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29-38 (266일)

그러나 교사들에게 부모의 일을 하도록 기대해서는 안 된다. 많은 부모들이 놀라울 정도로 의무를 등한히 해왔다. 엘리처럼, 그들은 적당한 제지를 하지 못한다. 그러고는 그들이 훈련받지 못한 자녀들을 대학에 보내어 그들이 가정에서 받았어야 할 훈련을 받게 한다. 교사들은 별로 알아 주지 못하는 일을 한다. 그들이 이 고집센 젊은이들을 바로잡는 데 성공할지라도 그들은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그 젊은이들이 악한 기질을 가진 자들과 사귀게되어 점점 더 악해지면 교사들이 비난을 받고 학교가 공격을 받는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그 비난은 바로 부모들에게 해당된다. 그들은 정신이 배울 수 있는 상태가 되어 있고 마음과 심령이 쉽게 감화를 받게되어 있을 때 자녀들을 다스리고 훈련시킬 수 있는 첫째이자 가장 유리한 기회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부모들이 나태했기 때문에 자녀들은 그들 자신의 뜻을 따르도록 허용되어 마침내 악한 행동에 굳어져 버렸다.

부모들은 세상에 대하여는 적게 연구하고 그리스도에 대하여는 더 많이 연구해야 한다. 그들은 세상의 습관과 유행을 본받기 위해서는 노력을 보다 더 적게 하고, 하나님의 형상을 본받아 그들의 자녀들의 마음과 품성을 형성시키는 데는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바쳐야 한다. 그런 다음에 그들은 순결한 도덕성과 고상한 목적으로 강하게 된 아들과 딸들을 보내어 유용하고 신뢰받는 위치를 감당할 수 있게 해줄 교육을 받게 할 수 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으로 지배를 받는 교사들은 그런 젊은이들을 더욱 전진시키고 향상시켜 그들이 세상에 축복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훈련시킬 수 있게 된다.

각 교사는 하나님과 연결을 이루어, 그에게 맡겨진 학생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말씀을 연구하고 그분의 율법을 순종하게 하는 영향을 발휘할 수 있다. 그는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여 영원한 사물을 명상하게 하고, 가장 탁월한 지성이 그 역량을 다 발휘하여 깨닫고자 할지라도 여전히 피안에 무한히 남아 있는 광대한 분야가 생각의 대상으로 또한 위대하고 고상한 주제로서 그들 앞에 펼쳐지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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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유용성을 가장 크게 해치고, 만일 극복하지 않으면 우리의 파멸을 입증해 줄 자존심과 성화되지 못한 자립심의 악은 이기심에서 나온다. “함께 의논하라” 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가 나에게 거듭거듭 되풀이해 온 기별이다. 한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침으로 사단은 일을 자기 자신에게 알맞게 지배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그는 두 사람의 마음을 그릇되게 이끎으로써 성공을 거둘 수 있다. 그러나 여러 사람이 함께 의논하면 더욱 안전함이 있다. 모든 계획은 더욱 철저하게 비판되고, 모든 전진의 움직임은 더욱 주의 깊이 검토되어야 한다. 그렇게 하면 혼란과 어려움과 실패를 초래할 조급하고 무분별한 움직임의 위험이 적어질 것이다. 연합에는 힘이 있고, 분열에는 허약과 실패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한 백성을 인도하고 계시며, 그들을 승천하도록 준비시키고 계신다. 이 사업에 한몫을 담당하고 있는 우리는 하나님의 파수꾼으로 서 있는가? 우리는 연합해서 일하고자 노력하고 있는가? 우리는 즐겨 모든 사람의 종이 되고자 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의 위대한 모본자를 따르고 있는가?

동료 일꾼들이여, 우리는 각각 인생의 들판에 씨를 뿌리고 있다. 씨가 어떠하면 수확도 그러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불신과 시기와 질투와 이기심 그리고 사상과 감정의 슬픔을 뿌린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의 슬픔을 거두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대하여 친절과 사랑과 부드러운 생각을 나타낸다면, 우리는 같은 것을 돌려받게 될 것이다.

