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609-618 (324일)

우리의 집회들은 참으로 흥미로운 것이 되어야 한다. 그것들은 바로 하늘의 분위기로 차 있어야 한다. 단순히 시간을 메꾸기 위하여 지루하고, 맥없는 설교와 형식적인 기도로 이루어져서는 안 된다. 모든 사람은 자원해서 각자의 몫을 담당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의 의무가 끝나면, 집회는 마쳐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 흥미는 끝까지 지속될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께 가납되는 예배의 제물이다. 그분께 예배드리는 일은, 흥미롭고 매력적이어야 하며, 무미건조한 형식으로 전락되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우리는 분마다, 시간마다, 날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야 한다. 그렇게 할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함께 모일 때, 그분의 사랑이 우리 속에 있어서 사막의 샘물처럼 솟아나 모든 사람의 원기를 회복시켜 주고, 멸망 중에 있는 자들이 생명수를 마시고자 갈급하게 해 준다.

우리는 힌두교인이 온 교회의 일을 하도록 의존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개인적으로 강하고 적극적인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사업을 추진해 나가야 한다. “당신은 내가 무엇을 하기를 바라십니까 내가 현실과 영원을 위하여 나의 일을 어떻게 할까요?” 라고 하나님께 물어보고자 열렬하고 진지한 관심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진리를 탐구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힘을 개인적으로 기울여야 하고, 부지런하고 경건하게 성경 연구를 도와줄 모든 수단을 우리가 할 수 있는 영역에서 활용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진리로 말미암아 거룩함을 입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 가장 큰 악을 낳는 죄들에 속하는 헐뜯는 말과 비난하는 정신을 모든 교회에서 제거하기 위하여 열렬한 노력이 경주되어야 한다. 가혹함과 헐뜯는 일은 사단의 역사로서 책망받아야 한다. 상호간의 사랑과 신임은 교인들에게 격려되고 강조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형제들을 사랑하는 중에 험담하고 비난하기 위한 귀를 막아야 한다. 말을 옮기는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의 교훈을 지적해 주라. 그에게 성경을 순종하고 잘못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게 그의 불평을 직접 가져가도록 명령하라. 이와 같은 연합된 활동은 빛의 홍수가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악의 홍수에 대해서는 문을 닫게 할 것이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고, 많은 영혼들이 구원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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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데 교회에 보내는 참된 증인의 권고는 이러하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계 3:1-3). 특별히 이 교회가 책망당한 죄는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지 아니한 것이다. 이 경고는 우리에게도 해당되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비추어 우리의 마음을 개인적으로 살펴보자.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우리의 마음을 바로잡는 일을 첫째 과업으로 삼자.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사업에 그분의 몫을 다하셨다. 이제 그분은 교회의 협력을 요구하신다. 한편에는 그리스도의 피와, 진리의 말씀과 성령이 있고, 다른 한편에는 멸망해 가는 영혼들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사람은 사람들을 데려와서 하늘이 제공해 준 축복을 받게 하는 일에 활동할 몫이 있다. 우리 스스로를 철저히 살펴보고 우리가 이 일을 했는지 보자. 우리의 동기와 우리 생애의 모든 활동에 대하여 물어보자. 기억의 창고에 좋지 못한 많은 그림들은 없는가? 그대는 빈번히 예수님의 용서를 필요로 했다. 그대는 그분의 동정과 사랑을 끊임없이 신뢰해 왔다. 그러나 그대는 그리스도께서 그대에 대하여 행사해 주신 정신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타내지 못했다. 그대는 금지된 길로 감히 들어 가고자 하는 사람을 볼 때 그에게 대하여 책임을 느꼈는가? 그대는 그에게 친절히 권면했는가? 그대는 그를 위하여 울고, 그와 함께, 또한 그를 위하여 기도했는가? 그대가 그를 사랑하고 그를 구원하고자 한다는 것을 온유한 말로 나타내고 친절하게 행동했는가? 그대가 기질에서 온 약점과 그릇된 습관의 짐을 지고 비틀거리며 방황하는 자들과 사귀게 되었을 때, 그대는 그들을 도와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홀로 싸우도록 그들을 버려 두었는가? 세상이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고 사단의 그물 속으로 그들을 끌어들이고자 준비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다른 편에서 심하게 유혹받는 자들을 지나쳐 버리지 않았는가? 그대는 가인처럼,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창 4:9) 라고 말할 준비를 갖추고 있지는 않았는가? 위대한 교회의 머리께서는 그대의 생애의 과업을 어떻게 여기시겠는가? 당신의 피로 살만큼 각 영혼을 귀중하게 여기시는 분께서는 바른길에서 벗어나는 자들에 대한 그대의 무관심을 어떻게 보시는가? 그대가 그들을 떠나는 것처럼 그분께서 그대를 떠나가실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가? 여호와의 집의 참된 파수꾼이신 분께서 모든 태만을 주목하신 사실을 믿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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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랑이 그대의 생애에서 쫓겨남으로 마침내 기계적인 형식이 마음에서 우러난 봉사의 자리를 대신하지는 않았는가? 그리스도가 언급될 때마다 그대가 한때 느꼈던 영혼의 불꽃은 어디에 있는가? 그대의 초기의 헌신이 새로울 때 영혼들에 대한 그대의 사랑은 얼마나 열렬했던가! 그대가 그들에게 구주의 사랑을 나타내기 위하여 얼마나 열렬하게 노력했던가! 그 사랑의 부재는 그대를 냉랭하고, 비판적이고 까다롭게 만들었다. 그것을 다시 찾기 위하여 노력하고,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하여 일하라. 만일 그대가 이것을 거절하면 빛과 경험을 적게 가지고 기회를 더 적게 가진 다른 사람들이 나타나서 그대의 자리를 빼앗고 그대가 등한히 한 일을 할 것이다. 왜냐하면 유혹을 받고, 시험을 받고, 멸망해 가는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그 사업이 이루어져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에 그 일을 주신다. 누가 그것을 수락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교회의 선한 공적과 극기의 행위를 간과하지 않으셨다. 모든 것은 하늘에 기록된다. 그러나 이것들로는 부족하다. 교회가 사명을 완수하는 일을 중단할 때, 이것들이 교회를 구원하지 못할 것이다. 과거에 나타낸 무서운 태만과 무관심을 중단하지 않는 한, 교회는 능력에서 능력으로 전진하는 대신, 계속해서 허약과 형식 안으로 빠져 들어갈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되도록 허용할 것인가? 사랑과 영적 열성에 있어서의 우둔한 마비, 슬픈 타락은 영속 (永續) 되어야 할 것인가?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교회에서 발견해야 할 상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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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여, 그대들이 개혁을 위한 결정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등불은 분명히 깜빡거리게 되고 희미해져서 마침내 어둠 속으로 사라질 것이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계 2:5). 지금 주어진 기회는 짧은 것이다. 만일 이 은혜와 회개의 기회를 이용하지 않은 채 지나가 버리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계 2:5) 는 경고가 주어진다. 이 말씀은 오래 참으시고 인내하시는 분의 입술에서 나오는 말씀이다. 이것들은 결코 주무시지 않으시는 관찰자께서 그들의 행위를 살피고 계시면서 교회와 개인들에게 주시는 엄숙한 경고이다. 그들이 땅만 폐하는 자로 찍혀 버림을 당하지 않는 것은 오직 그분의 놀라운 인내 때문이다. 그러나 그분의 영은 언제나 애쓰지 않을 것이다. 그분의 인내는 조금만 더 기다릴 것이다.

