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2 189-198 (90일)

그 일은 찌꺼기를 제거하고, 그녀를 더욱 영적으로 만들어서 하나님께로 더욱 가까이 이르게 해야 한다. 그녀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은 마땅히 죽어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는 마음은 극복되어야 하며 그녀의 뜻은 하나님의 뜻 가운데 삼킨 바 되어야 한다. 나는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이 너무 커서 예수님을 교회 밖으로 내몰아 버린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변화를 바라신다. 그분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기를 요구하신다. 신앙적인 주제에 마음을 바치지 않으면, 이 방향으로는 연약하고 나약해질 것이다. 반면 세상 일에 몰두하면 그것은 강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 마음이 이 방면으로 발달하였고 계속 그 방향으로 마음을 쓰므로 강인해졌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신앙 생애를 사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이유는 그들이 성결을 구하는 데 마음을 쓰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은 정반대 방향으로 훈련되고 말았다. 마음을 영적 지식을 얻는 일과 경건의 비밀을 이해하는 일에 계속 쓰지 않으면 그 방향으로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영원한 사물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 이것이 바로 거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을 섬기는 일이 힘든 일이라고 생각하는 까닭이다. 마음이 갈라져서 주로 세상 사물에 빠져버리고 하나님의 것에는 거의 관여치 않게 될 때에 영적인 힘은 특별히 자라지 않는다. 세상 일이 마음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그 능력을 그리로 쏟게 한다. 그리하여 이 방향으로 흥미와 애착을 더 갖게 하는 힘과 능력을 빨아들인다. 그러므로 하나님 쪽으로 가야 할 것은 적어지고 만다. 기도를 통하여 마음을 쓰지 않으면 영혼이 잘될 수가 없다. 가정 기도나 공중 기도로는 불충분하다. 은밀한 기도가 매우 중요하다. 홀로 있을 때에 영혼을 하나님의 감찰하시는 눈길 앞에 있는 그대로 펴놓이고 모든 동기는 점검된다. 은밀한 기도! 얼마나 귀한가! 하나님과 교통하는 영혼! 은밀한 기도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만 들리게 해야 한다. 그러한 탄원의 소리를 호기심 많은 사람이 들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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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한 기도를 통하여 영혼은 주위의 영향과 흥분으로부터 자유롭다. 고요히, 그리고 열렬하게 그 기도는 하나님께 나아갈 것이다. 은밀한 기도는 큰소리를 냄으로 자주 상하게 되고 달콤한 맛을 잃는다. 하나님께 대한 조용하고 침착한 믿음과 신뢰 대신에, 영혼이 낮고 겸손한 음조를 내는 대신에, 목청을 돋구며, 흥분을 장려하게 되면 은밀한 기도는 부드럽게 하는 거룩한 감화력을 잃는다. 감정의 폭풍우와, 억수 같은 말은 은밀하고 참되며 감동적인 기도 시간을 통해 영혼에게 속삭이시는 잔잔하고 작은 음성을 알아듣지 못하게 한다. 은밀한 기도를 제대로 하면 참 좋은 열매를 많이 얻는다. 그러나 가족 전체나 이웃에게 들리도록 하는 기도는 은밀한 기도가 아니다. 은밀한 기도라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렇게 하여서는 거룩한 힘을 얻을 수가 없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그분께로부터 나오는 감화력은 달콤하며 지속적인 것이다. 그분의 귀는 마음에서부터 우러나오는 기도를 듣기 위해 열려져 있다. 은은하고 단순한 믿음으로 영혼은 하나님과 교통하며 사단의 투쟁을 견디기 위해서 영혼을 강인하게 하며 견고케 하기 위해 거룩한 빛을 모아 들인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한 성채이시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그가 홀연히 와서 너희의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 깨어 있으라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하시니라.” 새벽을 밝히시러 오는 분이 홀연히 오셔서 우리의 자는 것을 보시지 않게 하려고 우리는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다. 어느 때를 이야기하고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하늘 구름 가운데 나타나서 잠자는 사람을 발견하시는 때가 아니다. 하늘 성소의 지성소의 봉사를 마치고 돌아오실 때, 즉 그분께서 제사장의 예복을 벗으시고 복음의 옷으로 갈아 입으신 후에 다음과 같은 명령을 말하실 때를 말씀하는 것이다.