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망이 필요한 거의 모든 경우마다 주님의 영이 근심해 오셨고 그분의 사업이 비난을 받아 왔다는 사실을 완전히 간과해 버리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이 사람들은 당연히 책망받을 사람들이 개인 감정에 상처를 받았다는 이유로 그들을 동정할 것이다. 이 모든 성화되지 못한 동정심은 그 동정자들을, 책망받은 자의 죄에 참여하는 자의 처지에 둔다. 만일 책망받은 자를 자신의 잘못을 느낄 수 있도록 버려 두었다면 십중 팔구 그는 그 잘못들을 볼 수 있게 되고 개혁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간섭하기 좋아하는 성화되지 못한 동정자들은 책망자의 동기와 주어진 책망의 성격에 대하여 잘못된 뜻을 붙이고, 책망받은 자를 동정함으로써 그가 실제적으로 부당한 취급을 받은 것으로 느끼게 한다. 그리하여 그의 감정은 자신의 의무를 다한 데 불과한 자에 대하여 반감을 품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대한 책임감 아래 달갑지 않은 그들의 의무를 성실하게 다한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이다.” *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말하라’ (사 30:10) 고 부르짖을 자들이 이 마지막 때에 있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그분의 백성을 책망하는 자로 세우셨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나에게 무거운 짐을 지우신 것과 마찬가지로 이 기별을 받는 자들에게 그것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사업을 멸시하는 자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보응을 받을 것이다. 나는 이 달갑지 않은 사업을 내 스스로 택하지 않았다. 나에게 주어진 일은 사람들의 호감이나 칭찬을 받게 해 줄 그런 일이 아니다. 그것은 그 진가를 깨닫는 자가 별로 없는 사업이다. 그러나 오해와 질투 어린 의심과 불신으로 나의 활동을 이중으로 어렵게 만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증언들에 대하여 다른 사람들의 마음 속에 편견을 일으키고 나의 사업을 한정시키고자 애쓰는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섭리를 따라 앞으로 전진하고 나의 형제들이 내 앞에서 길을 열어 주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 해결해야 할 문제를 가지고 있다. 나의 구속주의 이름과 힘을 의지하여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다. 나의 의무는 내 자신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나에게 사업을 맡기신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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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에게 전해야 할 기별을 내게 주셨다면 사업에 있어서 나를 방해하고 그 진리를 믿는 백성들의 믿음을 헐뜯고자 하는 자들은 그 기구를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경멸하고 모욕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라, 경고와 책망을 통하여 그대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인도하시기 위하여 택하신 도구를 멸시하고 거절하는 것보다 사람이 하나님께 행할 수 있는 큰 모욕은 거의 없다.” *
“증언들” 을 무시함
증언들을 공공연하게 거절하는 자들이나 그것들에 관하여 의심을 품음으로 위험한 처지에 놓이는 자들은 그들 뿐만이 아니다. 빛을 무시하는 것은 그것을 거절하는 것이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은 말로는 책망을 인정하지만 마음으로는 그것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대들은 전과 마찬가지로 행하고 있으며, 다만 하나님이 영의 감화에 덜 민감해지고 있으며, 점점 더 눈이 멀어져 가며, 지혜가 더 적어지고, 자제력도 줄고, 도덕적 능력도 적어지고, 신앙적 활동에 대한 열성과 취미도 줄어 들고 있다. 그러므로 회개하지 않으면 그대들은 마침내 하나님을 붙드는 손을 완전히 놓아 버릴 것이다. 그대들은 책망을 받았을 때에 그대들의 생애에서 결정적인 변화를 이루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그대들의 품성의 결함과, 그대들의 생애와 그리스도의 생애와의 현저한 차이를 보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마음 속에서 죄를 품고 있는 데 그대들의 기도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대들이 철저한 변화를 이루지 않는 한, 그대들은 얼마 있지 않아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책망에 싫증을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처럼 그대들은 하나님을 배반하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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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주의와 책망과 경고에 관한 빛과 지식을 간직한 책들을 읽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주신 빛과 정 반대로 가고 있다. 세상의 염려와 유행을 좋아하는 마음과 신앙의 부족은, 오류를 간직하고 있는 서적들과 간행물들이 온 나라에 편만해 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그처럼 은혜롭게 주신 빛에서 주의를 돌이키게 했다. 회의론과 불신은 어느 곳에서나 증가되고 있다.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그처럼 귀중한 빛은 말 아래 감추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등한한 일에 대하여 그분의 백성들에게 책임을 지우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길에 비추게 해 주신 빛의 모든 줄기에 대하여, 그것이 거룩한 사물 안에서 우리가 전진하도록 촉진시켜 주었던지 기호대로 따르는 것이 더욱 달갑기 때문에 거절했던지 간에, 그분께 결산 보고를 해야 한다.” *