그대의 믿음은 지금까지보다는 무엇인가 나아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저울에 달려 부족함이 드러날 것이다. 마지막 날에 온 세상의 심판자에 의한 최후의 결정은 궁핍한 자, 압제받는 자, 시험받는 자들에 대한 우리의 관심과 실제적 활동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다. 그대는 이 사람들을 언제나 한편 쪽으로 지나쳐 버리면서 그대 자신이 구속받은 죄인으로서 하늘의 도성으로 들어가는 것을 발견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마 25:45) 고 말씀하신다.

아직은 과거의 태만을 속하기에 너무 늦지 않다. 처음 사랑, 처음 열성은 되살아나야 한다. 그대가 쫓아 버린 자들을 찾아내어 그대가 입힌 상처를 고백함으로 싸매어 주라. 자비로운 사랑을 가진 위대한 마음의 소유자께로 가까이 가라. 그리하여 그 신령한 동정의 물결이 그대의 마음 속으로 흘러들어와 그대에게서 다른 사람들의 마음으로 들어가게 하라. 예수님께서 그분의 귀중한 생애를 통하여 계시하신 온유와 자비가, 우리의 동료들, 특히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형제된 자들을 취급하는 방법에 대한 모본이 되게 하라. 많은 사람들이 생애의 큰 싸움에서 피곤에 지쳐 용기를 잃었는데, 그들은 친절한 격려와 용기의 말 한마디로 승리할 힘을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결코, 결코 무정하고, 냉랭하고, 무자비하고, 비판적으로 되지 말라. 용기를 주고 희망을 고취시켜 줄 한마디의 말을 해 주는 기회를 결코 잃어버리지 말라. 우리는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한 부드럽고 친절한 우리의 말, 그리스도와 같은 노력이 얼마나 원대한 영향을 미칠 것인지 말할 수 없다. 실수한 자들은, 온유와 친절과 부드러운 사랑의 정신 외에 다른 길로는 회복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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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릇 행하는 한 영혼을 구속하고 잃어버린 한 사람을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오도록 이끌기 원하는가? 그대는 오랫동안 죄책 가운데서 살아 온 사람에게 수호하는 천사가 되기를 원하는가? 친절히 그에게로 가서 그의 손을 그대의 손으로 감싸고 다정한 말을 해주라. 그리고 그의 곁에 서서 그대가 죄의 마귀를 퇴위시킬 때까지 그의 곁에 형제로 서 있으라.

