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309-318 (294일)

_____ 에 있는 사랑하는 백성들에게는 개인적 경건의 교훈이 참으로 필요하며, 그들에게는 목회적 활동이 참으로 필요하다. 그러나 그들은 알지도 않고 행하지도 않는다. 형제들이여,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을 시험하실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쭉정이임이 판명되고 어떤 사람들은 곡식 가운데 있는 귀중한 알곡임이 판명될 것이다. 시험하는 자의 능력에 굴복하지 말라. 그는 무장한 강한 사람으로 나타날 것이지만 그에게 유리한 위치를 제공하지 말라. 의무를 위하여 너 스스로 용기를 북돋우고 한 치의 땅도 쟁취하라. 물러가는 대신에 전진하라. 연약하고 소심해지는 대신에 싸움을 위하여 기운을 내라. 하나님께서는 온갖 형태의 죄를 대항하기 위하여 그대의 모든 힘을 다 하도록 요구하신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구원의 대장을 꾸준히 주목하라. 앞길에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비록 가장 치열하게 싸우는 중일지라도 거짓 깃발을 따르지 말고 우리의 거룩한 믿음의 깃발을 주시하고 그것이 휘날리는 곳을 알아내라. 미구에 전쟁은 끝나고 승리는 거두어질 것이다. 그러므로 그대가 만일 성실하기만 하면 그를 사랑하시는 분을 통하여 그대는 넉넉히 이기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영광스러운 상급,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이 그대의 것이 될 것이다.

33 장 — 불평하는 죄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한 가족으로서 많은 쓸데없는 불행을 경험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께서는 그대들이 불행해지도록 의도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그대들은 마음을 예수님에게서 돌이켜 그대들 자신에 너무도 지나치게 집중시켰다. 그대들의 가정에 있는 큰 죄는 하나님의 섭리에 관하여 쓸데없이 불평하는 일이다. 이 점에 있어서의 그대들의 항거는 참으로 놀라울 정도이다. 그대들은 작은 어려움들을 확대시키고 용기를 좌절시키는 말을 너무 많이 해왔다. 그대들은 그대들 주위에 있는 모든 것을 탄식으로 장식하는 습관을 가지고 있으며 그대들 스스로를 이유 없이 불행하게 만들었다. 그대들의 끊임없는 불평은 그대들을 하나님에게서 분리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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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은 사단의 마술에 걸린 땅에서 벗어나고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이 흔들리도록 마음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대들은 행복해 질 수 있으며 또한 행복해져야 하고 자제의 습관도 가져야 한다. 그대들의 생각까지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켜야 하고 그대들의 감정은 이성과 신앙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한다. 그대들의 상상력은 함부로 날뛰고 제지나 규율 아래서의 어떤 노력 없이 제 마음대로의 길을 가도록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생각이 잘못되면 감정도 잘못될 것이다. 그리하여 생각과 감정이 합하여 도덕적 품성을 이룬다. 그대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생각과 감정을 제지하지 않고자 작정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악한 천사들의 영향 아래 놓이게 되고 그들의 제재와 지배를 자초하게 된다. 만일 그대들이 상상력에 굴복되어 그대들의 사상이 의심과 회의심과 불평의 길을 따르도록 허용한다면 그대들은 사람들 중에서 가장 불행한 자가 될 것이며 그대들의 생애도 실패로 입증될 것이다.

사랑하는 F 자매여, 그대는 병든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대는 그대의 감정이 그대의 이성과 판단에 완전히 지배되도록 허용하므로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다. 그대는 단호한 의지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 때문에 정신이 육체에 영향을 주어서 순환에 균형을 깨뜨리고 특정한 기관에 혼잡을 일으킨다. 그리고 그대는 그대의 감정에 건강을 희생시키고 있다.