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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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께서 인간을 위해 탄원하기를 그치실 때에 만민의 운명은 영원히 결정된다. 이 때는 그분의 종들과 회계하는 시간이다. 정결과 성결의 준비를 게을리한 사람들에게 태양은 암담함과 흑암 속으로 기울고 다시뜨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준비하여 기다리는 사람들은 주님을 환영하게 될 것이다. 은혜의 기간이 끝난다.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중보가 그친다. 이 때는 만민에게 홀연히 임한다.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성결케 하는 일에 게을리한 사람들은 잠자는 것으로 밝혀질 것이다. 그들은 기다리고 깨어 있는 데 지쳤다. 그리하여 그들은 주인이 오는 것에 대해 무관심해졌다. 그들은 그분의 출현을 갈망하지 않았으며, 그렇게 지속적으로 끈기 있는 경성이 필요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의 기대는 어그러졌으며, 다시 그렇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깨어날 시간이 충분히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들은 세상 보물을 얻는 기회를 결코 잃지 않으려고 하였다. 그들이 할 수 있는 한 세상에서 모든 것을 얻는 것이 안전하였다. 이 목표를 따르다 보니 그들은 주인의 돌아옴에 대해 걱정도 안하고 흥미도 잃게 되었다. 그들은 무관심하고 부주의하게 되었다. 주인이 오려면 아직 멀었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의 관심이 세상적 이익 속에 파묻힌 동안 하늘 성소에서는 일이 끝났고, 그들은 전혀 예비하지 못한 자들이 되었다. 그러한 자들이 하늘 성소에서의 그리스도의 사업이 곧 끝날 것을 알았더라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였으며, 얼마나 열렬히 깨어 준비하였겠는가! 주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내다보시고 시효 적절한 경고 속에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셨다. 그분께서는 그분의 오심이 갑작스러움을 분명히 밝히셨다. 그분께서는 시간을 말씀하지 않으신다.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준비를 소홀히 하지 않도록, 나태한 마음으로 그분이 올 시간을 내다보고 준비를 연기하지 않도록 하신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너희가 때를 알지 못함이라.” 그러나 불확실한 때의 예언도, 마지막 때의 홀연히 임함도 우리의 어리석음을 깨우쳐 열렬히 기다리게 하지 못하고, 우리의 고대하는 주님을 향한 경각심을 자극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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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고 깨어 있는 자가 아님이 판명될 때에 그들은 그들의 신실하지 못함에 대해 결국 놀라움을 금치 못하게 될 것이다. 주님이 오시면 그들은 그분을 즉시 맞이하기 위해 준비되어 있는 대신에 세상의 깊은 잠에 빠져서 결국 잃어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조금 전에 언급한 무리와 대조를 이루는 무리가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깨어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의 눈은 하늘을 향했고 주님의 말씀이 그들의 입에 있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이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니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집 주인이 언제 올는지 혹 저물 때엘는지, 밤중엘는지, 닭 울 때엘는지, 새벽엘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주께서는 아침이 완전히 밝아오기 전에 지체할 것을 암시하신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피곤해지거나 열렬한 각성을 늦추게 하지 않으시는데 왜냐하면 아침은 그들이 기대하는 것처럼 곧 밝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자들은 하늘을 바라보는 자로 내 앞에 제시되었다. 그들은 다음과 같은 말을 되풀이함으로 서로를 격려하였다. “일경과 이경이 지났다. 지금은 삼경에 주님의 오심을 기다리며 깨어 있다. 조금만 더 깨어 있으면 된다.” 나는 어떤 이들이 피곤하게 된 것을 보았다. 그들의 눈이 아래로 향하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의 사물에 집착하게 되고 깨어 있는 일에 불충성하게 되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일경에 우리 주님을 기다렸으나 우리는 실망하였다. 우리는 이경에는 그분이 확실히 오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그 시간이 지나도 그분은 오시지 않았다. 