그러므로 죄지은 자를 멸시하지 말고 가장 친절하고 부드러운 태도와 목소리로 그에게 호소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한 잃어버린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류에게로 선에게로 되돌릴 수 있을 것이다. 그대 자신 또한 한 인간일 뿐이며 연약하고, 그 사람처럼 아마도 타락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러므로 타락한 자에게 자비를 베풀라. 그리하여 그 같은 자비가 그대에게도 베풀어질 수 있도록 하라.

75 장 — 교회의 의무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온유와 인내와 오래 참음이 있다. 그리스도의 참 제자는 모본 되신 분을 본받고자 노력할 것이다.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그는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자 노력할 것이다. 마음이 아직도 죄로 더러워져 있는 자들은 선한 일에 열심할 수가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의무를 규정한 십계명의 처음 네 가지 조항을 지키지 못한다. 그들은 또한 동료 인간들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규정한 마지막 여섯 계명도 지키지 않는다. 그들의 마음은 이기심으로 가득 차 있고, 그들은 자신들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에게서 끊임없이 결점을 찾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맡기지 않으신 일에 손을 대고, 그분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맡겨 주신 일은 하지 않고 남겨 두는데, 그 일은 어떤 쓴 뿌리가 자라나지 않게 하고 교회를 어렵게 만들고 그것을 더럽히는 일이 없도록 스스로 조심하는 일이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행동을 조사하고 비판하기 위하여 눈을 안으로 돌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들의 품성에 옳지 않은 것이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기 위하여 그들의 눈을 밖으로 돌린다. 그들이 자아와 시기와 악한 추측과 악의에서 마음을 비우게 될 때 그들은 재판석에 올라가서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보다 나은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의견을 말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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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사람들을 개혁시키고자 하는 자는 먼저 자기 자신을 개혁시켜야 한다. 그는 그의 주님의 정신을 품고 그분처럼 즐겨 비난을 참아내고 극기를 실천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 영혼의 가치와 비교할 때 온 천하도 무의미해진다. 권위를 행사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후사들을 지배하는 데 쓰고자 하는 욕망은, 그대로 방치되면, 영혼들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들은 그들의 생애를 모본되시는 분에게 일치시키고자 노력하고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그분의 정신으로 활동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인류를 당신께로 이끌어 영원한 구원을 보증해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왕궁을 떠나 이 세상에 오셔서 인류를 대신하여 죄와 수치의 고통을 참으셨고, 인류를 해방시키기 위하여 돌아가셨다. 인류의 구속을 위하여 지불된 무한한 값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어떤 누군가가 어떻게 감히 그분의 어린 자녀들 중 하나를 무관심하게 취급하겠는가? 기름과 포도주를 해치지 않기 위하여 교회 안에 있는 형제 자매들이 모든 말과 행동을 얼마나 주의 깊게 경계해야 할 것인가! 그들은 그리스도의 피로 산 자들을 참으로 꾸준하게, 친절하게, 애정깊게 다루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낙심한 자와 용기를 잃은 자들을 건져내기 위하여 참으로 성실하게, 그리고 열렬하게 활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들은 진리를 순종하고자 애를 쓰고 있지만 불신과 흑암의 공기를 마셔야 하는 가정에서 용기를 잃고 있는 자들을 참으로 부드럽게 취급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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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한 자를 취급하는 방법

만일 어떤 형제가 잘못을 범했다고 생각되면 그의 형제와 자매들은 서로 속삭이고 그것에 관하여 쑥덕이고 실수와 결함이라고 생각되어지는 것을 침소 봉대해서는 안 된다. 이런 일이 많이 이루어졌는데, 그 결과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이 그런 일을 하는 자들에게 머물고 사단은 주님 안에서 강해질 수 있는 자들을 약화시키고 당혹하게 할 수 있는 것을 기뻐한다. 세상은 그들의 약점을 보고 이런 계층의 사람들과 그들이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진리를 그들에게 나타난 열매로써 판단한다.

