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489-498 (312일)

우리에게 속한 한 사람이 죽을 때, 우리는 그가 받은 대접에 대하여 무엇을 기억하는가? 기억의 벽에 새겨진 그림들은 반사해 보기에 유쾌한 것인가? 그것들은 적절한 때에 한 친절한 말과 동정에 대한 기억들인가? 그의 형제들은 무분별하게 참견하는 자들의 악한 추측에서 돌아섰는가? 그들은 그의 일을 변호했는가? 그들의 다음과 같은 영감의 명령에 성실했는가?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살전 5:14). “네가 여러 사람을 교훈하였고 손이 늘어진 자면 강하게 하였고” (욥 4:3).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 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 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사 35:3, 4).

우리가 교회에서 교제해 온 사람이 죽을 때, 하늘 기록책에 있는 기록이 끝난 것을 우리가 알 때, 또한 심판의 때에 그가 그 기록을 대하게 될 것을 알 때, 그들이 그에게 대하여 취해 온 행동에 대하여 그의 형제들은 무엇을 회상할 것인가? 그에게 대한 그들의 감화는 무엇이었는가? 이제 모든 거칠은 말들, 온갖 무분별한 행동이 얼마나 분명히 마음에 떠오르는가! 만일 그들이 또 하나의 다른 은혜의 시기가 주어진다면 얼마나 다르게 행동하겠는가!

사도 바울은 슬픔에 처했을 때에 그에게 주어진 위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이렇게 말하였다. “찬송하리로다 그는 …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고후 1:3, 4). 바울이 그의 영혼 속으로 뚫고 들어오는 하나님의 사랑의 위로와 따뜻함을 느꼈을 때, 그는 그 축복을 다른 사람들에게 반사했다. 우리의 기억의 벽에 걸려 있는 그림들이 우리가 그것들을 회고하는 것을 견딜 수 없는 그런 성격의 것이 되지 않도록 우리의 행동을 잘 조절하자.

우리와 교제하고 있는 자들이 죽은 후에는 그들에게 한 어떤 말도 취소하거나 어떤 고통스런 인상도 기억에서 지워 버릴 수는 결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도록 우리의 습관을 조심하도록 하자. 모든 냉담과 불화를 제거하도록 하라.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로운 처사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서 마음이 부드러워지게 하자. 하나님의 영이 거룩한 불꽃처럼 마음 문에 쌓여 있는 쓰레기를 태워 버리고, 예수님이 들어오시게 하라. 그리하면 그분의 사랑은 부드러운 말과 사상과 행동이 되어 우리를 통하여 다른 사람들에게로 흘러갈 것이다. 만일 죽음이 우리를 친구들과 분리시켜 우리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때까지 만나지 못하게 될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말에 대한 기록이 나타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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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이 눈을 감길 때, 손들이 조용한 가슴 위에 접혀질 때, 불화의 감정은 얼마나 신속하게 바뀌어질 것인가! 앙심도 없고, 빈정댐도 없다. 경멸과 실수도 용서되고, 잊혀진 바 된다. 죽은 자들에 관하여 얼마나 좋은 말을 많이 하게 되는가! 그들의 생애에 있었던 얼마나 많은 훌륭한 것들을 기억하게 되는가! 찬양과 칭찬이 이제는 거리낌없이 표현된다. 그러나 그것들은 듣지 못하는 귀에, 느끼지 못하는 마음에 떨어진다. 피곤에 지친 마음이 이런 말들을 그처럼 필요로 하던 때에, 귀가 들을 수 있고 마음이 느낄 수 있을 때에, 그 말들을 했다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 기억 속에 남아 있게 되었을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죽은 자 곁에서 놀라고 조용해진 채 서 있을 때, 이제 영원히 조용해진 가슴에 슬픔을 안겨준 말과 행동을 부끄러움과 슬픔으로 회상하게 되는가! 우리가 생애 속에 가져올 수 있는 모든 아름다움과 사랑과 친절을 지금 가져오도록 하자. 우리가 피차간에 교제할 때 사려 깊고, 감사하고, 인내하고, 오래 참도록 하자. 죽어가는 자들과 죽은 자들 주위에서 표현하는 생각과 감정을 생애에서 우리의 형제와 자매들과 날마다 교제하면서 나타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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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 장 — 하나님의 집에서 취할 태도

