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259-268 (289일)

세상의 구주께서는 부한 자와 가난한 자, 배운 자와 배우지 못한 자들이 종사할 수 있는 가장 유익한 사업을 제시하셨다. 모든 사람은 그들 스스로를 위하여 하늘에 둔 바 다함이 없는 보물을 안전하게 쌓아 둘 수 있다. 이것은 그들의 능력을 올바른 편에 투자하는 것이다. 그것은 그들의 달란트를 환전자들에게 맡기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주님께 크게 은혜를 입은 부자 농부의 경우를 들어 그분의 교훈을 설명하셨다. 주님께서는 그의 토지를 축복하셔서 많은 수확을 얻게 하심으로 그의 힘으로, 그처럼 크게 축복을 받지 못한 다른 사람들에게 너그러움을 나타내게 하셨다. 그러나 그의 토지가 기대 이상으로 너무도 풍성한 수확을 가져온 것을 발견하자 그는 궁핍한 중에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어떻게 구제할 것인지 계획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안전하게 간직하는 방법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하늘의 선물이 그의 곳간으로 굴러 들어오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관대한 시여자에게 감사하는 말로 심령을 토로하지도 않고, 이 큰 축복이 부가적인 책임을 지워 주었다는 사실을 생각하지도 않았다. 순수한 그의 본성 그대로의 이기심으로 그는 자문한다.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그 자신의 탐욕적인 마음과 의논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진정한 기쁨의 수단과 영혼의 향상은 활동과 자제와 거룩한 목적에 있다. 그러나 이 사람이 하나님께서 그에게 주신 풍성한 선물을 놓고 제안한 것은 영혼을 타락하게 하는 것이었다. 그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눅 12: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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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련한 부자는 세상의 보화를 크게 소유하였지만 진정한 재물에는 가난했다. 오늘날 너무도 많은 사람들이 유사한 이유로 정죄를 받고 있다. 구원의 물줄기는 하나님의 보좌에서 우리에게로 쏟아진다. 물질적인 축복이 주어지지만, 그것들이 인류를 복되게 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이용되지는 않는다. 주님은 우리의 은혜로운 시혜자 (施惠者) 시다. 그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빛과 불멸을 드러내셨다. 분명히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의 모든 축복은 오게 된다. 아, 모든 혀가 크신 시여자를 시인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모든 음성이 분명하고 즐거운 노래로, 예수님을 통하여 미래의 생애, 불멸의 생애가 우리에게 열려져 있고, 모든 사람에게 이 큰 은혜를 받아들이도록 초청이 주어져 있다는 기쁜 소식을 선포하도록 하라. 하늘의 모든 보화는 우리의 손이 미칠 수 있는 곳에 있으며, 우리의 요구를 기다리고 있다. 이 가련한 부자가 영원한 부, 불멸의 생명의 무한한 선물,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에서 돌아서서 멸할 수밖에 없는 지상의 보화로 만족했다는 이유로 어리석은 자라고 불리워졌다고 해서 우리가 놀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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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법으로 또 어떤 사람들은 저런 방법으로 시험하신다. 그분은 어떤 사람에게는 당신의 풍성한 선물을 주심으로써, 또 다른 사람들에게는 당신의 은총을 주시지 않고 간직하고 계심으로 그들을 시험하신다. 그분은 부자들이 시여자이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제 몸처럼 사랑하는지 보시고자 그들을 시험하신다. 사람이 이 선물들을 올바르게 사용할 때 하나님께서는 기뻐하시고, 그에게 더 큰 책임들을 맡기실 수 있다. 주님께서는 이생과 영원, 땅과 하늘에 대한 사람의 비교 평가를 보여 주신다. “재물이 늘어도 거기 치심치 말지어다” (시 62:10). 다른 사람들의 유익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용될 때 그것들은 가치가 있다. 그러나 어떤 지상의 보화도 그대들의 기업이나 그대들의 신이나 그대들의 구주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의 형제들이여, 세상은 그대들이 일시적인 사물에 관하여 적게 이야기하고 영원한 세계의 실존에 관하여 더 많이 이야기하지 않는 한, 그대들의 신앙이 진지하다고 결코 믿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는 오신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사건이 가까웠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시된 목적에 그들의 믿음을 고착시킬 수 없다. 어떤 사람들은 돈을 벌기 위한 정열에 완전히 몰두되어 버렸기 때문에 세상의 재물이 하늘의 보화를 가리워 버렸다. 세속적인 것은 홍수처럼 밀려 온 반면에, 영원한 사물들은 별반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서 마음에서 사라져 버렸다. 내가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가 하는 것이 가장 큰 질문이다. 사람들은 이득에 대한 온갖 희망에는 민감하다. 그들은 수천 가지의 계획과 고안들을 시도하는데, 그 중에는 발명과 특허권들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귀중한 금속들을 얻고자 땅을 파고, 어떤 사람들은 은행 주식에 관여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토지를 경작한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은 돈을 버는, 이 하나의 목적을 염두에 두고 있다. 그들은 재물을 좇는 일에 정신을 빼앗기고 미치기까지 되었다. 그러나 그들은 불멸의 유업을 확보하는 것의 이익을 깨닫고자 하지는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계셨을 때, 그분은 상상력이 세속적 이득에 대한 희망으로 열광하게 된 어떤 사람들과 접촉하셨다. 그들은 결코 휴식하고 있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엇인가를 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엄청난 기대는 실망을 가져다 줄 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마음의 욕망을 아셨는데, 그것은 각 시대에 동일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분은 그들의 주의를 오직 영원한 부로 향하도록 이끄셨다. 그분은 말씀하셨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마 13:44). 그분은 사람들에게 모든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측량할 수 없는 보화에 관하여 말씀하신다. 그분은 이 보화를 찾는 일에 있어서 그들의 마음을 지도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길은 분명히 드러나 있다. 그분을 따르는 가장 가난한 사람도 세상에서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가장 부요한 사람보다 더 부해 질 수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들의 행복을 나누어 줌으로써 더욱 더 부해 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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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마 6:19, 20). 이렇게 하는 자들은 손실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 쌓아 둔 보물은 안전하다. 그것은 우리의 계정에 넣어져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고 말씀하셨다. 사람들은 지상에서 씨를 뿌리지만 영원을 통하여 거두게 된다.

