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장 — 주의 날이 가까움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도다 그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황무와 패괴의 날이요 캄캄하고 어두운 날이요 구름과 흑암의 날이요 나팔을 불어 경고하며 견고한 성읍을 치며 높은 망대를 치는 날이로다 내가 사람들에게 고난을 내려 소경같이 행하게 하리니 이는 그들이 나 여호와께 범죄하였음이라” (습 1: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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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내가 등불로 예루살렘에 두루 찾아 찌끼같이 가라앉아서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습 1:12).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 명령이 시행되기 전, 광음이 겨같이 날아 지나가기 전,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임하기 전,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습 2:1-3).
우리는 마지막 때에 가까이 이르고 있다. 나는 하나님의 보응하시는 심판이 이 땅에 이미 내리고 있음을 보았다. 주님께서는 바야흐로 일어나려고 하는 사건 등에 관하여 우리에게 경고하셨다. 빛은 그분의 말씀에서 비취고 있지만, 어두움이 세상을 덮고 캄캄함이 사람들을 뒤덮고 있다.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하리라” (살전 5:3).
사람들이 그 큰 미혹을 스스로 초래한 길을 우리가 피하기 위하여 이 무서운 흑암의 원인을 살펴보는 것이 우리의 의무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깨닫고 순종할 수 있는 기회를 세상에 주셨다. 그분은 당신의 말씀을 통하여 진리의 빛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분은 경고와 권면과 권고를 보내셨다. 그러나 그분의 음성에 순종할 자들은 별로 없을 것이다. 유대 민족처럼 대다수의 사람들, 심지어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까지도 그들의 우월한 장점을 자랑은 하지만 그 큰 축복들에 대한 보답을 하나님께 전혀 하지 않는다. 무한한 자비로써 마지막 경고의 기별이 세상에 전해져서 그리스도께서 문 앞에 오셨다는 사실이 선포되고 깨어진 하나님의 율법에 주의를 환기시키고 있다. 그러나 홍수 전의 사람들이 노아의 경고를 조롱으로 거절한 것처럼 오늘날 쾌락을 좋아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성실한 종들의 기별을 거절한다. 하나님의 진노가 그분의 율법을 범한 자들에게 바야흐로 내리려고 하는 동안, 세상은 그 사업과 쾌락에 여전히 몰두된 채 변함 없이 그 일을 따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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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로우신 우리 구주께서는 이 시대에 당신을 따르는 자들을 둘러쌀 위험을 미리 보시고 그들에게 특별한 경고를 하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눅 21:34-36). 만일 교회가 세상의 길과 유사한 길을 따른다면 그들도 동일한 운명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렇다기보다는 그들이 더 큰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의 벌은 회개하지 않은 자들의 벌보다 훨씬 더 클 것이다.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는 세상에 있는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서 있는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공언한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애와 품성은 그런 믿음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악한 자들이 가라지처럼 마지막 큰 날의 불에 태워지기 위하여 거둬들여지고 있는 동안, 의인들은 귀중한 알곡처럼 하늘의 곳간에 들어가기 위하여 단으로 묶여질 날이 우리에게 이르러 오고 있다. 그러나 알곡과 가라지는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마 13:30) 될 것이다. 생애의 의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의인들은 마지막 날까지 경건하지 못한 자들과 접촉하게 될 것이다. 빛의 자녀들은 흑암의 자녀들 사이에 흩어져서, 모든 사람에게 뚜렷한 구별이 보여질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자녀들은,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벧전 2:9) 되어야 한다. 마음 속에서 불타고 있는 하나님의 사랑, 생애에 나타난 그리스도와 같은 조화는 세상에 있는 사람들에게 하늘의 모습을 잠깐 보여 주게 될 것이므로 그들이 보고 그 탁월함을 분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유유 상종이다. 동일한 축복의 샘에서 마시고 있는 자들은 서로 더 가까워질 것이다. 신자들의 마음 속에 있는 진리는 복되고 행복한 동화 (同化) 를 이루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와 하나되신 것처럼 당신의 제자들을 하나되게 해달라고 드리신 그분의 기도가 응답될 것이다. 진정으로 거듭난 모든 사람들의 마음은 이와 같이 하나가 되기 위하여 노력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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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건하지 못한 자들에게는 영구적 불화를 부분적으로 감추는 일에 불과한 기만적인 조화가 있을 것이다. 다른 모든 점에서는 증오와 경쟁 의식과 시기와 치명적 분쟁으로 분열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반대하는 일에는 그들이 하나로 연합한다.
