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일 덕을 세우는 일과 기도를 위한 집회에 함께 참석하는 모든 사람들이 진정한 예배자로 인정받을 수만 있다면, 비록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아직 많이 남아 있을지라도 우리는 희망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을 속일 수는 없다. 사실은 외관상으로는 보여지는 것과 너무도 다르다. 멀리에서 보면 많은 것들이 아름답게 보일지라도 가까이에서 살펴보면 결점 투성이로 나타날 것이다. 우리의 시대에 편만한 정신은 불신과 반역의 정신, 진리의 지식 때문에서가 아니고 실상은 가장 맹목적인 추측 때문에 생긴 거짓된 계몽의 정신이다. 하나님의 분명한 말씀과 그분의 영의 증언에 반대되는 정신이 있다. 단순한 인간의 이성을 계시된 하나님의 지혜보다 맹목적으로 높이는 정신이 있다.
이른바 소수의 자만에 빠진 철학가들의 견해를 성경의 진리나 성령의 증언들보다 더욱 신뢰할 만한 것으로 주장하는 사람들이 우리들 사이에서 책임 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바울과 베드로와 요한의 믿음과 같은 그런 믿음은 오늘날에 있어서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고 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된다. 그것은 불합리하고, 신비적이며, 지성적 마음에 합당치 못하다고 선언된다.
하나님께서는 이 사람들이 우리 백성을 징계할 하사엘임을 나에게 보여주셨다. 그들은 기록된 말씀보다 더 현명하다. 인간의 판단으로 하나님의 일의 신비를 이해할 수 없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의 진리를 이와 같이 불신하는 일은 어느 곳에서나, 또한 사회의 모든 계층에서 발견된다. 그것은 대부분의 우리의 학교에서 교수되고 양성소의 교과에 편입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수많은 사람들은 거짓의 영들을 좇고 있다 어느 곳에서나 신앙의 옷을 입은 흑암의 영이 그대들과 대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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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생활을 하는 것으로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실제적으로 거룩한 생활을 산다면, 세상에 진리를 증거하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진리를 전파하되 그것을 대항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라면, 우리는 편만한 도덕적 흑암 속에서 무엇인가 희망적인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적 그리스도의 영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그런 범위까지 편만해 있다. 우리가 “여호와여 도우소서 경건한 자가 끊어지며 충실한 자가 인생 중에 없어지도소이다” (시 12:1) 라고 부르짖는 것도 당연하다.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를 지나치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보았다. 이렇게 안이한 것을 좋아하는 영혼들은 전반적인 멸망에 삼키운 바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절망하지 않는다. 우리는 성실한 목사들이 없는 곳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을 가졌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하나님께서는 목자들이 성실하지 못하면 당신이 친히 양 떼들을 돌보는 책임을 지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양떼들을 결코 인간 기구들에게 완전히 의존하게 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교회를 순결하게 할 날은 급히 이르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순결하고 진실한 한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다. 미구에 크게 키질하는 일이 있을 때 우리는 이스라엘의 능력을 보다 더 잘 측정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 당신의 손에 키를 가지고 계신다는 것과, 그분께서 타작 마당을 철저히 정결하게 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실 때가 가깝다는 징조들이 보인다.