가혹하고, 비판적이고, 교만하고,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무관심한 교사는 자기 자신에 대하여도 동일한 정신이 나타날 것을 기대해야 한다. 자기 자신의 위엄과 자존심을 보존하고자 하는 자는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이 법칙은 가장 둔감하고, 가장 어리고, 가장 실수가 많은 학생들을 다루는 데 엄격하게 준수되어야 한다. 외관상으로는 보잘것없는 이 젊은이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어떤 계획을 가지고 계시는지 아무도 알지 못한다. 그분께서는 지난날에, 더 이상 가망이 없어 보이거나 매력이 없는 사람들을 당신을 위해 큰일을 하도록 받아들이셨다. 마음에 역사하고 있는 그분의 영은 모든 기능을 일깨워서 활기찬 행동을 하게 했다. 주님께서는 이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돌에서, 폭풍과 열과 압박의 시험을 견딜 귀중한 재료를 보셨다. 하나님은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그분은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마음을 살피시고 올바르게 판단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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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언제나 그리스도인 신사로서 처신해야 한다. 그는 언제나 학생들의 친구요, 상담자의 위치에 서야 한다. 만일 우리의 모든 백성들 — 교사들과 목사들과 평신도 — 들이 그리스도인 예의의 정신을 계발한다면 그들은 사람들의 마음에 더욱 쉽게 접근하게 되고, 더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살펴보고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모든 교사가 자아를 잊어버리고, 학생들이 하나님의 소유이므로 그들의 마음과 품성에 미친 자신의 영향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들의 성공과 번영에 깊은 관심을 가질 때, 우리는 천사들이 머물기를 좋아하는 학교를 갖게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교사들의 사업을 만족하게 바라보고 당신의 은혜를 학생들의 마음에 보내 주실 것이다.

배틀크릭에 있는 우리의 대학은 주님의 가족에 속한 어린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장과 발전 계획에 따라 훈련을 받아야 할 장소이다. 그들은 그들의 창조주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는 것과 그리스도께서 그들이 따라야 할 모본이라는 사상으로 감명을 받아야 한다. 우리의 형제들은 그들의 마음이 너무 좁고 너무 낮은 범위에 머물도록 허용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획을 언제나 염두에 두지 않고, 그들의 눈을 세상의 모본에 고정시키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는 곳을 쳐다보고, 그대에게 맡겨진 학생들이 그 완전한 품성과 일치되도록 노력하라.

만일 그대가 인기와 인원의 증가를 얻기 위하여 표준을 낮추고, 이와 같은 증가를 기쁨의 원인으로 삼는다면 그대는 크게 눈멀어 있음을 보이게 된다. 만일 인원이 성공의 증거가 된다면 사단은 탁월함을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의 그의 추종자들이 절대 다수이기 때문이다. 대학의 번영의 증거가 되는 것은 그 곳에 보급되어 있는 도덕적 능력의 정도이다.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어야 할 것은 그들의 인원이 아니고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의 덕성과 지성과 경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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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의 감화가 없으면 교육은 진정한 유익이 없음이 판명되고, 배우는 자는 교만하고, 허영적이고, 완고해진다. 그러나 위대한 교사이신 그리스도의 고상하게 하고 세련되게 하는 영향 아래 받는 교육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도덕적 가치의 측면에서 사람을 향상시켜 줄 것이다. 그것은 그로 하여금 교만과 정욕을 제어하게 해주고, 모든 가능성과 모든 기회와 모든 특권을 위하여 하나님을 의지하게 해줌으로써 그분 앞에서 겸손하게 걸어가게 해줄 것이다.