겸손하고, 믿는 영혼에게는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집이 하늘의 문이다. 찬양의 노래와 기도와 그리스도의 대표자들이 하는 말들은 한 백성을 하늘의 교회를 위하여 준비시키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기능이다. 그 고상한 예배에는 더러운 것은 아무것도 들어갈 수 없기 때문이다.

지상 성소에 속한 거룩함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백성과 만나는 장소를 그들이 어떻게 여겨야 할지 배울 수 있다. 종교적 예배에 관한 백성들의 습관과 관습에 큰 변화가 생기되, 더 좋게 변하지 않고 더 나쁘게 변했다. 우리와 하나님과 관련된 거룩한 것들과 귀중한 것들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사로잡는 힘을 신속하게 잃어버리고 있으며, 통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려가고 있다. 옛날에 사람들이 거룩한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을 만난 성소에 대하여 가졌던 존경심은 거의 상실되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친히 당신을 예배하는 질서를 명령하셨고, 그것을 세속적 성격에 속한 어떤 것보다 더 높이셨다.

가정은 가족을 위한 성소이며, 골방과 가장 궁벽한 곳에 있는 숲은 개인의 예배를 위한 성소이다. 그러나 교회는 회중을 위한 성소이다.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와 방법에 관한 규칙들이 있어야 한다. 거룩한 것은 무엇이든지, 하나님의 예배에 속한 것은 무엇에든지 부주의하거나 냉담하게 취급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기 위하여 그들의 교제는, 그들의 마음에서 거룩한 것을 속된 것과 구분할 수 있게 보존되어야 한다. 원대한 이상과 고상한 사상과 대망을 가진 자들은 거룩한 것들에 대한 모든 사상을 강하게 하는 교제를 하는 자들이다. 높거나 낮거나, 도시 안이거나 거칠은 산중 동굴 속이거나, 비천한 오두막이거나 광야이거나 간에 성소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복이 있다. 만일 그것이 주님을 위하여 그들이 가질 수 있는 최상의 곳이라면, 그분께서는 당신의 임재로써 그 장소를 거룩하게 하실 것이며, 그 곳은 만군의 여호와께 거룩한 곳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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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자들이 집회 장소에 들어갈 때, 그들은 할 수 있는 대로 단정하게 그들의 자리로 조용히 가야 한다. 만일 방안에 난로가 있을 경우에는 나태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그 주위에 모이는 것이 합당하지 않다. 예배 전후를 막론하고, 예배당 안에서는 세속적 이야기와 속삭이는 것과, 웃는 것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활기 있고, 적극적인 경건이 예배자들을 특징지워야 한다.

어떤 사람들이 집회가 시작되기 전에 몇 분 동안 기다려야 한다면, 그들은 조용한 명상으로 참된 헌신의 정신을 유지해야 하고, 예배가 그들 자신의 마음에 특별한 유익이 되고 다른 영혼들을 확신시키고 회개시키게 해주도록 기도로써 마음을 하나님께 상달시켜야 한다. 그들은 그 집안에 하늘의 사자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침착하지 못한 태도 때문에, 또한 반성과 기도의 순간을 장려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과의 귀중한 교제를 많이 상실한다. 영적 상태를 가끔 살펴보고 마음과 정신이 의의 태양에게로 끌려갈 필요가 있다. 사람들이 예배하는 집으로 들어올 때 주님에 대한 진정한 존경심을 가지고 그들이 그분의 임재를 마음 속에 생각한다면, 침묵 속에 귀중한 응변이 있게 될 것이다. 세속적인 사업장에서는 죄가 되지 않을 속삭임과 웃음과 이야기도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에서는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준비가 갖추어져야 한다. 그렇게 될 때 말씀은 합당한 무게를 갖게 되고, 올바르게 마음을 감동시키게 될 것이다.