그대가 바로잡지 않으면 그대 자신의 행복을 그저 파멸로 종결지을 잘못을 범하고 있다. 그대는 그대 자신 뿐만 아니라 그대의 가족 중 다른 사람들과, 특별히 그대의 어머니에게 분명히 손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매우 신경이 예민하고 민감하다. 그의 자녀들 중 하나가 고통을 받으면 그는 혼란해지고 거의 정신을 수습하지 못한다. 그가 어쩔수 없이 나타내는 빈번한 히스테리의 발작 때문에 그의 정신은 균형을 잃고, 큰 불행이 그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초래된다. 그러나 그대는 그대의 상상력을 지배하고 이 신경질적인 충격을 극복할 수 있다. 그대는 의지력을 가지고 있으므로 그대는 그것을 도움으로 삼아야 할 것이었다. 그러나 그대는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의 고도로 발휘된 상상력이 이성을 지배하게 했다. 이렇게 함으로써 그대는 하나님의 영을 슬프게 했다. 그대에게 감정을 지배할 힘이 없다면 죄가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원수에게 굴복하는 데는 대답할 말이 없을 것이다. 그대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반대되도록 준비시키는 대신에 거룩하게 하고 순종하도록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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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은 질병을 차단시키는 길을 취하는 대신에, 그것을 좋아하고 그 세력에 굴복하고 있다. 그대들은 약물 사용을 피하고 건강 법칙을 주의 깊이 지켜야 한다. 그대들이 그대들의 생명을 존중하려면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준비한 평범한 음식물을 먹고 육체적 운동을 더 많이 해야 한다. 가정의 모든 구성원은 건강 개혁의 혜택이 필요하다. 그러나 약물 복용은 영구히 포기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떤 질병도 치료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육체 조직을 약화시키고 질병에 더욱 쉽게 감염되게 해주기 때문이다.

사람은 슬픔과 걱정과 곤란이 많은 세상에 처해 있다. 올바른 품성을 이루고 부조화와 혼란 가운데서 조화를 가져오기 위하여 아담처럼 시험받고 연단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있다. 우리에게는 우리 자신의 행복과 다른 사람들의 행복에 필수적인 일로서 해야 할 것이 많다. 그리고 우리가 누려야 할 것도 많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는 하나님과 연결은 이루고 있다. 그분의 자비는 우리에게 끊임없는 의무를 지워 준다. 그분의 은총을 가치 없이 느끼게 되면 우리는 그것을 전혀 감사하지 않게 된다.

사랑하는 친구들이여, 그대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과 그대들의 존재 자체에 대하여 그대들은 하나님께 빚을 지고 있다. 그분께서는 어떤 범위에 이르기까지는 그분 자신이 소유하고 계시는 것과 유사한 능력을 그대들에게 주셨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자아를 기쁘게 하고 높이기 위해서가 아니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이런 능력을 계발시키고자 열렬하게 활동해야 한다. 그대들은 그대들의 특권을 가장 유익되게 이용하지 않았다. 그대들은 책임을 질 수 있도록 그대 자신을 교육시켜야 한다. 지성은 계발되어야 한다. 만일 무활동으로 녹이 슬도록 버려지면 그것은 저하된다.

이 지상은 주님의 것이다. 여기에서 천연계 — 생물계나 무생물계 — 는 그분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볼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우월한 존재로 창조하셨다.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어 신의 성품에 참여하고, 창조주와 협력하여 그분의 계획을 이룰 수 있다. 또한 오직 사람만이 하나님의 목적을 어기고 있음을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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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나 훌륭하게, 또한 얼마나 뛰어난 아름다움으로 천연계에 있는 모든 것이 조성되었는가. 우리는 어디에서나 위대한 예술가의 완전한 작품들을 본다. 하늘들은 그분의 영광을 선포하고, 사람의 행복을 위하여 창조된 지구는 우리에게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말해 준다. 그 표면은 단조로운 평원으로 이루어지지 않고, 풍경을 다양하게 하기 위하여 웅장한 큰 산들이 솟아 있다. 거기에는 생기에 찬 계곡의 시내가 있고, 비옥한 골짜기와 아름다운 호수와 넓은 강과 끝없는 대양들이 있다. 하나님께서는 메마른 땅에 생기를 주기 위하여 이슬과 비를 내리신다. 공기를 정하게 하고 서늘하게 해줌으로 건강을 증진시키는 산들바람은 그분의 지혜에 의하여 통제된다. 그분은 낮과 밤을 구분하고, 그 온화한 광선으로 빛과 온기를 지구에 주고, 식물이 자라게 하기 위하여 하늘에 해를 두셨다.

