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대의 마음을 겸비하게 하고 그대의 잘못을 고백하도록 권면한다. 다윗이 임종할 즈음에 솔로몬에게 한 엄숙한 명령을 생각해 보라 “내가 이제 세상 모든 사람의 가는 길로 가게 되었노니 너는 힘써 대장부가 되고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을 지켜 그 길로 행하여 그 법률과 계명과 율례와 증거를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무릇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형통할지라” (왕상 2:2, 3). 이 명령을 그대의 마음에 받아들이라. 어떤 사람도 잘못을 범하고 있는 그대를 치켜세우지 않게 하라. 죄를 범하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지만, 자기의 죄를 고백하는 것은 창피스런 일이라기보다 명예로운 일이다. 참된 개성을 유지하고, 남자다운 위엄을 계발하라. 교만과 허영심과 거짓된 위신을 버려라. 이런 것들을 간직하면 그대 자신에게 가장 무서운 결과만이 초래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대를 대장부로 만들어 주고 질병과 슬픔 가운데서 그대의 마음을 즐겁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시끄러운 노래나 즐거운 단체나 자극적인 술이 아니다. 참된 신앙만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그대의 위안과 위로가 될 수 있다. 직무에서 그대가 받은 단련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대에게 부과한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하고 가혹한 것은 아니었다. 그대는 하나님을 불공평하다고 부르겠는가? 그대는 범죄자가 그분의 임재에서 분리될 것이라고 주장하신다 해서 그분이 전제적인 분이라고 대면해서 말하겠는가?
혼인 잔치에 오라는 초청을 받고서도 그를 위하여 구입해 둔 혼인 예복, 곧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않은 자를 취급한 방법이 하나님의 말씀에 얼마나 분명하게 묘사되어 있는가! 그는 자기의 더러운 옷이 그리스도 앞에 나가기에 충분할 만큼 좋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주님을 모독하고, 그분의 은혜로운 자비를 멸시한 자로 쫓겨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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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여, 그대의 의는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 그대는 그리스도와 같아져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식욕 때문에 유혹의 광야에서 겪으신 극심한 시험을 생각해 보라. 그분은 그대와 나를 위하여 오래 절제하심으로 여위어지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해 주시고, 식욕과 모든 부정한 정욕을 이길 거룩한 힘을 우리에게 주시고자 사단과 싸워 그를 정복하셨다.
나는 그대가 이 문제를 사실 그대로 직시하기를 바란다. 그대가 맥주와 술과 독주를 마심으로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들과 연합할 때, 그대 앞에서 사단의 세력을 깨뜨리고 인간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정복하는 자가 되게 하시고자 극심한 주림의 고통을 겪고 계시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라. 진리를 거절하고 구원을 저버리는 믿지 않는 자들과 더불어 그대가 거품이 일고 있는 맥주잔을 높이 들고 있을 때, 그대가 그대의 구주라고 주장하고 그대의 영생의 소망이 집중되어 있는 바로 그 예수님이 거기서 보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라. 아, 이런 일이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보지 못할 만큼 그대가 도덕적 지각에 있어서 어떻게 그처럼 약할 수 있겠는가! 그대는 가장 엄숙한 서약을 깨뜨리면서도 핍박당하는 일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사단이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발휘하고 있는 능력을 깨뜨리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하고자 강력하게 느끼고 있는 자들이, 그대의 습관에 변화가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대를 번역자로서 하나님의 사업과 관련하여 일하게 할 수 없다고 그대에게 이야기할 때 어떻게 그대가 그대의 행동에 대한 슬픔의 증거를 전혀 나타내지 않고 어떻게 그들 앞에 방약 무인하게 설수 있겠는가? 그대를 위하여 생명을 버리신 구주께서는 그대의 태도를 어떻게 생각하시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는 핍박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후 5:10). 그분의 판결에 대하여 항소할 길도 없고, 오해도 결코 없고, 오인도 있을 수 없는 이 장엄하고 무서운 재판석에 그대가 설 때, 그대는 침묵해질 것이다. 그대가 지금 죄를 버리고, 열심히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지 아니하면, 그대는 범죄하고, 정죄받고, 소망 없는 상태로 서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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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 대하여 지금껏 취해 온 것 외에 어떤 다른 행동을 취할 수 있었겠는가? 나는 그대의 영혼을 위하여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대를 반역하게 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에 책임 있는 위치에 놓아 주신 자들을 무시하게 하는 거짓된 동정의 말은 내게서 결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대가 그러한 노선을 따르고 그대의 인격을 욕되게 하고, 그대의 심령 속에 있는 하나님의 도덕적 형상을 말살시키고, 자신의 마음을 속이면서, 자신의 피값으로 그대를 속량하신 분을 욕되게 할 때 그래도 괜찮을 것이다라고 어떤 사람들이 분명히 말할 것이지만, 나는 그대를 너무도 중시하기 때문에 그대에게 그렇게 말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계 3:21). 그대는 승리하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는 그대 자신의 육욕과 식욕과 정욕에 정복당하고 있는가?