우리는 또 실망을 당할 것이다. 우리는 너무 세심할 필요가 없다. 그분께서 다음 시간에도 오시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는 삼경에 이르렀다. 지금이야말로 세상에서 재물을 모을 때이다. 그래야 궁핍하지 않을 것이 아닌가.” 많은 이들이 이생의 염려에 의해서 멍해지고 재물에 의해 기만을 당하여 깨어 기다리는 위치에서 떠나 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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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지만 신실하게 깨어 기다리는 자들을 주시하기 위해서 큰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는 천사들이 내게 보였다. 그들도 너무 시련을 받지 않도록 하며, 그들의 형제들이 깨어 기다리는 일에서 이탈하여서 세상의 염려로 취하고 세상의 번영에 의해 눈멀게 됨으로 인해 이중으로 심하게 된 고생과 난관에 의해 좌절하지 않도록 보살피고 있다. 이 하늘 천사들은 한때 깨어 기다렸던 사람들이 그들의 나태와 불신실로 인해 깨어 기다리는 일을 고수하려고 끈질기게 노력하고 열렬히 애쓰는 사람들의 시련과 부담을 크게 늘였다는 점에 대해 몹시 섭섭해한다. 나는 세상의 근심에 씌여 있는 애착과 관심을 가지고 있으며, 세상의 재물을 늘여 가면서 우리는 구주께서 명령하신 깨어 기다리는 위치를 지키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보았다. 천사는 말하였다. “그들은 세상하나만 얻을 수 있다. 하늘 보화를 얻으려는 그들은 세상의 것을 희생해야 한다. 그들은 두 세계를 다 얻을 수 없다.” 나는 사단의 속이는 덫을 빠져나오기 위해서 깨어 기다리는 일에 신실한 것이 얼마나 필요한지 알게 되었다. 그는 깨어 기다려야 할 사람들을 세상을 향해 한 발 전진하도록 유도하라. 그들은 앞으로 전진할 의향은 없지만 그 한 발을 뗀 만큼 예수께로부터 멀어지는 것이다. 그러면 다음 발을 떼기가 쉬워진다. 그리하여 한발 한발 세상을 향해 가게 된다. 결국은 그들과 세상의 차이는 신앙 고백 즉 명목만 남게 된다. 그들은 그들의 거룩하며 고유한 성격을 잃어버리고, 결국에는 그들과 그들 주위에 있는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차이점이라는 것은 그들이 신앙을 가졌다고 주장하는 점밖에 없을 것이다. 과거에 삼경 사경이 여러 번 지나갔다. 그렇다고 해서 경성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아, 아니다! 끊임없는 경성이 더 많이 필요된다. 왜냐하면 지금은 일경이 지나기 전보다 훨씬 시간이 적게 남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처음보다 기다리는 기간이 틀림없이 줄어들었다. 만일 그 때에 우리가 물러서지 않는 태도로 깨어 있었다면 이경에는 두 배로 경성함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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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이 지나갔기 때문에 우리는 삼경에 이르렀다. 지금 우리가 경성함을 조금 늦춘다는 구실은 있을 수 없다. 삼경은 세배의 열성을 요구한다. 못 참는 것은 여태까지의 우리의 모든 열렬하고 끈질긴 경성을 무효화시키는 것이다. 어두움의 긴 밤은 괴롭히는 것이지만, 자비 때문에 아침이 연기되었다. 왜냐하면 주인이 오신다면 준비되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백성이 망하는 것을 원치 않으시는 그분의 뜻 때문에 이토록 오래 지체되는 것이다. 그러나 신실한 자들에게 오는 아침과, 불신실한 자들에게 다가오는 밤은 거의 다 이르렀다. 깨어 기다림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고유한 특성 곧 세상과 분리된 것을 나타내야 한다. 우리가 깨어 있는 것을 통해 우리는 세상에서 참으로 순례자며 나그네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차이는 너무 명백하기 때문에 잘못 알아볼 도리가 없다. 세상 사람들은 세상의 보화를 얻기 위해 열성을 내고 야망을 품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을 본받지 않고 그들의 깨어 기다리는 열렬한 모습으로 그들이 변화를 받은 사실을 보여 준다. 그들의 집은 이 세상에 있지 않고, 그들은 더 나은 나라 곧 천국을 찾는 자임을 보여 준다. 나의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여 이 말의 의미를 온전히 간파하지 않고 그냥 지나치지 않기를 바란다. 갈릴리 사람들이 가능하다면 승천하시는 구주의 모습을 놓치지 않으려고 단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을 때에 구주의 떠나심을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위로하라고 보내심을 입은 흰옷을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 서서 물었다.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이 하늘을 향해 시선을 고정시키며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런 재림을 고대하기를 바라신다. 