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히 경건의 모양만 가지고 사업상 관계로 하나님의 사업에 관련되어 있는 자들은 염려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신뢰를 배반할 것이다. 그들은 유혹자의 꾀에 넘어져 하나님의 사업을 위태롭게 할 것이다. 자아가 지배하게 하라는 유혹들이 있을 것이다. 거만하고 비판적인 정신이 있게 될 것이며, 많은 경우에 있어서 사려 깊은 친절로 다루어져야 할 필요가 있는 자들에 대한 동정과 배려는 결여될 것이다.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갈 6:7). 우리는 어떤 씨를 뿌리고 있는가? 이 시대와 영원을 위한 우리의 추수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주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재능대로 할 일을 맡겨 주셨다. 우리는, 진리와 의의 씨를 뿌리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불신과 불만과 좋지 못한 추측과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의 씨를 뿌리고 있는가? 좋지 않은 씨를 뿌리는 자는 그의 일의 성격을 깨닫고 회개하여 용서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주님의 용서는 뿌려진 씨의 성격을 바꾸어 찔레와 가시를 귀중한 알곡으로 만들어 주지는 않는다. 그 자신은 구원을 얻되 불 가운데서 얻은 것 같을 것이다. 그러나 추수 때가 오면 황금 물결이 일어나는 곡식이 들판이 있어야 할 곳에 오직 유해한 잡초들만이 있게 될 것이다. 사악한 부주의로 뿌려진 것은 죽음의 작용을 하게 될 것이다. 이런 생각은 나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슬픔에 잠기게 한다.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이 친절과 사랑과 믿음과 용기의 귀중한 씨앗들을 뿌릴 것 같으면, 그들은 하늘로 향하여 여행할 때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부르고, 의의 태양의 밝은 광선 아래서 즐거워하고, 수확의 큰 날에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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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장 — 올무가 되는 세속적 마음
P 부부에게:
내가 그대들의 상황을 볼 때 나의 심령은 심히 슬퍼진다. 지난 밤에 나의 마음은 무겁게 눌렸다. P 형제여, 나는 꿈속에서 그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대가 하나님과 분리된 것은 분명하였고, 그대는 그대의 참 상태에 관하여 너무도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그대의 진정한 위치를 깨닫게 하고자 시도하는 것은 마치 소경된 사람에게 “보라” 고 말하는 것과 같은 것처럼 보였다.
나는 세 시부터 잠을 잘 수 없었으므로 하나님께 그분의 영을 더욱 풍성하게 주시도록 간구하고 있었다. 나는 거듭거듭,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라고 물어 본다.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빛을 주셨을 때 감히 침묵을 지킬 수 없다. 나는 이야기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빛이 거절당하고, 기별을 받은 영혼들이 빛이 그들에게 전해지기 전보다 더 심한 어둠 속에 묻히게 될까 봐 두렵고 떨림으로 해야 한다. 나는 예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한다. 나는 열렬한 기도로써 나의 손을 그분의 손에 놓았다. “나를 인도해 주시고, 나를 지도해 주소서. 나는 혼자서 갈 지혜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매우 가까이 계신 것처럼 보인다. 나는 그분께서 바야흐로 그분의 백성들을 위하여, 특별히 말과 교훈으로 활동하는 자들을 위하여 특별한 사업을 하고자 하시는 것에 깊은 감동을 받는다. 만일 그대들이 그분의 정하신 방법대로 도움을 받을 것 같으면 그분께서는 그대들을 다 같이 도와주고자 하실 것이다. 그러나 그대가 현상태 그대로 머물러 있는 동안 나는 그대에게 용기를 주는 말을 한마디도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도다” (요 5:40) 고 하신 말씀은 그대에게 적용된다.
