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7 79-88 (393일)

나는 또한, 병에 걸렸던 자들이 우리의 시골 위생병원들에서 건강을 회복받고 가정으로 돌아갈 때 그들이 산 실물교훈들이 될 것과 다른 많은 사람들이 그들에게 일어난 변화로 좋은 인상을 받게 될 것을 알게 되었다. 많은 환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이 도시에서 시골로 돌아와 도시 생활의 습관과 관습과 유행을 따르기를 거부할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시골 위생병원들 중 어느 하나에서 건강을 되찾고자 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비록 도시들로부터 20 내지 30 마일 옮겨갈지라도 우리는 사람들과 접촉할 수 있으며 건강을 바라는 자들은 가장 좋은 조건 아래서 그것을 되찾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과 협력하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이적을 베푸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노력이 하늘의 축복을 받아 성공으로 관 씌워지도록 현명한 길을 따르도록 하자.

왜 환자를 간호하는 법에 대한 지식을 얻고자 노력하고 있는 젊은 남녀들이 천연계의 놀라운 자원의 이점 (利点) 을 가장 자유롭게 소유하지 않는가? 왜 그들은 이 자원들의 가치와 용도에 대하여 가장 부지런하게 배우지 않는가?

위생병원들의 위치 선정에서 우리의 의사들은 목표에서 벗어나 있다. 그들은 천연계의 설비를 이용할 수 있는만큼 이용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위생병원 사업을 위하여 선택된 장소들이 아름답고, 환자들의 감각들을 즐겁게 하는 모든 것으로 둘러싸이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생명을 촉진시키는 햇빛과 신선한 공기의 힘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우리가 한 백성으로서 위생병원 사업에서 주님의 계획을 철저하게 따를 때, 천연계의 자원들이 올바로 식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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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밖으로

우리의 위생병원들의 위치 선정과 관련을 가져야 할 자들은 위생병원 사업의 성격과 목표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해야 한다. 그들은 사람에게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언제나 명심해야 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육체적 고통을 제거하기 위한 치료 활동을 하며, 다른편으로는 죄에 눌려 있는 영혼을 해방시키기 위한 복음 활동을 하고 있다. 이와같이 그들은 진정한 의료 선교사로 일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그들은 진리의 씨를 뿌려야 한다.

어떤 이기심도 어떤 개인적인 야망도 우리의 위생병원들의 위치 선정의 사업에 개입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어떻게 살며 어떻게 일해야 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 우리의 취향에 알맞는 장소들을 우리의 위생병원들을 위해 택하지 말고 우리의 사업에 가장 잘 맞는 장소들을 택하는 길을 그분에게서 배우자.

위생병원들의 위치 선정에 관한 우리의 계획에 있어서 변화의 필요를 깨닫지 못하므로 의료 선교 사업에서 우리가 큰 특권들을 상실했다는 빛이 내게 주어졌다. 이 기관들이 도시 밖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주님의 뜻이다. 그것들은 시골에, 할 수 있는대로 매력적인 환경에 세워져야 한다. 주님의 정원인 천연계 속에서 환자들은 그들 자신으로부터 주의를 돌이켜 그들의 생각을 하나님께로 올려보내는 무엇인가를 언제나 발견할 것이다.

나는 환자들이 도시들의 소란으로부터 떠나고, 전차들의 소음과 짐마차와 마차들의 끊임없이 왈각달각하는 소리로부터 떠나서 간호를 받아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다. 각 지역의 가정들로부터 우리의 위생병원들로 오는 사람들은 조용한 장소에 대해 감사할 것이다. 그리고 은퇴한 환자들의 경우에는 하나님의 영으로 더욱 쉽게 감화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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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 우리의 최초의 부모의 가정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우아한 관목들과 섬세한 꽃들은 눈을 돌릴 때마다 인사를 하였다. 동산에는 온갖 종류의 나무들이 있었는데, 그 중 많은 것들은 향기롭고 달콤한 열매들을 맺고 있었다. 그 나무가지들에서는 새들이 찬양의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아담과 하와는 흠없는 순결을 간직한 채 에덴의 광경과 소리를 기뻐했다. 그리고 오늘날도, 비록 죄가 그 그림자를 지상에 던지고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자녀들이 당신의 손으로 된 업적에서 기쁨을 찾기를 바라신다. 우리의 위생병원들을 천연계의 경치 속에 위치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는 것이다. 그리고 이 계획을 더욱 철저히 따르면 따를수록 그분께서는 더욱 놀랍게 고통당하는 인류를 회복시키기 위해 일하실 것이다. 우리의 교육과 의료 기관들을 위해서는 대도시들을 덮고 있는 죄의 검은 구름으로부터 떠난 장소들이 선택되어 의의 태양이 “치료하는 광선” (말 4:2) 을 가지고 떠오를 수 있게 되어야 한다.

