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519-528 (315일)

우리 중 누구에게나 유일한 안전은, 철저하게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계시되어 있는 그대로의 진리에 친숙해져서 우리에게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와 두려움으로 대답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시대의 우리의 대열 전체를 통하여 노력하는 목사들과 교역자들의 특별한 활동은 젊은이들의 주의를 모든 흥분적인 이야기에서 분명한 예언의 말씀으로 돌이키게 하는 것이어야 한다. 영생을 위하여 애쓰고 있는 모든 사람의 주의는 성경에 집중되어야 한다.

내가 흥분시키는 이야기들을 읽는 것에 관하여 쓴 모든 것을 고려해 볼 때 로빈슨 크루소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이솝의 우화를 읽으라고 그대가 쓴 추천은 나에게는 놀랍게도 이상하게 여겨진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그 기사를 씀으로 실수를 범하였다. 만일 이 책들이 그대가 판매하는 책들 중에 속한다면, 나는 그것들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결코 주지 말기를 간청하는 바이다. 그들의 주의를 성경으로 돌이키는 것이 그대의 의무이다. 그들의 마음을 성경 연구에서 분리시키는 매력적인 이야기책들을 그들에게 제공함으로 그들의 유혹자가 되지 말라. 우리는 우리 스스로 생명수를 마셔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물을 저축하지 못할 터진 웅덩이를 끊임없이 파게 될 것이다.

사단은 젊은이들의 마음을 어지럽게 하기 위하여 몰래 들어오는 수천가지 방법과 계획들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영혼이 확고하고 완전하게 하나님께 고정되지 않으면, 그리고 성경을 탐구하는 데 마음을 몰두케하여 우리의 믿음 안에 굳건히 서도록 하는 바로 그 점을 양심적으로 수호하지 않으면 그들은 분명히 올무에 걸리게 될 것이다. 우리는 한 순간도 방심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도록 허용할 수 없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우리 자녀들의 마음에 파수꾼을 세움으로써 그들이 사단의 유혹에 미혹되지 않게 해야 한다.

-520-

우리는 큰 대속죄일에 살고 있다.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현재 하늘 성소에서 진행되고 있는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업은 우리의 끊임없는 연구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표상적인 대속죄일이 무엇을 의미했는지에 대하여 또한 하나님 앞에서 크게 회개하고 죄를 고백하는 특별한 기회가 되었다는 것을 우리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한다. 실제적인 대속죄일도 동일한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교훈과 모본으로 진리를 가르치는 모든 사람은 나팔이 분명한 소리를 내게 할 것이다. 그대는 언제나 영성을 계발시킬 필요가 있다. 그대가 신령한 마음으로 바뀌어지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세속적인 습관과 행동에서 떠나게 하고, 점점 더 높이, 영성과 경건을 향하여, 또한 하나님을 위한 열렬한 사업을 하도록 이끄는 큰 사업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셋째 천사의 기별을 선포하고, 마지막 경고의 음성을 세상에 전하는 것이 그대의 사업이다. 주님께서 그대를 축복하셔서 영적 시력을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대의 위험을 보고 사랑으로 이것을 기록한다. 경건한 마음과 기도하는 정신으로 이것들을 생각해 보기 바란다.

60 장 — 젊은이들을 위한 조언

사우스 랭캐스터 중,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나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약 4:8) 고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의 믿음을 결코 부끄러워하지 말라. 결코 원수의 편에 서지 말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마 5:14). 그대의 믿음은 귀중한 진리, 모든 사람이 반드시 소유해야 하고 그들이 구원을 받으려면 소유하지 않으면 안 되는 진리로 드러나야 한다. 한 백성으로서 우리는 소수에 속하며, 인기가 없다. 우리의 원수들은 우리를 해칠 기회를 엿보고 해치기 위하여, 우리를 배반하고, 우리의 영혼을 파멸시킬 기회를 엿볼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동기를 식별하지 못할 것이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깨닫게 하고 이해하게 해주기 위한 우리의 간절한 열망과 강한 의욕을 오해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모든 계명을 순종함으로 그분의 뜻을 행할 수 있다는 것도 오해한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고전 15:58) 자들이 되어야 한다.

