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199-208 (91일)

그러나 돈을 모으고 재산을 끌어모으는 사람들은 너무 뒤쳐져 있다. 그들은 그들의 능력에 비해 거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챙기며,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한다. 왜냐하면, 그들은 궁핍하게 될까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선뜻 신뢰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병약하며 너무 많은 이들이 무덤으로 들어가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 가운데 탐욕자들이 있다. 세상에 애착을 두는 사람,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사람이 우리 가운데 있다.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없는 사람, 노동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가난한 사람들이 각박하고 불공정한 대우를 받았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굳은 얼굴과 강퍅한 마음으로, 고생하여 얻는 적은 액수를 아까워하며 노동자들에게 주었다. 바로 그렇게 그들은 그들의 주님을 대접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그분의 종들이라고 말한다. 바로 이런 인색한 정신으로 그들은 하나님의 창고에 바친다. 비유에 나온 사람은 그의 재물을 쌓아 둘 곳이 없었다. 주님께서는 그의 무익한 생애를 단축하셨다. 주님께서는 많은 사람들을 그렇게 취급하실 것이다. 이 부패한 시대에 세속화되고 이기적으로 되지 않는 일은 얼마나 어려운가. 우리에게 모든 자비를 베푸신 이에게 배은 망덕하는 일이 얼마나 쉬운가. 부지런히 영혼을 보호하는 일에 경성과 많은 기도가 요구된다.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그 때가 언제인지 알지 못함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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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17 — 교회에 대한 증언

29 장 — 그리스도의 고난

구원의 가치를 온전히 깨닫기 위해서는 그것의 대가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대한 제한된 생각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중보의 위대한 사업을 과소 평가한다. 인간의 구원이라는 영광스런 계획은 하나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것이다. 이 거룩한 계획 속에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사랑이 놀랍게 나타나 있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을 선물로 내어 주신 행위 속에 나타난 사랑은 거룩한 천사들도 감탄한 것이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 구주는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의 본체의 형상이시다. 그분은 거룩한 위엄을 지녔고 완전하고 빼어난 분이시다. 그분은 하나님과 동등하셨다.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 기를 “기뻐하심이라.”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그리스도께서는 죄인 대신 죽기를 동의하셨으며, 사람은 순종의 생애를 통하여 하나님의 율법의 형벌을 벗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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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무효화 시키지 않았으며, 율법을 파괴하지도 않았고, 그 거룩한 요구를 약하게 하지도 않았으며, 그 신성한 가치를 손상시키지도 않았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죄인을 벌하시는 하나님의 율법의 정당성을 선포하였다. 그런 맥락에서 그분은 타락한 인간을 그 저주에서 구원하시려고 그 자신이 율법의 형벌을 당할 것에 동의하셨다.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십자가에서 죽은 것은 하나님의 법의 불변성을 나타낸다. 그분의 죽음은 율법을 중하게 하며 귀하게 하며, 율법은 불변하는 것이라고 인류에게 증거한다. 그분의 입술에서 나온 말씀은 이러하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율법의 요구를 정당화시켰다.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과 하나님은 연합된다. 그분의 사명은 하나님과 사람을 화목케 하고 유한과 무한을 연합시키는 것이었다. 이것이야말로 타락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신의 성품에 참여하게끔 높여질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인간이 되시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인간의 시련과 슬픔과, 또 인간이 당하게 되는 모든 시험을 이해할 수 있는 상황에 처하게 되었다. 죄가 무엇인지 모르는 천사들은 특정한 시련 속에서 인간이 당하는 바를 공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셔서 내려오시고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신 것은 시험받는 모든 자를 어떻게 구할 것인지를 알기 위함이었다. 그분이 인간이셨을 때에 그분은 아버지의 힘이 필요함을 느꼈다. 