큰 당황과 혼란이 있을 날이 신속하게 접근하고 있다. 천사의 옷을 입은 사단은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미혹할 것이다. 신들도 많고 주도 많을 것이며, 온갖 교리의 바람이 불 것이다.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 (딤전 6:12) 에 가장 큰 존경을 바쳐온 자들은 그 때에 지도자들이 되지 못할 것이다. 지성과 비상한 재주와 재능을 의지해 온 자들은 그때에 일반 대중의 선두에 서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빛에 보조를 맞추지 않았다. 불성실한 자로 드러난 자들에게는 그 때에 양떼가 맡겨지지 않을 것이다. 불과 소수의 위대한 사람들만이 마지막 엄숙한 사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그분께서 그들을 사용하실 수 없다. 주님께서는 성실한 종들을 갖고 계시는데 그들은 흔들고 시험하는 시기에 드러나게 될 것이다.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않은 숨은 고귀한 사람들이 오늘날 있다. 그들은 그대들에게 집중적으로 비춰온 빛을 갖지 못했다. 그러나 거칠고 매력 없는 표면 이면에 있는 진정한 그리스도인 품성의 순결한 빛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낮에 우리는 하늘을 쳐다볼지라도 별들을 보지 못한다. 별들은 물론 하늘에 고정되어 있다. 그러나 눈으로 그것들을 분별해 낼 수 없다. 밤에 우리는 별들의 진정한 빛을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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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영혼에게 시험이 다가올 때가 멀지 않다. 짐승의 표가 우리에게 강요될 것이다. 한걸음 한걸음씩 세상의 요구에 양보하고 습관에 순응해 온 자들은 조소와 모욕과 위협적인 투옥과 죽음을 당하기보다는 오히려 권력에 굴복하는 것이 어려운 문제가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싸움은 하나님의 계명과 사람의 계명 사이에서 전개된다. 이 때에 교회 내에서 황금과 불순물이 분리될 것이다. 참된 경건은, 경건의 모양과 경건의 외부적 장식과는 분명히 구분될 것이다. 우리가 그 찬란한 광채로 인해 존경해 온 많은 별들이 흑암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쭉정이가 바람에 구름처럼 날려갈 것인데, 심지어 우리가 오직 풍성한 알곡만을 보는 곳에서도 그러할 것이다. 성소의 장식만을 취하고 그리스도의 의로 옷입지 않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벌거벗은 수치를 드러낼 것이다.
열매 없는 나무들이 땅만 버리는 자로 베어질 때, 수많은 거짓 형제들이 진실한 사람들과 구별될 그 때, 숨어 있던 자들은 드러나서 그리스도의 깃발 아래 호산나를 외치면서 대열에 참여할 것이다. 겁이 많고 자기를 불신했던 자들이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공개적으로 선포할 것이다. 교회에서 가장 약하고 주저하는 자가 다윗과 같아지되, 자원하는 마음과 담대한 마음으로 그러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있어서 밤이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별들은 더욱 찬란해질 것이다. 사단은 충성된 자들을 몹시 괴롭힐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넉넉히 이길 것이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교회는, “달같이 아름답고 해같이 맑고 기치를 벌인 군대같이 엄위” (아 6:10)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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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 활동을 통하여 뿌려지고 있는 진리의 씨들이 그 때에 싹이 트고 꽃이 피고 열매를 맺을 것이다. 환난을 참고 예수를 위하여 고난을 받을 수 있게 된 것으로 인해 하나님을 찬양할 영혼들이 진리를 받아들일 것이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전세계를 휩쓰는 징벌이 세상을 지나갈 때, 키가 여호와의 타작 마당을 정결케 할 때,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들의 도움이 되실 것이다. 사단의 전리품들이 높이 들림을 받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순결하고 거룩한 자들의 믿음은 쇠하지 않을 것이다.
엘리야는 밭을 갈고 있는 엘리사를 만나 성별의 겉옷을 그에게 던졌다. 이 위대하고 엄숙한 사업에 대한 부르심은 학문과 지위를 갖춘 사람들에게 주어졌다. 이 사람들이 스스로를 작게 여기고 주님을 완전히 의지했을 것 같으면, 주님께서는 당신의 깃발을 든 그들을 승리하게 하심으로써 영화롭게 해주셨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고, 세상의 영향에 굴복했으므로 주님께서는 그들을 거절하셨다.
많은 사람들은 과학은 높이고, 과학의 하나님은 잃어버렸다. 이것은 가장 순결한 시대의 교회의 형편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시대에 거의 아무도 예상하지 않는 일을 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학문을 연구하는 기관에서 외부적 훈련을 받은 사람들에 의해서보다는 그분의 영의 기름 부음에 의하여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을 우리들 사이에서 일으키고 높이실 것이다. 이런 기관들은 멸시를 받거나 정죄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것들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것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다만 외부적 자격만을 줄 수 있을 뿐이다. 하나님께서는 학식이 많고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을 의존하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타내실 것이다.
