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359-368 (299일)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고, 개혁자들이라고 주장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에 일치되게 행동해야 한다. 이름이 교회 녹명책에 기록되어 있으면서 판매하기 위한 포도주와 사과즙을 제조한다면 그를 위하여 철저하게 힘써야 하고, 만일 그가 그 행동을 계속할 것 같으면 그는 교회의 견책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일을 하는 데서 떠날 수 없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위치와 이름에 합당하지 않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우리의 영향을 모든 악한 행동을 반대하는 위치에 놓아야 한다.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고 우리의 영향으로 주정뱅이가 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그날에 우리는 어떻게 느끼게 될 것인가? 우리는 실제적인 속죄일에 살고 있다. 우리의 상황은 미구에 하나님 앞에 제시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의 행위가 이성을 왜곡시키고 덕성과 순결, 하나님의 사랑을 파멸시키는 알콜성 음료를 장려해 왔다면 우리는 하늘의 법정에서 어떻게 서겠는가?

어떤 율법사가 그리스도께 물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이르시되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 대답하여 가로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대답이 옳도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시니” (눅 10:25-28). 영생이 상급으로 걸려있는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말씀하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기록된 말씀을 지시해 주신다. “네가 어떻게 읽느냐?” 거기에 방법이 밝혀져 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고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이웃을 우리 자신처럼 사랑할 것 같으면 우리는 그에게 올무가 될 것은 어떤 것도 거래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과 인류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전반적 의무이다. 사랑의 율법은 심령의 판에 기록되고, 하나님의 영은 그 안에 거하시며, 그의 품성은 선한 행실을 나타낸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빈궁으로 우리를 부요하게 하시고자 가난하게 되셨다. 우리가 그분을 위하여 어떤 희생을 즐겨하고자 하는가? 우리는 그분의 사랑을 마음 속에 간직했는가?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의 이웃을 사랑하는가? 만일 우리가 영혼들을 위하여 이 사랑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 어떤 길에서나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과 우리의 감화로 도덕적 능력이 적은 사람들 앞에 우리가 유혹을 놓고 있는 여부를 주의 깊이 생각해 보게 할 것이다. 우리는 바리새인들이 끊임없이 해온 것처럼 약한 자들과 고통받는 자들을 비난하지 않고, 우리는 저는 자들이 길에서 이탈하지 않게 하고자 우리 형제의 길에서 모든 거치는 돌을 제거해버리고자 노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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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개혁자요, 세상에서 빛을 가진 자요, 하나님을 위한 성실한 파수꾼이라고 공언하며, 사단이 식욕을 왜곡시킬 유혹을 가지고 들어올 모든 통로를 경계하고 있다. 우리의 모본과 감화는 개혁의 편에서 하나의 능력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양심을 무디게 하고 유혹을 조장할 어떤 습관도 끊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받은 한 사람의 마음에 사단이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문을 결코 열어서는 안 된다. 만일 모든 사람이 이른바 무해한 포도주와 사과즙을 적당히 사용함으로 마련된 작은 통로들을 경계하는 일에 깨어 있고 성실할 것 같으면, 음주로 달려가는 대로는 막혀 버릴 것이다. 모든 지역 사회에서 필요한 것은 확고한 목적이며, 만지지 않고, 맛보지 않고, 취급하지 않는 의지이다. 그리하면 절제의 개혁은 강하고, 영구적이고, 철저해 질 것이다.

돈을 사랑하는 마음은 사람들에게 양심을 어기게 할 것이다. 아마도 바로 그 돈을 주님의 창고로 가져갈 수도 있겠지만 그분께서는 그런 헌금을 받지 않으실 것이다. 그것은 그분을 모욕하는 일이다. 그것은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기를 요구하는 그분의 율법을 범함으로써 얻어졌다. 범법자가 만일 포도주나 사과즙을 만들지 않았을 것 같으면 누군가가 그렇게 했을 것이므로 그의 이웃은 꼭 마찬가지로 주정뱅이가 되었을 것이라는 변명은 있을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이 이웃 사람의 입술에 술병을 대 줄 것이라는 이유로 감히 그리스도인들이 영혼들의 피로 그들의 옷을 더럽히고 실수하는 자들의 길에 올무를 놓는 자들에게 선고된 저주를 초래할 것인가?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자들이 당신의 깃발 아래 서서 마귀의 사업을 멸절시키는 일을 도우라고 호소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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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때의 사회적 형편을 잘 아시는 세상의 구속주께서는 이 시대를 정죄하는 죄가 먹고 마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가 나타나는 때도 그러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마 24:38, 39). 바로 이와 같은 상태가 마지막 때에 존재할 것이다. 이 경고를 믿는 자들은 그들을 정죄 아래 놓이게 할 저주가 초래되지 않도록 최대한으로 조심해야 할 것이다.

