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229-238 (286일)

나는 우리 백성들이 그들에게 주어진 산 증언을 간직하고 교회가 불신의 요소들로부터 순결하게 보존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우리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요 15:4) 라고 한 말씀에서 밝혀진 것보다 그리스도에 대한 더 밀접하고 더 친밀한 관계를 생각해 볼 수 있는가? 가지의 섬유질은 포도나무의 섬유질과 거의 동일하다. 줄기에서 가지로 전달되는 생명의 교류와 힘과 결실은 방해받지 않고 계속적이다. 뿌리는 가지를 통하여 그 영양분을 보낸다. 그와 같은 것이 그리스도에 대한 참 신자의 관계이다. 그는 그리스도 안에 거하면서 그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

이 영적 관계는 개인적 믿음을 활용함으로써만 이루어질 수 있다. 이 믿음은 우리 편에서 최고의 우선권, 완전한 의존, 완전한 헌신을 나타내어야 한다. 우리의 의지는 완전히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되고, 우리의 감정과 욕망과 흥미와 명예는 그리스도의 왕국의 번영과 그분의 사업의 영광과 동일시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끊임없이 은혜를 받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서 감사를 받으셔야 한다.

이와 같은 연결과 교통의 친밀함이 이루어질 때, 우리의 죄는 그리스도께 놓여지고, 그분의 의는 우리에게 입혀지게 된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위하여 죄로 삼으신 바 되셨다. 우리는 그분을 통하여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들 안에서 영접을 받는다. 누구든지 말이나 행동으로 믿는 자를 해치는 자는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님을 해하게 된다.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한 사람의 제자에게 냉수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리스도께 드린 것으로 인정을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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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께서 신자들에 대한 당신의 관계를 나타내는 아름다운 상징을 주신 것은 그분께서 바야흐로 제자들을 떠나가고자 하신 때였다. 그분은 볼 수 있는 당신의 임재가 없어진 후에 그들이 영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그분 자신과의 밀접한 연합을 그들 앞에 제시하고 계셨다. 그것을 그들의 마음에 새겨 주기 위하여 그분께서는 그 가장 두드러지고 적합한 상징으로서 포도나무를 그들에게 제시하셨다.

유대인들은 언제나 포도나무를 식물들 중 가장 고상한 것으로, 또한 강하고, 탁월하고, 결실이 풍부한 모든 것의 한 상징으로 간주했다. 우리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그대들이 그처럼 높이 평가하는 포도나무는 하나의 상징이다. 나는 실체이다. 나는 참 포도나무이다. 한 민족으로서 그대들은 포도나무를 높이 평가한다. 그대들은 죄인들로서 나를 세상의 모든 것보다 높이 평가해야 한다. 가지가 포도나무에서 분리되면 살 수 없다. 그대들도 내 안에 거하지 않으면 더 이상 살 수 없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모든 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처럼 이 교훈에 깊은 흥미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반역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분리시켰다. 그 분리는 넓고 무섭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다시 그분 자신과 연결시켜 주기 위하여 대비책을 마련하셨다. 악의 세력은 인간의 본성과 너무도 동질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으면 아무도 승리할 수 없다. 이 연합을 통하여 우리는 도덕적 영적 힘을 얻는다. 우리가 만일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게 되면 의의 열매, 사람들에게 영광과 축복이 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아버지는 포도를 손질하는 분이시다. 그분은 능숙하게 자비롭게 열매맺는 모든 가지를 전정하신다. 오늘날 그리스도의 고난과 비난에 동참하는 자들이 이후에는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분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 (히 2:11) 신다. 그분의 천사들이 그들을 섬긴다. 그분의 두번째 나타나심도 인자로서 나타나실 것이다. 그리하여 그분의 영광 중에서까지도 그분은 당신 자신을 인간과 동일시하실 것이다. 그분과 연합한 자들에게 그분께서는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너의 성벽이 항상 내 앞에 있나니” (사 49:15, 16) 라고 언명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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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얼마나 놀라운 특권이 우리 앞에 제시되어 있는가!

