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어느 사람이 깊은 죄중에 빠졌다 하더라도 그를 구원할 가능성이 있다. 많은 이들이 영원한 것에 관한 감각을 잃어버렸으며, 하나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에 그들은 구원받을 영혼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믿음도, 사람에 대한 믿음도 없다. 그러나 그들은 동정적이며 유용한 일들을 이해하고 고마워할 줄 안다. 그들이 세상적 칭찬이나 보상을 바라지 않고 그들의 누추한 가정을 찾아오고, 병든 자를 돕고, 굶주린 자를 먹이고, 벗은 자를 입히고 모든 사람의 주의를 그분께 쏠리게 하는 것을 볼 때에 그들의 마음은 감동을 받는다.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단지 하나님의 사랑과 동정을 전달하는 사자에 지나지 않는다. 감사의 마음이 우러나오게 된다. 믿음의 불꽃이 당겨진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그분의 말씀이 펼쳐질 때에 경청할 준비가 된다.
이러한 회복의 사업에는 고된 노력이 요구된다. 이 영혼들에게 깜짝 놀랄 만한 낯선 교리들을 전하지 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육적으로 도움을 받는 동안 이 시대를 위한 진리가 제시되어야 한다. 남녀노소는 하나님의 법의 광활한 요구를 알 필요가 있다. 인류를 저하시키는 것은 곤란과 수고와 빈곤이 아니라, 죄 즉 하나님의 법을 범하는 것이다. 버림당한 자들과 비천한 자들을 구하기 위하여 취해진 노력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와 그분께 충성해야 할 필요가 마음과 생각 속에 박히지 않는다면 아무짝에도 쓸 일 없는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는 데 필요치 않은 것을 명하신 적이 없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여호와의 계명은 순결하여 눈을 밝게 하도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나는 주의 말씀을 좇아 스스로 삼가서 강포한 자의 길에 행치 아니하였사오며” (시 19:7, 8, 1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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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은 타락한 자들을 회복시키고, 그들을 구속하러 자기 목숨을 내어 주신 이에게 데려오기 위하여 이 사업을 돕고 있으며, 성령께서는 마음에 역사하심으로 도덕적 능력을 일깨우고, 죄와 의의 심판에 관하여 책망하심으로 인간 중개자들의 봉사와 협력하고 계신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이 사업을 위하여 몸바쳐 일할 때에 많은 이들이 그들을 구원하고자 펼쳐진 손을 붙잡을 것이다. 그들은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라는 강권을 받는다. 구원받은 자들 중에서 어떤 이들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고귀한 봉사의 직책에 부응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책임을 맡게 될 수도 있다. 그들은 경험을 통하여 그들이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의 필요를 안다. 그들은 어떻게 그들을 도울지를 안다. 그들은 멸망하는 자들을 회복하기 위하여 어떤 방법이 최선인지 안다.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축복으로 인해 감사에 충만해 있다. 그들의 마음은 사랑으로 생기가 돌며, 도움이 없이는 결코 스스로 일어설 수 없는 사람들을 일으키는 데 필요한 정력이 강화된다. 성경을 그들의 안내자로, 성령을 그들의 조력자와 위로자로 삼고, 그들은 새로운 일이 그들 앞에 주어지는 것을 본다. 일꾼들의 대열에 첨가되는 이들 영혼 하나 하나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영혼들을 구원하는 방법에 대하여, 도구와 교훈으로 무장되면 그를 진리의 빛으로 인도한 사람들과 동역자가 되는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그분의 진리는 전진한다.
세상은 설교단에서 가르치는 것보다 교회가 사는 것에 의하여 더 확신을 얻게 된다. 설교자는 복음의 이론을 알리지만, 교회가 실제로 살아가는 경건의 모습은 그 능력을 나타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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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의 필요
세상이 동정을 필요로 하고, 세상이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와 도움을 필요로 하고, 세상이 그리스도의 제자들 속에서 그리스도를 보아야 할 필요를 느끼는 한편, 하나님의 백성이 동정심을 나타내 보이고, 기도에 효력이 있게 하고 거룩한 모본을 닮은 품성을 계발할 기회를 필요로 하고 있는 점에서는 세상과 다를 바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과 불행한 자들과 병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두신 것은 이런 기회들을 제공하심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부탁하신 것이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돌보시려는 것만큼 돌봄을 입어야 한다. 이렇게 함으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의 교양과 품성을 주시면서 찌끼를 제거하시고 금을 순결케 하신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협조 없이도 일을 진행하실 수 있다. 그분은 우리의 돈이나 시간이나 노력에 의존하시는 분이 아니다. 그러나 그분이 보시기에 교회는 매우 귀중하다. 그것은 그분의 보화가 담긴 상자이며, 그분의 양떼가 들어 있는 우리이며, 그분께서는 그것이 점이나 흠이나 아무 다른 것이 없기를 원하신다. 그분께서는 말할 수 없는 사랑으로 교회를 바라보신다. 이것이 바로 그분께서 우리가 그분을 위해서 일하도록 기회를 주신 이유이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수고를 우리의 사랑과 충성의 표로 받으신다.
