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6 359-368 (374일)

해가 넘어갈 때에 기도와 찬송으로 거룩한 시간이 끝남을 장식하고, 수고의 한 주일 동안 모든 일에 하나님이 함께 해 주실 것을 구하라.

그리하면 부모들은 안식일을, 마땅한 대로, 주일 중 가장 즐거운 날로 만들 것이다. 그들은 자녀들이 그 날을 즐거운 날이라, 날 중의 날이라. 여호와께 거룩하고 존귀한 날이라고 생각하도록 인도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내가 권면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십시오.” 그대의 자녀들이 계명대로 안식일을 지키기를 원하면 그대는 율례와 모본으로 그들을 가르쳐야 한다. 마음에 진리가 깊이 아로새겨지면 완전히 지울 수 없을 것이다. 조금 흐리게 될는지는 몰라도 결코 멸절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린 시절에 받은 감동은 훗날에까지 살아 있을 것이다. 자녀들이 부모와 집을 떠나 살아야 할 형편이 닥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살아 있는 한 유아 시절과 어린 시절에 받은 교훈은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안식일 여행

우리가 순종하는 자들에게 약속된 축복을 받기 원한다면 우리는 안식일을 더욱 철저히 지켜야 한다. 우리가 피할 수도 있는 여행을 안식일에 자주 하는 것을 나는 염려한다. 안식일 준수와 관련해서 주께서 주신 빛에 따르면 우리는 안식일에 배나 차로 여행하는 일에 있어서 더욱 주의를 해야 한다. 이 일에 있어서 우리는 자녀들과 어린이들에게 바른 모본을 보여야 한다.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교회들에 가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이 듣기를 원하시는 기별을 그들에게 전달하기 위하여 안식일에 여행을 할 필요가 있는 때가 있다. 그러나 가능한 한 다른 날에 표를 사고 모든 일을 마무리지어 놓아야 한다. 여행을 떠날 때에 우리의 목적지에 안식일에 도착하지 않도록 모든 노력을 들여 여행 계획을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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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에 여행을 하게 될 경우에 우리는 세상 것에 눈을 돌리게 할 동행을 피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고정되고, 그분과 교통해야 한다. 기회가 생길 때마다 우리는 남들에게 진리에 관하여 말해야 한다. 우리는 항상 고통을 경감시키고, 곤경에 처한 자를 돕고자 준비되어야 한다. 그런 경우가 닥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식과 지혜를 우리가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사업상의 이야기나, 일상적이고 세속적인 대화를 삼가야 한다. 모든 시간과 장소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안식일을 존귀케 함으로 그분에 대한 우리의 충성심을 보이기 원하신다.

안식일 집회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두세 사람의 신자들이 있더라도 안식일에 함께 모여 주의 약속을 구하도록 하라.

그분의 거룩한 날에 예배드리러 모이는 작은 무리들의 모임들은 여호와의 풍성한 축복을 주장할 권리를 가지고 있다. 그들은 주 예수께서 그들의 모임 중에 귀한 손님으로 계심을 믿어야 한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모든 참된 경배자들은 다음의 약속을 구하여야 한다.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출 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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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 예배 시의 설교는 대체로 간략해야 한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그들의 감사와 찬양을 표하는 기회가 주어지도록 해야 한다.

교회에 목사가 없을 시에 한 사람이 예배의 인도자로 지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 사람이 설교를 한다던가 예배 시간의 대부분을 차지할 필요는 없다. 설교보다는 짧고 재미있는 성경 읽기가 더욱 이로울 경우가 많다. 이어서 기도와 간증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교회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주일 중 신체적·정신적 힘을 다 소모하여 버려서 안식일 예배 시에 그리스도의 복음의 생생한 감화를 주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일상적인 일을 적게 하라. 안식일에 그분께서 받으실 수 없는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의 것을 약탈하지 말 것이다. 그대들은 영적 생명이 없는 사람들처럼 되어서는 안 된다. 백성들은 안식일에 그대들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그들에게 말씀의 양식을 주라. 거룩한 날에 하나님께 최고의 선물을 가져오라. 헌신된 예배를 통하여 영혼의 귀한 생명이 그분께 바쳐지도록 하라.

아무도 예배드리러 와서 자지 못하게 하라. 하나님의 집에서 자서는 안 된다. 그대들은 일상적인 사업을 할 경우에 잠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대들이 그 사업에 관심이 있기 때문이다. 영원한 중요성이 있는 예배를 일상 생활보다도 더 낮은 곳에 방치할 작정인가?