우리는 이런 축복을 얻는 유일한 통로가 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루기 위하여 가장 열렬한 노력을 할 것인가? 우리는 의에 의하여 우리의 죄를, 주님께로 돌아옴으로 우리의 범죄를 깨뜨려 버릴 것인가? 회의론과 불신이 널리 보급되어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눅 18:8) 라고 질문하셨다. 우리는 적극적인 산 믿음을 가져야 한다. 우리의 믿음의 항구성 (恒久性) 은 우리의 연합의 조건이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이룬 연합은 지속적이다. 모든 다른 연합은 파멸되고야 말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먼저 우리를 택하시고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무한한 값을 지불하셨다. 그러므로 참된 신자는 그리스도를 모든 것 가운데 첫째요 마지막이요 최선의 것으로 택한다. 그러나 이 연합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치르게 한다. 그것은 교만한 자에 의하여 이루어져야 할 철저한 의존의 연합이다. 이 연합을 이루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속죄의 피의 필요를 느껴야 한다. 그들은 마음의 변화를 이루어야 한다. 그들은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굴복시켜야 한다. 외적 장애와 내적 장애로 더불어 싸우는 투쟁이 있을 것이다. 애착의 과업은 물론이요 괴로운 분리의 과업도 있어야 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을 이루려면 교만, 이기심, 허영, 세속적인 것 — 모든 형태의 죄 — 을 이겨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생애는 그처럼 통탄스럽게도 어렵다고 생각하고, 그들이 그처럼 변덕스럽고, 그처럼 가변적인 이유는 이 간직된 우상들로부터 먼저 그들 자신을 분리시키지 않고 그들 스스로를 그리스도께 결합시키고자 노력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이루어진 후에는 오직 열렬한 기도와 불굴의 노력을 통해서만 그것이 유지될 수 있다. 우리는 자아를 저항하고, 자아를 부인하고, 자아를 정복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용기와 믿음과 경계로써 우리는 승리를 얻을 수 있다.

신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된다. 그러나 하나의 가지는 다른 가지에 의하여 지탱될 수 없다. 포도나무와의 산 연결을 통하여 영양분이 섭취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완전히 의존할 필요를 느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 안에 거하라” 는 명령의 의미이다. 우리가 육체 가운데 사는 삶은 사람들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 아니고, 우리 주님의 원수들을 기쁘게 하기 위함도 아니며,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신 분을 섬기고 영화롭게 하기 위함이다. 애정이 세상과 그 쾌락과 그 방탕에서 분리되지 않고 이 연합에 동의하는 것만으로는 불순종하는 일에 마음을 담대하게 만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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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한 백성으로서 믿음과 사랑이 슬프게도 결핍되어 있다. 우리의 노력은 우리가 사는 위기의 때를 위하여 너무 약하다. 우리를 두르고 있는 교만과 방종, 불경과 죄는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할 수 있는 대로 신앙 생애에 불리한 모든 교제를 피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환경을 택할 때에 그들의 영적 번영을 먼저 생각하는 자는 별로 없다.

부모들은 시골에서보다 생계를 유지하기가 더 쉽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들의 가족과 함께 도시로 모여든다. 자녀들은 학교에 있지 않을 때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으므로 거리의 교육을 받는다. 이들은 나쁜 친구들에게서 부도덕과 방탕의 습관을 배운다. 부모들은 이 모든 것을 본다. 그러나 그들의 잘못을 고쳐 주는 데는 희생이 요구될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사단이 자녀들을 완전히 지배할 때까지 그들이 있는 곳에 머물게 된다. 그대들에게 맡겨진 귀중한 영혼들을 위험에 처하게 하는 것보다는 그것이 어떤 것이든지 간에 모든 세속적 유익을 희생하는 것이 더 낫다. 그들은 유혹의 맹렬한 공격을 받을 것임으로 그것들을 대항하도록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그대들 자신과 그대들의 가족을 하나님께 가장 거리낌 없고, 솔직하고, 진심으로 헌신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영향력을 끊어 버리고, 모든 습관을 깨뜨리고 모든 유대를 잘라 버리는 것이 그대들의 의무이다.