우리 가운데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두심으로 주님께서는 우리의 속마음을 나타내도록 시험하신다. 우리는 안전하게 원칙을 이탈할 수 없으며, 우리는 정의를 범할 수 없으며, 우리는 자비를 무시할 수 없다. 형제가 망해 가는 것을 볼 때 우리는 그냥 지나쳐서 다른편으로 가서는 안되며, 그를 도움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성취하고자 단호하고 즉각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하나님의 특별한 지시에 상충되게 일하면서 우리 자신의 모습이 우리의 하는 일에 나타나지 않을 수 없다. 우리의 행동 중에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우리를 이롭게 할 수 없다는 사상이 우리의 양심에 굳게 정착되어 뿌리가 내리고 견고하게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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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와 동정심과 의를 무시하는 사람, 가난한 자를 돌보지 않는 사람, 고통당하는 인류의 필요를 모른 체하는 사람, 친절하지도 예절 바르지도 아니한 사람은 품성 계발에 있어서 하나님께서 그와 협력하실 수 없다는 사실을 철필로 비석에 새기듯 마음에 새겨야 한다. 정신과 마음의 계발은 우리가 남들을 향해 동정심을 느끼고,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우리가 받은 유익과 특권을 나누어 줌으로 더욱 쉽게 이루어진다. 할 수 있는 대로 우리 것을 다 찾아 먹는 것은 영혼을 핍절하게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모든 특성은 그리스도의 사업을 행하면서 하나님께서 하도록 정하신 바로 그 일을 하는 사람들에 의해 수용되고자 기다리고 있다.
우리의 구주께서는 그분의 사자들을 보내사 그의 백성에게 증거케 하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계 3:20). 그러나 많은 이들이 그를 영접하기를 거절한다. 성령께서는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굴복시키고자 기다리신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께서 무엇인가를 요구하실 것이라고 생각한 나머지 문을 열고 구주를 안으로 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사렛 예수는 지나가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당신의 풍성한 은혜의 축복을 주고자 하시나 그들은 받기를 거절한다. 그리스도를 그분 자신의 성전에서 쫓아내는 일은 얼마나 두려운 일인가! 교회에 얼마나 큰 손실인가!
선한 사업은 희생을 요구한다. 그러나 이 희생을 통하여 연단이 이루어진다. 이 의무들은 타고난 감정과 성향과 더불어 싸운다. 그리고 그것들을 성취하므로 우리의 품성에 속한 꺼림칙한 특질들을 정복하고, 또 정복하게 된다. 싸움은 계속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은혜 안에서 자라 간다. 그리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영하며, 하나님의 나라에서 복 받은 자들 중에 들어갈 준비가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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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세적, 영적 축복들은 주인께 받은 것을 필요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자들에게 올 것이다. 예수께서는 피곤하고 배고픈 오천 명의 무리를 먹이시고자 기적을 행하셨다. 그분께서는 백성을 다 수용할 수 있는 쾌적한 장소를 택하시고, 그들로 앉게 하셨다. 그리고 떡 다섯과 작은 물고기 두 마리를 취하셨다. 배고픈 오천 명의 남자들에 여인들과 아이들을 더한 그 큰 무리를 그 적은 것으로 먹일 수는 없을 것이라는 이야기들이 틀림없이 오갔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축사하시고 제자들의 손에 놓으시고 나누게 하셨다. 그들은 무리에게 주었으며, 음식은 그들의 손에서 불어났다. 무리가 먹은 후에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앉아서 하늘이 주신 양식을 먹었다. 이것은 모든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 귀한 교훈이 된다.