우리의 가장 중요한 사업들에게 대한 번역을 안전하게 위탁받고 거룩한 사물을 취급하기 위하여 그대는 하나님과 가장 완전하게 연결을 이루고 그분을 섬기는 일에 완전히 헌신해야 마땅하지 않겠는가?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를 섬길 수 있고, 그대가 번역하는 일을 정확하게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셨던 것과 같은 지혜와 지식을 그대에게 주실 수 있는 곳에 마땅히 그대가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사단의 암시에 대하여 마음을 열기로 선택하고 그리스도의 원수된 자들과 교제하기로 선택하면서도 그대는 하나님께서 그대를 지켜서 사단의 세력에 굴복하지 못하도록 이적행하시기를 기대하는가? 악한 천사들은 그대의 영혼 주변에 모여 있다. 그러나 그들은 초청된 손님들이다. 그들은 제안하고, 그대는 그것들을 받아들인다. 그대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로 작정하기 전에는 그분의 지도를 받을 수 없게 될 것이다.
예수님은 그분의 군사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을 섬기기를 기대하신다. 그분은 그대가 원수를 알아내어 그를 저항할지언정 그를 신임하여 초청해 들임으로 신성한 사명을 저버리지 않기를 바라신다. 주님께서는 그대를 고상하고 향상된 위치에 두시고 그분의 사업에 끊임없이 적합해지게 하셨다. 만일 그대가 이 자격을 얻지 못하면 탓할 사람은 그대 자신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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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시고,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기에 적합하게 하시기 위하여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시는 세 가지 길이 있다. 어떻게 우리가 그분의 음성을 낯선 사람의 음성과 분별해서 알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그 음성을 거짓 목자의 음성과 구별할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당신의 뜻을 우리에게 나타내신다. 그분의 음성은 또한 그분의 섭리의 역사를 통하여 나타난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길을 걸어가고, 우리 자신의 뜻을 따라 행동하고, 거룩하지 못한 마음의 충동을 따르되 마침내 지각이 너무 혼란해져서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지 못하고 사단의 음성이 너무 변조되어 버리므로 그것이 하나님의 음성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 우리의 심령이 그분에게서 분리되지 않으면 그 음성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는 또 하나의 길은, 마음에 감명을 주는 성령의 호소, 곧 품성 가운데서 역사하게 될 호소를 통해서이다. 만일 어떤 문제에 관하여 의심이 생기면 그대는 먼저 성경을 참고로 해야 한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믿음의 생애를 시작했다면 그대는 그대 자신을 주님의 것으로 완전히 그분에게 바쳤다. 그러므로 그분께서는 그대를 취하셔서 귀히 쓰는 그릇으로 만들고자 그분의 뜻을 따라 꼴 짓고 빚으신다. 그대는 그분의 손안에서 유연해지고 그분께서 어디로 인도하시든지 따라가기 위하여 열렬히 소원해야 한다. 그리하면 그대는 그분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하여 그분을 신뢰함과 동시에 두렵고 떨림으로 그대 자신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그분과 협력하고 있는 것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는 여기에서 어려움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는 아직까지 선한 목자의 음성을 깨닫는 법을 경험을 통하여 배우지 않았으므로 그대가 의심과 의문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그대는 그분의 음성을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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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지의 활용
순결한 신앙은 의지와 상관이 있다. 의지는 사람의 본성 가운데 있는 지배력이며, 다른 모든 기능을 통제한다. 의지는 취향이나 경향이 아니고, 사람들에게 역사하여 하나님께 대한 순종과 불순종을 결정하는 능력이다.
그대는 지능에 있어서 어린 사람이다. 그대는 그대의 생애가 마침내 하늘에 적합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그대는 도덕적 능력이 약하고, 의심에 사로잡히고, 그대의 죄악적 옛 생애의 습관과 행습에 지배당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고 자주 낙심한다. 그대는 그대의 정서적 본성이 그대 자신에게, 그대의 최선의 결정에, 그리고 그대의 가장 엄숙한 서약에 진실하지 못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아무것도 진실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그대의 불안정은 그대에게 선을 행하고자 하는 자들의 진실을 의심하게 한다. 그대가 의심 가운데서 더욱 투쟁하면 할수록, 모든 것은 그대에게 더욱 진실이 아닌 것처럼 보이며, 마침내 어떤 곳에도 그대를 위한 견고한 땅은 없는 것처럼 보이기까지 된다. 그대의 약속은 썩은 새끼와 같다. 그러므로 그대는 그대가 신임해야 할 사람들의 말과 행동도 똑같이 진실이 아닌 것으로 여긴다.