나는 우리 대학의 일꾼들에게 말하는 바이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품성을 본받아야 한다. 위에서 온 지혜가 그대들의 모든 교훈에 파급되어 있게 하라. 도덕적 흑암과 타락의 세상에서, 그대들은 행동하게 하는 정신이 위에서 온 것이지 아래에서 온 것이 아님을 보게 해주라. 그대들이 스스로의 힘과 지혜를 전적으로 의지할 것 같으면 그대들의 최선의 활동도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하나님께 대한 사랑으로 고무되고 그분의 율법이 그대들의 기초가 된다면, 그대들의 사업은 오래 지속될 것이다. 짚과 나무와 풀이 타고 있는 동안, 그대들의 사업은 그 시험을 견딜 것이다. 그대들의 보호에 맡겨졌던 젊은이들을 그대들은 크고 흰 보좌의 주위에서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만일 그대들이 그대들의 무모한 태도를 허용하거나 제어되지 못한 기질이 패권을 쥐게 함으로 이 젊은이들에게 그들의 영원한 복리를 위한 감화를 주지 못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그날에 그대들의 사업의 엄숙한 결과를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알고 그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그 율법을 범함으로써 그들은 사단의 종이 된다. 한편으로 그들은 도덕적으로 탁월한 어떤 높이에까지라도 이를 수도 있고, 다른 한편으로 범죄와 타락의 어떤 깊이에까지라도 내려갈 수도 있다. 우리의 대학에 있는 일꾼들은, 달려 있는 상급의 가치 — 그들의 학생들의 영혼, 하나님의 인정, 영생, 구속받은 자들의 기쁨 — 에 상응하는 열성과 열심을 나타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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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교사들은, 그리스도의 동역자로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나누어 주는 그처럼 귀중한 기회를 가지고 마치 위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처럼 일을 해야 한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굳어 있지 않고, 그들의 사상과 의견은 나이 많은 사람들처럼 진부하지 않다. 그들은 그대들의 거룩한 행실과, 헌신과 그리스도와 같은 발걸음에 의하여 그리스도께 바쳐질 수 있다. 학문의 연구를 그들에게 덜 강요하고 신앙적 특권을 위한 시간을 그들에게 더욱 많이 주는 것이 훨씬 더 좋을 것이다. 여기에서 중대한 실수를 범해 왔다.

하나님이 대학을 존재하게 하신 목적이 잊혀진 바 되어 왔다. 복음사업에 부름받은 목사들은 세속적 요소를 대학에 연합시킬 만큼 위에서 온 지혜가 부족함을 너무도 두드러지게 나타냈다. 그들은 학생들에게 오락을 제공함으로써 하나님과 진리의 원수들과 연합했다. 이렇게 젊은이들을 그릇되게 인도함으로써 그들은 사단을 위한 일을 해왔다. 그들은 그 사업의 모든 결과와 함께 그 사업을 하나님의 심판정에서 다시 목격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길을 따르는 자들은 자신들이 믿을 수 없는 사람들임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악한 일을 저질러 놓은 다음에 그들은 그들의 잘못을 고백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일단 발휘한 영향을 쉽게 철회할 수 있을까? 맡은 일에 잘못을 범한 사람들에게 “잘하였다” 는 말을 할 수 있을까? 이 불성실한 사람들은 영원한 반석위에 건축하지 않았다. 그들의 기초는 무너지는 모래임이 판명될 것이다.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약 4:4).

우리의 영향이 얼마나 널리 미칠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 없이 하는 하나의 행동이 많은 영혼들을 파멸시킬 수도 있다. 우리 대학에 있는 모든 일꾼들의 행동은 젊은이들의 마음에 새겨져서 사람들에게 전달되어 그대로 재현된다. 교사의 지도 아래 있는 모든 젊은이들을 세상에 축복이 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그의 목적이 되어야 한다. 이 목적을 결코 잊어버려서는 안 된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일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면서도 때때로 사단의 편에 가서 그의 사업을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구주께서 이런 사람들을 보시고 착하고 충성된 종들이라고 선언하시겠는가? 그들은 파수꾼으로서 분명한 소리가 나도록 나팔을 불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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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사람은 심판 때에 선악간에 몸으로 행한 행동에 따라 받을 것이다. 우리 구주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막 14:38) 고 명령하신다.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극복하고, 우리가 원수들을 만날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그들을 쫓아 버리고, 우리가 책임을 맡을 때 그리스도의 힘으로 성실히 감당하면 우리는 귀중한 경험을 얻게 된다. 우리는 다른 방법으로는 배울 수 없는 것, 곧 우리의 구주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바로 그 때에 도와주시는 분이심을 배우게된다.

