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209-218 (284일)

그러나 나를 전율하게 하는 것은 가장 큰 빛과 특권을 가졌던 자들이 팽배해 가는 죄악에 감염된 사실이다. 그들 주변에 있는 불의한 자들의 영향을 받고, 많은 사람들, 심지어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중 많은 사람들까지도 냉랭해지고 거센 악의 조류에 압도당하고 있다. 참된 경건과 거룩함에 대하여 던지는 보편적 조롱은, 하나님과 밀접한 연결을 이루고 있지 않는 자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하는 마음을 잃어버리게 한다. 만일 그들이 마음 속으로부터 빛을 따르고 진리에 순종하고 있다면 이 거룩한 율법은 그처럼 멸시를 받고 도외시될 때라도 그들에게 더욱 귀중하게 보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을 멸시하는 일이 더욱 현저해질수록 그 율법을 준수하는 자들과 세상을 구분하는 선은 더욱 분명해 진다. 한 계층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교훈을 사랑하는 마음은,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그 교훈을 멸시하는 정도에 따라 증가된다.

위기는 신속히 다가오고 있다. 급증하는 수치 (數値) 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릴 시간이 임박했음을 알려 준다. 비록 형벌하기를 싫어할지라도 그분께서는 형벌하시되 신속히 하실 것이다. 빛 가운데서 걸어가는 자들은 다가오는 위험의 징조들을 볼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실망을 무관심하게 기대하면서, 하나님께서 심판의 날에 그분의 백성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위로를 받으면서 조용히 앉아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결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부지런히 활동하는 것이 그들의 의무임을 깨닫고, 강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야 할 것이다.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많으니라” (약 5:16).

경건의 누룩은 그 힘을 완전히 잃어버리지 않았다. 교회의 위험과 침체가 가장 클 때 빛 가운데 서 있는 적은 무리는 땅에서 자행되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게 될 것이다. 그러나 더욱 특별히 그들의 기도는, 교회를 위하여 드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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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성실한 적은 무리들의 열렬한 기도는 허지로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주님께서 복수하는 자로 나오실 때, 그분께서는 또한 믿음을 순결한 그대로 보존해 오고 스스로를 세상에서 더럽히지 않고 지켜온 모든 자들의 보호자로 나오실 것이다. 비록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실지라도 당신께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의 원한을 갚아 주시기로 약속하신 것은 이 때이다.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겔 9:4) 는 명령이 주어져 있다. 이 탄식하고 부르짖는 자들은 생명의 말씀을 설교해 왔었다. 그들은 책망을 하고, 권면을 하고, 권유했다. 하나님의 이름을 더럽혀 온 어떤 자들은 회개하고 그분 앞에서 그들의 마음을 낮추었다. 그러나 여호와의 영광은 이스라엘에게서 떠나갔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종교의 형식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을지라도 그분의 능력과 임재는 결핍되어 있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심판으로 나타날 때, 이 겸손하고 헌신적인 그리스도의 주종자들은, 통곡과 울음, 책망과 경고로 표현되는 그들의 심령의 고뇌에 의하여 세상의 다른 사람들과 구분될 것이다. 다른 사람들이 존재하는 악을 가리우기 위하여 외투를 씌우고, 도처에 팽배한 큰 악을 변명하고자 애쓰고 있는 동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열성과 영혼들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다른 사람들의 호감을 사기 위하여 침묵을 지키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의로운 심령은 부정한 일들과 불의한 자들의 대화 때문에 날마다 상했다. 그들은 거센 악의 물결을 막을 힘이 없다. 그러므로 그들은 슬픔과 우려로 충만해진다. 그들은 바로 큰 빛을 받은 자들의 가정에서 신앙이 멸시당하는 것을 보고 탄식한다. 교만과 탐욕과 이기심과 거의 모든 종류의 기만이 교회 안에 있기 때문에 그들은 탄식하고 자신의 영혼을 괴롭게 한다. 책망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은 발 아래 짓밟히고 사단의 종들은 승리를 거둔다. 하나님은 모욕을 당하시고, 진리는 효력을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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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의 영적 쇠퇴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죄를 인하여 탄식하지 않는 부류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그분의 사자들, 손에 살육하는 기계를 든 자들에게 명령하신다.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 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겔 9:5, 6).