사람들이 몰려 있는 도시 대신에 할 수 있는 대로 그대들의 자녀들이 유혹에서 보호받을 수 있는 어떤 한적한 환경을 찾아서 거기서 그들을 유용한 사람이 되도록 훈련하고 교육시켜라. 선지자 에스겔은 소돔을 범죄와 멸망으로 이끈 원인들을 이와 같이 열거한다. “그와 그 딸들에게 교만함과 식물의 풍족함과 태평함이 있음이며 또 그가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아니하며” (겔 16:49). 소돔의 운명을 피하고자 하는 모든 자들은 그 악한 도시에 하나님의 심판을 초래한 그 길을 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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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형제들이여, 그대들은 그대 자신과 그대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바치는 일을 등한히 함으로 가장 거룩한 하나님의 요구들을 무시하고 있다.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이기적인 관심에 몰두되고, 세속적인 보화에 마음이 끌린 채 거짓된 안전 속에 편히 쉬고 있다. 그대들은 악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위험은 멀리 떨어져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대들이 각성하여 회개와 겸손으로 여호와께 돌아가지 않으면 그대들은 기만당하고, 미혹 당하여 영원한 멸망을 당할 것이다.

거듭거듭 하늘에서 온 음성은 그대들에게 말하였다. 그대들은 이 음성에 순종하겠는가? 그대들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구하라는 참된 증인의 권면에 유의할 것인가? 금은 믿음과 사랑이며, 흰 옷은 그리스도의 의이다. 그리고 안약은 그대들로 하여금 사단의 간계를 깨달아 그것들을 피하게 해 주고, 죄를 찾아내어 그것을 증오하게 하고, 진리를 깨닫고 그것을 순종하게 해주는 영적 식별력이다.

세상의 치명적인 혼수 상태는 그대들의 감각을 마비시키고 있다. 그대들이 사단에 의하여 눈이 어두워져 있기 때문에 죄가 더 이상 불쾌하게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심판은 미구에 지상에 쏟아지려 하고 있다. “도망하여 생명을 보존하라” (창 19:17) 는 말은 하나님의 천사들이 한 경고이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다른 음성도 들린다. “흥분하지 말라. 특별히 놀랄 이유는 없다.” 하늘은 범죄한 자에게 신속한 멸망이 바야흐로 임한다고 선포하고 있는데, 시온에서 안락하게 있는 자들은 “평안하다 안전하다” 고 부르짖는다. 젊은이들, 경박한 자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이 경고를 쓸데없는 이야기로 생각하고 조롱하면서 돌아선다. 부모들은 그들의 자녀들이 그 문제에 있어서 대체로 올바를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모두 평안하게 잠을 잔다. 옛 세상이 멸망될 때와 소돔과 고모라가 불로 소멸될 때도 그러했다. 그들의 멸망 전야 (前夜) 에 그 평원의 도시들은 쾌락으로 떠들썩했다. 롯은 그의 공포와 경고 때문에 조소를 받았다. 그러나 불꽃 가운데서 멸망당한 것은 그 조롱자들이었다. 바로 그 밤에 자비의 문은 악한 자들, 곧 부주의한 소돔의 거민들에게 영원히 닫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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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들의 운명을 손에 쥐고 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항상 조롱을 받지만은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반드시 희롱 당하지 만은 않으실 것이다. 이미 그분의 심판은 땅에 임하고 있다. 사납고 무서운 폭풍은 지나가면서 파멸과 죽음을 남긴다. 삼켜 버리는 불은 사람이 없는 숲과 인구가 조밀한 도시를 쓸어 버린다. 폭풍과 파선은 바다를 여행하는 자들을 기다린다. 사고와 재난은 육지를 여행하는 모든 자들을 위협한다. 태풍, 지진, 전쟁과 기근은 신속히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그러나 사람들의 마음은 굳어진다. 그들은 경고하는 하나님의 음성을 깨닫지 못한다. 그들은 몰려오는 폭풍을 피할 수 있는 유일의 피난처로 도망하지 못할 것이다.

날카로운 눈으로 접근하는 위험을 보고 경고의 음성을 높이도록 시온의 성벽 위에 배치된 많은 사람들은 잠들어 있다. 이 위기의 시간에 가장 활동적이고 방심하지 않아야 할 바로 그 사람들이 그들의 의무를 등한히 하고 영혼들의 피를 그들 자신에게 초래하고 있다.