그대가 의지의 참 힘을 이해하기 전에는 끊임없는 위험에 처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모든 것을 믿고 약속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약속이나 그대의 믿음은, 믿음과 행동의 측면에서 그대의 의지를 활용하고서야 비로소 효력이 나타날 것이다. 그대가 그대의 의지를 다하여 믿음의 싸움을 싸우면 그대는 승리하게 될 것이다. 그대의 감정, 그대의 느낌, 그대의 정서는 믿을 수 없다. 그것들은 그대의 왜곡된 사상과 함께 믿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깨어진 그대의 약속과 그대의 상실된 서약은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그대에 대한 다른 사람들의 신임을 약화시킨다.
그러나 그대는 낙심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비록 아무것도 그대에게 진실하고 참된 것처럼 보이지 않을지라도, 믿고자 결심하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그대 자신을 이처럼 부러워할 것이 없는 위치에 이르게 한 것이 그대라는 사실을 그대에게 말할 필요가 없다. 그대는 하나님을 믿는 그대의 믿음과 형제들을 신뢰하는 그대의 신임을 회복해야 한다. 그대의 의지를 예수 그리스도의 의지에 굴복시키는 것은 그대를 위해서이다. 그대가 이렇게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대를 소유하셔서 그대 안에서 그분의 기쁘신 뜻을 따라 행하실 것이다. 그대의 전체적인 본성은 그때에 그리스도의 영의 지배 아래 놓이게 되고, 그대의 생각은 그분께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원하는 대로, 그대의 충동과 그대의 정서를 지배할 수 없다. 그러나 그대는 의지를 지배할 수 있고, 그대의 생애에 완전한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그대의 의지를 그리스도께 굴복시킴으로 그대의 생애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지고, 모든 정사와 권세를 초월한 능력과 연합할 수 있다. 그대는 그대를 하나님의 능력에 굳게 붙들어 매어 줄 수 있는 능력을 하나님으로부터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새 생애, 산 믿음의 새 생애가 그대에게는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의 의지는 사단이 그대를 사로잡아 파멸시키기 위하여 끊임없이 역사하고 있는 동료들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의지와 협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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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지체없이 그대 자신을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 두지 않겠는가? 그대는 “예수님께 나의 의지를 바치되, 지금 곧 바치겠다” 고 말하고, 이 순간부터 완전히 주님 편에 속하지 않겠는가? 관습과 식욕과 정욕의 강한 부르짖음을 무시해 버리라. 사단에게 “그대는 가엾은 위선자다” 고 말할 기회를 주지 말라. 문을 닫아 버림으로 사단이 이와 같이 그대를 비난하고 낙담케 하지 못하게 하라. “나는 믿는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시는 분이심을 믿는다” 고 말하라. 그리하면 그대는 하나님 안에서 승리하는 사실을 발견할 것이다. 의지를 주님 편에 굳게 고정시키고 있을 때 모든 정서는 예수님의 뜻에 사로잡히게 될 것이다. 그 때에 그대는 그대의 발이 단단한 반석 위에 서 있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것은 때로는 그대가 소유하고 있는 의지력을 총 동원시킬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위하고 역사하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므로 그대는 꼴 짓는 과정을 통하여 귀히 쓰는 그릇이 되어 나오게 될 것이다.
믿음을 이야기하라. 언제나 하나님 편에 서라. 그대의 발을 원수의 편에 두지 말라. 그리하면 주님께서는 그대를 도우시는 분이 되실 것이다. 그분은 그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을 그대를 위하여 하실 것이다. 그 결과로 그대는 “레바논의 백향목같이” (시 92:12) 될 것이다. 그대의 생애는 고상해지고, 그대의 행동은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대를 하나님의 손에 쥐어진 세련된 도구로 만들어 줄 능력과 열성과 단순함이 그대 안에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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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주님 안에 있는 즐거움과 기쁨의 비결을 이해하기 위하여 날마다 진리의 샘에서 마실 필요가 있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의지가 그대의 모든 행동의 근원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의 품성에 있어서 그처럼 요긴한 요소를 이루는 이 의지는 타락으로 사단의 지배하에 들어가 버렸다. 그리하여 사단은 언제나 그 자신이 기뻐하는 뜻을 따라 역사함으로 사람의 완전한 멸망과 불행을 도모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의 무한한 희생은, 그분의 독생자 예수님을 주셔서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게 하심으로 그분의 정부의 원칙을 하나도 깨뜨리지 않고 그분으로 하여금 이렇게 말씀하실 수 있게 한다. “그대 자신을 나에게 바쳐라. 그 의지를 내게 달라. 나는 그것을 사단의 지배에서 빼앗아 내가 소유하겠다. 그렇게 될 때 나는 나의 기뻐하는 뜻을 따라 그대 안에서 역사할 수 있다.” 그분께서 그대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주실 때, 그대의 뜻은 그분의 뜻과 같아지고, 그대의 품성은 그리스도의 품성과 같이 변화된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 그대의 목적인가? 그대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마 16:24) 고 한 성경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는가?
