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6 279-288 (366일)

가난한 자들과 부자들이 동정과 희망의 끈으로 긴밀하게 연결되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알게 되는 모든 고통과 필요의 경우마다 관심을 쏟기를 명하신다.

고통당하는 인류를 돕는 것이 그대의 위엄을 떨어뜨리는 것이라고 생각지 말라. 영혼의 성전을 망가뜨린 사람들을 멸시하거나 무관심하게 보지 말라. 이들은 하나님의 동정의 대상들이다. 만물을 창조하신 분께서 모두를 돌보신다. 가장 밑으로 타락한 자라 할지라도 그분의 사랑과 동정이 미치지 못할 곳에 있지 않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제자라면 우리는 그와 같은 정신을 나타낼 것이다. 예수를 향한 사랑에 감동된 사랑은 빈부를 막론하고 모든 영혼 속에서 인간의 판단으로 평가할 수 없는 가치를 보게 될 것이다. 그대의 삶이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사랑을 드러내도록 하라.

자주 사람들은 꾸지람을 듣고 강퍅하게 되나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들을 향해 표현되는 사랑은 저항할 수 없다. 우리는 죄인에게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쫓겨난 자라고 느끼지 말라고 말해야 한다. 죄인에게 그리스도, 죄의 문둥병으로 얼룩진 영혼을 고칠 수 있는 유일한 분을 바라보라고 말하라. 막막하고 기가 꺾인 고통당하는 자에게 그는 희망의 포로임을 알려 주라. 그대의 기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을 보라” 가 되게 하라.

나는 의료 선교 사업이, 지금은 비록 방종과 부절제의 습관에 젖어 있으나 이 정당한 사업에 호응하게 될 사람들을 깊은 타락의 구렁텅이에서 찾아낼 것이라는 교훈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인정을 받는 일과 격려 받는 일을 필요로 한다. 그들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착실하고 인내성 있고 열렬한 노력이 요구될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회복될 수는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부름을 들을지라도 귀가 둔하여져서 그 뜻을 파악하지 못하며, 눈이 어두워 그들을 위해 쌓아 놓은 선한 것을 보지 못한다. 그들은 허물과 죄로 죽어 있으나 그들도 복음의 잔치에서 제외되지는 않았다. 그들은 “오라” 는 초청을 받아야 한다. 비록 그들은 스스로 초청을 받기에 합당치 않은 자라고 생각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 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아무 핑계도 듣지 말고 사랑과 친절로써 그들을 꽉 붙잡아라.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는 너희의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하며 성령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자기를 지키며 영생에 이르도록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긍휼을 기다리라 어떤 의심하는 자들을 긍휼히 여기라 또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여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유 20-23). 하나님의 법을 범한 것의 무서운 결과를 양심 깊이 새기게끔 하라. 고통과 아픔을 일으킨 것이 하나님이 아니며, 인간이 무지와 죄를 통하여 이런 상태를 자초하였다는 것을 알려 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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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을 올바로 이끌어 나간다면 교회가 지금까지 등한시 해 온 많은 가련한 죄인들을 구원할 것이다.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갖지 못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주어야 할 도움을 받기를 갈망하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웃에 대하여 진정한 관심을 나타내 보인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와 접촉하게 될 것이다. 자기가 있는 바로 그 곳에서 사람들을 돕는 일처럼 그 사업에 좋은 평판을 주거나 또는 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노라고 하는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한다면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기별을 듣고 기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의료 선교 사업이 남녀로 하여금 그리스도와 그 진리에 대한 구원의 지식으로 인도하는 때에 이 일에 돈과 많은 수고를 투자하여도 무방하다. 왜냐하면 그 사업은 영원히 지속될 사업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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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를 돌봄

우리의 관심을 요구하는 모든 필요 중에서 과부와 고아는 우리의 부드러운 동정심을 가장 많이 필요로 하고 있다. 그들은 주님께서 특별히 돌보시는 존재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맡겨져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믿음 안에서 죽고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을 따라 쉬고 있는 많은 아버지들이 주님께서 돌보시리라는 사랑하는 자기 자식들의 신뢰 속에 세상을 떠났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어떻게 이 부모를 여윈 아이들을 돌보시는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는 기적을 행하지 않으신다. 까마귀를 보내어 음식을 나르게 하지도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인간의 마음에 역사하사 이기심을 몰아내고 자선의 샘의 봉인을 뜯어내는 기적을 통하여 일하신다. 그분께서는 고통당하는 자들과 부모를 여윈 자들을 자비로 돌보는 일에 의하여 그분의 제자들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의 사랑을 시험하신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이 마음과 가정을 열어 이 아이들을 받아들이게 하자. 고아들을 큰 기관들에 수용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이 아니다. 그들에게 돌봄을 제공할 친척들이 없다면 우리 교인들이 이 아이들을 입양하든지 아니면 다른 적당한 가정들을 알선해 주어야 할 것이다.