“여호와여 주의 장막에 유할 자 누구오며 주의 성산에 거할 자 누구오니이까 정직하게 행하며 공의를 일삼으며 그 마음에 진실을 말하며 그 혀로 참소치 아니하고 그 벗에게 행악지 아니하며 그 이웃을 훼방치 아니하며 그 눈은 망령된 자를 멸시하며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자를 존대하며 그 마음에 서원한 것은 해로울지라도 변치 아니하며 변리로 대금치 아니하며 뇌물을 받고 무죄한 자를 해치 아니하는 자니 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영영히 요동치 아니하리이다” (시편 15편). 여기에서 참소하는 자는 하나님의 장막에서 제외되고 거룩한 시온성에 거하지 못한다. 이웃을 훼방하는 자는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없다.

얼마나 많은 목사들이, 영혼들을 하나님께로, 또한 진리로 돌아가게 하는 선한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완전히 그릇된 상태에 있는 형제들과 논쟁적이고 거만한 정신을 가진 형제들 가운데 있는 어떤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도록 불려가게 되는가?

사람들을 그들의 일터에서 불러내는 이 일은 이 사업이 발전되는 과정에서 거듭거듭 되풀이되어 왔다. 이것은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하기 위하여 인류의 큰 원수가 고안해 낸 것이다. 진리를 위하여 결정할 단계에 있는 영혼들이 이와 같이 좋지 않는 영향을 받게 될 때, 그들은 흥미를 잃어버린다. 그들을 다시 감동시킬 만큼 강력한 감명을 주는 일은 매우 드물다. 사단은 목사가 이 위기의 순간에 그의 일터를 떠나도록 부름을 받음으로 그의 활동의 결과가 상실되게 하는 어떤 계책을 언제나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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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안에는 동료 인간의 구원을 생각하기보다는 그들 자신의 권위와 그들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일을 더 많이 생각하는, 헌신하지 않고 회개하지도 않은 남녀들이 있다. 사단은 그런 사람들을 대상으로 활동하여 어려움을 야기시키고 목사의 시간과 활동을 빼앗는다. 그 결과로 많은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된다.

교인들의 감정이 분열된 상태에 처하게 되면 그들의 마음은 딱딱하고 무감각해진다. 목사의 노력은 식어 버린 쇠를 치는 것과 같고, 각 당파는 그의 길에서 이전보다 더 확고해 진다. 목사는 가장 부러워할 것이 못되는 그런 입장에 놓인다. 왜냐하면 비록 그가 언제나 매우 현명한 결정을 할지라도 그의 결정은 누군가를 불쾌히 할 수밖에 없고, 그리하여 당파 정신은 강해지기 때문이다.

만일 목사가 자기의 집을 어떤 가족과 함께 쓰게 되면, 다른 사람들은 목사가 그들에 대하여 좋지 못한 인상을 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분명히 시기하게 된다. 만일 그가 권면을 하게 되면 어떤 사람들은, “그런 말은 그 사람과 함께 나눈 것이지요” 라고 응수하게 되므로 그의 말은 그들에게 아무런 무게가 없다. 이와 같이 이 영혼들은 불신과 그릇된 추측으로 무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목사는 그들의 부당한 편견과 질투에 속수 무책이 되고 만다. 너무도 흔히 그는 그 문제를 그가 인지했었을 때보다 더 악화시켜 놓는다. 만일 그가 어떤 사람의 각색되고 편파된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성경의 원칙에 따라 충고의 말을 하고, 느헤미야처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느 6:3) 고 말했다면 교회는 훨씬 더 좋은 상태가 되었을 것이다.

목사들과 교회의 평신도들이, 개인들이 형제들의 실수와 잘못을 그들에게 이야기하도록 허용할 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그들은 이런 소문을 듣지 말고 이렇게 질문 해야 한다. “당신은 구주의 명령을 엄격히 따랐는가? 당신은 범죄한 사람을 찾아가서 그와 당신 사이에서만 그의 잘못에 대하여 이야기했는가? 당신은 주의 깊고 경건하게 다른 두세 사람을 데리고 가서 친절하고, 겸손하고, 온유하게 그를 위하여 노력했는가? 당신의 마음은 그의 영혼에 대한 사랑으로 고동하고 있는가?” 실수한 자를 위하여 주어진 법칙을 따라 대장의 명령을 엄격히 따랐다면, 그 후에는 단계 — 그것을 교회에 알리고, 성경 말씀대로 그 상황을 결정하는 단계 — 를 취해야 한다. 만일 범법한 교인이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가 그를 끊어 버리는 결정을 하는 것을 하늘이 인정해 주는 것은 바로 이 때이다. 만일 이와 같은 단계를 거치지 않았다면 불평에 대하여 귀를 막고 이웃에 대한 비난도 받아들이지 말라. 이런 일하는 형제와 자매들이 없어진다면 참소하는 혀는 곧 그쳐질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물고 뜯는 일을 하기에 매우 유리한 일터를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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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자의 선출