그분께서는 기도 장소를 찾으셨다. 그분은 산 속에서 홀로 아버지와 교통하는 것을 사랑하셨다. 이런 생활을 통해 그분의 거룩한 영혼은 그날의 의무와 시련을 위해 힘을 얻었다. 우리의 구주는 우리의 궁핍과 연약함에 하나가 되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의무와 시련을 위해 무장된 모습으로 힘차고 신선하게 나아갈 수 있도록 당신의 아버지께로부터 새 힘을 구하는 자로서 간구자가 되셨고, 밤에는 탄원자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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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분은 매사에 있어서 우리의 모본이시다. 그분은 우리와 같이 연약하신 형제이시다. 그러나 같은 성정을 갖지는 않으셨다. 흠없는 분으로서 그분의 본성은 악과 상관이 없었다. 그분은 죄악 세상에서 영혼의 투쟁과 고통을 견뎌 내셨다. 그가 인간이셨으므로 기도가 필요하였고, 그 기도는 특권이 되었다. 인간의 유익을 위하여 하늘의 희락을 버리고 냉랭하고 배은 망덕한 세상에서 살 것을 택하신 그분께, 아버지께서 나누어 주시려고 예비하신 그 강하고 거룩한 모든 뒷받침과 위안을 그분은 기도로 요구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아버지와 교통하는 가운데 위안과 기쁨을 발견하셨다. 여기서 그분은 그의 마음을 쪼개는 슬픔을 덜어 놓으실 수 있었다. 그분은 슬픔의 사람이셨고, 비애를 맛보셨다. 낮 동안에는 인간을 멸망에서 구원하시려고 타인에게 열심히 선을 행하셨다. 병자를 고치고, 애통하는 자를 위로하고, 실망한 자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셨다. 죽은 자를 살리셨다. 낮의 일이 끝나면 밤마다 도시의 소란을 피하여 나아갔고, 한적한 숲속에서 엎드려 아버지께 간구하셨다. 때때로 엎드린 모습 위에 환한 달빛이 비취었다. 그리고 구름과 흑암이 모든 빛을 가려 버렸다. 간구하는 동안에 밤의 이슬과 서리가 그의 머리와 수염에 붙었다. 그분은 자주 철야하며 간구하셨다.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시다. 만일 우리가 이것을 기억할 수 있다면, 그분을 본받을 수 있다면,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훨씬 더 강해질 수 있다. 만일 인간의 구주께서 신적 능력을 소유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기도의 필요를 느꼈다면, 연약하고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우리들은 얼마나 더 열렬하고 끊임없는 기도의 필요를 절실히 느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께서 가장 심한 시험에 봉착하셨을 때에 그분은 금식하셨다. 그분은 하나님께 자신을 의탁하고 열렬한 기도와 아버지의 뜻에 온전히 굴복함으로 승리자가 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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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하는 어떤 다른 부류의 사람들보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의 위대하신 모본을 따라야 한다.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우리의 식탁에는 건강 식품도 아니며 필요치도 않는 값비싼 음식이 자주 놓인다. 이는 우리가 자기 부정과, 질병 없는 몸과, 건전한 마음보다도 이런 것들을 더 사랑하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열렬히 능력을 구하셨다. 하나님의 거룩한 아들께서는 이것을 가장 잘 차려진 식탁에 앉는 것보다 더 낫게 여기셨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악의 세력과 싸우고, 우리에게 할당된 일을 하는 힘을 얻기 위하여 기도가 필수적임을 보여 주는 증거를 주셨다. 우리의 힘은 연약할 뿐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힘은 강하며, 그것을 얻는 모든 사람은 넉넉히 이길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엎드려 기도하실 때에, 그분의 영의 고뇌는 땀구멍을 통해 땀이 핏방울처럼 빠져 나가도록 밀어내었다. 여기에서 그분은 엄청난 흑암의 두려움에 둘려 있었다. 세상의 죄가 그분의 위에 있었다. 그분은 아버지의 율법의 범죄자로서 인간 대신 고통을 당하고 계셨다. 여기가 바로 시험의 현장이었다. 하나님의 거룩한 빛이 그분의 시야에서 물러가고 그분은 흑암의 권세 속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영혼의 고뇌 속에 그분은 찬 땅에 엎드리셨다. 그분은 아버지의 엄한 시선을 깨달으셨다. 그분은 죄인의 입술에 있는 고통의 잔을 취하여 마시고 그 대신 축복의 잔을 주시려고 마음을 정하셨다. 인간 위에 떨어지기로 되어 있던 진노가 그리스도 위에 내리고 있었다. 그 신비의 잔이 그의 손에서 떨린 것은 바로 이 곳이었다. 예수께서는 자주 명상과 기도를 위해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로 가셨다. 그들은 모두 이 거룩하고 깊숙한 장소를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유다도 폭도들을 어디로 인도해야 예수를 그들의 손에 넘겨 줄 수 있을지를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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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그토록 슬픔에 가득 차서 그 곳을 찾은 적이 없었다. 하나님의 아들을 움츠리게 하고 그의 제자들 앞에서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는 말씀이 떨린 음성으로 나오게 된 것은 신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었다. 