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증언5 159-168 (279일)

구원의 계획은 단순한 믿음이 무엇인지 아는 목사들이 별로 없기 때문에 단순한 그대로 제시되지 않는다. 진리를 지성적으로만 아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우리는 진리의 능력을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서 알아야 한다. 목사들은 어린 아이들처럼 그리스도께로 나올 필요가 있다. 형제들이여, 그대들이 그리스도 때문에 용서를 받고 영접을 받게 되었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예수님을 찾고, 그분의 죄를 고백하고, 밤낮 하나님께 탄원하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많이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많이 사랑하게 될 것이며 다른 사람들에게 그리스도를 죄를 용서하시는 구속주로 가리켜 줄 수 있을 것이다. 그대들은 또한 거룩하게 하는 진리의 능력을 느끼는 벅찬 마음으로 진리를 제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의 형제들이여, 나는 그대들을 염려한다. 나는 그대들이 초기의 제자들처럼 성령의 침례를 받을 때까지 예루살렘에 머물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그대들이 믿음으로 그대들의 능력의 팔을 굳게 붙잡기 전까지는 설교단에 나갈 자유가 있다고 결코 생각하지 말라.

우리가 그리스도의 정신을 소유하고 있을 것 같으면, 우리는 그분께서 일하신 것처럼 일하게 될 것이고, 나사렛 사람의 바로 그 사상을 받아서 그것을 사람들에게 제시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형식적인 신앙 고백자와 회개하지 않은 목사들의 처지에서 진정으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될 것 같으면 우리는 너무도 온유하고 열렬하게 진리를 제시하게 되고, 우리의 생애를 통하여 그것이 또한 너무도 두드러지게 예시될 것이므로 세상 사람들이, 우리가 공언하는 바를 우리가 믿고 있는지의 여부를 계속해서 의심하지 않게 될 것이다. 영혼들의 가치를 끊임없이 염두에 두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전한 기별은, 세상 사람부터라도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들이라” 는 판단을 얻어 낼 것이다.

-160-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개혁시키기를 원하면 그들에게 강요하고자 하는 원칙들을 우리 스스로가 실천해야 한다. 말이 아무리 훌륭할지라도, 일상생활과 일치되지 않으면 힘이 없을 것이다. 그리스도의 종들이여, 나는 그대들에게 “네 자신과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 (딤전 4:16) 고 권고하는 바이다. 다른 사람들에게 있는 죄는 책망하면서 그대들에게 있는 죄는 변명하지 말라. 만일 그대들이 온유와 사랑에 관하여 설교한다면 이 덕성들이 그대들 자신의 생애를 통하여 예시되게 하라. 만일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가정에서 친절하고, 예모 있고, 세심한 사람이 되도록 강조한다면, 그대들 자신의 모본이 그대들의 권면에 힘이 되게하라. 그대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빛을 받았기 때문에 그대들의 책임도 그만큼 크다. 주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등한히 하면 그대들은 많은 채찍으로 맞아야 할 것이다.

사단의 올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직전에 그들에게 놓여 있었던 것과 꼭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놓여 있다. 우리는 그 백성들의 역사를 되풀이하고 있다. 경솔과 허영, 안락과 쾌락을 사랑하는 마음, 이기심과 불순이 우리들 사이에 증가되고 있다. 하나님의 권고를 남김없이 선포하는 일에 확고하고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처럼 잠들지 않고 깨어서 정신을 차리고 있는 사람들이 오늘날 필요하다. 우리의 목사들에게 거룩함과 능력이 크게 부족함을 알고 있으므로 나는 자기 찬양을 위한 노력을 보고 매우 괴롭다. 그들이 예수님을 현실 그대로 보고, 또한 너무도 연약하고 너무도 불완전하고, 너무도 주님을 닮지 않은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볼 수만 있다면 그들은, 나의 이름이 생명책 맨 구석에라도 적힐 수만 있다면, 그분께서 주목할 만한 가치가 없는 나에게는 족하다라고 말하게 될 것이다.

모본되시는 분을 연구하고 본받은 것이 그대들이 해야 할 과업이다. 그리스도께서 극기하셨는가? 그렇다면 그대들도 그렇게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온유하고 겸비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영혼들을 구원하는 사업에 열성적이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하여 노력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분께서 자주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셨는가? 그대들도 그러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참으셨는가? 그대들도 그처럼 참아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원수들은 용서하신 것처럼 그대들도 용서할 것이다.