사도 바울은 디도에게 이렇게 편지한다. “부족한 일을 바로잡고 나의 명한대로 각 성에 장로들을 세우게 하려함이니 책망할 것이 없고 한 아내의 남편이며 방탕하다 하는 비방이나 불순종하는 일이 없는 믿는 자녀를 둔 자라야 할지라 감독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딛 1:5-7). 우리의 모든 목사들이 이 말씀에 유의하여 합당한 고려와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하여 그분께서 받으실 자들을 선정해 달라는 많은 기도 없이는 사람들에게 빨리 직분을 주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감받은 사도는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 (딤전 5:22) 라고 했다. 우리 교회들 중 어떤 곳은 조직하고 장로들을 안수하는 일이 너무 일렀다. 성경의 원칙들이 등한시되었기 때문에 쓰라린 고통이 교회에 야기되었다. 지도자들을 택하는 일에 너무 크게 서두름으로 책임이 중한 사업에 전혀 합당치 못한 사람들, 그들의 역량대로 하나님의 사업에 봉사하기 전에 회개하고, 고상해지고, 숭고해지고, 세련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이 안수를 받는 것과 같은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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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의 그물은 좋은 것과 못된 것 모두를 끌어올린다. 그러나 품성이 계발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사람들의 실상이 어떠한지를 아는 데는 시간이 걸려야 한다. 직분에 천거된 사람의 가정을 고려해 보아야 한다. 그들은 순종하는 자들인가? 그는 떳떳하게 자기의 가정을 다스릴 수 있는가? 그의 자녀들은 어떤 품성을 가지고 있는가? 그들은 아버지의 영향력을 존중할 것인가? 만일 그가 자기의 가정을 다스리는 일에 있어서 가정에서 기지와 지혜와 경건의 능력을 나타내지 못하면 동일한 결함이 교회 안에서도 되풀이 될 것이고, 똑같이 성화되지 못한 관리가 그 곳에도 나타날 것이라고 결론지어도 좋다. 사람에게 직분을 준 후에 비판하는 것보다 사전에 하는 것이 훨씬 낫고 잘못된 조처의 결과를 고치기 위하여 노력하기보다 결정적인 단계를 밟기 전에 기도하고 권면하는 것이 훨씬 더 나을 것이다.

어떤 교회들에는 지도자가 교인들을 일꾼이 되도록 교육시킬 올바른 자격을 갖추지 못했다. 하나님의 사업에 생기로운 흥미를 지속시키기 위하여 기지와 판단력이 사용되지 않았다. 지도자가 느리고 싫증난다. 그는 공중 앞에서 너무 많이 말하고 너무 길게 기도한다. 그는 그에게 신선한 경험을 줄 산 연결을 하나님과 이루지 않았다.

각 곳에 있는 교회의 지도자들은 열렬하고, 열성과 이기심 없는 관심으로 충만해야 하고, 사업에 대하여 올바른 본을 보일 수 있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어야 한다. 그들은 그들의 요구를 믿음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그들은 은밀한 기도에 있어서는 원하는 모든 시간을 바칠 수 있다. 그러나 공중 앞에서는 그들의 기도와 간증을 짧고 요령 있게해야 한다. 길고 무미건조한 기도와 지루한 권면은 피해야 한다. 만일 형제와 자매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덕을 세울 수 있는 어떤 말을 갖기를 원한다면 그것이 먼저 그들의 마음 속에 있어야 한다. 그들은 날마다 하나님과 연결되고, 그들이 필요로 하는 것들을 다함이 없는 그분의 창고에서 끌어내고 거기서 새것과 옛 것을 가져와야 한다. 만일 그들 자신의 심령이 하나님의 영으로 활력을 얻게 되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강하게 하고, 용감하게 해 줄 것이다. 그러나 그들 자신이 구원의 산 샘에서 마시지 못했다면,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그 곳으로 이끌어 갈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609-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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