여기서 우리는 교회, 곧 여호와의 성소가 하나님의 진노의 타격을 제일 먼저 받게 되리라는 것을 보게 된다. 고대의 사람들, 곧 하나님께로부터 큰 빛을 받고 백성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수호자로 서 있던 자들이 그들의 책임을 저버렸다. 그들은 지나간 날들에서처럼 우리가 이적과 하나님의 능력의 두드러진 표현을 기대할 수 없는 위치에 서 있었다. 시대는 바뀌었다. 이 말이 그들의 불신을 굳게 해주므로 저들은 이렇게 말한다. 주님께서는 선을 행치 않으실 것이며 악도 행치 않으실 것이다. 그분은 너무도 자비하심으로 그분의 백성을 심판하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므로 다시는 음성을 나팔 소리처럼 높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그들의 허물과 야곱의 집에 그들의 죄는 결코 다시 알려 주지 않을 자들에게서 “평안하다 안전하다” 는 부르짖음이 일어난다. 이 짖지 않을 벙어리 개들은 바로 하나님을 거스린 보복을 당할 자들이다. 남자들과 처녀들과 어린아이들이 모두 함께 멸망할 것이다.

성실한 자들이 그것을 인하여 탄식하고 부르짖는 가증한 일은 모두 유한한 사람들의 눈으로 식별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순결하고 거룩하신 하나님의 질투를 자극한 가장 악한 죄들은 드러나지 않았다. 마음을 살피시는 위대하신 분께서는 불의를 행하는 자들이 은밀한 중에 범한 모든 죄를 아신다. 기만당한 이 사람들은 그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주님께서 오래 참으시기 때문에 그들은 주님께서 보시지 않는다고 말하며, 마치 그분께서 세상을 포기해 버리신 것처럼 행동한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의 위선을 간파하시고, 그들이 숨기기 위하여 그처럼 주의를 기울였던 죄들을 다른 사람들 앞에 공개하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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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을 그들 자신의 기만적 마음 그대로 버려둔다면 계급의 우월, 위엄이나 세속적 지위, 성직에서의 위치 등이 원칙을 희생하는 데서 그들을 보존해 주지 않을 것이다. 가치 있고 의로운 사람으로 간주되어온 자들이 반역하는 일에 주도적인 자요, 냉담한 일과 하나님의 자비를 무시하는 일에 모본이 되고 있음이 입증될 것이다. 그들의 악한 길을 그분께서는 더 이상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며, 또한 진노로써 그분께서는 자비 없이 그들을 징치하실 것이다.

주님께서는 한때, 큰 빛으로 축복을 받고 다른 사람들에게 봉사함으로 말씀의 능력을 느꼈던 자들에게서 그분의 임재를 거두시기를 싫어하신다. 그들은 한때 그분의 성실한 종들이었고, 그분의 임재와 지도로 은총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에게서 떠나갔고, 다른 사람들을 오류 가운데로 이끌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입고 있다.

하나님의 복수의 날은 바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하나님의 인은 땅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슬퍼하는 자들의 이마에 찍힐 것이다. 세상에 동조하여 연합하는 자들은 주정꾼들로 더불어 먹고 마시고 있는데, 그들은 불법의 일꾼들과 함께 분명히 멸망당할 것이다. “주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저의 간구에 기울이시되 주의 낯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벧전 3:12).

우리 자신의 행동의 방향이 우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지 살육하는 기계에 의하여 베어질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하나님의 진노 중 몇 방울은 이미 땅 위에 내렸다. 그러나 마지막 일곱 재앙이 그분의 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어질 때는 회개하여 피난처를 찾기에는 영원히 너무 늦을 것이다. 그 때에는 속죄하는 피가 죄의 얼룩을 씻어 버리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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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에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 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단 12:1). 이 환난의 때가 올 때, 모든 사람의 운명은 결정된다. 더 이상 은혜의 시기는 없고, 회개하지 않은 자들을 위한 자비도 없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이 그분의 백성들에게 찍혀 있다. 용의 군대에 의하여 집결된 세상의 권세로 더불어 싸우는 맹렬한 싸움에서 스스로를 방어할 길이 없는 이 적은 무리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피난처로 삼는다. 위반하면 핍박과 사형이라는 위협하에 그들이 짐승을 경배하고 그 표를 받아야 한다는 법령은 세상의 가장 높은 권위에 의하여 통과되었다. 이제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을 도와주시기를 바란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으면 이처럼 무서운 싸움에서 그들이 속수 무책이기 때문이다.