예언의 신의* 서적과 증언들은 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든 가정으로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형제들은 그 가치를 깨닫고 그것들을 읽도록 촉구 받아야 한다. 이 책들의 중요성을 낮게 평가하고 한 교회에 한 질만을 소유하는 것은 가장 현명한 계획이 아니다. 그것들은 모든 가정의 서가에 놓여야 하고 거듭거듭 읽혀져야 한다. 그것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는 곳에 비치되어야 한다.” *
목사들과 백성들은 복음 진리가 구원을 하지 못하면 굳어지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빛을 거절하면 사람들은 사로잡힌 상태가 되고 흑암과 불신의 사슬에 매이게 된다. “날마다 자비의 초청을 듣기를 거절하는 영혼은 미구에 그의 심령을 분기시키는 감정 없이 가장 긴급한 호소를 듣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된 우리는 더욱 열렬한 경건과 자아를 더 적게 높이는 일이 필요하다. 자아를 높이면 높일수록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믿는 믿음은 감소될 것이다. … 자아를 완전히 신뢰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통하여 하나님을 더욱 더 적게 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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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을 받아들이는 방법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책망받는 자들은 겸손한 도구를 대항하여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그들을 파멸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지 실수하기 쉬운 사람이 아니다.” *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은 사람의 본성에 달가운 일이 아니며, 하나님의 영으로 깨우침을 받지 않은 사람의 마음으로써 책망의 필요와 그것이 가져다 주기로 계획된 축복을 깨닫기가 불가능하다. 사람이 유혹에 넘어져 죄에 빠지면 마음이 어두워지고, 도덕적 지각도 왜곡된다. 양심의 경고는 무시되고 그 음성은 분명히 덜 들린다. 그는 옳고 그릇된 것을 구별하는 힘을 차츰 잃어버리고 마침내 하나님 앞에서의 자신의 위치를 바르게 깨닫지 못한다. 그는 신앙의 정신은 결핍되어 있으면서 신앙의 형식은 지키고 그 교리를 열렬히 고수할 것이다. 그의 상태는 참된 증인이 묘사한 그대로이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 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7). 하나님의 영이 책망의 기별을 통하여 이것이 그의 상태라고 주장할 때 그는 그 기별이 참되다는 것을 깨달을 수 없다. 그러므로 그는 그 경고를 거절해야 할 것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충분한 증거를 주셨기 때문에 그렇게 하기를 원하는 자들은 누구나 증언들의 성격에 대하여 납득할 수 있다. 그러므로 그것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인정한 다음에는 비록 그들의 행동에서 죄악적인 것을 깨닫지 못할지라도 책망을 받아들이는 것이 그들의 의무이다. 만일 그들이 그들의 상태를 완전히 깨달았다면 무엇 때문에 책망이 필요하겠는가? 그들이 그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그들 앞에 제시해 주셔서 그들이 너무 늦기 전에 회개하고 개혁하게 하신다. “경고를 무시하는 자들은 눈먼 상태가 되어 자기 기만에 빠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에 유의하고, 필요한 은혜를 받기 위하여 그들에게서 죄를 분리시키는 일을 열렬히 하는 자들은 그들의 마음의 문이 열려져 사랑하는 구주께서 들어오셔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게 될 것이다.” * “하나님과 가장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자들은 그분께서 말씀하실 때 그분의 음성을 깨닫는 자들이다. 영적인 사람들은 영적인 것들을 분별한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께서 그들의 잘못을 지적해 주실 때 감사하게 생각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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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윗은 하나님이 그를 취급하시는 일에서 지혜로 배우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징계에 겸손히 머리 숙였다. 선지자 나단이 그의 참 상태를 성실하게 묘사하자 다윗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그것을 버리게 되었다. 그는 겸손하게 권면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앞에 스스로를 낮추었다. 그는’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시 19:7) 한다고 부르짖는다.” *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 참 아들이 아니니라” (히 12:8). 우리 주님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 (계 3:19)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에게는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 (히 12:11) 는다. 비록 징계가 고통스럽기는 해도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 (히 12:10) 기 위하여 아버지의 부드러운 사랑으로 정해진 것이다.
