그대는 겸손한 심령으로 “이 일에 누가 적합하겠는가?” 라고 느껴야 한다. 그대 두 사람 모두가 화잇 형제의 사업에 관해 의문을 품는 이유는 그것에 대해 거의 알고 있지 못하기 때문이다. 참된 부담이 그대의 영혼을 억누른 적이 거의 없었고,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염려로 그대의 심령이 고민해 본 적이 거의 없었고, 다른 사람을 위하여 진실된 염려와 투쟁을 해 본 적이 거의 없었으므로, 열 살 짜리 소년이 자기 아버지가 짊어지고 있는 염려와 근심과 고역에 대해 이해하는 것보다도 훨씬 못하게 그대는 화잇 형제의 사업에 대해 이해할 준비가 되어 있지 못하다. 소년은 부담과 근심의 짐을 지고 애쓰는 아버지의 체험을 해본적이 없기 때문에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는 쓸데없어 보이는 아버지의 염려와 근심에 대하여 이상스럽게 여길 수 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인생 경험이 늘게 되면, 그가 참된 짐을 떠맡아 책임을 지게 되면, 그때서야 그는 자기 아버지의 생애를 회상하고, 소년 시절에 자기에게는 이상스럽게 여겨졌던 것을 이해하게 된다. 왜냐하면 쓰라린 체험을 통하여 지식을 얻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대가 사업의 단순성으로부터 벗어나 그대 자신을 최고봉에 앉히는 위험 가운데 빠져 있음을 보았다. 그대는 전혀 견책과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으며, 그대의 마음 속의 말은 이러하다. “나는 선악간에 판단하고, 구별하고, 결정할 수 있다. 나는 내 권리를 침해당하고 싶지 않다. 아무도 나를 지배할 수 없다. 나는 스스로의 행동 계획을 수립할 수 있다. 나는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하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셔서 나의 노력에 성공을 주신다. 그 누가 나를 간섭할 권위를 갖고 있는가?” 그대의 경우가 이상 중에 내 앞을 스쳐 지나갈 때 그대가 이러한 말을 그 누구에게가 아니라 마치 스스로에게 말하듯이 지껄이는 것을 나는 들었다. 그대 두 사람을 지적하면서 내 곁에 서 있는 천사가 “만일 그대들이 회심하여 어린아이와 같이 되지 않으면 그대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이 어린아이와 같이 자기 자신을 낮추는 자는 천국에서 가장 위대한 자이다” 라는 말을 되풀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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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나님의 자녀들의 강점은 겸손에 있음을 보았다. 그들이 스스로의 눈에 작게 여겨질 때, 예수께서는 그들의 힘과 의가 되실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들의 수고가 성공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이다. 나는 하나님께서 A 형제를 시험하고자 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분께서는 그에게 어느 정도 성공하도록 하셨다. 만일 그가 시험을 견디고자 한다면 만일 그가 하나님의 축복을 자기를 영화롭게 하고, 스스로를 높이고, 이기심과 자만심을 부추기는 데 사용하는 대신에 선한 일로 돌려버린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사업과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당신의 축복을 계속해서 베푸실 것이었다.

A 형제여, 나는 그대가 스스로 높아지고, 자기 의와 자기 만족에 빠져 스스로 부요하여 아무 것도 필요 없는 것으로 느끼게 될 가장 큰 위험 속에 빠져 있음을 보았다. 만일 그대가 이 점에 있어서 스스로를 지키지 못한다면, 주님께서는 그대의 약점이 모든 사람에게 자명하게 드러나는 지점에까지 그대가 나아가도록 허락하실 것이다. 만일 다른 사람들이 그대가 스스로와 스스로의 능력에 대해 여기는 것처럼 그대를 뛰어난 빛으로 여기지 않는다면, 그대는 홀로 시험을 받게 될 지점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나는 그대가 수많은 번영과 성공을 감당하기에는 준비가 형편없음을 보았다. 그대의 경우에는 철저한 회심만이 필요로 되는 일을 이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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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 두 사람 모두가 천성적으로 이기적임을 보았다. 그대들은 제지되지 않는 한, 스스로에 대하여 생각하고 행동할 끊임없는 위험 가운데 빠져 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편의를 위해 계획을 세우며, 다른 사람들에게 얼마나 많은 불편을 안겨 주는지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의 계획을 고려하거나 그들의 견해나 감정을 존중하지 않고 그대들의 생각과 뜻을 수행하는 경향이 짙다. 그대 모두는 타인에 대한 경의와 존경심을 계발해야 한다.

A 형제여, 그대는 그대의 일이 너무 중요하기 때문에 가사적인 의무에 참여하기 위하여 내려올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대는 이러한 요구들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대는 청년 시절에 그러한 것들을 등한히 하였다. 그러나 그대가 등한히 하는 이러한 작은 의무들은 잘 계발된 품성을 형성하는 일에 필수적이다.

나는 우리 목사들이 저들이 속해 있는 가정에서 일반적으로 유용한 인물이 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어떤 이들은 연구하는 것을 좋아하기 때문에 이 일에만 정신을 쏟는다. 그들이 방문하는 가정에 목사들이 축복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의무를 지우셨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고 많은 사람들이 가정들을 멀리하고 책에만 사로잡혀 있으며, 그들과 진리의 주제에 대하여 말하지 않는다. 가정에서 신앙적 관심사가 거의 언급되지 않는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일이다. 출판 사업에 대하여 책임과 염려가 없는 이들, 모든 교회에 대하여 걱정과 수많은 염려를 해야 할 위치에 있지 않는 많은 이들은 자기의 짐이 과도하게 어렵다고 느끼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방문하는 가정의 가장 깊은 관심사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들은 아무 것도 돌려주지 않으면서 사랑을 받고, 대접을 받아야 한다고 느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대접해야 할 책임이 그리스도인 가정에 있으며 또한 그리스도인 친구들의 대접을 받는 목사들에게는 가능한 한 그들의 친구들의 짐이 되지 않고 스스로의 짐을 짊어져야 할 상호적인 책임 가운데 있음을 깨달아야 할 의무가 있다. 많은 목사들은 저들이 특별하게 총애와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품고 있으며, 마치 애완용 짐승처럼 취급받음으로 자주 그들은 손해를 보고 그들의 유용성은 장애를 받는다.

교회증언 3권 pp. 299-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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