순수한 금속과 열등한 금속이 오늘날 함께 섞여 있기 때문에 무한하신 하나님의 식별하시는 눈만이 그들을 분명히 구별하실 수 있다. 성결과 진리의 도덕적 자석은 질 낮은 가짜 금속은 물리치는 반면에 순수한 금속은 함께 끌어 모을 것이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습 1:14). 그러나 우리는 어디에서 참된 재림 정신을 바라볼 수 있는가? 누가 우리 앞에 다가온 시험의 때에 서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가?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하고, 거룩하고, 시험하는 진리를 하나님께로부터 위탁받은 백성들은 그들의 위치에서 잠들어 있다. 그들은 그들의 행동을 통하여, 우리는 진리를 가지고 있으며, 우리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계 3:17) 고 말한다. 그러나 참된 증인은 네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7) 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씀은 얼마나 솔직하게 교회의 현재의 상태를 묘사하고 있는가.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성령에 의하여 주어진 경고의 기별들은 하나님의 종들을 통하여 증거되고 품성의 결함들이 잘못한 자들 앞에 제시된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그것은 나의 경우를 나타내는 것이 아니다. 나는 그대들이 제시하는 기별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나는 할 수 있는 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다. 나는 진리를 믿는다.”
마음 속으로 “주인이 더디 오리라” (마 24:48) 고 말한 종은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라고 공언했다. 그는 마음으로는 사단에게 굴복했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하나님의 사업에 헌신한 종이었다. 그는 조롱하는 자처럼 진리를 공공연하게 부인하지는 않을지라도 그의 생애를 통하여 주님이 더디 오리라는 마음 속의 감정을 나타낸다. 추측 때문에 그는 영원한 유익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그는 세상의 처세훈 (處世訓) 을 받아들여 그 습관과 관습을 따른다. 이기심, 세상의 자랑, 야망 등이 지배적이다. 그의 형제들이 자기보다 더 높은 위치에 설까 두려워서 그는 그들의 활동을 헐뜯고 그들의 동기를 비난하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그는 그의 동료 종들을 때린다. 그가 하나님의 백성들과 분리됨에 따라 그는 점점 더 경건하지 않은 자들과 연합한다. 그는 “술친구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며, 세상 사람들과 연합하고 그들의 정신에 동참하고 있음이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는 속임을 당하여 육적인 안락 가운데로 빠져들고 망각과 무관심과 나태에 정복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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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악의 시초는 경성과 은밀한 기도의 등한이었다. 그 다음에는 다른 종교적 의무의 태만이 따랐고, 그같이 하여 뒤이은 온갖 죄에 대한 길이 열렸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유혹, 육신적 본성의 부르짖음, 사단의 직접적인 시험 등으로 공격을 받을 것이다. 아무도 안전하지 않다. 우리의 경험이 어떠했는지, 우리의 지위가 아무리 높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깨어 기도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사단의 지배를 받게 된다.
제자들에게 대한 구주의 교훈은 각 시대에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주어졌다. 그분께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고 말씀하셨을 때, 그분께서는 마지막 때 가까이 살아가는 자들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이다.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성령의 귀중한 은혜를 마음 속에 간직하는 것이 우리의 사업이다.
사단은 끊임없는 인내와 강한 정력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을 자기의 대열로 끌어가기 위하여 활동하고 있다. 그는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살후 2:10) 공작하고 있다. 그러나 사단이 흑암의 왕국을 유지시키는 유일한 일꾼은 아니다. 죄를 짓도록 유혹하는 자는 누구나 유혹자이다. 큰 기만자를 본받는 자는 누구나 그의 조력자가 된다. 악한 일을 뒷받침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자들은 사단의 고된 일을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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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은 원칙과 동기를 드러낸다. 주님의 포도원에 있는 나무라고 주장하는 많은 사람들이 맺은 열매는 그들이 가시와 찔레에 지나지 않음을 보여 준다. 온 교회가 그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의 그릇된 행동을 시인해 줄 수도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시인이 잘못을 옳은 것으로 입증하지는 않는다. 포도를 가시딸기로 만들 수는 없다.