나는 그대를 도와주기 위하여 무엇인가를 할 수 있기를 원한다. 그러나 그대가 스스로 들어간 세속적인 길에 머물러 있는 동안 그대를 위하여 무엇이 이루어질 수 있겠는가! 그대는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은 그대를 사랑한다. 왜냐하면 실제적인 경건에 관한 한 그대 자신과 세상 사람들간의 아무런 간격도 없기 때문이다. 그들의 눈에는 그대가 호감을 주고, 재치있고, 선량하다. 그들은 그대에게서 다 같이 그들을 기쁘게 하는 것을 발견한다. 그들은 그대를 칭찬하고, 아첨하는 말을 그대에게 했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대를 진정시키고 위로하는 영향을 끼쳤다. 그리고 그대의 차례가 되자, 그대는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그들의 부주의한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진정시키고 위로하였다. 그대는, 그들이 교만하고 쾌락을 사랑할 때 그들을 격려했다. 왜냐하면 그대의 행동은 죄인에게, “별 일 없을 것이다” 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과 섞임으로써 그대의 판단은 왜곡되고,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죄들은 그대의 눈에 대단치 않고 무해한 것으로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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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가 독선에 의하여 그대의 영혼 주위에 어떤 것도 깨뜨릴 수 없는 장벽을 구축하고 있는 것을 크게 두려워한다. 그대는 이름만의 교회들 안에 있는 신앙 고백자들보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가지 못했고, 더 이상 그분의 사업을 하지 못하고 그분의 영으로 감화받지 못하였다. 그대는 안식일의 신성성을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였고,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그분의 거룩한 날을 준수하는 것을 가납하지 않으셨다. 그대는 참된 헌신, 진정한 헌신을 갖지 않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 중 어느 사람에 의해서도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 그대는 그분을 체험적으로 알지 못했다.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그분에게서 분리되어 걸어갔기 때문에 그대에게는 그분이 거의 낯선 사람이 되어 있다. 영적인 것은 영적으로라야 분별된다. 그러나 그대는 너무 오랫동안 세속적 습관과 취향을 계발시켜 왔기 때문에 그대의 정신을 반대 방향으로 돌이키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대는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요 6:60)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의 백성을 이해할 수 없다. 빛의 자녀들과 흑암의 자녀들과는 조화가 없다. 바울은 이렇게 묻는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5-18). 요한은 증거한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2, 3). 야고보는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라고 묻는다.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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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 14:15-17, 21-24).
그리스도의 말씀은 그대의 마음 속에서 반응을 얻지 못한다. 그대가 눈을 감아 버리고 마음을 굳게 해 버렸기 때문이다. 하늘의 책에 그대들은 둘 다 세상에 속한 것으로 간주된다. 그대의 마음은 때때로 괴로워하나 그대를 회개하게 하고, 그대의 행동을 바꾸게 할 만큼 충분하지는 않다. 세상은 그대의 애정을 붙들고 있고, 그 관습은 하늘의 교사에게 순종하는 것보다 더욱 호감을 준다.
자녀들 앞에서의 그대의 모본은 그대가 사랑하노라고 공언하는 진리와 전혀 일치되지 않는다. 진리는 그대와 그들을 거룩하게 하지 않는다. 그대는 이기적 쾌락을 사랑한다. 그리고 교훈과 모본으로 그대의 자녀들을 가르친 교훈은 그들에게 겸손과 온유와 그리스도와 같은 기질을 길러 주는 그런 성격의 것이 아니었다. 그대는 세상의 표준을 따라 그들을 꼴 짓고 있다. 그대의 매일의 말과 행동이 충실하게 기록되어 있는 기록책을 예수님께서 그대 앞에 펼쳐 주실 때, 그대는 그대들의 생활이 다 같이 굉장한 실패였음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의 최근의 고통이 그대를 위하여 무슨 일을 이루어 주었는지를 나는 말할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그대의 눈을 열어 주고 그대의 영혼을 각성시켜 줄 능력을 가졌다면 그대는 이것을 명백하게 해주는 길을 분명히 취하게 될 것이다. 철저한 회개가 없으면 그대는 영생의 면류관을 결코 받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대의 자녀들이 그대에게서 배워서 그들의 생애와 품성의 일부로 삼은 교훈들을 먼저 버리지 않으면 그들은 피로 씻은 무리들과 함께 결코 참여하지 못할 것이다. 그대의 모본은, 그들로 하여금 신앙이란 마치 상황이 요구하거나 편의가 지시할 때 입기도 하고 벗어 버릴 수도 있는 의복처럼 생각하게 했다. 그들에게 주어진 감화에 완전한 변화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이와 같은 느슨한 생각이 그들을 붙들게 될 것이다. 그들은 무엇이 그리스도인 생애를 이루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진리를 실천하고 십자가를 지는 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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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면 너희보다 먼저 나를 미워한 줄을 알라” (요 15:18) 고 말씀하셨다. 그대는 세상이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를 그처럼 크게 반대하는 이유는 우리가 지나치게 비사교적이며, 우리의 의복이 지나치게 검소하고, 오락에 관하여 너무도 엄격하고 교훈적 면에서는 물론이요 실제적으로도 우리 자신을 그들과 너무도 동떨어지게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의견을 간직해 왔다. 그대는 만일 우리가 보다 배타적으로 되지 않고 세상과 더욱 잘 어울리게 되면 우리들에게 대한 그들의 견해와 인상이 크게 달라질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인간의 마음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이보다 더 큰 잘못은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내가 너희더러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핍박하였은즉 너희도 핍박할 터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터이라 그러나 사람들이 내 이름을 인하여 이 모든 일을 너희에게 하리니 이는 나 보내신 이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 15:19-21).
