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459-468 (309일)

그대의 책임은 그대의 현재의 자원과 가능성에 의해서가 아니고, 근본적으로 부여된 능력과 향상의 가능성에 의하여 헤아려진다는 것을 기억하라. 각 사람이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질문은, 그가 지금 경험이 없고 하나님의 사업에 활동하기에 적합하지 않는지의 여부에 대한 것이 아니고 그가 어찌하여 무슨 이유로 이런 상태가 되었으며, 그것을 어떻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부족한 자격을 초자연적으로 부여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고 있는 동안, 그분께서는 모든 기능을 증가시키고 강화시키기 위하여 우리와 함께 일하실 것이다. 우리의 잠자던 정력은 일어날 것이며, 오랫동안 마비 상태에 있던 능력은 새 생명을 받을 것이다.

세상에 있는 동안 우리는 세상의 사물과 관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 일시적이요 세속적인 사업을 처리할 필요가 언제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결코 이것에 완전히 몰두 되어서는 안된다. 사도 바울이 안전한 법칙을 주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롬 12:11). 비천하고 통속적인 생애의 의무들이 모두 충성스럽게 수행되어야 한다. 사도는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골 3:23) 하라고 말한다. 우리의 활동 분야가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이 가사이거나 바깥일이거나 지적 (知的) 일이거나 간에 우리가 그리스도를 모든 일에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최선으로 삼고 있는 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그 일을 할 수 있다. 이런 세속적인 일 외에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에게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특별한 사업,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개인적 노력을 요구하는 사업이 주어져 있다. 그것은 단순히 한 주일에 한번씩 예배 장소에서가 아니고, 언제나 모든 장소에서 이루어져야 할 사업이다.

-460-

교회와 관계를 맺고 있는 모든 사람은 그 행동을 통하여 교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고 그 유익을 모든 세속적인 고려의 대상보다 위에 놓겠다고 엄숙한 서약을 한다. 하나님과 산 연결을 유지하고, 마음과 심령을 다하여 위대한 구속의 계획에 몰두하고, 자신의 생애와 성품을 통하여 하나님의 계명이 세상의 관습과 교훈보다 탁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그의 일이다.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영적인 일꾼으로서 그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에 적극적이고, 열성적이고, 유능하게 되겠다고 서약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의무를 행하기를 기대하신다. 이것이 그분을 따르는 자들의 대열에 속한 모든 사람의 표어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빛을 전하도록 권유당하고, 권면이나 교훈을 하도록 강하게 요청을 받을 때까지 기다려서는 안 된다. 의의 태양의 광선을 받아들이는 각 사람은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그 빛을 반사해야 한다. 그의 신앙은 적극적이고 결정적인 영향을 나타내야 한다. 그의 기도와 탄원은 성령으로 너무도 감동되었기 때문에 영혼을 녹이고 부드럽게 할 것이다. 예수님은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 5:16) 고 말씀하셨다. 세상에 속한 일반 사람들이 경건의 능력을 알지 못하는 자의 영향 아래 놓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신앙을 공언하는 자를 결코 보지 않는 것이 훨씬 나을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본이 되시고, 그분의 생애가 우리의 규범이 되어 있다면 어떤 열성이 나타나며, 어떤 노력을 하며, 어떤 자유를 행사하며, 어떤 극기가 실천될 것인가! 우리의 노력은 얼마나 지치지 않는 것이 될 것이며, 능력과 지혜를 얻기 위한 탄원은 얼마나 열렬하게 하나님께 상달 될 것인가! 만일 하나님의 자녀로 공언하는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도록 명령하신 사업을 하는 것이 생애의 주요한 사업임을 느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이기심 없이 활동할 것 같으면,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 교회에서, 또한 세상 자체에서 어떤 변화가 나타날 것인가!

