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29-38 (74일)

“벗이여 떡 세 덩이를 내게 빌리라 내 벗이 여행 중에 내게 왔으나 내가 먹일 것이 없노라.” 우리에게는 양식이 없다는 것이 구하는 자를 박대할 구실이 되라는 증거가 없다. 엘리야가 사르밧 과부에게 갔을 때에 그녀는 하나님의 선지자와 함께 작은 떡을 나누어 먹었다. 하나님께서는 기적을 행했으며, 그분의 종을 위하여 집을 제공하고 떡을 함께 나누는 일을 통하여 그녀가 살아날 수 있도록 하셨고, 그녀와 그 아들은 살아남을 수 있게 되었다. 그들이 이 일을 기쁘게 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면 그것은 많은 경우에서 증명될 것이다. 어떤 이들은 허약한 것을 핑계한다. 힘이 있다면 하려고 한다. 그런 사람들은 너무도 오랫동안 자신을 가둔 채로 지냈고, 자기의 연민에 빠져있으며, 당하는 고통과 시련과 아픔에 대해 너무 말을 많이 하며, 그것이 그들의 현대 진리가 되었다. 남들이 더 동정과 조력을 받을 입장에 있을지라도 그들은 자신만을 생각한다. 허약한 건강으로 어려움을 당하는 그대여, 치료제가 있다. 벗은 자를 입히며, 쫓겨난 자를 그대의 집으로 들이고,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라.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다.” 선을 행하는 것은 훌륭한 치료제이다. 이 사업에 종사하는 자들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라는 초청을 받았다. 그분께서는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마른 곳에서도 그들의 영혼이 만족함을 얻을 것이며 그들은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깨어라. 선행하는 것을 두려워 말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이러저러한 일을 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눈을 뜨고 주위 사람들을 살펴보라. 가련한 자, 고통당하는 자, 궁핍한 자들과 알고 지내라. 그들 앞에서 숨지 말고, 그들의 필요를 모른채 말라. 야고보서에 언급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을 가졌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 누가 위대한 구속의 계획을 이루기 위해 최선을 다해 애쓸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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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아이를 바느질 품팔이로 양육해야 하는 어느 과부를 알고 있다. 그녀는 창백하고 걱정에 시달린 모습이다. 혹심한 겨울 동안 그녀는 자신과 자녀들을 부양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녀는 도움을 약간 받았다. 이 일을 위해 더 큰 관심이 있었다면 어느 누가 아쉬운 생각을 하겠는가? 여기 아홉 살, 열 한 살 박이 두 소년에게 집이 필요하다. 누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그들에게 집을 제공하겠는가? 어머니는 이 걱정과, 바느질의 고된 일로부터 놓여나야 한다. 이 소년들은 어떤 마을에 사는데 돌보는 이라고는 죽도록 일만 하는 그들의 어머니밖에 없다. 그들은 나이에 맞는 일을 배워야 한다. 그들은 인내와 친절과 사랑으로 훈계를 받아야 한다. 어떤 이들이 이렇게 말할 수도 있으리라. “그래요, 내가 그 아이들을 맡아서 일하는 것을 가르치지요.” 그러나 그들은 이 소년들이 일 배우는 것 외에도 다른 것이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훌륭한 그리스도인의 품성을 계발하는 방법을 배울 필요가 있다. 그들은 사랑과 온정이 필요하다. 그들은 이 땅에서 유용한 존재가 되어야 하고 결국 하늘에 알맞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이기심의 허울을 벗어버리고 그대의 집과 동정과 사랑으로 도와주고 결국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을 보는 축복을 끼칠 사람이 많지 않음을 깨달으라. 영혼구원을 위하여 희생할 마음이 없는가? 고귀하신 구주 예수는 그대를 위해 집을 마련하고 계신다. 그대는 그 대신 집 없는 자들을 위해 왜 집을 마련해 주지 않는가? 그렇게 함으로 왜 그대의 주인을 흉내내지 않는가? 그대가 이 일을 기꺼이 하지 않는다면, 그러고서도 하늘 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를 위하여는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기적이며, 편리만을 찾는 사람이여 그대의 은혜의 기간은 속히 끝나고 있다. 그대는 이기심과 무용지물의 생애를 속량하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깨어라! 깨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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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에 관심이 있다면 일어나서 좋은 씨를 파종하기 시작하라. 심은 대로 거둘 것이다. 추수가 이르렀다. 이 큰 추수 때에 우리는 심은 것을 거둘 것이다. 수확물에는 실패가 없다. 추수는 확실하다. 지금이야말로 파종의 시기다. 자, 선한 일을 많이 하자. “흩어 구제하여” 장차 올 때에 든든한 기반을 닦기 위해 준비하자. 그리하여 “영생을 취하자.” 각 곳에 있는 형제들이여 탄원하노니 냉랭함을 버리라. 환대의 정신을 기르고, 필요한 자를 돕고자 하는 마음을 길러라. 그대들은 재산을 무가치한 인생들을 위해 자선을 베푸는 데 사용했기 때문에 궁핍한 자들을 돕는 맛이 없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나는 그대들 앞에 예수님을 제시하고 싶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러, 자기 백성을 구원하시러 오셨다. 그러나 그들이 그분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분의 자비를 모욕과 경멸로 대하였다. 급기야 그들은 생명을 주시러 오신 분을 죽였다. 이것 때문에 우리 주님께서 인류를 외면하셨는가? 