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6 419-428 (380일)

현재 선교 사업이 서 있는 곳들에는 그것들을 세우고자, 극기와 희생, 엄청난 정력과 많은 기도가 드려졌다. 지금 무대에 올라간 사람들이 이 기별의 선구자들이 겪었던 힘들고 끔찍한 고생이나, 희생과 부지런함이 이제는 필요 없고, 시대가 변하였고, 현재는 하나님의 사업을 위한 자금이 많고, 그래서 이 기별의 초기에 많은 사람들이 당했던 힘겨운 상황을 겪을 필요가 없다고 느끼며, 무사 안일주의를 택할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초기와 같은 부지런함과 희생이 오늘날에도 나타난다면 현재 우리가 성취한 것보다는 백 배 이상이나 그 결과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업이 그것이 시작했던 높은 수준의 움직임으로 계속하자면 도덕적 능력이 떨어져서는 안 된다. 도덕적 힘을 새로이 하는 일이 계속되어야 한다. 현재 일꾼으로 일터에 들어오는 자들이 그들의 노력을 느슨하게 해도 되며, 극기와 시간과 금전의 절약이 필요 없다고 생각한다면 이 사업은 퇴보할 것이다. 현대의 일꾼들은 선구자들이 가졌던 같은 정도의 경건, 정력, 끈기를 가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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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이 확장되어 현재, 넓은 지역에 널려 있고 신자들의 수가 늘어났다. 그러나 아직도 큰 결핍이 있다. 왜냐하면 초기에 나타냈던 선교 정신이 지금까지 살아 있다면 더 큰 일을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이런 정신이 없다면 그 일꾼은 하나님의 사업을 손상하고 훼손할 뿐이다. 이 사업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대로 전진하기보다는 퇴보하고 있다. 현재 우리의 교인들과 우리의 일하는 정도는 초기의 것들과 비교되어야 한다. 우리는 모든 일꾼들이 당연히 해야 할대로 하나님께 영혼과 몸과 영을 바쳤다면 이루어졌을 일을 생각해야 한다.

우리의 교회들은 곧 추수할 희망을 안고 영적 경건의 일에 협력해야 할 것이다. 불신의 악한 마음 때문에 우리가 만나야 할 역경이 많을 것이고, 거룩한 계획과 헌신한 노력이 가로막히는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이 사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흙은 단단하다. 그러나 묵은 땅은 갈아엎어야 한다. 의의 씨앗이 심겨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교사들이여, 심은 대로 될 일을 될까 안될까 의심하면서 멈추지 말라. 낭패하지 말라. 실망하지 말라. 눈물을 흘리며 뿌리는 자들은 기쁨으로 거둘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고전 3:9). 그대들은 자신을 신뢰할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전에 없이 우리는 큰 수확을 위해 일꾼들이 일터로 나가도록 기도할 뿐만 아니라, 진리의 사자들이 오면 우리가 그 기별을 받아들이고 그 사자를 존경케 되도록 우리가 진리에 대하여 바른 이해를 가지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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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선교 사업

에베소 교회에서 온 경고

참된 증인은 에베소 교회에 말씀한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4, 5).

초창기의 에베소 교회의 경험은 어린 아이 같은 단순함과 열성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리스도를 위한 살아 있고, 열렬하며, 가슴 깊은 사랑이 표현되었다.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마음속에 지속적으로 임재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기뻐하였다. 하나님께 대한 찬양이 입술을 떠나지 않았으며, 그들의 감사의 태도는 하늘 가족의 감사와 일치하였다.

세상은 그들이 예수와 함께 지냈음을 인정하였다. 죄인들은 회개하고, 용서받고, 정결해지고, 거룩하여져서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 하나님과 함께 한 자들이 되었다. 신자들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결하기 위하여 열렬히 노력하였다. 구주에 대한 사랑에 가득 차서 그들은 영혼들을 그분께 인도하는 것을 최상의 목표로 삼았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혜의 귀한 보물을 긁어모으는 것을 생각지 않았다. 그들은 부름의 중요성을 느꼈고, 이 땅에는 평화, 사람들에게는 좋은 뜻인 그 기별의 중요성을 깨닫고 세상 끝까지 이 복된 기별을 전하고자 하는 열망으로 타올랐다.