-521-

내가 젊은이들의 상태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서 관대하게 재능을 위탁해 주신 것으로 내가 아는 자들에게 교육을 받으라고 권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깨닫게 될 때, 나는 표현할 수 없이 슬픈 감정, 때로는 거의 절망 느낀다. 교육을 받지 못하면 그들은 어떤 위치에서나 활동 불능이 되고 쓸모 없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교육을 받음으로 그들은 위험과 유혹에 노출될 것이다. 사단은 그들의 계발된 능력들을 그의 사업에 이용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의 능력을 악한 목적에 사용한다. 육욕의 포착하기 힘든 독소는 그들의 혈관을 통하여 흐른다. 그것은 진로에 거의 방해를 받지 않는다. 그것은 매혹시키고 황홀케 한다. 도덕적 고결을 적절히 존중할 때 가장 높은 수준까지 계발되고 글자 그대로 탁월해질 수 있는 정신은 흔히 정욕에 지배되기까지 타락한다. 이렇게 미혹당한 영혼들에게는, 고결한 도덕과 실제적 경건이 아무런 매력도 없다. 그들의 영혼을 타락시키고 파멸시키고자 하는 사단의 노력을 좌절시킬 어떤 영향을, 교훈으로나 모본으로 그들에게 작용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이 젊은 남녀들이 즐겨 배우고자 하고, 경험 있는 자들에게서 즐겨 권면을 듣고자 하지 않으면, 그들은 사단의 간계에 의하여 분명히 타락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을 가르치는 자들이 은혜 안에서, 또한 진리를 아는 지식과 진정한 영적 식별력을 가지고 꾸준히 자라나지 않으면, 그들은 그들의 모본과 그릇된 사상을 발전시킴으로써 모르는 사이에 원수의 일을 도와주고, 사람들에게 전혀 유익이 되지 않고 그들의 영혼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을 것을 가장 좋은 것으로 간주하게끔 영혼들을 이끌어갈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우리 젊은이들의 교육을 위하여 세워서 실천하게 된 계획들은 어느 것이나 충분히 포괄적인 것이 아니다. 그들은 한편으로 편중된 교육을 받아서는 안 된다. 그들의 모든 능력에 똑같은 관심이 기울여져야 한다. 도덕적 원리, 성경 연구, 육체적 훈련은 학교에서 일반적으로 행해지는 연구들과 병행되어야 한다. 모든 능력, 육체적·정신적·도덕적 능력은 최고의 봉사를 할 수 있도록 훈련되고, 계발되고, 단련될 필요가 있다. 모든 것이 균등하게 발달되지 않으면, 한 가지 기능이 인간 기계의 어떤 부분에 지나치게 짐을 지우지 않고 철저하게 그 일을 할 수 없다.