우리 대학에는 이루어져야 할 큰 사업, 모든 교사의 협력을 요구하는 사업이 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낙심케 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일이다. 그러나 거의 모든 사람은 사단이 형제들을 비난하는 자임을 잊어버린 것 같다. 그리하여 그들은 원수의 사업에서 그와 연합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이 다투고 있는 동안, 사단은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의 미숙한 발 앞에 그의 올무를 놓고 있다. 신앙적 경험을 가진 자들은 사단의 간계에서 젊은이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해야 한다. 그들은 자기들도 한때 죄의 쾌락에 매혹되었었던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도 매 시간 하나님의 자비와 오래 참으심이 필요한 처지이다. 우리가 미숙한 젊은이들의 잘못에 대하여 참지 못하는 것은 참으로 부당한 일이다. 하나님이 그들을 그처럼 오랫동안 참으신다면, 같은 죄인된 우리들이 감히 그들을 버리겠는가?

우리는 언제나 젊은이들을 그리스도의 피로 산 사람들로 쳐다보아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의 사랑과 우리의 인내와 우리의 동정을 요구한다.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를 원하면 우리는 우리의 관심과 애정을 우리 자신에게 제한시킬 수 없고, 우리의 시간과 우리의 주의를 일시적 사물에 기울일 수 없고, 우리 주변에 있는 자들의 영원한 이익을 잊어버릴 수 없다. 나는 오늘날 한 사람이 동료 인간들의 구원을 위하여 열렬하게 활동하고 있는 곳에 일백명의 젊은이들이 없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이기심의 결과임을 보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5:12) 는 것이 예수님의 명령이다. 그분의 극기를 바라보고, 그분께서 우리에게 어떠한 사랑을 주셨는지를 쳐다보라. 그리고 모본되시는 그분을 본받고자 노력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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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대학에서 교사로 일해 온 젊은 남녀들에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못하는 많은 것들이 존재해 왔다. 그대들은 너무도 자기 자신에게 몰두되고, 너무도 영성이 결핍되었기 때문에 젊은이들을 거룩함과 하늘로 인도할 수 없었다. 그대들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위한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완고함에 있어서 더욱 확고해진 상태로 집으로 돌아갔다. 예수님의 정신이 없이 걸어감으로, 그대들은 불신과 경박함과 몰인정에 빠져 왔다는 점에서 그런 것들을 장려해 온 것이다. 이런 길의 결과, 곧 구원받을 수 있었던 영혼들이 잃어버린 바 된 것을 그대는 깨닫지 못한다.

많은 사람들은 _____ 형제에 대하여 강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그를 불친절하고 거칠고 가혹하다고 비난한다. 그러나 그를 정죄하고자 하는 바로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도 죄가 적은 것이 아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요 8:7). _____ 형제가 반드시 현명하게 행동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어디에서 그가 최선의 길을 따르지 않았는지 깨우쳐 주기란 어려웠다. 그는 당연히 그렇게 했어야 하지만 즐겨 권면을 받아들이지 않고, 그의 교훈의 방법과 학생들을 취급하는 자신의 태도를 고치고자 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결점 때문에 그를 정죄하려는 자들 또한 정당하게 정죄당할 수 있었다. 모든 사람은 독특한 품성의 결점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은 그가 형제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약점이 없지만 그 또한 하나님의 눈에는 그보다 훨씬 큰 결점을 가지고 있을 수도 있다.