-161-

우리의 진정한 성품을 드러내 주는 것은 설교단에서의 신앙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가정의 신앙이다. 목사의 아내와 그의 자녀들과 그의 가정에서 조력자로 일하는 자들은 그의 경건을 판단하기에 가장 적합한 사람들이다. 훌륭한 사람은 가정에 하나의 축복이 될 것이다. 아내와 자녀들과 조력자들은 그의 신앙 때문에 더욱 좋은 사람들이 될 것이다.

형제들이여, 그분을 가정에 모시고 들어가고, 그분을 설교단으로 모시고 들어가고, 어디로 가든지 그분을 그대들과 함께 모시고 다녀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목회 봉사를 인정해 달라고 강요할 필요가 없게 된다. 그대들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사실을 입증해 주는 하늘의 신임서를 가지고 다닐 것이기 때문이다. 고독한 시간에 예수님을 모시고 다니라. 그분께서 자주 기도하셨다는 것과 그분의 생애가 성령의 새로운 영감으로 언제나 지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대들의 사상과 그대들의 내면 생활이, 하나님의 날에 그 기록을 대하기에 부끄러워할 것이 없는 그런 것이 되게 하라.

하늘은 의인들의 열렬한 기도가 상달되지 못하도록 닫혀 있지 않다.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었지만 주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고 가장 두드러진 방법으로 응답하였다. 우리가 하나님께 능력을 얻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는 우리 자신에게서 발견되어야 한다. 만일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의 내면 생활이 그들 앞에 제시될 것 같으면 그들은 그리스도인이라고 주장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은혜 안에서 자라나고 있지 않다. 매우 급한 기도가 때때로 드려지지만 하나님과의 진정한 교통은 없다.

거룩한 생애에서 향상하려면 기도를 많이 드려야 한다. 진리의 기별이 처음 선포되었을 때 우리는 얼마나 많은 기도를 드렸던가! 얼마나 자주 중보의 음성이 방에서, 헛간에서, 과수원이나 숲속에서 들렸는가. 빈번히 우리는 열렬한 기도로 여러 시간을 보내고, 두세 사람이 함께 약속을 주장했다. 때때로 우는 소리가 들리고, 감사의 음성과 찬양의 노래도 들렸다. 지금은 하나님의 날이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워졌다. 그러므로 우리는 초창기보다 훨씬 더 열렬하고 열성적이어야 한다. 우리의 위험은 그 당시보다 훨씬 더 크다. 심령들은 더욱 굳어져 있다. 오늘날 우리는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물들어야 하며 우리가 그것을 받을 때까지는 쉬지 말아야 한다.

-162-

형제 자매들이여, 그대들의 기도가 큰 추수장에 있는 일꾼들과 함께 예리한 낫처럼 나가야 한다는 것을 잊었는가? 젊은이들이 진리를 전하기 위하여 나갈 때, 그대들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친히 연합하여 지혜와 은혜와 지식을 주시도록 기도하라. 그들이 사단의 올무에서 보호를 받고 사상이 순결하고 마음이 거룩하게 보존되도록 기도하라. 나는 주님을 경외하는 그대들에게, 무익한 이야기나, 자고한 마음을 충족시키고 식욕에 탐닉되기 위한 쓸데없는 노력에 시간을 허비하지 말도록 권고하는 바이다. 이렇게 하여 얻은 시간을, 그대들의 목사들을 위하여 하나님과 더불어 씨름을 하는 데 바치도록 하라.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을 떠받친 것처럼 그들의 손을 붙들라.

15 장 — 우리의 장막 집회들

나는 우리의 장막 집회들 중 어떤 것들은 주님께서 의도하셨던 바와는 너무도 거리가 먼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강림하심에 대하여 준비를 갖추지 못한 상태로 온다. 대개 자매들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매우 값진 내면적 단장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으면서도, 외모의 단장을 위한 의복 준비에 상당한 시간을 바친다. 또한 쓸데없는 요리를 하고, 많은 파이와 케이크, 먹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손해가 되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음식물을 준비하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낸다. 우리의 자매들이 훌륭한 빵과 어떤 다른 종류의 건전한 음식물을 제공하였다면, 그들과 가족들이 생명의 말씀을 깨닫기에 준비가 더 잘 갖추어지고 성령의 감화에 훨씬 더 민감해졌을 것이다.