-522-

최고의 봉사를 위하여 정신을 훈련시키는 중요성에 관하여 많이 언급되고 기록되어 왔다. 이것은 만일, 지성이 최고의 능력을 발휘하도록 교육을 받으면 그것이 전인적 (全人的) 발달을 위하여 육체적·도덕적 특성을 강화시킬 것이라는 의견을 때때로 갖게 했다. 시간과 경험은 이것이 하나의 오류임을 판명했다. 우리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놀라운 육체적 기관을 적당하게 사용할 자격을 결코 갖추지 못한 남녀들이 대학 졸업자로 배출되는 것을 보아왔다. 모든 육체는 활동하도록 의도된 것이지 무활동을 위하여 의도된 것이 아니다. 만일 육체적 힘이 정신적 힘과 균등하게 짐을 지지 않을 것 같으면 후자에게 너무 많은 긴장이 주어진다. 인간 기계의 모든 부분이 각각 맡은 일을 완수하지 못하면 잠깐 동안도 그것들이 최고의 역량껏 이용될 수 없다. 천연의 능력은 천연의 법칙에 의하여 지배되어야 하고, 재능들은 이 법칙들과 조화되고 일치되게 활동하도록 교육되어야 한다. 우리 학교에 있는 교사들은 책임을 회피하지 않는 한 이 독특한 재능들 중 어느 하나도 무시해 버릴 수 없다. 자존심은 학생들에게 세속적인 높은 지적 학식을 위하여 노력하게도 하고, 그들이 훌륭한 결과를 나타낼 수도 있다. 그러나 견실한 학식 즉, 실 생애의 어떤 상황이나 모든 비상시에 남녀들을 적응시키기에 필수적인 학식에 있어서는, 그 학생들은 생애의 성공을 위하여 다만 부분적으로 준비한 데 불과하다. 그들의 결함된 교육은, 그들이 담당하는 어떤 분야의 사업에서도 흔히 실패하게 한다.

-523-

체육관의 운동은 어떤 경우에 유익이 될 수도 있다. 그것들은 유용한 육체적 훈련의 부족을 보충해 주었고, 교육 기관에서 보편화되었다. 그러나 그것들은 결점이 없는 것이 아니다. 주의 깊이 통제되지 않으면 그것들은 유익보다 손해를 더 많이 자아낸다. 어떤 사람들은 이 체육관 운동 때문에 일생 동안 육체적 손해를 받아 왔다. 우리 학교들과 관련된 노작 교육은, 올바로 지도되기만 하면 거의 체육관 운동을 대신하게 될 것이다.

교사들은 우리 학교에서 육체적·지적·도덕적 감화에 훨씬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비록 과학의 연구가 학생들에게 높은 학식을 제공해 줄지라도 그것은 충분하고 완전한 교육을 제공하지 못한다.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육체적·도덕적 능력의 철저한 계발에 특별한 주의를 기울이게 되면, 학생들은, 실생활을 위하여, 또한 가장 완전한 품성의 계발을 위하여 그들이 반드시 소유해야 할 지식을 얻지 못한 채 자신들이 교육을 받았다고 말하면서 우리의 대학들을 떠나가지 않을 것이다.

이런 결함들을 생각할 때 나의 마음은 아프다. 왜냐하면 결과적으로 건강의 상실과 주의 깊이 육성된 재능의 부족과, 생애의 성공에 가장 필수적인 그런 종류의 활동에 대한 적응의 부족 등이 초래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신문들은 사기와 횡령, 가정의 불행, 곧 남의 아내들과 눈이 맞아 달아나는 남편들과 남의 남편들과 눈이 맞아 달아나는 아내들에 대한 기록으로 가득 차는 데, 이 모든 것은 그런 남녀들이 근면의 습관을 훈련받지 못하고 시간을 절약하고 가정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하여 최선의 방법으로 그들의 능력을 활용하는 길을 결코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전국에 있는 모든 교사에게 이 문제에 관하여 깨우쳐 줄 수 있으면 좋겠다. 그들에게는 교육 사업을 확장하고 향상시키기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 세상의 상태가 가망 없이 되어 가고,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되” 라는 말에 순종하는 참 신앙이 거의 사라질 때가 우리 앞에 박두해 왔다. 하나님께서 심한 분노로 범죄자들을 즉시 벌하지 않으신다 해서 악한 행위가 잊어버린 바 되거나 간과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국가들을 심판할 재료를 간직하고 계신다. 이 세상 역사의 모든 세기를 통하여 악한 일꾼들은 진노의 날에 임할 진노를 쌓아 왔다. 그 범죄가 정해진 하나님의 자비의 영역에 완전히 이르는 때가 되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이 그치게 될 것이다. 하늘의 기록책에 집계된 총계가 범죄의 양을 다 채웠음을 나타낼 때 자비가 섞이지 않은 진노가 임할 것이다. 그 때에 하나님의 인내가 끝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알려질 것이다. 이 위기는 나라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무효로 만드는 일에 연합할 때 이르게 될 것이다.