부당한 구별
어떤 사람들은, 주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주신 경고와 주의와 책망이 각 개인들의 상황에 대한 특별한 이상 (異像) 을 통하여 주어지지 않는 한 다른 근원에서 온 권면과 경고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취해 왔다. 어떤 경우에는 내가 교인들에게서 받은 편지들 때문에 기록하도록 영향을 받은 것으로 주장 되었다.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주어진 것이라는 증언들이 인간적 근원에서 수집된 정보를 기초로 한 내 자신의 판단에 불과한 것이었다고 주장한 자들이 존재해 왔다. 이런 주장은 완전히 거짓된 것이다. 그러나 만일 교회들이나 개인들에게서 온 어떤 질문이나 주장이나 호소에 대한 회답으로 하나님께서 그것들에 관하여 주신 빛을 제시하는 증언이 기록된다면 그것이 이런 방식으로 동기가 부여되었다는 사실 때문에 그 유효성이나 중요성을 결코 비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이 점을 직접 다루고 있는 몇 구절을 증언 31호에서 다음과 같이 인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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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 바울은 어떻게 했는가? 글로에의 집을 통하여 고린도 교회의 상태에 관하여 받은 소식 때문에 그는 그 교회에 보내는 첫째 편지를 쓰게 되었다. 그들에게 있는 그대로의 사실들을 알려 주는 사적인 편지들이 그에게 왔고, 그는 대답을 통하여, 만일 유의하기만 하면 존재해 있는 그 악을 교정할 수 있는 일반 원칙들을 제시했다. 대단한 친절과 지혜로써 그는 동일한 것들을 이야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 사이에 분열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권면한다.
바울이 영감받은 사도였지만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의 상태를 그대로 그에게 언제나 계시하지 않으셨다. 교회의 번영의 관심을 가지고 악이 들어오는 것을 본 자들이 문제를 그에게 제시했고, 그는 미리 받은 빛에 의하여 그렇게 진척되는 일의 진상을 판단할 준비를 갖추었다. 주님께서 그 특별한 때에 관한 새 계시를 그에게 주시지 않았다는 이유로 진심으로 빛을 구하고 있는 자들이 그의 기별을 다만 평범한 편지로 버리지는 않았다. 결코 그렇게 하지 않았다. 주님께서 교회 안에서 생길 수 있는 어려움과 위험을 그에게 보여 주셨으므로, 그는 그런 일이 생길 때 그것들을 어떻게 다룰 것인지 알게 되었다.
그는 교회를 보호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 그는 영혼들을 하나님께 책임을 져야 할 자로 돌봐야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들의 무질서와 분열의 상태에 관한 소식에 무관심할 것이었던가? 당연히 관심을 가져야 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 보낸 책망은 그의 다른 서신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의 감동 아래 기록되었다. 그러나 이 책망들이 주어졌을 때 어떤 사람들은 시정하려고 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바울을 통하여 그들에게 말씀하지 않으셨고, 그가 다만 한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의견을 그들에게 전한 데 불과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들 자신의 판단을 바울의 판단과 마찬가지로 훌륭하다고 보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옛 지계표에서 떠나가고 그들 스스로의 생각을 따른 사람들이 우리 백성 가운데 많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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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백성들이 이런 입장을 취할 때는 예언의 신을 통하여 주어지는 하나님의 특별한 경고와 권면이 그들에게 영향을 미쳐서 생애와 품성에 개혁을 일으킬 수 없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의 발전에 있어서 그분의 백성들의 각기 다른 태도에서 야기될 수 있는 매 비상 사태에 대처할 수 있는 한 이상을 주시지 않으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당신의 사업과 개인들의 필요와 위험을 그분의 종들의 마음에 새겨 주셔서 그들에게 권면과 경고의 짐을 지워 주는 것이 지나간 세대에 그분의 교회를 취급하시는 주님의 방법이었음을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러므로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교인들의 품성에 있는 특별한 결함들에 관한 빛을 나에게 주시고 그 결함들이 제거되지 않을 때 개인과 사업에 미칠 위험을 보여 주셨다. 어떤 환경 아래서는 나쁜 경향들이 강하게 나타나고 강화되어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끼치고 개인에게도 파멸을 초래하기 쉽다. 때때로 특별한 위험들이 하나님의 사업이나 특수한 개인들을 위협할 때 밤의 꿈이나 이상을 통하여 주님께로부터 기별이 나에게 주어지고, 이 경우들이 나의 마음에 생생하게 떠오른다. 나는 “일어나서 쓰라, 이 영혼들이 위험에 처해 있다” 고 말하는 음성을 듣는다. 나는 하나님의 영의 감동에 순종하고, 나의 펜은 그들의 참 상태를 묘사한다. 내가 여행을 하고, 여러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 앞에 설 때, 주님의 영은 내가 본 상황들을 분명하게 내 앞에 제시해 주고 이미 내게 주었던 문제가 되살아나게 한다.