그리스도의 목사들이 어디로 가든지 제시해야 할 것은 이 영원한 보화이다. 그들은 백성들이 구원에 대하여 지혜롭게 되도록 권유해야 한다. 그들은 이른바 세상을 사랑하는 기회주의적인 신자들이 그들의 행동에 영향을 주고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이 개인들이나 교회들이 하나님의 사업에 있어서 좁은 계획들과 제한된 노력을 통하여 돈을 저축하는 방법을 고안하도록 도와주는 것이 그들의 사명은 아니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들은 사람들에게, 이기심 없이 일을 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부해지는 길을 가르쳐야 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영원한 사물을 올바르게 평가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첫째로 삼도록 가르쳐야 한다.

이 두 지역에는 갈렙과 같은 사람들이 필요하다. 이 합회들에는 어린아이들이 아니고, 분별력 있게 움직이고 책임을 질 수 있고, 그들의 음성이 반대와 의심과 비평을 나타내는 불성실한 자들의 음성보다 더 크게 들리게 하는 장부들이 있어야 한다. 큰 사업들은 어린이들에 의하여 관리되어서는 안 된다. 신앙적 성장에 있어서 난장이가 되어 있고, 하늘에서 온 지혜가 부족한 성숙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은 교회가 때때로 통과하도록 부름을 받은 치열한 투쟁에 대처할 준비가 갖추어져 있지 않다. “예루살렘이여 내가 너의 성벽 위에 파수꾼을 세우고 그들로 종일 종야에 잠잠치 않게 하였느니라” (사 62:6). 목사가 두려움 없이 진리 전체를 선포하지 않으면, 그가 하나님의 영광만을 바라보고 그의 위대한 구원의 대장의 지시 아래 일하지 않으면, 그가 비난을 개의치 않고 또한 칭찬으로 더럽혀 지지 않고 최전선에 나가지 않으면, 그는 불성실한 파수꾼으로 인정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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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____에는 소년들이 되는 대신에 대장부가 되고 세속적이요 정욕적인 마음 대신에 하늘의 마음을 가져야 할 사람들이 더러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시야는 흐려졌고, 구주의 큰 사랑이 그들의 심령을 빼앗지 못했다. 그분께서는 그대들에게 말씀하실 것이 많이 있다. 그러나 그대들은 지금 그것들을 감당할 수 없다. 그대들은 성장하는 중에 있는 어린 아이들이므로 하나님의 비밀을 깨달을 수 없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사업을 하도록 사람들을 일으키실 때, 그들의 증거가 헌신하지 못한 자들의 마음을 즐겁게 하도록 꼴 지워지게 한다면 그들은 맡은 일에 진실하지 못하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그 시대를 위하여 준비하실 것이다. 그들은 겸손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하고 보수적이요 정략적인 사람들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며, 도덕적 자립심을 가지고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가운데 앞으로 전진할 사람들이다. 그들은 친절하고 고상하고 예의 바를 것이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바른길에서 흔들리지 않고, 사람들이 듣든지 듣지 않든지 간에 의의 진리를 선포할 것이다.