-524-

불법이 성함으로 의인들이 하나님을 위한 열성으로 일어설 날이 올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 외의 어떤 것도 악인들과 연합한 사단의 오만을 중단시킬 수 없다. 그러나 교회가 가장 큰 위험에 처해 있을 때 충성된 남은 자들은 교회를 위하여 가장 열렬한 기도를 드리게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범죄자의 악이 절정에 달해 있는 바로 그 때에 들으시고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 (눅 18:7) 실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열성을 나타낼 것이다. 그들은 기도에 열심을 나타내고, 그들의 믿음은 강하게 자라날 것이다.

학생들 사이에는 열심이 너무 없다. 그들은 더욱 열렬히 노력해야 한다. 공부하는 법을 깨닫기 위한 많은 연구가 요망된다. 모든 학생은 근면의 습관을 계발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는 그의 손에서 2류에 속한 일이 나오지 않게 해야 한다. 그는 바울이 디모데에게 한 말을 그 자신에게 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읽는 것과 권하는 것과 가르치는 것에 착념하라 네 속에 있는 은사 곧 장로의 회에서 안수받을 때에 예언으로 말미암아 받는 것을 조심 없이 말며 이 모든 일에 전심 전력하여 너의 진보를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게 하라 네가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이것을 행함으로 네 자신과 네게 듣는 자를 구원하리라” (딤전 4:13-16).

-525-

젊은이들과 노인들의 의무는 단순하고 적극적인 언어로 밝혀져야 한다. 왜냐하면 진리가 거짓과 사단의 속임으로 억압당할 수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는 위기의 때에 우리가 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시험과 시련의 때에 전능하신 분의 방패는 그분의 율법을 맡은 자들에게 덮여질 것이다. 입법자들이 가톨릭을 후원하고 친교의 오른손을 뻗기 위하여 개신교의 원칙들을 버리게 될 때, 하나님께서는 그분 자신의 명예와 그분의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특별한 방법으로 간여하실 것이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계발시킬 필요가 있는 원칙들을 그들의 매일의 교육을 통하여 항상 그들 앞에 제시해 줌으로써, 모든 사람이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라는 명령이 주어질 때, 종교계에 의하여 하나님의 율법이 무효화되는 바로 그 때에도 그들은 바른 선택을 하고, 요동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 안에 있는 그들의 확신을 주장할 수 있는 힘을 소유하게 되어야 한다. 오늘날 주저하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 (딤전 4:1) 을 좇는 배교자들의 본을 따르도록 유혹을 받는 자들은, 회개하고 그들의 발을 단번에 성도들에게 주신 믿음에 굳게 고정시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율법을 폐하는 자들 편에서 분명히 발견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가장 무서운 위기에 처해 살고 있다면 우리는 그 상황의 실재에 대하여 알고 있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왜 그처럼 침묵을 지키고 있는가? 왜 우리 각 사람에게 가장 큰 중요성이 있는 것을 가장 중요하지 않는 것으로 만드는가? 성경은 우리의 가장 귀중한 보배가 되어야 하고 가장 진지하게 연구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렬히 가르쳐져야 한다. 빛과 지식을 간직해 온 자들에게 어떻게 이 무서운 무관심이 계속될 수 있는가?