나의 형제들이여, 악한 불신의 마음을 경계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 제한 조항에 있어서 분명하고 철저하다. 그것은 그대들의 이기적 방종을 방해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거기에 순종하지 않는다. 그분의 영의 증언들은 성경을 주목하도록 호소하고, 그대들의 품성의 결점들을 지적하고 그대들의 죄를 책망한다. 그러므로 그대들은 그 증언들에 유의하지 않는다. 그대들의 육신적이요 안락을 좋아하는 행동을 정당화시키기 위하여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지에 대하여 의심하기 시작한다. 만일 그대들이 그 교훈에 순종하려고 한다면 그대들은 그 증언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임을 확신하게 될 것이다. 그대들의 불신이 그 증언들의 진실성에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만일 그것들이 하나님께로서 온 것이면 그것들은 설 것이다. 과거 36년동안 교회안에 존재해 온 이 증언들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자 노력하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항하여 싸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이 멸시하고 조롱하는 것은 도구가 아니고, 이 경고와 책망을 그대들에게 하신 하나님이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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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구주께서 당신의 제자들에게 주신 교훈 가운데 특별히 우리에게 적용되는 권고의 말씀들이 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눅 21:34). 깨어라, 기도하라, 일하라, — 이 말은 믿음의 진실한 생애이다. “항상 기도하” (눅 21:36) 라. 즉 언제나 기도의 정신으로 지내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주님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를 갖추고 있게 될 것이다.

파수꾼들은 백성들의 상태에 대하여 책임이 있다. 그대들이 교만과 시기와 의심과 다른 죄들을 향하여 문을 열어 주는 한 투쟁과, 증오와 온갖 악한 일들이 있을 것이다.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 예수님께서는 그대들의 손님으로 들어오게 해 달라고 요청하신다. 그러나 그대들은 그분께 들어오시라는 말을 하기를 두려워한다. 그분은 구약과 신약에서 다 같이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분은 당신의 영과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여전히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다. 그분의 교훈은 사람들을 하나님께 진실하고 자기 자신에게 진실하게 만드시고자 의도된 교훈이다.

예수님은 인류에게 완전하고 철저한 모본을 남기시기 위하여 인성을 취하셨다. 그분은 모든 목적과 감정과 사상에 있어서 진실 즉 마음과 영혼과 생애에 있어서 진실하신 당신 자신과 같게 우리를 꼴 지우시겠다고 제안하신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이다. 우리의 타락한 본성은 진리를 순종하므로 순결해지고, 고상해지고, 성별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 신앙은 세속적 원칙들과 결코 조화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의 정직은 모든 기만과 가장과 반대된다. 심령 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가장 많이 품고 있는 사람, 구주의 모습을 가장 완전하게 반사하는 자는 지상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가장 진실하고, 가장 고상하고, 가장 존경할 만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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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장 — 그리스도인의 연합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다 같은 말을 하고 너희 가운데 분쟁이 없이 같은 마음과 같은 뜻으로 온전히 합하라” (고전 1:10).

연합은 힘이요, 분쟁은 허약이다. 현대 진리를 믿는 자들이 연합할 때, 그들은 현저한 영향을 발휘한다. 사단은 이 사실을 잘 안다. 그가 오늘날처럼 주님의 백성들 사이에 원한과 분열을 일으킴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무효로 만들기 위하여 결정적인 노력을 한 적은 없었다.

세상이 우리를 대적하고, 일반 교회들이 우리를 대적하고 있으며 국가의 법이 미구에 우리를 대적할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함께 뭉쳐야 할 때가 있었다면 바로 지금이다. 하나님께서는 이 시대를 위한 특별한 진리를 우리에게 위탁하셔서 세상에 알리게 하셨다. 마지막 자비의 기별은 오늘날 전해지고 있다. 우리는 심판을 피할 수 없는 남녀들을 다루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모본으로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이끌기 위하여 모든 말과 행동에 있어서 모본되신 분을 가까이 따르고자 얼마나 세심하게 주의해야 하겠는가. 우리는 참으로 주의 깊게 진리를 제시함으로 다른 사람들이 그 진리의 아름다움과 단순함을 보고 그것을 받아들이도록 이끌어야 한다. 우리의 품성이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증거한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계속적인 빛, 곧 모든 사람이 알고 읽는 산 편지가 될 것이다. 우리는 분열과 불화와 분쟁을 존재케 함으로 오늘날 사단에게 진리를 양보할 수는 없다.