아흔 아홉 번의 선행이 실패처럼 보이더라도, 모욕과 책망과 미움만 받았다 하더라도 백번 째에는 성공해서 한 영혼을 얻는다면 얼마나 큰 승리를 이룬 것인가! 한 영혼이 사단의 손아귀에서 도망 나왔다. 한 영혼이 혜택을 받았다. 한 영혼이 힘을 얻었다. 이것은 그대의 모든 노력을 천 배나 갚고도 남음이 있다. 예수께서 그대에게 이렇게 말씀하실 것이다.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우리는 주님의 생애를 모방하기 위해서 모든 할 수 있는 일을 기쁘게 해야 하지 않을까! 많은 사람들은 남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이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움츠러든다. 그들은 남들을 도우므로 어려움 당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남들의 편리를 위해서 자신을 불리하게 하는 것까지는 요구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님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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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베대의 두 아들 중 하나는 보좌의 오른편에 하나는 왼편에 앉게 해달이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에 예수께서는 대답하셨다. “너희 구하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나의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저희가 말하되 할 수 있나이다 가라사대 너희가 과연 내 잔을 마시려니와 내 좌우편에 앉는 것은 나의 줄 것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누구를 위하여 예비하셨든지 그들이 얻을 것이니라.”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대답할 수 있을까? 우리가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어떻게 제대로 대답할 수 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위대한 모본을 따를 수 있을까?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은 이 단계를 밟으면서 그분께서 행하신 대로 행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러나 고결한 믿음을 가졌다고 말하는 많은 사람들의 생활은 그들의 생애를 모본과 일치시키는 일을 별로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은 그들의 불완전한 표준에 맞추기 위해 삶을 꼴 짓는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자아 부정이나, 그분의 생애나, 남들을 위한 희생을 모방하지 않는다. 가난한 자들, 집 없는 자들, 과부들이 우리 가운데 있다. 나는 어느 부농이 그들 중에 거하는 과부의 형편에 대해 묘사하는 것을 들었다. 그는 그녀의 딱한 형편을 탄식하였다. “이 추운 겨울 그녀가 어떻게 지낼른지 모르겠다. 지금 그녀는 경제적으로 곤란한 지경이다.” 이런 자들은 우리의 모본인 예수를 망각하였다. 그들의 행위는 다음과 같은 뜻을 표현한다. “아니요. 주님, 우리는 주님이 마신 자아 부정과 굴욕과 희생의 잔을 마실 수 없습니다. 당신이 받으신 고통의 침례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우리는 남들에게 선을 행하며 살 수 없습니다. 우리를 돌보는 일이 바쁘거든요.” 창고 가득히 가진 사람 말고 누가 그 과부의 형편을 도와줄 수 있겠는가? 그녀가 살아갈 방도는 가까이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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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청지기를 삼으신 자들이, 하나님께서 재물을 맡기신 이들이 그리스도의 궁핍한 제자들 앞에서 감히 도움의 손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게 한다면 그들은 예수께로부터 손을 거두는 것이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궁핍한 자를 돕기 위해 하늘에서 낟알을 소나기처럼 내리실 것으로 기대하는가? 그분께서는 그대를 통하여 그들을 돕고 축복하는 일을 그대의 손안에 주시지 않으셨는가? 그분께서는 그대를 선행을 통하여 그대의 믿음을 증명할 도구로 만드시고, 하늘에 보화를 쌓아 둘 특권을 주지 않으셨는가? 아버지를 잃고 어머니를 잃은 아이들이 교회에 던져진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이 불쌍한 아이들을 맡아서 나를 위하여 양육하라. 네 삯을 받으리라. 이 일에 있어서 이기심이 많이 보였다. 집이 필요한 아이들을 입양하는 일이 이롭다는 특별한 증거가 없을 때에 어떤 이들은 외면하고 하지 않겠다고 대답한다. 그들은 그 아이들이 구원받는 사실을 알지도 않고 관심도 없는 것 같다. 그들은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고 말한다. 그들은 고아들로 인해 불편을 감수한다든지 희생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관심하게 그런 아이들을 세상의 품에 던진다. 세상 사람들은 종종 우리 교인들보다 더 기꺼이 그들을 받아들인다. 하나님의 날에, 하나님이 구원할 기회를 주신 사람들을 심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구실을 붙여 말하기를 원하였으며, 그 일이 자기들에게 이익이 되지 않으면 그 선한 일을 떠맡으려고 하지 않는다. 선행의 기회를 거절한 사람들은 예수님께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게 될 것을 나는 보았다.