경성과 충성은 어느 시대에서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에게 요구되어 왔다. 그러나 우리가 영원한 세계의 바로 경계에 서서 진리를 붙들고, 너무도 큰 빛, 너무도 중요한 사업을 맡고 있는 오늘날 우리는 우리의 근면을 배가시켜야 한다. 각 사람은 그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발휘해야 한다. 나의 형제여, 만일 그대가 지금 망설이게 되면 그대 자신의 구원을 위태롭게 하게 된다. 만일 그대가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업에서 실패할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책임을 추궁하실 것이다. 그대는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는가?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461-

내가 우리의 교회들을 각성시키기 위하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마지막 기별을 선포하는 일에 두드러진 몫을 담당해 온 사람들에게 내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주님께서 오신다” 는 기별은 입술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생애와 품성을 통하여 전해지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빛과 지식, 감화의 능력과 재물을 맡긴 많은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지 않고 그것을 실천하지 않는다. 그들은 이기심과 세속주의의 독한 잔을 너무 많이 마셨기 때문에 이생의 염려에 취해 버렸다. 형제들이여, 만일 그대들이 지금까지 해온 바와 같이 계속적으로 게으르고, 세속적이고, 이기적일 것 같으면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대들을 지나쳐 버리시고 자아 보호에 대한 관심이 적고 세속적인 명예에 대한 야망이 작은 자들과, 그들의 주님처럼 능욕을 지고 영문 밖으로 나가기를 주저하지 않을 사람들을 택하실 것이다. 그 사업은, 그것을 감당할 자들, 그것을 높이 평가할 자들, 그 원칙을 그들의 매일의 경험 속에 조화시킬 자들에게 주어질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 스스로를 존중하고 앞세우기보다는 그분의 이름을 영화롭게 하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자 노력하는 겸손한 사람들을 택하실 것이다. 그분께서는 세상의 지혜는 많이 갖지 못했지마는 하늘로부터 힘과 권면을 구할 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다.

우리의 지도적 인물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주여 어떤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어 쫓는 것을 우리가 보고 우리와 함께 따르지 아니하므로 금하였나이다” (눅 9:49) 고 말했을 때 나타낸 그 정신에 빠지는 경향이 있다. 조직과 규율은 요긴하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복음의 단순성에서 떠나갈 매우 큰 위험이 오늘날 존재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형식과 의식을 적게 의지하고, 참된 경건의 능력을 더 많이 의지하는 것이다. 만일 생애와 품성이 모범적일 것 같으면 원하는 사람은 모두 어떤 역량을 가졌거나 일하게 하라. 비록 그들이 그대의 방법과 정확하게 일치하지 않을지라도 그들을 정죄하거나 용기를 꺾기 위한 말은 한마디도 하지 않아야 한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른 아이들을 조용하게 해 달라고 그분께 요청했을 때 구주께서는, “만일 이 사람들이 잠잠하면 돌들이 소리지르리라” (눅 19:40) 고 말씀하셨다. 예언은 성취되어야 한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사업은 이루어져야 한다. 많은 활동 분야들이 있다. 각 사람은 그에게 가장 적합한 부분에서 활동해야 한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 버리면 안된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재능을 따라 할 일을 주셨다. 더 큰 책임과 역량을 받은 사람들은 적은 가능성과 경험을 가진 다른 사람들을 침묵시키고자 노력해서는 안 된다. 한 달란트 가진 사람들은 두 달란트나 다섯 달란트 가진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계층에 접근할 수 있다. 크거나 작거나 간에 다 같이 목마른 영혼들에게 생명수를 가져다주는 택한 그릇들이다. 말씀을 전하는 자들은 가장 비천한 일꾼에게 그들의 손을 얹고, “그대는 이 방향에서 일하든지 그렇지 않으면 전혀 일을 하지 않든지 해야 한다” 고 말해서는 안 된다. 형제들이여, 손으로 상대방을 밀어 제치지 말라. 각 사람은 자기 자신의 영역에서, 자기 자신의 갑옷을 입고, 그 자신의 겸비한 방법으로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이나 해야 한다. 일을 하는 중에 그의 손을 강하게 하라. 지금은 바리새인의 정신이 지배할 시기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원하시는 자들을 통하여 일을 하신다. 기별은 전달되어야 한다.