이것은 그분의 원수들까지도 “그 사람의 말하는 것처럼 말한 사람은 이 때까지 없었나이다” (요 7:46) 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분의 말씀이다. 사람들의 말은 그들 자신의 인간적인 생각을 나타낸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말씀은 영이요 생명이다. 그분께서는 “너희가 내 말에 거하면 참 내 제자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 속한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다. 그러나 이 거룩한 말씀은 세상에 속하여 그 쾌락을 사랑하는 자의 마음 속에 있을 자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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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상세한 지시를 하셔서 아무도 실수할 필요가 없게 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 4:4) 고 말씀하신다. 영감을 통하여 주어진 진리는,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 (딤후 3:16) 하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한 말씀으로가 아니고, 많은 말씀으로가 아니고, 모든 말씀으로 사람이 살 것이다. 그대에게 아무리 사소해 보일지라도 그대는 그분께서 주신 한 말씀, 단 하나의 명령도 무시하고서는 안전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마 5:19). 누구든지 고의적으로 계명 하나를 어기는 자는 그것들 중 어느 하나도 신령과 진정으로 지킬 수 없다. 그는 약간 이탈하는 것으로 여기는 일 외에 그것들을 다 지키노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그가 고의적으로 한가지 점을 어기게 되면 그는 모두를 범하는 죄를 범하는 것이다.
P 부부여, 그대들이 그리스도교를 믿노라고 공언하고 있으면서도 값의 일부를 감춰 두어 왔다. 그대들은 사상과 헌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도둑질했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재능과 감화력을 그분에게서 도둑질했다. 그대의 성향은 그대에게 올무가 되어 왔다. 그대는 하나님께서 증언들을 통하여 고맙게도 그대에게 주신 빛을 따르지 않았다. 그대는 그대측에서 회개와 개혁을 하지 않으면 그대가 하늘에서 제외될 일들을 해왔다. 만일 그대가 성령을 통하여 그대에게 주어진 책망에 유의했을 것 같으면 그대는 오늘날 하나님 안에서 강하게 되고 그리스도인 경험 가운데서 훨씬 전진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대는 하늘의 책에 완전히 다른 기록을 갖게 되었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저버리고 내 말을 받지 아니하는 자를 심판할 이가 있으니 곧 나의 한 그 말이 마지막 날에 저를 심판하리라” (요 12:48). 그처럼 큰 빛과 특권을 가지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의 무한한 희생으로 그들에게 전달된 구원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그 귀중한 선물이 그들에게 효력을 나타내지 않게 한 자들의 얼굴에는 그날에 수치와 혼란이 덮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끊임없이 바른길, 의인들이 갈 높고 영광스런 길을 가리켜 주고 계신다. 이 길을 가는 자들은 흑암 속에서 걸어가지 않는다. 그 길은 의의 태양에 의하여 조명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대는 그 길이 세상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이유로 그 길을 거절했다. 이기주의와 이기적 야망은 좁은 문을 통과할 수 없고, 좁고 위를 향하는 길을 걸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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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이름까지도 아셨다는 것은 마지막 결산의 날에 알게 될 것이다. 생애의 모든 행동을 보는 보이지 않는 증인이 있다.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분께서는” “내가 네 행위” (계 2:1, 2) 를 아노라고 말씀하신다. 어떤 기회들이 등한히 여겨졌으며, 잘못된 길에서 방황하는 자들을 찾아내고, 그들을 안전과 평안의 길로 돌아오게 하고자 애쓰는 선한 목자의 노력이 얼마나 끈기있는 것이었는지 알려진다. 하나님께서는 거듭거듭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을 부르셨다. 그분께서는 거듭거듭 그분의 말씀의 빛을 그들의 길에 비추어서 그들이 위험을 보고 피할 수 있게 해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계속해서 가고 있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면서 조롱하고 농담하되 마침내 그들의 은혜의 시기가 끝나기까지 그렇게 하였다. 하나님의 처사는 공의롭고 공평하다. 그러므로 부족함이 드러나는 자들에게 선고가 내리면 모든 입은 막혀질 것이다.