이 아이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는 자들이며, 그들을 소홀히 하는 것은 그분께 누가 되는 것이다. 예수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베풀어진 모든 친절한 행위는 마치 그분께 드린 것 마냥 받으신다.

그들이 얻어야 할 것을 어떤 식으로라도 빼앗는 자들, 곧 그들의 궁핍을 무관심하게 보는 자는 세상의 심판자에 의해 심판을 받을 것이다.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긍휼을 행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긍휼 없는 심판이 있으리라” (눅 18:7, 8; 약 2:13). 주님께서 명하신다. “빈민을 네 집에 들이” (사 58:7) 라. 기독교는 이 빈핍한 자들에게 아버지와 어머니와 가정을 반드시 공급해야 한다. 기도와 또한 그것에 일치하는 선행으로 고아와 과부에게 보인 동정은 하나님 앞에서 기억될 것이며, 이윽고 보상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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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봐 주는 부모의 지도와 그리스도인 가정의 부드러운 감화를 빼앗긴 이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을 돌봐 줌으로써 주님을 위하여 일하게 될 모든 사람 앞에는 유용성을 위한 넓은 분야가 있다. 그들 중 많은 수가 나쁜 기질의 성격을 유전 받았다. 그러므로 만일 무지 속에 자라게 내버려두면, 그들은 악습과 범죄를 이끄는 교제에 빠져 버릴 것이다. 이 가망성 없는 아이들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바른 성품을 형성하도록 유리한 입장에 놓아 둘 필요가 있다.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그대는, 구주께 나오는 방법을 꾸준히 배워야 할 필요가 그처럼 많은 자들을 가르치는 데 그대의 몫을 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의 성실한 종으로서 그대의 몫을 하고 있는가? 이 미숙하고, 아마도 균형지지 못할지도 모르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나타내신 그 사랑으로 보호를 받고 있는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영혼들이 만일 그대로 방치된다면 치명적인 위험에 빠지게 된다. 그들은 꾸준한 교훈과 사랑과 부드러운 그리스도인적 보호가 필요하다.

비록 우리의 의무를 지적해 주는 계시가 없을지라도, 눈앞에 보이는 바로 그 광경과 필연적인 인과 관계의 작용을 우리가 안다는 그 사실이 이 불행한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하여 우리를 각성시켜야 한다. 만일 신자들이 일상 생활의 업무에 소모하는 것과 똑같은 정력과 재간과 기량을 이 일에 썼을 것 같으면, 또한 하나님께 지혜를 구하고 이 미숙한 그 사람들의 마음을 바로잡아 주기 위한 방법을 열렬하게 구했을 것 같으면 멸망 직전에 놓인 많은 영혼들이 구제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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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부모들이 의당 그러해야 할 때도 자기 자녀들의 구원을 걱정한다면, 그들의 기도 속에 자녀들을 실어 올리고 그 기도대로 살며 하나님께서 그들과 협력하실 것으로 알고 지낸다면, 그들은 집 밖에 있는 아이들 특히 부모의 지도와 인도가 없이 사는 아이들을 위해 성공적으로 일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모든 교인들에게 이 고아들에 대한 의무를 다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의 사업을 본받아

아이들을 돌봄에 있어서 우리는 그저 의무라고만 생각지 말고 사랑으로 우러나오는 일을 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돌봄을 필요로 하는 이 영혼들을 사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가 죄와 방황 중에 헤맬 때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를 기대하신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도록 역사하는 능력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 기 때문이다. 모든 자비의 활동 중에 이 원칙만이 효력을 줄 것이다. 유한한 인간은 반드시 무한하신 자와 연합해야 한다.