현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이 그들의 진정한 위치를 이해할 것 같으면, 그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단념할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대항하고, 경고의 음성을 대항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항하여 그들의 모든 영향력을 발휘해 왔다. 그들은 사단의 일을 해왔다. 많은 사람들은 사단의 기만에 의하여 너무도 얼이 빠졌기 때문에 결코 회복될 수 없을 것이다. 이와 같은 배교의 상태는 필연 많은 영혼들을 잃어버리게 할 것이다.
교회는 계속해서 경고를 받아왔다. 하나님의 백성의 의무와 위험은 분명히 밝혀졌다. 그러나 그들에게 세속적 요소가 너무도 강함이 입증되었다. 영혼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게 하는 습관과 행습과 유행이 경고와 성령의 호소를 무시하고 여러 해에 걸쳐 기반을 구축해 왔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의 길이 그들 자신의 눈에 바르게 보이고 성령의 음성은 거의 들리지 않게 되어 버렸다. 사람이 일단 자기 자신을 큰 기만자의 세력에 굴복시킬 때 그가 죄 가운데 얼마나 깊이 빠질 수 있을 것인지 아무도 말할 수 없다. 사단은 가룟 유다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주님을 팔도록 유혹했다. 사단은 아나니아와 삽비라에게 성령을 속이게 했다. 하나님께 완전히 헌신하지 않은 자들은 비록 그들이 그리스도를 섬기고 있노라고 스스로 자부할지라도 사단의 사업을 하도록 인도될 수가 있는 것이다.
형제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 고 호소하는 바이다. 그리스도인 사랑의 따뜻함과 순결을 유지하는 데는 끊임없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공급이 요망된다. “너희 사랑을 … 점점 더 풍성하게 하” 고,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 (빌 1:9-11) 는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 위하여 그대들은 모든 수단을 활용해 왔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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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와 진리를 위하여 굳게 서야 할 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공격을 자극해온 연약함과 우유 부단을 나타냈다. 은혜 안에서 자라나지 못하고 신령한 재능으로 가장 높은 표준에 도달하고자 노력하지 않는 자들은 정복당할 것이다.
이 세상은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나그네와 원수의 땅이다. 그가 자신의 방어를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 갑주를 입고 성령의 검을 휘두르지 않을 것 같으면, 그는 흑암의 세력의 포로가 될 것이다. 모든 사람의 믿음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모든 사람은 마치 금이 불 속에서 연단되는 것처럼 연단될 것이다.
교회는, 사랑과 인내의 발휘가 계속적으로 요구되는 불완전하고 실수가 많은 남녀들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오랫동안 전체적으로 미지근한 상태가 지속되어 왔다. 교회에 들어온 세속적 정신은 분리와 흠잡기와 적의와 분쟁과 범죄를 수반하게 되었다.
마음과 생애에 있어서 헌신하지 못한 사람들이 설교를 더욱 적게 하고, 하나님 앞에 심령을 겸비하게 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바칠 것 같으면, 우리는 주님께서 그대들을 돕기 위하여 나타나시고 그대들의 배교를 고쳐주시기를 바랄 수 있을 것이다. 최근의 설교 중 많은 것들은 거짓 안전이 생기게 한다.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의 중요한 관심사가 우리의 목사들 중 어떤 사람들의 경험과 같이 하나님과의 진정한 연결을 별반 이루어 오지 않은 자들에 의해서는 현명하게 처리될 수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 사업을 맡기는 것은 마치 어린아이들에게 큰 배를 맡겨서 바다에서 조종하게 하는 것과 같다. 하늘의 지혜가 부족하고, 하나님과의 산 능력이 결핍되어 있는 자들은 빙산과 폭풍을 뚫고 복음의 배를 조종할 수 없다. 교회는 심한 투쟁을 거쳐가고 있다. 그러나 그런 위험 속에서 많은 사람들은 분명히 파선시킬 사람들의 손에 교회를 위탁할 것이다. 우리는 이제 한 도선사 (導船士) 를 배에 태울 필요가 있다. 우리가 항구에 접근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세상에 빛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은 처녀가 되어 그들의 등과 함께 등잔에 기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모든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시고, 용서가 많으신 주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구원해 주시므로 우리가 악인들과 함께 멸망당하지 않게 해주시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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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은 투쟁과 시련의 시기에, 우리는 신앙적 원칙에서, 확고한 신앙적 확신에서, 마음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보증에서, 거룩한 사물에 대한 풍성한 경험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모든 도움과 위로가 필요하다. 우리는 오직 은혜 안에서 착실하게 성장한 결과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들이 될 수 있다.