그분은 제자들을 그분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거리에 두시고, 조금 더 나아가사 땅에 얼굴을 대시고 기도하셨다. 그의 영혼은 고뇌하였다. 그분은 간구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상실된 세상의 죄가 그분 위에 있었고, 그것은 그분을 압도하였다. 그분의 마음을 그토록 날카로운 고뇌로 찢고 이마에서 핏방울 같은 땀이 흘러 창백한 뺨을 타고 흘러 땅에 떨어져서 대지에 스민 것은 죄의 결과에 대한 아버지의 엄한 시선을 의식하셨기 때문이었다. 엎드렸던 곳에서 일어나사 제자들에게 오시니 그들은 자고 있었다. 베드로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와 함께 한 시 동안도 이렇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가장 중요한 시간에 예수께서 특별히 깨어 있으라는 부탁을 한 그 시간에 제자들은 자고 있었다. 그분은 심한 투쟁과 무서운 시험이 앞에 놓인 것을 아셨다. 그분께서는 그들이 힘이 될까 하여 그들을 데리고 가셨던 것이다. 그 밤의 사건을 그들이 목도하고, 그들이 얻은 교훈이 그들의 기억 가운데서 생생하게 남도록 하시기 위해서 그들을 데리고 가셨다. 그들의 믿음이 실패하지 않고, 그들 앞에 있는 시험을 위해 강하게 되기 위해서 이 일은 필요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깨어 있지 않고 그 대신에 슬픔에 빠져 잠들어 있었다. 그 열렬한 베드로, 몇 시간 전만 해도 주님을 위해서 죽기까지라도 고통을 당하겠다고 한 그도 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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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큰 위기의 시간에, 하나님의 아들이 그들의 동정과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기도가 필요한 때에 그들은 잠들어 있었다. 그들은 잠을 자므로 많은 것을 잃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들이 곧 닥칠 심한 믿음의 시험을 위해 그들을 강인하게 하려고 계획하셨다. 그들이 그 슬픈 시간에 사랑하는 구주와 함께 기도하며 깨어 있었더라면 베드로는 시련의 때에 구주를 부인하는 자신의 연약함 속에 그대로 머물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께서는 두번째 나아가사 기도하셨다.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다시 제자들에게 오시니 또 자고 있었다. 그들의 눈이 무거웠다. 이 잠자는 제자들은 하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에 잠자는 교회들을 나타낸다. 구름과 칠흑같은 흑암이 둘려 있는 때에 잠자는 것은 가장 위험한 것이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런 경고를 주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하나님의 교회는 아무리 위험하고, 그 기간이 길든지 짧든지 야경의 의무를 수행해야 한다. 슬프다고 해도 경계를 소홀히 할 구실이 되지는 못한다. 환난이 온다고 부주의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두배로 경성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모본을 통하여 궁핍과 고민과 위험의 때에 교회가 그 능력의 근원으로 나아가도록 하셨다. 경성하는 자세는 참으로 교회를 하나님의 백성으로 꼴 짓는 것이다. 이 모습으로 기다리는 자들은 세상과 구별됨을 나타내고 그들이 세상에서 순례자와 나그네임을 보여 준다. 구주께서는 슬픈 마음으로 잠든 제자들을 등지고 세번째 같은 기도를 하셨다. 그리고 다시 돌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웠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우느니라.” 그들의 거룩한 주님께서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뇌를 겪고 있는 동안 제자들은 졸린다고 눈을 감고, 잠에 사로잡히다니 얼마나 매정한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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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깨어 있었다면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는 하나님의 아들을 볼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상실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 중요한 밤 시간은 고상한 정신적 투쟁과 기도로 보내는 시간이어야 했다. 그런 시간은 하나님의 아들의 말할 수 없는 고뇌를 증거할 힘을 주었을 것이다. 그랬더라면 그들이 십자가 위에서 그분이 고통당하는 것을 볼 때에 그분이 겟세마네 동산에서 겪어야 했던 그 힘겨운 고뇌의 본질에 대해서 무엇인가를 깨닫도록 준비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과 부활에 관해서 말씀하신 것을 더 잘 기억할 수 있었을 것이며, 그 무섭고 고통스럽고 어두운 시간 속에서 희망의 빛줄기가 어두움을 환히 밝히고 그들의 믿음을 지탱하였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런 일이 일어날 것에 대하여 미리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그분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그분의 고난의 장면은 그 제자들에게는 불같은 시련이었으며, 경성과 기도가 필요한 곳이었다. 