우리들 가운데 진정으로 헌신한 사람은 별로 없고, 자아와의 싸움에서 싸우고 정복한 사람도 별로 없다. 진정한 회개는 감정과 동기의 결정적 변화이다. 그것은 세속적 연결에서 실제적으로 떠나는 것이며, 그들의 영적 분위기로부터 서둘러 떠나는 것이고, 그들의 사상과 견해와 영향의 지배적 능력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분리는 쌍방에 고통과 쓰라림을 준다.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주기 위하여 오셨다고 주장하시는 불화이다. 그러나 회개한 자들은, 그들의 친구들이 그리스도를 위하여 모든 것을 버리지 않으면 최종적인 영원한 분리가 있을 것을 알고 그렇게 하기를 끊임없이 간절히 욕망할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믿지 않는 친구들과 함께 있는 동안 경솔하고 경박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의 가치는 너무도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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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눅 14:33) 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로부터 애정을 분리시키는 것은 무엇이나 버려야 한다. 재물은 많은 사람들의 우상이다. 그 황금 사슬은 그들을 사단에게 붙들어 맨다. 명성과 세속적 영광은 또 다른 계층의 사람들에게 숭배를 받는다. 이기적 안락의 생애와 의무에서의 해방은 또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섬기는 우상이다. 이것들은 부주의한 자의 발을 걸리게 하고자 쳐 놓은 사단의 올무이다. 그러나 이 노예적 속박은 반드시 깨뜨려져야 한다.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우리는 절반은 주님의 것이요, 절반은 세상의 것이 될 수 없다. 우리가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되지 않으면 그분의 백성이 아니다. 온갖 무겁고 얽매이기 쉬운 죄는 벗어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파수꾼은 하나님께서 평강을 말씀하시지 않으신 때에 “평강하다, 평강하다” (렘 8:11) 라고 부르짖을 수 없다. 성실한 파수꾼의 다음과 같은 음성이 들릴 것이다. 너희는 “그 가운데서 나올지어다 여호와의 기구를 메는 자여 스스로 정결케 할지어다” (사 52:11).
교회는 세상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의견에 의해서 혹은 과거 한때의 상태에 의해서 평가할 수 없다. 현재의 교회의 믿음과 세상에서의 그 위치는, 만일 교회가 계속적으로 전진하고 향상했을 것 같으면 그들이 될 수 있었을 뻔했던 그 상태와 비교되어야 한다. 교회는 성소의 저울에 달려질 것이다. 만일 교회의 도덕적 특성과 영적 상태가 하나님께서 교회에 주신 특권과 축복에 상응하지 못한다면, 그것은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빛은 교회가 가는 길에 분명하고 확실하게 비추어 오고 있다. 그리고 1882년의 빛은 교회에 책임을 요구한다. 만일 교회가 그의 달란트를 활용하지 않을 것 같으면, 교회의 열매가 하나님 앞에 완전하지 못할 것 같으면, 만일 교회의 빛이 어두워졌을 것 같으면, 교회는 분명히 부족함이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상태를 보시는 것처럼 그것을 아는 일이 우리에게서 숨겨진 것 같다. 우리는 보기는 하지만 깨닫지는 못한다. 우리는 듣기는 하지만 이해하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낮의 구름기둥과 밤의 불기둥이 성소 위에 머물러 있는 듯이 태연하게 안식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알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지만, 행동으로는 그분을 부인한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지배를 받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진리와 의의 원칙에 노골적으로 반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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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장 — 우리 대학의 교역자들
우리 대학의 모든 진정한 번영의 기초는 교사들과 학생들 편에서 하나님과 밀접히 연합하는 것이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그분의 교훈이 생애의 법칙으로 인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자녀들에게 계시된다. 성경이 읽혀지는 곳은 어디에서나, 가정에서나, 학교에서나, 교회에서나, 모든 사람들은 마치 하나님께서 실지로 임재하셔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처럼 조용하고 경건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고상한 신앙적 원칙이 우리의 학교에서 항상 유지되어 온 것은 아니다. 대부분의 교사들과 학생들은 한 가지로 그들의 신앙을 숨기려고 끊임없이 노력하고 있다. 특별히 세상 사람들이 대학을 후원하게 된 때부터 이런 현상이 존재해 왔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르는 모든 사람에게서 공공연하고 용감한 믿음의 고백을 요구하신다. 모든 사람은 자기의 위치를 고수하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그대로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구경거리가 되어야 한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빛이 되어 말이나 침대 아래 감추지 않고 등경 위에 놓여져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출 수 있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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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학의 교사들은 세상의 관습을 따르거나 세상의 원칙을 채택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께서 가장 크게 평가하시는 속성은 사랑과 순결이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이 속성을 간직해야 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느니라.”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4:7, 12, 2, 3).