우리 사업의 지도자들은 위생병원들이 가장 쾌적한 환경 가운데, 곧 도시의 소란으로 방해받지 않는, 현명한 교훈으로 환자들의 사상이 하나님의 사상과 하나로 묶여질 수 있는 장소에 세워져야 한다는 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거듭거듭 나는 그런 장소들을 묘사해 왔다. 그러나 들을 수 있는 귀가 없었던 것처럼 보인다. 최근에 가장 분명하고 확신 있는 방법으로 우리의 기관들, 특별히 학교들과 위생병원들을 도시들 바깥에 설립하는 장점이 내게 제시되었다.

왜 우리의 의사들은 도시들 안에 위치를 정하고자 그처럼 열광적인가? 도시들의 공기 자체가 오염되어 있다. 극복해야 할 부자연한 식욕을 가진 환자들은 그 가운데서 적절하게 보호받을 수 없다. 독주 (毒酒) 의 희생자가 되어 있는 환자들에게는 도시의 술집들이 끊임없는 유혹물이다. 부정 (不淨) 으로 둘러싸인 곳에 우리의 위생병원들을 두면 환자들을 건강으로 회복시키기 위해 이루어진 노력에 역효과가 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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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래에는 도시 안에 있는 것들의 상태가 점점 더 못마땅하게 변해 갈 것이며, 도시 환경의 영향이 우리의 위생병원들이 해야 할 사업의 성취에 불리한 것임이 인정될 것이다.

건강의 관점에서 도시의 연기와 먼지는 매우 바람직하지 못하다. 그리고 시간의 대부분을 사방의 벽 안에 갇혀 있는 환자들은 때때로 그들이 방 안에 있는 죄수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들이 창문 밖을 내다볼 때 그들은 집, 집, 집들 외에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다. 이와 같이 그들의 방에 갇혀있는 자들은 그들의 고통과 슬픔을 골똘히 생각하게 된다. 때로는 병약자가 그 자신의 호흡으로 악화된다.

대도시 안에서 큰 의료 기관들을 세우면 그 밖에 다른 많은 해악들이 따른다.

왜 환자들이 옥외 생활에서 찾을 수 있는 건강 증진의 축복을 빼앗기는가? 나는 환자들이 그들의 방을 떠나서 바깥 공기 속에서 시간을 보내고, 꽃들을 재배하거나 다른 어떤 가볍고 유쾌한 일을 하도록 권유 받으면 그들의 마음이 자아에게서 떠나 더욱 건강을 증진시키는 무엇인가에 집중될 것이라는 교훈을 받았다. 바깥 공기 속에서의 운동은 유익하고, 생명 증진에 필요한 것으로 처방되어야 한다. 환자들이 옥외에서 더욱 오래 지낼 수 있으면 그들이 요구하는 간호는 더욱 적어질 것이다. 그들의 환경이 쾌적하면 할수록 그들은 더욱더 희망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을 아름다운 천연계의 사물로 둘러주라. 그들을 자라나는 꽃들을 보고 새들의 노래를 들을 수 있는 곳에 두므로 그들의 마음이 새들의 노래와 조화를 이루어 노래 부르게 하라. 그들을 방 안에 가두어 놓고 그 방들을 아무리 우아하게 꾸밀지라도, 그들은 안달하고 우울해질 것이다. 그들에게 옥외 생활의 축복을 주라. 그리하면 그들의 영혼은 향상될 것이다. 몸과 마음에 휴식이 찾아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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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밖으로” 가 나의 기별이다. 우리의 의사들은 오래 전에 이 점에 관하여 넓게 눈을 떴어야 했다. 나는 그들이 이제는 시골로 나가는 중요성에 대하여 각성할 것을 희망하고 믿는다.

대도시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때가 가깝다. 조금 있으면 이 도시들은 무섭게 흔들릴 것이다. 그들의 건물들이 아무리 크고 아무리 튼튼할지라도, 화재에 대한 안전책이 아무리 많이 갖추어졌을지라도 하나님이 그 건물들을 치시기만 하면 불과 몇 분이나 몇 시간 만에 그것들은 폐허가 된다.

이 세상의 죄 많은 도시들은 파괴의 빗자루로 쓸려져 버려야 한다. 오늘날 거대한 건물들과 도시들의 많은 부분에 내리고 있는 재난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에 무엇이 다가올 것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주고 계신다.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가까이 이른 줄을 알라” (마 24:32, 33).