그대가 기호를 만족시키지 않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결심하지 않는 한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같은 일은 없다. 그대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것은 그대의 감정, 그대의 정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다. 그대의 뜻이 하나님의 뜻이 되면 그대의 앞에는 유용한 생애가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인격, 곧 훌륭한 행위의 모본으로 설 수 있다. 그리고 그대는 교훈의 법칙들을 깨뜨리는 역할을 하는 대신에 그것들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대는 질서를 멸시하고 그대 자신의 행동을 통하여 생활의 불규칙을 선동하는 대신에 그것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나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대에게 말한다. 나는 그대의 의지가 하나님 편에 놓일 때 그대가 어떤 사람이 될 것인지 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고전 3:9). 그대는 그대의 사업이 심판을 견딜 수 있는 그런 방법으로 현재와 영원을 위하여 추진할 수 있다. 그대는 그렇게 하고자 노력하겠는가? 그대는 지금 일치되고자 노력하겠는가? 그대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중보의 대상이다. 그대는 지금 하나님께 굴복하고,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수호하는 파수꾼으로 서 있는 자들을 슬픔과 낙망에 빠지게 하는 대신에 그들을 도와주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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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9 장 — 어린이에게 적합한 독서
사랑하는 E 형제에게:
나는 방금 리뷰 앤드 헤랄드 지를 읽고 우리 젊은이들을 위한 양서 (良書) 의 목록을 제시하고 있는 그대의 기사를 보았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 로빈슨 크루소, 그리고 그와 유사한 책들에 관한 그대의 추천을 읽고 매우 염려하였다. 그대는 그대의 집필에 있어서 무엇인가 부주의해질 위험이 있다. 인쇄물을 통하여 길이 남게될 것은 무엇에나 유의하고 주의 깊이 연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나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위한 독서의 선택과 추천에 관한 문제에 있어서 그대의 영적 시력이 더욱 밝지 않는 것을 보고 정말로 놀라는 바이다. 나는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과 같이 혹하게 만드는 책들을 우리의 출판물에서 추천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이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한 다른 책들을 읽는 일도 정당화시킬 것을 안다. … 이 추천은 젊은이들에게 소설 읽는 일을 버리도록 권유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있는 자들의 일을 힘겹게 만들 것이다. 나는 그대가 추천한 이런 책들을 읽는 일의 해악을 거듭거듭 보아 왔고, 바로 이 문제에 있어서 우리의 젊은이들을 경고하는 기사를 완전히 준비해 두었다.
나의 형제여, 성경을 탐구하는 일에서 떠나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라. 일반적으로 주일학교에서 보급되고 있는 그런 이야기책들을 우리 형제들이 사고 파는 것은 우리의 백성들, 특별히 우리 자녀들에게 하나의 올무가 된다는 것이 나에게 계시되었다. 그런 일은 상상력을 병들게 하고 그들을 실 생애의 진정한 의무에 적합하지 않게 하는 그런 종류의 독서에 돈을 쓰게 한다. 그대는 이와 같은 그대의 추천을 좇아 행동하리라고 믿어 의심치 않을지 모른다. 젊은이들은 그와 같은 인정이나 자유가 필요 없다. 그들의 취향과 경향이 모두 이 방향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추천이 더 이상 없기를 바란다. 그대는 예수님과 그분의 교훈에서 떠나고 있음에 틀림없다. 그러나 그대는 그것을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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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젊은이들에게, 지각을 매혹시켜서 하나님의 말씀을 탐구할 의욕을 잃게 하는 신문의 연재 소설과 이야기책들을 제시하는 것은 사단의 사업이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마음 속에 들어오는 모든 것을 리뷰 앤드 헤랄드 지에 게재하지 말고 조심스럽게 쓰라. 만일 그리스도의 영이 그대를 감동시켜 쓰게 하거든, 영혼들에 대한 책임을 느끼고,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며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되게 하” (욜 2:17) 지 말게 하옵소서 라고 부르짖으면서 그대의 붓을 사용하라. 그러나 그대에게 쓰도록 충동하는 것이 오직 그대 자신의 감정과 능동적인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면, 주님의 영이 그대에게 강요하고 감동시키기까지 쓰지 말라. 그대가 어떤 길을 좇고 어떤 일들을 하고 있다고 해서 그것들이 옳으며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법칙이나 지침으로 그것들을 제시해야 한다고 생각지 말라. 영성이나 경건으로 향하게 하지 않는 책들을 추천하면서, 우리 젊은이들의 복리에 관계되는 것처럼 그런 문제들에 관한 그대의 견해를 말할 자유가 있는 것으로 느끼는 것은 그대에게 있어서 최선의 길이 아니다. 만일 그런 독서가 확고하고 순결한 원칙을 계발시켜 줄 것으로 생각한다면 그대는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주님께서 그대를 조심성 있고 겸손하게 행동하게 해주심으로 출판물을 통하여 오해하기 쉬운 말을 하지 않게 되기를 바란다. 왜냐하면 그런 말들은 우리 백성들에게 공인된 것으로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런 말들의 영향을 제기시키는 부담을 다른 사람들에게 지워 주고 있다.