그대가 사람들에게서 오는 칭찬과 영광을 참 모습 그대로 주시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 모두는 오늘날 얼마나 달라졌을 것인가. 그대들은 다 같이 생명수보다 세상의 칭찬을 더욱 갈망한다. 세상 사람들 사이에서 중요한 사람으로 생각된다는 사상이 그대를 취하게 만들었다. 그들의 존중의 말이 그대를 기만했다. 그대가 영원한 사물을 바르게 평가할 때 부자와 학자들과의 교제와 칭찬이 그대에게 영향을 주지 못할 것이다. 교만은,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는 것이든 간에 그대의 마음 속에 그 이상 거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대는 오랫동안 혼탁한 세속주의의 물을 마셔왔기 때문에 더 좋은 삶의 길을 깨닫지 못한다.
거듭거듭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의무와 책임을 보여 주시므로 그대를 구원하고자 그분의 손을 펴셨다. 이 의무들은 빛의 증가와 더불어 그 성격이 변한다. 빛이 비쳐서 잘못이 드러나고 책망을 받을 때, 생애와 품성에는 거기에 따른 변화가 이루어져야 한다. 마음의 무지의 자연적 결과인 잘못은, 그것이 지적당한 후에는 더 이상 무지의 죄와 판단의 실수가 아니다. 그러나 주어진 빛에 일치되는 결정적 변화가 있지 않으면 그것들은 그 때에 주제넘은 죄가 된다. 그대를 두르고 있는 도덕적 흑암은 점점 더 심해지고, 그대의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지고, 그대는 하나님 보시기에 더욱 불쾌해질 것이다. 그대는 그대가 처해 있는 큰 위기, 그대의 경우에는 빛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완전한 흑암 가운데 가리워질 위험이 있는 것을 깨닫지 못한다. 빛을 받아들이고, 그 빛이 제구실을 하게 되면 그대는 죄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세상에 대하여 진정으로 죽지만, 하나님께 대하여는 살게 될 것이다. 그대의 우상들은 버려진 바 되고, 그대의 모본은 자아 방종의 편보다는 극기의 편에 있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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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 부부여, 그대들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에 유의했을 것 같으면, 그대들은 지금 빛 가운데서, 하나님의 백성들과 조화를 이루어 걷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대들의 불신은 그대들을 큰 유익에서 차단시켜 버렸다. P 자매는 증언들을 반대하여 일어나지도 않았고, 그것들에게 순종하므로 그것들이 주님께로부터 온 것임을 믿는 확신도 보여 주지 않았다. 그는 그의 남편이 세상의 칭찬과 존경을 받기를 좋아한다. 그것은 결코 작지 않은 그의 자존심을 만족시켜 준다. 그대들이 피차 이렇게 질문하는 것이 적당할지 모르겠다. “세상에서 나와서 그리스도를 나의 분깃으로 취하는데 나는 왜 이처럼 느린가? 나는 왜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고 그분의 요구를 존중하지 않는 것을 내가 알고 있는 자들을 사랑하고 존경해야 하는가? 왜 나는 나의 주님의 원수들과의 친교를 유지하고자 소원해야 하는가? 왜 나는 그들의 습관을 따르고 그들의 의견에 영향을 받아야 하는가?” 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 그대들은 아낌없이 바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까운 장래에 그대의 길을 비추고 있는 빛이 절망의 흑암 속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 그대들은 원수의 땅에 있다. 그대들은 자원해서 그대들 스스로를 거기에 두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의 공격에서 그대를 보호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그대들의 현 상태에서 그대들은 유익보다는 훨씬 더 큰 해를 입히고 있다. 왜냐하면 그대들의 말과 행동으로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 (마 7:13) 다고 말하면서도 경건의 모양을 가지고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기 때문이다. 그대들의 생애가 그리스도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생애라면 그대들은 온 세상이 그분을 좇는다고 진정으로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의 고백은 옳은 것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대들은 겸손과 사랑, 온유와 헌신을 가지고 있는가? 거룩한 생애와 경건한 대화로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인자도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 (눅 12:8) 다.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소유하지 않는 한 아무도 그리스도를 시인할 수 없다. 그는 그가 소유하고 있지 않는 것을 전달할 수 없다. 매일의 생애는, 거룩하게하는 진리의 능력의 표현이 되어야 하고, 믿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심령 가운데 거하시는 증거가 되어야 한다. 성령의 열매와 반대되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분리시키는 그분의 사업과 반대되는 것은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그분의 말씀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는 자는 하나님의 사자들 앞에서 부인함을 받으리라” (눅 12:9) 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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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우리의 세속적인 대화에 의하여, 또한 우리의 의복을 자랑함으로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다. 그대들에게는 그대들과 그대들의 자녀들에게 올무가 되는 친구들의 집단이 있다. 그대들은 그들과의 교제를 좋아한다. 그들과의 교제를 통하여 눈앞에 하나님께 대한 두려움이 없는 자들이 좇는 유행을 따라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자녀들이 옷을 입게 된다. 그렇게 하므로 그대들은 세상과 친교를 나누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 (잠 10:19) 렵다. 이런 친구들과의 교제는 그대들을 골방에 찾아가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구하게 하는가, 그렇지 않으면 그대들의 마음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는가? 그리고 그대들의 사랑하는 자녀를 — 그들의 영원한 유익을 등한히 할 때 그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그대들의 모본은, 부주의한 참람과 맹목적인 자기 과신으로 생애의 여행을 서두르게 하고, 그들을 지도할 확고한 신앙적 원칙을 갖지 않도록 그들을 격려했다. 그들은 안식일, 혹은 여하한 면에서의 하나님의 요구에 대한 양심적인 관심도 없다. 그들은 그리스도인 의무들을 좋아하지 않고, 빛과 평화와 기쁨의 근원되시는 분에게서 점점 더 멀리 떠나가고 있다.