우리가 이렇게 한다면 우리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축복을 받지 못할 것이다. 안식일은 무용한 게으름의 날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가정과 교회에서 예배의 정신이 나타나야 한다. 우리의 일상 생활을 위하여 엿새를 주신 하나님께서 제칠일을 축복하시고 거룩케 하셨으며, 자신을 위하여 따로 떼어 놓으셨다. 이 날에 그분께서는 예배에 헌신하는 모든 자들을 특별한 방법으로 축복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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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하늘이 안식일을 지킨다. 그러나 무관심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식으로 지키지 않는다. 이 날에 영혼의 모든 에너지가 일깨워져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과 우리 구주 그리스도를 그날 만나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그분을 믿음으로 바라볼 수 있다. 그분께서는 모든 영혼을 새롭게 하시고 축복하시고자 갈망하신다.

각자는 안식일 집회들을 흥미있게 만드는 일에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저 형식적으로 모여서는 안 된다. 생각을 교환하기 위하여, 매일의 경험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감사를 표하기 위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있도록 거룩한 일깨움을 받고자 하는 마음의 신실한 소원을 아뢰기 위하여 집회에 모여야 한다. 그리스도를 염두에 두고 함께 교제하는 것은 삶의 시련과 투쟁에 있어서 영혼을 힘있게 한다. 기독교인이면서도 자기만 생각하여 자기 속으로 들어갈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각자는 인류라는 거대한 망의 한 부분이다. 개인의 경험은 이웃들의 경험에 의해 크게 좌우된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배하려고 함께 모일 때에 얻어야 하는 축복의 백분지 일도 얻지 못하고 있다. 우리의 수용하는 능력이 더 길러져야 한다. 함께 교제하는 것을 기쁜 일로 생각해야 한다. 우리가 가진 그러한 소망과 더불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왜 불타오르지 않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그의 천사들이 거기 계셔서 참 예배자들을 도우시는 것을 느낄 수 있는 영적 감각을 살려서 매 집회에 참석해야 한다. 집회 장소에 들어갈 때에 주님께 마음의 모든 악을 제거해 달라고 기도하라. 그분께서 축복하실 수 있는 것만 가지고 성전으로 나아가라. 성전에서 그분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분께 속한 바 그분께서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것을 드려라. 예배의 설교자나 인도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생명의 말씀을 전할 자를 통하여 큰 축복이 오도록 기도하라. 스스로 축복을 얻기 위하여 열렬히 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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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예배를 위하여 이렇게 준비하는 모든 사람들을 축복하신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접하였기 때문에 성령의 보증을 얻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해할 것이다.

예배 장소가 매우 보잘것없을 수도 있으나 그렇다고 하나님이 덜 인정하시는 경우는 없다. 신령과 진정과 성결의 아름다움으로 하나님을 경배하는 자들에게는 그 장소가 마치 하늘 문처럼 될 것이다. 교인 수가 적을지라도, 하나님이 보시기에 그들은 매우 귀하다. 그들은 진리의 정으로 세상의 채석장에서 떼어 내진 돌이며, 깎이고 다듬어지도록 하나님의 작업장으로 들여졌다. 비록 거칠지라도 하나님의 보시기에는 귀하다. 시련의 도끼와 망치와 끌이 기술이 좋으신 분의 손에 들려 있다. 그것들은 파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매 영혼을 완성시키고자 사용된다. 궁정의 식양대로 다듬어진 귀한 돌로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늘 성전에서 자리를 차지하게 되기를 바라신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약속과 베푸심은 한이 없다. 은혜의 보좌 자체가 최고의 매력의 장소인데 왜냐하면 그분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우리에게 허락하신 분이 그 곳에 앉아 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사랑만 주어질 동안은 구원의 대강이 완성되지 않았다고 생각하신다. 그분의 약속대로 그분께서는 그분의 제단에 우리의 본성을 입으신 옹호자를 두셨다. 우리의 중보자로서 그분의 일은 우리를 하나님께 그분의 자녀로 소개하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을 영접한 자들을 위하여 중재하신다. 그분께서 그분의 공로를 힘입어 왕족의 일원이, 즉 하늘 왕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그리고 아버지께서는 그 피로 우리의 속전을 치르신 그리스도로 인해서, 그리스도의 친구된 우리들을 하나님의 친구로 영접하고 환영함으로, 당신의 무한하신 사랑을 나타내신다. 그분께서는 이루어진 속죄에 만족해 하신다. 그분께서는 아들의 성육신과 생애와 죽음과 중보를 통하여 영광을 받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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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자녀가 시은좌 앞에 나아가자마자 그는 위대한 옹호자의 고객이 된다. 용서를 위한 그의 참회와 호소의 첫마디가 발해 질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말을 받아들여서 자신의 것으로 삼으시고 그 간구를 마치 자신의 요구인 양 아버지께 드린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실 때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모든 보화를 우리가 사용하고, 누리고, 남들에게 전해 줄 수 있도록 열어 주신다.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신다. “내 이름으로 구하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아버지께 구하겠다 하는 말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니 이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기 때문이다. 내 이름을 사용하라. 이것이 그대들의 기도에 효력을 줄 것이며 아버지께서는 그분의 은혜의 풍성함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그러므로 ‘구하라 그러면 받을 것이요 너희 기쁨이 넘치리라’” (요 16:24 참조).