순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종교는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우리 교인들은 절실히 실제적 경건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그들은 극기와 자아 희생을 실천해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같음에 대한 증거를 세상에 보여 줄 필요가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그들에게 요구하시는 사업은 대리인을 통하여, 즉 그들이 직접 져야 할 짐을 어떤 위원회나 기관에 지움으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그들의 돈과 시간과 개인적인 노력을 들여 병든 자를 돕고, 슬퍼하는 자를 위로하며, 가난한 자를 돕고, 실의에 처한 자를 격려하고, 흑암에 있는 영혼에게 빛을 주며,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하나님의 율법의 의무를 깨닫게 함으로 품성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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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들은 이 때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믿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을 주시하며, 저울질하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생활과 행동 어느 구석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지를 살피고 있다. 모든 이들에게 선을 행하는 일에 겸손히, 진지하게 일함으로 하나님의 백성은 진리가 들어간 모든 도회지와 마을에서 드러난 감화를 끼칠 수 있을 것이다. 진리를 믿는다는 사람들이 모두 다 기회가 주어지는 대로 이 일을 부여잡고 매일 그들이 살고 있는 인근 지역에서 작은 사랑의 일을 할 때 그리스도가 그들의 이웃에게 드러나게 될 것이다. 복음은 공교히 꾸민 이야기나 게으른 상상의 산물이 아니라 산 능력으로 나타날 것이다. 그것은 실제적인 것으로 나타나게 될 것이며, 그저 상상이나 흥분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 드러날 것이다. 이것은 설교나 신앙 고백이나 신조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사단은 모든 영혼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한다. 그는 실제적 동정이 마음의 순결과 이타심의 시금석임을 알고 있다. 그는 남들의 필요에 대하여 우리의 마음 문을 닫게 하여 고통을 보아도 우리의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지경에 이르도록 온갖 애를 쓰고 있다. 그는 사랑과 동정을 나타내지 못하도록 많은 장애물을 놓을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유다를 망가뜨렸다. 유다는 끊임없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였다. 이 면에 있어서 그는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대표한다. 우리는 유다와 같이 그리스도께 가까이 있다. 유다의 경우에서와 같이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우리를 그분과 하나 되게 하지 않으면, 우리 마음속에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생명을 바치신 사람들을 향한 진정한 동정심이 없다면 우리는 유다가 그리스도밖에 있으므로 사단의 유혹의 노리개가 된 것과 같은 위험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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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의로부터 벗어나는 첫걸음을 주의해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의 범과는 즉 그리스도의 정신을 나타내지 않는 태만은 다른 것, 또 다른 것을 위해 문을 열어 급기야는 마음의 원수의 원칙들에 의해 완전히 장악될 것이기 때문이다. 만일 이기심이 함양되면 오직 그리스도의 능력 외에는 아무 다른 것이 굴복시킬 수 없는, 마구 삼키는 정욕이 된다.
이사야 58장의 기별
나는 우리 교회의 모든 신자들, 진실한 모든 선교사, 셋째 천사의 기별을 믿고 안식일에 발을 금하는 모든 사람에게 이사야 58장의 기별을 심사숙고하라고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장에 기록된 자선 사업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에 그분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사업이며 그분께서 친히 맡겨 주신 사업이다. 우리는 그 기별이 어디에 적응되며 언제 그것이 성취될 것인지에 관하여 의심할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네게서 날 자들이 오래 황폐된 곳들을 다시 세울 것이며 너는 역대의 파괴된 기초를 쌓으리니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하였기 때문이다. 세상을 창조하신 사업의 표요, 하나님의 기념일인 제칠일 안식일이 불법한 자에 의하여 변경되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무너진 데를 수보하여야 할 특별할 사업을 가졌으며 종말이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이 일은 더욱 긴급하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그들이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어야 한다. 그들은 거할 길을 수축하는 자들이다.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만일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하면 네가 여호와의 안에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 내가 너를 땅의 높은 곳에 올리” (13, 14절) 리라. 참된 의료 선교 사업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의 위대한 기념일인 안식일이, 특히 언급되어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준수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다. 계명을 준행하는 것은 하나님의 도덕적인 형상을 인간에게 회복하는 사업과 관련되어 있다. 이것은 이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진정시켜야 할 사업이다. 이 사업이 올바로 수행된다면 교회에 풍요한 축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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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를 믿는 자들로서 우리는 더 큰 믿음이 필요하다. 우리는 더욱 열렬히 기도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왜 그들의 기도가 그렇게 생기가 없고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여 흔들리고 그리스도인의 경험이 그렇게 어둡고 불확실한지에 대하여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들은 “우리가 금식하여 만군의 여호와 앞에 슬프게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말한다. 이사야 58장에 보면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상태를 어떻게 변화시킬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다. 그분께서 말씀하신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주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6, 7절). 이것이야말로 그리스도께서 마음이 연약하고 의심하고 떠는 자들을 위해 지어 주신 처방이다. 슬퍼하는 자 곧 여호와 앞에서 슬프게 행하는 자들은 일어나 도움이 필요한 자들을 도와주도록 하라.