벽돌과 석조 건물들은 위생병원으로는 가장 바람직하지 않다. 그것들은 일반적으로 차갑고 습기가 차기 때문이다. 벽돌 건물은 훨씬 더 매력적인 외관을 보여주며, 또 건물은 매력적이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널찍한 건물이 필요하다. 그리고 벽돌이 너무 비싸면 우리는 나무로 지어야 한다. 경제가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도덕적 포도원의 많은 분야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업의 큰 범위 때문에 이것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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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조 건물에서는 환자들이 화재로부터 안전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시골에 있고, 건물들이 함께 밀집되어 있는 도시에 있지 않으면 화재는 바깥에서가 아니고 안에서 일어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벽돌이 안전책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 목조 건물이 벽돌 건물보다 오히려 낫다는 것이 환자들에게 제시되어야 한다.

여러 해에 걸쳐 나는 우리의 사업을 도시들 안에 집중시키지 않아야 한다는 특별한 빛을 받아 왔다. 이런 도시들에 편만한 소란과 혼란, 노동 조합과 동맹 파업으로 초래되는 조건들은 우리의 사업에 큰 장애로 입증될 것이다. 사람들은 여러 가지 직업에 종사하는 자들을 어떤 특정한 조합에 예속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니며, 우리가 결코 인정해서는 안되는 어떤 세력에 의한 계획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고 있다. 악인들은 불에 태워지기 위해 단으로 스스로를 묶고 있다.

우리는 지금 우리에게 위탁된 모든 능력을 세상에 마지막 경고의 기별을 전하는 데 사용해야 한다. 이 사업에서 우리는 우리의 개성을 보존해야 한다. 우리는 비밀 단체나 노동 조합과 연합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자유롭게 서서, 교훈을 받기 위해 끊임없이 그리스도를 바라보아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위하여 이루어져야 할 사업의 중요성을 인식하면서 모든 행동을 해야 한다.

도시들은 혼란과 폭력과 범죄로 충만해질 것이며, 이런 일들은 이 지구 역사의 끝까지 증가될 것이라는 빛이 내게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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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에서

1901년 8월, 로스앤젤레스 장막회에 참석하고 있는 동안, 나는 밤의 이상에서 어떤 회의 장소에 있었다. 숙의되고 있는 문제는 남부 캘리포니아에 위생병원을 세우는 일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 위생병원이 로스앤젤레스 도시 안에 세워져야 한다고 주장하였고, 도시 밖에 그것을 세우는 것에 대한 반대 의견들도 제시되었다. 다른 사람들은 시골에 위치를 정하는 장점들에 대해 말했다.

우리 가운데는 이 문제를 매우 분명하고 가장 단순하게 제시한 한 분이 있었다. 그분은 위생병원을 도시의 지역 안에 세우면 잘못될 것임을 우리에게 말씀하였다. 위생병원은 많은 땅의 장점을 소유하므로 병약자들이 옥외의 공기 속에서 일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신경질적이고, 우울하고, 허약한 환자들에게는 옥외 활동이 매우 귀중하다. 그들은 돌볼 수 있는 화단들이 있어야 한다. 갈퀴와 괭이와 삽을 사용함으로써 그들은 그들의 질병들 중 많은 것으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게으름은 많은 질병의 원인이다.

바깥 공기 속에서의 생활은 몸과 마음에 좋다. 그것은 건강의 회복을 위한 하나님의 약이다. 깨끗한 공기, 좋은 물, 햇빛, 천연계의 아름다운 환경, 이런 것들은 천연의 방법대로 환자들을 건강으로 회복시키기 위한 그분의 수단들이다. 환자들에게는 햇빛 속이나 나무 그늘 아래 눕는 것이 은이나 금보다 더 귀중하다.

시골에서는 우리의 위생병원들이 꽃과 나무들, 과수원과 포도원으로 둘러싸일 수 있다. 여기에서 의사들과 간호사들은 천연계의 사물에서 하나님을 가리키는 교훈들을 끌어내기가 쉽다. 그들은 환자들에게 높은 나무들과 돋아나는 풀들과 아름다운 꽃들을 만든 손을 가지신 분을 가리키고, 몽울몽울 커가는 봉오리와 방싯방싯 피어나는 꽃들마다에서 당신의 자녀들에 대한 그분의 사랑의 표현을 보도록 그들을 격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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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위생병원들이, 일관되게 주장해 온 것처럼 도시에서 멀리 떨어져 세워져야 한다는 것이 하나님의 분명한 뜻이다. 이 기관들이 할 수 있는대로 조용하고 한적한 곳에 위치하므로 환자들에게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희생을 통하여 인류에게 회복될 우리의 최초의 부모의 에덴 가정에 관한 교훈을 줄 기회가 제공될 것이다.