목사가 들어올 때는 위엄 있고, 엄숙한 태도로 들어와야 한다. 그는 강단에 들어오자마자 머리를 숙여 묵상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열렬하게 구해야 한다. 이것은 얼마나 큰 감명을 주겠는가! 사람들에게는 엄숙함과 경외감이 있을 것이다. 그들의 목사는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 그는 하나님 앞에 서기 전에 하나님께 자기 자신을 맡기고 있다. 엄숙함이 모든 사람에게 깃들고, 하늘의 천사들이 매우 가까이 이른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회중의 각 사람들도 그와 함께 조용히 머리를 숙이고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그 집회에 은혜를 주시고 인간의 입술로 선포된 그분의 진리에 능력을 주시도록 간구해야 한다. 기도로써 집회가 시작되면, 거룩하신 분이 계신 자리에서 모든 사람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숙여야 하며, 모든 마음은 조용한 헌신으로 하나님께 상달되어야 한다. 성실한 예배자들의 기도는 응답될 것이며, 말씀의 봉사는 효력이 있음이 입증될 것이다. 하나님의 집에서 예배드리는 자들의 생기 없는 태도는 목회가 더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하나의 큰 이유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서 분명하고 뚜렷한 음성으로 흘러나온 노래의 선율은 영혼을 구원하는 사업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법들 중 하나이다. 모든 예배는 마치 “회중의 스승” (전 12:11) 께서 볼 수 있게 임하신 것처럼 엄숙하고 경외롭게 진행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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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이 전해질 때,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께서 대신 보내신 종들을 통하여 그분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주의깊이 들으라. 한 순간도 졸지 말라. 왜냐하면 그렇게 졸므로 그대들은 그대들에게 가장 필요한 바로 그 말씀, 유의하기만 했다면 그대들의 발을 그릇된 길로 빠지지 않도록 건져 주었을 바로 그 말씀을 잃어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단과 그의 사자들은 감각을 마비된 상태로 만들어서 주의와 경고와 책망을 들을 수 없게 만들고자 분주히 활동한다. 혹은 들었다할지라도 그것들이 마음에 영향을 미쳐서 생활을 변화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한다. 때때로 어린아이가 청중들의 주의를 끌므로 귀증한 씨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된다. 때로는 젊은 남녀들이 하나님의 집과 예배에 대한 존경심을 별로 갖지 못하므로 그들은 설교하는 동안 계속해서 서로 이야기를 나눈다. 만일 그들을 쳐다보고 그들의 동작을 살피는 하나님의 천사들이 이런 일들을 본다면, 그들은 수치와 그들 스스로에 대한 혐오감으로 충만해 질 것이다. 하나님은 주의 깊은 청중들을 원하신다. 사단이 그의 가라지를 뿌린 것은 사람들이 자고 있는 동안이었다.