세상 사람들의 관심이 잡다한 일에 쏠리지만 우리의 관심은 하늘에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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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믿음은 하늘 보화의 영광스런 신비를 향해 계속 치달아야 하고 하늘 성소로부터 나오는 귀하고 거룩한 빛이 마치 예수님의 얼굴에 비추이듯 우리의 마음에서도 빛나도록 해야 한다. 기롱하는 자들은 깨어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너희들은 실망을 당하지 않았느냐. 자, 이제 우리와 같이 살자. 그러면 세상적으로 번영할 수 있다. 이익을 얻고, 돈을 모으고 세상에서 이름을 날리자.” 기다리는 사람들은 위를 쳐다보면서 대답한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고 있다.” 세상의 쾌락과 세상의 명예와 재리의 유혹에서부터 돌이켜 그들은 그 위치에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바라봄으로 강해진다. 그들은 게으름과 이기심과 안락을 사랑하는 정신을 극복한다. 고난의 불이 당겨질 때 기다리는 시간은 더 길게 느껴진다. 때때로 그들은 슬퍼하고, 그리하여 믿음은 흔들린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정신을 집중한다. 공포와 의심을 극복한다. 그들은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며 대적들에게 말한다. “나는 깨어 기다리노라. 나는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노라. 나는 환난과 고난과 곤핍 중에서라도 기뻐하리라.” 주님의 소원은 우리가 깨어 있어 그분이 오셔서 두드릴 때에 즉시로 문을 열어드리는 것이다. 깨어 기다린 종들에게 축복이 선언된다.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이 마지막때에 우리 가운데 누가 주님께로부터 특별한 영예를 얻겠는가? 깨어있으라. 깨어라. 깨어라. 거의 모두가 깨어 기다리기를 멈추었다. 우리는 그분이 오실 때 곧 열어줄 준비가 되지 않았다. 세상에 대한 사랑이 우리의 생각을 너무 꽉 잡아서 우리는 눈을 위로 향하지 못하고 땅으로 향하였다. 우리는 열성과 진지함으로 다른 일들에 종사하느라 분주하다. 하나님은 잊어버린바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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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늘 보화는 소중히 취급되지 않는다. 우리는 깨어 기다리지 않는다. 세상 애착과 재리의 유혹이 우리의 믿음을 갉아 먹었다. 우리는 구주의 재림을 고대하지도, 사랑하지도 않는다. 우리는 자신을 돌아보는 일에만 열중하고 있다. 우리는 불안하며, 하나님께 대한 굳센 신뢰가 너무 부족하다. 많은 사람들은 곤핍을 당할까 겁이 나서 걱정하며, 온갖 머리를 짜내어 계획하고 일한다. 그들은 기도하거나 예배 시간에 참여하거나 할 시간이 없다. 너무 자신을 돌보는 나머지 그들은 하나님께 그들을 돌보실 기회를 전혀 드리지 않는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무엇을 하실 수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 전혀 기회를 드리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은 자신을 위해서 너무 일을 많이 하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일은 너무 적게 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자고 있는 것을 보시지 않도록, 깨어 기다리라는 명령을 부여받은 백성들은 세상 애착에 무섭게 빠져 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나는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하는 사람들이 깨어 기다리지 않는 것을 보게 되었다. 그들은 재물을 늘여 가며, 세상에 보물을 쌓고 있다. 그들은 세상 것에는 부해지지만 하나님께는 부요치 않다. 그들은 시간이 촉박함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운 것과 그리스도가 문앞에 당도한 것을 믿지 않는다. 그들은 큰 믿음을 말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자기 영혼을 속이고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참으로 마음 속에 가진 믿음에 따라서 행동하기 때문이다. 그들의 행동이 그들의 믿음의 성격을 나타내고 이웃에게 그리스도의 오심이 이 세대 안에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증거한다. 그들의 행위는 그들의 믿음에 따를 뿐이다. 그들은 세상에 남아 있을 준비만 한다. 그들은 가옥에 가옥을, 전토에 전토를 더하며, 그들은 이 세상의 시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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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는 가련한 나사로의 상태가 오히려 이 증언하는 사람들의 상태보다 낫다. 