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6 119-128 (350일)

가정의 신앙을 가르침

세상에 마지막 자비의 기별을 전하는 자들은 가정의 신앙에 관하여 부모들을 가르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느껴야 한다. 아버지와 어머니와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가 제시되어 남녀들이 순종해야 할 그들의 의무를 깨닫게 될 때, 그들 자신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자녀들을 위해서도 결정할 책임이 있음을 그들에게 알려 주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세상을 멸망으로 휩쓸어 가는 죄악을 대항하는 유일한 안전책임을 알려 주라.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순종이나 불법 중 어느 하나에 대한 모본을 보여 주고 있다. 그들의 모본과 교훈에 의하여, 대부분의 경우 그들의 가정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될 것이다. 미래의 생애에 있어서 자녀들은 부모가 꼴 지어 준 그대로 될 것이다.

만일 부모들이 그들의 행동의 결과를 추적하여, 그들의 모본과 교훈이 어느 정도로 죄의 힘이나 의의 힘을 영속시키고 증가시키는지 볼 수 있었을 것 같으면, 변화가 틀림없이 이루어졌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전통과 관습의 마력을 끊어 버렸을 것이다.

목사들은 이 문제들을 교인들에게 강조해야 한다. 매우 오랫동안 등한히 해 온 엄숙한 의무에 대한 확신을 부모들의 양심에 새겨 주라. 이것은 다른 어떤 것으로도 할 수 없는 일 곧 바리새주의적 정신과 진리를 저항하는 일을 분쇄해 버릴 것이다. 가정의 신앙은 우리의 큰 소망이며, 그것은 온 가족을 하나님의 진리로 돌아오게 하는 밝은 전망을 안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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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대에 대처함

우리의 목사들과 교사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타락한 세상에 전해야 한다. 부드러움으로 녹은 마음을 가지고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라. 오류에 빠진 모든 자들을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 대하라. 그대가 만나서 일하는 사람이 진리를 당장에 수용하지 않으면, 그를 비판하지 말라. 정죄하거나 나무라지 말라. 그대가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부드러움과 사랑으로 그분을 전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우리는 불신과 반대를 만날 각오를 해야 한다. 진리는 항상 이러한 요소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 설사 가장 심한 반대를 만난다 하더라도 그 반대자를 정죄하지 말라. 그들이 바울이 한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는 인내와 온유와 오래 참음을 나타내야 한다.

인기 없는 진리를 전하는 데 있어서 무거운 시련과 혹심한 투쟁을 감내 해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예수님을 생각하라. 그가 그대를 위해 당하신 것을 생각하고 침묵하라. 비록 매를 맞고 거짓 고소를 당하더라도 불평하지 말라. 싫은 소리를 내지 말고, 비난이나 불평의 생각이 마음에 들지 않게 하라. 바른 길을 택하라.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이는 복을 유업으로 받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고 악에서 떠나 선을 행하고 화평을 구하여 이를 좇으라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니 저희의 두려워함을 두려워 말며 소동치 말고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벧전 3: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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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오류에 빠진 자들을 온유함으로 대해야 한다. 그대 자신은 최근에 죄 가운데서 헤매지 않았는가? 그리스도께서 그대를 향해 인내를 베푸셨기 때문에, 그대도 남들에게 부드러우며 인내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한 영혼이라도 곁길로 가게 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반대하는 자들에게 큰 친절을 베풀라고 많이 권면하셨다.

우리의 생명은 하나님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감추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개인적으로 알아야 한다. 그럴 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그분의 세상에 바로 전할 수 있게 된다. “주여, 예수께서 내 입장이라면 어떻게 하실 지를 내게 가르쳐 주옵소서” 라는 기도가 그치지 않게 하라. 우리가 어디 있든지 우리의 빛이 선행을 통하여 비치게 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게 하자. 이것이 우리 생명을 위한 크고 중요한 점이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이 비록 정죄가 바른 것이라 하더라도, 잘못을 정죄하는 방법 이외의 방법을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반대자들에게 비난의 화살을 쏘아서 진리로부터 그들이 멀어지게 하는 것보다 더 큰 일을 원하신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세상에 오셔서 하고자 하셨던 일은 담을 쌓고, 계속해서 사람들의 잘못을 늘어놓아 그들을 찌르시는 것이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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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임을 당한 백성들을 일깨우고자 하는 사람은 그들에게 가까이 가서 사랑으로 그들을 위해 일해야 한다. 그는 거룩한 영향의 중심이 되어야 한다.