-462-

모든 사람은, 그분께서 위탁하신 자본, 곧 재물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데 쓰이는 타고난 어떤 재능까지도 현명하게 사용하므로 그들의 충성을 나타내야 한다. 사단은 오류에 묻혀 있는 자들에게 전파되는 진리를 막기 위하여 가능한 모든 계략을 쓸 것이다. 그러나 경고와 탄원의 음성은 그들에게 전달되어야 한다. 불과 소수의 사람들만이 이 사업에 종사하고 있는 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과 똑같이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교회의 평신도들이 그분의 사업에서 활동이 면제되도록 결코 계획하지 않으셨다. “가서 나의 포도원에서 일하라” 는 것이 주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각 사람에게 하시는 명령이다. 세상에 회개하지 않은 영혼들이 있는 한, 그들의 구원을 위하여 가장 적극적이고, 열렬하고, 열성적이고, 결정적인 노력이 있어야 한다. 빛을 받은 자들은 그것이 없는 자들에게 비춰 주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만일 교인들이 개인적으로 이 사업을 감당하지 않는다면, 그것으로써 그들이 하나님과 산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의 이름은 게으른 종으로 기록된다. 그대는 우리의 교회들에게 영성이 더 이상 없는 이유를 깨닫겠는가? 그것은 그대가 그리스도와 동역자가 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463-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할 일을 주셨다. 각 사람이 하나님을 기다리도록 하자. 그리하면 그분께서는 일하는 방법과 우리가 어떤 일을 수행하기에 가장 적합한지 알려 주실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새로운 이론을 전파하기 위하여 독립적인 정신으로 출발해서는 안 된다. 일꾼들은 진리와 조화를 이루고 또한 그들의 형제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권면과 협력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들은, 이런 일 저런 일을 하기 위하여 어떤 높은 직위에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기 위하여 매 단계마다 기다려야 한다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지도를 받기 위하여 사람을 바라보지 말고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교회가 평화와 번영의 때에 하지 못한 사업은 가장 절망적이고 어려운 환경 아래 무서운 위기 가운데서 해야 할 것이다. 세상과 일치되므로 침묵해 버렸거나 억제되었던 경고들은 믿음의 원수들 때문에 생긴 가장 심한 반대 아래 전해져야 한다. 그리고 그 때가 되면 그들의 영향으로 꾸준히 사업의 발전을 방해해 온 피상적이고 보수적인 계층은 믿음을 버리고 오랫동안 동조해 온 진리의 공공연한 원수들과 입장을 같이 할 것이다. 신앙을 버린 이 사람들은 가장 심한 적의를 나타내고, 그들의 이전 형제들을 억압하고 중상하고 그들에 대하여 분노를 일으키기 위하여 힘을 다하여 활동할 것이다. 이런 날이 우리 앞에 박두해 왔다. 교인들은 개인적으로 시험을 받고 시련을 겪을 것이다. 그들은 진리를 증거하도록 강요당할 환경에 처해질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아마도 개별적으로 혹은 혼자서 의회와 법정에서 이야기하도록 소환당할 것이다. 그들은, 이 비상사태에 그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경험을 얻는 일을 등한히 해 왔다. 그러므로 그들의 심령은 낭비한 기회와 등한히 한 특권들에 대한 가책으로 눌리게 된다.

나의 형제, 나의 자매여, 나는 이런 것을 깊이 생각해 보기를 그대들에게 권유한다. 그대들에게는 각각 할 일이 있다. 그대들의 불성실과 태만은 하늘의 기록책에 기록된다. 그대는 그대의 힘을 감소시키고 그대의 능력을 줄어들게 했다. 그대는 그대가 소유할 수 있었던 경험과 능률이 부족하다. 그러나 영원히 너무 늦어지기 전에 나는 그대가 각성하기를 권한다. 더 이상 지체하지 말라. 낮은 거의 지나갔다. 서산으로 기울어지는 태양은 영원히 그대의 시야에서 사라지려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피가 호소하고 있는 동안, 그대는 용서를 발견할 수 있다. 모든 영혼의 힘을 다 모아서 불과 얼마 남지 않은 시간들을 하나님과 그대의 동료 인간들을 위하여 열렬히 활동하는 데 쓰라.