하나님께서는 젊은이들이 목회직에 투신하도록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셨다. 그들은 다른 어떤 곳에서는 얻을 수 없는 유익을 얻고자 하는 희망을 품고 우리 대학을 찾아왔다. 그러나 영혼의 가치를 별로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의 구원에 대한 책임을 별로 느끼지 못하는 교사들은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은 엄숙한 확신을 대수롭지 않게 취급해 왔다. 그리고 교사들은, 하나님께서 젊은이들을 인도하고자 원하고 계셨던 길에서 그들을 돌이키려고 노력해 왔다.
자격을 잘 갖춘 교사들의 보수는 우리 목사들의 보수보다 훨씬 더 높은가 하면, 교사는 사업에 자신을 완전히 바치는 목사처럼 그렇게 열심히 활동하거나 그처럼 큰 불편을 감수하지 않는다. 이런 일이 젊은이들 앞에 제시되었고, 그들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그분의 약속을 불신하도록 권고받아 왔다. 많은 젊은이들은 보다 안락한 길을 택하고, 진리를 전파하는 대신에 과학을 가르치거나 다른 어떤 직종에 종사하기 위하여 준비해 왔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사업은,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진리의 사랑을 마음에 간직하고 있지 않는 헌신하지 않은 교사들에 의하여 방해를 받아 왔다. 교육받은 젊은이는 그의 재능을 그리스도의 사업에 바치기에는 너무 귀중한 것으로 바라보도록 가르침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아무런 요구도 할 수 없으신가? 누가 이 정신적 소양과 이런 업적을 얻을 능력을 주었는가? 그들은 여호와와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된 것으로 주장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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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모르고, 자신의 약점을 모르고, 장래를 알지 못하는 많은 젊은이들은 그들의 길을 가리켜 줄 하나님의 손이 필요함을 느끼지 못한다. 그는 암초들 사이로 자기 자신의 배를 운행해 가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젊은이들은 그들이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통치의 영역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그들은 창조주의 뜻을 염두에 두지 않고 그들이 원하는 길을 택할 자유가 없다.
재능은 가장 필요한 곳에서 제일 잘 계발되고 가장 좋게 평가된다. 그러나 두드러지기를 열망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진리를 간과해 버린다. 비록 신앙적 경험과 정신적 성취에 있어서 피상적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근시안적 야망은 하나님의 섭리로 그들에게 주어진 영역보다 더 높은 행동 영역을 탐한다. 주님께서는 요셉과 다니엘에게 요구하신 것처럼 그들에게 세속적 영화와 높은 지위의 유혹을 저항하도록 요구하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들은 그들에게 적합한 단 하나의 의무의 위치를 버리고 위험이 수반되는 위치를 차지하려고 기를 쓴다.
마게도냐의 부르짖음은 사방에서 우리에게 들려오고 있다. 동부와 서부에서, “우리에게 일꾼을 보내 달라” 고 긴급하게 요청한다. 우리의 주변에는 모두, “희어져 추수하게” 된 들판들뿐이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 (요 4:35, 36) 고 있다. 이런 들판들을 떠나서 오직 금전적 유익만을 줄 뿐인 사업에 종사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 아닌가?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은 급료만을 구하고 있는 이기적인 일꾼들을 원하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당신이 그들을 위하여 가난하게 되신 것처럼 당신을 위하여 즐겨 가난하게 되고자 하는 자들을 부르신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 앞에 제시된 자극제는 무엇이었는가? 모욕, 조소, 가난, 수치, 거절, 배반, 십자가의 죽음이었다. 작은 목자들이 그들의 주인보다 더 안락한 운명을 구할 것인가?
하나님의 말씀은 인생의 복잡한 일을 매우 단순하게 해준다. 열렬하게 구하는 모든 자에게 그것은 하나님의 지혜를 준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구속함을 받았다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를 위하여 속죄를 이루어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귀중한 피이다. 수고와 희생과 위험을 통하여, 세속적 재산의 손실을 통하여, 그리고 심령의 고통을 통하여 복음이 세상에 전해졌다. 하나님께서는 활기와 힘을 가진 젊은이들을 부르셔서 당신과 함께 극기와 희생과 고난을 나누게 하신다. 그들이 그 부름을 받아들이면 그분께서는 그들을 그분의 도구로 삼으셔서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영혼들을 구원하게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그 값을 헤아려 보고, 그들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속죄주를 섬기는 조건을 충분히 깨달은 후에 그들의 사업에 들어가게 하시기를 원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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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우리의 대학 설립에 있어서의 하나님의 목적이 얼마나 무시되어 왔는지를 생각할 때 나의 감정을 도저히 표현할 수 없다. 그들의 헌신하지못한 생애를 통하여 경건의 모양을 가진 사람들은 사람들에게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주는 진리의 능력을 부인하고 있다. 진리를 위하여 궁핍과 수치와 학대와 죽음까지 당한 사도들의 역사를 바라보라.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에 합당하게 인정받은 것을 기뻐했다.