예언과 역사는 우리의 학교에서 연구의 한 부분이 되어야 하고, 교육자의 위치를 수락하는 모든 사람들은 계시된 하나님의 뜻을 더욱 더 존중해야 한다. 그들은 학생들을 단순하게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성경을 펼쳐야 하고 그들 자신의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성경에 입각한 신앙의 귀중함과 거룩함의 아름다움을 보여 주어야 한다. 그러나 한 순간이라도, 그의 원칙이 알려지면 그가 그처럼 크게 존경을 받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여 세상의 불신자들에게 그의 믿음과 교리를 숨기는 것이 그에게 유리할 것이라는 인상을 결코 한 순간도 어떤 사람에게 주어서는 안 된다.

-526-

지금은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할 때가 아니다. 우리는 세상과 천사들과 사람들에게 구경거리이다. 온 우주는 말할 수 없는 관심을 가지고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대쟁투의 마지막 일을 보고 있다. 살아 있는 자들에 대한 심판이 바야흐로 시작되려고 하는 이러한 때에 우리는 거룩하지 못한 야망이 마음을 점령하도록 허용할 수 있겠는가? 오늘날 하늘의 하나님께 충성되고 진실한 것으로 판명되는 것보다 우리에게 더 가치 있는 것이 무엇이겠는가? 우리가 바로 영원한 세계의 경계에 있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은 어떤 것인가?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에 대한 지식이 그처럼 필요한 우리의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어떤 교육을 할 것인가?

하나님께 영웅적으로 충성한 사람들

요셉은, 애굽인들에게 존경을 받았을 때, 하나님께 대한 자신의 충성을 숨기지 않았다.

엘리야는 보편적인 배교 가운데서도 그가 하늘의 하나님을 섬긴다는 사실을 숨기고자 애쓰지 않았다. 바알의 선지자들은 450명, 그 제사장들은 400명, 그를 섬기는 자들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엘리야는 그가 대중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그는 당당하게 홀로 섰다. 산은 열렬한 기대에 부푼 사람들로 덮였다. 왕은 호화 찬란한 모습으로 나타났다. 승리의 확신을 가진 우상 숭배자들은 그를 환영하는 소리를 외쳤다. 그러나 하나님은 크게 모욕을 받아 오셨었다. 한 사람, 오직 한 사람만이 하나님의 영광을 옹호하기 위하여 나타났다. 분명하고, 나팔 소리와 같은 음성으로 엘리야는 많은 군중에게 외쳤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을지니라” (왕상 18:21). 그 결과로 하늘을 통치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옹호되고, 바알을 경배하는 자들은 죽임을 당하였다. 오늘날의 엘리야들은 어디에 있는가?

-527-

다니엘의 역사는 두드러진 것이다. 그는 큰 반대를 당하면서도 자신의 믿음과 원칙을 실천했다. 그는 왕의 조서 앞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그의 충성을 조금도 감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았다. 엿보는 눈들이 그를 감시하고 있고 그의 원수들이 왕에 대한 불충에 관하여 고발하고자 준비하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열린 창문 앞에 가서 늘 하던 습관대로 기도하기 위하여 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는다는 것은, 오늘날에 있어서는 지나친 의라고 불리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니엘은 사자 굴에서의 죽음이 예상될지라도 그와 하나님 사이에 어떤 세상의 권력도 개입되도록 허용하고자 하지 않았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이 사자 굴에 떨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지 않으셨지만 천사들이 그와 함께 가서 사자들의 입을 봉했기 때문에 아무런 해도 그에게 미치지 않았다. 아침에 왕이 그를 부르자, 그는 대답했다. “나의 하나님이 이미 그 천사를 보내어 사자들의 입을 봉하셨으므로 사자들이 나를 상해치 아니하였사오니 이는 나의 무죄함이 그 앞에 명백함이오며 또 왕이 나는 왕의 앞에도 해를 끼치지 아니하였나이다” (단 6:22). 그는 고상하고 확고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백성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하거나 비겁해 함으로 유익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 마치 우리의 믿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처럼 우리의 빛을 숨기면 결국 재난만 있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연약함 그대로 우리를 버려 두실 것이다. 우리가 그분께서 부르시는 어느 곳에서나 우리의 빛을 비추지 않겠다고 거절하지 못하도록 주님께서 막아 주시기를 바란다. 만일 우리가 우리 스스로 앞으로 전진하고, 우리 자신의 생각과 우리 자신의 계획을 따르고, 예수님을 뒤에 버려 두면, 우리는 강한 참을성과 용기와 영적 힘을 얻고자 기대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도덕적 영웅들을 소유해 오셨다. 그분께서는 지금도 그러한 사람들, 그분의 특별한 백성되기를 부끄러워하지 않는 자들을 소유하고 계신다. 그들의 의지와 계획들은 모두 하나님의 율법에 종속된다. 예수님의 사랑은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생명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게 했다. 그들의 사업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빛을 취하여 분명하고 확실한 빛을 세상에 계속 비추게 하였다. “하나님께 충성한다” 는 것이 그들의 좌우명이다.