형제들이여, 이 문제를 성경의 빛에 비추어서 보도록 하자. 그리고 모든 일에 절제의 편에서 결정적인 감화를 발휘하도록 하자. 사과와 포도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것들은 건강 식품으로 훌륭하게 사용될 수도 있고, 잘못 사용됨으로 남용될 수도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포도와 사과의 수확물이 말라지게 하신다. 사람들의 죄악적 습관 때문이다. 우리는 개혁자들로서 세상에 서 있다. 불신자들과 신앙이 없는 자들에게 우리의 믿음을 비난할 기회를 주지 말자. 그리스도께서는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세상의 빛이라” (마 5:13, 14) 고 말씀하셨다. 우리의 마음과 양심이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의 감화 아래 놓여 있다는 것과, 우리의 생애가 순결한 하나님의 율법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당하되, 비록 이 원칙이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도록 요구할지라도 그렇게 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 주도록 하자.

42 장 — 불신자들과의 결혼

사랑하는 L 자매에게:

나는 그대가 종교적 신앙에 있어서 그대와 일치하지 않는 자와 결혼하고자 계획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대가 이 중요한 문제를 신중하게 헤아려 보지 않는 데 대하여 심려한다. 그대의 장래의 생애 전부에 영향을 끼치게 될 조치를 취하기 전에 나는 그 문제를 주의 깊고 경건하게 숙고해 보도록 권유한다. 이 새로운 관계는 진정한 행복의 근원임이 입증될 것인가? 그것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그대에게 도움을 줄 것인가?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인가? 그대의 모본은 다른 사람들이 안전하게 따라올 수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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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하기 전에, 모든 여자들은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자 하는 남자가 그렇게 하기에 합당한지 물어 볼 것이다. 그의 과거의 경력은 어떠하였는가? 그의 생애는 순결한가? 그가 나타내는 사랑은 고상하고 숭고한 성격의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감정적으로 좋아하는 것인가? 그는 그녀를 행복하게 해줄 성격상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가? 그녀는 그의 애정에서 진정한 평안과 기쁨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녀는 자기의 개성을 보존하도록 허락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그의 판단과 양심이 남편의 지배에 굴복되어야 할 것인가?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그 여자는 자신의 것이 아니고, 값으로 산 바 되었다. 그 여자는 구주의 요구를 최상의 것으로 존중할 것인가? 육체와 심령, 사상과 목적이 순결하고 거룩하게 보존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은 결혼 관계에 들어가는 모든 여자의 복리와 중요한 관련이 있다.

신앙은 가정에 필요하다. 오직 이것만이 그처럼 흔히 결혼 생활을 쓰라리게 하는 비참한 잘못을 방지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 지배하실 수 있는 곳에만 깊고, 진실한 이타적 사랑이 존재한다. 그 때에 심령은 결합되고, 두 생명이 조화를 이루어 섞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가정에 손님이 되고, 그들의 거룩한 경야 (經夜) 는 신혼의 방을 거룩하게 해 줄 것이다. 저속한 관능은 추방될 것이다. 하나님을 향하여 사상은 향상되고, 마음의 헌신이 그분께로 상달될 것이다.