나는 하나님의 풍성한 손에서 오는 이런 축복들을 주목해 보도록 호소하는 바이다. 새로운 매 아침의 신선한 영광을 볼 때 이와 같은 그분의 친절한 돌보심의 증거들에 대하여 그대들은 찬양의 마음이 생겨야 한다. 우리의 친절한 하늘 아버지께서는 우리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하여 너무도 많은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또한 변장된 축복들도 주셨다. 그분은 타락한 인간의 필요를 이해하신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한편으로 우리에게 편의를 제공해 주시는 반면 다른 한편으로는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신 능력을 사용하도록 우리를 자극하기 위한 목적으로 마련된 불편들이 있다. 이런 것들은 병자에게 근면과 인내와 용기를 계발시킨다.

사람이 감소시킬 수는 있지만 결코 제거해 버릴 수는 없는 재해들이 있다. 사람은 장애물들을 극복하고 환경에 의하여 꼴 지워지는 대신에 그의 환경을 꼴 지어야 한다. 그는 혼란 가운데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어내는 일에 있어서 자신의 재능을 발휘할 여지를 가지고 있다. 만일 그가 주장하기만 하면 이 일에 있어서 그는 하나님의 도움을 얻게 될 것이다. 그는 자기 자신의 힘으로 유혹과 시련을 대항하여 싸우도록 버려지지 않는다. 전능하신 분에게 도움이 있다. 예수님께서는 생애의 시련을 통과하고 그 유혹들을 극복하는 방법을 사람에게 가르쳐 주시기 위하여 하늘의 왕궁을 떠나시고 죄로 타락한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 여기에 우리를 위한 하나의 모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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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주신 은택이 하나하나 열거될 때 그대는 그대의 배은 망덕한 불평에 대하여 가책을 느끼지 않는가? 여러 해 동안 그분께서는 그대에게 한 딸이요, 자매를 주셔서 마침내 그대가 그를 그대의 것으로 여기고, 그대가 이 훌륭한 선물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다고 느끼게까지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대의 탄식을 들으셨다. 그대의 눈앞에 어떤 구름이 있으면 그대는 지금껏 태양이 비취지 않은 것처럼 생각하고 구름과 흑암이 언제나 그대의 주위를 두르고 있었던 것으로 여겼다.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고통을 보내시고, 그대에게서 그대의 보배를 옮기심으로 그대가 번영과 진정한 슬픔을 식별할 수 있게 하셨다. 그러나 그대는 그분 앞에 그대의 마음을 굴복시키지 않고 그분의 사랑에서 그대를 분리시킨 배은 망덕의 큰 죄를 회개하지 않았다. 욥처럼 그대는 슬픔에 대한 원인이 그대에게 있는 줄로 느끼고 위로를 받지 못했다. 이것이 합리적이었던가? 그대는 죽음이 아무도 저항할 수 없는 세력임을 안다. 그러나 그대는 헛된 슬픔으로 그대의 생애를 거의 쓸모 없이 만들었다. 그대의 슬픔은 거의 하나님께 대한 반역과 같은 정도의 것이었다. 나는 그대가 오로지 사별 (死別) 만을 생각하고 흥분하기 쉬운 감정에 굴복하여 마침내 그대의 시끄러운 슬픔의 표현 때문에 천사들이 얼굴을 가리고 그 장면에서 물러가기까지 된 것을 보았다.

그대의 슬픔에 이렇게 굴복되고 있는 동안, 그대는 독생자를 우리를 위하여 주셔서 죽음이 영원한 잠이 되지 않도록 해주신 하늘 아버지가 계신 것을 기억했는가? 그대는 생명과 영광의 주님께서 무덤을 통과하시고 그분 자신의 임재로써 그것을 밝게 해주신 사실을 기억했는가? 사랑받은 사도는 이렇게 말했다.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계 14:13). 사도는 이 말을 기록할 때 무엇에 관하여 그가 이야기하고 있는지 잘 알았다. 그러나 그대가 억제할 수 없는 슬픔에 굴복할 때 그대의 행동은 이 말이 나타내는 위로와 일치되는가?