마지막 축도가 마친 후에도 모든 사람들은, 마치 그리스도의 평안을 상실할까 두려워하는 것처럼 여전히 정숙해야 한다. 모든 사람은 밀치거나 큰소리로 이야기하면서 밖으로 나가지 말고, 그들이 하나님의 존전에 있다는 것과 그분의 눈이 그들을 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마치 그들이 그분의 가시적 (可視的) 임재 앞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이야기하고 잡담하기 위하여 복도 안에 멈추어 섬으로 다른 사람들이 지나갈 수 없도록 길을 막아서는 안 된다. 교회의 구내는 신성한 경외심이 부여되어야 한다. 그것은 옛 친구들을 만나고 세속적 생각과 사업을 이야기하고 소개하는 장소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런 일들은 교회 밖에서 해야 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부주의하고 시끄러운 웃음과 어떤 곳에서 들려온 발을 질질 끄는 소리 때문에 모욕을 당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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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들이여, 자녀들의 마음 속에 그리스도교의 표준을 높여 주라. 예수님이 그들의 경험 속에 직조 (織組) 되도록 그들을 도와주라. 그들에게 하나님의 집을 가장 존중하도록 가르쳐 주고, 그들이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때 이런 생각으로 부드러워지고 양순해진 마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해주라. “하나님이 여기 계신다. 이 곳은 그분의 집이다. 나는 순결한 생각과 가장 고상한 동기를 가져야 한다. 나는 교만과 질투와 시기와 악한 추측과 증오와 속임수를 마음 속에 품어서는 안 된다. 나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만나고 축복하시는 장소이다. 영원히 거하시는 높고 거룩하신 분께서 나를 보시고, 나의 마음을 살피시고, 나의 생애의 가장 은밀한 생각과 행동을 읽으신다.”

형제들이여, 이 문제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생각해 보고, 하나님의 집에서의 그대의 행동이 어떠하며 그대가 자녀들에게 존경심을 길러 주기 위하여 교훈과 모본으로 어떤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보지 않겠는가? 그대들은 많은 책임을 전도자에게 넘기고 그로 하여금 그대들의 자녀들의 영혼에 대하여 책임을 지게 한다. 그러나 그대들은 부모요 교훈자로서의 그대들 자신의 책임을 느끼지 않고, 아브라함처럼 그대의 권속들이 그대를 따라 여호와의 법도를 지키도록 명령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아들과 딸들은 그대 자신의 모본과 게으른 교훈 때문에 타락해진다. 그리고 이와 같은 가정 교육의 부족에도 불구하고, 그대들은 목사에게, 그대들의 매일의 일을 중화시켜 주고 자녀들의 마음과 생애를 덕성과 경건으로 훈련시키는 놀라운 업적을 이루어 주기를 기대한다. 목사가 영혼을 교화시키고 구원하고자 성실하고 애정 어린 권면과 꾸준한 훈육과 열렬한 기도로써 교회를 위하여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한 후에도 성공을 거두지 못하면, 아버지와 어머니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회개하지 못한 이유가 그들 자신의 게으름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따금 목사를 비난한다. 그 책임은 부모들에게 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위탁하신 사업을 맡아서 충성되게 이행할 것인가? 그들은 전진하고 향상하므로 그들 스스로 고상한 표준에 도달하고 자녀들도 그들과 함께 향상시키기 위하여 겸손하고, 꾸준하고, 인내하는 방법으로 활동하겠는가? 우리의 교회들이 연약하고, 그들의 영역에서 마땅할 만큼 깊고 열렬한 경건을 소유하지 못한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을 모독하고 거룩하고 신성한 것을 세속적인 것과 동일한 수준으로 내려가게하는 우리의 현재의 습관과 관습은 우리에게 반대되는 일이다. 우리에게는 신성하고, 거룩하고, 시험하는 진리가 있다. 만일 우리의 습관과 행동이 진리와 일치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큰 빛을 대적하는 죄인들이며, 그것에 비례해서 죄가 있다. 하나님의 보응하는 심판의 날에 이교도가 우리들보다 훨씬 더 견디기 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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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오늘날 진리의 빛을 반사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사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많은 열매를 맺기를 바라신다. 그분께서는 교인들 각 사람이 그들의 이웃과 그리스도 밖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더 큰 열성과 성실을 나타내고, 더 애정 깊고 열렬한 노력을 하기를 바라신다. 부모들은 그들의 사업을 높은 차원의 행동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사람은 전신 갑주를 입고 영혼들을 죄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간구하고 경고하고 노력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진리를 들려 주기 위하여 그대가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라. 우리는 영혼들을 불에서 끄집어 내기 위하여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일을 해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 대한 존경심이 거의 사라져 버린 것이 너무도 분명한 사실이다. 거룩한 사물과 장소가 식별되지 못하고, 신성하고 고상한 것이 이해되지 못한다. 우리의 가정들에 뜨거운 경건이 부족한 원인이 있지 않은가? 그것은 신앙의 높은 표준이 먼지 나는 길에 버려져 있기 때문이 아닌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옛날 백성에게 완전하고 정확한 질서의 법칙을 주셨다. 그분의 품성이 바뀌었는가? 그분은 하늘들의 하늘을 통치하시는 위대하고 강한 하나님이 아니신가? 우리가 하나님께서 친히 히브리인에게 주신 지시를 자주 읽고, 우리에게 비취고 있는 영광스러운 진리의 빛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의 집에 대한 그들의 존경심을 본받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예배할 때 열렬하고 헌신적인 정신을 유지해야 할 많은 이유가 있다.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유대인들보다 더욱 신중하고 경건해야 할 이유가 있다. 그러나 원수는 그리스도인 예배의 신성성을 믿는 우리의 믿음을 파괴하기 위하여 활동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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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 바쳐진 장소는 세속적 업무를 취급하는 방이 되어서는 안된다. 만일 어린이들이 평일 동안에 학교나 창고로 사용하는 장소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다면, 그들이 예배에 대한 생각과 아울러 그들의 공부나 평일에 일어날 것들에 관하여서 생각하지 않는다면, 그들은 보통 인간 이상의 존재일 것이다. 젊은이들의 교육과 훈련은 거룩한 사물을 높이고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헌신을 격려하는 그런 성격의 것이어야 한다. 하늘 왕의 자녀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영원한 사물의 신성성에 관하여 올바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배워야 할 필요가 있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근엄하고 존경하는 마음으로 성소에 들어가도록 가르칠 뿐 아니라 명령해야 한다.