진리를 옹호할 때에 가장 심한 반대자를 존중함으로 대해야 한다. 어떤 이들은 우리의 노력에 대해 반응하지 않고 복음의 초청을 경홀히 할 것이다. 다른 이들이 하나님의 자비의 경계선을 넘어가 버린 자라고 생각되는 이들도 그리스도에 의해 사로잡힐 것이다. 대쟁투에 있어서 최후의 일은 빛과 증거를 거절하지 않았으나 밤중의 어둠 가운데 있으며 무지 가운데서 진리를 대항하는 사람들을 일깨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을 양심적으로 대하라. 불신으로 굳힐 말이나 행동은 절대로 하지 말라.

만일 어떤 사람이 교역자들을 정치적 혹은 기타 문제로 토론이나 논쟁을 시키고자 한다면 그들의 설득이나 도전에 귀를 기울이지 말라. 하나님의 사업을 단호하며 강하게 수행하라. 그리스도의 온유로 가능한대로 조용히 일을 진척시키라. 인간의 자랑이 들리지 않게 하라. 자부심의 기색을 보이지 말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셔서 신성한 진리를 전하게 하신 사실이 나타나게 하자. 말씀을 전하라. 부지런하며, 진지하며 열성을 내라.

그대가 말에 조심한다면 그대의 가르침의 영향은 열 배나 더할 것이다. 생명에서 생명으로 인도하는 향기가 되어야 하는 말씀이 전달되는 정신에 의하여 죽음에서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이 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그대의 태도나 말로 인하여 그대가 한 영혼의 문을 닫는다면 그대는 그 영혼을 심판 때에 대하게 될 것이다.

교회증언을 인용할 때에 그것을 실감나게 전하는 것이 그대의 의무인양 생각지 말라. 교회증언을 읽을 때에 그대의 말을 더해 섞지 말라. 왜냐하면 이로 인해 청중이 주께로부터 온 말과 그대의 말을 분별할 수 없기 때문이다. 주의 말씀을 거슬리는 것으로 만들지 말라. 우리는 개혁이 일어나길 바란다. 우리가 원하는 것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악한 영이 자주 우리의 잔에 쓸개즙을 떨어뜨려 다른 이들이 쓴맛을 보게 되는 일이 생긴다. 잘못된 권고로 그들의 영이 상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반역할 마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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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가 전하는 모든 설교, 쓰는 모든 기사는 다 바른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 속에 든 한 방울의 쓸개즙이 청중과 독자에게 독이 될 것이다. 한 방울의 독물로 인하여 그 사람은 그대의 모든 선하고 적합한 말을 버릴 것이다. 다른 사람이 그 독물을 마실 것이다. 그가 그런 심한 말을 좋아하기 때문에 그는 그대의 예를 따르고 그대가 말하는 대로 말할 것이다. 그리하여 악이 증가된다.

영원한 진리의 원칙을 전하는 사람들은 두 감람나무 가지에서 흘러나와 마음을 채우는 성유가 필요하다. 이것은 개혁하는 말씀 속에 스며 있으며, 화나게 하지 않을 것이다. 진리는 사랑으로 전해야 한다. 그러면 주 예수께서 그분의 성향을 통하여 힘과 능력을 공급하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의 일이다.

자신을 신령한 흐름 속에 두라. 거기서 그대는 하늘의 영감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피곤하고, 무거운 짐에 눌리고, 가난하고, 마음 상하며, 괴로운 영혼을 예수께 안내하라. 그분은 모든 영적 힘의 샘이시다. 어두움 가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사 이를 찬양하는 일에 있어서 충성된 용사가 되라. 예수께서 살아 계셔 우리를 위해 중보하심을 필설을 다하여 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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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은 양의 비유

길 잃은 양의 비유는 모든 가정에서 표어로 간직되어야 한다. 거룩한 목자께서는 아흔 아홉 양을 남겨 놓고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들로 나간다. 덤불과 진구렁과 바위에는 갈라진 틈이 있으므로, 그 목자는 양이 이런 장소 중 어딘가에 있으면 친절하게 손을 뻗어 도와주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멀리서 양의 울음소리가 들려 올 때, 그분은 잃어버린 당신의 양을 구원해 내기 위하여 어떤 어려움, 아니 온갖 어려움을 당한다. 잃은 양을 발견할 때, 그분은 책망의 말로 그 양을 대하지 않으신다. 그분에게 있어서는 살아 있는 양을 발견한 것이 유일한 기쁨이다. 그분은 튼튼하고 부드러운 손으로 찔레들을 헤치거나 수렁 속에 들어감으로 잃은 양을 찾아내신다. 그분은 친절하게 그것을 어깨에 메고 우리로 돌아오신다. 순결하고 죄 없으신 구주께서 죄 많은 사람들, 불결한 사람들을 메고 가신다.