-163-

활동의 양이 두 배 혹은 세 배가 되는 가정에서 먹는 것처럼 평범하고 단순하지 않은 음식으로 위장은 때때로 과도한 짐을 지게 된다. 이것 때문에 정신이 너무도 무기력해져서 영원한 사물을 분별하기가 어려워진다. 그리하여 집회가 끝나면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를 더 많이 체득하지 못한 데 대하여 실망하게 된다.

집회를 위하여 준비하는 동안 각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철저하고 비판적으로 살펴야 한다. 만일 가정에서 불쾌한 감정이나, 불화나, 다툼이 있었다면 이런 잘못들을 피차간에 고백하고 함께 기도하고 피차를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준비하는 데 첫째로 해야 할 일들 중 하나이다. 하나님 앞에서 그대 자신을 낮추고 영혼의 성전에서 온갖 종류의 쓰레기 — 온갖 질투와 시기와 의심과 흠잡기 — 를 버리기 위하여 열렬하게 노력하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8-10).

주님께서는, 너의 골방에 들어가서 조용한 가운데 너 자신의 마음과 교통하고, 진리와 양심의 소리를 들으라고 말씀하신다. 은밀한 기도만큼 자신을 분명하게 보여 주는 것은 없을 것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께서는 그대들의 이해력을 열어 주시고 그대들의 간구에 응답해 주실 것이다. 등한히 해서는 안 될 평범하고 단순한 의무들이 그대들 앞에 펼쳐질 것이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하여 그대 자신과 그대들의 모든 힘을 바치기로 그분께 약속하라. 이와 같이 미진한 일을 장막회에 가져오지 말라. 만일 가정에서 그 일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대들 자신의 영혼은 고통을 받고, 다른 사람들도 그대들의 냉랭함과 무감각과 영적 혼수 상태 때문에 크게 손해를 받게 될 것이다.

-164-

나는 진리를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의 상태를 보아왔다. 에스겔선지자의 말은 이 시대에 있는 그들에게 적용된다. “인자야 이 사람들이 자기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었으니 그들이 내게 묻기를 내가 조금인들 용납하랴 그런즉 너는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라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 중에 무릇 그 우상을 마음에 들이며 죄악의 거치는 것을 자기 앞에 두고 선지자에게 나아오는 자에게는 나 여호와가 그 우상의 많은 대로 응답하리니” (겔 14:3, 4).

만일 우리가 세상의 사물들을 사랑하고 불의에서 쾌락을 얻고 열매 없는 어둠의 일에 참여한다면 우리는 우리 앞에 죄악의 거치는 것을 두고 우리의 마음에 우상을 세우게 된다. 그러므로 결정적인 노력으로 그것들을 제거해 버리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하나님의 아들딸로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여기에 가족들이 우리의 거룩한 집회에 오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다. 음식과 의복을 위한 준비는 이차적인 문제가 되게 하고, 가정에서 마음을 깊이 살피는 일을 시작하라. 하루 세 번씩 기도하고, 야곱처럼 끈질기게 졸라대라. 가정에서 예수님을 발견하여 그분을 집회에 모시고 온다면, 그 곳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참으로 귀중한 것이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시기를 위하여 준비하는 개인적인 일을 등한히 한다면 어떻게 주님의 임재를 느끼고 그분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을 보리라고 기대할 수 있겠는가?

그대들 스스로를 위하여, 그리스도를 위하여, 또한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일을 하라. 그대들은 늘상 기도하던 방식대로 기도하지 말라.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찢으라. 그대들의 집을 질서 있게 하라. 그 때를 위하여 자녀들을 준비시켜라. 그들에게 좋은 옷을 입히고 하나님 앞에 나타나는 것이 깨끗한 손과 정결한 마음으로 나타나는 것만큼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라. 그대들의 길에 있었을지도 모를 모든 장애 — 그대들 사이에서나 그대들과 그들 사이에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불화 — 를 제거하라. 그렇게 함으로 그대들은 주님을 그대들의 가정으로 초청하게 되고, 집회를 향해서 갈 때 거룩한 천사들이 그대들과 함께할 것이며, 그 천사들의 빛과 임재는 악한 천사들의 흑암을 물리쳐 버릴 것이다. 불신자들까지도 그 장막 집회에 들어갈 때 거룩한 분위기를 느끼게 될 것이다. 아, 이 중요한 일을 등한히 함으로 얼마나 많은 것을 잃어버리고 있는가! 그대들은 설교로 기쁨을 얻고, 활기를 되찾고 생기를 얻을 수도 있다. 그러나 회개하게 하고 개혁시켜 주는 하나님의 능력은 마음 속에서 느껴지지 않을 것이며 그 일은 기대한 만큼 진지하고, 철저하고, 영속적 (永續的) 인 것이 되지 못할 것이다. 교만은 십자가에 못 박고, 심령은 귀중한 그리스도의 의의 옷으로 입히라. 그리하면 그대들은 어떠한 집회를 갖게 될 것인가. 그 집회는 그대들의 심령에 하늘의 문과 같을 것이다.