만일 많은 노력과 큰 고난으로 큰 결과를 얻을 수 있다면, 하나님의 은혜의 백성된 우리들 중 누가 희생을 거절할 수 있겠는가? 그리스도의 복음은 기쁜 소식의 그 기별을 들은 모든 영혼을 그 요구 속에 포함시킨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은혜에 우리는 무엇으로 보답할 것인가? 그분의 무한한 자비는 결코 갚을 수 없다. 우리는 다만 자원하는 순종과 감사한 마음으로 하는 봉사를 통하여 우리의 충성됨을 증거하고, 우리의 구속주를 영화롭게 할 수 있다.
나에게는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게 하는 순수한 신앙의 정신으로 감동된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는 것보다 더 큰 바램은 없다. 원칙의 지배를 받고, 순결과 의의 옷을 입은 그리스도의 젊은 제자들이여, 앞으로 전진하라. 그대들의 구주께서는 그대들의 재능에 가장 적합한 위치로 그대들을 인도하시고 그대들이 가장 효과적으로 쓰일 수 있는 곳으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의무의 길에서, 그대들은 사는 날 동안 충분한 은혜를 분명히 받게 될 것이다.
복음의 전파는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택하신 수단이다. 그러나 우리의 첫번째 과업은 우리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과 일치되게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일할 준비를 갖추게 된다. 지나간 세대에는 우리의 열렬한 교역자들 사이에 마음을 크게 살피는 일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지도를 받기 위하여 함께 의논하고, 겸손하고 열렬한 기도로 연합했다. 그런데 목사들과 교사들 사이에 참된 선교 정신이 쇠퇴해가고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우리가 믿었던 그 때보다 더욱 가깝다. 지나가는 하루하루는 우리에게,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할 날을 하나씩 감해준다. 오늘날 하나님께 대한 더욱 열렬한 간구와 더 큰 겸손과 더 큰 순결과 믿음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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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람은 끊임없이 위험을 당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하지만 그 말씀이 가르치는 겸손과 극기의 정신을 간직하지 않는 자들을 경계하도록 나는 교회에 경고하는 바이다. 그런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의존할 수 없는 사람이다. 그들은 사울처럼 쉽사리 하나님의 음성을 무시한다. 그리고 그 사람처럼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길을 정당화시키고자 한다. 여호와의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의 책망을 받았을 때, 사울은 단호하게 그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했노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는 양들과 소들은 그가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했다. 똑같은 방법으로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주장하지만, 그들의 연주회들과 다른 쾌락적 모임, 그들의 세속적 교제, 그들의 자아 만족, 인기를 얻기 위한 그들의 열렬한 욕망 등은 모두 그들이 그분의 음성에 순종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한다. “내 백성을 학대하는 자는 아이요 관할하는 자는 부녀라” (사 3:12).
그것은 복음이 우리 앞에 제시해 주는 높은 표준이다. 언행이 일치된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일 뿐만 아니라 고상한 피조물이다.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하늘과 하나님께로 가는 길을 보여주는 다함이 없는 빛이다. 그리스도에게서 생명을 흡수하고 있는 사람은 세상의 경박하고 만족을 줄 수 없는 것을 갖고자 하지 않을 것이다.
젊은이들은 품성과 교육이 가지각색일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독단적 제지와 거칠은 환경에서 살아왔음으로 그런 것이 그들에게 완고와 반항의 정신을 육성시켰다. 또 어떤 사람들은 가정의 귀염둥이로 지내면서 맹목적인 사랑을 가진 부모들에 의하여 그들의 기분대로 하도록 허용되어 왔다. 마침내 그들의 품성이 비뚤어질 때까지 모든 결점은 변호되어 왔다. 이처럼 기질이 다른 청년들을 성공적으로 취급하기 위하여 교사는 통솔에 있어서 확고 부동해야 함은 물론이요 지도에 있어서 큰 기지와 부드러움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