마음이 인간적 사랑을 갈망하지만 이 사랑은 예수님의 사랑을 대신해줄 만큼 충분히 강하고, 충분히 순결하고, 충분히 귀중하지 않다. 아내는 그의 구주 안에서만 생애의 걱정과 책임과 슬픔을 직면할 수 있는 지혜와 힘과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 그는 그분을 자신의 힘과 지도자로 삼아야 한다. 여자는 어떤 세상 친구에게 자기 자신을 바치기 전에 그리스도께 자신을 바쳐야 한다. 그리고 이것과 상치되는 관계는 맺지 않아야 한다. 진정한 행복을 발견할 자들은 그들이 소유한 모든 것과 이들이 하는 모든 일에 하늘의 축복을 가져야 한다. 그처럼 많은 사람들의 마음과 가정이 불행으로 충만해지는 것은 하나님께 불순종하기 때문이다. 나의 자매여, 만일 그대가 그늘이 결코 걷히지 않는 가정을 갖기 원하지 않는 한 그대 자신을 하나님의 원수가 된 자와 연합시키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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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 때에 이 말씀들을 들을 것으로 기대하는 자로서 나는 그대가 취하고자 생각하는 단계를 깊이 생각하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이렇게 자문하라. “믿지 않는 남편이 나의 생각을 예수님에게서 떠나가게 하지 않을 것인가? 그는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자이다. 그는 자기가 즐기는 것을 나에게도 즐기게 하지 않을 것인가?” 영생의 길은 가파르고 거친 길이다. 그대가 가는 길을 방해하는 부가적인 짐을 지지 말라. 그대는 영적 힘을 너무 적게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는 방해 대신에 도움이 필요하다.

주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에게 그들 주위에 있는 우상숭배의 민족들과 서로 결혼하지 않도록 명령하셨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하고 그 이유가 제시되어 있다. 그런 결합의 결과를 미리 보시는 무한히 지혜로우신 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진노하사 갑자기 너희를 멸하실 것임이니라.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지상 만민 중에서 너를 자기 기업의 백성으로 택하셨나니”, “그런즉 너는 알라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는 하나님이시요 신실하신 하나님이시라 그를 사랑하고 그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그 언약을 이행하시며 인애를 베푸시되 그를 미워하는 자에게는 당장에 보응하여 멸하시나니 여호와는 자기를 미워하는 자에게 지체하지 아니하시고 당장에 그에게 보응하시느니라” (신 7:3, 4, 6, 9, 10).

신약에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신앙이 없는 자들과 결혼하는 것을 똑같이 금지한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아내가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고전 7:39). 다시 그의 둘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기록한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 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조화되며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어찌 상관하며 하나님의 성전과 우상이 어찌 일치가 되리요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전능하신 주의 말씀이니라 하셨느니라” (고후 6: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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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자매여, 그대는 이 분명하고 적극적인 지시를 감히 무시하겠는가? 하나님의 자녀요, 그리스도의 왕국의 백성이요, 그분의 피로 사신바 된 자로서 그대는 어찌 하나님의 요구를 인정하지 않는 자, 그분의 영의 지배를 받지 않는 자와 그대 자신을 연합시킬 수 있겠는가? 내가 인용한 그 명령은 사람의 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다. 비록 그대가 택한 동료가 모든 다른 면에서는 가치가 있을지라도 (실상은 그렇지 않지만), 그는 이 시대를 위한 진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불신자이다. 그대는 그대 자신을 그와 연합시키지 못하도록 하늘에서 금지당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영혼을 위태롭게 하지 않고서는 이 거룩한 명령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너무 늦기 전에 그대의 위험에 관하여 그대에게 경고하고자 한다. 그대는 부드럽고 유쾌한 말을 듣고 모든 것이 잘 될 것으로 믿게 된다. 그러나 그대는 이 듣기 좋은 말을 하게 하는 동기는 읽지 않는다. 그대는 마음 속에 숨은 악의 깊이를 볼 수 없다. 그대는 배후의 장면을 볼 수 없고 사단이 그대의 영혼을 위하여 놓고 있는 올무를 분별할 수 없다. 그는 쉽게 접근하여 그대에게 유혹의 화살들을 겨눌 수 있는 그런 길을 그대에게 따르게 할 것이다. 그가 유리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작은 것도 제공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그분의 종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계시는 동안, 사단은 불순종의 자녀를 통하여 활동한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은 일치하지 않는다. 그 둘은 조화를 이룰 수 없다. 불신자와 연합하려면 그대 자신을 사단의 땅에 두어야 한다. 그대는 하나님의 영을 근심시키고 그분의 보호를 상실한다. 그대는 영생을 위한 싸움을 싸우는데 있어서 그대에게 이처럼 불리한 일을 행할 여유가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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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는 “그러나 내가 이미 약속했는데 지금 그것을 취소할까요” 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만일 그대가 성경과 반대되는 약속을 했다면, 어떤 수단을 써서라도 지체 없이 그것을 취소하고, 그처럼 분별없이 약속을 하도록 열중해 버린 데 대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라. 그 약속을 지킴으로 그대의 창조주를 모독하기보다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그런 약속을 철회해 버리는 것이 훨씬 더 낫다.