하나님의 거룩한 성소에서 예배하는 자들의 도덕적 취향은 고상하고, 세련되고, 거룩해야 한다. 그러나 이 문제는 슬프게도 등한히 여겨져 왔다. 그 중요성은 간과되어 왔다. 그러므로 무질서와 불경건이 널리 퍼졌고, 하나님은 모독을 받아 오셨다. 교회의 지도자들, 목사들과 백성들,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이 문제에 관하여 드높은 견해를 갖지 못했다면, 미숙한 어린이들에게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너무도 흔히 그들을 책임져야 할 부모에게서 떠나서 그룹에 가담한다. 그들이 하나님 면전에 있고, 그분의 눈이 그들을 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박하고, 경솔하며, 그들은 속삭이고, 웃고, 부주의하고, 불경스럽고, 무관심하다. 그들은 목사가 하나님의 대사이며, 그가 전하는 기별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택한 기능 중 하나이고, 그 기능의 범위 안에 들어오는 특권을 가진 모든 사람에게 그것은 생명에서 생명에 이르는 향기도 될 수 있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도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좀처럼 받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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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감하고 예민한 마음을 지닌 젊은이들은 하나님의 종들의 활동을, 그 문제에 대한 부모의 평가에 의거하여 평가하게 된다. 많은 가장들은 가정에서 예배를 비판의 대상으로 만들고 몇 가지만 찬성하고 다른 것들은 정죄한다. 그리하여 사람들에게 전해지는 하나님의 기별은 비판과 의심을 받고 경솔하게 취급된다. 이와 같이 부주의하고, 불경한 말로써 젊은이들에게 주게 된 인상은 오직 하늘의 책들만이 나타내 줄 것이다. 어린 아이들은 부모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민감하게 이런 것들을 보고 깨닫는다. 그들의 도덕적 지각은 시간이 결코 완전히 바꾸어 줄 수 없는 그릇된 선입관을 받는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마음이 굳어 있는 것과 하나님의 요구에 응답하는 도덕적 지각을 깨우치기가 어려운 것을 슬퍼한다. 그러나 하늘의 기록책들은 실수 없는 펜으로 그 참 원인을 써 놓는다. 부모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그들은 하늘이나 하늘의 일과 조화되지 않았다. 목회와 하나님의 성소의 신성성에 대한 그들의 낮고 통속적인 사상은 자녀들의 교육에 혼합되었다. 여러 해 동안 이와 같이 어두운 가정 교육의 영향을 받아온 어떤 사람이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이 정하신 기능과 그분의 목회에 대하여 철저한 존중심과 고상한 관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인지는 의심스럽다. 이런 것들은, 그대가 그대와 교제하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기별을 하나님께서 직접 그대에게 전하는 기별로 인정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도록 존경심을 가지고, 적절한 언어로써 훌륭한 감성으로 언급되어야 한다.