하나님께서는 순종하는 자녀들이 축복을 달라고 하고 그분 앞에 나아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는 생명과 능력의 근원이 되신다. 그분께서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을 위하여 광야를 열매가 맺히는 밭으로 만드실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이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택하신 백성을 위하여 모든 사람의 마음에 감사가 우러나오게 하는 일을 이루셨다. 그러나 너무 찬양이 없으므로 그분의 마음은 우울하게 된다. 그분께서는 백성들이 기쁨과 즐거움의 이유를 알고 있음을 나타내는 더 강한 표현들이 백성으로부터 터져 나오기를 바라신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다루시는 일은 자주 반복해서 말해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을 다루셨음을 증거하는 표를 얼마나 자주 세웠던가! 과거의 역사를 그들이 잊지 않도록 그분께서는 모세에게 이 사건들을 노래로 지어 부모들이 그 노래들을 자녀들에게 가르치도록 하셨다. 그들은 기념물을 만들어 그들의 눈에 띄도록 하였다. 그것들을 보전하기 위하여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서 자녀들이 이 일에 관하여 물을 때에 전체 이야기를 반복하였다. 그리하여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과 하나님의 돌보심과 구원 속에 두드러지게 나타난 선하심과 자비를 마음속에 간직하도록 하였다. 우리는 “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에 참은 것을 생각하라” (히 10:32) 는 권고를 받는다. 주님께서는 이 세대의 자기 백성을 위하여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의 사업의 과거 역사가 노유를 막론하고 백성들 앞에 자주 제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자주 하나님의 선하심을 이야기하며, 그분의 놀라운 일을 인하여 그분께 찬양을 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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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끼리만 모이는 모임을 게을리 하지 말라는 권고를 받았지만, 이 모임들은 우리들의 영혼만 쇄신되는 기회로 삼아서는 안 된다. 우리는 받은 바 위로를 나누어 주고자 하는 열성으로 충만해야 한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내고, 나쁜 말을 하지 않으며, 마치 하나님의 요구가 우리의 자유를 제한하는 인생을 주는 듯한 슬픈 기색이나 잘못된 말이라도 하지 않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다. 슬픔과 실망과 죄의 세상에서라도 주님께서는 우리가 기뻐하고 그분의 능력 안에서 강해지기를 원하신다. 한 사람의 인격 전체가 모든 방면에 있어서 결정적인 증거를 전할 특권을 가지고 있다. 모양, 기질, 말, 품성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좋은 것임을 증거해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는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 (시 19:7) 라고 선포한다.