27 장 — 그리스도인의 성장

나는 진리의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들의 모든 힘을 세속적인 사업에 바치고 있는 자들은 불성실하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그들의 착한 행실로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의 빛을 비추고 있지 않다. 그들의 거의 모든 힘은 세상의 영리하고 재간 있는 사람들이 되기 위하여 바쳐진다. 그들은 그들의 재간이 하나님의 사업을 발전시키는 데 사용되도록 하나님께서 주신 것임을 잊어버렸다. 만일 그들이 의무에 성실했을 것 같으면, 그 결과로 많은 영혼들이 주님께로 인도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태만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잃어버린 바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뜻을 아는 자들이 그분의 말씀을 행하는 자들이 되기를 요구하신다. 연약함과 반신 반의와 우유 부단은 사단의 공격을 야기시킨다. 그러므로 이와 같은 특성들이 자라나도록 허용하는 자들은 유혹의 물결에 속절없이 넘어지고 말 것이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인의 산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도록 요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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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모두, 마치 항해자가 모래톱이나 바위 투성이의 강을 지나갈 때 안내자가 필요한 것처럼 생애에 있어서도 많은 좁은 길로 통과할 때 안내자가 필요하다. 그러면 이 안내자를 어디에서 발견해야 할 것인가? 사랑하는 형제들이여, 우리는 그대들에게 성경을 가리키는 바이다. 하나님의 영감받은 말씀, 거룩한 사람들이 기록한 말씀, 그것은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노소 모두에게 의무를 지적해 준다. 그것은 정신을 고상하게 하며,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심령에 즐거움과 거룩한 기쁨을 준다. 성경은 완전한 품성의 표준을 제시한다. 그것은 모든 환경에서, 심지어 생의 여행의 마지막에 이르기까지 분명한 안내자가 된다. 그것을 그대의 고문으로, 매일의 생애의 지침으로 삼으라.

모든 은혜의 수단을 부지런히 계발시켜,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 속에 점점 더 풍성해지고,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빌 1:10, 11) 지게 하라. 그대의 그리스도인 생애는 활기차고 튼튼한 형태를 취해야 한다. 그대는 성경을 통하여 그대 앞에 제시된 높은 표준에 도달할 수 있다. 그대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자 하면 그렇게 해야 한다. 그대는 가만히 서 있을 수 없다. 그대는 전진하든지 뒤로 물러가든지 둘 중 하나를 해야 한다. 그대는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엡 3:18, 19) 채워지기 위하여 영적 지식을 소유해야 한다.