-464-

나의 마음은 크게 분기되어 있다. 멸망해 가는 영혼들을 위하여 간구할 때 나의 감정을 표현할 적당한 말이 없다. 내가 헛되이 간구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나는 그대가 이전에 결코 활동한 적이 없는 것처럼 활동하도록 그대를 깨우치고자 한다. 그대의 의무는 다른 사람에게로 전가시킬 수 없다. 그대 자신 외에는 아무도 그대의 일을 해 줄 수 없다. 그대의 빛을 비취지 않고 있으면 누군가가 그대의 태만으로 흑암 속에 남아 있어야 한다.

영원이 우리 앞에 펼쳐진다. 휘장은 바야흐로 걷혀지려고 한다. 이 엄숙하고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우리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우리 주변에서 영혼들이 죽어 가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으며, 안락을 좋아하는 우리의 이기적 마음에 붙들려 있는가? 우리의 마음은 완전히 무감각하게 되어 버렸는가?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하여 해야 할 사업이 있다는 것을 느끼거나 이해할 수 없는가?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계층에 속해 있는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아는 지식을 그대들에게 주신것이 헛된 일인가? 그분께서 계속해서 그대들에게 경고의 말씀을 보내신 것이 헛된 일인가? 그대는 세상에 바야흐로 임할 일에 관한 영원한 진리의 선포를 믿는가? 그대는 하나님의 심판이 사람들에게 내리기 직전임을 믿는가? 그러면서도 그대는 여전히 안락하고, 게으르고, 부주의하고, 쾌락을 사랑하면서 앉아 있을 수 있는가?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세상에 그들의 애정을 두거나 그들의 재물을 쌓아 둘 때가 아니다. 초기의 제자들처럼 우리가 황량하고 외진 장소에서 피난처를 찾지 않을 수 없을 때가 멀지 않았다. 로마 군대에 의한 예루살렘의 포위가 유대의 그리스도인들에게 도망하라는 신호가 되었던 것처럼, 법왕권의 안식일을 강요하는 법령을 통한 우리 나라에서의 권력 장악은 우리에게 하나의 경고가 될 것이다. 그 때는 대도시들을 떠나고, 산간 (山間) 한적한 곳에서 궁벽한 거처들을 마련하기 위하여 더 작은 도시들을 떠나갈 준비를 할 때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여기서 값비싼 주택들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는 더 좋은 나라, 하늘까지 옮겨 갈 준비를 해야 한다. 자아 만족을 위하여 우리의 재물을 사용하는 대신에, 우리는 검약하는 법을 연구해야 한다. 하나님께 빌린 모든 달란트는 세상에 경고의 기별을 전하므로 그분께 영광이 돌아가도록 쓰여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동역자들이 도시들에서 해야 할 사업을 갖고 계신다. 우리의 선교지들은 지탱되어야 하고, 새로운 선교지들이 열려야 한다. 이 사업을 성공적으로 추진시키려면 적지 않은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사람들이 초청을 받아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들을 수 있는 예배당들이 필요하다.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청지기들에게 자본금을 위탁하셨다. 그대들의 재산이 세상의 사업에 매여지므로 이 사업이 방해를 받아서는 안 된다. 그대들의 재물을 그대가 하나님의 사업의 유익을 위하여 취급할 수 있는 곳에 두라. 그대들의 보화를 그대들보다 먼저 하늘에 보내라.