용기, 불굴의 인내, 믿음,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무조건 신뢰 하는 것 등은 순간적으로 주어지지 않는다. 이 하늘의 덕성들은 다년간의 경험에서 얻어진다. 거룩한 노력의 생애와 의에 대한 확고한 집착에 의하여 하나님의 자녀들은 그들의 운명을 인쳤다. 무수한 유혹에 둘러싸인 그들은 저항하지 않으면 정복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완수해야 할 큰 사업이 있다는 것과, 언제 그들의 갑옷을 벗으라는 요구를 받을지도 모른다고 느꼈다. 그러므로 그들이 사업을 완수하지 못한 채 생애의 종말을 맞게 되면 영원히 잃어버린 바 될 것이다. 그들은 마치 최초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입술에서 받은 것처럼 하늘에서 온 빛을 열렬하게 받았다. 그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이 산과 광야로 추방되었을 때, 지하 감옥에 들어가 기아와 추위와 고문으로 죽게 되었을 때, 순교만이 그들의 고통에서 벗어나는 유일의 길인 것처럼 보였을 때, 그들은 그들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받기에 합당한 자로 인정받은 것을 기뻐했다. 그들의 귀중한 모본은 이전에 결코 없었던 환난의 때를 당하게 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위로와 용기가 될 것이다.

안식일을 지키노라고 공언하는 모든 자들이 인을 받지는 못할 것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진리를 가르치는 자들 가운데도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자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의 빛을 가지고 있고, 그들의 주인의 뜻을 알고, 우리의 신앙의 모든 점들을 이해했다. 그러나 그들은 거기에 합당한 행동을 하지 않았다. 예언과 하나님의 지혜의 보화를 그처럼 잘 알고 있던 이 사람들은 그들의 믿음을 실천했어야 했다. 그들은 권속들에게 명령하여 그들을 따르게 했어야 했다. 그렇게 했더라면 질서가 잘 잡힌 가정을 통하여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의 감화를 줄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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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헌신과 경건의 부족, 고상한 신앙상 표준의 미달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그들의 위치에 만족하게 한다. 유한한 판단력을 가진 사람들은 그들에게 그처럼 자주 하나님의 말씀의 보화를 열어 준 이 사람들의 모본을 따른다면, 그들은 분명히 그들의 영혼을 위태롭게 할 것이라는 것을 볼 수 없다. 예수님은 유일한 참 모본이시다. 누구나 주님께서 그에게 요구하시는 바를 알고자 하면, 겸손하고 배우고자 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을 가지고 지금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스스로 성경을 연구해야 한다. 어떤 목사가 하나님의 은총 안에 아무리 높이 서 있을지라도, 그가 만일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빛을 따르기를 등한히 하고 어린아이처럼 배우는 일을 거부할 것 같으면 그는 흑암과 사단의 기만 속으로 빠져들어가고 다른 사람들을 같은 길로 이끌어 갈 것이다.

우리의 품성에 하나의 점이나 흠이라도 있는 동안에는 우리들 중 아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품성에 있는 결함들을 고치고, 심령의 전에서 모든 불결을 정결케 하는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 그것들이 고쳐지고 정결케 될 때, 오순절 날 제자들에게 이른비가 내렸던 것처럼 늦은 비가 우리에게 내릴 것이다.