교육받은 목회 활동

상인. 목수, 농부, 변호사는 모두 그들의 사업이나 직업을 익혀야 한다. 처음에는 지식의 부족으로 그들이 불완전하게 일을 하게 된다. 그러나 꾸준히 그들의 직업을 계속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의 여러 직임에 숙달자들이 된다. 정신과 마음, 사람의 모든 힘을 철저하게 기울이지 않으면, 목사는 실패할 것이다. 그는 설교자가 될 수도 있지만, 한 사람의 목양자로서의 직임을 감당하기에도 적합해야 한다. 연구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된다. 그가 활동을 위하여 아무리 자격을 잘 갖추었다고 스스로 생각할지라도, 그의 활동의 전 기간을 통하여 연구는 계속 되어야 한다.

시대는 풋내기가 아닌 지성적이요 교육받은 목사를 요구한다. 거짓 교리들이 증가하고 있다. 세상은 교육을 받아 높은 수준의 학식을 얻고 있다. 그리고 지적 지식과 예리함을 얻음에 따라 죄와 불신과 불충은 더욱 담대하고 반항적으로 되어 간다. 이런 상태는 모든 지적 능력을 활용하기를 요구한다. 목사가 맞이해야 할 것은 사단의 지배 아래 있는 예민한 마음이기 때문이다. 그는 종교적 원칙에 의하여 균형이 잘 잡히고 은혜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 안에서 자라나야 한다. 너무도 많은 일이 되는 대로 행해졌기 때문에 정신은 최대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우리의 목사들은 허울 좋은 오류를 옹호하는 자들과 함께 성경의 증거를 헤아려 봄과 동시에 비열한 배교자들을 대항하여 진리를 옹호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진리는 대담한 주장들과는 대조적인 위치에 놓여져야 한다. 우리 목사들은 완전히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들이어야 하고 결코 교양 없는 사람들이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신앙의 열기로 불타올라야 하고, 하늘에서 온 거룩한 광선을 모아서 세상을 덮은 흑암과 만민을 둘러싼 심한 어둠 가운데서 그것을 비추어야 한다.

-529-

부도덕과 범죄, 모든 종류의 죄악은 꾸준히 증가되고 있다. 성경의 진리의 관통력이 진리와 오류를 구별해 보여 주어야 한다. 주님을 위하여 선한 봉사를 하려면 보다 높은 차원의 준비가 요구된다. 그러나 만일 목사가 그가 수득한 지식을 의지하고 날마다 거룩한 빛이 크게 필요함을 느끼지 않으면, 받은 바 교육은 죄인들에게 거치는 장애에 불과하다. 우리는 모든 지혜의 하나님이 우리의 모든 활동 안으로, 우리의 모든 경험 속으로 들어오시기를 바란다. 그러면 얻은 바 모든 작은 지식은 선을 위한 능력이 되고, 역량과 그리스도와 같은 열성을 계발시키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이것이 신앙이다.

교회증언 5권 pp. 519-52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