그들이 참된 믿음을 가졌다면, 이 땅에서 보화를 쌓는 대신에 그들은 팔아 치울 것이며 세상의 걸리는 것들로부터 자유롭게 되며, 그들의 보화를 하늘로 옮길 것이다. 그러면 그들의 관심과 마음은 그 곳에 있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사람의 마음은 최상의 보물이 있는 곳에 가 있기 때문이다.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들이 가장 귀하게 여기는 것이 이 세상에 있음을 은연 중에 나타내고 있다. 이것 때문에 그들은 걱정과 근심과 수고에 빠져 있다. 재산을 유지하고 늘여 가는 것이 그들의 필생의 연구 과제이다. 그들은 하늘로 너무 적게 전이되었으며, 하늘 보물에는 거의 투자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들의 마음은 더 나은 본향을 향해 별로 끌리지 않았다. 그들은 이 지상의 사업에 엄청난 투자를 감행하였다. 그리고 이 투자는 자석과 같이 하늘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부터 땅의 썩어 없어질 것으로 그들의 마음을 끌어내린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많은 사람들은 철끈으로 묶인 것처럼 이기심에 둘려 있다. 그것은 “나의 농장”, “나의 물건”, “나의 사업”, “나의 상품” 이다. 어려운 사람들의 부탁도 무시된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며 사모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자기밖에 모른다. 고상하고, 거룩한 것과 그들은 분리되었다. 세상 애착과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에 너무 빠져서 그들은 눈이 멀게 되었다. 그들은 세상에 의해 부패하였지만 그 사실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말한다. 그러나 그들의 열매는 그들의 말처럼 사랑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들은 십일조와 헌물을 도적질한다. 시들 것이라는 하나님의 저주가 그들 위에 임한다. 그들의 가는 길 사방에서 진리의 빛은 비취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가족을 구원하는 일을 훌륭하게 하셨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보여 주신 자비에 감사하여 그분께 바치는 헌물은 도대체 어디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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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 중 많은 이들은 짐승처럼 배은 망덕하다. 인간을 위한 희생은 무한하며, 가장 뛰어난 지성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인데, 이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이루어진 하늘의 혜택에 참여한 자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너무 이기적이어서 하나님을 위해 아무런 희생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 세상, 세상에 있다. 시편 49편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자기의 재물을 의지하고 풍부함으로 자긍하는 자는 아무도 결코 그 형제를 구속하지 못하며 저를 위하여 하나님께 속전을 바치지도 못할 것은 저희 생명의 구속이 너무 귀하며 영영히 못할 것임이라.”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엄청난 희생을 모두가 마음에 간직한다면, 아니 어느 정도라도 깨닫는다면 그들은 두려움과 이 고도의 이기심을 가진 것에 대해 책망을 느끼게 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앞에는 불이 삼키고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여 이르시되 나의 성도를 네 앞에 모으라 곧 제사로 나와 언약한 자니라.” 이기심과 세상 애착 때문에 하나님은 망각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메마름을 느끼고 부르짖는다. “나는 쇠잔하였고 쇠잔하였도다.” 주님께서는 백성에게 스스로를 입증하고 그분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시험할 수단들을 내어 주셨다. 어떤 이들은 세상의 재물을 줄이고 희생으로 하나님과 언약을 맺기보다는 하늘 보화를 포기하고 그분을 떠나가시게 하였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희생을 요구하신다. 그러나 세상 애착이 그들의 귀를 막아 버렸고, 그들은 듣지 못하게 되었다. 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고대한다는 사람 중에 누가 자신의 풍요함을 희생해 가며 하나님께 헌물을 드리는 자원하는 심령을 가지고 있는지 찾아보았다. 나는 가난한 과부와 같이 궁핍한 중에 동전을 바치는 겸손하고 가난한 이들을 몇몇 볼 수 있었다. 그런 모든 예물은 하나님께 귀한 보물로 여겨진다.

교회증언 2권 pp. 189-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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