아, 멀어 있는 눈을 뜨게 하고 영적 이해력을 깨우쳐 주기 위하여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죄는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완전한 도덕적 개혁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영속적인 산 믿음과 함께 하나님의 사랑을 가져야 한다. 이것이 불로 연단한 금이다. 우리는 그것을 그리스도에게서만 얻을 수 있다. 진지하고 열렬하게 구하는 모든 사람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 그의 심령은 지각을 초월하는 그 사랑을 충분히 깨닫기 위한 강한 열망으로 충만해질 것이다. 신령한 생애에서 향상해 감에 따라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숭고하고 고상한 진리를 더욱 잘 깨닫게 되고, 마침내 바라봄으로써 그는 그의 구속주의 모습으로 변화되고 그 모습을 반영할 수 있게 될 것이다.
9 장 — 어리석은 결혼
나는 오늘날의 젊은이들이 그들의 위험을 진정으로 깨닫고 있지 못함을 보았다. 하나님께서 여러 분야의 당신의 사업에 일꾼들로 받아 주시고자 하지만 사단이 개입하여 그들을 그의 그물에 너무도 얽어 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과 분리되고 그분의 사업에서 무력해져 버린 젊은이들이 많이 있다. 사단은 용의 주도하고 끈기가 있다. 그는 부주의한 자들을 어떻게 함정에 빠뜨릴 것인지 안다. 그리고 신의 간계에서 피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는 예가 별로 없다는 것은 우려할 만한 사실이다. 그들은 위험을 깨닫지 못하고 그의 책략에 대하여 경계하지 않는다. 그는 하나님의 지혜와 그분께서 경고하고 책망하고 권면하기 위하여 보내신 자들의 지혜를 구하지 않고 피차간에 애정을 쏟도록 그들을 부추긴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하기 때문에 제지에 견디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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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 형제여, 그대의 경우는 이것에 대한 유력한 예증이다. 그대는 결혼에 대한 생각으로 얼이 빠졌다. 일반적으로 이 길에 마음을 기울여온 사람들의 경우처럼, 하나님의 종들의 경고는 그대에게 별반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나는 그대가 얼마나 쉽게 주변의 영향을 받고 있는지 보게 되었다. 만약 그대가 열등한 기질의 마음을 가진 친구들과 관련을 갖게 되면 그대는 그들과 같이 될 것이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경외를 그대 앞에 두지 않을 것 같으면, 그들의 사상은 그대의 사상이 될 것이다. 그들에게 경외심이 부족하다면 그대 역시 불경한 사람이 될 것이다. 그들이 경솔하고, 쾌락을 찾는 데 몰두한다면 그대 역시 더 훌륭한 사업에 합당한 열성과 인내를 가지고 동일한 그 길을 따라갈 것이다.