그대에게는 얻어야 할 하늘이 있고, 닫아 버려야 할, 멸망으로 이끄는 열린 길이 있음을 기억하라.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대로 하실 작정이시다. 우리의 첫 조상들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지 못하도록 금지했을 때, 그들의 불순종은 온 세상에 저주의 수문을 열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반대로 걸어갈 것 같으면 그분께서도 우리와 반대되게 가실 것이다. 우리의 유일한 안전의 길은 어떤 희생이 있을지라도 그분의 모든 요구에 순종하는 것이다. 모든 것은 무한한 사랑과 지혜 안에 기초를 두고 있다.

오늘날 존재하는 극도로 세속적인 정신, 자아 만족의 요구 이상으로 더 큰 요구를 인정하고자 하지 않는 경향은 마지막 때의 징조들 중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더니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였으며” (눅 17:26, 27). 이 시대의 사람들은 노아의 때에 나타난 것과 똑같이 하나님의 요구를 무분별하게 무시하고 시집가며 장가가고 있다. 그리스도교계에서도 그리스도인들과 불신자들과의 결혼에 관한 하나님의 교훈에 무섭고도 놀라운 무관심이 존재한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두려워하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무한한 지혜를 가지신 분의 권면을 받아들이기보다는 그들 스스로의 마음의 경향을 따르는 길을 택한다. 이 세상과 다음 세상을 위하여 양편의 행복과 복리에 크게 관련된 문제에 있어서 이성과 판단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버리고, 맹목적 충동과 완고한 결정이 지배하도록 허용된다. 다른 경우에는 분별력이 있고 양심적인 남녀들이 권면에 대하여 귀를 막는다. 그들은 친구들과 친척들과 하나님의 종들의 호소와 권유에 대하여 귀머거리가 된다. 주의와 경고의 표현은 당치 않은 간섭으로 간주되고, 충고할 만큼 성실한 친구들은 원수로 간주된다. 이 모든 것은 사단이 바라는 그대로이다. 그는 영혼의 주변에 그의 마력을 퍼뜨려서 거기에 매혹되고 혹하게 한다. 이성은 자제의 고삐를 정욕의 목에 걸어 주고 부정한 정욕은 패권을 쥐게 된다. 그리하여 희생자는 너무 늦게서야 불행과 속박의 생애에 대하여 깨닫게 된다. 이것은 상상력이 그린 하나의 그림이 아니고 현실적 사실이다. 하나님의 인정은 그분께서 분명히 금지하신 연합에는 주어지지 않는다. 여러 해 동안 나는 불행한 결혼을 한 여러 사람들에게서 편지들을 받아오는데, 내 앞에 제시된 혐오할 만한 역사는 마음을 아프게 하기에 충분하다. 이렇게 불행한 자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 수 있을 것인지, 그들의 무거운 짐을 어떻게 덜어 줄 것인지 결정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들의 슬픈 경험은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의 경고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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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역사의 장면이 바야흐로 끝나려 하고 우리가 결코 겪은 적이 없는 환난의 때에 들어가려는 이 시대에 있어서 결혼하는 일이 적으면 적을수록 남녀를 막론하고 모든 사람을 위하여 더 낫다. 더욱이 사단이 멸망하는 자들 사이에서 온갖 불의의 속임으로 활동하고 있는 때에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과 연합하는 일을 경계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그분을 두려워하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현명한 명령에 순종할 것이다. 우리의 감정과 충동과 애정은 하늘을 향하여 흘러야지, 땅을 향하여, 관능적인 생각과 방종의 저속하고 저열한 통로를 통하여 흘러서는 안 된다. 지금은 모든 사람이 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의 면전에서처럼 서야 할 때이다.