교인들은 마음과 행동에 있어서 연합하였다.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이 그들을 묶는 금사슬이었다. 그들은 주님을 더 완전히 알기 위해서 계속 전진하였으며, 밝음과 위안과 평화가 그들의 생애에 나타났다. 그들은 고난중에 있는 고아들과 과부들을 돌보고, 세상에 물들지 않도록 자신을 지켰다. 그들의 생각에, 이렇게 하지 못하는 것은 그들의 신앙 고백과 배치되는 것이요, 구주를 부인하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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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도시들에서 사업은 진전되었다. 영혼들은 돌아왔고, 이번에는 그들이 측량할 수 없는 보화에 관하여 전하여야 한다는 것을 느꼈다.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비춘 빛이 남들에게 비췰 때까지 그냥 쉴 수 없었다. 수많은 불신자들이 기독교의 소망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따뜻하고, 감동적이며, 개인적인 호소들이 죄 많고, 잘못하는 사람들, 소외된 사람들, 진리를 믿노라고 하지만 하나님보다는 쾌락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해졌다.

그러나 얼마 후에 신자들의 열성과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시들기 시작했다. 냉담함이 교회로 잠입하였다. 차별이 생기고, 많은 이들이 그들의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기를 그쳤다. 진리를 충실히 실천함을 보고 깨닫고 회개할 많은 이들이 경고를 받지 못한 채 그대로 있다. 참된 증인에 의하여 에베소 교회에 이 기별이 전해진 것은 이 때였다. 영혼 구원에 대한 무관심은 그들이 첫사랑을 버렸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하나님을 온 마음과 정신과 영혼과 힘을 다하여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회개하고 첫 행위를 행하도록 호소하셨다. 그리하지 않으면 촛대가 그 자리에서 옮겨질 것이다.

에베소 교회의 이 경험이 이 세대의 교회 경험 속에 재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나님의 진리의 지식을 받아들인 오늘날의 교회가 이것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 교인들이 타락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말할 수 없는 자비를 처음 경험한 후 그들은 잠잠히 있을 수 없었다. 그들은 그들이 받은 축복을 남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에 하나님과 협력하고 싶어서 견딜 수 없었다. 그들이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은 계속해서 받게 되었다. 그들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지식 안에서 자라났다. 오늘날은 어떠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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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를 믿는다고 오랫동안 공언해 온 형제 자매들이여, 개인적으로 그대들에게 묻는다. 그대들의 실생활은 하늘이 주신 빛과 특권과 기회에 부합되는가? 이것은 심각한 질문이다. 의의 태양이 교회 위에 떠올랐다. 빛을 비추는 것이 교회의 의무이다. 진보를 이루는 것이 각 영혼의 특권이다. 그리스도와 연결된 사람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과 은혜 안에서 남녀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자랄 것이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들의 모든 재능과 기회를 활용하여 배우고 실행하는데 최선을 다했더라면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강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지-농부거나, 기술자거나, 교사거나 목사이거나 간에-그들이 온전히 하나님께 헌신하였더라면 그들은 하늘의 주인을 위하여 효능 있는 일꾼들이 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교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들” (고전 3:9) 이라는 이름을 듣기에 합당한 무슨 일을 하고 있는가? 영혼의 수고가 어디 있는가? 교인들이 신앙적 주제에 몰입하고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는 것을 어디에서 볼 수 있는가? 교회를 번창하게 하고, 깨어 있으며, 빛을 주는 백성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을 느끼는 기독교인들을 어디서 볼 수 있는가? 주인을 위한 사랑스런 수고를 아끼지 않고 재지 않는 사람들은 어디 있는가? 우리의 구주께서는 자신의 영혼의 수고를 보시고 만족을 얻으셔야 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라는 사람들은 어떠한가? 그들이 그들의 수고의 열매를 보았을 때 만족할 것인가?

이다지도 믿음이 적은 이유는 무엇이며, 영적 힘이 없는 이유는 무엇인가? 멍에를 지고 그리스도의 짐을 지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적은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위한 그들의 일을 떠맡도록 요청을 받아야 하는가? 구속의 신비를 벗길 사람들이 왜 그다지도 적은가? 왜 그리스도의 입혀 주신 의가 그분의 공언하는 제자들을 통하여 빛으로 세상에 비추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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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활동의 결과