그들이 흑암의 세력이 승리하는 것을 그들이 경험하게 될 때 그들의 믿음은 보이지 아니하는 힘에 의해 지탱될 필요가 있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받는 아들이 인간의 죄를 지신 결과로 아버지와 분리됨을 깨달으실때에 겪었던 말할 수 없는 고뇌에 관해서 너무 모른다. 그분께서는 타락한 인류를 위해서 죄가 되셨다. 아버지의 사랑이 떠나갔다는 생각은 그분을 내리 눌러서 그 고뇌에 찬 영혼은 다음과 같은 비탄의 말을 내었다.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고 나서는 아버지의 뜻에 전적으로 복종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나님의 아들은 기진맥진하여 죽게 되었다. 아버지께서는 한 사자를 보내시어 고통을 겪는 거룩한 자에게 힘을 돋구어 주며, 피로 얼룩진 길을 가는데 부축하도록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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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슬픔 가운데 아버지께서 그 품속의 사랑하는 아들로부터 빛과 사랑과 영광을 거두어 가시는 모습을 천군들이 지켜보며 놀랜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들이 비애를 금치 못한 것을 보았더라면 죄가 얼마나 그분께 거슬리는 것임을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정의의 검이 그분의 사랑받는 아들을 대적하여 깨었다. 그분은 입맞춤으로 원수의 손에 팔려갔고, 세상의 법정으로 바삐 끌려갔으며, 거기서 죄 많은 인간에 의하여 조롱받고 사형 선고를 받게 되었다. 거기서 하나님의 영광스런 아들께서는 “우리의 허물을 인하여 찔림을 받고 우리의 죄악을 인하여 상하셨다.” 그분은 모욕과 조롱과 수치를 당하셔서 “그 얼굴이 타인보다 상하였고 그 모양이 인생보다 상하였다.” 여기 나타난 사랑을 그 누가 이해할 수 있으랴! 천군은 놀람과 슬픔 속에서 하늘의 왕이셨고, 과거에 영광의 면류관을 쓰셨으나 지금은 가시관을 쓰시고 사단의 분노에 의해 거의 미친 정도로 분노한 폭도들의 희생이 되어 피를 흘리는 분을 바라보았다. 인내하시며 고통을 견디시는 구주를 보라! 그분의 머리 위에 가시관이 놓여 있다. 그분의 피는 끊어진 핏줄에서부터 흘러나온다. 이 모든 것이 죄의 결과가 아닌가! 구속하시는 영원한 사랑이 없었더라면 그리스도께서 어찌 존귀와 위엄을 버리시고 세상에 오셔서, 바로 그분이 구원하시려 오신 그 사람들에 의해 소홀히 여김을 받으시고, 멸시 받으시고, 거절을 당하시고 급기야는 십자가 위에서 고난을 당하게 되었을까! 그 사랑은 영원히 신비로 남게 될 것이다. 하늘아 경탄하라, 땅아 감탄하라. 보라 압제자와 압제당하는 자를! 큰 무리가 세상의 구주를 둘러싼다. 군중과 회중 속에 온갖 추잡한 욕설이 들린다. 악한들은 그분의 비천한 출생과 겸손한 생애를 말거리로 삼았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그분의 주장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 의해 조롱을 당하고, 입에서 입으로 추잡하고 모욕적인 조롱의 언사들이 건너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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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그의 종들의 마음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 일을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서 그는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시작해서 그들에게 종교적 열정을 불어넣었다. 그들은 가장 악하고 강퍅한 악한들을 움직이는 바로 그 사단의 영에 의해 움직였다. 위선적인 제사장들과 장로들로부터 가장 비열한 자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악한 일에 한가지로 잘 조화되었다. 하나님의 귀한 아들 그리스도는 끌려나가고 그 어깨 위에 십자가가 놓였다. 발자국마다 그 상처로부터 흘러내린 핏자국이 남았다. 독한 원수들과 무정한 관중에 둘러싸여 그분께서는 십자가의 형장으로 이끌려 가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슬픔에 찬 그분의 제자들은 살인자들의 무리 뒤에 멀찍이 따라왔다. 그분은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하늘과 땅 사이에 매달리셨다.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이 범죄자 중 하나로 고난을 당하는 모습은 그들의 마음을 고뇌로 찢어지게 하셨다. 십자가 가까이에는 맹목적이고 완고하고 믿음없는 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고함지르고, 조롱하고, 희롱하고 있었다.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장로들과 함께 희롱하여 가로되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저가 하나님을 신뢰하니 하나님이 저를 기뻐하시면 이제 구원하실지라 제 말이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하였도다.” 이 모든 말에 대하여 예수께서는 한마디 대꾸도 않으셨다. 그 손에 못이 박히고 고뇌의 땀방울이 스며 나갈 때에 창백하고 떨리는 입술로 무죄한 주님은 살인자들을 위한 사랑과 용서의 기도를 하셨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희의 하는 일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교회증언 2권 pp. 199-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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