-165-

겸비하게 하고 마음을 살피는 동일한 일이 교회에서도 진행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형제들 사이의 모든 불화와 이간은 이 연례적 집회시에 주님 앞에 나타나기 전에 버리도록 해야 한다. 이 일에 열성적으로 착수하여 그것이 이루어질 때까지 쉬지 말라. 왜냐하면 그대들이 의심과 불평과 논쟁의 마음으로 집회에 오게 되면 악한 천사들을 장막 안으로 불러들여 그대들이 어디로 가든지 흑암을 가져갈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와 같은 준비가 없었기 때문에 이 연례적 집회들이 별 성과가 없음을 보아 왔다. 목사들은 하나님을 위하여 일할 준비가 별로 갖추어져 있지 않다. 예리하고 괴상한 것들을 말하고 고의적으로 다른 교회들을 채찍질하고 그들의 믿음을 조롱하는 설교자들은 많이 있지만, 하나님을 위한 열렬한 일꾼들은 별로 없다. 예리하고 자부심이 강한 이 설교자들은 다른 모든 사람들보다 앞선 진리를 가지고 있노라고 공언하지만 그들의 일하는 방법과 그들의 신앙적 열성은 그들의 믿음의 공언과 결코 일치되지 않는다.

나는 우리의 목사들이 항상 입어야 할 알맞는 옷인 심령의 겸비를 보기 위하여 살펴보았으나 그러나 그들은 그것을 입고 있지 않았다. 나는 주님께서 마땅히 소유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영혼에 대한 깊은 사랑을 찾았으나 그들에게 그것이 없었다. 나는 그들의 가정과 교회에 있는 회개하지 않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때문에 눈물과 심령의 번민으로 드리는 열렬한 기도를 듣고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그런 기도는 들리지 않았다. 나는 성령이 함께하는 증거를 가지고 호소하는 음성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하였다. 나는 이러한 때에 책임을 맡은 자들이 마땅히 낭실과 단 사이에서 울면서 여호와여 주의 백성을 긍휼히 여기소서 주의 기업으로 욕을 받게 마옵소서 라고 부르짖는 것을 듣고자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한 간구를 듣지 못했다. 소수의 열렬하고, 겸손한 자들이 주님을 찾고 있었다. 이런 집회들 중 어떤 곳에서는 한두 사람의 목사들만 책임을 느끼고 마치 무거운 짐을 실은 마차처럼 눌려 버렸다. 그러나 목사들 중 대다수는 마치 어린아이들과 마찬가지로 그들의 사업의 신성함을 깨닫지 못하였다.

-166-

나는 이런 연례적 집회들이 어떤 집회들이 될 수 있을지 그리고 어떤 집회들이 되어야 할지를 보았다. 즉 이 집회들은 열렬한 활동의 집회들이 되어야 한다. 목사들은 다른 사람들을 돕는 사업에 착수하기 전에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한다. 백성들이 목사들 중 많은 사람들보다 앞서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주님께서 그들을 축복하시기까지 기도로 끈기 있게 씨름해야 한다. 하나님의 사랑이 그들의 마음의 제단에서 불타고 있을 때, 그들은 자기 자신의 영리함을 나타내기 위해서가 아니고 세상 죄를 지고 가는 그리스도를 제시하기 위하여 설교할 것이다.

초기의 교회에서는 그리스도교가 순수한 그대로 가르쳐졌고, 그 교훈들은 영감의 음성으로 주어졌고, 그 의식들도 사람들의 고안으로 더러워지지 않았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드러내고, 단순한 그대로 아름답게 나타났다. 교회의 장식은 거룩한 원칙들과 신자들의 모범적 생활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과시나 학식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단순한 전파에 수반된 하나님의 능력에 의하여 그리스도께 인도되었다. 그러나 교회는 타락해졌다. 그러므로 오늘날은 그 어느 때보다 목사들이 빛의 통로가 되어야 할 필요가 더 크다.