주님은 은혜롭고, 자비롭고, 진실하시다. 그분은 가장 순결하고 가장 잘 준비된 그대의 가정의 구성원 중 하나를 마지막 날의 위기에 안식하도록 허락하셨다. 아, 즐거운 음률과 기쁨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그대의 심령을 닫아 버리거나 죽은 자에게 부활이 없는 것처럼 슬퍼하지 말고, 그에게 더 이상 죽음이 없고, 더 이상 시련이 없고, 더 이상 슬픔이 없게 해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라. 그 여인은 생명을 주시는 분께서 그분의 잠자는 성도들에게 영광스런 불멸을 입도록 부르실 때까지 예수님 안에서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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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 는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해야 할 일이 있는데, 그것은 그의 감정을 통제하는 일이다. 그는 그가 하늘에 있지 않고 죽음이 지배하고 우리의 사랑하는 자들이 어느 순간에 우리에게서 옮겨질 세상에 있다는 것을 안다. 그는 인생의 큰 책임이 더 좋은 세상을 위하여 준비하는 것임을 느껴야 한다. 만일 그가 영생을 붙들고만 있다면, 그가 이 세상에 살면서 인생의 의무를 고상하게 수행하는데 자격을 잃지 않게 해줄 뿐 아니라 그로 하여금 극기와 자아 희생의 의무를 완수하게 해줄 것이다.

한 가족으로서 그대들은 흑암과 불평을 이야기하되 마침내 그대들이 바로 그런 모습으로 바뀔 때까지 그렇게 한다. 그대들은 어둡고 슬프고 우울한 시간이 될 때까지 피차간에 동정하고 정신적 흥분을 하는 것 같다. 그대들은 애도하는 예배를 드렸다. 그러나 그대들 주변에 있는 천사들은 이런 예배에 매력을 갖지 않는다. 만일 그대가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그대에게 거의 접근하지 않으시고 심판으로 그대를 다루실 것이다. 지금은 그대의 가정에서 감사의 예배를 드리고 그대에게 주어진 축복들을 즐거움으로 다시 생각해 볼 때가 아닌가?

진리의 능력은 모든 역경 속에서 지탱해 주고 위로해 주기에 충분해야 한다. 그리스도교의 신앙이 그 참 가치를 드러내는 것은 그 신앙의 소유자로 하여금 환난을 극복할 수 있게 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그것은 식욕과 정욕과 감정이 이성과 양심의 지배 아래 놓이게 하고, 사상이 건전한 통로를 통하여 흐르도록 훈련시켜 준다. 그렇게 되면 혀는 죄악적인 불평을 발하므로 하나님을 모독하게 되지 않을 것이다.

우리의 창조주께서는 그분의 피조물들에게 당신이 선택하시는 대로 행하실 정당한 권리를 갖고 계신다. 인간은 마음대로 결정할 권리가 없지만 그분은 뜻대로 주관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그분은 엄격한 재판관이나 가혹하고 까다로운 채권자가 아니시다. 그분은 바로 사랑의 원천이시며 무수한 축복의 시여자시다. 그대가 그런 사랑을 멸시한 것이 가장 큰 슬픔의 원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에 대하여 그대들의 마음 속에서 감사와 찬양이 우러나지 못하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는 그분의 모든 은혜를 받기에 합당하지 못하다. 그러나 우리가 합당하지 못하고 배은 망덕으로 냉랭할지라도 그 은혜들은 우리에게 계속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마치 일을 가혹하게 시키는 엄한 주인에게 매인 종들처럼 불평하지 말라. 예수님은 선하시다. 그분을 찬양하라. 그대들의 얼굴을 도우시는 분이시며 그대들의 하나님이신 분을 찬양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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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 장 — “여호와를 찬양하라”