사람이 하나님이 지시하시는 대로 능력을 사용한다면 그들의 재능은 증가할 것이며, 그들의 능력은 증대되고, 그들은 잃은 자를 구원하는 데 필요한 하늘의 지혜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교인들이 방황하고, 남들에게 전해 주어야 할 하나님이 주신 책임을 등한히 할 때, 그들은 어떻게 하늘의 보화를 받기를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공언하는 기독교인들이 흑암에 있는 자들을 비출 부담을 느끼지 못할 때, 그들이 은혜와 지식을 나누어 주는 일을 그칠 때, 그들의 분별력은 떨어지고, 그들은 하늘의 은사의 풍성함을 감사하지 않게 된다. 그들이 그것의 가치를 깨닫지 못함으로 그들은 남들에게 그것을 전달해야 하는 필요성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는 여러 다른 지역의 큰 교회들을 본다. 그 교인들은 진리의 지식을 얻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이 빛을 전할 생각이 없이 생명의 말씀을 듣는 것으로 만족하고 만다. 그들은 사업의 발전에 대한 책임을 느끼지 못하며,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이 없다. 그들은 세상적인 것들에는 열성이 많으나, 그들은 신앙을 그들의 사업 속으로 끌어들이지 않는다. 그들은 “신앙은 신앙이고 사업은 사업이다” 라고 말한다. 그들은 각자가 적당한 영역이 있다고 믿는다. 그러고서 말하기를 “그것들을 따로 떼어 놓” 으라고 말한다.

등한히 한 기회들과 특권의 남용 때문에 이 교회들의 신자들은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벧후 3:18) 자라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그들의 믿음은 약하고, 지식은 부족하고, 경험은 미숙하다. 그들은 진리에 뿌리를 내리지도 터를 잡지도 못하였다. 그들이 그런 식으로 지낸다면 말세의 많은 미혹들이 그들을 분명히 속일 것이다. 이는 그들에게 진리와 오류를 구분할 영적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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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목사들에게 진리의 기별을 전하라고 주셨다. 교회들은 최초의 광선들을 알아보고, 그것들을 널리 펼침으로 이 기별을 받아들여서 모든 가능한 방법으로 나누어 주려고 해야 한다. 여기 우리의 죄가 있다. 우리는 여러 해 뒤져 있다. 목사들은 감추인 보물을 찾고 함을 열어서 진리의 보석들이 빛을 발하게 하였건만, 교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신 것을 백분지 일도 감당하지 않았다. 백성들이 설교를 듣고 또 듣고 하면서도 실천하지 않는다면 신앙 생애의 와해밖에는 무엇을 또 기대할 수 있으리요?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을 활용하지 않으면 퇴보하고 만다. 이보다 더한 것은 교회들이 무활동에 빠질 때 사단은 그들이 자기에게 고용된 것으로 생각한다. 그는 일터를 점령하고, 그들의 정력을 소모할 일들을 끊임없이 교인들에게 대어 주고, 영성을 죽이고, 타락시켜 교회의 무거운 짐으로 만든다.

우리 중에 어떤 이들이 시간을 내어 자신을 살펴보면 그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는 태도를 하나님이 주신 재능을 소홀히 하는 죄라고 여길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의 구주와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의 마음의 강퍅함으로 인하여 슬퍼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영혼을 구원하시려고 자신의 생명을 주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의 사랑을 알면서도 그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에게 그분의 은혜의 축복을 나누어 주기 위하여 그렇게도 노력하지 않고 있다. 그러한 무관심과 의무 태만은 천사들을 경악케 한다. 심판 때에 그대들은 그대가 소홀히 했던 영혼들을 만나야 한다. 그 큰 날에 그대들은 스스로 깨닫고, 스스로 정죄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들을 지금 회개로 인도하시길 기도한다. 주께서 일하라고 맡기신 포도원을 소홀히 한 그분의 백성들을 주님께서 용서하시기를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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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자기들의 심판의 때를 모르는 자들이 너무 많다!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시대의 징조를 이해하지 못하고 종말 전에 우리가 무엇을 경험해야 하는지를 알지 못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의 인내 아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천사들이 붙들고 있는 바람을 놓아 불게 할 때가 얼마나 오랠는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표현할 수 없는 자비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회들 중에서 참으로 겸손하고, 헌신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그리스도의 종들은 얼마나 적은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사업에 부름을 받아 일익을 담당하게 된 영예를 깊이 감사하는 사람들이 이다지도 귀한가!