매일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에 의하여 우리 신앙의 밝고 쾌활한 면모가 나타난다. 우리는 슬프게 보이는 시련을 비참하게 말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지 말아야 한다. 모든 시련을 인생의 교사로 여기면 도리어 기쁨이 생긴다. 신앙 생활 전체가 고양되고, 고상하게 되며, 고결하게 되며, 선한 말과 일로 향기나는 것이 될 것이다. 원수는 영혼들이 슬프고, 낙심하고, 울며 신음할 때 매우 기뻐한다. 그는 우리 신앙의 결과가 마치 그런 것인 양 인상을 지우려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비참해지지 않도록 계획하셨다. 그분께서는 구주의 지키시는 권세 안에서 모든 영혼이 승리하기를 바라신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너희 권능 있는 자들아 영광과 능력을 여호와께 돌리고 돌릴지어다 여호와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리며 거룩한 옷을 입고 여호와께 경배할지어다”, “여호와여 내가 주를 높일 것은 주께서 나를 끌어내사 내 대적으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심이니이다 여호와 내 하나님이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매 나를 고치셨나이다…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 거룩한 이름에 감사할지어다” (시 29:1, 2, 3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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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는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와 하나이다. 이 땅의 신자들과 한 번도 타락하지 아니한 하늘 존재들이 한 교회를 이룬다. 하늘의 지적 존재들은 지상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고자 모이는 성도들의 회집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땅 곧 바깥뜰에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증거하는 소리를 하늘 안뜰에서 그들이 듣는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을 위하여 헛되이 죽으시지 않으셨기 때문에 예배자의 감사와 찬미가 하늘의 찬양 속으로 들어가며, 찬양과 즐거운 소리가 하늘 궁정에 울려 퍼진다. 천사들이 샘 근원에서 마시는 동안 지상의 성도들은 보좌로부터 흘러 나는 맑은 강, 우리 하나님의 도성을 기쁘게 하는 이 강에서 마신다. 오, 우리가 다 하늘과 땅이 이렇게 가까움을 느낄 수 있으면 오죽 좋으랴! 세상에서 태어난 자녀들이 알지 못하지만 그들은 빛의 천사들을 동무로 하고 있다. 살아 있는 모든 영혼을 소리 없는 증인이 지키며 그 영혼을 그리스도께 이끌고자 애쓰고 있다. 희망이 있을 동안, 즉 사람들이 성령을 거절하여 영원한 파멸에 들어가기 전까지, 그들은 하늘의 존재들에 의하여 보호를 받는다. 모든 사람들은 이 땅에서의 모든 성도들의 모임마다 하나님의 천사가 함께 하며 간증과 노래와 기도를 듣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우리의 찬양이 하늘 천군의 찬양대에 의해서 보충됨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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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일마다 모일 때에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분께 찬양을 돌리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를 씻으신” 분께 우리 마음의 찬송을 드리자. 설교자가 말할 때에 그리스도의 사랑의 부담을 갖고 말하자. 단순한 언어로 모든 찬양의 노래 중에 그 사랑이 표현되도록 하자. 하나님의 영의 감동이 그대의 기도를 지도하게 하라. 생명의 말씀이 선포될 때 그대의 감동적인 반응으로 그대가 하늘로서 오는 기별을 받고 있다는 것을 표하게 하라. 이것이 매우 구식임을 내가 잘 안다. 그러나 그것은 굶주린 영혼에게 주어진 생명의 양식에 대해 하나님께 바치는 감사제가 될 것이다. 성령의 감동에 대한 이 반응은 그대의 영혼에 힘이 되며 남들에게 용기가 될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집에 빛을 발산하는 돌들이 있다는 증거를 줄 것이다.

우리가 과거의 어두운 역사가 아니라 하나님의 큰 자비하심과 다함없는 사랑의 나타남을 돌이켜 볼 때에 우리는 불평 대신에 찬양할 것이다. 우리는 참되고 부드러우며 동정 많은 양무리의 목자이신 하나님께서 그 양무리에 관하여 아무도 그분의 손에서 빼앗아 갈 수 없을 것이라고 선포하신 그 신실하신 사랑에 대하여 말하게 될 것이다. 마음의 언어는 이기적인 불평이나 투덜거림이 아닐 것이다. 맑은 물의 흘러감 같은 찬양이 하나님의 참된 신자들로부터 나올 것이다. “선하심과 그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주의 교훈으로 나를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시리니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시 23:6, 73:24,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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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순례길에서 왜 우리의 영적 노래 소리를 일깨우지 않는가? 왜 단순함과 열의 있는 삶으로 돌아가지 않는가? 우리가 더이상 즐거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첫사랑을 잊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촛대가 우리로부터 옮겨가지 않도록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하나님의 하늘 성전이 열렸다. 그 문지방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킬 모든 교회를 위한 영광으로 빛나고 있다. 우리는 연구하고, 명상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리하면 우리는 하늘 성전의 안뜰을 분별할 영적 통찰력을 갖게 될 것이다. 우리는 보좌 주위를 둘러싼 하늘 찬양대의 노래와 감사의 주제를 깨닫게 될 것이다. 시온이 일어나 빛을 발할 때에 그 빛은 가장 찬란하며, 귀한 감사의 노래가 성도들의 모임 중에서 들릴 것이다. 적은 실망과 곤란함 때문에 생기는 불평하고 투덜거림이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금으로된 안약을 바를 때에 우리는 저 너머에 있는 영광을 보게 될 것이다. 믿음은 사단의 무거운 그림자를 가를 것이며,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의 공로의 향을 드리는 우리의 옹호자를 보게 될 것이다. 주께서 우리가 보기를 원하시는 대로, 실상대로 우리가 보게 될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거대함과 다양함을 깊이 느끼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모여서 완전한 사랑을 함양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이런 일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그분께서 마련하실 처소에 지상의 거민들이 적합하게 되도록 해 준다. 매 안식일과 월삭에 높은 음조로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양께 영원토록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일에 연합하고자 그들은 성소에 모일 것이다.

교회증언 6권 pp. 359-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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