우리는 너무도 쉽게 우리의 성취에 만족한다. 우리는 부요하고 소유가 넉넉하다고 생각하지만, 우리의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계 3:17) 알지 못한다. 오늘날은 참된 증인의 권고에 유의해야 할 때이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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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생에서 우리는 극렬한 시험을 받아 값진 희생을 치르어야 한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평강이 보상이 된다. 극기하는 일이 너무 적고, 그리스도를 위한 고난 역시 너무 적었기 때문에 십자가는 거의 잊어버린바 된다. 만일 우리가 승리를 거두어 그리스도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기를 원한다면 그분과 함께 그분의 고난에도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안락한 방종의 길을 택하고 극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한, 우리의 믿음은 결코 확고해지지 않을 것이며, 우리는 예수님의 평안을 깨닫지 못하고 승리감을 통하여 주어지는 기쁨도 알 수 없을 것이다. 흰옷을 입고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 앞에서는 가장 고상한 구속받은 무리들은 승리를 위한 투쟁을 안다. 그들은 그 큰 환난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이 투쟁에 임하기 보다는 환경에 굴복한 자들은, 모든 영혼들에게 번민이 이르는 그날에, 비록 노아와 욥과 다니엘이 그 땅에 있을지라도, 각 사람이 자기 자신의 의로 그의 영혼만을 구원할 수 있기 때문에, 그들이 아들이나 딸도 구원할 수 없는 그날에는 어떻게 설 것인지 알지 못할 것이다.

어떤 사람도 그리스도인 생애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자신의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모든 영혼을 위한 충분한 준비는 이루어져 있다. 예수님은 궁핍의 때에 언제나 우리의 도움이 되신다. 믿음으로 그분을 부르기만 하면 그분께서는 그대의 탄원을 듣고 응답해 주시기로 약속하셨다.

아, 생기 있고 활동적인 믿음! 우리는 그것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것을 소유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시련의 날에 기진해지고 실패할 것이다. 그 때에 우리의 길에 있게 될 흑암이 우리를 좌절케하거나 우리를 실망에 빠지게 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풍성한 축복을 나누어 주시기 위하여 오실 때 그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휘장으로 가리우신다. 우리는 우리의 지난날의 경험을 통하여 이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백성들과 쟁변하시는 그날에 이 경험은 위로와 소망의 근원이 될 것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의 자녀들을 세상에서 흠 없이 보존해야 할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우리의 품성의 두루마기를 빨아서 어린 양의 피로 희게 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교만과 정욕과 영적 나태를 극복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우리가 눈을 뜨고 품성의 균형을 위하여 결정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다.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히 3:7, 8). 우리가 가장 견디기 어려운 처지에서 우리 주님의 나타나심을 기다리며 고대하고 있다. 세상은 흑암에 싸여 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한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 5:4). 기다리고 갈급한 영혼에게 어두움에서 빛을, 슬픔에서 기쁨을, 괴로움에서 안식을 가져다 주는 것이 언제나 하나님의 목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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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들이여, 준비의 큰 사업에서 그대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세상과 연합하고 있는 자들은 세상의 모습을 본받고 짐승의 표를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자아를 신뢰하지 않는 자들, 하나님 앞에 자신을 낮추고, 진리를 순종하므로 자신의 영혼을 정결하게 하고 있는 자들, — 이 사람들은 하늘 모습을 본받고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다. 법령이 내리고 인이 쳐질 때, 그들의 품성은 영원을 위하여 순결하고 흠 없이 남아 있을 것이다.

지금은 준비할 때이다. 하나님의 인은 부정한 남녀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야망적이요 세상을 사랑하는 남녀의 이마에도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거짓된 혀나 속이는 마음을 가진 남녀들의 이마에는 결코 쳐지지 않을 것이다. 인을 받는 모든 사람은 하나님 앞에 흠이 없는, 하늘의 후보자들이어야 한다. 나의 형제 자매들이여, 앞으로 전진하라. 나는 다만 이 시점에서는 이 점들을 간략하게 써서 준비의 필요성에 그대들의 주의를 환기시킬 수 있을 뿐이다. 현 시기의 놀랍고도 엄숙함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대들 스스로 성경을 연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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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장 — 호 소

나는 한 백성으로서의 우리의 상태를 생각할 때 슬픔으로 충만해 진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하늘을 닫아 버리지 않으셨지만 우리 자신의 계속적인 배교의 행동이 하나님과 우리를 분리시켰다. 교만과 탐욕과 세상을 사랑하는 정신은 추방이나 유죄 선고에 대한 두려움 없이 마음 속에 간직되어 왔다. 비통하고 참람된 죄악들이 우리들 사이에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적인 견해는 교회가 번영하고 있다는 것과 교회의 모든 영역에는 평안과 영적 번영이 있다는 것이다.