남들을 위하여 하는 이 일은 노력과 극기와 자기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유일하신 독생자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그 희생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희생을 우리가 하고 있음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남들에게 축복을 나누어 줄 수 있도록 우리에게 축복을 주신다. 우리가 일용할 양식을 그분께 구하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을 보시며 우리가 우리보다 더 궁핍한 자들에게 그것을 나누어 주려고 하는지를 보신다. 우리가 “이 죄인을 긍휼히 여기소서” 하고 기도하면 그분께서는 우리가 교제하는 자들에게도 그와 같은 동정을 나타낼 것인지를 보신다. 우리가 하늘 아버지의 자비하심과 같이 자비하게 되는 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연결되었다는 증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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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항상 주신다. 그런데 누구에게 선물을 주시는가? 품성에 흠이 없는 자에게 주시는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 (마 5:45). 인류의 죄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자주 슬프게 하고, 우리 자신을 가치 없는 자로 전락시킴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용서를 구하면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그분은 거저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며 명하신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3:34).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이 문제를 주의 깊이 생각하기 바란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자들의 필요를 생각하라. 그대들은 그들의 고통을 볼 때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가? 이 가련한 자들을 돌봐 주기 위하여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알아 보라. 그대의 힘이 닿는 데까지 집 없는 자들을 위하여 안식처를 만들어 주라. 모든 사람은 이 일을 돕는 데 있어서 한몫을 담당할 준비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주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고 말씀하신다. 이 명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아들에게 우리의 집을 열어 줌으로 우리는 그 명령을 완수하는 일을 돕게 된다. 예수님이 그대에게서 실망하지 않게 하라.

이 어린 것들을 취하여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로 드리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구하고 그리스도의 명령을 따라 그들을 꼴 짓고 형성하라. 우리 백성들이 이 거룩한 위탁을 받아들일 것인가? 우리의 천박한 경건과 세속적인 야망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그들이 고통당하고, 그릇된 길로 가도록 내버려 둘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에는 우리가 과부와 고아와 궁핍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가난한 자들을 어떻게 취급할 지에 대하여 많은 지시가 있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 지시에 순종했을 것 같으면 과부의 마음이 즐거움으로 노래하고 굶주린 어린아이들이 음식을 얻고, 헐벗은 자들이 의복을 얻고, 죽어 가는 자들이 소생되었을 것이다. 하늘의 존재들이 계속해서 지켜보고 있으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광을 위한 열심으로 무장되어 하나님의 섭리의 통로가 될 때, 하늘의 사자들은 우리에게 새로운 영적 힘을 주어 어려움과 싸워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승리할 수 있게 해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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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하는 자들에게 어떤 축복이 상으로 주어질까! 지금은 나태하고, 이기적이고, 자아 중심적인 많은 사람들에게 그것은 마치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과 같을 것이다. 우리 가운데서 하늘의 자비와 지혜와 열성이 살아나게 될 것이다.

목사 부인들이 고아를 입양함

목사의 부인이 유아들을 양자로 삼아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가 거론되어 왔다. 나는 대답한다. 만일 목사 부인이 자기 가정 밖의 선교 사업에 종사할 경향이나 적합성이 없다면, 그리고 고아들을 데려다가 돌봐 주는 것은 자기의 의무라고 느낀다면, 그는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아이들의 선택은 안식일을 지키는 부모가 남겨 놓고 간 고아들 중에서 택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즐거운 마음으로 이 집 없는 아이들과 함께 그들의 가정을 같이 나누는 남녀들을 축복하실 것이다. 그러나 만일 목사 부인이 다른 사람들을 가르치는 일에 한몫을 담당할 수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 일꾼으로서 자신의 힘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이 여인은 남편의 일을 돕고 자신의 지성을 계발시키고 기별 전하는 일을 도움으로 남편의 참된 조력자가 되어야 한다. 도움이 요구되는 사람들을 방문하고 낙심한 영혼들에게 빛을 비춰 주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은혜로 위엄을 갖춘 겸손하고 헌신적인 여인들에게는 길이 열려 있다. 그들은 좌절당한 자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쳐 줌으로 그들을 향상시킬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은 끊임없는 주의와 관심을 요하는 연약하고 어린 것들에게 저희 시간과 힘을 다 바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은 이와 같이 그들의 손을 일부러 묶어 두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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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