나의 형제여, 그대의 안전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데 있다. 나는 다른 목사들을 위한 권면과 법칙을 제시하고 있는 그대의 많은 기사들을 읽을 때 전율한다. 이런 방면에서 그처럼 많이 말하는 것은 그대에게 거의 적합하지 않다. 만일 그대가 자족하고 자만해진다면, 주님께서는 분명히 무엇인가 잘못을 범하도록 그대를 떠나실 것이다. 그대는 조심스럽게 그대 자신의 영혼을 지키고, 하나님께 속한 일에 날마다 산 체험을 하고자 노력할 필요가 있다. 그대는 자아를 보지 말고 예수님이 나타나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그대의 힘이시며, 그대의 방패이시다. 그대는 연약하고 실수가 많은 사람이므로 넘어지지 않도록 매우 조심할 필요가 있다. 나는 그대가 말이나 행동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사업을 해치지 않도록 경계하기를 그대에게 권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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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가 이 위대한 사업에 한몫을 담당하게 된 것을 너무도 감사하게 느껴 왔다. 예수님은 그대를 사랑하신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룰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활동에 동참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는 경성과 기도의 생애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부주의해지지 말라. 예수님에게서 분리되지 말고, 그대의 매일의 생애에 그분을 모셔들여라. 경솔한 승인과 권면으로 그대 자신과 다른 사람들을 혼란시키지 말라.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대와 마음을 사로잡지 않고, 그대의 눈이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지 않으면, 교만이 그대의 마음을 점령하고, 자존심이 우세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라. 그리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대는 부주의하게 행하게 될 것이다. “너희 발을 위하여 곧은 길을 만들어 저는 다리로 하여금 어그러지지 않고 고침을 받게 하라” (히 12:13).
우리의 젊은이들 가운데는 하나님께로부터 우수한 재능들을 부여받은 자들이 많다. 그분께서는 가장 좋은 재능들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러나 그들의 능력은 원기를 빼앗기고, 그들의 정신은 혼란해지고 약해졌다. 여러 해 동안 그들은 은혜 안에서와 우리의 믿음의 이유를 아는 지식에서 성장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야기책을 읽는 미각을 충족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들이 그런 피상적인 독서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것은 주정뱅이가 독주에 대한 욕구를 제어하는 것보다 훨씬 더 어렵다. 이 사람들이 오늘날 우리의 출판소들과 관련되어 서적들을 간수하고 인쇄를 위한 사본을 만들고, 교정을 하는 데 유능한 일꾼들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은 정신적 소화 불량자가 되어 결과적으로 어느 곳에서나 책임 있는 위치에 부적합해지기까지 그들의 재능들은 왜곡되어 왔다. 상상력은 병들어 있다. 그들은 비현실적 생활을 한다. 그들은 실제적인 생애의 의무에 부적합하다. 그리고 가장 슬프고 낙망적인 것은 그들이 건전한 독서에 대한 흥미를 모두 잃어버린 것이다. 그들은 톰 아저씨의 오두막집에 있는 극히 흥분적인 이야기들과 같은 것을 바로 마음의 양식으로 매력을 느끼고 혹해져 버렸다. 그 책은 거짓된 노예 사상에 관하여 각성할 필요가 있었던 자들에게 그 당시에는 효력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영생을 위하여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그런 이야기들이 필요하지 않는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