-465-

교인들은 그들 자신과 그들의 소유물을 하나님의 제단 위에 개인적으로 올려 놓아야 한다. 지금은 이전 어느 때보다 구주의 권면이 적절하다. “너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주머니를 만들라 곧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이니 거기는 도적도 가까이 하는 일이 없고 좀도 먹는 일이 없느니라 너희 보물 있는 곳에는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눅 12:33, 34). 그들의 재물을 큰 주택들과 토지와 세속적 사업에 붙들어 매고 있는 자들은 그들의 행동으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소유하실 수 없다. 내가 내 자신을 위하여 그것을 원한다” 고 말하고 있다. 그들은 한 달란트를 헝겊에 싸서 땅속에 감추었다. 그런 사람들은 경고를 받아야 할 이유가 있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게으르게 누워 있거나 탐욕적으로 붙들고 있거나 숨겨 두라고 재물을 맡겨 두지 않으시고 그분의 사업을 발전시키고 죽어 가는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맡겨 주셨다. 하나님의 사업이 활동 불능의 상태가 되어 구걸할 지경에 이르고, 자금은 절반 정도밖에 공급되지 않고 있는 이때 주님의 돈이 그대들의 비싼 주택과 거대한 사업에 묶여 있어서는 안된다. 주님께서는 이런 방법으로 일하지 않으신다. “네 보던 일을 셈하라” (눅 16:2) 는 말이 들리게 될 날이 가까이 이르고 있음을 기억하라. 그대는 시대의 징조를 분별할 수 없는가?

-466-

지나가는 매일은 마지막 엄숙한 큰 날을 더욱 가까이 이르게 한다. 우리는 1884년이 시작될 때보다 한 해 더 심판에 가까워지고, 영원에 더 가까워졌다. 우리 또한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접근해 가고 있는가? 우리는 깨어 기도하고 있는가? 우리가 일을 해야 할 또 다른 한 해가 영원히 지나가 버렸다. 우리는 매일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는 남녀들과 교제하고 있다. 어떤 영혼에게는 매일 구분하는 선이 그어지고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은 그의 장래의 운명을 판가름할 결정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이런 동료 나그네들에게 어떤 감화를 주고 있는가? 그들을 그리스도께로 데려오기 위하여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해 왔는가?

죽는 것도 엄숙한 일이지만 사는 것은 더욱 더 엄숙한 일이다. 우리 생애의 모든 생각과 말과 행동은 다시 우리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은혜의 시기에 우리가 꼴 지은 자신의 모습은 영원히 그대로 간직할 것이다. 죽음은 육체를 분해시키지만, 품성의 변화를 이루어 주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키지 못한다. 그 사건은 오직 영원히 변할 수 없도록 품성을 고정시킬 뿐이다.

나는 다시 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고, 그리스도처럼 되라고 호소하는 바이다. 예수님은 자기 자신을 위한 일꾼이 아니고 다른 사람들을 위한 일꾼이었다. 그분은 잃어버린 자를 축복하고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하셨다. 만일 그대가 그리스도인일 것 같으면 그대는 그분의 모본을 본받게 될 것이다. 그분은 기초를 놓으셨고, 우리는 그분과 함께 집을 짓는 건축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기초 위에 놓기 위하여 어떤 재료를 가져오고 있는가? “각각 공력이 나타날 터인데 그날이 공력을 밝히리니 이는 불로 나타내고 그 불이 각 사람의 공력이 어떠한 것을 시험할 것임이니라” (고전 3:13). 만일 그대가 그대의 모든 힘과 재능을 이 세상의 것에 바치고 있다면 그대의 평생 사업은 마지막 날의 불에 태워질 나무와 짚과 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미래의 생애를 위한 이기심 없는 활동은 금과 은과 보석처럼 될 것이다. 그것은 없어지지 않는다.

나의 형제와 자매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죽음의 잠에서 깨어나라고 간절히 호소한다. 두뇌와 뼈와 근육의 힘을 자아를 섬기기 위하여 바치기에는 너무 늦다. 마지막 날 그대에게 하늘의 보화가 없는 것이 발견되지 않게 하라. 십자가의 승리를 확산시키기 위하여 노력하고, 영혼들을 계몽시키기 위하여 애쓰고, 그대의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활동하라. 그리하면 그대의 사업은 불의 시험을 견디게 될 것이다.