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이사야 58장을 읽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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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어찌 나의 기뻐하는 금식이 되겠으며 이것이 어찌 사랑이 그 마음을 괴롭게 하는 날이 되겠느냐 그 머리를 갈대같이 숙이고 굵은 베와 재를 펴는 것을 어찌 금식이라 하겠으며 여호와께 열납될 날이라 하겠느냐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서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다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만일 네가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을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마음을 만족케 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밤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것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다. 우리의 모든 기도와 금식은 이 사업을 단호히 부여잡지 않으면 소용없는 것이다. 거룩한 의무가 우리에게 있다. 우리의 의무는 명백하다. 주님께서는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다.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길은 눈멀고 이기적인 인생이 뜻하는 것이나 믿고 있는 바가 아니라 주님께서는 마음을 보신다. 이기심이 자리잡고 있다면 그분은 그것을 아신다. 우리가 형제 자매들의 눈앞에서 우리의 참모습을 숨길 수 있다 하더라도 하나님은 아신다. 그분 앞에서 감출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금식이 묘사되었다. 주린 자에게 식물을 나눠주고 집이 없는 가난한 자를 집으로 들이는 것이다. 그들이 그대에게 올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그들이 그대를 찾아와서 집을 마련해 달라고 간청하게 해서는 안 된다. 그대는 나가서 그들을 찾아 집으로 들여야 한다. 그대는 마음을 그들에게 쏟아야 한다. 그대의 한 손은 믿음으로 구원을 주시는 강한 팔에 의지하고 다른 편은 사랑의 손을 뻗어 압제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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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손으로 자신의 쾌락을 도모하면서 다른 편 손으로 하나님의 팔을 붙잡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대가 이러한 자비와 사랑의 일에 종사할 것 같으면, 그 일이 그대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되겠는가? 그대는 실패하고 짐에 눌려 납작하게 될 것인가? 그대의 가족은 그대의 도움과 영향을 상실하게 될 것인가? 아니다.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는 이 문제에 관한 모든 의심들을 주의깊게 제거하셨다. 순종의 조건으로 그대에게 서약하셨다. 이 약속은 가장 냉혹하고, 가장 망설이는 사랑도 갈구하는 바를 포함한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다.”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다는 것만 믿으라. 하나님께서는 체력을 새롭게 하실 수 있다. 게다가 그 일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그 약속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라.” 하나님께서는 그대 사면에 요새를 건설하실 것이다. 약속은 여기서도 끝나지 않는다.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멍에와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주린 자에게 심정을 동하면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발하여 네 어두움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곳 (기근 중) 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여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이사야서 58장을 읽어라. 빛의 자녀라고 주장하는 자들아, 궁핍한 자에게 호의를 베풂으로 불편 당하는 것을 꺼려하는 자들은 또 읽고 또 읽어라. 마음과 집이 좁아서 집 없는 이들을 들일 수 없는 자들아, 읽어라. 고아와 과부를 이 빈곤의 압제를 받는 것과, 강퍅한 세상 사람들에 의해 좌절당하는 것을 볼 수 있는 자들아, 읽어라. 가정에 새로운 영향이 생겨 무진장 더 애를 써야 할 것이 두려운 자여, 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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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두려움은 근거 없는 것이고 매일 깨달을 수 있는 축복이 올 수 있다. 잘 되지 않아서 과외의 노력이 필요하게 되면 약속하신 분께 나아갈 수 있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다.” 내가 본 바에 의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영적으로 둔하고 많은 믿음을 갖지 못하는 것은 이기심으로 마음이 좁아졌기 때문이다. 선지자는 죄인들이 아니라 경건한 체하는 안식일 준수자들에게 말하고 있다. 집회 수가 많다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이 아니며, 기도가 많다고 받으시는 것이 아니다. 바른 일을 제때에 하는 것을 받으신다. 자기를 덜 돌보고, 더 자선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을 활달하게 해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물댄 동산처럼 만들 것이다. 