진리에 대하여 지적인 지식을 가지고 논증으로 그것을 옹호할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나라를 세우는 데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때때로 만난다. 그러나 그들은 그리스도인 생애에 있어서 개인적인 체험에 속한 산 간증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거룩한 싸움에서 얻은 새로운 승리를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는 대신에 그대는 똑같이 판에 박힌 낡은 일, 기도와 권면에 있어서의 동일한 표현을 보게 된다. 그들의 기도에는 새로운 특색이 없다. 그들은 하나님께 속한 일에 있어서 더 큰 지성을 나타내지 않고, 더 열렬하고, 산 신앙을 표현하지 않는다. 그런 사람들은 주님의 동산에서 산 식물이 되어 새로운 어린 가지들과 새 잎을 내거나 거룩한 생애의 향기를 발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성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아니다. 그들은 견해와 계획들이 제한되어 있고, 마음의 확장이 없고, 그리스도인 지식의 보화에 가치 있는 것들이 증가되지 않았다. 그들의 능력은 이런 방면으로 쓰여지지 않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보시는 것처럼 사람들과 사물들을 보는 법을 배우지 못했으며, 또 많은 경우에 있어서 거룩하지 못한 동정이 영혼들을 손상시키고 하나님의 사업을 크게 망쳐 버렸다. 편만해 있는 영적 침체는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이 죄인처럼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지식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형식적 그리스도인 생애를 하고 그들의 죄가 용서되었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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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여, 그대들은 제한된 그리스도인 성장을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거룩한 생애에 있어서 건전한 발전을 할 것인가? 영적 건강이 있는 곳에는 성장이 있다. 하나님의 자녀는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남녀의 충만한 분량까지 자라게 된다. 그런 사람의 성장에는 제한이 없다. 하나님의 사랑이 심령 속에서 산 원칙이 될 때, 좁고 편협한 견해는 없어진다. 경고와 책망에는 사랑과 성실이 있고, 무거운 짐을 지고 책임을 감당하려는 열렬한 활동과 경향이 있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즐겨 자아를 부인하는 일을 하지 않는다. 그들은 어떤 책임을 지도록 권유받을 때 진정으로 인내심이 없음을 보여 준다. 그들은 “지식과 경험의 증가가 무엇 때문에 필요한가” 라고 말한다. 이런 사실이 그것을 모두 설명한다. 하늘이 그들을 가련하고, 곤고하고, 눈멀고, 벌거벗었다고 선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고 생각한다. 이런 사람들에게 참된 증인은 말한다.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바로 그대들의 자아 만족은 모든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대들에게 보여 준다. 그대들은 영적으로 병들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그대들의 의사로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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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는 피상적인 탐구자에게서 숨겨져 있는 수많은 진리의 보석들이 있다. 진리의 광맥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그대들이 겸손한 마음으로 성경을 연구하면 할수록 그대들의 유익은 더욱 커질 것이며, 그대들은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라고 바울처럼 부르짖고 싶어질 것이다. 매일 그대들은 성경에서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배워야 한다. 감추인 보화를 찾듯이 성경을 탐구하라. 성경에는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글을 깨닫기 위한 지혜와 명철을 구하라. 만일 그대들이 이렇게 할 것 같으면 그대들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새로운 일들을 발견할 것이다. 그대들은 진리와 관련된 주제에 관하여 새롭고 귀중한 빛을 받은 것을 느끼게 될 것이며, 성경은 그대들의 평가에 있어서 새로운 가치를 끊임없이 얻게 될 것이다.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도다” (습 1:14). 예수님은 “보라 내가 속히 오리라” 고 말씀하신다 (계 22:7, 12). 우리는 이런 말씀을 언제나 마음에 새기고 주님의 오심이 가까웠다는 것과 세상에서는 우리가 순례자요 나그네임을 진정으로 믿는 것처럼 행동해야 한다. 하나님의 교회의 활력 있는 능력은 위대한 자아 개혁의 목적을 위한 적극적인 운동에 바쳐지고 모든 교인들은 하나님을 위한 적극적인 대리자가 되어야 한다.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가고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엡 2:18-22). 이것은 독특한 사업인데 모두가 조화를 이루고, 성령으로 연합하고 또한 평안의 줄로 매어져 추진해야 할 사업이다. 비평과 의심과 불신이 허용되어서는 안 된다.

아파 콜롬비아 합회와 노스 패시픽 합회는 여러 해 뒤떨어져 있다. 마땅히 강해야 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굳게 세워져야 할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대한 이해와 체험적 지식에 있어서 어린 아이와 같다. 여러 해의 경험이 있은 후에 그들은 다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이루고 있는 믿음과 교리의 큰 체계에 대한 첫째 원칙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들은 “잘 하였다” 는 칭찬을 받을 수 있는 품성의 완성을 깨닫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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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여, 그대들의 의무와 행복과 장래의 유용성과 최후의 구원은 그대들의 애정의 덩굴손을 세속적인 것과 부패한 모든 것에서 떼어 버리기를 요구한다. 사랑에 병든 감상주의의 성질이 있는 세속적이요 정욕적인 거룩하지 못한 동정이 있다. 그대들 중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것을 극복하고 그대들의 생애의 길을 바꾸는 데 있어서 연약한 노력을 가지고서는 안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대들은 이스라엘의 능력과 그대들 자신과는 연결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그대들의 모든 기능들이 연약해져 버렸기 때문이다. 이제 그대들은 품성이 변화되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남녀들이 되기 위하여 모든 은혜의 수단들을 이용하는 일에 부지런해지라는 요구를 크게 받고 있다.