모든 교회는 성령의 주관하시는 능력을 필요로 한다. 지금이 바로 이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때이다. 그러나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모든 일 속에서 그분께서는 사람이 그분과 협력하기를 계획하신다. 이 목적을 위하여 주님께서는 교회가 더 높은 경건, 의무에 대한 더 바른 이해, 조물주에 대한 그들의 의무에 대한 더 분명한 깨달음을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그들에게 순결하고 성결하며 일하는 백성이 되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의 돕는 일은 이것이 이루어지게 하는 방법 중에 하나이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사업을 하는 모든 자들과 교통하시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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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머리와 능력을 사용하여 계속 일하라. 그대들의 동료들이 조화로운 행동으로 서로 협력할 수 있게 어떤 이름으로 조직을 하여 일하도록 일깨우라. 교회의 젊은 남녀들이 일하도록 하라. 의료 선교 사업과 셋째 천사의 기별의 선포를 연합시키라. 교인들이 수년 동안이나 죽은 상태로 있는데, 그 상태에서 나오게 하고자 정규적이고 조직된 노력을 기울이라. 건강 개혁의 원칙을 따라 살 일꾼들을 교회들에 내보내라. 식욕의 극기가 필요함을 아는 사람들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교회에 덫이 될 것이다. 생기가 우리 교회들에 들어오지 않을 것인지를 살펴라. 사업에 새로운 요소가 들어와야 한다. 하나님의 백성은 그들의 큰 필요와 위험을 깨달아야 하고, 그들에게 가장 가까이 있는 일을 붙잡아야 한다.
이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과 함께 때를 얻든지 얻지 못하든지 말씀을 나누며, 어려운 자를 돕고, 그들에게 그리스도의 놀라운 사랑을 말하면 구주께서는 항상 임재하셔서 가난하고 비참하고 가련한 사람들의 마음에 감명을 끼치신다. 교회가 하나님의 주신 사업을 받아들일 때, 다음과 같은 약속이 이루어진다. “그리하면 네 빛이 아침빛같이 비췰 것이며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며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가 되신다. 이 사업에 있어서 그분은 우리의 앞장을 서신다. 그리고 주의 영광이 뒤따른다.
하늘에 있는 만상은 그리스도의 전선에서 일할 모든 영혼이 이 일에 들어오기를 기다린다. 우리 교인들이 그들의 지정된 일을 개인적으로 붙잡으면 그들은 전혀 다른 분위기 속에 싸이게 될 것이다. 그들의 하는 일에 축복과 능력이 임할 것이다. 그들은 더욱 고상한 마음과 생각을 갖게 될 것이다. 그들의 영혼을 묶었던 이기심이 극복될 것이다. 믿음은 산 원칙이 될 것이다. 그들의 기도는 더욱 열렬해질 것이다. 살리며 성결케 하는 성령의 감화가 그들 위에 임할 것이며, 그들은 하늘 왕국에 더 가까이 이끌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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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주께서는 지위와 계급과 세상의 명예와 부를 무시하신다. 그분에게 귀중한 가치가 되는 것은 품성이며, 목적에 대한 헌신도이다. 그분은 강한 자나 세상적으로 인기 있는 자의 편에 서지 않으신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타락한 자를 일으키고자 허리를 굽히셨다. 그분께서는 약속과 보증의 말씀을 통하여 상실되고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자신에게로 구원하고자 하신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그분의 제자들 중에 누가 부드러운 동정심을 나타낼 것인지를 보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 중에 누가 예수의 사랑을 나타낼 것인지를 보고 있다.
죄의 비참함과 타락한 인류를 위한 그분의 무한한 희생 속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거룩한 동정심을 깨닫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교통하게 된다. 그들의 마음은 부드러움으로 가득 차고, 얼굴 표정과 어조가 동정심을 나타내며, 그들의 노력은 진지한 염려와 사랑과 힘으로 나타나며, 그들은 하나님을 통하여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구원하는 능력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인내와 동정과 사랑의 씨를 뿌려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뿌리는 것을 수확으로 거둘 것이다. 우리의 품성은 영원을 위하여 형성된다. 이 땅에서 우리들은 하늘을 위하여 훈련을 받는다. 우리는 모든 것이 은혜, 거저 주시는 은혜, 최고의 은혜로 이루어진 것을 안다. 언약 속의 은혜는 우리를 양자로 삼았다. 구주의 은혜는 우리의 구속을 낳았고, 우리로 거듭나고 그리스도와 함께 유업을 이을 아들로 만들었다. 이 은혜가 남들에게 나타날 수 있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