이사야서 1장을 읽어라. “너희가 손을 펼 때에 내가 눈을 가리우고 너희가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아니하리니 이는 너희의 손에 피가 가득함이니라 너희는 스스로 씻으며 스스로 깨끗케 하여 내 목전에서 너희 악업을 버리며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받는 자를 도와주며 고아를 위하여 신원하며 과부를 위하여 변호하라 하셨느니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되 오라 우리가 서로 변론하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같이 붉을지라도 양털같이 되리라 너희가 즐겨 순종하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먹을 것이요 너희가 거절하여 배반하면 칼에 삼키우리라 여호와의 입의 말씀이니라.” 참된 증인이신 그리스도께서 언급하신 금은, 우리 모두가 가져야 하는 것인데, 믿음과 사랑이 하나된 것으로 내게 나타났다. 사랑이 믿음을 앞선다. 사단은 이 귀한 선물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마음에서 앗아가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모두는 인생이라는 게임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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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사랑과 믿음을 제거하고 그 자리를 이기심과 불신으로 대신 채우면 나머지 모든 귀한 특성들은 기만자의 손에 의해서 교묘히 제거될 것이고, 그 인생은 게임에서 패하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사단이 그의 목적을 성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는가? 영생을 얻기 위한 게임에서 지고 싶은가? 하나님께서 내게 말씀하셨는데, 그대가 완전히 변화되지 않으면 승리자가 되는 대신에 사단에게 정복당하는 것은 하나님의 보좌가 확실한 것처럼 분명하다. 사랑과 믿음을 다시 찾아야 한다. 그대는 이 싸움에 새롭게 참전하여 그대에게 사실상 결핍된 귀한 선물들을 찾아오지 않겠는가? 그대는 지난날보다 더 진지하고, 끈기있고, 인내로서 노력해야 한다. 기도하고 금식하는 것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고 이기심을 없앰으로 되는 것이니,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금식, 하나님께 열납되는 금식을 하라. 내가 너무 신랄하게 말하므로 상심할 자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내게 짐을 지우시는 한 나는 계속 이 일을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책임있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 사업에 헌신할 것을 요구하신다. 왜냐하면 그들이 잘못되면 백성들은 그들의 전철을 밟는 것을 개의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백성이 잘못 나갈 때에 지도자들이 잘못에 대해 소리를 높이지 않으면, 그들은 그것을 인가하는 것이며, 그 죄를 범한 자들 뿐 아니라 지도자들도 같은 죄를 당하게 된다. 책임자들은 그들에게 지워진 짐을 항상 의식하는 경건한 사람이어야 한다.

3 장 — 장자권을 팔아 넘김

사랑하는 D 형제여,

내가 그대에게 편지를 쓰려고 생각했지만 일이 계속 생겨서 시간이 없고, 또 피곤하고 힘이 빠져서 그리하지 못했다. 지난 이상 중에 나는 그대의 형편을 보았다. 그대는 위험한 상태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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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진리를 안다. 의무도 이해하고 있으며, 진리의 빛을 즐기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것이 세상을 향한 그대의 생각에 방해가 되자 그대는 편리를 위해서 진리와 의무를 내동댕이치려 하고 있다. 그대는 당장의 금전적 이익을 바라며, 영원한 영광의 중요한 것을 바라보지 않는다. 그대는 전망 있어 보이는 현재의 이익 때문에 엄청난 손실을 당하기 직전이다. 그대는 팥죽 한그릇에 장자의 명분을 팔 지경에 있다. 그대가 세상적 이익 때문에 진리에서 돌아섰다면,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고의적으로 범죄한 것이다. 에서는 별미를 좋아했고, 식욕을 채우기 위해서 장자의 명분을 버렸다. 그의 식욕을 만족시킨 후에 그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그가 눈물을 흘리며 신중히 돌이키려 했지만 회개할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에서와 같은 자들이 많다. 그는 우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의 생명처럼 영원한 생명을 기업으로 받고, 측량할 수 없는 행복과, 영원한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귀중한 축복을 수중에 가졌으나 너무 오랫동안 그들의 식욕과 정욕과 취향을 따라 방종함으로 인해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고, 가치를 아는 능력이 약화된 사람들을 대표한다. 에서에게는 어떤 특정한 음식이 몹시 구미에 당겼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을 만족시켜 왔기 때문에, 유혹적이며 탐나는 요리를 저버릴 필요를 느끼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의 식욕을 제어할 노력을 기울이지 않고 그것에만 집착하여 결국 식욕의 힘이 다른 모든 생각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그 요리를 먹지 않으면 매우 큰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혹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였다. 그가 그것을 생각할수록 그의 욕망은 강해졌고 장자의 명분은 신성한 것인데 결국 그 가치와 신성성을 상실하게 되었다. 그는 지금 팔더라도 쉽게 다시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교회증언 2권 pp. 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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