믿음이 없으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모든 것이 죄” (롬 14:23) 가 되기 때문이다. 요망되는 믿음은 단순히 교리에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사랑으로 역사하고 심령을 정결케 하는 믿음이다. 겸손과 온유와 순종은 믿음이 아니다. 그것들은 믿음의 결과요 열매이다. 이 덕성들은 그대들이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배우므로 얻어야 한다. 그대들은 하늘의 정서와 원칙을 알지 못한다. 하늘의 언어는 그대들 두 사람에게 거의 낯선 언어이다. 하나님의 영은 여전히 그대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러나 나는 그대들이 여러 해 동안 그대들에게 호소해 온 그 음성에 유의할 것인지에 대하여 심각하고 마음 아픈 의문을 갖고 있다. 나는 그대들이, 돌이켜 살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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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그대들의 가련하고 무가치한 자아를 예수님께 바치는 것을 너무 큰 희생이라고 생각하는가? 그대들은, 그대의 생애를 세상과 분리시키고 사랑의 끈으로 그리스도께 연합되는 것보다 소망 없는 죄의 속박과 죽음을 택하겠는가? 예수님은 여전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신다. 이것은 날마다 우리의 마음에서 감사가 우러나게 해야 한다. 자신의 죄와 속절없는 상태를 깨닫는 자는 있는 그대로 나와서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만일 그가 믿음으로 그것을 붙잡을 것 같으면 약속은 그에게 속한다. 자신의 눈에 자신이 부요하고, 존귀하고, 의로운 자, 세상이 보는 것처럼 보고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는 자는 구하여 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필요를 느끼지 않기 때문이다. 그는 가득 차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그는 빈 그대로 지나가 버릴 수 밖에 없다.
그대들이 그대들 자신의 영혼을 위해 걱정하게 되면, 그대들이 하나님을 부지런히 찾게 되면, 그대는 그분을 만날 것이다. 그러나 그분은 절반만의 회개를 받아 주지 않으실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죄를 버릴 것 같으면 그분은 용서해 주시고자 언제나 기다리고 계신다. 그대들은 지금 곧 그분께 굴복하겠는가? 그대들은 갈바리를 쳐다보고 이렇게 묻겠는가.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이 희생을 하셨는가? 그분께서는 범죄의 고통과 절망의 공포에서 나를 구원하여 그분의 나라에서 말할 수 없이 행복하게 해주시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굴욕과 수치와 비난을 견디시고 잔인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셨는가?” 그대의 죄 때문에 찔림을 받으신 분을 바라보고 결심하라. “주님께서는 나의 생애의 봉사를 받으실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원수들과 연합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분의 정부를 반역하는 자들에게 나의 영향력을 빌려 주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나의 존재 자체는 나를 그처럼 사랑하여 나를 위하여 생명, — 그처럼 죄가 많고 실수가 많은 자를 위하여 그분의 거룩한 몸을 모두 주신 분에게 바치기에 너무 작다.” 세상과 분리되어 완전히 주님의 편에 서서 천성의 문에 이르기까지 싸움을 계속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영광스런 승리를 얻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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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생의 말씀에 유의하는 자는 복이 있다. “진리의 영” 으로 인도함을 받으면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될 것이다. 그는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지 못하고 존경과 칭찬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는 하늘이 보기에 귀중할 것이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일 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