과거 40년 동안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업의 필요와, 모든 면의 경험에 나타난 개인들의 상황들을 계시해 주셨고, 그들이 어디에서 어떻게 완전한 그리스도인 품성을 이루는 일에 실패했는지 보여 주셨다. 수백 가지 경우들에 대한 역사가 나에게 제시되었고, 또한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것과 그분께서 정죄하시는 것이 내 앞에 분명하게 나타났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길을 따른다면, 또한 어떤 품성의 특성들에 빠져 버린다면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를 나에게 보여 주셨다. 그분은 이와 같이 내가 영혼들을 위협하는 위험들을 보고 그분의 백성들이 사단의 간계에 무지하지 않게 되어 그의 올무를 피하도록 경계에 경계를 더하며 교훈에 교훈을 더하여 그들을 가르치고 경고할 수 있도록 나를 교육하고 훈련해 오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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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내 앞에 제시하신 사업은 젊은이와 늙은이,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를 막론하고 그들이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도록 강조하고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할 때 마음이 넓어지고 모든 기능이 강화되며 지능이 깊고 원대한 진리의 문제들과 씨름하기에 적합해진다는 사실을 감명 깊게 알려 주고, 분명한 성경의 지식은 하나님이 인류에게 기대하신 바가 이루어지는 일에 있어서 다른 어떤 지식보다 낫다는 사실을 모든 사람에게 특별히 보증해 주는 일이다. “주의 말씀을 열므로 우둔한 자에게 비취어 깨닫게 하나이다” (시 119:130).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전달된 빛을 가지고, 또한 모든 환경과 온갖 경험의 측면에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속한 개인적 상황에 대하여 주어진 특별한 지식을 가지고서도 내가 이 경험의 초기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일한 무지와 동일한 정신적 불안정과 영적 맹목 속에 처해 있을 수 있을까? 나의 형제들은 화잇 자매가 너무도 우둔한 학도이기 때문에 그가 특별한 사업을 위하여 교육받고 훈련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 들어가기 전이나 지금이나 이 방면에서의 그의 판단력은 매 한 가지라고 말할 것인가? 나는 하나님 백성의 의무와 위기를 제시받지 못한 자들과 마찬가지로 그것들에 관하여 무지한가? 나는 이 모든 빛, 나의 사업과 경험에 있어서의 그분의 능력의 모든 현시가 쓸데없는 것이었다는 것과 그것이 나의 판단력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나로 하여금 그분의 사업에 더욱 적합하게 해 주지 않았다는 것을 시인함으로 나의 창조주에게 욕을 돌리고 싶지 않다.
다른 영혼들을 위기에 처하게 하고 하나님의 사업을 손상시켜 왔으며, 또한 주님께서 거듭거듭 책망하신 바로 그 길을 따르거나 바로 그런 특성들을 간직하고 있는 남녀들을 내가 볼 때,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 있겠는가? 자신의 불완전을 깨닫고 무거운 짐에 눌려 있으면서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가 옳다는 것을 알고 그대로 행하고자 양심적으로 애쓰고 있는 마음 약한 영혼들을 보고, 주님께서 그들의 성실한 노력을 굽어보시고 미소짓고 계심을 내가 알 때, 이 떨고 있는 가련한 사람들의 마음에 용기를 주는 말을 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각 개인의 상황이 이 직접적인 이상을 통하여 나에게 지적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내가 침묵을 지켜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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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파수꾼이 칼이 임함을 보고도 나팔을 불지 아니하여 백성에게 경고치 아니하므로 그 중에 한 사람이 그 임하는 칼에 제함을 당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제한 바 되려니와 그 죄를 내가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리라 인자야 내가 너로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을 삼음이 이와 같으니라 그런즉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나를 대신하여 그들에게 경고할지어다 가령 내가 악인에게 이르기를 악인아 너는 정녕 죽으리라 하였다 하자 네가 그 악인에게 말로 경고하여 그 길에서 떠나게 아니하면 그 악인은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내가 그 피를 네 손에서 찾으리라 그러나 너는 악인에게 경고하여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라고 하되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지 아니하면 그는 자기 죄악 중에서 죽으려니와 너는 네 생명을 보전하리라” (겔 33:6-9).