나의 사랑하는 자매여, 그대는 예수님의 제자로서 그대가 바야흐로 취하고자 하는 단계가 그대 자신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 봐야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주님과 협력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그들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빌 2:15) 나타나야 한다고 바울은 말한다. 우리는 의의 태양으로부터 밝은 빛을 받아서 우리의 착한 행실로써 결코 단속적인 것이 아니고 결코 희미해지지도 않는 분명하고 확실한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추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감화를 끼치고 있지 않는 한, 우리가 그들에게 해를 끼치고 있지 않다는 것을 확신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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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나의 증인이다” 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의 모든 행동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행동이 구속주의 나라의 유익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 물어 봐야 한다. 만일 그대가 진정으로 그리스도의 제자일 것 같으면 그대는 그대의 육신적 감정에 아무리 괴로운 일일지라도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는 길을 택하게 될 것이다. 바울은 “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갈 6:14) 고 말했다. L 자매여, 그대는 옛적에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을 배울 필요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의지와 그대의 계획과 목적을 완전히 굴복시키도록 그대에게 요구하신다. 예수님은 그대의 지도자이다. 그분을 바라보고, 그분을 신뢰해야 한다. 그리고 그대가 하나님을 위한 헌신의 생애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것은 조금도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그대의 대화는, 저리로써 오실 구주를 기다리고 있는 하늘에 관한 것이어야 한다. 그대의 경건은 그대의 영향을 받는 범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느낄 수 있게 하는 그런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생애의 모든 행동에 있어서 악은 모양이라도 버리도록 그대에게 요구하신다. 그대는 이렇게 하고 있는가? 그대는 그대의 거룩한 믿음이 주님의 원수들과의 연합을 통하여 줄어들거나 타협하지 않아야 할 가장 엄숙한 책임을 지고 있다.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했다는 이유로 그분의 말씀의 명령을 무시하고자 하는 유혹을 받는다면 그대의 모본이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사실을 기억하라. 다른 사람들도 그대가 하는 것처럼 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악은 확대될 것이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분의 요구에서 떠나가게 되면 그대를 지도자로 바라보는 자들에게 무한한 해를 끼치는 결과가 초래될 것이다.

영혼들의 구원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의 끊임없는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그대를 흑암에서 불러내신 분의 영광을 찬양하기 위하여 그대는 어떤 일을 했는가?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엡 5:14). 그대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영혼의 정력을 마비시키는 이 치명적인 심취 상태를 떨쳐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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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에 대한 가장 강한 동기, 가장 고상한 동기, 가장 영광스러운 상급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자, 곧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들은 그분의 보배, 그분의 특별한 보화들이다. 확고 부동한 마음을 유지할 모든 사람들에 대하여 그분께서는, “흰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계 3:4) 고 선언하신다. 영원한 행복의 문에 들어설 자들은 그들이 한 어떤 희생도 너무 큰 것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대를 도와주셔서 그대가 시험을 견디고 그대의 성실을 유지하기를 바란다. 믿음으로 예수님을 굳게 붙들라. 그대의 구속주를 실망시키지 말라.

캘리포니아 주 세인트 헬레나에서,

1885년 2월 13일

43 장 — 도시 선교의 지원

사랑하는 M 형제에게:

며칠 전에 나는 그대가 N 목사에게 보낸 편지를 받았다. 그대는 그 편지에서 그대의 합회의 지원에 _____ 선교 지역을 맡겨 버리는 것에 대하여 매우 심각한 반대 의견을 내세우고, 모든 지역에 있는 다른 합회들이 이 선교 지역에 대하여 똑같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 합회들이 그들의 구역 안에 있는 도시들에서 지원해야 할 중요한 선교 지역들을 지금 가지고 있지 않다하더라도, 이런 선교지역을 확보할 장소들이 없는가? 만일 그대의 합회가 그 감독 아래 _____ 선교 지역을 맡아서 대총회의 지도 아래 그 사업을 수행하라는 요구를 받는다면 책임 있는 사람들은, 이것이 그들의 형제들이 그들을 신임하고 있는 증거로 생각하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예, 우리가 그 신성한 요구를 수락합니다. 우리는 그 선교 사업이 성공을 거두고 우리 형제들의 신임이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하고자 힘을 다해서 일하겠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고 필요하다면 극기를 실천하고 엄격한 절약도 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의무를 즐겁게 완수하도록 그대를 도와주실 것이며, 그것이 그대의 주 (州) 에 있는 사업에 짐이나 장애가 되는 대신에 그대에게 축복이 되게 하실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359-3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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