-467-

“만일 누구든지 그 위에 세운 공력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고” (고전 3:14). 성실한 일꾼들이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주변에 모일 때에 주어지는 상급은 영광스러울 것이다. 요한이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았을 때 그는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그는 그 광경에 견딜 수 없었다. 그러나 죽을 수밖에 없는 상태에서 불멸을 입을 때 속량된 자들은 예수님처럼 된다. 그들이 계신 그대로의 그분을 보기 때문이다. 그들은 보좌 앞에 서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납된 것을 나타낸다. 그들의 모든 죄는 도말되고, 그들의 모든 허물은 사라졌다. 이제 그들은 하나님의 보좌에서 나오는 찬란한 영광을 바라볼 수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고난에 참여해 왔고, 그들은 구원의 계획에서 그분과 함께 일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그들의 활동을 통하여 구원받은 영혼들이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바라보는 기쁨을 그분과 함께 나눈다.

53 장 — 여호수아와 사자

만일 볼 수 있는 세계와 볼 수 없는 세계를 분리시키는 휘장이 거두어져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리스도와 거룩한 천사들과 사단과 그의 악한 사자들 사이에서 인류의 구속에 관하여 전개되고 있는 대쟁투를 볼 수 있을 것 같으면, 만일 그들이 죄의 속박에서 영혼들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놀라운 사업과 악한 자의 적의에서 그들을 보호하기 위한 끊임없는 그분의 능력의 발휘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으면, 그들은 사단의 계략을 저항하기 위하여 훨씬 더 잘 준비될 것이다. 그들의 마음은, 구속의 계획의 넓은 범위와 중요성, 그리고 그리스도의 동역자가 된 그들 앞에 놓인 큰 사업을 보고 엄숙해질 것이다. 그들은 겸손해지고, 또한 온 하늘이 그들의 구원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용기를 갖게 될 것이다.

사단의 사업과 그리스도의 사업, 그분의 백성의 비난자를 정복할 수 있는 우리의 중보자의 능력에 대한 가장 강력하고 감동적인 예증은 스가랴의 예언에 기록되어 있다. 거룩한 이상 (異像) 중에 선지자는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슥 3:3),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서, 큰 고통 중에 처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본다. 사단은 그를 대항하기 위하여 그의 오른편에 서 있다. 이스라엘은 지상에서 하나님의 진리를 보존하기 위하여 택함을 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한 민족으로 존재할 시초부터 사단의 적의의 특별한 대상이 되어 왔고, 그는 그들을 파멸시키고자 작정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는 동안 그는 그들을 해칠 수 없었다. 그러므로 그는 그들을 죄 가운데로 유혹해 들이기 위하여 그의 모든 힘과 교활한 술책을 다했다. 그의 유혹에 걸려들어서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고, 그들의 능력의 근원에서 분리되고, 그들의 이방 원수들에게 포로가 되도록 버려졌다. 그들은 바벨론으로 포로가 되어 가서 여러 해 동안 그 곳에 머물렀다. 그럴지라도 그들은 여호와께 버림을 받지는 않았다. 그분의 선지자들은 책망과 경고를 가지고 그들에게 보내졌다. 백성들은 각성되어 그들의 죄를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그들 스스로를 낮추고, 참된 회개로 그분께로 돌아왔다. 그러자 그분께서는 용기를 주는 기별을 그들에게 보내주시고, 그들을 포로의 상태에서 건져내고 그분의 은총을 그들에게 회복시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사단은 이 일을 방해하고자 작정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는 이미 그들의 땅으로 돌아갔다. 사단은, 그의 대리인 격인 이방 나라들을 움직여서 그들을 완전히 멸망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468-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약속의 성취를 위하여 겸손하게 탄원할 때, 사단은 그를 대적하기 위하여 담대하게 일어선다.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은총을 회복받아서는 안 될 이유로서 그들의 범죄를 지적한다. 그는 그들을 그의 포로로 주장하고 그들이 죽임을 당하도록 그의 손에 맡겨지기를 요구한다.

대제사장은 사단의 비난에서 그 자신이나 그의 백성을 방어할 수 없다. 그는 이스라엘이 허물에서 벗어나 있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 대표하는 백성의 죄를 상징하는 더러운 옷을 입고 사자 앞에 서서 그들의 죄를 고백한다. 그러나 그는 그들의 회개와 겸비를 지적하고, 죄를 용서하는 구속주의 자비를 의지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주장한다.

교회증언 5권 pp. 459-468

Posted in

ad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