나는 최근에 꿈에서 일단의 사람들 앞에 갔는데,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전한 가장 엄숙한 경고의 증언에 대한 효과를 제거해 버리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들은 말했다. “우리는 화잇 자매의 증언을 믿는다. 그러나 그가 고려 중에 있는 특별한 상황에 있어서 이상 가운데서 그가 직접 보지 않은 것들을 우리에게 말할 때는 그의 말이 다른 어떤 사람의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아니다.” 주님의 영이 나에게 임하였고, 나는 일어나서 주님의 이름으로 그들을 책망했다. 나는 파수꾼에 관하여 내가 앞에서 제시한 것을 실제로 반복했다. 나는 이것이 그대들과 나의 상황에 적절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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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이 엄숙한 경고를 받은 자들이, “그것은 다만 화잇 자매의 개인 의견에 불과하므로 나는 내 자신의 판단을 여전히 따르겠다” 고 말한다면, 그리고 그들이 경고를 받기 전에 하던 그런 일을 계속해서 한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권면을 무시하고 있음을 보여 주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 주신 그대로의 일, 곧 하나님의 사업에 손해를 주고 그들 자신을 파멸시키는 일이 된다. 자신의 위치를 강화시키고자 하는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을 지지해 주고, 그들을 가장 강력한 기반 위에 세워 줄 것으로 생각되는 말씀들을 증언에서 제시한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거나 그들의 견해와 일치하지 않을 때 그들은 화잇 자매의 의견이 하늘에 근원을 두고 있음을 부인하고 그것을 그들 자신의 판단과 같은 수준에 둔다.
나의 형제들이여, 여러 해 동안 나와 나의 사업에 정통해 온 그대들이 나의 권면을 이 사업을 위하여 특별히 교육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의 권면보다 더 나을 것이 없다는 주장을 한다면, 사업을 함에 있어서 그대들과 연합하도록 나에게 요구하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이런 위치에 머물러 있는 한, 그대들은 필연적으로 나의 사업의 영향을 방해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의 충동을 따르는 것이 마치 하나님의 위임받은 종을 통하여 주어진 빛을 따르는 것과 마찬가지로 안전하다고 느낀다면 위험은 그대들 자신이 자초한 것이다. 그대들은 하늘이 보내준 빛을 거절했기 때문에 정죄를 받을 것이다.
_____ 에 있는 동안, 주님께서는 밤에 내게 오셔서 나의 사업에 관하여 귀중한 용기의 말씀을 해 주셨고, 전에 여러 번 내게 주신 기별을 반복하셨다. 그들에게 주어진 빛을 버리고 돌아선 자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대에게 전하도록 주신 증언을 경멸하고 거절할 때, 그들이 경멸한 것은 그대가 아니고 나, 곧 그대의 주님이시다.”
만일 완고하고 자만심이 강한 자들이 제지당하지 않고 그들의 길을 간다면, 교회 안에 있는 일들의 상태가 어떻게 되겠는가? 이 의지가 굳고 야망적인 사람들에게 있는 잘못들이 어떻게 교정될 것인가? 어떤 수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그들과 접촉하실 것인가? 그분께서는 어떻게 당신의 교회를 질서 있게 바로잡으실 것인가? 의견의 차이는 끊임없이 생기고, 배교는 자주 교회를 괴롭힌다. 논쟁이나 분열이 생기면, 모든 파들이 정당하다고 주장하며 거리낌없는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오랫동안 사업의 책임을 져 온 자들 그리고 주님의 지도를 받아온 자들 (그들은 알아야 할 이유가 있다) 의 교훈을 받지 않을 것이다. 빛은 그들의 흑암을 쫓아 버리기 위하여 주어졌다. 그러나 그들은 너무 마음이 교만해서 어둠을 택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권면이 그들의 의견과 계획에 일치하지 않고 그들의 악한 품성의 특성들을 지지해 주지 않으므로 그것을 멸시한다. 만일 그들이 받아들이기만 했을 것 같으면 그들을 바른 위치에 놓아 주었을 하나님의 영의 역사는 그들을 즐겁게 해주고, 그들의 독선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그런 방법으로 역사하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보내 주신 빛이 그들에게 전혀 빛이 되지 않으므로 그들은 어둠 속에서 방황한다. 그들은 그처럼 오랫동안의 경험을 해 온 자들과, 주님께서 특별한 일을 하기 위하여 가르치고 사용해 오신 자들의 판단을 어떤 다른 사람의 판단보다 더 신임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인가, 아니면 영혼들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교회를 다루기 위하여 택정하신 방법이 미칠 수 없는 곳에 스스로를 두었기 때문에 그들을 오류에 머물게 하고, 깨뜨릴 수 없는 강한 기만 속에 붙들어 두기 위한 모든 의의 원수의 특별한 역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