그대가 애정을 쏟아 온 그 젊은 여자는 사상과 품성의 깊이가 없다. 그의 생애는 보잘것없고, 그의 마음은 좁고 피상적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아버지나 그대의 사랑하는 자매나 교회 안에 있는 그대의 친구들의 경고를 계속 거절해 왔다. 나는 그리스도의 사신으로 그대에게 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완고한 감정과 그대의 자기 과신 때문에 위험에 대하여 눈을 감고 경고에 대하여 귀를 막았다. 그대가 취한 길은, 마치 아무도 그대 자신만큼 그렇게 잘 알지 못하고 그대의 영혼의 구원은 그대 자신의 판단을 따르는 데 달려 있는 양 끈덕진 것이었다.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젊은이들이 그대가 한 것처럼 한다면 가정과 교회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그대의 완고와 자만을 통하여 그대가 부모에게 나타낸 불경을 생각해 보라. 그대는 완고하고 거만하다고 묘사된 부류에 속한다. 이와 같은 열중 (熱中) 은 신앙적인 것들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리게 하고 하나님의 영광 대신에 그대 자신 만을 생각하게 했다. 이런 친교와 애착에서는 아무런 유익도 얻지 못할 것이다. 하나님의 축복은 그대가 따르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고의적인 외고집의 길에는 임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대 자신의 품성을 철저하게 확립하기 전에는 결혼 관계에 들어가서 가족을 돌보는 일을 떠맡고자 열망해서는 안 된다. 나는 그대가 큰 흑암 속에 빠져 있지만 자신의 위험을 깨닫지 못하는 자로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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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그대의 생애와 품성을 개혁시키고 있었고, 그대는 형제들의 신임을 얻고 있었다. 그러나 사단은 그가 그대를 잃어버리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그대를 그의 교묘한 올무에 걸리게 하고자 자신의 노력을 더하여 놀랍게도 성공을 거두었다. 지금껏 발견되지 않았던 그대의 성격의 약점이 이제 드러났다. 그대는 비록 다른 사람들에게는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 있는 그대의 상태를 깨닫지 못한다. 빛은,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지 않는 사람에게는 오지 않는다. 그대의 형제와 자매들이 그대가 취한 길 때문에 슬퍼한 것을 깨달았을 때, 그대는 그 길을 중단하고, 그대가 하고 있는 일을 생각하고, 많이 기도하고, 교회 안의 경험 있는 사람들과 의논하고, 그들의 충고를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할 때였다.
그러나 그대는 “내가 내 자신의 감정과는 상관없이 형제들의 판단에 따라야 할 것인가” 라고 말한다. 나는 교회가 지상에서 하나님께로부터 권위를 위임받고 있다고 대답하는 바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고 말씀하셨다. 동일한 교회의 교인들의 의견을 너무도 존중하지 않는 일이 있다. 형제들 사이에 그처럼 많은 문제가 생기는 원인은 교회의 의견에 대한 존경심의 부족 때문이다. 교회의 눈은 실수한 개인 신자가 볼 수 없는 것을 식별할 수 있다. 소수의 사람은 실수한 당사자처럼 맹목적일 수 있지만 교회의 다수는 그 개인 신자들을 통제해야 하는 하나의 힘이다.
사도 베드로는 이렇게 말한다. “젊은 자들아 이와 같이 장로들에게 순복하고 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벧전 5:5). 바울은 또 이렇게 권면한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며” (롬 12:10).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엡 5:21).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빌 2:3). 교회의 충고와 권면이 존중되지 못하면 교회는 정말로 무력해진다. 하나님께서는 교인들을 다스려야 할 한 음성을 교회에 맡기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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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그대가 오류보다는 진리에 의하여 지도를 받으면 그대는 부모에게 즐겨 순종하고 교회의 음성을 신성하게 여길 것이다. 그대는 그대의 부모나 교회의 요구에 상관없이 그대가 옳다고 생각한 것을 실행하겠다는 결정을 내려 놓고 기도를 드려왔다. 그대의 생애를 통하여 내내 그대는 대체로 이기적 감정에 움직여 행동해 왔다. 때때로 하나님의 말씀에 제시된 조건에 부합되고 원칙대로 행동하기 위해서는 감정을 크게 희생해야 한다.
그대는 “부모들이 자녀들의 마음이나 감정에 상관없이 배우자를 택할 것이냐” 고 묻는다. 나는 거기에 합당한 질문을 그대에게 하는 바이다. 자녀가 먼저 부모에게 의논하지 않고서 배우자를 택할 수 있겠는가? 그런 조치가 자녀들에 대해 조금이라도 애정을 가지고 있다면 부모의 행복에 실제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될 터인데도 그 자녀가 부모의 권면과 권유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따르고자 고집해서야 되겠는가? 나는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라고 분명히 대답하는 바이다. 그가 결코 결혼을 하지 못할지라도 그럴 수 없다. 다섯째 계명은 그런 행실을 금지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출 20:12). 여기에 주님께서 순종하는 자들에게 분명히 성취시켜 주실 약속 있는 계명이 있다.
현명한 부모는 자녀들의 욕망을 무시하고 자녀들을 위한 배우자를 결코 택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대의 경우에 있는 이 일을 하고자 제안한 적이 지금껏 없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대부분은 맹목적 충동에 지나지 않는 것인데, 그것은 그들의 멸망을 꾀하기 위하여 사단에게서 나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