환자들의 건강을 회복시키기 위한 노력에는 주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것들이 이용되어야 한다. 꽃들을 바라보고, 익은 열매들을 따고, 새들의 즐거운 노래를 듣는 것은 신경 조직을 특별히 유쾌하게 해 주는 효능이 있다. 옥외 생활에서 남녀들과 아이들은 순결하고 결백해지고 싶은 욕망을 얻는다. 활기롭게 하고, 되살아나게 하고, 생명을 증진시키는 천연계의 위대한 치료 자원들이 지닌 특성의 영향에 의하여 육체의 기능은 튼튼해지고, 지성은 일깨워지고, 상상력은 활기로워지고, 정신은 생기를 얻고,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의 아름다움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세심한 치료와 건전한 식사의 영향과 함께 이런 영향 아래 놓이게 되면 환자들이 건강을 발견한다. 힘없는 발길이 탄력을 회복한다. 눈빛은 생기를 되찾는다. 희망 없는 자들이 희망에 벅찬다. 한때 낙심어린 얼굴이 쾌활한 표정을 보인다. 불평하던 어조가 만족해 하는 어조로 바뀐다. 그 하나님은 우리의 피난처시요 힘이시니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라” (시 46:1) 는 말로 믿음을 나타낸다. 그리스도인의 흐리던 소망이 밝아진다. 믿음이 되살아난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 내 마음이 하나님 내 구주를 기뻐하였음은,” “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시 23:4;눅 1:46, 47;사 40:29). 이런 말들이 들린다. 이런 축복들을 주신 데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깨닫게 되면 마음이 활기로워진다. 하나님은 매우 가까이 계시면서 당신의 선물이 올바로 인정받는 것을 보기를 기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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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창조되었을 때는 거룩하고 아름다웠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매우 좋다고 선언하셨다. 모든 꽃과 모든 관목과 모든 나무들은 창조주의 목적에 응답했다. 눈길이 가는 모든 것은 아름다웠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이 채워졌다. 사람을 범죄하도록 유혹함으로써 사단은 인류에게로 흘러가는 하나님의 사랑의 물줄기를 중단시키고자 희망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기는커녕 그분의 업적은 하나님의 자비와 선하심에 대한 새롭고 더욱 깊은 표현을 깨닫게 하는 결과가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도시로 몰려와서 주택 단지들과 셋집에 함께 모이는 것이 그분의 목적이 아니었다. 태초에 그분께서는 우리의 첫 부모를 동산에 두셔서 아름다운 풍광과 매력적인 천연계의 음성 속에 있게 하셨는데, 그분은 이런 풍광과 음성을 오늘날 사람들이 즐기기를 바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래의 계획과 조화되게 더욱 가까이 가면 갈수록 건강의 회복과 보존을 위한 우리의 위치는 더욱더 유리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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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유한 자들 사이에서가 아님

우리의 위생병원들은 부유층의 사람들 사이에서 위치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며, 그렇게 하므로 우리 사업의 성격을 알리고 우리 기관들에 대한 후원을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생각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런 것에 대한 빛은 없다.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삼상 16:7).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마음을 보신다. 우리의 기관들 주위에 거대한 건물들이 적으면 적을수록 우리는 속상하는 일을 더 적게 경험할 것이다. 부유한 재산의 소유자들 중 대부분이 신앙심이 없고 불경건하다. 세속적인 생각이 그들의 마음에 차 있다. 세속적인 오락과 환락과 쾌락이 그들의 시간을 점유한다. 하늘의 사자들은 그들의 가정에서 환영을 받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이 멀리 떠나가 주기를 원한다. 겸손은 인류가 배우기 어려운 공과이다. 그것은 특별히 부자들과 방종하는 사람들이 배우기 어렵다. 그들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에 마치 하나님께 책임이 있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생각하지 않는 자들은, 마치 토지와 은행 주식에 의하여 측정된 부가 그들을 하나님과 상관없게 만드는 것처럼 스스로를 높이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 그들은 교만과 자부심으로 충만해져서 그들의 재산으로 측정된 평가로 자신들을 헤아린다.

하나님의 눈에 불성실한 청지기로 보이는 많은 부자들이 있다. 그들이 재물을 획득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그분은 도적질을 보셨다. 그들은 모든 것의 위대한 소유주를 등한히 하였고, 그들에게 맡겨진 재물을 고통당하는 자들과 압제받는 자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그들은 진노의 날에 대하여 스스로 진노를 쌓아왔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을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다. 자아가 그들의 우상이다. 그들은 공의와 자비를 마음에서 몰아내고 탐욕과 쟁투를 그 자리에 대신 놓는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이 일들을 인하여 벌하지 아니 하겠” (렘 9:9) 느냐고 말씀하신다.

교회증언 7권 pp. 7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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