제자들 사이에 연합과 사랑이 존재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것이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그들을 위하여 구주께서 드린 기도의 요지였다. 십자가의 고뇌를 앞두고도 그분의 간구는 그분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고, 세상에서 그분의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남겨 놓고 가야 할 자들을 위한 것이었다. 가장 극심한 시련들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가장 큰 위험은 원한과 분쟁의 정신에 있을 것을 보았다. 그러므로 그분은 이렇게 기도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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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같이 나도 저희를 세상에 보내었고 또 저희를 위하여 내가 나를 거룩하게 하오니 이는 저희도 진리로 거룩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요 17:17-21).

그리스도의 그 기도는 마지막 때까지 당신을 따르는 모든 자들을 포함한다. 우리 구주께서는 그분의 백성들의 시련과 위험을 미리 보셨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괴롭히고 약화시키는 불화와 분열에 무관심하지 않으신다. 그분은 제멋대로 하고 괴로움을 당하는 자녀에 대하여 육신의 부모가 갖는 것보다 더 깊은 관심과 부드러운 동정으로 우리를 바라보고 계신다. 그분은 우리에게 당신에게서 배우라고 명령하신다. 그분은 당신을 신뢰하라고 우리에게 초청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열어 당신의 사랑을 받아들이도록 우리에게 명령하신다. 그분은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 되시기로 약속하셨다.

하늘로 승천하실 때, 그분은 지상에 있는 사업을 당신의 종들, 즉 부목자들의 손에 맡기셔서 돌보게 하셨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며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하심이라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엡 4:11-13).

우리 구주께서는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면서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 선물을 통하여 그분께서는 영생의 말씀을 세상에 전해 주시기 때문이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지식과 진정한 성결 안에서 완전하게 하기 위하여 정하신 수단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 맡은 사업은 단순히 진리를 전파하는 것 뿐이 아니고, 그들은 하나님께 회계해야 할 것처럼 영혼들을 돌봐야 한다. 그들은 오래 참음과 교훈으로 책망하고, 견책하고, 권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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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종의 활동으로 유익을 얻은 모든 사람은 그들의 재능대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하여 활동함으로 그와 연합해야 한다. 이것은 모든 진실한 신자들,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속한 일이다. 그들은 큰 목표를 언제나 염두에 두고, 교회 안에 있는 각자에게 적합한 위치를 감당하기 위하여 노력하고, 모두가 질서와 조화와 사랑 가운데 함께 일해야 한다.

그리스도교 신앙에는 이기적이거나 편협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원칙은 확산적이요 공세적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그것을 밝은 빛으로, 맛을 내는 소금으로, 또한 변화시키는 누룩으로 나타내셨다. 열심과 열성과 헌신으로 하나님의 종들은 진리를 아는 지식을 원근에 퍼뜨리기 위하여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교회의 힘과 연합을 위하여 활동하기를 게을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불화와 분열이 잠입할 기회가 주어질까 염려하여 주의 깊이 경계할 것이다.

최근에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면서도 그들의 사업은 우리 주님께서 교회에 확립하신 연합을 해치는 사람들이 우리들 중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기발한 활동 계획과 방법들을 가지고 있다. 그들은 발전에 대한 그들의 사상에 적응하게 하고자 교회에 변화를 가져오기를 바라고 그리하여 큰 결과가 얻어질 것으로 생각한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사들이 되기보다는 배우는 자들이 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무엇인가 큰 일을 이룩하고, 그들 스스로에게 영광이 돌아갈 무엇인가를 하기 위하여 언제나 초조해 하고 갈망하고 있다. 그들은 모든 교훈 가운데 가장 유익한 것, 즉 겸손과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배울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 앞에 있는 큰 싸움을 위하여 그들 스스로의 영혼을 준비시키고자 열렬하게 노력하고 있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료 일꾼들을 살펴보고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하여 몹시 애를 쓰고 있다. 구주께서는 그들에게,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 (마 11:29) 라고 말씀하신다.

진리의 교사들, 선교사들, 교회의 직원들이 진리를 순종함으로 그들 자신의 영혼을 정결케 할 수만 있다면 그들은 주님을 위하여 선한 사업을 할 수 있다. 모든 산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위하여 사욕이 없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뜻을 아는 지식을 주셔서 다른 사람들에게 빛의 통로가 되게 하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신다면 우리는 그분을 위하여 일하지 않을 수 없다. 하나님의 은총을 받고 구주의 사랑의 축복을 누리고 있으면서 죄악으로 멸망해 가는 자들의 위험에 대하여 무관심할 수는 없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요 15:8).

교회증언 5권 pp. 229-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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