“호흡이 있는 자마다 여호와를 찬양할지어다” (시 150:6). 우리들 중에 얼마만큼 감사를 표해야 할 것인지 합당하게 생각해 본 사람이 있는가? 우리는 주님의 자비가 아침마다 새롭다는 것과 그분의 성실이 다함이 없다는 것을 기억하는가? 우리가 그분에게 의존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감사하고 있는가? 그렇기는커녕 오히려 우리는 너무도 흔히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 (약 1:17) 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건강한 자들은 얼마나 흔히 날마다, 해마다 그들에게 끊임없이 주어지는 놀라운 자비를 잊어버리는가. 그들은 그분의 모든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지 않는다. 그러나 질병이 엄습하면 하나님을 기억한다. 회복을 받기 위한 강한 욕망은 열렬한 기도를 하게 하는데, 이것은 옳은 일이다. 하나님은 건강할 때와 마찬가지로 병든 때에도 우리의 피난처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사정을 그분께 맡기지 않는다. 그들은 그들 스스로에 관한 걱정으로 허약과 질병을 조장한다. 만일 그들이 불평을 그치고 의기 소침과 우울에서 벗어날 것 같으면 그들의 회복은 더욱 확실해질 것이다. 그들은 참으로 오랫동안 건강의 축복을 누린 것을 감사한 마음으로 기억해야 한다. 그들이 이 귀중한 은혜를 회복 받으면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께 새로운 의무를 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열 사람의 문둥병자가 고침을 받았을 때 오직 한 사람만이 예수님을 찾아서 그분께 영광을 돌리기 위하여 왔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에 마음이 감동되지 않은 지각 없는 아홉 사람처럼 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다. 그분은 그분께서 창조하신 피조물들을 돌보신다. “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시 103:13).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요일 3:1). 우리가 지극히 높으신 분의 자녀가 되고, 하나님의 후사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후사가 될 수 있는 것은 얼마나 귀중한 특권인가. 그러므로 우리는 이생에서 실망과 고통을 벗어나지 못한다 해서 탄식하고 슬퍼하지 않도록 하자. 만일 하나님의 섭리로 우리가 시련을 견디도록 부름을 받는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쓴 잔을 마시되, 그것을 우리의 입술에 대주는 것은 아버지의 손임을 기억하자. 낮에는 물론이요 흑암 속에서도 그분을 신뢰하도록 하자. 우리는 우리에게 유익이 되는 모든 것을 그분께서 우리에게 주실 것을 믿을 수 있지 않은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롬 8:32). 갈바리의 십자가로 우리에게 나타낸 사랑을 기억할 때, 고통의 밤에서까지도 어찌 우리가 감사의 찬양으로 마음과 음성을 높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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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께서 잃어버린 죄인들을 위하여 치르신 희생은 얼마나 훌륭한 명상의 주제인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사 53:5). 우리가 소유할 수 있도록 주어진 축복들을 어떻게 측량할 것인가? 예수님께서 그 이상 더 고난을 받으실 수 있으셨을까? 그분께서는 더욱 풍성한 축복을 우리를 위하여 가져오실 수 있으셨을까? 우리를 위하여 그분께서 하늘의 행복과 영광을 떠나셔서 궁핍과 수치, 고통과 무서운 죽음을 당하신 것을 우리가 생각할 때, 가장 굳은 마음도 녹아질 것이 아닌가? 만일 그분께서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써 우리에게 소망의 문을 열어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는 흑암의 공포와 절망의 불행 외에 아무것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우리는 은총받고 축복받은 현 상태로서는 우리가 얼마나 깊은 데서 건져냄을 받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만일 예수님께서 동정과 사랑의 팔, 그분의 인간의 팔로 우리를 안아 주시고 우리를 끌어올려 주지 않으셨을 것 같으면 우리의 고통이 얼마나 더 크고, 우리의 불행이 얼마나 더 심했을 것인지 우리는 헤아려 볼 수 없다.