현재 우리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다수가 죄악으로 인하여 죽은 상태에 놓여 있다. 그들은 돌쩌귀에 매달려 있는 문짝처럼 드나들 뿐이다. 그들은 여러 해 동안 가장 엄숙하고 감동적인 진리의 말씀을 충족히 들어 왔지만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은 진리의 귀중함을 점점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요동하는 책망과 경고의 증언들도 그들을 회개로 이끌지 못한다. 인간의 입술을 통하여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가장 달콤한 멜로디-믿음의 칭의, 그리스도의 의-도 그들의 마음으로부터 감사와 사랑의 반응을 끌어내지 못한다. 하늘의 상인 (그리스도) 이 믿음과 사랑의 진귀한 보석들을 그들 앞에 전시한다 해도, 그분께서 “불로 연단한 금” 과 “흰옷” 을 사서 수치를 가지고 “안약” 을 사서 발라 보게 하라고 초청하여도 그들은 그들의 마음을 강철처럼 딱딱하게 하여 그분께로부터 돌아서고, 그들의 뜨뜻미지근함을 사랑과 열성으로 바꾸지 못한다. 그들은 믿는다고 공언하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가족의 한 식구가 되는 것을 스스로 부적당하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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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 구원이 최고의 목적임

우리는 복음 사업이 주로 목사에게 달려 있다고 생각지 말아야 한다. 각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왕국과 관련된 일을 하도록 주셨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고백하는 각 사람은 진지하고 사심 없는 일꾼이 되어 의의 원칙을 수호하고자 늘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각 영혼은 하나님 사업의 발전을 위하여 활발한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우리의 직업이 무엇이든지 기독교인으로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세상에 알리는 데 있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우리는 영혼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는 선교사들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사랑의 기별을 전하고 빛을 비추는 일을 위탁하셨다. 우리의 일은 정죄하거나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을 이끌어, 그들로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우리는 영혼들을 격려해야 하며, 그들을 이끌어, 구주께 드려야 한다. 만일 이것이 우리의 관심사가 아니라면, 마음과 삶의 봉사를 하나님께로부터 거두어들인다면 우리는 그분에게서 영향력과 시간과 돈과 노력을 도적질하는 것이다. 동료 인간을 이롭게 하지 못함으로 우리는 영혼의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도적질하게 된다.

가장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하라

오랫동안 그리스도인이라고 고백했던 어떤 사람들은 아직도 그들 가정의 지붕 밑에서 멸망해 가는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깨닫지 못하고서 외국에 가서 할 일을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이 외방 선교사에 적합하다는 증거가 어디 있는가? 그들이 어디서 영혼을 위한 부담을 나타내었는가? 이 사람들은 우선 국내에서 가르침 받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위한 참 믿음과 사랑은 바로 이 곳에서 영혼을 구하고자 하는 가장 진지한 소망을 그들 속에 일으킨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온유와 겸손을 배우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사람들을 이끌고자 모든 영적 능력을 발휘할 것이다. 그런 다음 만일 하나님께서 그들이 외국에 나가기를 원하신다면 그들은 준비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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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위하여 일하고자 하는 사람은 본국에서, 즉 자신의 가정에서, 이웃에서, 그들의 친구 사이에서 그 일을 시작하도록 하라. 여기서 그들은 좋은 선교지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본고장에서의 선교 사업은 더 넓은 일터에서 일할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가름하는 시금석이다.

빌립과 나다나엘의 본보기

빌립과 나다나엘의 경우는 참된 본고장 선교 사업의 본보기이다. 빌립은 예수를 보았고, 그분이 메시야라는 확신을 얻었다. 기쁨으로 그는 이 좋은 소식을 그의 친구들도 알게 되길 바랬다. 그에게 위안을 주었던 그 진리가 나다나엘에게 전해지길 소원하였다. 마음속에 있는 참된 은혜는 나누어 줄 때에야 그것의 존재를 드러낸다. 빌립은 나다나엘을 찾아 나섰고, 그가 부르자 나다나엘은 무화과나무 아래 그의 기도 장소에서 대답하였다. 나다나엘은 예수의 말씀을 들을 특권을 갖지 못하였지만 영으로 그는 그리스도께 이끌렸다. 그는 빛을 원하였으며, 그 순간 신실히 그것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었다. 빌립은 기쁨으로 소리쳤다.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이를 우리가 만났으니…나사렛 예수니라” (요 1:45). 빌립의 초청으로 나다나엘은 구주를 찾아 나섰고 발견하였다. 그리고 그도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일에 가담하였다.

다른 사람에게 빛을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 중의 하나는 개인적인 접촉이다. 가정과 이웃의 화롯가에서 또는 환자의 침상에서 조용히 성경을 읽어 주며 예수와 진리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 줄 것이다. 이와 같이 참으로 귀한 씨를 뿌리게 되면 그 씨는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 6권 pp. 419-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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