-498-

부모들이여, 어떤 모본과 어떤 사상을 그대들이 자녀에게 주는지 유의하라. 그들의 마음은 감수성이 강하므로 쉽게 감명을 받는다. 성소의 봉사에 있어서, 만일 설교자에게 흠이 있을지라도 그것을 말하기를 두려워하라. 그가 하고 있는 좋은 일과 그가 제시한 좋은 사상만 이야기하고, 그것들이 하나님의 대리자를 통하여 오는 것으로 유의해야 한다. 왜 자녀들이 말씀의 봉사에 그처럼 감명을 받지 못하며 왜 그들이 하나님의 집에 대하여 그처럼 존경심을 갖지 못하는지 쉽게 깨달을 수 있다. 그들의 교육은 이런 면에서 결함이 있어 왔다. 그들의 부모들은 매일 하나님과 교통할 필요가 있다. 그들 자신의 사상은 세련되고 고상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의 입술은 제단에서 취한 핀 숯에 대여질 필요가 있다. 그렇게 될 때 그들의 습관과 가정에서의 그들의 행동은 자녀들의 마음과 품성에 좋은 인상을 주게 될 것이다. 신앙의 표준은 크게 향상될 것이며, 그런 부모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큰일을 하게 될 것이다. 그들은 덜 세속적이요, 덜 관능적이 되는 반면에 가정에서 더욱 세련되고 성실해질 것이다. 생애는 그들이 좀처럼 깨닫지 못한 엄숙함으로 둘러싸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봉사와 예배에 속한 것은 전혀 속된 것으로 이루어질 수 없다.

나는 하나님을 예배하는 집에 들어가서 남녀들의 단정치 못한 의복을 볼 때 흔히 괴롭다. 만일 마음과 품성을 외부의 의복으로 나타낸다면, 분명히 그것들 주변에는 신성한 것이 아무것도 있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분을 예배하러 당신의 존전에 나오는 모든 사람에게 요구하시는 질서와 산뜻함과 세련된 태도에 대한 바른 개념을 갖고있지 못하다. 이런 일이, 분별하는 데 예민하고 그들 스스로의 결론을 내리는 불신자들과 젊은이들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는 하나님의 집을 가장 통속적인 장소보다 더 거룩하게 여기는 사상이 없다. 어떤 사람들은 모자를 쓰고, 흙이 묻은 더러운 옷을 입고 예배의 장소에 들어올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과 거룩한 천사들을 만나야 한다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우리의 전 교회들을 통하여 근본적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목사들 자신이 그들의 사상을 고상하게 하고, 그것에 관하여 더욱 예민하게 느껴야 한다. 그것은 슬프게도 등한히 취급되어 온 사업의 한 분야이다. 태도와 의복과 행동에 나타난 불경과, 예배드리는 정신 자세의 부족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흔히 당신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모인 자들에게서 얼굴을 돌이키셨다.

교회증언 5권 pp. 489-4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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