우리는 소망 가운데 즐거워 할 수 있다. 우리의 대언자는 하늘 성소에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고 계신다. 그분의 공로를 통하여 우리는 용서와 화평을 얻는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씻어 주시고, 우리에게 그분의 의를 옷 입혀 주시고, 하늘의 교제에 적합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자 돌아가셨다. 그 곳에서 우리는 빛 가운데 영원히 거할 수 있다. 사랑하는 형제, 사랑하는 자매여, 사단이 절망과 우울과 의심을 그대들의 마음에 채워 줄 때 그의 제안들을 거절하라. 그에게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해주는 예수님의 피를 이야기해 주라. 그대는 그대 자신을 유혹자의 세력에서 구출할 수 없다. 그러나 그 귀중한 피의 공로가 제시될 때 그는 떨고 도망친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이지 않겠는가? 그대는 그분이 제시하는 구원의 잔을 받고 주님의 이름을 부르지 않겠는가? 그대를 흑암에서 불러내어 그분의 기이한 빛 가운데로 들어가게 하신 분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지 말라. 그대의 불신으로 동정 많으신 구주의 마음을 한 순간이라도 아프게 하지 말라. 그분은 가장 강한 관심을 가지고 하늘 가는 길에서 전진하고 있는 그대를 살펴보신다. 그분은 그대의 열렬한 노력을 보신다. 그분은 그대의 타락과 회복, 그대의 희망과 공포, 그대의 투쟁과 승리를 주시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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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헌신적 활동이 구하고 받는 것으로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우리의 필요는 생각하고 우리가 받는 혜택은 결코 생각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그분의 자비를 받는 자이면서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감사를 표현하지 않고 그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하신 일에 대하여 그분을 결코 찬양하지 않을 것인가? 우리는 지나치게 많이 기도하지 않고, 감사하는 일에 지나치게 인색하다. 만일 하나님의 부드러운 자비가 더 많은 감사와 찬양을 불러일으켰을 것 같으면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훨씬 더 큰 능력을 소유하게 되었을 것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점점 더 풍성해 지고 그분을 더욱 찬양하게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불평하는 그대는 그대의 현 상태를 바꾸고 그대의 간구에 찬양을 더하라. 그대가 그분의 선하심과 자비를 생각할 때 그대는 그분께서 그대의 필요를 생각하시리라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기도하고, 열렬하게 기도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그러나 찬양하는 일을 잊지 말라. 그렇게 되면 그분의 모든 자녀가 그분의 품성을 옹호하게 된다. 그대는 주님을 존귀케 할 수 있고, 도우시는 은혜의 능력을 보여 줄 수 있다.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을 감사하지 않고 예수님의 거룩한 자비도 감사하지 않는 자들이 많이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계획에 나타난 무한한 은혜를 모멸하기까지 한다. 이 큰 구원에 참여하는 모든 자들이 이 문제에 있어서 분명하지 않다. 그들은 감사하는 마음을 계발시키지 않는다. 그러나 구속의 주제는 천사들이 살펴 보기를 원하는 것이다. 그것은 끝없는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의 과학과 노래가 될 것이다. 그것은 신중하게 생각하고 지금 연구할 가치가 있지 않은가? 우리는 마음과 영혼과 음성을 다하여 “인생에게 행하신 기이한 일을 인하여” (시 107:8) 하나님을 찬양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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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의 회중에서 주님을 찬양하자. 옛날에 여호와의 말씀이 히브리 백성들에게 전달되었을 때 “모든 백성들아 아멘 할지어다” (시 106:48) 라는 명령이 주어졌다. 언약궤가 다윗의 도성으로 운반되고 기쁨과 승리의 찬송이 울려 퍼질 때 “모든 백성이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양하였더라” (대상 16:36). 이 열렬한 반응은 그들이 들은 말씀을 이해하고 하나님을 경배하는 데 참여했다는 증거였다.

우리의 종교적 의식에는 너무 많은 형식이 있다. 주님께서는 말씀을 전파하는 그분의 목사들이 그분의 성령으로 기운을 얻기 바라신다. 그러므로 듣는 백성들은 졸면서 냉담한 상태로 앉아 있거나 멍청하게 응시하면서 듣는 바 말씀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게 하여 불신자에게 주는 인상은 그리스도교에 호감을 줄 수 없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이처럼 둔하고 부주의한 자들이 세상의 사업에 종사할 때는 야망과 열성이 결핍되지 않는다. 그러나 영원한 의미를 가진 사물들은 그들을 크게 감동시키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자들을 통하여 전해지는 하나님의 음성은 즐거운 노래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거룩한 경고와 책망과 권면은 모두 유의하는 바 되지 않는다. 세상의 정신이 그들을 마비시켰다.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는 둔한 귀와 딱딱하고 무감각한 마음에 전해진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을 격려하고 지지하기 위하여, 또한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서 그들을 도와주기 위하여 크게 각성하고, 활동적인 교회들이 있어야 한다. 교회가 빛 가운데서 걸어가고 있는 곳에는 언제나 즐겁고 마음에서 우러나는 반응과 기쁨에 넘치는 찬양의 말이 있게 될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시 50:23) 라고 선언하신다. 모든 하늘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에 연합한다. 우리가 지금 천사들의 노래를 배워서 빛나는 그들의 대열에 속할 때 그 노래를 부를 수 있게 하자. 우리는 시편 기자처럼 말하도록 하자.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 (시 146:2). “하나님이여 민족들로 주를 찬송케 하시며 모든 민족으로 주를 찬송케 하소서” (시 67:3).

교회증언 5권 pp. 309-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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