피차간의 이같은 냉혹한 비판은 완전히 사단적인 짓이다. 나는 _____ 형제가 한 선한 일은 존경받을 만한 것임을 보았다. 그를 부드럽게 대하도록 하라. 그는 세 사람이 감당해야 할 일을 해냈다. 그의 결점을 그처럼 열심히 찾아내고 있는 자들은 그와 비교해서 그들이 한 일을 하나하나 열거해 보라. 다른 사람들이 휴식과 쾌락을 찾고 있는 동안 그는 수고를 했다. 그는 지쳐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와 같은 여분의 짐들 중 얼마를 그에게서 잠깐 동안 내려 놓기를 원하신다. 그에게는 시간과 주의를 할애해야 할 것이 너무 많기 때문에 그는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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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 형제는 자신의 투쟁적 정신이 격발되도록 허용함으로 자기 정당화로 이끌려서는 안 된다. 그는 불만의 기회를 제공해 왔다. 주님께서는 증언을 통하여 이것을 그에게 제시하셨다.

학생들이 결점을 찾는 일을 북돋우어 주어서는 안 된다. 이처럼 불평하는 정신은 권유될 때 증가할 것이다. 그리하여 학생들은 그들의 취향에 맞지 않는 교사들을 비평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하게 되고, 불만과 투쟁의 정신은 신속히 증가될 것이다. 이런 정신은 언짢게 취급되어 마침내 사라지게 해야 한다. 이 악이 교정될 것인가? 교사들은 패권을 쥐고자 하는 욕망을 버릴 것인가? 그들은 겸손하게, 사랑으로, 조화를 이루어 활동할 것인가? 이것들은 시간이 알려 줄 것이다.

3 장 — 부모로서의 훈련

나는 이 시대를 위한 엄숙한 기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부모들 중 매우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지 못하고 있음을 보았다. 그들은 자녀들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을 제지하고자 한 누군가에 대하여 화를 내었다. 그들은 산 믿음으로 날마다 자녀들을 주님의 제단에 붙들어매지 않았다. 이 젊은이들 중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성일에 자신들의 쾌락을 추구함으로써 넷째 계명을 범하도록 허용되어 왔다. 그들은 안식일에 그들 자신의 오락을 찾아서 거리를 돌아다니면서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많은 젊은이들이 원하는 곳으로 가고 마음대로 할지라도 그들의 부모들은, 그들이 불쾌하게 여길까 두려워서 엘리가 그랬던 것처럼 그들을 통솔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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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젊은이들은 마침내 안식일에 대한 존중심을 모두 잃어버리고 종교적 집회나 거룩하고 영원한 사물에 대한 취미를 갖지 않게 된다. 부모들이 부드럽게 그들을 책망하면 그들은 교인들 중 어떤 사람들의 결점을 열거함으로써 자기 자신들을 방어한다. 이런 종류의 어떤 것이 처음으로 접근할 때 침묵시켜 버리는 대신에 부모들은 자녀들이 생각하는 바와 똑같이 생각하고, 만일 이런저런 사람들이 완전하다면 그들의 자녀들 역시 옳다고 여긴다. 그러나 이렇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가 그들에게 변명의 구실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 그리스도는 유일한 참 모본이시다. 많은 사람들의 잘못이 그들에게 있는 한 가지의 잘못을 변명해 주는 구실이 되거나 그들의 범죄를 조금도 경감시켜 주지 못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완전하고, 고상하고, 숭고한 하나의 표준을 그들에게 주셨다. 다른 사람들이 취하는 행동에 상관없이 그들은 이 표준에 도달해야 한다. 그러나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에 대한 맹목적 사랑 때문에 이성 (理性) 과 판단력을 잃어버리는 것 같다. 그러므로 방종되고, 이기적이고, 잘못 지도된 이 젊은이들을 통하여 사단은 오히려 부모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효과적으로 활동한다. 나는 회의적이요, 불순종한 고대 이스라엘에게 임한 하나님의 진노를 주목하게 되었다. 자녀들을 교훈할 그들의 의무가 그들에게 분명히 지시되었다. 그것은 이 시대의 믿는 부모들에게도 동일한 구속력을 가지고 있다. “내 백성이여, 내 교훈을 들으며 내 입의 말에 귀를 기울일지어다 내가 입을 열고 비유를 베풀어서 옛 비밀한 말을 발표하리니 이는 우리가 들은 바요 아는 바요 우리 열조가 우리에게 전한 바라 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시 78:1-4).