우리들의 가정에서 고아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것을 다 할지라도 세상에는 여전히 돌봐야 할 많은 궁핍한 자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그들은 누더기 옷을 입고 거칠고 어느 모로 보나 끌리는 데가 없을 것이나 그들은 값으로 산 자들이며 하나님께서 보시기에는 우리 자녀들과 똑같이 귀중하다. 그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들은 영혼을 “네 손에서 찾을 것이요” (겔 3:18) 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이 궁핍한 자들을 돌보는 것은 선한 일이다. 그러나 현 세상에서 주님께서는 이 목적을 위하여 크고 값비싼 기관들을 건립하라는 지시를 우리에게 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만일 고아들을 돌보기 위하여 기관들을 설립하라는 소명을 하나님께로부터 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우리 중에 있다면, 의무에 대한 그들의 확신을 따르도록 하라. 그러나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돌보는 일에 있어서, 그들은 재정적인 원조를 세상에 호소해야 한다. 그들은 주님께서 일찍이 인간에게 주신 사업 중 가장 중요한 사업,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 앞에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하는 사업을 맡기신 백성들에게 조력을 구해서는 안 된다. 주님의 보고 (寶庫) 에는 “지경을 넘어” 서 복음을 전하기 위한 돈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기관들을 설립할 책임을 느끼는 자들은 지혜로운 권유자들을 두어 그들의 필요를 제시하고 기금을 모으는 일을 해야 한다. 가난한 자와 고아들을 위하여 무엇인가 해야 되겠다는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을 각성시키고 각 교파의 교회들을 권유해야 한다. 모든 교회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호소하라.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 사업을 그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이다.

우리 백성들에 의하여 설립된 바 교인 중 고아와 병약자와 노인들을 돌보는 기관들은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 이 사업이 쇠약해져서 하나님의 큰 사업에 누가 되지 않도록 하라. 이 기관들을 후원하는 일에 참여하는 것을 의무라고만 생각지 말고 특권으로 생각하라. 서로 불필요한 선물을 주고받고 하지 말고 가난한 자와 어려운 자들에게 주자. 우리가 이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는 것을 주께서 보시고 다른 이들의 마음을 감동하사 이 선한 일을 돕게 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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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아원에 대한 계획은 단순히 아이들에게 음식과 의복을 제공해 주는 것만으로는 되지 않고, 그리스도인 교사들의 보호 아래 하나님과 그분의 아들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으로 그들을 교육시키도록 계획되어야 한다. 이 분야에서 일하는 남녀들은 갈바리 십자가 앞에서 넓은 마음을 가지고 열심을 품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세련되고 자아 희생적인 남녀들이어야 하며, 하나님의 사업과 인류의 사업을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는 자들이어야 한다.

이 집 없는 아이들이 지식과 행복과 덕을 얻을 수 있는 곳을 찾게 되고, 하늘 임금의 자녀가 될 때 그들은 사회에서 그리스도의 모본을 따르는 일의 일익을 담당할 준비가 된다. 그들도 남을 돕는 자들이 되는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리하여 이 선한 사업은 확장되며 지속될 것이다.

어떤 어머니가 예수께서 당신의 자녀들을 사랑하시는 것처럼 자기 자녀를 사랑하였는가? 그분께서는 훼손된 품성을 어머니보다 더 깊고 더 예리한 슬픔으로 보신다. 그분께서는 한 악한 행동으로 나중에 받게 될 보응을 보신다. 그러므로 소홀히 여김을 당하는 영혼을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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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 선교 사업과 세천사의 기별

의료 선교 사업이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사업과 가지는 관계는 손과 팔이 몸에 대해 가지는 관계와 같은 것이라는 교훈을 나는 여러 번 받았다. 그들은 거룩하신 신성의 지도를 받아 그리스도의 강림을 위해 길을 준비하는 일에 연합하여 일해야 한다. 진리의 몸에 붙은 오른팔이 계속해서 활동하고 계속해서 일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팔을 강하게 하실 것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몸이 될 수는 없다. 동시에 몸이 팔에게 “너는 내게 쓸 데 없다” 고 말할 수도 없다. 활동적이며 적극적인 일을 위해서 몸에는 팔이 필요된다. 몸과 팔이 각각 맡은 일이 있으나 따로 따로 일한다면 모두 각각 큰 손해를 입게 될 것이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전파하는 사업을 하나님이 뜻하신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을 구원하는 통로 중에서 인간 대리자들 사이에의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열등한 사업으로 간주되었다. 성경이 가장 효과적인 영혼 구원의 통로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야 한다. 말씀을 전파하는 일은 이 결과를 낳는 위대한 교육적 힘이다. 이 일을 마다하고 독립적으로 의료 선교를 하려는 사람은 팔을 몸으로부터 분리시키려고 하는 것이다. 만일 그들이 성공한다면 그 결과는 어떠할까? 우리는 머리의 지시 없이 손과 팔이 마음대로 움직이며 자금을 써 버리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사업은 균형을 잃고 잘 조화되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께서 손과 팔이 되도록 뜻하신 것이 몸 전체를 차지하게 되면 전도 사업은 위축되거나 전혀 무시될 것이다. 이것은 사람들을 불안정하게 할 것이며, 혼란을 일으키고, 주의 포도원의 많은 부분이 그대로 방치될 것이다.

교회증언 6권 pp. 279-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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