죄악을 담당하신 분께서는 더럽혀진 양을 메고 가신다. 그러면서도 당신이 지고 가시는 그것이 너무도 귀중하므로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고 즐거워하며 노래하신다. 그대들 각 사람이 이와같이 개인적으로 그리스도의 어깨로 운반되었다는 사실을 생각해야 한다. 어떤 사람도 으뜸이 되고자 하는 정신, 비평하는 정신, 스스로 의롭다 하는 정신을 품지 않도록 해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목자가 거친 들판에서 고통스런 수색을 하지 않았을 것 같으면 어떤 한 마리 양도 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한 양을 잃어버렸다는 사실은 목자의 동정심을 일으키고 그분이 수색 활동을 착수하기에 충분하였다.

이 조그마한 세상은 하나님의 아들이 육신을 입으시고 고난을 당하신 장소였다. 그리스도께서는 타락하지 않은 세계로 가지 않으시고 저주로 완전히 시들어 버리고 훼손된 이 세상으로 오셨다. 외관상으로 볼 때, 유리한 것은 없고 가장 절망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공의를 세우기에 이르” (사 42:4) 셨다. 우리는 잃어버린 것을 찾았을 때 목자가 나타낸 큰 기쁨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한다. 그분은 이웃 사람들을 불러서 “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고 한다. 온 하늘은 이 기쁨의 노래에 화답한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노래로써 구원받은 자에 대한 기쁨을 나타내신다. 이 얼마나 거룩한 기쁨의 장면이 이 비유에 나타나 있는가! 그 기쁨에 참여하는 것이 그대들의 특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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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모본을 앞에 놓고 있는 그대들은 잃어버린 자를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계신 분과 협력하고 있는가?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들인가? 그대들은 그분을 위하여 고난과 희생과 시련을 견딜 수 있는가? 젊은이들과 실수하는 자들의 영혼을 위하여 선을 행할 기회가 있다. 만일, 그대들이 말과 행동으로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음을 나타내는 자를 보거든 그를 책망하지 말라. 그를 정죄하는 것이 그대들의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의 곁으로 가서 그를 도와주라. 그리스도의 겸손과 그분의 온유와 겸비를 생각하고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거룩한 사랑으로 충만해진 마음을 가지고 일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 때에 내가 이스라엘 모든 가족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되리라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칼에서 벗어난 백성이 광야에서 은혜를 얻었나니 곧 내가 이스라엘로 안식을 얻게 하러 갈 때에라 나 여호와가 옛적에 이스라엘에게 나타나 이르기를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인도하였다 하였노라” (렘 31:1-3).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려면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것은 고통스런 죽음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명 곧 영혼에게 생명이 된다. “지존 무상하며 영원히 거하며 거룩하다 이름하는 자가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거하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거하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성케 하며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성케 하려 함이라” (사 5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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섹션 3

교육 개혁의 필요성

“그들은 오래 황폐하였던 곳을 다시 쌓을 것이며 예로부터 무너진 곳을 다시 일으킬 것이며 황폐한 성읍 곧 대대로 무너져 있던 것들을 중수할 것이며.” “너를 일컬어 무너진 데를 수보하는 자라 할 것이며 길을 수축하여 거할 곳이 되게 하는 자라 하리라” (사 61:4, 58:12). 이 영감의 말씀은 현대 진리를 믿는 신자들 앞에 우리 자녀들과 젊은이들의 교육에 있어서 지금 해야 할 사업을 제시해 준다. 이 마지막 시대를 위한 진리가 첫째와 둘째와 셋째 천사의 기별의 선포를 통하여 세상에 알려졌을 때, 우리는 우리 자녀들의 교육에 다른 형태의 것이 도입되어야 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나 어떤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지 이해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렸다.