자녀들은 부모들이 그들의 교훈과 훈육과 모본을 통하여 만드는 그대로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하여 자녀들을 훈련시키는 데 있어서의 부모의 성실성은 압도적으로 중요하다. 자녀들은 일찍부터 신앙적 의무의 신성함을 배워야 한다. 이것은 그들의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의무는 다른 어떤 의무보다 먼저 이행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것은 원칙에서부터 가르치고 강조해야 한다. “여호와께서 증거를 야곱에게 세우시며 법도를 이스라엘에게 정하시고 우리 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후대 곧 후생 자손에게 이를 알게 하고 그들은 일어나 그 자손에게 일러서 저희로 그 소망을 하나님께 두며 하나님의 행사를 잊지 아니하고 오직 그 계명을 지켜서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시 7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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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서 부모에게 주어진 큰 책임을 보게 된다. 훈련되지 못한 의지와 제어받지 못한 정욕을 간직한 채 장성한 남녀로 자라도록 허용되는 자녀들은 대개 훗날의 생애에서 하나님이 정죄하시는 길을 따르게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경박한 오락과 신앙 없는 친구들을 찾고자 열망한다. 그들은 신앙적 의무를 등한히 하고 육신적 마음의 경향에 빠지도록 허용되어 왔으며, 그 결과 사단이 정신과 원칙을 지배하게 된다. _____ 에서는 부모들이 사단에게 그렇게 활동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를 주었다. 그 곳에서 하나님을 배반하게 된 대부분의 경우는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양심적이요, 신앙적인 생애를 하도록 훈련시키는 일을 등한히 한 결과에서 초래되었다. 이런 자녀들의 상태는 통탄할 지경이다.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한다. 그러나 그들의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이 되는 법, 곧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를 회고하고, 어떻게 그분을 찬양하고, 그들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생애를 본받을 것인지 가르쳐 주는 책임을 이행하지 않았다.

이런 자녀들이 학교에 들어가서 다른 학생들과 사귀게 될 때, 그리스도인이 되려고 진정으로 노력하고 있는 자들은 많은 빛을 받은 자들 앞에서 그들의 믿음을 실천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들은 유별나게 보이기를 부끄럽게 여기고 성향을 부인하기를 부끄러워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들의 갑주가 가장 필요한 바로 그 때, 흑암의 세력이 이 불신의 친구들을 통하여 그들을 그리스도에게서 떠나가게 하고자 활동하고 있을 때, 그 갑주를 던져 버린다. 그들은 신앙적 원칙의 방어와 도움 없이 위험이 가득한 길에 들어간다. 그들이 그들의 신앙을 교실과 운동장과 그들의 모든 교제에 지니고 다니기 어렵거나 불쾌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단의 창에 대하여 그들의 영혼을 무방비상태로 버려 둔다. 이 젊은이들의 보호자들은 어디에 있는가? 누가 한손으로는 하나님의 보좌를 굳게 붙들고 다른 한 손으로는 이 젊은이들을 안아서 그리스도에게로 이끌어 가고 있는가? 이 젊은이들이 신앙의 힘을 이해할 필요가 있는 곳, 튼튼한 손으로 그들을 굳게 붙들어 줄 필요가 있는 곳은 바로 이 곳이다.

교회증언 5권 pp. 2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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