우리에게는 얻어야 할 큰 승리가 있다. 그것을 얻지 못할 때는 하늘을 잃어버릴 것이다. 육신의 마음은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그 경향은 도덕적 부패로 기울어지는 것이고, 그 종국은 죽음이기 때문이다. 생명을 주는 복음의 감화 외에는 아무것도 영혼을 도울 수 없다. 성령의 강력한 능력이 소생시키고, 회복시키고, 변화시키는 능력을 모두 가지고서 전기의 충격처럼 마비된 심령에 임하여 모든 신경을 새 생명으로 전율케하고 세속적이요, 죽은 정욕적 상태에서 영적 완전으로 전인적 (全人的) 회복을 이루어 주시도록 기도하라. 그렇게 함으로써 그대들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 정욕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대들의 심령에는 그대들을 고치기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 분의 형상이 반영될 것이다.

십일조와 헌금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빌려 주신 재산 중 특정 부분을 십일조와 헌금으로 그분께 돌려주도록 우리에게 요구하신다. 그분께서는 이 헌금들을, 우리측에서의 겸손한 순종과 우리가 누리는 모든 축복에 대하여 그분께 빚지고 있는 사실을 감사한 마음으로 인정하는 하나의 행위로서 받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즐거운 마음으로 바치고, 다윗처럼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대상 29:14) 라고 말하도록 하자. 적당한 것 이상으로 움켜쥐고 있으면 가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에 대하여 오래 참으시고, 모든 사람을 시험하시고 심사하실 것이나, 그러나 그분의 저주는 이기적이요 세속적인 진리의 공언자에게 반드시 따를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을 아시며, 모든 사상과 모든 목적이 그분의 눈에 펼쳐진다. 그분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삼상 2:30) 고 말씀하신다. 그분은 누가 축복받을 자이며 누가 저주를 받기에 합당한 자인지 아신다. 천사들이 우리의 모든 행위와 말에 대한 기록을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그분은 실수가 전혀 없으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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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백성들이 광야에서 성소를 짓고자 했을 때, 여러 방면에 걸친 준비가 필요했다. 비싼 재료들이 수집되었는데, 그 중에는 많은 금과 은이 있었다. 주님께서는 백성들의 모든 재산의 정당한 소유주로서 이들에게서 이런 헌물들을 요구하셨다. 그러나 그분은 자원해서 바치는 것들만을 받으셨다.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라는 말이 마침내 모세에게 전달될 때까지 그들은 즐겨 바쳤다. 그리하여 모든 회중에게 이렇게 공포하게 되었다.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출 36:5-7).

좁은 견해를 가진 어떤 사람들이 현장에 있었다면 그들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을 것이다. 그들은 유다처럼, “무엇 때문에 이렇게 낭비를 하는가, 왜 가장 값싼 방법으로 모든 것을 만들지 않는가” 라고 질문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소는 사람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하여 의도되었다. 그분은 어떻게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할 것인지에 대하여 특별한 지시를 하셨다. 백성들은 그분이 위대하고 위엄 있는 분이시므로 존경과 경외심으로 경배를 받으셔야 한다는 것을 배워야 했다.

하나님을 경배하는 집은 그분의 품성과 위엄에 걸맞는 것이어야 한다. 교인들이 하나님의 사업보다 그들 자신의 관심사를 더 중요시하기 때문에 언제나 작은 규모로 머물러 있게 될 작은 교회들이 있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서는 크고 안락한 집들을 소유하여 그것들을 끊임없이 개량해 가면서도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가 거하시는 하나님의 예배를 위해서는 가장 적합하지 않는 장소를 소유하는 데 만족한다. 그들은 요셉과 마리아가 마구간에서 피신처를 찾을 수밖에 없었고 거기서 구주가 탄생하게 된 것을 의아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예배하는 집이 수치스럽게도 등한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 자신을 위하여 재산의 큰 부분을 즐겨 사용하고자 한다. 그들은 자주 “여호와의 전을 건축할 시기가 이르지 아니하였다” 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에게 주어진 여호와의 말씀은 “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학 1:2, 4) 는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259-2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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