교회는 그 지도자 되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에서 돌아섰고 꾸준히 애굽을 향하여 퇴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영적 결핍에 우려를 나타내거나 놀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의심과, 심지어 하나님의 영의 증언들을 불신하는 일까지 도처에서 우리 교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사단은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스도 대신에 자아를 전하는 목사들도 그렇게 되기를 바랄 것이다. 증언들은 읽혀지지 않고 이해되지않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대들에게 말씀하셨다. 빛은 그분의 말씀과 증언들에서 비취고 있었지만 그 둘은 다 같이 등한히 여겨지고 멸시되어 왔다. 그 결과는 우리들 사이에서 순결과 헌신과 열성의 부족으로 나타난다.

각 사람은 마음 속으로 이런 질문을 해보라. “우리는 어떻게 이와 같은 영적 허약과 불화의 상태에 빠져 버렸는가?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믿음과 일치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스스로 초래하지 않았는가? 우리는 그리스도의 임재와 그분의 뜻을 깨닫는 더 깊은 지식보다는 오히려 세상의 호의와 칭찬을 구하고 있지 않았는가? “그대들 자신의 마음을 살피고, 그대들 자신의 행동을 판단해 보라. 그대들은 지혜로운 친구들을 찾고 있는가, 그렇지 않으면 세속적인 친구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복음을 순종하지 않는 동료들을 즐겨 택하고자 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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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들의 레크리에이션은 도덕적 영적 활력을 나누어 줄 수 있는 것들인가? 그것들은 사상과 행동의 순결로 이끌어 갈 것인가? 불순이 오늘날 널리 보급되어 있는데, 심지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공언하는 자들 사이에서도 그러하다. 도덕적 능력은 끊임없이 약화되고 있는 반면에, 정욕은 억제되지 않고, 동물적 성향은 방종으로 힘을 얻고 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금지하는 세속적이요 풍기를 문란케 하는 오락에 열광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끊고 세속적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의 대열에 속한다. 대홍수 이전의 사람들과 평원의 도시들을 멸망시킨 죄들은 오늘날 단순히 이교의 지역에서 또한 이른바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뿐만 아니라, 인자의 오심을 고대하고 있노라고 공언하는 어떤 사람들에게도 존재한다. 만일 하나님께서 이 죄들을 그분의 눈에 나타나는 그대로 그대들 앞에 제시해 주실 것 같으면 그대들은 수치와 공포로 충만해질 것이다.

그러면 이 우려를 자아내는 상태는 무엇 때문에 생겼는가?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진리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나는 무엇에 관하여 말하고 있는지 안다.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는 자, 중생하지 못한 본성의 타락상을 심각하고 예리하게 깨닫는 자는 별로 없다. 돌과 같은 마음이 부드러운 마음으로 바뀌어지지 않는다. 반석되신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 깨어지기를 바라는 자들은 별로 없다.

그대들이 누구이든지, 그대들의 생애가 어떠했든지 상관없이, 그대들은 오직 하나님께서 정하신 방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다. 그대들은 회개해야 한다. 그대들은 속절없는 상태 그대로 반석되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떨어져야 한다. 그대들은 의사의 필요를 느껴야 하고, 죄의 유일한 치료제인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함을 느껴야 한다. 이 치료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만 얻을 수 있다. 여기에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 또한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자들에 의하여 여전히 시작되어야 할 사업이 있다. 옛날의 바리새인들처럼 그대들 중 많은 사람들은 구주의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그대들은 자부심이 강하고 교만하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막 2:17) 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의 피는 정결케 하는 그 능력의 필요를 느끼는 자들 외에는 아무에게도 효력을 나타내지 못할 것이다.

교회증언 5권 pp. 209-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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