성경의 진리를 경박하게 말하는 자들이 많은데, 그들의 심령은 마치 길보아산에 우로가 메말랐던 것처럼 하나님의 영이 메말라 있다. 그러나 우리는 철저하게 회심하고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길을 다른 사람들에게 가르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경건의 능력은 우리의 교회들에서 거의 존재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가? 주님께서는 여전히 자비를 베풀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그분은 하늘의 창들을 닫지 않으셨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그분과 분리시켰다. 우리는 믿음의 눈을 십자가에 고정시키고 예수님이 우리의 힘이요 우리의 구원이심을 믿을 필요가 있다.

-167-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지워진 사업의 책임이 그처럼 적은 것을 보고, 우리는, 주님께서 오실 때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고 물어 보는 바이다. 부족한 것은 믿음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요구하면 주실 은혜와 능력을 풍성하게 간직하고 계시다. 그러나 그것에 대한 필요를 크게 느끼지 않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고 예수님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예수님을 높이고 그분의 공로를 완전히 의지하지 않는다.

나는 목사들과 백성들에게 마음 속에서 이루어져야 할 더욱 깊은 은혜의 사업의 필요와 우리의 장막 집회의 정신과 활동에 들어가기 위하여 더욱 철저한 준비의 필요를 감명 깊게 새겨 주므로 그들이 이 집회에서 가장 큰 유익을 얻게 되기를 바란다. 이 연례적 집회들은 특별한 축복의 기회가 될 수 있고, 영성에 크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 사랑하는 독자들이여, 그 집회들이 그대들에게 어떤 것이 되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각 사람이 스스로 결정하는 대로 된다.

16 장 — 형제 우애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요 13:35). 우리가 품성에 있어서 우리 구주를 더욱 밀접하게 닮으면 닮을수록 그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자들에 대한 우리의 사랑은 더욱 커질 것이다. 피차간에 이타적인 사랑의 정신을 나타내는 그리스도인들은 불신자들이 결코 반박할 수도, 저항할 수도 없는, 그리스도를 위한 증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그와 같은 모본의 능력은 도저히 측정할 수 없다. 교인들이 나타낸 그리스도의 사랑만큼 사단과 그의 사자들의 계책을 성공적으로 좌절시킬 수 있는 것도, 구속주의 나라를 세울 수있는 것도 없다. 평안과 번영은 온유와 사랑이 적극적으로 발휘될 때만 누릴 수 있다.

-168-

고린도 교회에 보내는 첫 편지에서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마땅히 간직해야 할 그 사랑의 중요성을 설명한다.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고전 13:1-3).

공언하는 바가 아무리 클지라도 하나님과 동료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마음이 물들어 있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아니다. 비록 그가 큰 믿음을 가지고 있고 이적을 행할 능력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그의 믿음은 가치가 없다. 그는 크게 자선을 베풀 수도 있다. 그러나 그는 진정한 사랑보다는 어떤 다른 동기에서 그의 모든 재산을 주어서 가난한 자들을 구제한다면 그런 행동은 하나님의 인정을 받지 못할 것이다. 자신의 열성 때문에 그는 순교자의 죽음을 당할 수도 있다. 그러나 사랑의 황금이 부족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기만당한 열심가 혹은 야망적인 위선자로 취급하실 것이다.

사도는 이어서 사랑의 열매를 자세히 열거한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고전 13:4). 마음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사랑은 교만과 이기심을 근절한다.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고전 13:4). 가장 순수한 기쁨은 가장 깊은 겸손에서 솟아난다. 가장 강하고 가장 고상한 품성은 인내와 사랑의 기초 위에 세워지고, 또한 하나님의 뜻에 의심 없이 맡기는 것을 기초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 (고전 13:5) 한다. 사랑이 지배하는 마음은, 자존심과 이기심을 견딜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하는 상처 때문에 분노와 복수심으로 충만해지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의심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행동과 동기를 언제나 가장 호의적으로 해석한다. 사랑은 쓸데없이 다른 사람들의 결점을 결코 폭로시키지 않을 것이다. 사랑은 좋지 못한 소문을 듣기 위하여 열광적으로 귀를 기울이지 않고, 오히려 명예가 실추된 사람의 어떤 좋은 특성들을 생각해 내고자 노력한다.

교회증언 5권 pp. 159-168

Posted in

admin