우리의 사업은 개혁적이다. 그리고 우리의 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사업의 탁월성을 통하여 사람들의 관심이, 죽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한 마지막 큰 활동에 쏠리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이다. 우리의 학교들에서 교육의 표준이 낮아져서는 안 된다. 그것은 현재 놓여 있는 표준보다 훨씬 더 높여져야 한다. 그러나 실시되는 교육은 단순히 교과서의 지식에 국한되어서는 안 된다. 교과서의 공부만으로는 학생들에게 필요한 훈육을 할 수 없고 진정한 지혜를 줄 수도 없다. 우리 학교들의 목적은 주님의 어린 가족들에게 그분의 성장과 발달의 계획을 따라 훈련받을 수 있는 장소들을 제공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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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단은 자신의 계획과 원칙들을 교육 제도에 투입시키기 위하여 가장 교묘한 방법을 사용해 왔다. 그리하여 그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마음을 단단히 사로잡고 있다. 그러므로 사단의 술책을 방해하는 것이 참된 교육자의 사업이다. 우리는 우리 자녀들을 세상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양육하고, 그들의 재능을 세상 일에 사용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며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데 사용하도록 가르칠 엄숙하고 거룩한 언약을 하나님과 맺고 있다. 그들은 자기들이 창조주의 형상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본받아야 할 분이 된다는 사상을 감명 깊이 이해해야 한다. 구원의 지식을 알려 주고 생애와 품성을 하나님의 모습과 일치시켜 줄 교육에 가장 열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과, 황금의 실처럼 생애에 짜여져 있는 영혼의 순결이다. 이와 같이, 사람이 도달해야 할 높이는 아직껏 충분히 이해되지 않고 있다.

이 과업을 달성하기 위하여서는 넓은 기초가 놓여져야 한다. 새로운 목적이 도입되어 위치가 구축되어야 한다. 학생들은 그들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성경의 원칙을 적용하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 무엇이나 비뚤어진 것, 무엇이나 바른 노선에서 벗어나 구부러진 것을 명백히 지적 당하고 회피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존속해서는 안 될 불의이기 때문이다. 모든 교사가 건전한 원칙과 교리를 사랑하고 간직하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모든 학생들의 길을 비추어 줄 빛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 학교에 있어서의 셋째 천사의 기별

요한계시록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마지막 날에 당신의 백성들에게 요구하시는 특별한 사업이 있음을 읽게 된다. 그분은 당신의 율법을 계시하셨고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이 진리는 끊임없이 펼쳐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진리에 관하여 슬기롭게 되어 바른 것과 그릇된 것, 의와 불의를 분별할 수 있게 되기를 바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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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천사의 기별, 곧 이 시대를 위한 시험하는 큰 진리는 우리의 모든 교육 기관에서 가르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 기관들을 통하여 이 특별한 경고가 주어지고 밝은 빛의 줄기가 세상을 밝히기를 바라신다. 시간은 짧다. 마지막 날의 위기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러므로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어진 교훈에 유의해야 한다.

요한이 추방을 당하여 그가 사랑하던 사람들로부터 멀리 밧모 섬에 외로이 있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충성된 그의 증인이 어디 있는지 아셨다. 요한이 말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주의 날은 제칠일, 곧 창조의 안식일이다.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시고 복 주신 날에 그리스도께서는 세상 역사가 끝나기 전에 일어날 사건들을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 하셨다. 우리가 그것을 잘 알게 되기를 하나님은 바라셨다. 그분께서 다음과 같이 선포한 것은 헛된 것이 아니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계 1:9, 10, 1-3). 이것이 인내로 베풀어야 할 교육이다. 우리의 교과가 우리가 사는 시대에 적합한 것이 되도록 하라. 우리의 종교 교육이 하나님이 보내시는 기별에 일치하도록 하자.

우리는 장관들 앞에 서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우리의 충성에 답변하고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알려 주어야 할 것이다. 젊은이들은 이런 사실들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은 세계의 역사가 끝나기 전에 있는 일들을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영원한 복리에 관계가 있다. 그러므로 교사들과 학생들은 그것들에게 더욱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말과 글로써, 때를 따라 양식이 될 것들을 젊은이에게는 물론이요 나이 많은 사람들에게도 나누어 주어야 한다.

교회증언 6권 pp. 119-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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